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1

 

제 10 장

1

 

마안산계곡들을 흘러내려 이도송화강에 합쳐지는 실개울들은 얼음이 다 풀렸다.

음지쪽 바위밑에 지꿎게 도사리고있던 얼음덩어리들은 검불이 박힌 자리에서부터 구멍이 숭숭 뚫리며 녹기 시작하였다.

겨우내 두터운 눈이 하얗게 덮여있던 밀림속의 땅거죽은 온통 시꺼멓게 변해버렸다. 유구한 세월을 두고 덧쌓이며 썩어온 락엽층밑으로는 흐린 눈석임물이 슴새여내렸다.

넘쳐나는 봄시위물이 마안산계곡들을 콸콸 울리며 쏟아져내렸다.

풍만하게 넘치면서 흘러내리는 눈석임물은 얼음장들을 둥둥 떠이고 바다로 흘러갔다.

광막한 밀림을 씻어내리고 넓은 대지를 적시며 장엄하게 넘쳐나는 봄시위물과 같이 김일성장군님께서 마안산에 나오시여 여러해동안 묵어오며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던 《민생단》보따리, 불신과 모멸의 문서장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셨다는 놀랍고 장쾌한 소식은 삽시에 동서남북 곳곳으로 번져갔다.

혁명대오의 순결성을 고수한다는 이름밑에 실제에 있어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을 배척할 목적으로 무지몽매하고 편협하기 짝이 없는자들이 초혁명성을 내휘두르며 극좌적으로 진행해왔던 반《민생단》투쟁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항일무장투쟁에 횡포한 겨울을 가져다주었었다.

피끓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심장을 얼구어버리고 푸르싱싱 잘 자라오르던 조선항일혁명투쟁을 더러운 눈과 얼음으로 덮어버렸던 그 저주로운 겨울은 1935년의 다홍왜와 요영구에서 그에 종말을 고하는 봄의 뢰성이 연거퍼 울린 다음에도 채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들을 그냥 남겨두고있었다.

그 완고했던 겨울의 마지막 얼음덩어리들은 장군님께서 일생일대의 대용단을 내리시여 《민생단》보따리를 태워버리신 그 위대하고 뜨거운 사랑의 불길에 의하여 드디여 녹아버리게 된것이다.

그것은 력사의 눈석이였다.

죄악과 배신과 불신으로 엉켜붙어있었던 얼음덩어리들을 녹여버린 력사의 눈석이는 자연의 눈석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처에 있었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가슴가슴에 번져가면서 그 가슴우에 얼어붙어있던 얼음장들을 녹여 둥둥 띄워보내고 졸아들었던 심장과 피줄에서 다시 조선혁명의 붉은 피가 펄펄 끓으며 뛰놀게 하였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자 곳곳에서 기쁨과 감격에 겨워 울며 춤추었다. 그리고 그 곳곳에서 백두산기슭으로, 마안산으로 장군님을 찾아왔다.

마안산을 향하여 흘러온 수많은 사람들의 크고작은 흐름속에는 교하에서 통신련락을 받고 달려온 제2련대도 들어있었다.

그리하여 1936년 봄에 있은 자연의 눈석이철과 일치한 그 력사의 눈석이철에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친솔부대로서 조직하기 시작한 새로운 사단은 넘쳐나는 봄시위물마냥 엄청나게 불어났다.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따라 림시로 무어주시였던 대렬들을 정비하시여 정식으로 대렬을 편성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새로 편성하신 부대가 항일무장투쟁뿐아니라 전반적조선혁명을 이끌어나가야 할 정치적, 조직적 골간으로서의 중대한 사명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사령부직속으로 비서처를 꾸리시였으며 거기에 출판소도 내오시였다. 출판소 책임자로서는 리동백을 임명하시였다.

전례없이 많고많은 시름겨운 일들을 스스로 맡아안으시고 그 어느때보다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였던 이무렵에 장군님께서 가장 큰 주목을 돌리시면서 제일 많은 심려와 로고를 기울이신 사업은 새 부대의 편성과 함께 조국광복회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이였다.

인민혁명군사령부에 집중되는 그 모든 크고작은 일거리들을 일일이 처리하시고 마안산의 여기저기에 수십리씩 떨어져 널려있는 밀영들과 병원, 재봉대, 병기창, 아동단을 찾으시여 그 《문제거리》던 사람들과 병자들, 로약자들, 녀대원들, 병기창일군들, 아동단원들을 보살피시고 또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주시는 그 분주하신 가운데서도 장군님께서는 자자구구 되새기시며 수정가필을 거듭해오셨던 조국광복회강령초안을 마침내 열개의 조항으로 고착하여 완성하시였으며 조국광복회의 규약과 창립선언문 기초도 끝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조국광복회창건준비위원회를 조직하시고 광복회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을 여러모로 다그치시면서 미구에 소집하게 될 창립대회에 제출할 보고를 비롯한 문건작성사업을 직접 조직지도하시였다.

