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

 

 

제 5 장

1

 

오국철이 두 나라 지경의 수천리길을 걸어 혼자서 조국으로 나온것은 그해 2월 중순이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생소한 먼먼길을 걷노라니 뒤에 두고 떠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와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그리고 누이와 동생들 생각이 걸음걸음 사무쳐왔다. 더우기 노여움에 펄펄 뛰고있을 할아버지 생각을 할 때면 무척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움과 힘겨움에 지쳐 몇번씩이나 되돌아서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지나친 욕망만으로 서뿔리 떠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았다.

언제부터 조국에 나가자고 조르던터여서 행처를 짐작하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엄동설한에 혼자 길을 떠난 자기를 두고 마음을 놓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국철은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두만강을 넘어서기 전까지 남의 집 헛간에서 새우잠도 자고 려인숙의 차디찬 골방에서 날을 밝히기도 하면서 힘겹게 왔으나 막상 두만강을 건너서고보니 그래도 제 나라 땅이라고 몸도 마음도 한결 푸근해지는것만 같았다.

(어서 가자, 가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자!)

아버지와 큰아버지, 삼촌들을 비롯한 17명의 오씨일가 어른들이 모두 왜놈들과의 싸움에 나섰다가 잘못되였는데 이제 집안에 남은 제일 큰 사내인 자기가 원쑤를 갚을 생각은 안하고 산간벽지에서 화전이나 뚜지고있을수 없다는 충동이 그를 채찍질하였다.

그의 아버지 오중성은 훈춘일대에서 현공청을 책임지고 투쟁하다가 간교한 일제의 교활한 마수에 걸려든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원통하게도《민생단》으로 몰려 1934년 이른봄에 학살되였다. 그때 놈들이 서둘러 사형을 집행하려고 하자 아버지는《잠간만!》 하고 웨치고는 놀랍게도 웃옷을 벗어 앞에 놓고나서 어깨가 드러나보이는 헌 속옷바람으로 모여있는 군중과 대원들을 향해 내가 지금 동무들에게 남기고 갈것은 이 옷밖에 없다, 이 옷을 입고 조선혁명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불을 토하듯 이렇게 웨쳤다고 한다.

《나는 조선혁명을 하다가 죽는것이지 결코 민생단이 돼서 죽는것은 아닙니다. 동무들은 오직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진짜 민생단인 저자들에게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조선혁명 만세!》

아버지가 희생되던 그때 국철이의 나이는 4살밖에 안되였었다.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는 과정에 아버지가 왜 생의 마지막순간에 오직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웨쳤는지, 오씨집안사람들이 왜 장군님을 따라 총을 잡고 싸움의 길에 나섰는지 가슴속깊이 새겨안았다. 자기도 아버지의 유언대로, 집안사람들의 념원대로 장군님의 품에 안겨싸우고싶었다. 장군님께서만은 자기의 이 소원을 꼭 풀어주실것만 같았다.

조국땅에 들어서서부터 그의 믿음은 더욱 굳어졌고 희망은 더욱 부풀어올랐다. 평화로운 마을과 거리, 행복과 랑만에 넘친 활기로운 사람들, 공장들의 기계소리와 학교들에서 울리는 배움의 종소리···

국철은 난생처음으로 보게 되는 조국의 현실앞에서 놀라움과 함께 따뜻한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더우기 사람들로부터 장군님께서 이미 자기와 같은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해 학원을 세워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환성을 질렀다.

장군님을 찾아 조국에 나온다는 생각만 했지 친척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도대체 어디 가서 누굴 만나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던 그에게 있어서 학원이야말로 자기를 기다리는 유일한 곳으로 생각되였다. 그리고 학원에 가면 꼭 장군님을 만나뵈올것 같이 생각되였다. 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끝내 학원을 찾아오게 되였다.

학원정문에 들어선 첫 순간부터 그는 흥분되였다. 운동장에서 대렬훈련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 붉은 줄이 쭉쭉 간 멋진 제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국철의 가슴을 대번에 높뛰게 만들었다.

그 애들이 어디 하늘나라 별세상에 사는 아이들같았다. 아니, 자기가 바로 그 별세상에 온듯싶었다. 그러나 그 애들이 자기와 같은 유자녀들임을 알았을 때에는 이제 곧 자기도 저 애들과 같은 옷을 입고 저런 생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냥 즐겁고 흐뭇하기만 하였다.

