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6

 

제 1 장

6

 

길손들은 이미 잠든지 오래고 누이와 조카 옥선이도 고르로운 숨소리를 낼뿐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오직 리동백이만이 잠들지 못하였다.

난데없이 찾아든 유격대손님과의 뜻밖의 상봉은 리동백의 고요했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리동백의 앞에 나타난 유격대원 강동무의 말은 분명 얼어붙은 그의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커다란 돌멩이였다. 그 돌멩이는 리동백의 마음속에서 소란한 외계에 대한 일체의 관심을 덮어버리고있었던 혐오와 불신과 회의의 얼음장에 커다란 구멍을 내면서 구멍밖으로 출렁 물방울이 튕겨오르게 했다.

어찌하여 그렇게 두터운 얼음장이 마음의 호수우에 얼어붙었고 또 어찌하여 그 두터운 얼음장이 난데없는 손님의 출현으로 구멍이 뚫리게 된것인가?

···리동백은 소작살이를 하는 가난한 농가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감수성이 예민했다. 어려서는 마을의 서당에 다녔고 다음에는 고을의 보통학교를 다녔다. 그는 일찍 소년시절에 망국의 쓰라린 비운을 체험하였다. 하루는 나무단을 팔려고 지게를 지고 고을에 나갔다가 고을의 영문앞에 나붙은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에 대한 방문을 보고 점도록 그앞을 떠나지 않고 울고 또 울었다.

그가 《아는것이 힘이다, 배워야 나라를 찾을수 있다》는 애국적인 계몽운동에 공감하여 농사일을 일시 쥐여버리고 서울로 올라간것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두해 지나서였다.

중학에 다닐 때 리동백의 흥미를 끈 과목은 력사였다. 그는 곰팡이 쓴 낡은 신문과 들깨기름이 배인 서책들속에 파묻히면 밤이 지새는줄을 몰랐었다.

리동백은 당시 류행하던 《쟌 다르크전》이나 《윁남망국사》 같은 책도 탐독하였다.

중학을 졸업한 다음 함북도 해변가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애국문화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난 소식은 한주일이상 지나서야 동해가의 한적한 그의 고향마을에 전해졌다. 마을의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리동백은 그 소식을 듣자 선생들과 학생들의 선두에 서서 고을로 내려가 온종일 만세를 부르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리동백은 고을의 경찰서를 점거한후 서장놈의 책상을 길가에 내다놓고 짚신발로 올라서서 《조선독립 만세》를 불렀다. 조선독립이 다 되는것 같았다. 그러나 얻은것은 독립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갇힌 류치장생활이였다.

리동백이 맑스주의서적에 심취된것은 류치장으로부터 감옥을 거치는 2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서 열렬한 공산주의신봉자로 되였다.

그러나 순진하고 결백한 젊은 공산주의신봉자의 유혹을 자아낸 《선배》들은 그와 같이 투명하고 고결한 넋으로 시대의 사조를 받아들인것은 아니였다. 리동백은 멋도 모르고 《선배》공산주의운동자를 따르다나니 그 유혹적인 사회운동의 첫걸음부터 미처 제정신을 차릴새 없이 파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들어갔다.

리동백은 그럴듯 한 행색과 인사로 치기스러운 권세욕과 협잡놀음을 가리워버린 종파분자들의 풍에 떠서 몇년동안 얼떨떨해 돌아쳤다. 그러다가 시궁창속에 빠진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쯤 해서 그는 한평생 소작살이에 지치다 못해 병에 걸린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했고 그에 련이어 아버지를 모시고 혼자 살다싶이했던 젊은 안해도 산후탈로 숨이 지고 자기의 피를 받은 갓난아이도 죽고말았다는 소식을 받았다.

문득 그 행세군들을 따라다니며 그 풍에 놀다간 자기가 어떠한 인간이 되고 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리동백은 스스로도 두려웠다. 그 이상 그 사람들 곁에 있다가는 질식당해 죽어버릴것만 같았다.

하여 그는 공산당이 해산되기전에 자기가 따라다녔던 인간들의 종말을 내다보고 그들과 결별했다.

그는 서울을 떠났다. 그러나 고향엔 잠시 들렸을뿐 거기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와 안해와 어린것의 무덤에 복토를 하고 잔디를 입혀주고는 간도로 넘어왔다.