이러한 사업들을 하신뒤에 그이께서 새로 편성한 부대를 거느리시고 마안산에서 떠나실것을 작정하시고계실 때 리경준으로부터 보내온 두번째 통신이 사령부에 전해져왔다.

통신은 박문필이 장군님께 선물로 보내드리는 신식사진기안에 들어있었다.

 

통신을 거듭 주의깊게 읽으시고 한동안 깊은 명상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전령병 주봉길에게 서간도일대의 지도를 가져오라고 이르시고 강세호와 리동백을 곧 사령부에 도착시키라고 말씀하시였다.

봉길이가 통나무책상우에 서간도일대의 지도를 펴드리고 나간 다음 장군님께서는 잠시 지도를 살펴보시다가 다시금 사색에 잠기시여 귀틀집안을 거니시였다.

난로가 확확 단 열기를 내뿜어서인지 집안은 무더웠다. 장군님께서는 뙤창문을 들어올리시고 창턱에 놓여있던 막대기를 버티여놓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시원한 바깥바람을 받으시며 앙상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있는 애어린 느릅나무를 바라보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느릅나무밑에는 희끗희끗한 잔설이 남아있었는데 하루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죄다 녹아버렸다. 느릅나무는 눈석이물을 빨아올린때문인지 아니면 그 물에 밑가지들이 젖은탓에 그렇게 보이는것인지 내내 메마르게만 보이던 가지들이 한결 연해지면서 물기를 머금은듯하였다.

나무들이 드디여 깊은 잠에서 깨여나 한껏 숨을 쉬면서 물과 땅속의 자양분을 빨아올려 움을 틔울 차비를 시작하는것인지··· 완고하고 심술궂던 겨울은 물러갔다. 눈 없는 계절, 움트는 계절이 시작되였다. 인민혁명군의 맹활약시기가 온것이다.

특히 올해의 봄을 찬란한 구상속에 고대하여오셨던 장군님께서는 마안산을 떠나시여 동강방향으로 행군하실 작전을 세우시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언제나와 같이 단정하고 정중한 몸가짐으로 련대장 강세호가 들어섰다.

《갑자기 찾아서 련대사업에 지장을 준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뙤창가에서 돌아서시며 인사를 올리는 강세호에게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사령관동지. 며칠전에 새로 편입된 동무들만 모아놓고 남호두회의정신을 알려주다가 왔습니다.》

《아, 그럼 내가 학습을 방해한게로군.》

강세호는 서둘러 그런것이 아니라 금방 학습을 마치려던 참이였다고 말씀드렸다.

봄기운이 흐르는 창밖에 자주 보내시는 장군님의 다감하신 눈길과 허리에 단정하게 차신 권총갑을 매만지시는 손길과 웃음이 어린 음성에서 강세호는 필시 기쁜 소식이 있으리라는것을 예감하였다.

《그러면 괜찮겠구만. 급히 토의하고 대책을 취해야 할 일이 생겨서 찾았습니다. 자, 여기 와서 좀 앉으시오.》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에게 책상 맞은편 의자를 권하시고는 자신께서도 의자에 앉으시였다.

강세호는 책상우에 펼쳐져있는 지도와 그옆에 놓여있는 번쩍거리는 사진기를 두릿두릿 살펴보았다.

《경준동무한테서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는데 그 동무가 무송에 내려간지 얼마 안되는동안에 적잖은 일을 해놨습니다. 박문필동무의 사진관을 아지트로 삼고 그의 적극적인 방조를 받으며 무송시내의 적지 않은 사람들을 지하조직에 흡수하기 시작했다는것입니다. 박문필동무의 부인도 지하조직성원으로 끌어들였고··· 그런데 시내보다 헐하게 조직망을 확대할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주변농촌지대에서 오히려 난관에 봉착했다는것입니다. 다른데는 예상했던대로 비교적 순조로이 되여가는데 남강마을과 그 일대는 그렇지 못하다는겁니다. 이걸 좀 보시오.》

장군님께서는 사진기밑에 깔아놓으셨던 련락쪽지를 강세호에게 내주시였다.

강세호는 쪽지를 받아들고 읽었다.

