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1

 

제 11 장

1

 

무송시내에도 봄빛이 짙어갔다.

북문밖거리를 벗어나 잠시만 걸으면 인차 보게 되는 이도송화강과 서문밖거리를 나서면 곧 맞다들리는 송화강에 성에장들이 떠내리기 시작한것이 어제 같은데 구질구질한 구정물이 흐르는 뒤골목 도랑옆에는 냉이풀들이 파랗게 돋아났고 시내에 드문드문 서있는 버드나무의 휘늘어진 가지들도 햇순을 내밀면서 그 까칠하던 때를 벗기 시작했다.

개나리 울타리들은 꽃망울들이 부풀대로 한껏 부풀어올라서 벌써부터 노르끼레한 빛을 띠였다.

봄빛이 짙어질수록 사진관에 와짝 쓸어드는 젊은이들로 하여 《금강사진관》도 요즘 영업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그런 들뜬 손님들로 인해서만 《금강사진관》영업이 활발해진것은 아니다.

박문필이 할빈에서 사귀였다는 점잖은 사진사가 사진관에 와서 사진업을 돕게 된 때로부터 손님이 더 많이 쓸어들었다.

박문필한테로 온 다음 며칠사이에 인차 사진기술을 배운 리경준은 지하공작사업에 여러모로 편리한 사진사라는 명목으로 그의 사진관에서 《일》하고있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어지간히 붐비며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시달리우면서 세다리 사진기를 내내 지키고 서있다싶이 하던 리경준은 점심때쯤해서 보슬비가 내리는것을 보고 손님이 오후에는 적어지리라고 생각하였다.

비때문에 사실 손님들은 퍼그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띠염띠염 나타나는것 같은 손님들도 리경준에게 별로 한가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우산대신 꽃무늬 돋친 양산을 들고 들어선 요염한 젊은 부인을 사진기앞에 앉히고 좀 멋있게 찍혀보자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는 그 허영의 그림자를 찍어준 다음에는 웬일인지 메슥메슥해지는 목안을 독한 담배연기로 가셔내리라 작정했던 리경준은 샤타를 누르기전에 안으로 들어서는 다른 손님의 신발소리를 들었다.

녀자손님이 물러나자 곧 그자리에 방금 들어왔던 키가 늘씬한 남자손님이 다가왔다. 그 손님은 조선바지저고리에 검은 조끼를 받쳐입었는데 옷이 푹 젖은데다가 바지가랭이가 흙물에 마구 더럽혀진것으로 보아 비를 맞으며 꽤 먼길을 걸어온것 같았다.

《시내에 왔던김에 한장 찍어봅시다. 회계는 찍은 담에 치르지요.》

촌젊은이인듯 한 그 손님은 반죽좋게 웃으며 비물이 뚝뚝 떨어지는 도리우찌를 한손에 움켜쥐고 삐걱소리가 나게 걸상에 앉았다.

어딘지 그 목소리가 귀에 익다고 느꼈던 리경준은 렌즈를 통해 조그맣게 꺼꾸로 보이는 푸접좋고 체격좋은 촌젊은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역시 낯익다고 생각되였다. 신통히 장기령이 같았던것이다.

그러나 장기령이 여기 무송에 나타날리가 없었다.

세상에 정말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던 리경준은 그 버룩버룩 웃는 모양마저도 너무나 장기령이를 방불케 하였기때문에 차광포를 젖히고 머리를 쳐들었다. 그는 렌즈를 통해서 거꾸로 앉은 작은 사람이 아니라 육안으로 그 사람을 보았다.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장기령이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다름아닌 장기령이였다.

등뒤에서 그 어떤 충격적인 힘이 그를 장기령이앞으로 떠밀치는듯싶었다. 리경준은 금시 그에게로 달려가 부둥켜안고싶은 자기를 다잡았다.