그는 룡정에 있는 《민생일보》사에 일자리를 구해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엔 펜을 들고 그것으로 식민지사회의 암을 들창낼것처럼 또 몇년 보람없는 정열을 허비하면서 마지막 푸른시절을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거기서 공산당이 해산된 소식도 들었고 파벌을 일소하고 민중속으로 들어갈것을 호소한 국제당의 12월테제라는것도 접했다. 그쯤되였으니 종파쟁이들도 교훈을 찾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자들은 교훈을 찾지 않았다. 종파분자들은 당이 해산되자 만주에 몰려들어와서 당재건운동이요 뭐요 떠들어대면서 이국에 와서까지 다시 파쟁을 계속했다. 다시금 리동백이까지 그 진흙탕속으로 잡아끌어들이려 하면서 참으로 집요하게 책동했다. 소란스럽고 시끄러워 리동백은 거기에서도 견딜수가 없었다.

그런데다 시국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흉흉한 소문끝에 9.18사변이 터졌고 만주땅도 종시 왜놈들에게 삼키우고말았다. 언론계는 해가 바뀜에 따라 더욱더 횡포해지는 권력의 머슴군으로 굴러떨어져갔다.

몇해 지나서 때늦게나마 헛되게 산 일생을 쓰겁게 돌아본 리동백은 사회운동자의 마지막 행색마저 벗어던지고 누이가 살고있는 이 화룡땅의 깊은 산골에 들어와박혔다.

이때부터 리동백은 바깥세상에 자기 마음이 유혹되여버리지 않도록 얼음을 얼궈붙였다.

얼어붙은 호수라는것은 얼음바깥의 드넓은 세상에서 해가 뜨건 달이 뜨건 바람이 불건 눈이 오건 하늘이 개이건 흐리건 상관없이 잔물결조차 일으키지 않고 고요히 자기나름대로의 안정된 세계를 유지해나간다.

소란하고 변화무쌍한 바깥세상을 외면해버린 리동백은 이 깊은 산간벽지의 화전마을에서 자기식으로 안착된 생활을 꾸리기 시작했다. 애국문화계몽운동과 그 운동자들, 파쟁을 일삼는 공산주의운동과 그 운동자들, 이를테면 기왕의 운동과 기성의 운동세대들을 통채로 부정해버린 리동백은 탁류에 오염되지 않고 자연이 베풀어준 모습그대로의 소박성과 정직성과 생동성을 고스란히 지니고있는 이곳 벽지의 아이들을 진정한 애국자들로 키워내볼 작정으로 간이학교를 세웠다. 그는 자기가 이룩할수 없었으나 버릴수도 없는 애국의 뜻과 공산주의에 대한 동경을 때묻지 않은 동심에 심어주는데 전념하였다. 그것을 리동백은 자기가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보람차고 유일한 필생의 량심적인 사업으로 간주하였다.

일제의 어용선전물들이 《공산비적》들이라고 이름지었던 항일유격대와 유격근거지에 대한 소문을 더 자주 듣기 시작한것은 바로 이럴무렵이였다. 이른바 공산주의운동의 선배들과 권위자들에게 경솔하게 유혹당하여 그들을 묻어다닌 대가로 멸시와 배신과 쓰디쓴 환멸밖에 얻은것이 없었던 리동백은 《공비》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얼음장밖에서 울리는 소리는 얼음장안에서도 들리기마련이다. 점점 더 자주 그리고 널리 세상에 퍼지고있는 《색다른 공산주의자들》, 《색다른 근거지의 공산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완고한 불신감에 쩌들어든 은둔자의 관심도 끌지 않을수 없었다.

류달리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것은 그 새로운 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소문이였다.

그이의 영향력을 두려워한탓인지 일제의 어용출판보도수단들은 처음에는 장군님에 대한 보도를 매우 드물게 내고있었으나 인민들은 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실화적요소보다 전설적인 요소가 더 많은것들이였다. 그것도 향토전설에서 듣는것 같은 흔한 보통의 전설이 아니라 건국신화들과도 같이 신비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찬 전설들이였다.

장군님께서 태여나시던 날 백두산마루에 새로운 큰 별, 장수별이 뜨고 천지에서 룡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둥 열살때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에 발을 씻었다는둥 권총을 차고 왜놈들 앞을 버젓이 지나가시는데도 왜놈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인민들의 눈에만 보였다는둥 그이께서 솔방울을 던지시면 금시에 폭탄으로 변하고 나무가지를 쥐시면 곧 총으로 되고 백지장에 말을 그리시면 그 말은 진짜말로 변한다는둥 이러루한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한 여러 전설들에 의하면 김일성장군님은 우리 나라의 건국신화들이나 고대동서방의 유명한 신화들에 나오는 의인화된 신적존재 이상의 신기한 힘과 지혜와 용맹을 겸비하시고 천기를 타고나신 비범한분이시였다.

