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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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숲속의 태고연한 정적을 깨치며 마른나무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울리였다. 그 소리에 뒤따라 부르르한 갈기에 고드름들이 달리고 재빛털에도 성에가 끼여 그 본색갈을 쉬이 알아보기 힘든, 가슴이 암팡지게 벌어진 말이 귀를 쭝긋 세우고 눈을 디룩거리며 숲속의 공지로 불쑥 나왔다.

말잔등에는 흰 위장포를 둘러치고 손에 권총을 든 유격대지휘원이 앉았는데 나무가지를 피하느라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에도 경계심어린 그 눈초리만은 주의깊게 앞을 살피고있었다.

그의 귀덮개를 올린 털모자에도 성에가 하얗게 불렸다.

좁은 공지에 나서자 그는 묻는듯 한 시선으로 뒤따라오는 늙은이를 돌아보았다.

《그냥 곧추 나가게. 그저 나무그림자들이 뿌리를 둔쪽으루.》

성에탓에 회색빛으로 변한 가라말을 탄 길잡이늙은이는 비록 누덕누덕 깁기는 했으나 아래가생이나 목깃, 소매밑으로 드리운 푸시시한 털로 보아 무슨 짐승의 털을 안에 댄것 같은 커다란 덧저고리에 오소리털모자를 썼다.

그 뒤로 역시 말을 타고오는 두명의 유격대원은 줄곧 좌우 한켠씩만 맡아 살피군 했다.

이 척후병들에게서 얼마쯤 떨어져서 도끼와 톱 그리고 왜놈들에게서 빼앗은 군도를 휴대한 다섯명의 유격대원이 뒤따라왔다. 부대의 행군에 방해로 될만 한 나무와 관목들을 찍어버리며 통로를 개척하는 사람들이였다.

이들과 초간히 사이를 두고 사령부와 왕청5련대의 제4, 제5중대로 이루어진 기본행군대오가 따라오고 후위척후가 뒤를 살피고있다.

한낮때, 긴 기마대렬은 백두산쪽을 향하여 돈화의 수림속을 흘러가고있다.

지금도 떵떵 얼어붙어있는 경박호반의 마을 남호두에서 소자지하의 맑은 물줄기를 따라 수십리두메에 고독하게 묻혀있던 작은 귀틀막에서 얼마전에 중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 회의에서는 조선혁명을 전국적판도에서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하여 혁명의 사령부가 새롭게 자리잡아야 할곳이 확정되였으며 그에 따라 사령부는 지금 백두산기슭을 향하여 남하의 길에 오른것이다.

첫대면의 감격을 환송의 눈물로 바꾸던 북만의 마지막 마을도 멀리 뒤에 남았고 북만원정의 가지가지 전설들을 남긴 잊지 못할 고장인 관지땅도 이미 지나왔다.

여기는 벌써 돈화땅이다.

가도가도 끝없는 수림과 눈뿐, 바야흐로 봄은 다가오건만 산천은 아직 깊은 눈속에 묻혀있다.

계절을 따지면 이미 3월에 접어들었으니 봄이라고 불리우련만 다리가 성큼한 말들조차 발굽을 뽑기 힘겨워하는 이 장설과 갈기에 고드름이 달리게 하는 추위속에서 그 누가 봄을 감촉할수 있을것인가?

로흑산전투에서 로획한 중기와 박격포들까지 가지고 로야령을 넘어 북만원정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록음방초 우거지던 푸른 계절이였다. 제4련대와 제5련대 그리고 청년의용군에서 선발된 10여개 중대로 이루어진 원정부대는 온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경박호와 목단강을 넘나들며 넓디넓은 북만땅에서 멸적의 총성을 울렸고 인민들의 심장에 혁명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그런 뒤에 거의 열달이 지나, 바야흐로 새봄에 접어들어 되돌아나오는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령부와 함께 나오는 인원은 십여명의 사령부호위성원들과 원정부대의 5분의 하나도 채 못되는 제5왕청련대의 두개중대뿐이다.

