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2

 

제 1 장

2

 

휴식터의 이곳저곳에서는 불이 피여오르고 불무지마다에 걸린 군용밥통들과 대야들에서는 눈덩이들이 녹아 물씬물씬 김을 올리고있었다.

말들은 거뿐해진 몸으로 여기저기 널려 눈우에서 한들거리는 마른 새초잎들을 뜯기 시작하였다.

작식분공을 받지 않은 대원들은 날창이며 단검이며 마초를 벨수 있는 도구들을 있는대로 하나씩 들고 사처에 흩어져서 말을 먹이는 한편 새초들을 베였다.

주봉길은 자기의 흰 암말과 길잡이늙은이가 탔던 가라말을 끌고 될수록 다른 대원들이 보이지 않는데를 찾아갔다.

그는 좀 부루퉁했다. 경위대장 리북철이 사령관동지께서 타시는 말을 자기에게 넘겨주지 않고 경위대원들가운데서 제일 로대원이라고 이르는 기관총수한테 그 말을 맡겨버린때문이였다. 봉길은 경위대장이 자기는 어리기때문에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것처럼 생각하는것이 늘 못마땅하였다.

외진데를 찾아서 두필의 말을 끌고가던 봉길은 밋밋하게 비탈진 산언저리에 이르러 맞춤한 새초밭을 찾아냈다. 마른풀을 뜯어먹게 말들을 놓아준 봉길이는 호주머니에서 칼집이 달린 빼또칼을 꺼내들고 새초를 베기 시작하였다.

자기한테는 새초를 베라는 과업이 차례지지 않았지만 길잡이늙은이가 타는 말까지 합쳐 두필의 말먹이새초를 스스로 마련함으로써 자기가 결코 《어린애》가 아니라는것을, 자기를 늘 어린애취급하듯 하는 경위대장을 비롯한 유격대원들에게 그들 못지 않는 당당한 《어른》이라는것을 보여주리라는 배심이다.

빼또칼로 한대한대 베자니 한단을 만들기에도 꽤 품이 들었다. 로대원들이 지니고있는 단검만큼 큰칼이면 한결 쉬울걸···

봉길은 자기가 풋내기대원임을 드러내놓는것만 같은, 그래서 자기의 위신을 저락시킨다고 생각되는 그 촌에서 쓰던 빼또칼을 단검과 바꾸기를 은근히 바라고있는터이다. 자기를 잘 모르고있는 새로 입대한 대원들앞에서 혹은 인민들의 집에서 숙영하게 될 때 적에게서 로획했다는것이 명백히 알릴 단검을 척 꺼내들고 점잖고 의젓하게 칼질을 하게 된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를 애티있다고 얕보지 못할것이다.

(왜놈과 맞다들기만 해라.)

단검을 손에 넣을 기회가 언제나 돌아올가 하고 안달아하면서 겨우 새초 한단을 묶어놓고 다시 두번째단을 절반쯤 베였을 때 봉길은 문득 웅글고도 야무지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손가락으로 현악기통을 잽싸게 두드리는것 같은 묘한 가락이였다.

그것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쫏는 소리였다.

마른 삭정이가 부러지는 가벼운 소리도 멀리까지 들리는 겨울의 숲속이라 그 소리는 엄청난 메아리를 울리며 숲의 고요를 흔들었다. 더우기 오늘은 맵짜기는 하나 유난스레 잠풍하고 고요한 날이다.

(아, 고것 참!)

딱따구리가 내는 그 기막히게 묘한 소리에 현혹된 봉길은 새초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는 소리나는데를 찾아 이 나무, 저 나무 살펴보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밀림의 특유한 악기소리가 나는곳을 발견하였다. 푸른 잎 대신에 마른 송라만 가지끝에 드리우고있는 커다란 분비나무강대에서 그 소리가 울리고있는것이다.

이미 말라버린지 오랜 그 강대나무에도 무슨 먹을만한것이 깃들어있었던지 주먹만 한 딱따구리 한마리가 빤히 쳐다보이는 줄기에 붙어서 빳빳한 꽁지로 뒤를 받치고 길다란 부리로 나무줄기를 자못 맹렬하게 쪼아대고있었다. 쫏다간 민첩하게 사위를 둘러보기도 하였다.

