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4

 

 

제 5 장

4

 

(김춘희의 일기중에서)

 

1948년 4월 1일

봄, 봄은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나는 왜 지금껏 그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왔을가? 봄의 아름다움을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느꼈다.

오늘 고급반 1학년교실에 문학수업을 위해 들어가니 활짝 피여난 들꽃묶음이 꽂혀있는 꽃병이 교탁우에 놓여있는것이 아닌가. 처녀교원의 수업시간이라고 학생들이 금방 꺾어다놓은것이 분명한 꽃묶음!

슬금슬금 선생의 눈치를 살펴보며 서로서로 싱글거리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그들의 기특한 마음을 읽는 순간 나에게는 교탁우에 놓인 그 아름다운 꽃향기가 페부를 찌를듯이 스며들었다.

나는 교권은 엄격성을 고수하는데 있다는 옛 스승들의 훈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저도 모르게 꽃병을 들어 그 향기를 힘껏 들이켰다.

핑―하니 머리를 휘저으며 온몸에 짜릿하게 퍼져가는 그 향기···

아, 봄이로구나! 정녕 나에게도 봄이 찾아왔구나!

내 지금껏 그리도 애타게 바라던 인생의 봄, 인생의 환희가, 내 지금껏 부르고불러도 대답없던 님의 침묵이 이렇듯 아름다운 행복의 향기가 되여 안겨졌구나!

《학생동무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나는 꽃병을 안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내 말의 뜻을 그들이 다는 모를테지만 자기들의 생각대로 처녀선생이 기뻐한다는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더없이 좋아하였다.

그 꽃병이 지금 나의 침실 창문턱에 소중히 놓여있다.

날이 가면 꽃잎은 지고 시들어 떨어지겠지만 오늘 내 마음속에 활짝 피여난 봄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영원히 지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인생에서 스물네번째로 맞는 이 봄이 사실상 나에게는 진정한 인생의 첫봄이기때문이다. 그래! 이 봄이야말로 나를 위해 피여난 봄이고 이 향기야말로 오직 나를 위해 마련된 향기야.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어머님께서 끝없는 고민과 번민에 시들고 서러움에 울던 나와 백산이를 찾아주시고 품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어찌 이런 봄이 찾아올수 있었으랴. 장군님과 어머님께서 나와 백산이에게 들씌워진 억울한 루명을 벗겨주시고 친부모의 손길로 사랑의 품에 다시 안아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찌 이런 향기를 느낄수 있었으랴.

정녕 이 봄과 함께 님의 침묵은 끝나고 나의 길은 활짝 열리였다.

만일 시인 만해선생이 살아있다면 그에게 이런 화답시를 써보내고싶다.

 

나는 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세상 많고많은 길들을 돌고돌아
나의 길―
님의 품에 안겼습니다그 품은 봄날처럼 따뜻합니다
시들은 가슴에는 희망의 새싹을 틔워주고
멍이 든 가슴에는 사랑의 꽃잎을 피워주며
눈물젖은 가슴에는 행복의 고운 꿈 자래워줍니다

그 품은 바다처럼 넓습니다
물방울처럼 흩어져 외롭던 이들을 끝없는 물결로 실어오고
기슭에 주저앉을번 한 몸들을 부드러운 파도로 닁큼 안아주며
연약한 깃을 가진 어깨에 창공을 솟구치는
갈매기의 나래를 달아줍니다

아, 내가 안긴 님의 품은
삶의 품, 해님의 품입니다
정녕 그 품만을 따르는것이 나의 길
우리모두의 길입니다

 

1948년 4월 12일

차영진동지는 오늘 또다시 나에게 학원원가를 지어보지 않겠느냐고 따져묻는다. 정 나서지 않겠다면 원장동지와 정치부원장동지에게 이야기하여 명령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위협했다.

이글거리는 그 눈빛, 우렁우렁한 그 목소리···

어쩐지 그의 모습을 마주보기가 두려웠다. 나와 백산이에게 있어서 영진동지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지만 요즘은 왜서인지 그앞에 마주서면 줌안에 틀어잡힌 몸처럼 숨이 가쁘고 가슴이 활랑거린다. 그가 달아오른 나의 얼굴을 보고 이상스럽게 여길것만 같아 마주서기가 두렵다.

내가 왜 이럴가? 왜 그전처럼 그를 고맙게, 미덥게 생각지 못할가?···

나는 자신에 대한 그 어떤 반발심으로 하여 내쏘듯 말했다.

