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2

 

제 12 장

2

 

숲에는 봄이 늦게 찾아왔지만 한번 찾아온 다음은 빨리도 무르익어갔다. 숲에서 겨울의 흔적을 찾을수 없는것처럼 한남실의 말쑥한 군복차림에서도, 청신한 생기가 어린 그의 얼굴에서도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헤쳐오면서 당한 그 엄청난 시련의 흔적은 티끌만큼도 찾아볼수 없었다. 이제 와서는 누구도 그 일을 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아침저녁으로 대하게 되는 한남실이도 그때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였다.

한껏 부푼 애기주먹만한 버들강아지가 달린 버들가지를 꺾어든 한남실은 아름드리 이깔나무가 듬성듬성 널려있는 공지를 사뿐사뿐 걸어가며 이마우에 드리운 햇솜같이 부드러운 송라를 만져보기도 하고 두터운 락엽층을 헤치고나온 햇나물순을 따서 입술에 갖다대기도 하면서 코노래를 불렀다.

버들강아지로 볼을 비비면서 걷던 한남실은 신발이 축축해진것을 느끼고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앞에는 썩은 락엽우에 비물이 흥건히 고인 진펄이였다. 에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맞춤한 이깔나무가지를 얻은 한남실은 그것을 지팽이삼아 짚고 진펄에 길게 누운 지대를 타고 가다가 듬성듬성 풀뿌리가 얽혀서 자그마한 봉우리를 이룬 꼬지개대가리를 찾아 밟으며 돌다리 건느듯 하였다.

《아이- 속상해.》

한남실은 다음에 밟을 꼬지개대가리를 살펴보았다. 서너발자국앞에 커다란 꼬지개가 있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발길을 옮길수가 없었다. 누가 앞에서 나무다리를 놔주었으면 좋으련만···

언제인가 유격근거지에 있을 때 장기령이와 함께 이런 진펄을 건느던 생각이 났다. 그때 장기령은 망설이는 자기 발앞에 긴 장대를 걸쳐놓아주었다. 물론 그 진펄은 깊었지만···

저도 모르게 장기령의 생각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한 한남실은 《흥-》 하고 코소리를 치며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내밀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무어나 장기령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왜 이래? 우쭐해져서는 얼굴 한번 내밀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장기령생각때문에 스스로 화가 난 그는 다시한번 그 먼 꼬지개를 바라보며 주저주저하다가 손에 든 이깔나무가지를 깊숙이 땅에 박고 휭-하고 몸을 날렸다. 어떻게 되여 그렇게 먼거리를 뛰여넘었는지 놀라운 일이였다. 여느때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것이였다.

《제가 우쭐해질 근거가 없지뭐. 자기보다 더 잘 싸우는 동무들이 얼마나 많게?》

한남실은 입술을 내밀고 이제 가야 할 길을 두루 살펴보았다.

여전히 비물이 고인 진펄이기는 하지만 전보다 험하지 않아서 그럭저럭 군화를 마치지 않고 갈수 있을것 같았다. 진대나무도 누워있고 품을 들이지 않고 잠간 에돌아갈데도 있었다.

문득 이깔나무숲속에서 말울음소리와 함께 공기를 째는 채찍소리가 울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떠들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왔다. 이윽하여 이깔나무줄기들 사이사이로 말파리행렬이 언뜻언뜻 보이였다. 말파리에는 쌀포대가 늘어지게 쌓이였다. 유격대원들은 대가리를 마구 내젓는 말을 끄당길라, 앞을 막는 잡관목을 헤칠라, 게다가 진펄을 피해 밟을라 바빴지만 호탕한 웃음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이눔아, 인민들의 정성을 싣고 가는데 이렇게 흙탕물만 튕기면 어떻게 해?》

《아, 앞에서 뭘 그리 꾸물거리는거요? 쭉쭉 뽑으라구-》

《진펄이야, 진펄.》

걸걸한 목소리에 뒤이어 채찍소리가 울리였고 철썩철썩 진펄을 가르는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한남실은 여전히 이깔나무사이를 누비며 흐르는 말파리대렬을 바라보면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드디여 마지막 말파리가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그중 힘들어하였다. 실은 짐은 곱으로 많고 말은 어데서 골라잡았는지 힘을 쓰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말파리를 몰아가던 체격이 건장한 유격대원은 진펄에 말파리가 빠지기 시작하자

《자, 자, 좀 당겨보아 응?》 하면서 멍에를 쳐들어주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며 느릿느릿 진펄을 지나고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멈춰서고말았다.

유격대원은 앞에서 진펄을 밟아보며 길을 가늠하고는 다시 말을 몰았으나 말파리는 앞뒤로 흔들흔들하기만 하고 나가지를 못하였다.

