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1

 

제 12 장

1

 

천지의 물이 부석짬으로 슴새여나오며 그 원천을 이루었는지, 아니면 한여름철까지도 말기에 덮여있는 장설이 사시장철 마를줄 모르는 수원을 이루는지 백두산 서북쪽마루턱에서 새여나온 두 물줄기는 서북방으로 줄기차게 흘러내리다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도송화강줄기를 이룬다.

그 합수지점에서 십여리 떨어진곳에 백두산아래의 첫동네라 불리우는 동강마을이 있다. 수백리를 완만하게 뻗어내린 백두산의 서북쪽비탈 첫머리에 올라앉았다고들 하는 마을이다.

백두산정에서 동강마을까지는 백리, 그러나 백두밀림의 태고연한 정적에 잠긴 이 마을에서는 백두산말기에서 따웅- 하고 울어대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것이다.

이도송화강줄기에 떠내려가던 성에장들이 거의 없어져가고있던 얼마전에 백두산쪽에서는 동강마을이 생긴이래 아직 들어본적 없다는 장엄하고 신비한 우뢰소리가 길게 메아리쳐왔다. 하늘도 땅도 쩍 갈라내는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며 울려오기 한참전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솟아있던 백설의 백두산이 갑자기 떠오르는 희뿌연 구름속에 잠겨버렸다.

그리고 우뢰소리가 울려온지 여러시간이 지난 다음부터 성에장들이 없어져가던 이도송화강지류의 넘쳐나는 봄시위물결우에 빙산마냥 두터운 얼음장들과 물에 채 녹지도 부스러지지도 않은 커다란 눈덩어리들이 부석들과 함께 끊임없이 떠내려왔다. 뒤번져진채 물결우에 실려 흘러내려오는 성에장들에도 부석덩어리들이 얼어붙어있었다.

백두산마루턱밑에 붙어있던 거대한 눈무지와 얼음산이 쩍 버그러지며 무너져내려 동강마을이 생겨서 처음으로 어마어마한 얼음사태를 일으킨것이다.

백두산에서 마지막 화산폭발이 있은 뒤에 그렇게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린것은 처음이였다.

동강마을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천지개벽의 징조라고들 말하였다. 우리 나라 조종의 산에서 조국광복의 대군이 새로 태여났다고 온 세상을 향하여 웨친것이니 곧 그 대군은 얼음사태마냥 3천리조국강토우에 쏟아져내려가며 섬오랑캐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리고말리라는것이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봄빛어린 동강숲속에 한폭의 유난스럽게 붉은 기발을 앞세운 긴 대렬이 나타났다. 붉은 별이 달린 모자에 견장도 연장도 없는 누런색군복을 입고 총과 배낭들을 멘 대렬이였다. 그 대렬속에는 목에 붉은넥타이를 맨 유표한 한무리의 소년, 소녀들도 끼여있었다.

인적이 드물던 고요한 동강의 숲속은 그날부터 술렁거렸다. 도끼소리와 톱소리, 구령소리와 웃음소리,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울리고 연기가 피여올랐다.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러 지역에서 싸우던 부대들과 여러 지역에 나가 활동하던 공작원들, 귀중한 손님들이 날마다 몰려드는 동강수림속은 명절처럼 들끓었다.

보초소에서는 연방 들이닥치는 사람들을 맞아들이기에 바빴다.

《어느 부대요? 어데서 오는 사람들이요?》

보초가 묻기 바쁘게 저쪽에서 반겨 화답하는 목소리들이 울렸다.

《그새 안녕들하오? 안도쪽에서 오는 부대요.》

《섯, 누구야?》

《남호두에서 헤여졌던 사람들이요. 우릴 모르겠소?》

그리고 다른 보초소에서도 묻는 소리가 울리고 웃음섞인 대답이 뒤따랐다. 순간순간 이어지는 이런 웨침과 서로 오랜만에 만나는 포옹으로 등판은 떠들썩하였다.

봄이다. 완연한 봄이다.

백두산머리에는 여전히 백설이 덮여있고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에는 여전히 부석을 걷어안은 성에장들이 둥둥 떠내려오고있지만 여기 백두산기슭의 해발고 1 800을 헤아리는 높은 등판, 동강숲속에도 봄빛이 깃들었다.

엉성하던 벌거숭이 이깔나무들에는 아직은 찔러주지 못하고 간지럽히기만 하는 야들야들한 짧은 바늘잎들이 돋아났다. 눈석임물에 축축히 젖었던 썩은 락엽밑에서 싹터오른 풀잎들은 어느덧 늘씬하게 자라올라 봄의 미풍에 건들거리며 싱싱하게 넘쳐나는 생기를 풍기였다.

들크무레한 락엽 썩은 내만 풍기던 숲속에 싱그러운 풀향기가 가득찼다.