장기령이 역시 엉거주춤하고 일어날듯 하다가 다시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더니 눈인사만 보내며 접선된것이 기뻐서 입귀가 들리는것이 알리게 미소를 지었다.

리경준은 장기령의 뒤로 촬영장에 들어온 손님들이 장기령과 자기의 얼굴을 번갈아보자 자못 흥분되였을 얼굴표정을 감추기 위하여 다시 차광포를 뒤집어썼다. 그는 차광포밑에서 지나치달만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그냥 웃고있는 장기령에게 말을 건넸다.

《손님은 비를 맞으며 먼길을 온것 같은데 그래도 무슨 기쁜 일이 있는 모양이구려?》

《네, 우리 형님이 오늘 장가를 든답니다. 그래서 실은 사진사어른을 모셔가자구 왔습니다.》

장기령은 사진사를 데려가려 왔다는 사람이 사진을 찍자고 앉았다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임을 깨달았던지 인차 변명조로 뒤말을 달았다.

《촌에서 살다나니 사진이란건 말만 들었지 어디 찍어보았습니까. 비까지 맞으면서 사진관이라는데를 처음 들어와보니 그냥 돌아갈수가 있어야지요.》

《처음이라니 그럴만하지요. 비맞은 값이라두 해야지. 그럼 제깍 찍고 어디 우리 <주인>과 의논해봅시다.》

리경준은 《주인》과 급히 의논할 일이 있기때문에 들어가봐야겠다는 구실을 붙여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량해를 구하고 장기령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후에 사진기옆에는 사진관주인인 박문필이 나타났다.

리경준은 박문필이네 살림집 2층의 구석방에 장기령이와 마주 앉았다. 그가 거처하며 아지트로 쓰고있는 마루방이였다.

《사람두··· 그렇게 놀래우다니? 그러다 내가 놀라서 실수라도 하면 어쩌자구?》

《제가 왔다는걸 똑똑히 알려주자구 그랬습니다. 경준동지가 사진찍는 솜씨도 한번 보구싶었구요.》

장기령은 뒤더수기를 긁으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저는 경준동지가 사진사로 변장하구 공작한다는 말을 듣구 그거 꽤 해낼가 하구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정작 와보니 그럴듯 하더군요. 영낙없이 의젓한 사진사더란말입니다. 그래 제사진은 찍었습니까?》

《아니 그저 찍는척 했지. 찍히지 않게 가리우고 샤타만 눌렀거던. 그런데 어떻게 장동무가 왔소? 나는 장동무가 나타날줄은 몰랐소.》

그동안 경준이와 련계를 취해왔던 통신원은 송동무였다.

《송동무는 다른 중요한 임무를 받고 국내에로 나가게 된것 같습니다. 저도 여기에 오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저를 찾으시기에 사령부에 갔더니 여기로 다녀올데 대한 련락임무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부대와 떨어져 혼자 적후에 들어가 수고하는 경준동지가 전우들을 퍽 그리워하겠는데 이제 동무가 가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기뻐할게라구 그러시더군요···》

전우들을 그리워하구 보고싶어하는 경준이의 심정을 깊이 헤아리시고 다름아닌 장기령이를, 그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다정한 동무를 골라보내주신 사령관동지이시였다. 가까이 있을 때와 같이 사령관동지의 자애로운 따뜻한 손길을 느낀 리경준은 목이 메고 눈앞이 흐려져왔다.《장동무, 사령관동지께서는 여전히 건강하시겠지?》

《예, 건강하시고 꼭 다젠창밀영에 들려서 선금아주머니와 명일이, 명숙이를 만나보고 가서 가족들의 소식부터 전하라고 이르십디다. 그래 다젠창에 들려 만나보고 왔는데 아주머니는 이젠 병도 상처도 다 낫구 얼굴색도 몰라보게 좋아졌더군요. 밥도 제손으로 짓게 되구 약간씩 재봉대일도 도와줄만큼 건강해졌습니다. 아이들도 건강하구 명랑하게 지내구요. 나를 보자 막 매달리며 어찌나 좋아하는지··· 명숙인 아버지가 퍽 보구싶었던가봅디다. 대뜸 묻는 말이 우리 아버지는 안오는가, 언제 오는가 하질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열밤을 자면 만난다구 말해주었습니다···》

리경준은 장기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였다.

