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제 1 장

3

 

밤새 모진 눈보라에 몸부림치던 수림은 아침녘에야 지친듯 잠잠해졌다.

다시 고요해진 망망한 수림의 바다속에서 한점의 불꽃이 가물가물 타고있었다. 그 외로운 불무지둘레에는 네사람이 앉아있었다. 서로 다른 처지에서 저마끔 곡절 많은 생활경로를 거쳐왔지만 그리운 김일성장군님의 품을 찾아 떠난 이 길우에서 마음과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장철구는 바위돌곁에 앉아서 묵묵히 차돌로 잣을 까서는 물이 설설 끓는 두개의 군용밥통속에 집어넣군 하였다. 그의 주름잡힌 이마와 귀밑에는 군모밑으로 삐여져나온 희슥희슥한 머리칼이 드리워져있었다.

유격대원들은 그를 보통 《철구어머니》라고 불렀다. 누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나이 많은 그를 존대해서 그렇게 불렀다기보다는 동지들에 대한 그의 극진한 사랑에 감동되여 그렇게 부른것이였다.

장철구곁에는 왕청유격근거지에서 바느질을 잘하기로 소문난 최선금이 마른 삭정이를 깔고앉아서 바느질을 하고있었다. 그는 배가 불룩한 배낭우에 가위며 천쪼박들을 올려놓고 아이들의 통버선을 깁고있었다. 재봉대일에서 손끝 한번 다친적 없는 그는 이 밤에는 그답지 않게 바늘끝으로 손끝을 자주 찌르군 하였다. 손끝을 찌르군 할 때마다 누가 보지 않았는가 놀라며 갸름한 얼굴에 차분히 내려진 눈시울을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서둘러 일감을 잡았다.

잣나무가지를 펴고 그우에 마른풀을 깔아 만든 자리에서는 최선금의 어린 아들딸이 어른들의 커다란 솜저고리 하나를 덮고 시름없이 자고있었다.

고집스레 도드라져나온 이마우에 어른처럼 손을 얹고 무엇인가 못마땅한듯 조그마한 입술을 삐죽거리는 사내애는 올해 여덟살인 명일이였고 숨박곡질을 할 때처럼 눈을 꼭 감고 모은 두손에 차거운 볼을 의지하고 자는 처녀애는 올해 여섯살나는 명숙이였다.

최선금의 맞은편에는 어깨가 쩍 벌어지고 몸집이 우람찬 장기령이 앉아서 자그마한 도끼로 나무강아지를 깎고있었다. 명숙에게 줄것이였다.

그옆에서는 턱아래 목에까지 흘러간 거밋거밋한 구레나룻자리때문에 나이 지숙해보이는 최선금의 남편 리경준이가 일행의 유일한 무기인 얼어붙은 장총을 우등불에 녹이고있었다. 이윽하여 장총의 격발기실부분에 맺힌 이슬방울을 헝겊으로 조심스레 훔쳐낸 그는 무릎우의 유지를 천천히 헤쳤다. 유지안에는 당콩알만 한 노루기름덩이가 붙어있었다.

리경준은 노루기름을 얼마만큼 쓸것인가 가늠하듯 그것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더니 헝겊에 닿을락말락하게 도려내가지고 격발기앞턱과 격발기실에만 살짝 기름칠을 하였다. 침착하고 리지적인 사람인 리경준은 일찌기 지하사업도 하였으며 유격근거지에 있을 때에는 인민혁명정부의 토지부에서 일한 남다른 경력을 가지고있었다.

일행의 지친 얼굴과 판이 난 신발과 해진 옷으로 그들이 어려운 행로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는것을 한눈에 알수 있었다.

이들은 《민생단》혐의를 받은 유격대원들이였다.

간악한 일제는 혁명대렬을 내부로부터 와해하려고 《민생단》이라는 반혁명적간첩단체를 조작하고 거기에 끌어들인 주구들을 유격근거지에 잠입시켰다. 일제의 음흉한 책동은 그 초기에 벌써 여지없이 분쇄되였다. 그러나 배타적인 좌경분자들과 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반《민생단》투쟁은 극좌적으로 진행되였다.

이러한 엄중한 사태를 통찰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1935년 봄에 다홍왜회의와 요영구에서 련이어 회의를 소집하고 배타적인 좌경분자들과 그에 아부굴종한 종파분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시였다. 그리하여 반《민생단》투쟁은 바른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북만원정을 떠나신후 배타적인 좌경분자들과 종파분자들이 또 머리를 쳐들었다.

