제 12 장 3

 

제 12 장

3

 

한남실이 나머지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동강밀영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이였다.

어제밤 늦게까지 래일부터 열리게 될 회의준비와 각지에서 모여든 대표들과의 사업때문에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하시여 한남실의 보고만 받으셨을뿐 아직 새로 온 아동단원들을 만나보시지 못하신 장군님께서는 일부러 아침 첫시간을 내시여 아이들에게로 향하시였다.

가시는 걸음에 그이께서는 사령부에서 얼마쯤 떨어진 숲속에 새로 큼직하게 짓고있는 귀틀집에 들리시였다. 래일부터 회의장으로 쓰게 될 귀틀집이였다.

엊저녁에 7련대에 지시를 주시였는데 신새벽부터 어찌나 날파람있게 손을 썼는지 귀틀벽 네벽을 아침결에 벌써 거의다 맞춰올렸다. 하긴 7련대의 도끼목수군들이라고 하면 도끼와 톱만 가지고서도 한채의 귀틀집쯤은 한겻에 제꺽 맞춰내는 솜씨를 가졌기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군복상의저고리를 벗어붙이고 땀을 철철 흘리며 일손을 다그치고있는 어제날의 《민생단》혐의자들이였던 7련대의 도끼목수들과 가벼운 롱말까지 건네시며 귀틀집이 되여가고있는것을 만족스럽게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마냥 즐거운 기분에 잠기시여 돌투성이의 개울을 건느신 다음 우묵하게 꺼져든 골짜기에 들어서시였다. 이깔나무숲은 연한 안개속에 잠긴채 묵묵히 서있었다.

그이께서 이끼낀 진대나무를 돌아서 맞은편 약간 둔덕진 언덕에 올라서실 때였다. 아름드리 분비나무밑에서 불현듯 《섯! 누구얏!》하는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 처녀애의 챙챙한 목소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뒤따르는 리북철과 주봉길을 돌아보시며 소리없이 웃으시였다. 리북철이 보초병에게 장군님께서 오신다는것을 알리려고 앞으로 가려 하자 그이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손짓하시였다.

《누구얏 섯!》

또다시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 연한 안개때문에 보초병은 보이지 않았다. 주봉길이가 참지 못하고 사령부에서 온다고 알렸으나 보초병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하, 이거 야단났군.》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대견스러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우리 아동단원들이 보통이 아니군. 보초병의 다음 명령을 기다립시다.》

그이께서는 딱한 표정을 하고있는 리북철과 주봉길을 돌아보시며 나직하게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가둑나무숲을 헤치는 소리가 나더니 안개속에서 한남실이 나타났다. 그는 보초소를 순찰하고 돌아가던길에 보초병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오는 모양이였다.

한남실은 눈앞을 가리우는 가둑나무잎을 조심스레 헤치면서 이쪽을 살피더니 장군님의 모습을 알아뵙고는 대뜸

《장군님!》

하고 소리치며 달려왔다. 한껏 웃음을 머금은 눈은 기쁨으로 빛나고 그것으로도 반가움을 다 드러내지 못한듯 미소가 넘친 입술이 방끗 열리여 무슨 말씀인가 더 올리려고 하였으나 리북철의 어색한 웃음과 주봉길의 찌프려진 이마살을 보더니 한남실은 곧 보초병때문에 장군님께서 지체되셨다는것을 눈치챈듯 저으기 당황해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한남실의 마음속을 헤아리시고 웃으시면서 그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이때 잣나무밑에서

《장군님!》

하는 처녀애의 목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문순녀가 풀숲을 헤치며 달려나왔다. 그의 허리에는 수류탄 한개가 매달려있었다.

《순녀가 보초를 섰댔구나! 참 용하구나.》

장군님께서는 문순녀의 어깨와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다. 한남실은 장군님께서 오신줄도 모르고 무엄하게 멈춰서시도록 한 순녀에게 나무람하는듯 한 눈길을 보냈으나 소녀는 장군님을 맞이한 기쁨때문에 한남실의 그런 눈길을 감촉하지 못하다가 주봉길이 입을 삐죽거리고 눈살을 찌프려 보였을 때에야 자기의 실책을 깨달았다. 죄송스러움을 느낀 순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머리를 숙였다.

《보초병은 그렇게 엄격해야 한다. 잘했다.》

그이께서는 갑자기 풀이 죽어버린 문순녀를 오히려 칭찬해주시고 허리를 굽히시여 그의 혁띠고리를 바로잡아주신 다음 이슬에 젖은 옷섶을 어루만져주시였다.

