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4

 

제 1 장

4

 

다시 행군길에 오른 그들은 과연 리경준의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통나무 굴뚝에서 연기를 피워올리고있는 작은 귀틀집 하나를 발견하였다.

안침진 골짜기의 숲속에 홀로 들어앉아있는 그 귀틀집의 뒤벽에는 처마밑까지 장작단이 높이 가려져있을뿐 산전막인지 포수막인지 분간해낼수 있는 유표한게 없었다. 피해야 할 집이라고 생각될만치 의심스러워보이는것도 물론 없었다.

다만 한지에 있는 가라말 한필이 미심쩍어보였다. 마구간이 없이 그냥 나무에 고삐를 비끄러맨것을 보아 귀틀집주인이 부리는 말 같지 않았다. 누군가 타고온 말일수 있다. 저쯤 잘 먹인 말을 타고 나타날만 한 사람이 어떤 신분의 사람일것인가?

보기드문 인가를 찾은 이상 그대로 지나칠수는 없었다. 벌써 여러날째 그들은 어디쯤까지 왔는지 알지 못한채 낮이면 해를, 밤엔 별을, 흐린 날엔 나무가지를 살펴 방위를 어림짐작하면서 무턱대고 서북방향으로 들어오고있는터이다.

길량식도 없었다. 게다가 모두 지칠대로 지쳤다. 다문 몇시간이라도 하늘을 가리운 집이라는데 들어앉아 어린것들을 따뜻한 온돌우에 눕히고싶었다.

여하튼 이 집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어제 있은 그 먼 총소리의 사연까지도 혹 알게 될지 모르는것이다.

그들은 눈속에 엎드려 근기있게 기다리며 감시하였다. 위험을 무릎쓰고 귀틀집에 더 바싹 접근해볼것인가 어쩔가 망설이고있을 때 문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붕우로 물씬 삼단같은 김이 솟구쳐올라왔다.

집모퉁이에서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커다란 함지가, 다음에는 그것을 든 늙은이가 나타났다. 여물이 나오기를 퍼그나 기다렸던듯 성급히 마주 가려던 말이 고삐에 걸려 골을 내저으며 제자리걸음으로 서성댔다.

늙은이가 여물함지를 내려놓기도전에 말은 주둥이를 들이밀었다가 흠칫하였다. 뜨거웠던 모양이다. 함지를 내려놔준 늙은이도 다시금 주둥이를 들이미는 말덜미를 툭툭 쳐주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늙은이가 집안으로 들어간 다음 리경준은 장기령이에게 총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들 있소. 내가 가서 늙은일 만나보겠소.》

《아니, 제가 가보겠습니다.》

장기령은 리경준이 내민 총을 밀막으며 제먼저 일어날 차비를 했다.

《좀더 살펴보는게 낫지 않아요? 그러다 혹시···》

최선금은 걱정스러워 남편을 돌아보았다.

《적이 있을것 같지는 않소. 적이 타고온 말이라면 저 로인이 덜미를 저렇게 살틀하게 쓸어줄턱이 있소?》

《그 사람이 늙은이로 가장한 밀정일수도 있지 않을가요?》

《재기만 하다간 종일 여기서 감시하다가 말겠습니다. 까짓것 밀정이면 제끼지요.》

장기령은 배낭을 벗어놓고 일어났다.

그는 리경준이 잡을새 없이 눈구뎅이에서 성큼 나갔다.

《조심하라구, 덤비지 말구···》

그의 등뒤에 대고 낮은 소리로 타이른 리경준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몇알밖에 없는 탄알을 재웠다.

그가 귀틀집모퉁이로 사라진 시각부터 담배 한대 피우나마나한 짧은 동안을 리경준은 매우 초조하고 불안한 속에서 긴장하게 보냈다.

장기령은 불시에 집모퉁이로부터 달려나왔다. 그는 마구 헤덤비면서 그들이 숨어있는쪽을 향해 뛰여올라오면서 소리쳤다.

《빨리! 빨리!》

허둥지둥 달려오던 장기령은 중간쯤 와서 맥빠진듯 멈춰섰다.

리경준은 어안이벙벙해서 총을 내리며 얼굴을 들었다.

《어떻게 된거요?》

리경준은 다급한 가운데서도 침착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령부의 행처를 알게 됐단말입니다!》

《아니, 뭐라구?!》

리경준은 허겁지겁 장기령이한테로 달려내려갔다.

《어데 있단말이요, 사령부가?》

리경준은 떨리는 손으로 장기령의 팔소매를 틀어잡았다.

《그걸 글쎄 어서 알아보잔말입니다. 어제 길안내까지 했다는데.》

《누구말이요?》

《저 집 늙은이말입니다.》

장기령은 리경준을 마구 끌고 걸음을 다우쳐가며 대꾸했다.

마음이 급해진 그들일행이 아이들과 배낭을 막 걷어안고 내려갔을 때 귀틀집 로인이 덧저고리단추를 채우며 마주나왔다.