그자들은 터무니없이 날조된 《자료》를 꾸며내여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으며 자기들의 종파적행위에 추종하지 않는 견실한 혁명가들에게 함부로 《민생단》감투를 씌웠다.

유명한 기관총수인 장기령도 《민생단》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내쫓겼다.

산속에서 헤매던 어느날 장기령은 우연히도 리경준부부를 만났다. 말은 없었으나 그들은 침통한 얼굴빛을 보고 서로의 심중을 헤아리였으며 마음의 고통을 나누었다. 명일과 명숙은 아저씨가 왔다고 장기령의 군복자락에 매달리면서 무척 반가와하였다.

리경준은 겨우 용단을 내여 장기령에게 사령관동지께서 남호두에 계신다는 소식을 알려주면서 면도를 하지 못한지가 오랜 거뭇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종파분자들은 리경준과 최선금이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반《민생단》투쟁방침을 받들고 적극 투쟁했을뿐아니라 그들의 타락한 생활을 폭로비판한데 대하여 은근히 앙심을 품고있다가 장군님께서 북만원정에 오르신 다음 그전에 혐의를 받은적이 있는 《민생단》원이 리경준에게 보낸 의심스러운 편지가 최근에 발견되여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왔다고 하면서 그들을 모해하였다. 그때 리경준과 최선금은 그것이 놈들이 만들어낸 가짜편지라는것을 폭로하면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다. 그들이 유격근거지를 떠날 때 종파분자들은 적통치구역으로 갈것을 검질기게 설교하였다. 그러나 살아도 죽어도 오직 장군님께로만 향하고 그이만을 모시고 따르려는 그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당신들은 우리가 어떤 길로 가든지 아무 상관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사령관동지를 찾아가겠다.》

경준은 단호하게 언명하였다.

그것은 지난날의 체험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굳어진 철석같은 의지였으며 신념이였다.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의 압제와 착취밑에서 마소처럼 부림받고 개돼지같은 모멸을 당하다가 장군님께서 펼치신 새세상ㅡ 유격근거지에 찾아들어와 그이의 품속에 안긴 때부터 비로소 참다운 인간적존엄과 혁명가의 당당한 자부심뿐아니라 그이의 크나큰 신임까지 받아안게 되였던 리경준이였고 최선금이였다. 그들은 한번 사람답게 사는것이 어떤것인지를 안 이상 다시는 전처럼 살수 없었으며 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어떠한 삶도 무의미하다는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통절히 느끼고있었다.

그들은 또한 오로지 장군님께서만이 혁명앞에 끝까지 충실하려고 애써왔던 자기들의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알아주실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장 그 순간에 목숨이 지는 한이 있더라도 장군님으로부터 자기들이 혁명을 배신하지 않았다는것을 인정받게 된다면 원이 없을것 같았다. 혁명의 배신자로 락인을 받은 소식이 그대로 장군님께 알려지게 된다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것 같았다.

음험한 구름도, 세찬 비바람도 태양으로만 향하는 해바라기의 지향을 막을수 없듯이 종파사대주의자들도 장군님을 찾아가려는 리경준부부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꺾을수 없었다.

그자들은 그들부부가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엄동설한에 북만으로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설사 떠난다 하여도 북만의 심한 눈보라에 묻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이라고 타산하고 그들이 가는 길을 막지 않았다.

유격근거지를 떠날 때 앞으로 있게 될 어려운 행군을 예견하고 또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리경준은 거듭 생각하던끝에 명일과 명숙을 적통치구역의 믿을만 한 사람에게 맡기자고 하였다.

최선금은 고집스레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들을 장군님 곁으로 꼭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에게 섭섭한 눈길을 보냈다.

장기령이 리경준부부를 만난 그 이튿날은 때없이 추운 날씨였고 거기에 눈보라까지 또 심하였다. 추위와 눈보라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명숙을 등에 업고 도끼를 꽁무니에 차고 앞에서 눈을 가르며 걷고있던 장기령은 뜻밖에도 잣나무숲속의 커다란 바위를 의지하여 우등불을 피워놓고 외로이 앉아있는 장철구를 발견하였다.

장철구는 사람이 곁에 와있는것도 모르고 군모를 깁고있었다. 적들이 《토벌》올 때마다 끓는 가마를 뽑아 이고 다니노라고 머리칼이 타고 반은 빠져서 성겨진 머리, 유격대원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있었다.

