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4

 

제 10 장

4

 

미야께부대놈들을 순식간에 소멸한 우리 군대가 마을에 들어선다는 소문은 날개라도 돋친듯 마을의 골목골목으로 퍼져갔다. 마을사람들은 숨었던 움막들에서 뛰쳐나오고 나무낟가리를 헤치고 달려나왔다.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부대를 이끄시고 들어서신다는것을 어느사이에들 알아냈는지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가며 꿈결에도 그려오던 김일성장군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뵈오려고 서로 밀리고 밀치며 달려들었다.

김일성장군님 만세!》

사람들은 대렬선두에서 여느 유격대원들과 다름없이 수수한 보통군복을 입으시고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손을 드시여 인사를 보내시는 장군님께 열광적인 환호를 올리였다. 늙은이들도 젊은이들도 아낙네들도 아이들도 장군님께로, 장군님께로 모여들었다. 하얀 채수염을 기른 늙은이들은 길가에 나와서 장군님께 큰 절을 드리였다. 장군님께서 만류하시고 또 만류하셨지만 사방에서 모여드는 로인들을 다 만류하기 어려우시였다.

남강마을이 생긴이래 일찍 있어보지 못한 들끓는 환희와 격동속에 날이 저물었다. 집집에는 환한 등불이 켜지고 굴뚝들에서는 아구리가 미여지게 연기가 피여올랐다.

마을은 유격대원들에게 대접할 국수를 누르느라, 수수지짐을 지지느라 떠들썩하였다.

구운 감자며 수수지짐이며 조밥누룽지를 쥔 조무래기들이 명절날처럼 이 집 저 집으로 우르르 밀려다녔다. 밝은 달이 떠있었다.

리동백의 마음은 즐거웠다.

난생처음 참가해본 전투에서 자기가 겨냥해 쏜 적이 두놈씩이나 나가너부러지는 꼴을 자기 눈으로 봤던 그는 가슴에 넘치는 기쁨을 누구와 나누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심정이였다.

경위대가 들어있는 초가집 마당 한쪽에서는 웃동을 벗어제낀 리북철이가 커다란 통나무를 패느라고 힝힝 도끼질을 하고있었다. 사령부작식대원인 장철구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주인집 부뚜막을 손질하느라고 바삐 돌아갔다.

리동백은 그들에게 말을 걸려다가 그만두고 아래마을로 내려갔다.

우물곁에 있는 아담한 초가집은 부엌문이 활짝 열려져있었다. 그리로는 녀인들이 부산스레 들락날락하고 집안에서도 역시 녀인들의 웃음소리가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리동백은 그 집 문앞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부엌아궁에서는 나무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커다란 가마에서는 더운 김이 안개처럼 서려오르는데 가마우에 놓인 국수분틀에는 동네 녀인들이 몰켜서서 안깐힘을 써가며 가름대를 내려누르고있었다.

팔소매를 걷어붙인 주인집 로파는 싸리조리로 농마국수오리를 건져서는 찬물이 가득 담긴 함지에 쏟아놓고 솜씨있게 저어가면서 국수발이 굵다거니 반죽이 되다거니 하고 잔소리를 하였다. 부뚜막앞에서는 이마가 훌렁 벗어진 주인령감이 불을 때고있었다.

《령감, 마른 나무가지를 골라넣수다. 물이 끓어야 국수가 잘되지 않겠소. 원 령감두 답답하지.》

《허참, 이거 오늘밤에는 꽤 잔소리가 심허군···》

주인령감은 일부러 자그마한 재빛눈을 흡뜨며 혀를 찼다.

《잔소리 안하게 됐소? 남의 이마를 터쳐놓구 무슨 할 말이 있소?》

로파는 령감의 눈앞에 쪼글쪼글 주름이 잡힌 이마를 내밀었다. 눈두덩우에는 동전잎만 한 상채기가 나있었다. 그것은 감자움 가름대에 부딪쳐서 생긴것이였다.