한남실은 저만치 지나간 말파리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짐을 실은것을 보니 욕심이 대단한 동무였다. 앞뒤로 몇번 들까부는 바람에 짐우에 비끄러매두었던 군용밥통이 아래로 흘러내린채로 데룽거렸다. 밥통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뚜껑이 아래로 기울어지면 그안에 들어있는것이 진펄에 쏟아질판이였다.

한남실은 위태로운 그 밥통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말파리를 향하여 달려갔다. 군화가 흙탕물에 범벅이 되는것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그는 금방 뚜껑이 아래로 기울어지는 밥통부터 얼른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겨우 움직이기 시작하는 말파리를 힘껏 밀면서 말했다.

《동무, 말을 잡아채시라요. 욕심을 너무 부렸군요.》

앞에서 유격대원이 반죽좋게 받아넘겼다.

《이랴, 쯧쯧, 동무 고맙소. 욕심을 안부리게 됐소.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기만 하면 실을판인데···》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였다. 한마디만 들어봐도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통이 큰 좋은 동무 같았다. 한남실은 미소를 지으며 온 힘을 다하여 힘껏 밀었다.

《별을 누가 따주겠어요. 참 뚱딴지 같군요.》

한남실의 말소리는 힘을 쓰느라고 다소 진펄에 잦아들기도 하면서 동강이 났다. 짐바리너머로 들려오는 유격대원의 목소리도 웅얼웅얼 똑똑치 않았다.

《허허, 이랴, 바른쪽으루··· 옳지··· 그야 알겠소, 누가 따줄지··· 혹, 동무가 따줄수도 있지 않소.》

한남실은 그 흐물흐물하는 말투며 목소리가 어데서 듣던 소리같았으나 말파리가 빙그르 도는바람에 한쪽으로 기울어질듯 하는 짐을 붙잡느라고 더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어쨌든 말문이 막힌것은 한남실쪽이여서 톡톡한 대답을 주고싶었지만 신통한 말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럭저럭하는 사이에 겨우 진펄을 벗어났다.

한남실은 밥통을 단단히 처매놓고 말파리뒤에서 물러났다. 그런것도 모르고 그 유격대원은 앞을 가로막는 풀숲과 잡관목을 헤치면서 그냥 말파리를 몰았다. 깊은 숲속이라 인차 말파리도 사람도 풀숲에 가리워지고있었다.

한남실은 수고하는 동무에게 공연히 퉁명스럽게 말하였다고 생각하면서 멀어져가는 유격대원의 등에 대고 인사말을 보냈다.

《동무- 수고하겠어요-》

무엇때문인지 그 욕심쟁이 유격대원의 대답이 없는것이 섭섭했다. 어디선가 꼭 듣던 음성이였다. 그는 혹시나 하고 대답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으나 말울음소리가 늘어지게 울릴뿐이였다. 한남실은 자기도 알수 없이 심란해지는 마음을 안고 돌아서서 말파리가 지나간 길을 따라 오던 길을 걸어갔다.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숲속은 쥐죽은듯 고요하고 어데선가 산새들이 처량하게 우짖었다.

그가 버들강아지를 볼에 대고 쓰다듬으며 다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뜻밖에도 등뒤에서 《동무-》 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한남실은 귀익은 그 목소리를 다시금 듣는 순간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이제는 돌아보지 않아도 그 목소리의 임자가 누구라는것을 너무도 똑똑히 알수 있었다. 그는 굳어진듯 버들강아지를 쥔 손을 가슴에 꼭 대고 옴짝하지 않았다.

《남실동무!》

이쪽에서 대답이 없자 그 유격대원은 좀 갈린 목소리로 다시 찾았다.

《남실동무, 나요, 장기령이요.》

이윽고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는 한남실의 두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장기령은 유격근거지에 있을 때처럼 그렇게 실팍해보이지 않았고 그대신 키가 후리후리하게 커보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얼굴빛은 검실검실하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전보다 훨씬 의젓해보였다.

한남실은 장기령이 잡아흔드는대로 손을 맡기고 한동안 말없이 서있었다.

장기령도 구태여 한남실한테서 이야기를 바라지 않는듯 하였다. 목소리보다 몰라보게 변한 그의 모습을 보고싶었다.

몸에 착 맞는 보위색군복에 권총이 달린 혁띠로 허리를 잘룩하게 동인 한남실의 몸매는 날씬하였다. 군모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은 땀발에 촉촉히 젖어있었다. 상냥하면서도 고집기가 있어보이던 눈빛은 정숙하고 담담하여 한남실을 한결 돋보이게 하였다.

《남실동무, 정말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소.》

장기령은 또 한번 손을 잡아흔들며 자기의 말로는 다할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표시하였다.

한남실은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에는 내심 반가왔으나 이런 내색을 비치지 않기 위하여 말파리가 있을 저편 숲속을 바라보았다.