《철구어머니ㅡ》

장기령이 목갈린 소리로 불렀을 때 장철구는 와뜰 놀라 무릎에서 군모를 떨어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름잡힌 눈가에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맞이한 철구는 장기령이 어떻게 산중에 홀로 있는가고 묻자 한줄기 가느다란 한숨으로 대답하였다.

《모두 어데루 이렇게···?》

철구는 장기령의 등에서 명숙이를 받아안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장군님을 찾아서 남호두로 갑니다···》

장철구의 가느다란 주름이 간 볼편이 씰룩거리더니 눈에 눈물이 그득 고이였다.

철구도 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민생단》혐의를 받았다. 종파분자들은 철구가 어느때인가 한번 밥을 태운것을 트집잡아 《민생단》으로 몰았다.

어느날, 철구는 적《토벌대》가 근거지에 밀려들 때 한창 끓는 가마를 이고 뒤산으로 올라가서 밥을 짓게 되였다. 그날따라 눈보라가 얼마나 세찼던지 눈을 뜰수 없었다. 재차 가마를 걸고 불을 피울 때 적들이 뒤산으로 밀려들었다. 그래서 또다시 물이 설설 끓는 가마를 이고 뛰였다. 아침식사도 못하고 《토벌대》놈들과 싸우는 유격대원들을 생각하며 철구는 밥을 끓이려고 몹시 애를 썼으나 결국 밑쌀은 타고 웃쌀은 설익게 되였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였으나 배타적인 좌경분자들은 이것을 《민생단》의 근거로 악용하였다.

장철구는 억울하고 통분하여 가슴을 쥐여뜯었다. 혁명의 길에 남편을 바치고 세 아이를 원쑤놈들에게 빼앗긴 철구였다···

이렇게 되여 네명의 유격대원들은 우연히 모이게 되였고 서로 의지하고 부축하는 하나의 자그마한 집단이 되였다.

기관총수 장기령은 일행중에서 제일 젊은 청년이였다. 그는 명일이 아니면 명숙을 업고 늘 앞장에 서서 허리를 치는 눈길을 헤쳐나갔으며 쉴참이 되면 선참으로 우등불을 피울 차비를 하느라고 서둘렀다.

우등불이 타오르고 얼었던 몸이 어지간히 녹으면 장기령은 의례히 자리에서 일어나 눈속을 헤매며 부지런히 잣을 따들이였다. 리경준이나 철구는 잣따러 나갔다가 때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장기령은 한번도 허탕을 치지 않았다.

워낙 장기령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우스개소리를 잘하는 쾌활한 기관총수로 알려져있었다.

그는 도대체 이 세상에 슬픔이라든가 고통따위가 있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늘 벌쭉벌쭉 웃으며 다녔었다. 정중해야 할 자리에서도 장난기어린 우습강스러운 눈짓을 해서는 참을성이 적은 녀대원들이 그만 웃음을 터뜨려 꾸중을 듣지 않을수 없게 만들기도 했으며 허튼소리도 곧잘 하군 했었다. 그의 허튼소리에 몇번이나 속히우고 망신까지 당할번 했던 어느 한 녀대원이 《엉터리》라고 부른것이 그의 성과 어근합성을 일으켜 그는 《장터리》로 불리우게쯤까지 되였었다. 그래도 그는 그 별명으로 불리울 때면 무슨 구두감사라도 받은것처럼 일부러스럽게 더 벌쭉거렸다.

《아이 참, 저 동문 좀 모자라지 않아?》

언젠가 작식대원들옆을 지나던결에 그런 말을 들은 장기령은 금시 입이 함지박만해지며 대꾸했다.

《역시 작식대동무들이 날 알아주누만. 내 늘 모자랄사 해서 은근히 불만이 아니였겠소?》

《뭐가 불만족이예요?》

《식사량이 모자랄사 하단말요.》

그렇게 쾌활하던 장기령은 《민생단》혐의를 받은 이후부터는 하루종일 가도 말없는 청년이 되였다. 입을 꾹 다물면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두마디의 요긴한 말밖에 하지 않았다.

철구는 스스로 일행의 때식을 맡아하였다. 그의 배낭뒤에는 군용밥통 두개가 늘 매달려있었는데 때가 되면 그 밥통은 언제나 어김없이 우등불곁에서 끓고있었다.

오늘저녁에는 아무것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장철구는 군용밥통에 무엇인가 꼭 끓이군 하였다. 겨우내 말라버린 머루잎을 뜯어 소금물에 끓이기도 하고 더운물에 잣나무잎을 따넣어 차물을 만들기도 하였다. 동지들이 식량걱정을 하는 눈치가 보이면 《걱정 마세요. 쌀이 왜 없겠어요.》 하고 배가 불룩한 자기 배낭을 내보이군 하였다. 그러나 동지들은 그 배낭에 한되박 되나마나 한 비상미밖에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행군할 때마다 장철구는 줄곧 잣송이나 마른 머루잎 같은것을 찾았다.

