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9


 
 

제 5 장

9

 

8월 중순.

림춘추는 또다시 150여명의 혁명가유자녀들을 찾아 제2차로 떠나보내였다. 그들을 조국으로 떠나보낸 그날 밤 림춘추는 장군님께서주신 제일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였다는 기쁨과 안도감으로 하여 동북땅에 와서 처음으로 만시름 잊고 발편잠을 잤다.

물론 혁명가유자녀들을 다 찾았다고는 아직 말할수 없었지만 그 어렵고 힘겨웠던 사업이 기본적으로 결속되였다고 그는 생각하였던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있는 유자녀들은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그들도 살아만 있다면 동북천리에 널리 퍼진 소문을 듣고 곧 찾아오리라는 확신이 생긴다. 이번에 유자녀들을 조국으로 보내면서 림춘추는 연변지구에서 생산한 고급모포 500매를 마련하여 장군님께 드리였다.

좋은 모포들을 보는 순간 간고했던 항일의 나날 자신께서 쓰셔야 할 모포마저 나어린 전령병들이나 앓는 대원들에게 주시고 모포 한장도 덮지 못하고 쉬시던 장군님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그런 결심을 하였던것이다. 그는 특별히 고른 몇장의 모포를 따로 포장하여 이것을 꼭 장군님의 댁에서 쓰시도록 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그 간절한 심정을 담은 편지를 장군님께 전해드리라고 함께 보냈는데 그는 편지마감에 이곳에서의 사업들이 기본적으로 결속된 조건에서 이제라도 조국에 나가 당면한 공화국창건사업에 참가하고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피력하였다.

그 시기 연변지구의 당, 정권기관의 사업은 중국공산당의 지지밑에 조선사람중심의 지도관리체계를 이룩하고 경제, 교육, 문화 등의 전반적분야에서 민족적권리와 리익이 실현되여가고있었다.

동북의 군사정치정세도 유리한 국면에 들어섰다. 중국인민해방군 동북야전군은 중앙의 령도밑에 현재 장춘, 심양, 금주의 3개 지구에 각각 고립, 압축되여있는 장개석국민당군대를 포위공격하고 가까운 시일안에 전 동북땅을 해방하기 위한 료심작전준비를 완료해가고있었다. 완전한 승리와 평화가 동북땅에 깃들 날은 바야흐로 다가오고있었다.

그러나 림춘추가 조국으로 나오게 해달라는 편지를 장군님께 보내게 된것은 단순히 이러한 성과와 형편때문만은 아니였다.

여기에는 김일성동지를 따라 총대와 붓대를 같이 들고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투사로서, 빨찌산력사가로서, 문인으로서의 그의 한없는 그리움과 간절한 소원이 담겨져있었다.

그는 동북에서의 복잡다단한 사업속에서도 시대와 력사앞에 자기 스스로 걸머진 사명감과 책임감을 어느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었다. 자기에게 차례지는 유일한 휴식시간인 밤시간마다 그는 조국에서 메고 온 자료배낭을 풀어놓고 전반적인 련관속에서 다시금 연구분석하군 하였으며 자기가 써야 할 력사문헌의 구성체계를 잡아나가군 하였다.

우리 인민들과 후대들이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조선이 어떻게 해방되였으며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도록 이끄신분이 누구이시고 장군님의 령도밑에 조선의 혁명가들이 벌린 항일전쟁이 얼마나 간고하고 복잡한 투쟁이였는가 하는것을 정확히 알고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려는 그의 사색과 노력은 정말 불면불휴의것이였다.

자료가 불충분하고 비정확하다고 생각되면 어떻게 시간을 내서라도 항일무장투쟁자료를 수집해나갔다. 그는 괴뢰《만주국》시대의 연길경찰서와 감옥, 룡정경찰서, 령사관 등 일제가 차지하고있던 기관들을 뒤져서 반증자료들을 찾아냈으며 한편으로는 항일혁명투쟁참가자들과 조국광복회를 비롯한 지하혁명조직에 망라되여 활동하던 사람들, 그밖에 항일혁명투쟁을 물심량면으로 성원한 군중을 상대로 하여 자료를 광범히 수집하였다. 그가 찾아낸 자료들가운데는 항일투사들이 쓴 일기, 쪽지편지로부터 시작하여 관동군정보부장이 가지고있던 기밀문건 등에 이르기까지 귀중한것들이 많았다. 일제시기의 어느 한 기관의 지하실에서는 놈들이 만든 《동만공산비적책》이 30여권이나 발견되였는데 거기에는 항일빨찌산들의 사진도 붙어있었다.