《여러 선생들의 말이 영진동진 자나깨나 구분대지휘관으로 갈 꿈만 꾼다는데 설사 원가를 지은들 듣기나 하겠어요?》

그는 놀란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무엇이 그리 좋은지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 내가 그런 꿈을 꾼다는건 옳소. 하지만 나 혼자 가는 꿈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을 훌륭하게 키워서 다같이 함께 가는 꿈을 꾸지요. 가만, 그런데 요전번 꿈에 보니 그속에 춘희선생도 있더라.》

《예?》

그의 말뜻을 어떻게 리해했으면 좋을지 몰라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아니, 그보다도 그가 날 보고 《춘희선생》이라고 하는것이 마음에 맺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진동지에게서 처음 듣는 소리도 아니고 지금껏 그렇게 불러왔건만 어쩐지 그 순간에는 그가 마치 어디 딴 행성에서 온 사람을 대하듯 날 부르는것처럼 생각되였다.

《춘희동무!》 하고 불러주면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질가.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집스레 《춘희선생》이라고 부른다.

《춘희선생, 난 물론 춘희선생처럼 문학공부도 못했구 아는것도 별로 없지만 작품창작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걸 모르는바는 아니요.

결코 하루이틀에 떡먹듯 쉽게 될 일이 아니지. 더구나 앞으로는 만경대에서 공부하며 생활하는 아이들이 부를 노래이니 이제 그곳에 가면 여기 림시교사에서의 생활감정과는 또 다를거요.

만경대의 송림초목, 푸르른 대동강!··· 어쨌든 난 우리 학원의 노래에 만경대의 모습이 꼭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오. 우리 학원이야 다름아닌 만경대의 학원이 아니요.》

불을 뿜는듯 한 열정에 넘친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영진동지에게 그런 시적감정, 그런 다감한 정서가 있다는것을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가 우리 학원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보니 원가를 지어야 할 진짜시인은 영진동지군요.》

《하하··· 춘희선생이 날 놀리누만. 난 여직껏 철도망치와 총밖에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요. 그리고 나야 혁명가유자녀나 유가족이 아니지 않소. 그들의 심정을 다 알수 없구 또 대변할수도 없는게 아니겠소. 하지만 춘희선생이야··· 마음고생인들 얼마나 했구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소.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녀사님의 품이 아니였다면 춘희선생은 더 말할것 없구 백산인 아마 지금도 불우한 방랑자의 신세를 면치 못했을거요. 난 춘희선생이야말로 원가를 지을 둘도 없는 적임자라고 생각하오. 새 교사 준공식때에는 반드시 우리 학원의 노래가 울려야 한다는걸 잊지 마시오.》

나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놓고 그는 무정하게도 돌아섰다. 떡판같은 잔등을 돌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왜서인지 눈물이 나왔다. 그가 고마왔다. 고맙고 또 고마왔다.

나는 왜 영진동지처럼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왜 그렇게까지 뼈에 사무치게 새기지 못했을가? 그저 제 설음에 겨워 울고 제 행복에 겨워 웃는 이런 범박한 처녀를 그가 얼마나 나무랐을가?!···

그런데 이때 웬일인지 영진동지가 되돌아왔다.

《할말을 다 못했소. 난 학원을 떠날수 없소.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우리 혁명의 미래를 지키고 키우라고 말씀하셨소. 내 비록 일시 잘못 생각했던적은 있었으나 이제는 저 백산이같은 아이들을 두고 떠날수 없단 말이요. 그리고··· 내가 우리 학원을 떠날수 없듯이 춘희동무도 절대로 내곁을 떠날수 없다는거요! 내가 할말은 이상이요.》

그는 제식동작이라도 하듯 홱 돌아섰다.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아, 잊혀지지 않을 그 눈빛, 그 목소리···

하지만 그의 마지막말만은 지금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춘희동무라고, 절대로 자기곁을 떠날수 없다고 했는데···

아니, 아니야. 잘못 들었어. 그이는 절대로 자존심없이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나 분명히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있지 않았던가. 야속한 사람! 어쩌면 그런 말을 그렇게 군사명령을 내리듯 할수 있을가. 남의 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심정? 과연 나의 심정은 어떤것인가?