《눈이 이렇게 깊지 않으면 마른 나물이라도 찾을수 있겠는걸.》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말을 되풀이하였다. 자신이 허기질 때에는 남몰래 눈덩이를 조금씩 입에 넣군 하였는데 눈치빠른 최선금이조차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면 장철구는 의례히 두개의 군용밥통을 알른알른하게 닦아서 배낭뒤에 매달았다. 그는 때로 명숙을 업고 행군하기도 하였다. 명숙은 장철구를 큰어머니라고 불렀다. 철구는 하루종일 서글픈 얼굴을 하고있다가도 일행에게 자기가 마련한 식사를 대접할 때에는 유격근거지에서 작식대원으로 있을 때처럼 환한 웃음을 띠우군 하였다. 물론 일행은 그 웃음이 동지들을 위하여 우정 꾸미는 웃음이란것을 알았으나 그래도 그 웃음을 쳐다보면 한순간이나마 마음이 개운해져서 은근히 그것을 기다리게 되는것이였다.

최선금은 말이 적은 녀성이였다. 두 아이들이 일행에게 큰 부담으로 되고있는것을 날이 갈수록 더욱 가슴아프게 느끼며 늘 미안해하는 눈길로 장기령과 장철구를 바라보았다.

장철구는 말할것도 없고 장기령이조차 최선금의 그 심중을 모를리 없었다.

《선금동무, 명숙이와 명일이만 없으면 우리는 아마 더는 지탱하지 못할거야. 그래두 그것들이 있으니 대렬에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지 않우? 나는 주저앉았다가두 어린것들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우리 죽지 말고 꼭 장군님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차고 일어나군 하지. 그리고보면 어린것들이 얼마나 장해. 우리한테 힘을 주고 기쁨도 주구···》

이것은 언제인가 철구가 선금에게 한 말이였다.

한번은 장기령이도 리경준에게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명숙이와 명일이만 없다면 저는 갑갑해서 죽든가 무슨 일이 났을겁니다. 내 어깨에 기관총대신 명숙이와 명일이가 올라앉은셈이지요.》

잠결에 그 말을 들은 선금은 그것이 진정이라는것을 믿어의심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깨끗한 마음을 가진 그들을 위해서 무슨 일이건 찾군 하였다.

최선금의 엄청나게 큰 배낭안에는 재봉대에서 쓰던 여러가지 천쪼박이며 가위, 실토리, 재봉기바늘, 북 따위의 바느질도구와 감들이 있었다.

장기령은 그런것들을 보면서 최선금이 재봉대를 등에 지고 다닌다고 하였다.

최선금은 일행의 군복을 스스로 맡아서 기웠다. 하루의 고달픈 행군이 끝나면 그는 우선 일행의 솜외투며 군복이며 배낭이며 장갑을 버릇처럼 살펴보았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로 그것을 알뜰하게 손질해놓군 하였다. 그덕에 험한 숲속을 헤치며 행군하는 그들이지만 옷은 언제나 단정하였다.

일행의 뒤에는 그들을 보위하기에 언제나 준비된 리경준이 장총을 메고 따랐다. 그는 일행중에서 그중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동지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그는 일행이 《토벌대》놈들을 우회하여 가게 될 때마다 탄알이 몇알밖에 없는 장총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쉬군 하였다. 숙영할 때마다 보초는 도맡다싶이했다. 그는 쉬는 시간보다 보초서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명일은 이따금씩 춥다고 몸을 옹크리군 하였지만 배고프다는 소리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 맥없이 우등불곁에 앉았다가도 장기령이나 장철구가 잣을 따러 갈 때면 따라일어서는것이 어른스러웠다. 아침이면 세수하기 싫다고 도리질을 하는 명숙이한테 몰래 호주머니에 간수해두었던 잣알을 손에 쥐여주며 제법 솜씨있게 달래군 하였다.

명숙은 어른들이 자주 입에 올리군 하는 남호두라는 이름에도 익숙해져서 남호두라는데가 어디냐고, 인제 얼마나 더 가면 되느냐고 따져묻군 하였다.

명숙은 장철구의 등에 업혀가면서 은근히 묻군 하였다.