《미야께부대놈들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통신쪽지를 지도의 한 귀퉁이에 놓으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 악명높은 미야께부대가 몹시 갈개는것 같습니다. 남강집단부락에 둥지를 틀고있는 그놈들이 이웃집간에 다니는것조차 트집잡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잔인하게 학살하기때문에 인민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있습니다. 적들의 탄압이 얼마나 심한지 사람들이 조직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못한다는것입니다. 이놈들이 남강부락만 아니라 제놈들의 통치밑에 있는 마을들에서는 아무데서나 집단부락을 만든다고 수많은 산재부락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운신 못하는 늙은이들까지 망탕 학살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들이 겁먹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지어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반순부대까지도 그놈들이 무서워 기를 못펴구 쫓겨다니다가 나중에는 비적질을 하게쯤 되였으니 경준동무가 남강마을과 그 주변일대에서 조직망을 꾸리기 위한 초보적인 활동조차 하기 어렵다구 안타까움을 적어보낸것이 우연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렇기때문에 미야께부대를 소멸하지 않고서는 남강촌과 그 주변일대의 인민들이 기를 펴고 살수 없고 우리와 손잡고 반일항전을 해야 할 구국군부대가 토비로 굴러떨어져 헤실바실 흩어지는것도 막을수 없고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송지구활동에서도 많은 구속과 제약을 받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특히 이 지대에서 반일대중조직들을 육성강화하여 앞으로 조국광복회에 망라시키기 위한 사업을 활기있게 추진시켜나갈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가벼이 거니시며 하시던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이제는 마안산에 더 이상 머물러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안산에 머무르면서 하자고 계획했던 일들을 결속한것만큼 적극적인 군사적공세에로 넘어가면서 다시금 국경지대에로의 행군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여기 마안산에서 새로 조직편성한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렇고,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조국광복회를 창건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이제는 하루빨리 보다 적극적이고 보다 진공적인 군사행동으로 그 모든 사업을 안받침해주는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안산을 떠날 작정을 하고있었는데 경준동무의 통보를 받고보니 더 절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책상앞에 멈춰서시여 가장자리가 부풀어오른 지도를 손으로 가볍게 누르시였다.

《새롭게 조성된 이러한 제반 군사정치정세의 요구에 따라서 나는 마안산을 떠나 이 만강방향으로···》

하고 장군님께서는 지도에서 마안산과 만강을 찾으시여 그 두 지점을 련결해보이시였다.

《···사령부직속부대를 이끌고 나가면서 도중에 남강부락에 둥지를 틀고있는 미야께부대를 쳐버리자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바로 여깁니다.》

장군님께서는 지도우에 네모반듯한 주민지로 표식되여있는 남강을 꾹 눌러 짚으시였다. 강세호는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지점들을 주의깊에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동무네 련대에서 남강마을에 정찰대를 파견하시오. 척후겸 정찰대로 내보내는것이니 인원들을 잘 선발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강세호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엄숙한 자세로 명령을 받았다. 그의 번듯한 이마밑의 눈에 알릴듯말듯한 미소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자기가 그 영광스러운 임무를 받았다는것보다는 사령관동지의 심려를 덜어드리게 된 기쁨이 가슴을 들먹거리게 하였던것이다.

《이제 준비시켜서 점심후에 인차 떠나도록 하시오. 그리고 련대의 나머지 성원들은 래일 새벽에 떠날수 있도록 행군준비를 시키시오.》

《알겠습니다.》

하고 다시금 절도있게 대답한 강세호는 한쪽 코구멍을 벌룩거리더니 주저없이 말을 이었다.

《한가지 제기해도 좋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지도를 접으시다마시고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어서 말해보시오.》

《정찰대를 제가 직접 인솔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의 침착한 눈빛과 이런 때는 고집기가 있어보이는 입술을 살펴보시며 그가 쉬이 단념하지 않을 결심을 하였다는것을 알으시였다.

《그럼 련대의 나머지 성원은 누구에게 맡기겠소?》

《부대의 기본대렬과 같이 행동한다면 문제될것이 없을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소···》

《정찰대가 친솔부대의 척후임무를 겸하는만큼 꼭 제가 책임지고 가도록 하여주십시오.》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어서 떠날 차비를 하시오.》

강세호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사령부를 나설 때 마침 사령부에 도착한 리동백이 역시 권총갑을 추슬리는 강세호의 뒤를 한동안 바라보면서 무슨 일이 생겼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사령부에 들어선 리동백은 놀라운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박문필이 선물로 보내올린 사진기와 필림 그리고 사진현상에 필요한 약품들과 기타 물자들을 넘겨주시였다.

강세호가 인솔하는 정찰대를 먼저 떠나보내신 장군님께서는 이날 오후 지휘성원들을 부르시여 전체 부대성원들이 마안산을 떠나기 위한 행군준비를 갖출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그 명령을 내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일부 사람들을 다젠창에 보내시여 새로운 후방밀영을 꾸릴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것은 당분간 무송현 남부지대에서 진행하게 될 중대한 군사정치활동을 고려한 동시에 마안산에 남게 될 아동단원들과 병원, 병기창과 재봉대를 보다 안전한 새로운곳으로 급히 옮기도록 하기 위한 대책이였다.

그 이튿날 아침 장군님께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며 떼쓰는 아동단원들까지 데리시고 마안산을 떠나시였다.

앓아서 데리고가실수 없는 아이들만은 한남실에게 맡기시여 남겨두시였다. 채 낫지 않은 최선금이와 그의 아들딸 남매도 마안산 후방병원에 남았다. 그리고 또한 그들을 보호할 한개 소대가 떨어졌다.

마안산을 떠난 사령부친솔부대는 밤새 내린 봄비에 함빡 젖어든 숲속을 누비며 남강방향으로 굽이쳐나갔다.

앙상한 재빛의 활옆숲은 밤사이 미역을 감더니 청신한 생기를 띠며 연두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1936년의 첫 봄비가 내린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