림춘추에게는 그 모든것이 무엇보다 더 귀중한것이였으며 다른 그 어떤 성과에 비길수 없는 가장 큰 성과였다. 이것은 그를 더없이 흥분시켰으며 그 흥분은 최근시기에 와서 매일 매 시각 붓을 들고싶은 충동으로 번져갔다. 구성은 머리속에서 다 무르익었으며 그는 이미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하여》라고 앞으로 집필할 저서의 제목을 큼직하게 써놓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래년부터는 책의 저술을 시작할 결심이였다. 그럴수록 그에게 있어서 더욱 강렬해지는것은 조국에 대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였다. 자기 글의 주인공이신 김일성동지의 모습과 숨결을 늘 곁에서 보고 느끼면서 붓을 들고싶었다. 그리고 위대한 항일혁명투쟁사에 이어 반드시 써야 할 새 조국건설사의 증견자가 되고싶었다. 이런 념원과 열망으로 하여 그는 김일성동지께 삼가 자기의 소환요청을 담은 편지를 보내였던것이다.

물론 그의 동북사업에서 아직 발목을 부여잡는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가슴에 맺히는것은 김정숙동지의 일가친척들을 찾지 못한것이였다. 림춘추로서는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나 좀처럼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많은 고장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행방을 찾을 길이 전혀 없었다.

이제 조국에 돌아가면 김정숙동지께 뭐라고 말씀을 드린단 말인가.

아니, 그분께서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을것이다. 오히려 누가 그런 일에 시간을 헛되이 랑비하랬느냐고 나무람하실것이다. 하지만 일찌기 부암동시절부터 김정숙동지와 또 그분의 일가친척들과도 인연이 깊었던 오랜 전우인 이 림춘추가 무슨 면목으로 그이를 대한단 말인가. 동지들의 자식들과 부모형제들을 찾아주시기 위하여 그토록 마음쓰시는 김정숙동지이시지만 그이라고 어찌 일가친척들을 찾고싶은 생각이 없으시겠는가. 애써 참으실것이다. 정말이지 김정숙동지께 혈육의 상봉을 마련해드릴 방도가 이제 더는 없단 말인가.

 

×

 

1948년 8월말 림춘추는 김일성동지로부터 기다리고기다리던 회답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그가 기대하던바와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저 그가 수많은 혁명가유자녀들을 찾아 조국으로 보내준데 대하여 치하하시고나서 고급모포들을 받고보니 모포한장으로 같이 덮고자면서 생사운명을 함께 하던 빨찌산시절이 생각났다고 편지에 쓰시였다. 그러시면서 그가 보낸 고급모포들을 모두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준데 대해서와 학원학생들이 간리림시교사로부터 만경대의 새 교사로 이사를 끝내고 새 학기부터 만경대에서 공부를 하게 된 소식을 알려주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조국에 나와서 사업하고싶다는 동무의 심정을 리해합니다. 사실 나도 동무를 인차 소환하자고 하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의도대로 원만히 사업할수 있는 사람은 그곳 실정을 잘 알고있는 춘추동무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여 유일한 합법적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됩니다. 동무는 동북지방의 전체 조선동포들이 새 조선의 당당한 해외공민이라는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힘을 합쳐 건국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해방된 지역에서의 새 생활 창조를 위한 중국인민들의 투쟁을 잘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제를 반대하는 공동투쟁의 불길속에서 맺어진 조중인민간의 전투적우의와 친선관계를 더욱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춘추동무, 동북에서 동무가 할일이 아직 많습니다. 혁명가유자녀들을 찾는 사업은 의연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혁명가유자녀들을 찾는 사업을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여야 합니다. 중국동북지방에는 아직도 남의 집에서 살거나 떠돌아다니는 유자녀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물론 사방에 흩어져있는 유자녀들을 빠짐없이 찾아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제 자식을 찾는 심정으로 애써 노력하면 그들을 다 찾을수 있을것입니다. 기일이 좀 걸리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혁명가유자녀들을 마지막 한사람까지 다 찾아서 조국으로 보내야 하겠습니다.