《허참, 그래, 그게 어디 내탓이요?》

《에구우, 남이 창피해서··· 남의 손목을 부러지게 잡구서 마구 감자굴로 끌고 간게 뉘시우? 간이 녹두알만 한 령감하구 살려니 이 고생이지··· 쯧쯧···》

《하, 저는 어쩌구? 총소리가 나자 초풍난 사람처럼 와들와들 떤건 누구여?》

《내가 떨었수? 령감이 떨었지.》

《떨기야 로친네가 더 많이 떨었지.》

그러자 녀인들이 깔깔 웃었다.

주인내외도 따라웃었다. 한참후에 령감이 누구에게라없이 한마디 하였다.

《간이 메주덩이만 한 사람이 있기로서니 이번같이 큰 전쟁통에 그냥 앉아배긴단말이요? 있다면 그야 정신나간놈이지-》

《우리두 보따리를 이고 들고 뒤산으로 내뛰지 않았슴매. 마을이 다 없어지는줄 알았지비.》

실팍한 몸으로 국수분틀의 가름대를 누르고있던 얼굴이 넙죽한 중년부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녀인들은 자기네들은 어느어느 골짜기로 올리뛰였다느니, 감자굴에 숨어있었다거니 하고 한마디씩 하였다.

《이러나저러나간에 령감덕에 허물 하나 벌었수다.》

로파가 눈두덩우의 상채기에 손을 대보며 푸념을 하였다.

《걱정두 팔자요. 로친이 이제 또 시집가겠소?》

하는 령감의 소리에 녀인들은 또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리동백은 부엌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하였다.

《수고들 하십니다.》

주인령감과 녀인들은 뽀얀 김이 서리는 속이라 처음에는 리동백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리동백은 모자를 벗어들고 다시 인사를 하였다.

부엌아궁의 불빛과 벽에 걸어놓은 두개의 등잔불이 리동백의 반나마 흰 머리를 희미하게 비쳤다.

《어이구, 어서 오시오. 보아하니 꽤 높으신 어르신네 같은데 이렇게 루추한 집엘···》

주인령감은 감이 좋은 천으로 만들어진 그의 새 군복을 살펴보고 퍽 기뻐하면서도 한편 당황한 기색이였다.

《아니 나는 보통유격대원입니다.》

주인령감은 리동백의 아래우를 두루 살피면서 물러앉았다.

《그래 내가 보통유격대원 같지 않습니까?》

《예예··· 년세도 있는분이고 차림새도 여느 사람과 같지 않아서···》

《나는 평대원이지만 좌상이라구 나이대접을 받습니다.》

주인령감은 머리를 끄덕이며 리동백에게 뜨거운 부뚜막 한쪽에 자리를 권하였다. 그리고 기둥에 매달아두고 아끼던 담배타래에서 누런 잎담배 두잎을 뽑아서 리동백앞에 내놓았다.

리동백은 주인령감이 권하는대로 부뚜막 한켠에 앉았다.

《어데 상한데는 없는가요?》

《원, 무슨 말씀을··· 상하다니요? 마을에 총알 하나 안떨어졌수다.》

싸리조리로 가마에서 국수를 건져내던 주인로파가 리동백한테로 얼굴을 돌리며 한마디 하였다.

《다치기는 이 늙은게 다쳤다우다. 저 령감덕분에 여기를 이렇게···》

녀인은 상채기가 난 눈두덩을 손으로 가리키며 곁눈으로 령감을 슬쩍 훔쳐보았다.

《거 정말 큰일날번 했습니다.》

《이 못난 늙은것이 로친네가 귀해서 감자굴로 끌고들어가다가 그만···》

령감이 얼굴을 붉히자 녀인들은 또 웃었다.

《모두들 보따리를 싼다, 산으로 간다 야단법석했답니다.》

얼굴이 넙죽한 녀인이 능란한 솜씨로 반죽한 농마를 국수분틀에 밀어넣으면서 말참견을 하였다.