다른 나무뒤에 숨어서 그놈이 하는 모양을 살피며 혼자서 듣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그 묘한 악기소리에 한참동안 귀를 기울이고있던 봉길은 그놈을 사로잡고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만약 저놈을 잡아가지고 가기만 하면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지리라. 언제나 자기를 숙볼사하는 경위대장 리북철이도 묘한 악기소리를 내는 새를 좀 보여달라고 할테지. 그리고 저 억세고 날랜 새를 사로잡은 솜씨에 은근히 탄복할테지···

봉길은 자기를 부러워하고 탄복도 할 뭇눈매들이 눈앞에 선했다.

그는 딱따구리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그놈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꿇어앉아 눈을 움켜쥐여 커다랗게 덩이를 빚었다.

돌팔매질엔 언제나 자신이 있는 봉길이다. 지난해 봄에도 그는 자기 집 뒤산과 앞내에서 돌팔매질로 장끼 한마리와 물오리 한마리를 잡은적이 있었다.

그 일을 유격대에서는 아무도 모르기때문에 자기가 로대원들 못지 않게 수류탄이나 작탄을 잘 던질수 있다는것을 인정하려고들 않는다.

봉길은 꽁꽁 다져빚은 눈덩이를 들고 일어났다. 그는 나무뒤에 숨어서 강대줄기를 쫏고있는 딱따구리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가 던지려는 순간 딱따구리는 무슨 불행이 닥쳐오는 기미를 채기나 한듯 머리를 들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봉길이를 보지 못했던지 안심하고 부리를 나무줄기에 대고 칼을 갈듯 슬슬 문대고나서 또다시 구멍속에 들이밀었다.

그때를 기다렸다가 주봉길은 겨냥했던 눈덩이를 던졌다. 눈덩이는 꽁지우의 등때기에 맞았다. 하지만 그 령리한 딱따구리란놈이 어느새 눈덩이가 날아오는것을 눈치채고 날려던 순간에 맞았기때문인지, 또는 약간 빗맞았는지 새는 금시 떨어져 눈속에 처박힐것 같더니 요행 자세를 수습하고 다시 날아올랐다.

딱따구리는 너무나 기겁했던 나머지 죽지로 잣나무가지를 들이받아 비틀거리며 사선으로 날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젖은 목화송이같은 눈뭉치들이 후두두 떨어지고 눈가루가 뽀얗게 흩날려내렸다.

그쪽으로 달려나가던 봉길은 눈앞을 가리는 눈가루때문에 잠시 새가 어느쪽으로 떨어졌는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그놈이 채 떨어지지 않고 그냥 비틀거리며 숲속으로 낮추 떠서 가까스로 나는것을 보았다.

조금만 따르면 떨어질것 같았다.

그는 새를 쫓아 산비탈을 달려올라갔다.

《무슨 일이요?》

마른 가둑나무숲뒤에서 누군가 불쑥 앞을 막아나섰다. 경위대장 리북철이였다.

《아, 중대장동지, 딱따구리를···》

봉길은 말끝을 마무리지 못하고 얼떨떨해져 경위대장을 쳐다보았다.

눈귀가 약간 들리고 코날이 서서 얼핏 보기에는 날카로운듯 한 인상을 주지만 녀성처럼 부드러운 입매와 늘 변함이 없는 담담한 눈빛으로 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경위대장 리북철이 조용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댔던것이다. 그는 주봉길이가 잠잠해지자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금방 이 근처에서 얼씬거리며 지난간게 딱따구리였댔소?》

《네, 딱따구리였는데 그놈이···》

《쉬, 조용히!》

봉길은 입을 다물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경위대장이 까닭없이 이렇게 외진 산비탈에 나타날리 없고 또 까닭없이 이렇게 조심을 요구할리 없다. 그리고 새가 공기를 헤가르며 지나가는 소리에도 놀랐다는것은 경위대장이 매우 긴장되여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리북철경위대장이 사령관동지를 호위하고있는중이란말인가? 아까 장군님께서 길잡이늙은이와 함께 오르신 산봉우리가 이 산봉우리였던가?