일부 부대들은 사령부에 앞서 먼저 나갔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만에서의 유격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곳에 남았다.

앞으로 왕청부대성원들도 백두산기슭까지 내내 사령부와 동행하게 될는지 그것은 아직 알수 없다. 장군님께서 어떠한 명령을 주실지 모른다.

그리고 북만땅에서 나무발구밖에 끌어보지 못했던 말들도 역시 이 력사적인 진군에 끝까지 봉사하게 될는지 그것도 아직 알수 없는 일이다.

숲은 차츰 성글어졌다.

기마행군대렬은 새초밭에 들어섰다. 경박호에 흘러드는 목단강상류의 어느 한 지류가 흐름을 시작하는 어방이다. 물줄기는 눈밑에 묻혀버렸다.

흰 얼룩점이 이마에 박힌 늘씬한 밤빛말을 타시고 대렬한가운데서 행군하시던 장군님께서는 회중시계를 꺼내보시고 말고삐를 한쪽으로 슬쩍 잡아당기시였다.

머리를 주억거리며 무작정 앞으로만 나가려던 령리한 말은 곧 그 뜻을 알아차린듯 눈속깊이 빠진 성큼한 다리를 옆으로 옮겨 행군종대에서 비켜섰다. 갈기에 잘다란 고드름들이 춤추듯 흔들거렸다.

《봉길이, 꽤 견딜만 하오? 춥지?》

엉뎅이가 넙죽한 흰말을 타고 바로 뒤에 따라오던 오돌차게 생긴 애젊은 전령병 주봉길은 자그마한 눈을 빛내이며 태연하게 웃음지으려 했지만 볼이 꽛꽛하게 얼었던 탓에 웃음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다.

《북만의 추위보다는 한결 낫습니다. 말을 타니까 다리가 좀 시리지만 몸은 후끈후끈합니다.》

명민하게 빛나는 주봉길의 눈에서는 지친 기색을 엿볼수 없다.

《말타기가 조련치 않지?》

《일없습니다. 이젠 단련이 된것 같습니다.》

《벌써 단련이 되였다? 허허··· 웬만히 단련되자 해도 아직 지나온 길만큼이야 더 타야지. 미혼진에 가댈쯤 되면 말을 좀 탈줄 안다고 말할 정도가 될거요.》

장군님께서는 웃음절반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지시를 주시였다.

《봉길이, 앞으로 나가서 경위대장동무에게 전진을 멈추고 길잡이늙은이를 모시고 오라고 이르시오. 그리고 전방척후성원들과 4중대장동무에게 휴식명령을 전하시오. 그동안 점심식사도 하고 말먹이 새초도 준비하도록···》

봉길이를 전방척후들에게 보내신 장군님께서는 다른 전령병 한종삼을 찾으시여 역시 휴식명령을 주어 뒤쪽으로 보내시였다. 멈춰선 대렬을 따라 두 어린 전령병이 달리는 말발굽소리가 앞뒤로 멀어져갔다.

눈우에서 새초잎들이 한들거리는 약간 둔덕진데로 말을 몰아가신 장군님께서는 주변의 산세를 얼핏 살피시고 백포자락을 젖히시며 그 밑에 메고계시던 군용가방을 앞으로 당기시였다. 진한 밤색의 가죽가방은 얼어서 꾸둑꾸둑하였다.

그이께서는 가방속에서 꺼내신, 여러겹으로 접혀있는 지도를 말잔등우에 펼치시였다.

잠잠하던 말이 불현듯 성에가 하얗게 낀 풍만한 꼬리를 휘내저었다. 반뜩반뜩한 성에가루들이 푸시시 지도우에 흩날려내렸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말을 달래시고 지도우에 떨어진 성에가루를 조심스럽게 털어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도에서 지금 행군대오가 멈춰선 지점을 찾아보시였다. 잠시 지도를 굽어보시던 그이께서는 이번에는 쌍안경을 쳐드시여 그것으로 주위의 산지형을 거듭 살피시며 지도에 표시된 등고선의 형태와 대조하시였다.