《아니, 이 어린것들까지 데리구 얼마나 고생을 했겠나? 이거 인사는 무슨 인사를··· 어서 들어가세.》

문 열고 들어설 때 찬기운에 구름처럼 문가에 서린 김이 뽀얗게 떠서 잠시 그들은 옮겨짚을데를 몰랐다. 그속에서도 주인늙은이는 손잡아 이끌기도 하고 등을 떠밀어주기도 하면서 어서 몸부터 녹이라고 부산스레 친절을 베풀었다.

점점 설펴지는 김속에서 아궁이 터지게 통나무를 물고 질질 거품을 내뿜고있는 부엌이며, 뜨물때가 더덕더덕 덕지앉은 가마며, 조짚으로 자리를 엮어 깔아놓은 좁은 구들이며, 낫가락도 꽂혀있고 헌 옷가지도 걸려있고 무슨 창들과 옥노도 걸려있는 귀틀벽이며 그을음에 새까매진 거미줄들이 흐느적이는 잣나무가지를 마구 올려덮은 천정이며가 서서히 드러났다. 산전막인지 포수막인지는 여전히 알수 없었고 늙은이가 여기서 혼자 지내고있는지, 안늙은이도 있는지 그런것도 알수 없었다.

리경준은 무엇을 좀 대접할셈으로 가마쪽으로 몸을 움쭉하는 주인늙은이의 손을 잡아앉히며 물었다.

《로인님, 배고프지 않습니다. 먼저 사령부소식부터 좀 알려주십시오.》

《잠간만··· 우선 더운 물이라도 마시구 듣게.》

《물은 우리절로 떠먹지요. 말씀해주십시오. 사령부가 어디 있습니까? 어느쪽으로 갔습니까? 장군님을 로인님이 직접 만나뵈였습니까?》

늙은이는 하는수없이 이끄는대로 화로앞에 주저앉으며 《허어ㅡ》 하고 웃었다. 늙은이는 은발의 성근 수염을 버릇처럼 한번 내리쓸었다.

《성급하기두, 그렇게 단꺼번에 여러가지를 물어보면 내가 어느것부터 대답해야 좋겠나?》

《그저 좋을대루··· 어서 말씀하십쇼.》

《음, 그래.》

늙은이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천천히 조끼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러다가 투박한 오지화로옆에서 담배쌈지를 찾아내가지고 장죽에 담배부스레기를 눌러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장군님께서 어디 계시나?》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를 신기한듯이 쳐다보며 장군님 이야기가 이제나저제나 나오는가 하고 기다리던 명숙의 소리였다.

《오냐, 너도 퍽 궁금했구나.》

로인은 명숙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어깨를 껴안아주며 마치 그에게만 알려주듯이 말했다.

《과히 멀리 계시지 않다. 예서 백리밖쯤 가셨을게다. 어제낮에 유격대와 헤여져서 내가 한 40리쯤 돌아왔으니 나보다 20리쯤 더 나갔다쳐두 모두해서 백리안팎일게다.》

모두 놀랐다. 도무지 백리, 잘만 가면 이틀안에 가닿을수 있는 길이다.

《어느쪽으로 갔는가요?》

《내가 타고온 말발굽자리를 따라가면 유격대가 나간 길자리가 그대로 나질걸세. 유격대도 모두 말을 타구 갔네.》

《아, 그래요?》

사령부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였다는 이 사실앞에서 그들은 사령부를 만난것처럼 기뻤다.

사령관동지께서 이 초라한 귀틀막에 부대를 친솔하시고 들리신 때로부터 로인이 길을 안내해드리고 돌아설 때까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면서 그들은 어제 점심녘에 들은 한방의 먼 총소리가 바로 잃어버린 말을 찾기 위한 총소리였다는것을 알았다. 약간만 길이 어긋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벌써 어제 사령부와 만나게 되였을것이다.

《그럼 저 로인님, 사령부가 어디로 가는지 그건 모르시나요?》

장기령은 은근한 기대속에서 비쳐보았다.

《알고있네!》

뜻밖에도 늙은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들처럼 사령부를 찾는 유격대원들이 이 귀틀막에 들리게 되면 무송쪽으로 찾아나오도록 일러달라시던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뿐만아니라 머지 않아 군사를 크게 꾸려가지고 조선으로 왜놈을 쳐부시러 나가실 작정이시더라는것과 온 조선 2천만동포를 한덩어리로 묶어세우실 넓고 깊은 생각을 지니고계시더라는 사실도 전해주었다.

이야기마다 가슴들먹이게 하고 새힘이 솟게 하는것들이였다.

늙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단 한시각이라도 지체하고싶지 않았다.

그날 오후 그들은 외로운 귀틀집늙은이의 권고를 사양하고, 편안한 하루저녁의 휴식도 마다하고 그리운 사령부의 자취를 따라 다시금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사령부의 행군방향대로 서남방향으로 향해나가는 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