그는 자기를 재촉하는 학원직일관의 부름을 듣고서야 꿈속에서 깨여나 원장방으로 들어갔다.

직일관이 안경을 낀 나이든 원장에게 그가 찾아온 사연을 짧게 보고하고나서 돌아서나갔다.

리종익원장(물론 그 이름은 후에 알게 되였지만)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몸을 녹이라고 난로가까이에 의자를 놓아주었다.

《음, 동북에서 왔단 말이지?》

《예.》

《앉아라, 어서 앉으라니까.》

원장은 엉거주춤하고 일어선 그의 어깨를 눌러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런데 왜 혼자뿐이냐?》

《저 혼자서 왔습니다.》

《혼자서?··· 원, 인솔자도 없이 혼자 내보내다니. 너 지금 몇살이냐?》

《열여덟살입니다.》

《열여덟? 음··· 학원학생으로서는 나이가 좀 들었구나. 어쨌든 용타. 그 나이에 혼자 두 나라 지경을 넘는다는게 쉬우냐? 좌우간 어서 문건을 내놓아라.》

리종익원장이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국철은 그만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문, 문건이라니요? 그건 무슨···》

《추천문건 말이다, 네가 혁명렬사의 유자녀라는것을 확인하는 보증서와 그에 따르는 추천서. 왜 림춘추동무가 안 써서 보내드냐?》

동북에서 나오는 유자녀들은 다《림춘추》라는 서명이 있는 추천문건을 가지고오군 하였으므로 리종익이 오히려 의아한 눈길로 국철이를 바라보았다.

《저··· 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엉?···》

리종익원장의 놀란 눈빛이 국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국철은 뭔가 일이 잘못되였음을 깨달았다. 학원이라고 해서 무작정 찾아온다고 되는 곳이 아니라는것을 늦게야 알았던것이다. 맥이 쑥 풀렸다. 방금전까지만도 눈에 보이던 칠색무지개가 순간에 사라지고 앞이 캄캄해졌다. 뒤따라 불안감이 눈덩이처럼 자꾸만 커졌다.

《너 정말 혁명가유자녀가 맞긴 맞냐?》

《예?》

국철은 어딘가 좀 랭정해진것 같은 원장의 얼굴을 두려운 눈길로 마주보았다. 그는 서둘러 아버지의 이름과 희생된 경위에 대해서 할아버지에게서 들은대로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오중성?···》

리종익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동만의 항일혁명렬사들을 알수 없었던 리종익은 전번에 허가이가 내려와서 《경력이 흐리터분》한 사람들의 문제를 놓고 큰 소동을 일으켰던 일로 하여 긴장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이번에 또 잘못 언질을 주어 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장군님앞에 어떻게 나선단 말인가.

《난 네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말만 듣고 믿을순 없지 않니? 너희 아버지를 알고있는 다른분들의 이름이라도 알아야겠는데··· 할아버지가 그런 소리는 한게 없냐?》

국철은 절망이 비낀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좋기는 연변전원공서에 가서 림춘추동무의 보증서를 받아오면 되겠는데 그 먼곳에 다시 보낼수도 없구···》

듣고보니 생각만 해도 아뜩한 일이였다. 어떻게 고생스레 온 길이라고 되돌아간단 말인가. 국철은 눈물이 쑥 흘러나왔다. 울먹울먹하여 목소리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원장···선생님, 절··· 김일성장군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장군님께선 우리 아버질 아실거예요.》

원장이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 철없는것아, 장군님은 나라정사를 돌보시는분이시야. 제 만나고싶다고 아무나 만난다면 장군님께서 어떻게 일을 보시겠니? 또 그래서도 안되구. 그렇지 않아도 장군님께서 학원사업때문에 가뜩이나 부담이 크신데···》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아요? 예?··· 전 이 학원에서 공부하고싶어요. 제발 내 말을 믿어주세요. 절 학원에서 쫓지 말아주세요.···》

국철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원장에게 간청했다. 원장도 그의 정상이 애처로왔던지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는 이 애가 정말 장군님께서 알고계시는 혁명가의 자식일수도 있다는것과 아무래도 이제 장군님께서 학원에 오시면 한번 말씀드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확인할 사람(그는 우정 이렇게 말했다.)이 나타날 때까지 널 림시 학원직원으로 남겨두지. 이젠 나이도 좀 먹었으니 식당화구야 볼수 있겠지?》

《예?··· 예! 볼수 있습니다. 아니, 잘 봅니다.》

국철은 너무 기뻐 원장의 팔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었다.