《남호두에 가면 장군님께서 계시나?》

그러면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던 장철구는 입가에 미소를 담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 장군님께서 계신단다. 명숙이랑 오는가 하구 기다리시지···》

남호두, 그곳은 천리수해를 헤쳐오고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의 포구였다. 그리로 가면 반드시 그리운 마음의 등대를 보게 되리라는 크나큰 희망과 기대로 하여 그들은 모진 고생을 이겨오고있었다.

수림속에 남아있던 새벽어스름은 말끔히 가셔졌다. 해가 떠올랐다. 마구 뒤엉킨듯 한 나무잎새들속에서 깨여진 유리쪼각마냥 산산쪼각난 눈부신 빛발이 펼쳐지며 밤서리에 뒤덮인 사위를 이를데 없이 밝고 아름답게 장식해주었다.

기름칠한 총을 배낭에 기대놓고 일어난 리경준은 우등불곁을 떠나 숲속으로 걸어나갔다. 어제밤의 모진 바람에 다져진 눈이 발밑에서 빠득거렸다.

온통 서리를 들쓴 나무들은 하얀 털실같은 송라들까지 줄줄 드리운것이 마치나 새옷단장을 한데다가 눈구슬꿰미로 온몸과 팔에 그 무슨 명절치장이라도 한듯싶었다.

상쾌하고 유난히도 아름다운 아침이다.

리경준은 눈을 한웅큼 쥐고 무기소제에 어지러워진 손을 비비였다.

서너차례 손을 씻고난 경준은 다시 눈으로 얼굴을 문대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청신하고 상쾌한 대기를 가르며 울려오는 까치의 울음소리를 들은것이다.

마치 갑자기 머리를 쳐들면 우짖던 까치가 달아나기라도 할것처럼 그는 눈덩이가 묻어있는 얼굴을 그냥 그대로 조심스럽게 들고 새를 찾았다. 어디서 우는지 까치는 보이지 않고 그 무엇인가 즐거운것을 약속해주는듯 한 까치의 지저귐만 들렸다.

깍깍ㅡ 까각깍깍ㅡ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까치소리다. 이 천고의 수림속에 까치라니? 근처에 인가가 있을듯 하지 않은데 어디서 날아온 까치일가?

내심 무척 바라왔던때문인지 난데없는 까치소리를 듣자 리경준은 그 무슨 몹시 기쁜 일이 생기려나싶으면서 자못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전나무잎새짬으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은 그지없이 맑다.

저절로 갈마드는 이런 생각에 잠기고보니 문득 어제 점심때쯤해서 들은 그 먼 총소리에 대한 의혹이 되살아났다.

《경준동지, 어서 오십시오. 식사가 다 됐답니다.》

장기령이 소리쳐불렀다.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까치는 더는 울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그 반가운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을가 하여 경준은 한참이나 기다리다가 돌아섰다.

벙글거리며 성큼성큼 불무지곁으로 다가오는 리경준을 보고 장기령은 의아해하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까치가 울었소. 못들었소?》

《여기에 무슨 까치가 있겠습니까?》

《글쎄 그건 까치더러 물어봐야지 나보구 물으면 어떻거우?》

모두 웃었다.

경준은 불무지곁에 있는 진대나무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런데말이요. 어제 그 총소리 있지 않소? 아무래두 그게 우리 사람들의 총소리였던것 같소.》

장기령이뿐아니라 최선금이, 장철구도 놀란 눈을 경준이에게로 돌렸다.

《무슨 흔적이라두 차··· 찾았습니까?》

장기령은 흥분때문에 말을 떠듬거렸다.

《흔적은 보지 못했지만 까치가 울지를 않았소?》

유력한 증거를 기대했던 세사람은 경준의 그 말에 서글픈 웃음을 띠웠다. 경준이답지 않게 오늘아침엔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하여 사람들을 놀래운다는 무언의 나무람이였다. 그러면서도 비록 허황한 이야기일망정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는 말을 듣는것이 싫지 않은 그들이였다.

《저보구 늘 미신적이라더니 당신은 웬일이예요?》

최선금의 말에 리경준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미신이 아니요. 까치가 있다는건 어딘가 가까운데 인가가 있다는걸 말해주는게요. 인가를 맞다들면··· 알겠소?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줄 귀인이 있을지···》

《글쎄 당신 말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최선금은 한숨을 쉬였다. 장기령이, 장철구도 소리없는 한숨들을 쉬였다.

《자, 얼른 아침을 먹고 기운을 내여 또 찾아가봅시다. 신심을 가지구···》

경준은 장철구를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