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8

 

 

제 4 장

8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요? 세상에 대고 혁명가유자녀들을 키우는 학원을 세웠다고 큰소릴 쳐놓고 학생들이 죽는다 산다 하며 소동이니 우리 간부들이 어떻게 머릴 들고 다니겠소. 이 학원은 여느 학교와 다르단 말이요. 아직 국가도 서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그 미래의 국가가 직접 맡아키워야 할 아이들을 모아놓은 학교인것으로 해서 적들은 물론이거니와 형제국가사람들까지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우릴 지켜보고있단 말이요.》

비교적 널직한 원장사무실에는 학원일군들과 교원, 군사교관들이 비좁게 앉아있었다.

허가이는 대다수 머리를 짓수그리고있는 그들의 정수리를 선자리에서 둘러보며 어조를 좀 느긋이 낮추었다.

《물론 지금껏 떠살이하며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해 영양상태가 한심했던 아이들이니 열병과 같은것이 발생할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변명하겠는가. 그럴수는 없습니다. 털어놓고 말해서 난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김일성동지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시겠는가 하는 생각때문에··· 다행히도 김일성동지께서 지방현지지도길에 나가계셨기때문이지 아마 평양에 계셨더라면 일손을 잡지 못하시고 줄창 여기에 나와 살다싶이 하셨을겁니다. 언제까지 이 학원이 그분의 사업에 짐이 되고 부담으로 되여야 하겠는가. 언제까지 이 학원이 그분의 정력과 시간을 뺏어가야 하겠는가, 예―에?!》

그가 안타까움에 겨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에 바늘처럼 아프게 들어와 박혔다.

권고사직문제로 하여 그와 좋지 못한 감정이 얽혀있어 고개를 돌리고 창밖에 시선을 두고있던 리종익원장도 그 말에는 시선을 떨구었다.

허가이는 그의 미세한 변화를 살펴보며 말을 계속했다.

《동무들, 생각들 좀 해보시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준엄한 정세하에서 혁명을 하고있습니까. 38°선아래에서는 리승만이가 미국놈들을 등에 업고 〈단독정부〉를 세우겠다, 북진하겠다 날뛰고있고 압록강너머에서는 국내전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습니다. 남쪽과 북쪽에서 언제 불티가 우리한테 날아올지 모를 형편입니다.

한때 쏘련에서도 10월혁명승리이후 이와 비슷한 정세가 조성된적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백파도당들이 날뛰구 또 한쪽에서는 제국주의무력간섭이 벌어지구. 그때 유일한 사회주의국가였던 쏘련은 혼자의 힘으로 그 모든것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사회주의쏘련이라는 강대한 동맹국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루빨리 북조선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여 리념적으로만이 아니라 체질적으로도 쏘련과의 운명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보시오. 얼마나 엄청나게 중대한 사업들이 김일성동지의 어깨에 걸머지여있는가. 과연 나라의 운명과 관련된 이런 현실적인 절박한 사업들을 그이가 아닌 그 누가 감당할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의 진심의 소리였다. 그는 나라의 복잡다단한 정치문제들을 능숙하게 틀어쥐시고 새 조국건설에로 이끌어나가시는 김일성동지의 령도적수완에 내심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더우기 자기의 열망을 헤아려보시고 쏘련군사령부에서 한갖 번역원으로 있던 자신을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 조직부장으로 내세워주신 그이의 신임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는 김일성동지를 받들어 새 나라의 건국공신이 되리라 마음다졌다.

자기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할만 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쏘련에서 집권당의 당일군으로서의 사업경험, 사회주의국가건설의 체험 그리고 쏘련당과 정부와의 인맥관계··· 김일성동지의 수하에 이런 경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은 자기 이외에 더 꼽아볼만 한 사람이 없다고 그는 자부하였다. 그런데 점차 그의 사업은 초기의 결심과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쏘련에서 배웠고 쏘련에서 일했던 그런 리론과 경험으로써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있었던것이다.

민주개혁문제들도 그렇고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문제, 정권건설문제, 무력건설문제, 경제건설문제 등에서도 그는 자기나름의 모순에 빠져들군 하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나 김일성동지의 사업이 쏘련사람들의 불만을 삼이 없이 기성리론과 경험대로 순탄하게 흘러가 불일치가 없기를 바랐다. 학원문제 하나만 놓고봐도 그러했다. 하필이면 쏘련에서도 혁명이 승리한지 26년이 지나서야 세운 유자녀학원을 해방된지 2년만에 먼저 세워놓고 그 사람들의 체면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시점에서 볼 때 청산대상이 되거나 배제대상이 될수도 있는 아이들을 학원에 벌써부터 미리 모아놓고 정치적표적이 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미 학원창립을 선포한것만큼 달리할수는 없겠지만 그 표적이야 선명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김일성동지의 대외사업적부담을 덜어주고 새 국가창건의 유리한 정치적환경을 마련해주는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허가이는 사실 열병문제때문이라기보다 이런 자격지심때문에 학원에 나왔다. 그는 좀 지친 기색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리종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저 민족주의자출신부터 원장자리에서 쫓아내야 하는건데··· 하여간 당장은 어쩔수 없으니 좀더 두고보는수밖에···) 하고 생각하며 그는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선생! 그래 내 말을 들으며 뭐 좀 생각되는것이 없습니까?》