유물론자로 자처하고있는 리동백은 신비성이라는것을 믿지 않고있었다. 그러나 신화나 종교적인 전설밖의 대부분의 전설들에서 이야기되고있는 신비로운 현상들을 잘 살펴보면 그 밑바닥에는 실지 있은 력사적사실이 깔려있군 하였다.

그런데 나날이 보충되고 확대되면서 널리 퍼지고있는 축지법이라든가 놀라운 지략에 대한 이야기들은 먼 옛날의 신화적인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금 그 어디에선가 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고계시는 조선의 청년장군님에 대한 전설들이였다.

오늘의 세상에서 실지로 살며 싸우고계시는분에 대한 그 가지가지 전설들을 과연 근거없는 허황한 이야기라고 단정할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현대인들속에 퍼지고있는 그분에 대한 이 신비로운 전설들은 그 어떤 사실들의 루적과 인민적념원의 교차현상이 아니겠는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날리 없고 근거없는 소문이 퍼질수 없다. 발원지 없는 강물이 흐를리 만무하다.

발원지를 찾아가보기만 하면 어찌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킬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물이 흐르게 되는지 명백히 깨달을수 있을것이다.

리동백은 전설의 발원지를 찾아가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싶었고 전설의 영웅을 직접 만나뵈옵고싶었다.

지나온 인생행로에서 이른바 명사라고 하는 거짓위인들에게 너무나도 많이 속아왔던 리동백은 그것이 소박한 사람들의 지나치게 간절한 념원속에서 빚어진 신기루에 불과한것이 아니라는것을 확신하지 않고서는 이제 다시 자기의 운명을 경솔하게 의탁해버리는따위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속심밑에 벌써전부터 장군님을 찾아 유격근거지에 들어가보자던 리동백은 그곳에서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널리 퍼지고 지어 확실한 근거도 없이 함부로 일제의 주구로 몰아 처단해버리는 가슴섬찍한 일까지 벌어지고있다는 이야기를 얻어듣게 되자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역시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과 함께 소문에 또 속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하여 한가닥 희망에 밝아졌던 그의 마음은 어두워지고말았다.

몇달이 지나서 그는 자기를 주저하게 하였던 근거지에서의 심상치 않은 사태들은 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빚어졌었다는것과 불행한 그러한 사태를 끝장내기 위하여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위험을 무릎쓰시고 결연히 나서시여 싸우시였다는 소문을 얻어듣게 되였다.

그의 열망은 되살아났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강렬해졌다. 그러나 미처 길을 떠나기전에 그는 일제의 《토벌》에 유격근거지들이 《완전소탕》되고 유격대가 《전멸》당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였다.

그의 마음은 이를데 없이 허전해졌다.

세상에 널리 퍼진 이야기처럼 세기에 드문 영걸이 어찌 불우한 우리 민족속에서 나왔으랴 하는 의혹을 품으면서도 행여나 하고 안타까이 품어왔던 한가닥 기대는 허물어지고말았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장났다. 이제는 행여나 조선을 구원해주고 뜻가진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줄만 한 인물이 없을가 하고 찾아볼만한데도 없다. 이제는 두더지처럼 벽지에 박힌채 새 세대가 자라날 장래나 바라보며 그럭저럭 목숨을 잇다가 때가 오면 이 벽지의 한줌 흙으로 변하고말리라··· 이런 서글프고 쓸쓸한 생각속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여왔다.

그러던중에 홀연 나타난 유격대원들을 만난것이다.

처음 그들을 대하였을 때 리동백은 그들 세사람을 왜놈들의 《토벌》에 근거지에서 쫓기운 유격대원들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로서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먹을것을 얻자고 내려온것이라 생각했다.

유격대원들이 확실하다는것을 깨달은 순간에 리동백이 그들과의 상면을 반가와한것은 유격근거지에 대한 소문과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던 때같이 한가닥의 기대와 관심을 품은때문이 아니라 이 30년대의 력사무대에 출현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방식으로 광복투쟁을 벌려오던 그들도 어떻게 되여 실패하지 않을수 없었는가를 알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강동무란 사람은 유격근거지가 해산된 다음부터 리동백이 품어왔던 견해를 일시에 뒤집어엎는 이야기들을 하였다.