봉길은 나무그루들사이로 저 웃쪽 산마루에서 쌍안경으로 어디인가를 살펴보고계시는 장군님의 후리후리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옆에는 키가 작달막한 길잡이늙은이가 손으로 역시 그 어데인가를 가리키며 무슨 말씀을 여쭙고있었다.

《나는 또 무슨 급한 정황이 생겨서 보고하러 뛰여오나 했지.》

리북철의 말이였다.

《그놈이 등때기에 얻어맞구 다 떨어지게 됐는데···》

리북철은 눈을 흘겼다.

《어린애처럼 굴지 말구 빨리 내려가 말들을 먹이라구. 특히 저 로인님이 탔던 말을 잘 먹여야 하오.》

《왜 가라말만 특별히 잘 먹여야 합니까?》

봉길은 볼부은 소리로 되물었다. 경위대장이 가라말을 특별히 잘 먹이라고 한 리유를 알고싶어서라기보다는 역시 자기를 어린애취급하는것 같은 그의 태도에 은근히 반발심이 났던것이다.

《그것은 물을 필요없소.》

리북철은 잘라 말하였다.

약간 시무룩해져서 돌아서는 주봉길을 지켜보고있던 리북철은 웬일인지 조용히 그를 불러세웠다.

봉길은 다시 돌아서며 흘끔 리북철을 치떠보았다.

《이것 보오, 봉길동무!》

리북철은 타이르듯이 말하였다.

《지금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중대한 행군길을 헤쳐나가시는지 봉길이도 알고있겠지. 그런데 말을 배불리 먹여서 우리의 행군을 잘 보장할 생각은 안하구 딱따구리에 홀려다녀? 좀 채심해야지. 저먼저 불무지보초를 설 때 실수했던 일을 벌써 잊어버리면 되나?》

봉길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불무지보초때 졸았던 일과 결부시키는것이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하도 엄청난 후과를 가져왔던지라 할말이 없었던것이다.

봉길은 터벅터벅 내려와서 아까 새초를 베던 자리를 찾아냈다. 그러나 말들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딱따구리에 정신이 팔려다니는동안 저절로 풀을 뜯어먹으며 멀리 간것이 틀림없었다.

눈우에 찍힌 말발굽자리를 밟아가며 이리저리 헤매봤으나 헛물만 켰다.

봉길은 당황해나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녕안의 어느 목재소습격전투때에 로획한 말들이 아니라 북만에서 활동하고있는 부대에서 사용하던 군마였다.

그것은 사령관동지께서와 사령부호위성원들에게만 각별히 골라드린 많지 않은 군마들가운데의 두필이였다.

그 말들을 받으셨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봉길이더러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을 골라잡으라고 하시였다. 말을 타본적은 얼마 없었지만 그런 티를 보여드리고싶지 않았던 그는 담차고 날쌔게 생긴 말을 골라잡았다.

《그 말보다 이 말이 어떻소?》

장군님께서는 너그러운 웃음을 띠우시고 유순해보이는 흰 암말을 가리키시였다.

《건 싫습니다.》

《왜?》

《전 암말은 싫습니다.》

《허허, 이런 자존심 보지. 말 탈줄은 모르면서두 암말은 싫다? 암말을 타면 누가 업신여길가봐서? 나도 왕청근거지에서 이런 흰 암말을 타고다니구 오의성부대를 찾아 라자구에 갈 때두 백마를 탔댔는데 우리 봉길의 말을 듣구보니 잘못했던것 같구만···》

그 말씀을 듣고 봉길은 이번에는 기어이 백마를 타겠다고 조르다싶이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엊저녁에 만난 길잡이늙은이에게도 여러가지를 고려하시여 친히 순한 가라말을 골라주시였다.

그런 말들을 잃어버리다니?

봉길은 울상이 되였다.

사색이 되여 헤매다니는 애젊은 전령병을 도와 숱한 대원들이 애써 찾아봤으나 끝끝내 두필의 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대렬이 출발준비를 갖추기 시작했을 때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경계보초를 나갔던 대원들과 말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을 부르시여 그들에게 적정이 없었는가를 다시 확인하시였다.