우선 학원에 떨어지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러면 언제건 꼭 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다는 생각이 그를 이처럼 다행스럽고 기쁘게 하였던것이다.

《허허··· 녀석두.》

원장이 흘러내린 안경을 눌러붙이며 조용히 웃었다.

국철은 고마운 원장에게 허리굽혀 굽석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날 저녁부터 그는 식당화구를 보게 되였다.

원장과 정치부원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를 그저 새로 온 직원으로 알고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벌써 한주일이 지나갔다.

국철이가 마음속으로 매일과 같이 이제나저제나 장군님께서 학원에 오시기를 손꼽아기다리고있던 어느날···

한낮이 다 기울어가는 운동장에서 학원제복을 입고 추운줄 모르고 뛰여노는 학생들의 모습을 부러움이 가득찬 눈길로 바라보고 섰는데 몸집이 실한 식당아주머니가 그를 소리쳐 찾았다.

《아니, 빨리 저녁밥을 지어야겠는데 아직두 탄불을 올리지 않구 그렇게 멍하니 서있으면 어떻게 하나? 불길이 올라와야 밥을 짓지. 원장선생이 물어볼 때마다 내 새로 온 총각이 일을 잘한다구 칭찬해주군 했는데··· 어떤 때 보면 멍청해있군 한다니까.》

국철은 끙끙거리는 식당아주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며 얼굴이 벌개서 얼른 화구칸으로 달려갔다. 조급한 마음으로 어둑스레한 화구칸안에 들어서다나니 세워놓았던 석탄 이기는 삽과 부딪쳤다. 한벌밖에 없는 옷에 탄검댕이가 쭉 묻어났다. 탄가루먼지가 묻은것은 털어버리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저녁에 옷을 빨아야 할것 같았다. 말그대로 림시로력이니 누가 그의 작업복 같은것을 신경써주는 사람도 없었고 또 그자신도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온통 딴데 가있었던것이다.

(혹시 장군님께서도 우리 아버지를 모르고계시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불안이 그를 휩싸군 하였다.

국철은 불길이 잘 올라오게 구멍을 여러개 뚫어놓았다. 매캐한 탄내가 코와 입으로 날아들었다.

《아이참, 탄을 좀 더 뚜져놓으라구.》

코를 싸쥔 식당아주머니가 화구칸안을 들여다보며 간참질을 했다.

《불길이 저 정도면 일없겠는데?!···》

《아니야, 그러다간 저녁식사시간이 늦어. 학원에선 일과가 물레와 가락처럼 맞물려있다는걸 모르나?》

할수없이 탄불을 더 뚜져놓았다. 재가루가 머리카락과 눈섭에 뽀얗게 내려앉았다. 그는 얼른 밖으로 뛰쳐나와 참았던 큰숨을 길게 내쉬였다.

《에그, 수골 했구만. 얼굴이랑 옷이랑 말이 아닌데···》

식당아주머니가 재가루를 털어주려고 다가들었다.

그런데 그때 운동장쪽에서 와― 하는 환성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환성소리였다.

《아니, 저기서 왜들 그래요?》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걸 보니 장군님께서 오신게지. 보라구, 저쪽 침실에서도 아이들이 달려나오질 않나.》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기에서《장군님께서 오셨다!》하는 웨침소리가 울려왔다.

갑자기 심장이 세차게 높뛰였다.

장군님께서 오셨다!··· 제발 꿈이 아니였으면···

오늘이 정말 내 소원이 풀리는 날이였으면···

그는 그 무엇을 더 생각할새없이 무작정 달려나갔다.

《아니, 어딜 가나? 그 주제를 해가지고···》

식당아주머니가 웨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릴리 만무하였다.

국철의 눈앞에는 학생들속에 에워싸여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시는 장군님의 모습이 안겨왔다. 원장사무실에 모셔진 초상화에서 깊이깊이 눈에 익혀둔 바로 그 김일성장군님의 모습이였다.

벌써 장군님께서는 오롱조롱 매달린 학생들속에 에워싸여 원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며 천천히 청사쪽으로 걸음을 옮기시기 시작하였다.