자기들의 조선인민혁명군은 《전멸》당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세하고있다. 유격근거지는 해산당한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산한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건재하실뿐더러 오래지 않아 일제를 쳐부시려 조국에로 진군하시게 된다.··· 참으로 놀랍고 얼른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였다.

하늘에서 불시에 뚝 떨어진 커다란 돌멩이같은 그들의 말로 하여 리동백의 마음을 덮고있던 얼음장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평온했던 마음속에서는 설레이는 물결과 같은 충격적인 상념들이 소용돌이쳤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유격대가 《전멸》되지 않고 도리여 승승장구한다니?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이라면 과연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이야기되는 전설에서처럼 그 무슨 신묘한 수를 쓰셨다는말인가?)

얼떨떨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가을 누님이 장보러 먼길을 갔다와서 들려준적있는 한가지 전설이 리동백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장군님께서 병인년에 조국광복을 위한 싸움의 길을 떠나시면서 어머님께 10년만 기다리시면 뜻을 이루시고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하시였다는 이야기였다.

장거리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수군거린 늙은이들은 래년이 병자년이라 장군님께서 집을 나서신지 만 10년째되는 해인데 래년에는 국운이 트일것이라고들 하였다는것이다.

그 말대로 된다면 올해 1936년에는 온 민족이 일일천추로 고대하는 조국광복이 이룩될 해이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그러한 천지개벽이 생길수 없다. 참으로 신비한 수를 써서 왜적들을 일시에 격멸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것이다.

리동백은 그런 기적적인 힘이나 신비한 수가 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늙은이들이 했다는 이야기는 인민적념원이 빚어낸 그야말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전설적이야기와 같은 유격대손님의 말을 그저 이야기로만 들어버릴수 없었다.

강동무나 그와 같이 온 두 청년은 거짓말을 하거나 《행세군》들처럼 허풍을 떨고 망탕 흰소리를 칠 사람들이 아니였다. 겉볼안이라고 리동백은 손님들의 외모를 보고서도 그들이 진실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 말들은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곧이곧대로 믿을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믿을수도 없었다.

(과연 유격대가 《전멸》당하지 않고 오히려 승세하고있을가? 과연 유격근거지해산이 이 사람들의 주동적조치였을가? 과연 장군님께서는 건재하시는지? 도대체 어떠한 비범한 인격과 인품을 지니신분이시기에 그이를 뵙지도 못한 사람들속에서는 갖가지 전설들이 전해지고 그이의 부하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이야기가 연방 터져나오게 되는가?)

이리저리 뒤척이며 둥 띄워놓고 하는 생각만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풀길이 없는 착잡한 생각속에 모대기던 리동백은 마침내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앉았다.

(백번 듣느니 한번 보는것이 낫다는데 저사람들을 따라가보자. 장군님을 찾아가뵙자. 가서 내눈으로 형편을 직접 보고 판단해야지, 제3자의 말을 믿을수 없다!)

드디여 그는 이렇게 결심하였다.

(가서 제눈으로 얼마간만 케를 보면 모든 의혹을 풀수 있겠지. 이제는 내 나이도 젊지 않고 세상풍파도 겪어봤고 인생경험도 적지 않게 쌓았고 사람을 보는 눈도 틔였으니 얼핏 보기만 해도 알수 있으렸다. 내 귀까지는 속일수 있어도 내 눈만은 못속이리라.)

더는 그 어떤것에도 유혹되지 않고 이 벽지에 박힌채 영영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작정이였던 리동백은 자기의 인생행로에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속는셈치고 마음이 끌리는 길을 떠나보자는 생각이였다.

이번 길은 그전날 젊은 시절에 떠났던 길들에 비해서 훨씬 어렵고 위험하고 고생스러우리라는것을 그는 모르지 않았지만 일단 마음을 낸 이상 씨원히 가보아야만 이 벽지의 은거생활에 영원히 마음을 갈앉힐수 있을것 같았다. 장군님을 찾아가 뵐 연줄이 잡힌 이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면 다시는 영영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을듯 했고 그렇게 되면 행이 되든 불행이 되든 마지막으로 겪어야 할 인생체험을 놓쳐버린 아쉬움속에 나머지 삶을 내내 후회막심하게 지낼듯싶었다.