봄바람은 새파란 잎새들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수집은듯 고개를 숙인 봉긋한 꽃망울들을 어서 피라고 퉁겨주기도 하고 부지런히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새 깃을 간지럽혀주기도 하면서 산들산들 불어왔다.

숲은 초록색 새옷으로 단장하기에 바빴다.

동강의 숲속은 이 봄따라 류달리 일찍 잠을 깬듯싶었다···

한남실은 숲속을 걸어가고있었다. 새 군복을 입은 잘룩한 허리에는 자그마한 권총을 차고 새 군화도 신었다.

연한 자주빛 할미꽃과 제비꽃을 꺾어든 한남실은 해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연두빛 애잎들을 정겹에 바라보기도 하고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공연히 귀기울이기도 하면서 걸음을 가볍게 옮겨놓았다.

그는 방금 이 동강의 숲속에 새로 지은 귀틀집에다 완쾌한 아동단원들을 데려다놓고 보고하러 사령부로 가는 길이였다. 부대가 전투를 하는동안 다젠창후방밀영에서 건강을 회복한 다음 학습도 하고 군사훈련도 한 아동단원들은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방금 여기 동강에 도착한것이였다.

앓는 아이도 없고 학습성적도 좋은, 한결같이 씩씩한 어린것들의 소식을 들으시면 장군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실것이다.

넓은 등판의 여기저기에 숙영지가 자리를 잡았고 숲속에서는 도끼소리, 톱소리,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그칠새없이 울려왔다.

한남실이 보기에 밀영이 이처럼 환희에 넘친 때는 일찌기 없었던것 같았다.

맞은편 참나무숲에서는 유격대원들이 길다란 귀틀집을 짓고있었는데 한쪽에서는 창문을 달고 또 한쪽에서는 봇나무껍질로 이영을 얹고있었으며 그 아래켠 공지를 지나서는 벽체를 올리는 귀틀집이 다섯채나 보이였다.

한남실곁으로 잘 다듬어진 재목을 메였거나 톱과 도끼를 든 유격대원들이 분주스레 뛰여다니면서 한남실을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하였다.

한남실은 그 참나무숲을 에돌아서 작식대가 자리잡고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도리풍을 친 작식터에서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녀대원들이 방금 점심을 끝내고 뒤따라 저녁을 준비하느라고 샘터에 가서 물도 길어오고 쌀도 씻고 늄식기들을 달그락거리면서 분주하게 뛰여다니고있었다. 평행으로 가지런히 눕혀놓은 통나무우에 놓인 여러개의 소랭이에서 하얀 김이 문문 피여오르고 도리풍밖에서는 유격대원들이 방금 안아들인 산나물을 가리느라고 벅적 고아대고있었다. 남자들이 쭈그리고 앉아서 그 커다란 손으로 야들야들한 산나물을 가리는것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와서 한남실은 입을 막고 돌아섰다. 그러는데 어데선가 《남실동무》 하고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한남실은 목소리임자가 장철구어머니라는것을 알아맞히고는 도리풍맞은편 떡갈나무숲언저리에 눈길을 보내면서 두루 살펴보았다. 떡갈나무가지밑에서 군모를 벗은 장철구가 머리가 버성겨진 얼굴을 내밀고 웃으면서 손짓을 하고있었다.

《철구어머니.》

한남실은 나는듯이 달려갔다.

장철구는 나무절구에다 물에 불군 콩을 찧고있었다. 한남실은 어딘지 모르게 장철구가 한결 젊어졌다고 생각되였다. 나무절구옆에는 새 군복을 입은, 얼굴이 동그스름하여 무척 복스럽게 보이는 낯모를 녀대원이 서있었는데 그는 한남실에게 눈인사를 하였다.

《정말 남실동문 모르지? 이 동문 새로 입대한 동무야.》

장철구는 절구옆에 서있는 그 신입대원한테 눈길을 돌렸다.

《은덕동무, 인사해요. 아동단책임자동무라오.》

한남실은 구대원답게 먼저 손을 내밀어 은덕의 손을 다정스레 잡아흔들며 인사를 하였다.

《우리 손잡고 함께 싸워요. 어데서 입대하였나요?》

《남강부락에서 입대했어요.》

《그래요? 입대한 녀성동무들이 많아요?》

《남성동무들은 많지만 녀성동무는 세 동무예요.》

이때 련대장 차동범이 허리에 찬 권총을 덜룩거리며 지나치다가 한남실을 알아보고는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며 반가와하였다.

《오래간만이요. 그래 아동단원들은 무사히 왔소? 내 한번 아이들한테 가지. 아이들이 보고싶구만. 남실동무, 아이들 문제루 나한테 부탁할게 있으면 아무때건 찾아오··· 그래 무슨 일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하고있소? 아하, 이건 내가 좋아하는 콩비지감이군. 허, 이거 철구어머니 덕분에 생일을 쇠게 됐군.》

하고 차동범은 절구확을 기웃이 들여다보며 웃기까지 하였다.