장기령은 사령관동지께서 경준이와 박문필이를 비롯한 지하혁명조직성원들에게 보내시는 인사의 말씀을 전하고 부대의 소식들도 전해주었다. 남강촌전투이후 부대가 또 신입대원들을 받아들여 수백명으로 불어난데 대하여, 남강부락전투때 자기가 미야께부대장놈을 쏘아죽이고 다시 기관총을 수여받은데 대하여, 그 전투가 있은 다음 사령관동지께서 마안산에서 다젠창밀영에 옮겨와있는 아동단원들에게 새 하모니카와 공책들과 학용품들을 보내주신데 대하여, 지금 부대가 만강부락방면으로 진출하고있는데 대하여, 그밖에 크고작은 새 소식들을 모두 전해주었다.

소식에 주려 욕심스럽게 귀담아듣던 리경준은 불만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한남실동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소?》

한남실의 이야기가 나오자 장기령은 대뜸 얼굴이 붉어졌다. 장기령은 한숨과 함께 헛기침을 몇번 하고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띠염띠염 말했다.

《뭐 전할 소식이 있어야지요. 잘 있다고 합디다.》

《잘 있다고 합디다라니? 그래 아직 만나보지 못했단말이요?》

《네, 아직···》

《못만났다? 만나본게 언제인데?》

《언젠 언제겠습니까? 왕청에서 헤여진 뒤엔 못만났지요.》

《그게 무슨 소리요?》

《일이 참 매번 공교롭게 됐습니다···》

마안산에서 부대가 떠나던 날이였다.

장군님께서 부대와 함께 마안산을 떠나신다는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장군님을 따라가겠다고 밀영으로 달려왔을 때 한남실이도 뒤미처 뛰여왔었다. 그러나 선두대렬에 속하였던 장기령은 그때 방금 행군길에 오른 뒤였다.

이번에도 역시 일은 그렇게 공교롭게 되였다. 장기령은 리경준의 가족들에게 꼭 들려가라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지시대로 다젠창으로 가면서 이번 걸음에는 틀림없이 한남실을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그러나 정작 다젠창밀영에 가보니 남실은 병원 원장과 같이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싹이 돋기 시작한 약초뿌리를 캐러 어디엔가 가고 없었던것이다. 장기령은 언제 돌아올지 알수 없는 한남실을 우두커니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수 없어서 리경준의 가족들만 만나보고 곧 떠나왔다는것이다.

《···참 사람두! 시간을 지체하면 얼마나 지체하겠다고 그냥 왔단말이요? 약초캐러 갔다면 얼마나 멀리 갔겠다구? 동무가 달려가서 찾아보구 돌아서면 안되오? 마음착한 남실동무니 그렇지 다른 녀성이라면 동무같이 매정한 사람을 털끝만치도 사랑하지 않겠소···》

리경준은 적후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운 전우에게 한참이나 나무람을 하였다. 장기령은 그 말을 별로 뜨끔해하지 않고 머리를 숙일사해서 듣고만 있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이제 오래지 않아서 만나게 될터이니 그만 꾸짖고 사업이야기로 넘어가자고 말하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뿌렸다. 비발은 퍼그나 굵어졌다. 창가에 드리운 버드나무가지는 봄비에 미역을 감더니 한층 싱싱하게 푸른 기운을 돋구었다.

리경준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동안 진행한 사업정형을 이야기하였다.

부대가 남강부락에 둥지를 틀고있던 미야께부대를 격멸소탕한 이후 남강과 그 주변일대의 농촌지역들에서는 인민들의 기세가 높아지고 마을마다에 반일회, 반제동맹 조직들과 부녀회들이 조직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망라되였다.

