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9

 

 

제 4 장

9

 

김일성동지께서는 짧은 겨울해의 마지막잔광이 불그스름하게 비쳐드는 집무실에 들어서시였으나 좀처럼 앉을념을 못하시였다.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10여일간에 걸치는 지방현지지도사업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김일성동지께서는 학원에 들리시였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떠났을 학생들에 대한 준비를 원만히 해주었는지 무척 궁금하시였던것이다. 하긴 이미 김정숙동지에게 당부하시고 떠났던 문제였으므로 별다른 근심은 없으시였으나 아무데도 갈곳 없는 아이들 생각을 하니 마음에 걸리시였다.

왜서인지 학원에 들어서실 때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한감이 드시였다.

처음에는 대다수 학생들이 방학을 가다보니 그런가부다하고 범상히 스쳐지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학원에 나오시여 방학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학생들에게 고향에 가서 일군들과 로인들에게 인사는 어떻게 하고 생활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도 말씀해주고 집에 가서 놀지만 말고 견학도 하고 선전사업도 할수 있게 조를 무어 조직사업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떠나가는 학생들에게 특식꾸레미도 준비하여 보냈습니다.》

원장의 말에 마음이 놓이셨으나 어쩐지 그의 얼굴색이 밝지 못하다는 느낌이 드시였다.

《여기에 남아있는 학생들에게도 특식꾸레미를 주었습니까?》

《예, 처음에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더랬는데 녀사께서 새 제복을 입고 특식꾸레미까지 안고 집으로 가는 애들을 보고 못 가는 아이들이 말은 안해도 속으로 무척 부러워했을거라고 말씀하셔서··· 그래 그 애들에게 꼭같이 특식꾸레미도 주고 평양시에 견학사업들도 조직해주고있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원장선생의 안색이 좋지 않군요. 어디 몸이 편찮습니까?》

《아, 아닙니다. 사실은 저···》

리종익원장은 선뜻 말을 떼지 못하고 갑자르기만 하다가 힘겹게 그동안의 일들을 말씀드리였다.

열병이 발생하였던 문제와 치료를 제때에 하여 모두 완쾌시킨 사실이며 허가이조직부장이 학원에 나와 회의를 소집했던 일 그리고 그로 하여 교직원들과 학생들속에서 이러저러한 소문이 돈 문제며 백산이가 동무들과 싸우고 학원에서 없어진 일···

리종익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야 김일성동지께서는 왜 그의 얼굴색이 밝지 못했으며 학원분위기가 어수선한감이 들었는가를 깨달으시였다. 그 불안한 공기가 아직도 학원의 구석구석에 떠돌고있는듯싶으시였다.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열병치료를 제때에 하여 아이들을 다 회복시킨건 정말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저으기 마음이 무거우시여 인차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백산이가 없어지다니··· 그러니 그날 회의에서 론의되였던 아이들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방학을 떠났겠군요?》

《그런건 아닙니다. 김정숙녀사께서 학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지금 학원에 돌고있는 말은 장군님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헛소문이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우다가 목숨바친 사람들은 그가 누구였든, 어디서 싸웠든 가리지 않으시고 다 조선의 훌륭한 애국자로 내세워주신다. 때문에 너희들은 그 누가 뭐라든 오직 장군님의 품만을 믿고 살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백산이를 찾기 위해 각 지역의 애국투사후원회와 내무기관들에도 련계를 취해주셨는데··· 저희들도 수차에 걸쳐 사람들을 파견하여 찾아보았습니다만 아직은···》

리종익의 말은 끝났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저 머리만 끄덕이시였을뿐 조금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였다. 이 추운 날 그 애는 도대체 어딜 가서 헤매고있는가. 학원밖에는 아무데도 의탁할 곳이 없는 그 애가 그전날처럼 또다시 어느 역 기다림칸이나 보이라칸안에서 추위에 떨면서 굶주리고있을 정상을 생각하니 못 견디게 가슴이 쓰려오시였다.

어쩌면 당조직부장이란 사람이 어떻게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그런 상처를 입힐 생각을 할수 있는가. 어쩌면 희생된 혁명가들의 문제를 그렇게 경솔하게 종이장 한장을 놓고 만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속단해버릴수 있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좀처럼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수가 없으시였다. 아무리 다잡자고 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집무실을 나서시여 복도를 지나 허가이의 방에 들어가시였다.

한손에 더운 김이 물물 피여오르는 커피고뿌를 들고 줄금줄금 마시던 허가이가 방안에 들어서시는 김일성동지를 알아보고 놀라며 일어섰다.

그는 황급히 커피고뿌를 책상우에 놓으며 반색했다.

《아니, 김일성동지!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태연해지려고 애쓰시며 앞으로 다가오는 그의 손을 잡으시였다.