국철에게는 이제 장군님을 만나뵙지 못하면 다시는 영영 자기 소원을 풀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앞뒤를 가려볼 사이도 없이 학생들사이를 헤집고 장군님의 등뒤에까지 달려갔다. 자기자신도 놀랄만치 큰 목소리로 그이를 불렀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돌아서시였다. 그옆에 섰던 리종익원장도 놀란 눈길로 국철을 바라보았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기회를 보아 말씀드리려고 생각했었는데 그 당자가 이렇게 불쑥 나타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직 채 털지 못한 재가루가 머리카락과 어깨우에 앉아있고 탄검댕이가 발린 옷차림을 한 낯선 국철이의 모습을 아래우로 훑어보시며 한걸음 다가오시였다.

《장군님! 제가 오중성의 아들입니다.》

흠칫 하고 장군님께서 놀라시였다.

국철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이였다.

《누구? 오중성의 아들이라구?》

김일성동지께서 와락 국철의 어깨를 잡으시였다. 어깨를 잡아당기시며 찬찬히, 유심히 그의 얼굴을 뜯어보시였다. 순간 그이의 안광에 반가움에 가득찬 밝은 빛이 확 피여났다.

《옳구나! 신통히도 오중성의 모색이로구나!》

국철의 눈에는 핑그르 눈물이 돌았다. 장군님께서 아버지를 알고계신다는, 장군님께서 아버지를 잊지 않고계신다는 격정에 끝내 감격의 눈물을 터뜨리고야말았던것이다.

《그럼 네가 어릴 때 왕청유격구에 있었겠구나? 그런데 네가 벌써 이렇게 컸느냐? 어디 좀 보자!》

그이께서는 국철이를 한품에 껴안으시였다. 그리고 그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주시며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국철은 계속 울기만 하였다.

《이제는 그만 그쳐라. 나하고 이야기나 좀 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그래, 집안에서는 다 어떻게 됐니? 가족들이나 친척들중에 지금 살아계시는분들이 있느냐?》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그리고 누이와 사촌동생들이 있습니다. 작은할아버지네도 얼마전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삽니다.》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신단 말이지··· 그런데 왜 여직 날 찾아오지 않고 거기에 계시는거냐?》

《할아버지가 두말도 못하게 합니다. 장군님께 보탬은 못 드릴망정 부담을 줄수는 없다고···》

그이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기신 눈빛으로 먼 하늘가를 잠시 바라보시고나서 원장을 비롯한 일군들에게 말씀하시였다.

《이 애의 가정에서는 자그만치 열일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혁명의 길에 나섰는데 한명도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모두 희생되였습니다. 보기 드문 혁명가가정입니다.》

원장이 그이께 국철이가 아무 문건도 없이 혼자서 동북에서 나온 사실과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렸다.

《음, 그렇게 됐구만. 식당화구를 보느라구 네 옷주제가 그랬댔구나. 원장선생두 참, 그런 일이 제기되였으면 나에게 먼저 알릴것이지···》

그이의 서운하신 말씀에 원장이 머리를 수그렸다.

《원장선생의 마음은 알만합니다. 하지만 이 애들의 문제는 나한테 부담이 되는것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됩니다. 앞으로는 찾아온 아이들을 잘 알아보지 않고 돌려보내거나 나이가 들었다고 하여 직원으로 받아 일을 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국철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네 이름이 뭐냐?》

《오국철입니다.》

《국철이··· 국철아, 너 아무데도 가지 말고 저기 승용차곁에 가서 날 기다려라. 내 학원을 돌아보고 인차 나올테니.》

《예.》

《절대 어데 가지 말고 꼭 기다려야 해!》

《장군님, 승용차곁에서 장군님을 기다리겠습니다.》

국철은 잡고있던 그이의 팔을 놓으며 맹세하듯 대답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몇번씩이나 뒤를 돌아보시며 원장과 함께 청사쪽으로 들어가시였다.

그제서야 국철은 자기가 어떤 주제를 하고 장군님앞에 나섰댔는가를 생각했다. 당장 달려가서 세면이라도 하고싶었으나 절대 어데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이 생각나 오도가도 못하고 못박힌듯 서있었다. 운전사가 다가와 그에게 젖은 걸레를 내여밀었다.

《자, 깨끗이 빤것이니 이걸루라도 닦거라. 우선 그 재가루부터 털자. 돌아서라. 내 털어주지.》

그가 차안에서 수건을 꺼내가지고 다가왔다.