《말파린 일없어. 인제는 진펄이 없으니까 빨리 갈수 있소. 걱정 마오.》

장기령은 한남실의 새 군화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자기때문에 그가 군화를 마치였다고 생각할 때 미안했다.

《남실동무, 어째 기분이 좋지 않구만. 여하튼 말파리 있는데로 좀 가자구.

그래 어델 가던 참이요?》

장기령은 한남실의 눈앞에 드리우군 하는 풀대와 나무가지를 서둘러가며 밀어놓기도 하고 꺾어버리기도 하면서 앞서 걷다가 아무런 응답이 없자 다소 의아한 눈길로 한남실의 얼굴이 아니라 흙탕이 게발린 그의 군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동안 앓지는 않았소?》

《···》

《아동단원들은 모두 잘 있소?··· 아 이쪽으로 나서오. 물탕이구만···》

장기령은 발밑에 고인 물탕을 가리키며 한남실의 손을 잡아 이끌려 하였으나 한남실은 손을 내주지 않았을뿐아니라 한치도 비켜서지 않고 물탕을 그대로 밟고 지나가버렸다. 장기령은 놀란 눈을 껌벅거렸지만 한남실은 본체만체 하였다. 한동안 그들은 말없는 가운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장기령은 앞서 걸으면서 한남실을 위하여 여전히 나무가지를 꺾어놓기도 하고 인제는 그럴 필요도 없는 물탕을 눈여겨 살피기도 하였다.

말파리 있는데 오니 한남실이 처매놓았던 그 군용밥통이 다시 처져버렸고 뚜껑까지 들려서 불깃불깃한 고추장기름이 새여나왔다. 한남실은 얼른 밥통을 손에 받쳐들었다.

장기령이 엉거주춤 서있다가 한남실의 손에서 밥통을 받아들려고 커다란 두손바닥을 펼쳐들었을 때였다.

《어서 말을 모세요.》

한남실은 밥통을 손에 든채 고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장기령은 그 목소리가 따뜻하고 인정이 흐르는것 같이 느껴져서 속으로 한남실을 고맙게 생각하였다.

《욕심스레 짐을 실은걸 보구 난 동무인줄 알았어요. 하늘의 별까지···》

《···》

이번에는 장기령이 대답이 없었다.

장기령은 심드렁해서 말한테로 갔다. 요동하는 말을 달래이고 나서 먼저번처럼 뒤를 돌아다보았다. 한남실은 밥통을 꽁꽁 처매느라고 허리를 굽혔기때문에 권총집과 군화만 보이였다.

앞에서 인기척이 없자 한남실은 다시 소리쳤다.

《하늘에 별이 돋기를 기다리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장기령의 볼부은 소리가 울렸다.

《남실동무, 아무렴 동무가 그럴수 있소? 내라는걸 알면서 그냥 돌아선단말이요? 아마 난줄 몰랐겠지···》

《그럼 제가 동무를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한남실은 허리를 펴고 놀라와하는 장기령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판단은 동무 량심에 맡기오.》

이번에는 장기령이 등을 돌리고 돌아섰다.

《량심? 동무 량심이나 반성해보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실동무앞에서는 내 량심이 깨끗하오.》

장기령은 돌아서더니 와락 목단추를 끌렀다.

《그렇게 량심이 깨끗한 동무가 보구서두 그냥 돌아섰군요? 다젠창병원에 왔다가 그냥 돌아갔지요?》

《남실동무, 그건 사실···》

한남실은 저편으로 눈을 돌리였으나 장기령이 성큼성큼 걸어오는것을 느끼였다.

《남실동무, 난 사실 동무를 만나보고싶었소. 할 이야기도 많았지. 다젠창밀영병원에 갔을 땐 시간이 없었소. 원장동무도 남실동무가 약초캐러 산으로 갔다면서 좀 기다리라더군. 그래서 기다리는데 동무가 와야지. 사실 그땐 내가 아주 급한 임무수행중이였소. 무송에 가있는 리경준동무한테 사령부의 지시를 전하러 가는길이였소. 이제 리경준동무가 오면 물어보라구. 정말인지 아닌지. 오늘래일 리경준동무가 돌아올거요. 그리고 작식대에 들렸던 일이 있었소. 아이들 옷 견본을 토론하다가 귀틀집문밖에 남실동무가 척 나선걸 보았지··· 나는 숨어버렸어. 왜 숨었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소. 내 심장은 만났으면 하는데 내 량심은 허락하지 않더군. 혁명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놓고 동무를 만나서 그것으로 동무에게 기쁨을 주자고 했지. 그 생각이 잘못이였다면 날 용서해달라구···》 장기령은 눈길을 떨구고 한손에는 말고삐를, 다른 손으로는 진한 토색의 말갈기를 쓸어내리면서 긴숨을 쉬였다.