춘추동무, 오랜 기간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무에게 계속 남아있으라고 하는 나의 마음도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자기 친자식을 찾는 일도 다 뒤로 미루고 희생된 전우들의 자녀들부터 찾아나섰을뿐아니라 우리 동포들의 생활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투쟁하는 동무를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동무의 아들 영일이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아도 되겠습니다. 쏘련동무들로부터 까자흐스딴에서 영일이를 비롯한 혁명전우들의 12명 자식들을 맡아키우고있는 리용구, 고현숙부부의 행처를 찾아내였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쏘련동무들은 앞으로 국교관계가 수립되면 그들을 우리의 요구대로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춘추동무도 그래, 고현숙, 리용구동무들도 그래 우리 혁명의 미래를 위해 바치는 그 숭고하고도 깨끗한 량심과 동지적의리심은 조국과 인민이 영원히 기억하게 될것입니다.···》

림춘추는 건강에 각별히 류의하라는 편지의 마지막글줄을 채 읽을수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후두둑 쏟아져내렸다.

장군님께서 그동안 영일이문제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쓰시였으며 자기에게 아들을 찾아주시기 위해 얼마나 남모르는 로고를 바치셨겠는가가 가슴사무치도록 안겨왔던것이다. 비록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한마디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유자녀들을 찾기 위해 애써온 림춘추로서는 그런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것인가를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감사의 정에 뒤이어 송구스러움과 죄스러움이 갈마들었다.

장군님께서 그토록 높이 평가하여주신 그 깨끗한 량심과 동지적의리심이 정말 나에게 있었는가 하는 스스로의 질책이 머리를 들수 없게 했다. 장군님께서는 잃어버린 제 자식을 찾는 심정으로 유자녀들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다 찾았다고 벌써 만세를 부르고있지 않았는가. 이제 보면 나의 그 의리심에는 한계가 있었다. 은연중 이쯤하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마치 의리심을 그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것처럼 생각하는···

멀었어! 아직 너무도 멀었어! 장군님의 그 무한대한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비해볼 때 나는 하늘과 땅처럼 너무도 먼거리에 서있어.

장군님께서 나의 편지를 받아보시고 얼마나 생각이 많으셨으랴.

그러심에도 이 불충한 전사를 탓하실 대신 오히려 미안해하시고 치하해주시며 육친의 사랑을 부어주시니 어찌 송구스럽고 죄스럽지 않으랴. 정말 멀었어! 장군님의 그 무한하고 위대한 세계를 글로 옮기기에는 나의 충정과 의식이 너무도 부족하고 미약한것이였어!···

림춘추는 조국과 인민이 영원히 기억하여야 할 그런 숭고하고도 깨끗한 량심과 동지적의리심은 오직 김일성동지께서만이 지니고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북에서의 혁명가유자녀들을 찾는 사업도 또 동포들을 위한 모든 일도 다 장군님의 그 크나큰 세계에서만 시작되고 이룩될수 있은것이였다. 아니, 조선혁명의 진로자체가 그 세계에서 개척되였고 전진해왔으며 머지않아 실현될 건국위업도 다 그렇게 이룩될것이였다.

이런 확신이 드는 순간 림춘추는 자신이 비록 조국을 멀리 떠나있지만 장군님의 품에서는 단 한치도 떨어져있지 않으며 이국의 현실속에서 숨쉬고있지만 언제나 거창하게 태동하는 새 조국의 숨결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있는듯싶어졌다.

그는 또다시 그 무엇인가를 쓰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이 아직 무엇인지는 딱히 알수 없었지만 이제 자기가 써야 할 우리 조선혁명의 력사,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에서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중심적이며 가장 항구적인 그 무엇에 대한 환희의 충동임은 분명히 느꼈다.

바로 그 무엇을 력사앞에 밝히고싶은 벅찬 흥분으로 하여 림춘추는 온밤 잠들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