무송시내의 반일회, 반일청년회 등 조직들도 로동자, 교원, 학생 등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대중속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선전사업을 널리 벌리고있다.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무송지구의 사업정형을 보고받으시면 사령관동지께서 매우 기뻐하실겁니다.》

리경준을 넘겨다보는 장기령의 눈에는 새삼스럽게 감출수 없는 존경과 자랑스러운 빛이 어리였다.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령관동지께서 남강마을의 적을 치시여 우리들의 공작에 유리한 국면을 열어주시구 멀리에 있는 저를 항상 세심히 보살펴주시며 옳바르게 이끌어주신때문이요. 그리고 박문필동무랑 모든 지하혁명조직성원들이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 애쓴 덕이지. 누구보다도 박문필동무가 큰 역할을 하고있소.》

《그러기에 사령관동지께서도 박문필동지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계십디다. 그이께서는 이번에 박문필동지에게도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셨습니다.》

장기령이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리경준은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장기령은 앉음새를 고치고 허리를 꼿꼿이 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를 창립할 시기가 성숙되였다고 하시면서 경준동지에게 박문필동지를 데리고 어김없이 이달말까지 동강밀영으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전하라고 이르시였습니다.

그래야 5월초에 진행될 조국광복회창립대회에 무송지구지하혁명조직대표가 참석할수 있다는것입니다···》

장기령은 회의를 위해 새로 설치하는 동강밀영장소를 알려주었다.

그 지시를 전해듣는 순간 리경준은 《드디여 왔구나!》 하고 소리치고싶은 충동과 머리가 피잉 도는것 같은 환희를 느꼈다. 항상 무거운 시름을 안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매 순간을 긴장한 투쟁속에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던 리경준이다. 이 익숙되지 못한 도시에서의 고심어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의식과 함께 투쟁의 보람을 느끼였다.

《얼마나 거창한 사업이 눈앞에 펼쳐지고있소. 정말 기쁜 소식을 전해다주어 고맙소.》

리경준은 장기령의 손을 그러쥐였다.

《그래서 동무는 우리 명숙이한테 내가 인차 간다는 말이랑 했구만. 난 왜 그런 실없는 소릴 했나 하구 은근히 속으로 나무랐댔소.》

《사실 나도 그런 말을 하려구는 하지 않았는데 명숙이한테 기쁜 말을 해주고싶더란말입니다. 선금아주머니랑 아이들이랑 그때 다 동강에 오게 될겝니다.》

《그럼 한남실동무도 동강에 오겠구만?》

《아마··· 그렇게 될것 같습니다.》

조국광복회가 탄생되게 될 동강밀영! 그리웠던 사람들이 다 모여들게 될 동강!

리경준에게는 그곳이 기쁨의 축전장으로 생각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만나게 될 그무렵은 그자신에게는 물론 안해와 아이들에게도, 장기령이와 한남실에게도, 모든 전우들과 대표들에게도 한결같이 경사로운 명절맞이 기분일것이였다.

미구하여 있을 그날을 상상해보기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였다.

《이달말까지··· 알겠소. 그 담엔?》

《다른 한가지는 등사기를 해결하여보내라는 지시입니다. 조국광복회창립대회를 맞이하여 강령과 창립선언문을 많이 찍어내야 하겠는데 경준동지도 알고있지만 아직 등사기가 없어서···》

등사기는 삐라를 찍어내기 위하여 얼마전에 한 학교에서 공작해내다가 쓰는것이 한대 있었다. 미야께부대가 녹아난 다음부터는 남강쪽지대가 오히려 안전지대로 되였기때문에 리경준이네는 등사기를 그쪽에 있는 농촌아지트에 감춰두고 삐라를 찍어다가 시내에도 뿌리고 다른데도 보내고있었다.