국철은 그를 피하듯 승용차곁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너 왜 그러니? 왜 달아나?》

《저··· 거기서 털면 재가루가 장군님 승용차에 떨어질게 아니나요.》

국철은 죄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허, 녀석! 괜찮아!》

운전사가 씽긋 웃으며 다가와 그를 돌려세우고 수건으로 재가루를 털기 시작하였다.

×

국철이는 이미 굳잠에 든지 오래다.

저녁에 댁에 데리고 들어올 때만 하여도 초췌해보이더니 목욕을 시키고 내의들을 갈아입혀놓으니 제법 싱싱하고 의젓해보인다. 겉옷은 그에게 맞춤한것이 없어 원래의 옷을 깨끗이 빨아 지금 한창 말리우는중이다. 당장 몸에 맞는 새옷을 해입혔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래일 그를 다시 동북으로 들여보내야 하기때문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철이를 부관과 함께 보내여 남은 오씨집안사람들을 모두 데려내오실 결심이였다. 오태희로인이 여직껏 해방된 조국땅으로 자신을 찾아나오지 않고있는것이 새 나라를 위해 한몫할 끌끌한 장정은 하나도 없고 늙은이들과 부녀자들, 어린아이들뿐이니 가야 부담밖에 될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것이 분명한데 그냥 있으면 스스로 찾아올리 만무할것 같으시였다. 원래부터 그렇게 속대가 곧고 경우가 밝은 오로인이였던것이다.

앞으로 그 집 아이들은 림춘추가 찾아 내보낸다 하더라도 마음 결곡한 그 집 어른들은 설복해내기가 어려울것이였다. 오직 자신의 명의로 사람을 보내야만이 그들을 데려올수 있었다.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17명이나 되는 일가식솔을 혁명에 다 바치고도 그 대가를 바라기는커녕 오히려 살아있는 자기들이 혁명에 부담이 될것을 념려하는 고결한 그 애국정신···

마동희의 어머니 장길부도 그래서 집에서 함께 살자는 청을 한사코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김일성동지께서는 후더워오르는 가슴을 안고 문풍지 우는 창문가로 조용히 다가가시였다. 창밖에서는 이해의 겨울이 마지막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털써덕, 국철이가 이불 차던지는 소리가 났다.

(원, 녀석두···)

김일성동지께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시며 그에게 다가가 다시 이불을 덮어주시였다. 문득 지난해 이맘때 바로 이 아래목에서 아이들에게 지금처럼 이불을 덮어주던 생각이 나시였다.

박창성과 신재호의 아들, 김룡수의 딸···

그 애들이 이젠 학원에서 무럭무럭 자라고있다. 정말이지 그때에는 그 애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도 손이 떨리시고 마음이 쓰렸었다. 언제면 이런 애들모두를 우리 집 아래목과 같이 따스한 곳에서 내 손으로 이불깃을 여며주며 만시름 다 잊고 자게 할수 있을가 하고···

그 안타깝던 마음이 이제는 어지간히 풀리신셈이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온갖 보살핌을 받으며 즐겁게 뛰놀고 만경대의 새 교사도 하루가 다르게 일떠서고있다. 학원건설사업소 로동자들과 인민들의 뜨거운 열의와 지성에 의해 여름쯤이면 건물들이 완공될것 같았다.

하지만 이 국철이와 같이, 오씨집안의 아이들같이 아직도 사랑의 손길을 뻗쳐야 할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아이들 하나하나를 모두 찾아 학원에 데려오기 전에는 결코 이 마음이 다 풀릴수 없다. 청사나 번듯하게 세워놓는다고 하여 동지들앞에 지닌 의리를 다했다고 말할수 없다. 그들의 자식들을 모래밭에서 금싸래기 주어모으듯이 다 찾아내여 품에 안기 전에는 이 김일성이 그들의 사령관이였다고 말할수 없고 그들의 령혼을 지켜준다고 말할수 없다.···

김일성동지의 생각은 끝없이 깊어만지시였다.

희생된 못 잊을 동지들, 귀중한 전우들···

그들이 못다산 인생, 그들이 못다한 혁명이 그들의 령혼이 되여 매일, 매 시각 자신의 심장을 태우는것만 같으시였다. 걸음걸음 따라서는것만 같으시였다. 아직은 멀고먼 앞길만을 바라보며 가야 할 지금 이렇듯 너무도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는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뜻을 다 이루어주지 못하였기때문이다.