리동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두 큰일났다고 했겠습니다?》

《말두 마시우. 헌데 지금 생각해봐두 그저 꿈만같아요. 그 씨글씨글하던 놈들이 눈깜박할 사이에 멸족했는데 이건 정말 하늘이나 알 일이지요. 헌데 유격대어른, 대관절 이번 전쟁은 어떻게 된겁니까?》

《어떻게 되다니요?》

《나는 전쟁을 여러번 당해본 사람인데 아라사하구 왜놈들이 전쟁할 때는 왜놈군대가 한번 지나만 갔는데도 마을은 결단이 났지요. 개, 돼지, 닭이 멸족이 되구 세간들은 털리우구 그저 쑥밭이 됐지요. 헌데 이번 전쟁은 머리우에서 하늘이 물러앉는 소리가 났는데두 마을이 이렇게 펀펀하지 않소. 내 이런 전쟁은 처음 봤다니까요. 그전날 어쩌다 독립군들이 지나갈 때두 마을이 피해를 입기가 일쑤였습지요.》

리동백은 껄껄 웃었다.

《이번 싸움은 인민을 위해 싸우는 우리 인민혁명군이 벌린 싸움이기때문이지요. 이번 싸움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인민들에게 조그마한 피해도 없도록 보살피시였습니다.》

주인령감뿐아니라 녀인들까지 일손을 놓고 리동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장군님께서는 마을에서 전투를 하면 인민들의 재산과 인명에 피해가 있을수 있으니까 놈들을 마을밖으로 끌어내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둥지를 틀고 엎디여있는 놈들을 무슨 수로 끌어냅니까? 그래서 모두 걱정들이였는데 장군님께서 묘책을 가르쳐주셨지요···》

리동백은 신명이 나서 오늘 전투의 경위를 이야기하였다.

《과시 명장이십니다!》

이야기를 듣고난 주인령감이 무릎을 치며 감탄하더니 계속하였다.

《척 뵙기만 해두 천품을 타고나신 명장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장군님께서 그런 묘책을 내시여 보살펴주시니 우리는 아무 피해도 안받구 못되게 굴던 왜놈들만 녹아났군. 천하에 악독한 그 미야께란놈이 뒈졌다는 소문을 들으니 10년묵은 체증이 꺼져내리는것 같습니다. 나도 그놈들한테서 정말 이루 말 못할 수모를 받았수다. 집단부락인지 뭔지를 만들 때 그놈들이 하던 짓을 생각하면···》

주인령감은 그때 당하던 뼈에 사무친 일들을 이야기하고 백성들의 원한을 산 놈들이니 천벌을 받지 않고 될말이냐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런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인민들이 기를 펴고 살게 하시려고 이번에 이 집단부락에 틀고앉아 악독하게 굴던 미야께놈의 부대를 치게 하셨습니다.》

리동백의 말에 주인령감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우신 장군님이시외다! 우리는 그동안 놈들의 등살에 숨도 제대로 못쉬구 지내면서 장군님께서 우리 부락에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장군님께서 무송땅에 오셨다는 소문이 돌지 않겠소. 그 소문을 듣고는 그저 모여앉으면 장군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주인령감은 얼마전에 우리 나라 조종의 산인 백두산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울렸다는 소문이 어디선가 전해왔는데 그것을 두고 이해 봄에 나라에 대통운이 트일 징조라고들 령감네들이 말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리동백은 여직껏 자기가 보고 듣고 느껴온대로 장군님은 어떠한분이시라는것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였다···

밤이 깊어서야 리동백은 그 집에서 나왔다.

마을에는 여전히 달빛이 흐르고있었다. 리동백은 마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만에 푸짐히 국수대접까지 받고난뒤라 마음이 흐뭇하였다. 코노래라도 흥얼거리고싶은 심정으로 걸음을 옮기던 리동백은 어데서 청년들의 노래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가보았다.