리종익원장이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섰다. 허가이는 과거일을 량해시키는 의미에서 리종익에게 앉아서 이야기해도 일없다고 아량을 보일가하고 생각했다가 속으로 곧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금은 아량보다도 위엄을 느끼게 하는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원장인 내자신이··· 일을 쓰게 못했습니다. 다시는 학원일때문에 장군님께서 마음쓰시지 않게 사업을 짜고들겠습니다.》

리종익은 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서있었다.

허가이는 그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좌중을 쭈욱 둘러보며 말했다.

《열병에 걸렸던 아이들은 거의다 완쾌되였다니 그건 더 론의할 필요가 없는게고··· 문제는 앞으로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수 있다는겁니다.》

그의 말에 머리를 수굿하고있던 대다수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리종익원장도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허가이는 좌중의 시선을 무겁게 받으며 서류가방쟈크를 소리가 나게 열어제꼈다. 그속에서 그리 두텁지도 얇지도 않은 문건철을 꺼내였다.

《이건 애국투사후원회 라부위원장동무가 내게 보내온 학원학생명단입니다. 그런데 문건을 보니 아직도 흐리터분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는 자기가 표식해두었던 부분들을 찾아 종이장을 벌컥벌컥 번졌다.

《이것 보시오. 독립군사령을 하던 사람의 아들이 있는가하면 남조선에서 정판사위조화페사건때에 죽은 사람의 딸도 있습니다. 뭐 이러루한 대상들은 많습니다. 벌목공으로 일하다가 순사에게 맞아죽은 사람, 농사를 짓다가 죽은 사람, 나중에는 우리 빨찌산들의 손에 죽은자의 자식까지 다 있습니다. 그녀석 이름이 뭐드라? 그렇지, 김백산이.》

《저··· 그들은 다 조직적인 보증을 받고 학원에 온 아이들입니다.》

정치부원장이 그가 리해를 잘못한것 같아 이렇게 설명하려 하였다.

《그 조직적인 보증이란것도 결국은 개별적사람들의 말을 듣고 한것이겠지? 생각을 좀 해보오.》

허가이는 자기가 펼쳐든 문건을 툭 쳤다.

《그 모든걸 인제와서 누가 정확히 보증할수 있단 말이요. 속히웠을수도 있고 날조했을수도 있는거란 말이요. 이걸 얼핏 보면 비명에 죽은 사람들은 다 혁명가로 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요. 례컨대 안길동무의 딸처럼 명백해야지. 안길동무는 쏘련사람들도 다 아는 혁명가란 말이요. 이런 큰 혁명가의 자식들을 찾아내지 못하다나니 학원구성이 이렇게 얼룩덜룩해졌단 말이요. 바로 이런것들이 앞으로 학원에서 발생할수 있는 제2의 정치적열병으로 될수 있는거요.》

그는 문건을 탁 덮고나서 회의를 처음 시작하던 때의 격조를 되살렸다.

《학원학생들을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좀 때늦은감은 있지만, 참 원장선생, 학생들을 인차 겨울방학에 보낸다지요?》

《예.》

《그럼 내 이 문건을 주고 갈테니 내가 문제성있다고 동그라미를 쳐놓은 학생들은 그때에 완전히 내보내시오. 다음학기 개학때에는 나타나지 않게 말입니다. 특히 그 김백산이란 아이를 포함해서···》

그는 좌중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흥분에 찬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젊은 군관을 놀라서 바라보느라 그옆에 얼굴이 까맣게 질려 앉아있는 김춘희의 모습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일어선 사람은 차영진이였다.

《백산이는··· 그의 아버지는 유격대에 의해 처단된것이 아닙니다. 그건 왜놈들의 모략선전이였습니다. 이건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보증하신겁니다.》

허가이는 잠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음··· 그렇다면 그 문젠 더 론하지 맙시다. 하지만 동무, 장군님께서 보증하신것은 그가 유격대에 의해 징벌을 당한것이 아니라 왜놈들에 의해 죽었다는거란 말이요. 내겐 그가 죽기 전에 공동투쟁을 설복하려 찾아간 유격대파견원을 구류하고 나중에는 총살해버렸다는 움직일수 없는 사실자료가 있소.》

《예?》

그는 놀라는 영진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나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사실 이런 문젠 동무들에게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는것이지만 할수 없구만. 자꾸 고집들을 하니···》 하며 그는 서류가방에서 또 하나의 얄팍한 문서를 꺼내보였다.