《토벌대》놈들이 싸다닌것 같은 흔적이나 기미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적정이 없었다면 행군서렬을 짓고 공포를 한방 놓으시오. 북만동무들에게서 길든 군마들이니 아주 멀리 가지 않았으면 총소리를 듣고 찾아올수 있습니다.》

만일의 경우 근방에 적이 있다면 말을 찾으려다가 바라지 않았던 전투가 벌어질수도 있었다. 봉길은 일시적인 유혹에 끌리는대로 행동한 그 후과가 얼마나 엄중해지고있는가를 느끼고 머리를 쳐들지 못하였다. 자기가 경솔했던 탓에 은밀성을 보장해야 할 부대의 행동질서에 혼란을 주고 중대한 행군길을 지체시키고 뭇사람들에게 걱정과 수고를 끼친것이다.

불과 며칠사이를 두고 또 이렇게 큰 실수를 저지른 봉길은 엄한 질책을 기다리며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말을 찾아다니느라고 봉길이는 점심도 못먹었지? 딱따구리도 못잡구 얼굴은 긁히구, 허허 손해가 막심하구만.》

봉길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점점 더 깊이 숙이고 신끝으로 애꿎은 눈만 다졌다.

《말은 우리가 찾아볼테니 어서 가서 점심을 먹소. 북철동무, 식사를 시키시오.》

장군님께서는 봉길의 잔등을 떠밀어주시였다.

봉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총소리가 울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연 그이께서 예견하셨던대로 말 두필이 련이어 달려왔다. 숲속으로부터 눈덩이를 발통으로 찍어뿌리며 달려오는 말들을 보자 봉길은 너무 기뻤던 나머지 눈물까지 솟았다.

출발에 앞서 장군님께서는 길잡이늙은이더러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르시였다. 늙은이는 해저물녘까지만이라도 더 길을 안내해드리겠다고 간청하였으나 장군님께서는 굳이 만류하시였다. 대원들중에 누구도 지나보지 못한 생소한 산길을 헤쳐나가야 하는만큼 다른 길잡이를 찾아내거나 만날 때까지 그를 앞세우면 한결 헐하게 행군해나갈수 있었지만 나이 많은 늙은이에게 지나치게 무리한 걸음을 시키지 않도록 하시려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늙은이와 헤여지시면서 집까지 타고 가서 화전농사에 쓰라고 늙은이가 여기까지 타고왔던 가라말을 주시였다.

그제야 봉길은 리북철이 그 가라말을 각별히 잘 먹이라고 일러준 까닭을 알았다. 말을 찾았으니 다행이지 만일 그 가라말을 잃었다면 길잡이늙은이에게 바로 그 가라말을 주시려고 작정하시고계셨던 장군님의 뜻을 어길번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생각하니 봉길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고요하던 수림에 바람이 설레이기 시작할 무렵, 대렬은 다시금 행군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장군님께서 친히 전방척후병들과 함께 앞장에 서시여 길을 인도하시였다.

새초단을 한단씩 말우에 더 얹은 기본대렬이 따라서고 기본대렬꽁무니에는 말먹이귀밀포대들을 등에 얹은 부림말들이 무거운 짐에 눌려 긴목을 겁석거리며 뒤따랐다. 대렬 마지막에는 후위척후대원들이 섰다.

늙은이는 눈보라가 일기 시작한 수림속으로 대렬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의 흰수염끝에는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구슬처럼 얼어붙었다.

남호두에서 예까지 2백리길을 함께 오다가 늙은이와 더불어 떨어지게 된 그 가라말도 작별의 서러움을 느끼는것인지 순하고 어진 눈을 슴벅이며 코를 벌름거렸다.

잠자던 숲은 다시 뒤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바람은 눈가죽을 핥으며 나무그루밑에서 수만갈래의 실오리같은 눈가루의 갈기를 일으키더니 삽시에 온 숲속을 뽀얀 눈가루로 뒤덮어버리였다.

광란하는 눈바람은 하늘과 땅의 넓은 공간을 돌아치면서 언제 고요가 있었더냐싶게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