이제 길잡이늙은이를 데려오면 그와 같이 올라가 전망을 굽어보실 봉우리까지 정하고 쌍안경을 내리우신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지도를 들여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앞으로 가야 할 백두산기슭에로의 로정을 지도우에서 더듬으시였다.

그이의 눈길은 수많은 물줄기들이 얼기설기 얽히며 모인 씨하와 그 류역의 넓은 소택지를 지나 점점 더 짙은 토색바탕에 아롱아롱한 등고선들이 빽빽이 들어찬 남부로야령산줄기를 거쳐 돈화와 안도의 현계지대에 붉은 색연필로 표시하고있는 동그라미에 가 멎으시였다. 미혼진밀영이였다.

미혼진, 그곳은 장군님께서 남호두를 떠나실 때부터 백두산기슭으로 향해나가시는 이 행군길에서 매우 중요한 첫 리정표를 세우시기로 작정하신 고장이였다.

장군님께서 내짚으신 이번 걸음은 남호두회의에서 토의결정하신대로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시기 위한 뜻깊은 걸음이시였다. 이 길은 열한해전, 조선이 독립되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품으시며 건느셨던 그 압록강연안으로 나가시는 길이였으며 또 바로 그 강을 넘으시여 조국땅에까지 나가시여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을 거세차게 지펴올리시려는 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길을 불과 얼마 안되는 사람들만 데리시고 떠나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압록강에까지 이르는 이 길우에서 장차 그 강을 넘어 조국땅에 진군해나갈 인민혁명군의 대군을 마련하실 웅대한 구상을 품고계시였다. 그 첫사업을 바로 미혼진에서 하시기로 계획하신 장군님께서는 그곳에 사람들을 부르시였다.

지난 10여년간 귀중히 키워오신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실 거창한 결심을 품으신 장군님께서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큰일을 받쳐주고 도와줄 사람들이 그리우시였다.

(강세호동무가 미혼진에 꼭 오게 됐으면 좋겠는데···)

지도에 표시된 미혼진에 눈길을 멈추신채 거기와야 할 사람들을 하나하나 머리속으로 더듬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혼자 말씀으로 외우시였다. 화룡산골의 한 외진 산전막에서 상처를 치료받고있다는 그가 이번에 꼭 와내겠는지 은근히 걱정되시였던것이다.

강세호는 장군님께서 오가자에서 지하혁명활동을 하실 때부터 친히 키우신 전사의 한 사람이였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고아가 되여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럽게 자라난 강세호는 당시 오가자근방의 한 농촌에서 머슴살이를 하였었다.

장군님께서는 오가자일대에 갓 조직하신 농우회와 청년회 사업을 지도하시려 그 마을에 나가셨다가 지주집 외양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감싸쥐고 달려나오는 머슴군을 만나시였다. 지주집 소여물을 썰다가 작두에 손을 벤것이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손수건을 찢으시여 그의 손을 싸매주시였다.

이리하여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게 된 때로부터 계급적으로 각성되기 시작한 강세호는 마침내 지주집을 뛰쳐나와 혁명투쟁에 투신하였다.

용하고 순박하기만 하던 강세호는 준엄하고 시련에 찬 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원칙적이고 과감하고 결단성있는 믿음직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성원으로 자라났다. 그러기에 장군님께서는 남호두회의를 준비하실 때에 벌써 그에게 보다 더 무거운 다른 사업을 맡기실 작정으로 중요한 정치공작임무를 수행하고있었던 그를 남호두로 부르시였다. 공작지에서 떠나 남호두로 오던 강세호는 도중에 적들과 조우하는바람에 부상당하여 오지 못하고 련락갔던 통신원만 돌아와서 그런 사연을 보고했다.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남호두를 떠나심에 앞서 다시금 강세호에게 통신원을 보내시면서 가서 보고 그의 상처가 아물었으면 미혼진에 오도록 하고 채 아물지 않았으면 서둘지 말고 나은 다음 미혼진에 와서 사령부의 행처를 알아가지고 찾아오도록 하라고 일러보내시였다.