《련대장동지가 오신다기에 특별히 준비하는중이라우.》

장철구는 보란듯이 절구를 차동범쪽으로 기울였다.

《누구누구해도 장철구동무가 제일이라니까.》

이어 절구공이 오르내리고 그에 따라 웃음소리가 한결 높아졌다.

차동범은 권총을 흔들거리며 저쪽으로 걸어갔다.

녀대원들은 절구공이를 마주잡고 다시 콩을 찧었다. 처음에는 콩이 밖으로 튀여나가지 않게 조심조심 찧다가 차츰 힘있게 절구공이를 들었다놓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동범련대장동지는 아주 기분이 좋았구만요.》

《모두들 명절날처럼 들끓지, 요즘은 매일 명절이라니까. 신입대원들이 날마다 입대를 하지, 서로 헤여졌던 동무들을 만나지, 또 지방조직에서도 사람들이 쓸어들고··· 장군님을 오랜만에 가까이 모시게 되니 모두 어린애들처럼 기뻐들할수밖에···》

《사방에서 이렇게 모여드는걸 보니 큰 회의라도 있는게 아닌가요?》

절구공이는 한결같이 머리우로 오르내리였다.

《장군님께서 큰 회의를 준비하고계셔. 그래서 차동범련대장동무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분이 좋아 다니지.》

콩이 밖으로 튀여나지 않게 절구확을 감싸고 선 은덕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양을 재미있게 보고있었다.

《무슨 회의게요?》

《아주 중한 회의라구 하더구만. 간부들은 다 모인다니까. 그래서 작식대에서두 이렇게 바쁘지 않어. <대통령감>은 이번 회의가 조선혁명에서 큰 사변으로 되는 회의라구 하더군. 그래서 출판소에서는 밤을 밝혀가며 무슨 문건들을 만든다누만.》

《그렇다면 우리 아동단원들도 노래와 춤을 준비하겠어요. 가만 있을수 없지요뭐. 노래 잘하는 문순녀도 있고 하모니카 잘 부는 응남이두 있고. 한번 연예공연을 크게 준비하겠어요. 철구어머니, 어때요?》

《정말 그게 좋겠구만. 참 좋은 생각을 했어. 아동단원들의 공연을 보면 유격대원들은 더 말할것도 없구 손님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어.》

아동단공연준비를 생각한것이 한남실자신에게도 신통하게 느껴졌다.

《아동단공연을 하면 저도 꼭 보도록 해주세요.》

은덕의 간절한 부탁에 그렇게 하자고 약속하며 장철구는 절구통을 기울이더니 빻아진 콩을 번들거리는 늄소랭이에 퍼담았다. 한남실이 절구공이를 들고있자 은덕이 그것을 빼앗다싶이 가져다가 훔치였다.

한남실은 한켠에 나서서 절구를 두루 살펴보았다.

《절구를 참 잘 만들었어요. 그냥 지고다니면서 썼으면 좋겠네!》

웬일인지 철구는 머리를 들어 한남실을 곱게 흘겨보았다.

《내가 절구소리를 했더니 장기령동무가 어느새 제꺽 만들어놓았지. 손재간이 얼마나 좋은지···》

철구의 말에 한남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혔다. 사실 아까부터 장기령의 소식을 묻고싶으면서도 부끄러워 입밖에 내지 못했던 남실이다.

《아유, 그 뚝바우가 이런걸 다 만들어요?》

《남실동무는 아직 장기령동무를 잘 몰라.》

《장기령동지는 싸움도 잘하구 얼마나 인정이 많은지 몰라요.》

갑자기 은덕이가 장기령을 두둔해나서는바람에 한남실은 어안이벙벙하였다.

장철구는 인차 한남실의 마음속을 알아차리고 정겹게 웃어보이였다.

《남실동무, 은덕동무는 장기령동무가 보증해서 입대했어. 장동무한테 부엌녀동무를 아는가고 물어보지?》

철구는 입대후에 부엌녀의 이름을 은덕이라고 고쳤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다 한남실에게 있어서 처음 듣는 새 소식들이였다.
《남실동무는 잘 모를거야. 장기령동무는 지난번 남강부락전투때 아주 잘 싸웠어. 미야께대장놈을 쏘아눕힌게 누군줄 아나? 바로 장동무야. 그날 장동무는 기관총명사수 솜씨도 톡톡히 보여주었지. 혼자서 글쎄 한개 소대나 쓸어눕혔다나. 장군님께서는 기관총소리를 들으시고 벌써 그게 장동무의 솜씨인줄 알아내셨다니까. 장군님께서는 전투총화를 하시면서 표창으로 장동무에게 그날 전투에서 로획한 기관총을 수여하셨지.》

나무가지들은 잔잔한 미풍에 설레였다.

그들과 헤여진 한남실은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숲속을 가벼이 헤쳐나갔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것이 기쁨에 차있는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