그들의 생전에 다 부어주지 못한 이 가슴속의 정과 애를 그 자식들에게 깡그리 부어줄 때 그들의 삶이, 그들의 정신이 다시 이어지게 될것이다.

혁명가의 영생은 바로 이것으로 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직 불이 켜져있는 웃방으로 들어가시였다.

그곳에서는 김정숙동지께서 국철의 옷을 다림질하고계시였다.

《밤도 깊었는데 쉬지 않소?》

《아무래도 아침까지 마를것 같지 않아 다리미로 말리우느라 그럽니다. 잘 마르지 않은 옷을 입었다가 애가 감기라도 들면···》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심정이 십분 리해되시여 머리를 끄덕이시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아니, 왜 웃으십니까?》

김정숙동지께서 다소 의아한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정숙동무의 말을 듣노라니 우리 집에 다리미가 있길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오.》

《예?!》

《그렇지 않으면 산에서처럼 또 몸에 품어 말리우자고 할게 아니겠소.》

그제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시고 저으기 상기된 얼굴에 미소를 그리시였다.

《며칠 시간만 있으면 새옷을 해입혀보내는건데···》

그이께서는 아쉬우신듯 아직도 센 물김이 서려오르는 옷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아무래도 학원제복을 해입혀야겠는데 옷때문에 시간을 끌 필요가 있겠소? 국철일 만난 뒤로는 그들 생각때문에 마음이 조급해 못견디겠소. 내 부관동무에게 춘추동무앞으로 편지도 써보내려 하니 빨리 되돌아설수 있도록 조직사업을 해줄거요. 그들이 조국으로 나올 때 가장집물들을 한가지도 떨구어두지 말고 다 가지고 나오도록 해야겠소. 그리고 늙은분들이 오는 도중에 고생하지 않도록 두만강을 건는 다음부터는 전용차칸을 단 기차를 타고오게 할 생각이요.》

《그러면 승용차를 타고오는것보다 편안히 오게 될겁니다. 국철이가 가지고 갈 려비는 제가 어떻게 하나 마련해놓겠습니다.》

《고맙소. 참, 그들이 올 때 춘추동무가 그동안 찾은 아이들도 함께 데려오도록 하겠으니 피복공장에 한번 나가서 학원제복과 외투를 해입힐수 있는 옷감준비를 미리 해놓도록 해야겠소.》

《알겠습니다. 장군님, 더 근심마시고 어서 주무십시오.》

김정숙동지의 목소리에는 간절한 념원이 짙게 어려있었다.

《나보다도 정숙동무가 더 쉬여야 할것 같구만. 해방된 조국땅에 와서도 언제한번 일찍 쉬는걸 못 보겠구만. 정말이지 동무 보기가 미안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정일도 돌보고 자신의 사업도 받들어주고 더우기는 학원아이들의 생활과 학원건설장사업을 사흘이 멀다하게 돌보느라 어느 하루 마음편히 쉬지 못하시는 김정숙동지의 수고를 헤아려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옷을 다 다려 말리워놓고는 인차 자겠습니다.》

사실 옷을 다 다린 다음에는 국철이와 부관이 차를 타고가면서 먹을 도중식사를 준비하실 계획이셨으나 그이께서는 장군님께서 걱정하시지 않게 천연스레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 아무 말씀을 않으시고 방에서 나오시였다.

무엇으로써도 그이의 그 불같은 마음을 잠재우게 하실수 없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계셨기때문이였다.

아래목에서는 여전히 굳잠든 오국철이 네활개를 쭉 펴고 제법 코까지 가랑가랑 골고있었다.

 

그때로부터 보름후, 오태희로인일가는 드디여 조국으로 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가모두를 저택으로 부르시고 감사의 큰절을 드리는 로인부부에게 해방된 조국땅에 돌아오지 못한 자식들을 대신하여 김정숙동지와 함께 술을 부어주시였다.

국철을 비롯한 오씨집안 아이들은 그이의 자애로운 사랑의 품에 안겨 모두 만경대혁명학원 학생으로 되였으며 그들의 어머니들은 학원에서 일하게 되였다.

혁명렬사유가족인 오씨가문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은 그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