베개밑에 놓아두었던 담배통에서 파이프를 찾아 담배를 피우며 결심을 굳힌 리동백은 곁에서 자고있는 누이를 흔들어깨웠다. 곤하게 자고있던 누이는 몇번 흔들어서야 깨여났다.

《웬 일이유?》

누이는 농사군 남정네처럼 장알이 박히고 터슬터슬하고 꽛꽛한 손으로 자기를 흔들어깨운 리동백의 손을 더듬어잡으며 잠에 취한 소리로 물었다.

《조용히··· 손님들이 깨겠소.》

리동백은 귀속말로 주의를 주었다.

《웨 벌써 깼수? 식전담배는 해롭다는데 새벽담배까지 피우구.》

같이 늙어가기 시작하는 리동백을 언제나 어머니다운 다심한 정까지 겹쳐 사랑해주는 누이다. 제사전에 가졌던 노여움은 자는사이에 가뭇 잊어버린듯싶었다. 누이는 뒤가 없었다.

《아직 난 잠들지 못했소.》

《창이 훤한것 같은데 새벽이 되지 않았수?》

《지는 달빛이 비낀것 같소.》

《그런데 왜 상기 잠들지 않구?》

《그럴 일이 있어서··· 누이, 곤한대루 좀 일어나주.》

누이는 부시럭거리며 두말없이 일어나 앉아서 불안한듯 입속말로 물었다.

《무슨 일이게?》

《딴건 아니구 길 떠날 차빌 좀 해주.》

《유격대손님들이 벌써 떠나시겠다우?》

《손님들 조반 말고 내가 떠날 차비말이요.》

《오래비가? 갑자기 어딜?》

누이는 퍼그나 의아스러워했다. 리동백이 이 벽지에 와서 들어박힌 다음 마을을 벗어난 일은 한번도 없었던것이다.

리동백은 딱히 어디 간다는 이야기는 없이 그저 인가 없는 산속에서 여러날씩 지내도 얼지 않고 굶지 않도록 길차비를 해주면 되겠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누이는 오랍동생이 자기 한사람의 길량식만이 아니라 손님 세사람의 길량식까지 같이 차비해달라고 하는 부탁의 말에서 그가 어떤 걸음을 떠나려 한다는것을 눈치채고는 떠나서는 안된다고, 떠나보내지 못하겠다고 막아나섰다.

《누님, 손님들이 듣겠소. 좀 조용히! 왜 그러우?》

리동백은 어둠속에서 누이의 두손을 모아잡고 속삭였다.

《오래빈 벌써 잊었소? 세상이 좁다하게 운동자란 운동자는 다 따라다닌끝에 구새먹은 나무등걸처럼 돼서 이 집에 오던 일을··· 다시는 내곁에서 떠나지 않겠다구 다짐한게 언젠데 또 무슨 귀신이 들어서 떠나잡네?》

《이보우 누님, 내 말을 좀 듣구려.》

리동백은 토스레저고리우로 누이의 어깨를 어루쓸었다.

《내가 뭐 죽을 길을 떠나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오? 내 며칠 갔다가 꼭 돌아오리다. 내 저사람들을 따라가서 장군님을 만나뵙구는 인차 돌아서 오겠으니 소란스럽게 굴지 말구 길차빌 해구주려.》

《그럼 오래빈 장군님을 뵈오러 가자구?》

《그렇소!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내눈으로 한번 뵈옵자는거요.》

누이도 장군님에 대한 소문과 전설을 적지 않게 들은지라 그 이야기에는 마음이 동했는지 대꾸가 없었다. 한참만에 누이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아무리 그렇대도 지나가던 손님들의 말을 어떻게 다 믿겠소? 나는 실루 하늘이 무너진대두 곧이들리질 않우. 유격대가 남아있다면야 워쩡거 몇해전엔 우리 마을에두 들락거리던 그 유격대가 그지간에 그리 즘즉했겠소?》

《그러게 내가 헛걸음삼아 한번 따라가보고 오자는게 아니겠소.》

《외삼촌, 다녀오시라요. 내 그새 간이학교 아이들을 맡아 가르칠게. 엄마, 외삼촌 길차비를 해주자요.》

잠귀 빠른 옥선이는 어느새 깨여나 그들의 귀속말을 들었는지 아무 기척 없다가 참녜해나섰다.

《네 외삼촌은 그저 한뉘를 돌아다닐 팔자를 타고난갑다.》

한숨섞인 누이의 말에 리동백은 소리없이 혼자 웃음지었다.

덕대우에서 새벽닭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