《인제는 제법 유격대원 같구나. 순녀가 소왕청근거지에서 연예공연을 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순녀는 독창을 잘 불렀지. 인제는 어른이 다 되였구나.》

그러시고는 순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한남실은 장군님을 모시고 아동단귀틀집이 자리잡고있는 골짜기막바지로 올라갔다.

개버들숲속으로 졸졸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일행이 중간 보초소를 통과하여 이깔나무에 둘러싸인 귀틀집마당으로 가까이 갔을 때 아동단원들은 훈련중이였다. 《앞으로 갓.》구령에 따라 소년, 소녀들이 두패로 나뉘여서 좁은 공지를 빙빙 돌고있었다.

가둑나무껍질로 물을 들인 누런 옷을 입고 머리에도 같은 색의 모자를 쓰고 흰 운동화를 신은 아동단원들이 땅을 구르며 호기있게 행진해나갔다. 얼굴은 해빛에 타서 거밋거밋하였고 모자채양밑에서는 까만 눈이 당돌하게 번쩍이였다. 무겁게 다문 입술과 긴장된 눈초리는 그들이 온 정신을 훈련에 쏟아붓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마당 한복판에는 늘씬한 허리에 혁띠를 바싹 죄여매고 모자를 꾹 눌러쓴 아동단원이 틀스럽게 뻗치고 서서 대렬을 지휘하고있었다. 그 애는 챙챙한 목소리로 좌로, 우로, 앞으로 하며 구령을 쳤다. 조경수였다.

《음, 아동단학교 나팔수로군. 우리 아동단원들이 모두가 건강해졌구만.》

그들은 어떻게나 훈련에 열중하였던지 장군님께서 가까이에 와 계시는줄도 몰랐다. 한남실은 장군님께서 오셨다고 소리치고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아무나 이쪽으로 눈길을 돌렸으면 하고 바랐으나 곁눈질하는 아이 하나 없었다.

《남실동무가 수고한 보람이 있소.》

훈련을 지도하는 조경수가 휴식구령을 내렸을 때에야 장군님께서는 귀틀집마당에 들어서시였다. 그제야 그이께서 오신줄을 알게 된 아동단원들은 《장군님-》 하고 저마다 소리쳐 부르며 달려와서 그이의 품에 안겼다. 그들은 물결처럼 순식간에 장군님을 휩쌌다. 그이의 군복자락에도, 권총갑에도, 전투가방에도 마구 매여달렸다.

《잘들 있었느냐?》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예-》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예-》

대답은 한결같이 기운찼다.

장군님께서는 다젠창에서 지내다가 건강해져 돌아온 아이들을 눈여겨 살펴보시며 그애들과 한동안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시였다. 그러자 사내애들은 가둑나무물을 들인 저고리아래섶을 빳빳하게 잡아당기거나 신발에 오른 먼지를 털었고 처녀애들은 주름이 반듯한 치마에 묻은 검불을 털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장군님께 될수록 깨끗한 옷차림을 보여드리려고 마음을 썼다.

문득 빙 둘러선 아이들뒤에서 《장군님!》 하는 사내애의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동단원들이 뒤를 돌아다보며 길을 내주자 명일이가 장군님 앞에 걸어와서 굽석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특하시여 명일을 덥석 들어안으시였다.

《우리 명일이구나. 인제는 꽤 무겁구나. 그래 명숙이랑 잘 있었니?》

《예.》

《어머니도 건강하시다지?》

《예.》

명일은 이번에도 기운차게 대답했다.

장군님의 품에 안긴 명일은 장한듯 다른 아동단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잘 왔다. 아버지를 보구싶었지?》

《아닙니다.》

《명일이가 나에게 걱정끼칠가봐 거짓말을 하는구나. 내가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라고 어머니가 일러서 보낸게구나.》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다. 명일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일없다. 이제 인차 명일이가 보고싶었던 아버지를 만나보게 될게다. 명일이는 아버지랑 같이 사진을 찍구싶다지? 아버지가 오면 어머니랑 명숙이랑 같이 찍자. 여기 있는 아동단원들두 한장 찍구.》

《장군님도 우리와 같이 찍어주지요?》

《그래 그래, 나도 같이 찍자꾸나.》

아동단원들속에서는 환성이 일어났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풀밭에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빙 둘러앉은 아동단원들을 잠시 정겹게 돌아보시였다.

《경수는 언제 구령치는 법을 배웠느냐?》

장군님께서는 맨 뒤줄에 앉아있는 조경수에게 물으시였다.