그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 그에 대한 숨가쁜 두려움···

과연 이 모순되는 감정이 무엇일가? 사랑일가?···

심장의 이 물음앞에 나는 자신을 부정할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1948년 4월 27일

어제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남조선대표들이 우리 학원을 방문한데 이어 오늘 김구선생이 학원에 찾아왔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만나보기는 처음이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는 바투 깎았는데 그래서인지 한결 정력에 넘쳐보였다. 리종익원장선생님과는 상해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김구선생은 우리 원장선생님이 혁명가유자녀들을 키우는 사업을 책임지고있는데 대하여 몹시 놀라와하였다. 그는 원장선생님과 상봉한 자리에서 《미국사람들과 리승만이 북조선에서 호랑이들을 키우고있다고 하면서 불안해하고있는데 그 학원 원장이 종익선생일줄이야?!···

공산주의자들의 자녀들을 키우는 사업을 어떻게 선생같은 사람에게 맡길수 있었소?》 하고 묻는것이였다.

《백범선생,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비단 공산주의자의 자녀들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국한 애국자들의 자녀들모두를 학원에서 키워주십니다.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우리는 호랑이를 키워도 조선민족의 호랑이를 키워야 한다시며 이런 중임을 맡겨주셨지요.》

원장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자 그는《조선민족의 호랑이라···》 하며 슬며시 머리를 수그렸다.

아마 해방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지난날 자기와 함께 싸우던 순국렬사들의 자녀들을 이국의 산야에 뿔뿔이 널어놓은채 아직 데려올 생각을 못하고있은것이 완고한 민족주의두령인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 모양이였다.

김구선생은 원장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학원의 모든 방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돌아보았다. 학생들이 학습하고 생활하는 교사와 기숙사, 식당과 진료실, 도서실 등을 일일이 참관하며 학생들도 만나보았다. 내가 수업을 하고있던 교실에 들어왔다가 옛 독립군사령 량세봉선생의 아들 량의준을 만난 김구선생은 그를 몇번이고 찬찬히 훑어보다가 《네가 정말 량사령의 아들이 틀림없구나!》 하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그를 덥석 그러안았다. 량의준의 볼을 비벼주고 쓸어주는 그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난 솔직히 원장선생의 말을 들으며 선뜻 믿어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찌산투사들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학원에서 독립군사령의 자제까지 공부시키리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소.》

그는 원장선생님의 손을 잡고 흔들며 다시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백범선생! 민족의 피는 주의에 따라 달라질수가 없지요. 우리 학원에는 빨찌산의 자녀들뿐아니라 국내에서 로조, 농조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애국자의 자녀들도 있고 또 8.15해방후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남조선혁명가들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국한 애국자라면 그가 어떤 계렬이든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학원은 명실공히 민족단합의 상징이기도 하구만!》

나는 김구선생의 눈에 비낀 우리 학원의 모습을 통하여 새삼스러워지는 생각을 누를길 없었다. 정말 우리 학원이야말로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더운 피가 제일 진하게 흐르고있는 위대한 사랑의 집이 아니겠는가!

우리 학생들은 학원에 찾아온 김구선생을 환영하여 열병행진을 진행하였다. 학원제복을 차려입고 씩씩하게 행진해나가는 우리 학생들의 름름한 모습을 보며 김구선생은 연방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열병행진이 끝나자 그는 원장선생님에게 한번만 더 보여달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학원의 열병행진은 재청을 받고 다시한번 더 진행되였다.

우리 학생들은 김구선생이 남북련석회의에서 장군님을 도와 훌륭한 결실을 이룩하기를 충심으로 축원하며 그의 앞을 행진해갔다. 초급반 2학년대렬의 맨 앞자리에서 힘차게 발을 구르는 백산이의 모습도 보인다. 초급반의 제일 앞장에는 중대장인 차영진동지가 서있었다.···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이다.

우리 학원의 생활은 앞으로 더욱더 뜻깊은 날과 날로 이어질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동북에서 새로 찾은 혁명가유자녀들이 학원에 온다고 한다. 학원의 식솔이 또 늘어나게 되였다. 그들만이 아니라 녀학생들의 일과생활을 지도할 녀성소대장들도 학원에 오게 되여있다.

장군님께서 녀학생들의 일과생활은 남자소대장들이 아니라 녀성소대장들이 지도하게 해야 한다시며 자신께서 직접 선발하여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던것이다.

어쩌면 장군님께서는 친아버지처럼 그렇게 세심히도 마음쓰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