수수짚으로 울바자를 둘러친 초가집마당에서 청년들이 유격대원들에게서 혁명가요를 배우고있었다. 리동백이 마당안에 금방 들어섰을 때 장기령이 뒤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동무들, 이제 장군님께서 연설을 하십니다. 모두들 저쪽 병영마당으로 갑시다.》

청년들은 와-하고 물밀듯이 달려나갔다.

놈들이 병영으로 쓰던 건물안마당에서는 우등불이 활활 타올랐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와그르르 쏟아져나왔다.

마당은 사람들로 차고넘쳤고 마을젊은이들은 불무지곁에 모여서 언제 배웠는지 유격대행진곡을 소리높이 부르고있었다.

장기령은 리동백과 함께 그리로 걸어갔다.

《장동무, 참 수고하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에는 또 이렇게···》

《오늘 전투는 얼마나 신바람납니까! 또 오늘밤은 얼마나 좋은 밤입니까!》

역시 장기령의 말이 옳았다.

벌써 마당에서는 《김일성장군님 만세!》 하는 환성이 터져올랐다.

장기령은 리동백의 팔을 잡아 이끌며 그리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겹겹이 둘러서있었다. 조무래기들은 어른들의 겨드랑이밑을 빠져서 장군님 가까이로 나갔다.

장군님께서는 환호를 올리는 군중이 진정하기를 기다리셨다가 연설을 시작하시였다.

《친애하는 남강마을의 동포 여러분! 그립던 동포 여러분들과 오늘 저녁에 이렇게 자리를 같이하게 되니 나도 참으로 기쁩니다.》

기침소리 하나없이 귀기울이고있던 마을사람들은 와그르 박수를 올렸다. 앞자리들을 마을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뒤자리들에 서있던 인민혁명군대원들도 함께 박수를 올렸다.

장군님께서는 답례로 몇차례 가볍게 박수를 치시고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들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일제침략자들에게 빼앗긴 조국땅을 떠나 살길을 찾아 산설고 물설은 이곳에 와서까지 당하는 고생살이와 설음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것은 우리가 만난 몇몇 마을로인님들의 이야기만 듣고도 짐작이 갑니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은 벌써전부터 하늘에 사무친 남강마을 여러분들의 원한을 알고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제의 압제밑에서 마을사람들이 당한 고통을 손금보시듯 환히 꿰뚫어보시고 그 몇가지 실례까지 드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귀기울이고있던 마을사람들속에서 훌쩍거리는 낮은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고통을 당하고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못보았고 하소할데도 없던 마을사람들은 그 기막힌 사연들을 가슴아파하시며 뇌이시는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가슴이 후더워졌다.

장군님께서는 연설을 계속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동포들이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이국땅에 와서까지도 이렇게 고생하는것은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이 나라를 빼앗았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일제의 죄악상을 구체적으로 까밝혀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늙은이들은 하얀 머리들을 끄떡이였다.

《···우리가 이러한 처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총총히 들어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렇게 하자면 2천만 우리 동포들이 모두 한덩어리로 뭉쳐야 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여 2천만 동포들이 모두 한데 뭉쳐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인 지주, 자본가놈들을 때려부시고 삼천리 아름다운 우리 조국강토를 되찾아야 합니다···》

또다시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울리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손에 무장을 들고 피흘려 싸우는것은 일제를 조국땅에서 몰아내고 우리 인민을 착취와 억압에서 영원히 해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모두가 항일무장투쟁에 적극 호응하여 떨쳐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장군님의 연설은 폭풍같은 박수갈채와 환호와 만세를 불러일으켰다.

그 자리에서 수십명 마을청년들이 저마끔 유격대참군을 지원해나섰다.

마당안은 흥성거렸다. 한쪽에서는 입대를 청원한 청년들을 등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이 어울려 춤추고 노래부르며 이 즐거운 밤을 보냈다.

밤이 깊어 모임자리는 파했으나 장군님을 모신 남강마을은 집집마다 골목마다 떠들썩한 이야기소리, 혁명가요를 부르는 노래소리, 웃음소리에 실려 밤새껏 잠들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