《방금전에 돌아왔습니다. 방에서 담배를 한대 태우고 곧장 이리로 오는 길입니다.》

《전화를 걸어주시면 제가 먼저 방으로 찾아가 인사를 올리는건데···》

그는 사뭇 미안스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난 이미 학원에 들려 허동무의 인사를 받고 왔으니까요.》

《예?!···》

허가이는 그제서야 그이께서 자기 방에 찾아오신 사연을 짐작할수 있었다. 인사말도 채 끝나기 전에 에두름없이 직방 학원문제부터 꺼내시는 김일성동지의 격한 어조와 안색에서 그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직감하였다. 학원문제를 두고 언제이건 김일성동지께서 추궁하시리라는 불안감은 가지고있었지만 정작 그 순간이 닥쳐오니 그래도 어쩐지 변명부터 하고싶어졌다.

《전 사실··· 학원에서 발생한 열병문제때문에 걱정이 되여 나갔었습니다. 나갔던 길에 학원일군들을 각성시키려고···》

《그런데 어떻게 각성시켰길래 학원이 온통 어수선해졌는가 말입니다. 어떻게 되여 백산이가 민족반역자의 아들로 몰려 학원에서 쫓겨나다싶이 없어지게 되였는가 말이요?···》

김일성동지의 어조가 격해졌다.

《차마 그런 일이 일어난줄은 모르고있었습니다. 전 다만···》

《다만 어쨌다는거요. 동무는 라부위원장인가 하는 사람의 신소장을 말하고싶어하는것 같은데 어째서 혁명동지들의 보증은 믿지 않고 그따위 종이장을 더 믿고싶어졌는가. 무엇때문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격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시여 주먹으로 책상을 치시였다. 접시우에 받쳐놓았던 커피고뿌가 책상의 진동에 《챙가당.》 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꺼멓게 얼굴이 질린 허가이는 이미 식어버린 진한 커피의 위태로운 흔들림을 바라볼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내앞에서 다시한번 말해보시오. 세상이 다 아는 혁명가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요? 김책이나 안길이, 최용건이, 이 김일성과 같은 사람들이요? 그럼 평범한 대원으로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 지하혁명조직에서 싸운 사람들은 혁명가라고 말할수 없겠소?! 민족주의자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이보시오, 허동무. 혁명가란 그 어떤 직무나 직급이 아니요. 자기 조국을 위해, 자기 인민을 위해 목숨바쳐 싸우는 사람들에게 차례지는 고귀한 부름이란 말이요.》

《그걸 모르는바는 아닙니다. 전 다만 세계 반파쑈항전에 참가했던 국제련합군시절에 희생된 동지들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허가이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고 그러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시였다.

《그러니 결국··· 쏘련사람들이 아는 혁명가들이여야 한다는 소린데 그 리유는 뭡니까? 어째서 조선인민이 아는 혁명가, 조선인민이 그 희생을 두고 가슴아파하는 혁명가, 애국자들은 허동무의 관심밖에 놓여야 하는가 말입니다.》

허가이는 다시금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였다. 그리고는 얼핏 눈길을 들어 김일성동지를 바라보며 괴로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다 알고계시는 사실이지만 전 처음부터 학원창립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려운건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각이한 정치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은근히 승벽을 부리는 정치정세하에서 앞으로 혁명투쟁의 골간이 될 학원을 세우는 문제는 그들의 신경을 자극시킬수 있고 또 우리를 공격할수 있는 언질을 줄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는 백두산에서 함께 싸우다가 희생된 전우들의 자식들은 물론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다 희생된 국내외의 모든 애국자들의 자식들까지 한품에 안으시여 끝내 만경대혁명학원을 세우시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내부의 안정과 단합을 도모하는데 도움으로 되였습니다. 사실 전 그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것은 외부의 불만을 살수 있는 요소로도 될수 있습니다.

학원은 단순히 아이들의 문제로 끝나는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국가정치외교의 력사가 오랜 사람들은 벌써부터 김일성동지의 학원창립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창건될 우리 국가의 정치구조, 정책방향을 예평하려고 애쓰고있습니다. 그들의 저울추가 친쏘, 사회주의라는 눈금에로가 아니라 자립, 민족주의라는 눈금에로 기울면 그 후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왕 학원을 세운바에는 그들에게 우리의 립장이 선명하게 느껴지게 하자는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새 조국건설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령도를 더욱 공고화하려는 진심뿐입니다.》

할말을 다 한듯 그는 비로소 깊은 숨을 후― 하고 내그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그가 학원문제를 놓고 그렇듯 많은 생각과 치밀한 타산을 하였다는것이 놀라우시였다. 대단히 론리적이면서도 책략적인 그의 생각에서 그 어떤 치졸한 야심같은것은 찾아볼수 없다. 물론 련맹안의 가맹공화국이라는 이상야릇한 처지에서 사업하면서 중앙정부와의 눈치보기에 숙달된 그의 체질이 다분히 느껴지기는 하였지만···

그런데 문제는 바로 우리 나라가 쏘련의 가맹공화국이 아니라는것, 또 절대로 그렇게 될수 없다는것을 그가 의식하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는 피로써 개척된 우리 혁명,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온 우리 혁명의 로정과 력사를 모르고있는것이다. 그것을 모르기때문에 그 혁명의 전통을 잇기 위해 세운 학원을 두고 저렇듯 동문서답을 하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은 진정되시였으나 안타까움은 더 커지시였다.