한남실은 여직 손에 들려있는 버들강아지를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장기령의 말이 지금처럼 가슴을 울리기는 처음 같았다. 말이 요동치는바람에 짐바퀴에 걸었던 띠가 처져내렸다. 한남실은 띠를 조이는 장기령의 일손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두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발구옆에 누운 진대나무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먼저 장기령의 말소리가 낮게 울리였다.

《남실동무, 난 동무가 보내준 그 딱딱한 편지때문에 가슴을 앓았소.》

《내가 무슨 편지를 보냈게요?》

한남실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편지라기보다는 전보문이였소. <장동무, 량해해주세요. 일이 바빠서 못가고 이렇게 인편에 전합니다. 만나면 꼭 하자던 말인데 장동무, 정말 부탁입니다. 학습을 하셔야 해요. 동지로서 부탁합니다. 한남실 올림>》

그것은 한남실이가 급히 몇자 적어보낸 쪽지편지였다. 편지내용도 그렇고 시일도 많이 흘러 한남실은 그것을 잊어버렸는데 장기령은 편지구절을 외우고있는것이다.

《정말 내가 그렇게 썼던가요···》 하고 중얼거리는 그의 맑은 눈에는 지금까지 볼수 없었던 행복스러운 빛이 어리였고 고운 입매에는 웃음이 가볍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눈빛과 미소를 장기령은 보지 못하였다. 그 눈빛과 미소야말로 장기령이 간절히 바라던것이였으나 이때 그는 자기 생각에 잠겨 저편 먼 산발을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딱딱한 편지였지···》

하고 장기령은 말론 다 표현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편지는 제일 어려운 시기에 늘 나와 함께 있었지. 나에게 힘을 주고 나를 위로해주면서말이요. 사실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늘 나는 남실동무 생각이야.》

갈갬질을 잘하던 말이 이상하게도 잠잠히 서있었다. 이쪽에 머리를 돌리고 눈을 데룩거리다가 이야기의 뜻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길다란 목을 아래로 떨구고 끄덕거렸다.

《나쁜놈들이 나한테 그 더러운 혐의를 씌웠을 때 나는 가슴이 쓰리고 아파서 울었어. 울면서도 동무를 생각했지.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 셋을 왜놈<토벌>에 잃은 내가 그 원쑤를 돕다니? 원통하고 분하고··· 눈앞이 캄캄했지. 난 남실동무만 내 심장을 리해해주리라고 믿었어. 아, 그 일을 다 이야기해선 뭣해··· 장군님께서 그 저주로운 혐의를 벗겨주시고··· 사랑의 품에 안아주실 때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어··· 일생 잊지 못할 그 기쁨을 받아안았을 때 난 남실동무한테 막 달려가고싶었지···》

검실하게 탄 장기령의 거친 두볼우로 쭈르륵 눈물방울이 굴러내렸다.

《나는··· 장군님 품속에서··· 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사람이야··· 나는 외롭지 않아. 장군님께서 계시고··· 이렇게 남실동무가 옆에 있는데 내가 왜 외롭겠어?》

장기령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있었다.

한남실의 눈에도 눈물이 핑 고이였다. 신록이 우거진 맞은편 참나무숲도 흰구름이 떠도는 푸른 하늘도 눈물때문에 희뿌옇게 보이였다.

《장동무 말이 옳아요. 옳아요.》

한남실은 머리를 숙인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장군님의 손길이 아니였더라면 나도 이렇게 장동무를 만날수 없었을거예요. 아동단원들두 그렇구요··· 장동무의 이야기는 나도 들었어요. 나도 가슴이 막 찢어지는것 같았어요. 뜬눈으로 밤을 밝히면서 늘 장동무 생각이였어요.》

한남실의 볼에서 흘러내린 눈물방울은 손에 든 버들강아지우에 떨어져서는 축축히 스며들고있었다.

얼마후 두사람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마주보며 처음으로 소리없이 웃었다.

장기령은 한남실의 손에서 버들강아지를 받아들고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벌써 버들강아지가 이렇게 피였군. 우리 고향 내가에도 봄이 되면 이런 버들강아지가 피군 하였소. 조국땅에도 봄일거요.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남실동무와 나란히 서서 그리운 조국땅을 한번 바라보았으면 얼마나 좋겠소!》

한남실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봄바람이 그의 함함한 귀밑머리를 가볍게 날리였다.

《오래지 않아 조국으로 진군한다고 해요. 그때 정말 장군님을 모시고 우리 함께 조국으로 가자요.》

한남실의 눈물에 젖은 눈은 은은히 빛났다. 장기령은 한남실의 정에 넘친 목소리가 가슴에 흘러드는것을 행복속에 느끼며 역시 눈물이 어린 눈으로 먼 숲의 저쪽 변두리를 바라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