리경준은 우선 그 등사기를 사령부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한대 있는데 어떻게 보낸다?》

《있다면야 운반이 문제될것 있습니까? 제가 가져가지요. 다젠창밀영까지 갖다놓으면 거기에서 앞으로 동강에 옮겨가게 될겝니다.》

《그러면 이제 나하고 같이 등사기가 있는 촌으로 나가는게 어떻소? 형님의 잔치가 있다는데 가서 한장 찍어줘야지. 비를 맞으며 일부러 먼길을 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수야 있소? 좀 기다리오.》

리경준이 정색하여 말하는바람에 장기령은 허허 웃었다.

리경준은 2층에서 내려와서 박문필을 만나 장기령의 편에 등사기를 보내기 위하여 촌에 다녀오겠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그동안 박문필이 잊지 말고 해야 할 사업과 주의할 점들, 또한 불의의 정황이 생겼을 때 그 정황처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일러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박문필이 자기와 함께 조국광복회창립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동강밀영에 가게 된데 대하여서도 알려주려다가 그만두었다. 보다 더 적당한 시간에 말해주리라 생각했던것이다.

리경준은 박문필이한테서 휴대용사진기를 달래가지고 들어오다가 계단옆의 첫방에서 철숙이를 찾았다. 사령부에서 통신원이 왔다는것을 알고있는 철숙은 그 방에서 망을 보고있는 참이였다.

경준은 문을 연 철숙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정히 보관해달라던것이 있지요? 그걸 좀 꺼내주십시오.》

《···?》

철숙은 긴장되여있었던 탓인지 그의 말귀를 인차 알아듣지 못하고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저 먼저날 내가 사다가 맡긴것말입니다.》

《네, 그걸··· 좀 기다려주십시오.》

그제야 생각난듯 철숙은 장농쪽으로 물러가더니 쇠를 열고 리경준의 부탁대로 정하게 깊이 건사해두었던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거기에는 한벌의 고급군복지가 들어있었다. 물론 철숙이는 그 천이 어떻게 마련되였고 어데 쓰게 되는지 몰랐다.

《촌에 <이동사진> 찍으러 다녀오겠습니다. 래일 돌아올것 같은데 조심하십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약속대로 하십시오. 주인한테도 말했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철숙은 문밖에까지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경준은 다시 자기가 거처하는 2층 구석방으로 올라왔다.

《이건 동무가 드는게 좋겠소.》

그는 장기령에게 옷감보자기를 내주었다.

《이건 뭡니까?》

《누가 물으면 시내에 왔다가 천방에서 산것이라구 하오. 촌에서 누가 부탁하더라구···》

《천입니까?》

《그렇소. 자 이젠 떠나지.》

《어디 가져갈겝니까?》

《다젠창에 가서 우리 명일 어머니한테 전해주오. 정하게 가지고 가서 책임적으로 전해야 하오. 그건 내 개인적인 부탁인데 특별히 명심해서···》

장기령은 마음에 짚이는것이 있었던지 리경준을 빤히 쳐다보다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건 저··· 군복감이 아닙니까?》

눈치빠른 장기령을 보고 리경준은 시무룩이 웃으면서 그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아끌었다.

《선금동무가 잘 알고있으니까 가서 전하기만 하면 돼.》

그들은 계단을 내려왔다.

철숙은 계단 옆방의 창가에 그냥 붙어서서 긴장한 눈초리로 밖을 감시하고있었다.

리경준과 장기령은 철숙에게 눈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비가 내리는데 수고하겠습니다.》

박문필이도 대기실에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있다가 출입문 있는데까지 따라나와서 바래주었다.

리경준과 장기령은 초를 먹인 종이우산을 같이 쓰고 길을 떠났다···

다음날 리경준이 장기령을 떠나보내고 촌에서 돌아왔을 때 박문필이 체포되였다는 뜻하지 않은 불행한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