한남실은 언뜻 자기를 바라보는 조경수에게 어서 일어서서 말씀드리라고 눈짓을 하였다. 조경수는 힘있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동단에서 배웠습니다.》

《경수는 나팔도 잘 불지?》

《잘 불지 못합니다.》

《그래 경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밤에 백리를 달릴 자신이 있느냐?》

《자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좋다. 캄캄한 밤이다, 비가 막 쏟아진다, 이때 너는 우등불을 어떻게 피울테냐?》조경수는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에 골물하였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서로 조경수와 한남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한남실에게 웃음을 보내시며 조경수의 대답을 기다리시였다.

《아, 알겠습니다.》

조경수는 자신있게 말씀올렸다.

《비가 와도 봇나무껍질은 젖지 않습니다. 속껍질을 벗겨서 밑불을 피우면 젖은 나무로도 우등불을 크게 놓을수 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긴장했던 얼굴에 웃음을 담고 저희들끼리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다, 잘 대답했다. 그만하면 비오는 날에 젖은 옷을 말릴수 있겠다. 그럼 이번에는···》

장군님께서는 주봉길이한테서 장총을 받으시여 조경수에게 넘겨주시였다.

《분해결합을 한번 해보아라.》

조경수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격발기를 열어제끼고 탄알이 없는가 검열을 하였다. 그 동작이 제법 총을 많이 다루어본 사람처럼 의젓하였다.

조경수는 모자를 벗어 풀밭에 놓고 두눈을 딱 감았다.

《눈은 왜 감느냐?》

《저는 보지 않고 합니다.》

《그래, 어디 보자.》

조경수는 눈깜박할 사이에 장총의 분해와 결합을 끝냈다. 그리고 모자를 썼다. 그의 얼굴에는 한번 더 뽐내고싶어하는 기색이 은근히 어렸다.

장군님께서는 탄복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경수가 눈을 감고 그렇게도 빨리 분해결합을 해치우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시였던것이다.

《누가 또 눈을 감고 해보겠니?》

《예.》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일제히 손을 들었다. 천응남은 엉거주춤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보초를 교대하고온 문순녀가 손을 제일 높이 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대단하다고 칭찬하시며 모두 손을 내리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요즘에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학습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문순녀가 일어서서 남호두회의에서 하신 장군님의 보고를 배웠다고 말씀드렸다.

《공부 잘했는지 내가 하나 물어봐야겠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어떤 사람들로 조직되였는지 어디 한번 대답해봐라.》

명일이가 얼른 일어나서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쟁쟁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로 조직되였습니다.》

《유격대는 누구의 리익을 위해서 싸우느냐?》

《집도 없고 옷도 없고 먹을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고있습니다.》

《잘 대답했다. 공부를 잘했구나.》

얼마후 아동단원들은 2렬 횡대로 나란히 정렬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중 숙성해보이는 조경수, 문순녀 그리고 천응남을 대렬앞으로 부르시였다. 정보로 걸어나와 나란히 선 그 세명의 숙성한 아동단원들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머리들을 쳐들었다. 그 어떤 명령이 떨어지건 자신있게 해낼수 있다는 기상들이였다.

그 어른스런 모습을 잠시 미덥게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 그들 세명을 조선인민혁명군대원으로 받아들인다고 선포하시려고 하셨을 때, 와삭와삭 소리를 내며 누군가 숲을 헤쳐나왔다. 전령병 한종삼이였다.

허겁지겁 풀판으로 달려나온 그는 장군님을 뵈옵자 이것저것 살피고 헤아려 처신할 경황이 없는듯 곧장 그이곁으로 다가갔다. 한종삼의 얼굴은 흙빛이 되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경례붙일것마저 잊어버리고 곁에 와선 전령병을 의아쩍게 돌아보시였다.

《···》

종삼이가 말하기를 꺼리며 주저하는것을 알아차리신 장군님께서는 그를 데리시고 저편으로 몇걸음 물러나시였다.

무어라고 여쭙는 전령병의 몇마디 말을 들으시자 장군님께서는 대뜸 안색을 흐리시였다.

《정말이요?!》

불쑥 이렇게 소리쳐 물으시는 장군님의 음성에는 짙은 의혹이 비껴있었다.

전령병은 우물거리며 같은 말을 거듭 여쭙다가 머리를 숙이고말았다.

전령병이 그러는 모양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여 눈으로 리북철을 찾으시였다. 방금전까지 그렇게도 밝으셨던 장군님의 안광에는 짙은 그늘이 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떨리는 음성으로 리북철경위대장에게 대렬앞에 나선 세 아동단원을 입대시킬데 대하여 선포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아동단원들과 시선을 마주치시는것조차 피하시며 급한 걸음으로 떠나시였다. 주봉길이와 한종삼이도 황황히 뒤쫓아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즐거운 웃음이 들들 구을던 풀밭에 야릇한 불안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