(강세호의 상처가 꽤 아물었겠는지?)

어찌하면 이번에 미혼진에서 하게 될 중요한 토의에도 그가 빠지게 될수 있었다.

그가 무탈하기만 하다면 후에 만나도 별일은 없겠지만 장군님께서는 퍼그나 강세호가 보고싶으시였다.

그이께서 강세호의 소식 못지 않게 궁금하게 여기시는 사람은 근거지해산후의 뒤처리를 하느라 왕청에 남았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몹시 기다려지는 리경준이네 부부였다.

리경준은 인민혁명정부사업도 했고 지하공작사업경험도 가지고있는 유능한 유격대원이였다.

그의 안해 최선금은 소왕청유격근거지에서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바느질을 잘하기로 소문난 녀자였다. 소왕청에 계실 때 장군님께서 입으신 군복들은 거의다 최선금의 손으로 지어진것이였다.

그들부부를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던 장군님께서는 종종 그들의 집에도 찾아가시군 하시였으며 그들의 자녀들도 몹시 귀해하시였다.

다정하고 성실한 혁명가부부였다. 바로 그랬던만큼 장군님께서는 근거지해산과 관련한 뒤처리때문에 사람들을 남기실 때 그들부부를 떨구어두신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두 어린것이 달려있는 사정을 동시에 고려하신때문이기도 하시였다.

그들에 대하여 항상 깊은 관심을 지니고계시는 장군님께서는 남호두에서 떠나시기 직전에 리경준내외가 두 어린것을 데리고 장군님을 찾아 소왕청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으시였다. 어째서 부디 엄동에 어린것들까지 데리고 떠났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소식을 날라다 전해드린 사람도 딱히 알지 못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행군도상에 혹 민가에 들리시게 되신다든가 마을을 지나시게 될적마다 꼭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어떤 내외간을 보지 못했는가고 물으시군 하시였으며 통신원들에게도 그들의 소식을 탐문하도록 이르시군하시였다.

(지금 그들은 어디서 헤매고있는지? 아이들에게 먹일것을 제대로 먹이고 입힐것을 제대로 입히고 지내는지?)

이런 생각에 잠기시였던 장군님께서는 리북철경위대장과 전령병 주봉길이가 길잡이늙은이와 함께 곁에 오는 기척을 느끼시고 지도를 접으시였다. 그것을 군용가방에 넣으신 장군님께서는 말우에서 내리시였다.

《로인님, 수고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길잡이늙은이에게 인사말을 하시고 그가 말우에서 내리는것을 도와주시였다. 그러시고 벌써 저쯤에서 말을 내려 가까이 다가오며 보고할 차비를 하는 리북철경위대장에게로 돌아서시였다.

《무슨 정황이 없소?》

《특별한것이 없습니다.》

리북철의 대답이였다.

《남호두에서 통신원으로 떠나보낸 동무들중에 돌아온 동무도 없소?》

있었으면 물으시기전에 경위대장이 먼저 보고하리라는것을 아시면서도 기다려지시여 확인해보시는것이다.

《없습니다.》

리북철은 그런 대답을 올리기 미안해하는 기색이였다.

《경위대에서도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말먹이새초를 좀 장만하도록 하시오. 나는 로인님과 같이 저 봉우리에 올라가 전망을 살펴보고 내려오겠습니다.》

리북철에게 당부하신 장군님께서는 길잡이늙은이와 함께 서쪽켠 봉우리로 향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