저 사람이 자기의 정치적감각과 사업경험을 조선혁명이라는 주체적관점과 립장에서 발휘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민족자주의식이 결여된 허가이, 결국 사대주의의식밖에 나올것이 없지 않는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사대주의에 물젖으면 머저리가 되고마는 법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창밖은 이미 어둠에 묻혀있었다. 어둠을 보니 그동안 온몸에 쌓이고쌓였던 피로가 불시에 엄습해오는듯싶었다.

그이께서는 허가이쪽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 형제국가들의 지지와 성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허동무가 그 나라의 일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하여 그들의 친선적인 감정을 저울질해보는것 같습니다.》

《예?》

《설사 허동무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학원문제를 그 어떤 정치적흥정물로 리용할순 없습니다.

학원을 세울 결심을 했을 그때 나는 그 무슨 정치적타산을 한것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다만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몸바친 혁명렬사들의 자녀들을 고아의 설음에서 벗어나도록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주어 부모들이 남긴 생전의 뜻을 훌륭히 이어가도록 해주려는 동지적의리와 인간적도리를 다하려고 했을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점차 아이들이 모여오고 교사가 마련되고 일정한 토대가 잡히게 되면서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키우겠는가 하는 실질적인 교육교양문제가 나섰을 때 나는 생각이 많아질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동지, 제가 그 뜻을 모르는바가 아닙니다. 그렇기때문에···》

《내 말을 마저 듣소. 만경대혁명학원은 다름아닌 혁명을 하다가 희생된 혁명가들의 자식들을 키우는것으로 하여 혁명의 미래라는 정치적문제와 직결되여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굳이 그러한 정치적시점에서 학원을 들여다본다면 거기에서 그 어떤 특정한 정치세력의 미래가 아니라 조선의 미래, 민족의 미래가 자라나야 한다는것입니다. 조선의 미래란 어떤것인가?》

허가이는 김일성동지께서 드디여 학원에 대한 견해에서 생긴 자기와의 불일치점을 명백히 규정하실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는 서서히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수 없었다. 사대와 쇄국으로 일관된 리조 5백년의 뒤끝에 40여년의 식민지를 거치고 갓 해방을 이룩한 신생조선의 미래가 어떤것인가?

그보다도 먼저 과연 이 나라가 당면한 새 사회건설을 대국의 지원과 지지가 없이 할수 있단 말인가?

오늘이 없이 어떻게 래일이 있단 말인가.

허가이의 심중에서 끓고있는것은 바로 이것이였다.

《나는 처음 혁명을 시작할 때 그 누구의 눈치를 보고 시작한것도, 그 누구의 인정을 받자고 한것도 아니였습니다. 누구를 믿고 시작한것은 더구나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첫발을 떼자니 어려움인들 오죽했고 희생인들 오죽 많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혁명을 시작했고 오늘까지 이어왔습니다. 그 길에서 수많은 혁명가들이 우리곁을 떠나갔지만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할수 없는것입니다. 앞으로도 조선혁명은 어차피 피흘리며 개척한 그 길로만 가야 할것이고 우리가 가다 못 가면 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 길을 가야 할 직접적인 담당자들, 계승자들이 다름아닌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러한 미래를 키워내는데 때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로 한걸음 다가가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물론 유자녀교육에 관한 사상과 리론은 맑스나 레닌의 어떠한 고전에도 없습니다. 쏘련에서 1943년에 처음으로 유자녀학원을 세우긴 하였지만 아직 이 문제는 유자녀규정과 교육내용, 교육방식에서 초행길이나 같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조선혁명의 특성과 조선혁명의 요구, 조선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이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허가이동무는 자신이 조선의 혁명가라는 투철한 립장에 서지 못하고있는것 같습니다.》

《···》

《학원은 바로 미래를 확신하는 조선혁명가들의 크고 넓은 품이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품에서 지금 어린 한 아이가 떨어져나갔습니다. 그래서 내 오늘 이렇게 가슴아파하는겁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을 마치시고나서 무거운 걸음으로 허가이의 방을 나서시였다.

김일성동지!···》

허가이는 그이의 뒤모습을 우러르며 죄스러움에 젖은 목소리로 나직이 불렀다.

만일 그때 그가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들으며 일찌기 동지적사랑과 의리로 개척되고 영원한 동지적사랑과 의리로 전진하는 우리 혁명의 승리의 필연성을 깨달았더라면 그후의 인생길도 달라졌을것이였다.

그러나 사대와 교조가 체질로 굳어지고 주관주의적사업방법에 푹 물젖었던 그는 김일성동지에 대한 존경심과 그나름대로의 사업열의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걸음한걸음 조선혁명의 전진도상에서 뒤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이러한 부패와 변질은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조선혁명에 끼친 그의 과오는 엄중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