《이건 만주에서 공산당재건운동에 참가했던 라부위원장이 그자의 죄행에 대해 까밝힌 신소문이요. 그의 말에 의하면 김현철은 체질적으로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증오감을 가지고있었다고 하오. 이러한 그자에게 찾아갔던 유격대파견원이 죽었단 말이요. 그이상 명백한 론거가 또 어디 있소?》

《절대로,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천진하구만, 천진해. 하긴 혁명투쟁의 세례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동무같은 사람들이야 혁명의 복잡성과 간고성을 리해할수 없지. 따라서 세상사람들도 학원의 이러한 얼룩덜룩한 구성상태를 쉽게 리해하지 못한단 말이요. 때문에 투명해야 하오. 세상이 공인하는 혁명가들의 자식들로 학생들을 꾸려야 한단 말이요.》

그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싶어하는 영진을 향해 앉으라는 손짓을 연방 해보이고나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개인복수를 반대하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원칙과 관련되는 문제이니 나도 더이상 그자가 누구의 손에 죽었는가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소. 그러나 학원의 혁명적원칙성과 순결성을 고수하는 문제까지 양보할수는 없단 말이요.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예수나 부처가 아니요. 만민박애와 천하중생을 다 사랑하라는 그들의 교리를 우리가 어찌 따를수 있겠소?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의 사랑에는 계급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거란 말이요.

이 학원이 어떤 학원이요? 앞으로 쏘련에서와 같은 사회주의혁명의 바통을 넘겨받아야 할 미래의 기둥감들을 키워내는 혁명학원이요. 이런 학원에서 과거 민족주의나 고취하던 우국지사들, 투쟁업적과 투쟁경력이 미미하거나 흐리터분한 명색상의 혁명가들의 자식까지 다 키워줄순 없단 말이요.》

그의 어조는 단호해졌다. 그의 눈빛도 랭철해졌다.

그는 그때까지 묵묵히 서있던 리종익에게로 그 차거운 눈빛을 돌렸다.

《원장선생, 내 말이 리해됩니까?》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일시에 원장에게로 쏠렸다.

놀라움과 의아함, 긍정과 리해, 동정과 불안···

그들의 시선에 비낀 각이한 의미를 느끼며 리종익원장은 무겁게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해는 되지만··· 동의할수는 없습니다. 그 애들 문제는 어느 하나라도 다 장군님의 결론을 받아야 합니다.》

《나도 원장동지와 같은 생각입니다.》

리진영정치부원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말을 지지했다.

허가이는 말문이 막혔다. 아연해진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얼마나 정치적으로 무식한 인간들인가 . 저들의 그 고집이 김일성동지의 사업에 어떤 부담으로 되는지도 모르는 단순한 사람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바닥을 갉는 아츠러운 의자소리가 가뜩이나 팽팽해진 사람들의 신경을 끊을듯이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직하면서도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사업을 이 좁은 학원울타리안에 비끄러매려 하지 마오. 아이들에 대한 그이의 남다른 인정심을 악용하지 말란 말이요.···》

×

춘희는 자기가 어떻게 그 회의장소에서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견디여낼수 있었던지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왜 그 조직부장이라는 사람을 향해 《아니예요. 절대로 그럴수가 없어요!》라고 목청껏 웨치지 못했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그는 무작정 내달렸다. 그 어디로 가는지도 의식하지 못한채 정신없이 내달렸다. 자기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놀라움과 의혹 아니, 경멸의 눈빛들이 화살처럼 얼굴에 박히는듯싶었다.

《···김현철은 체질적으로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증오감을 가지고있었다고 하오. 이러한 그자에게 찾아갔던 유격대파견원이 죽었단 말이요.》

문건을 내흔들며 확신에 차 말하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만 뒤쫓아왔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 무서운 목소리는 더욱더 크게 고막을 때렸다.

《서시오! 춘희선생!―》

등뒤에서 울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러나 춘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채 학원 뒤산쪽으로 그냥 달려갔다.

숨이 턱에 닿아 휘청거리면서도 멈춰서지 않았다. 귀전에서 윙윙거리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런 곳까지 이렇게 내처 달아나고만 싶었다.

《당장 그 자리에 서지 못하겠소?》

또다시 등뒤에서 울리는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

춘희는 그만 쓰러질듯 비칠거렸다. 억센 손아귀가 그의 어깨를 꽈악 부여잡았다.

차영진이였다. 그를 알아보는 순간 춘희는 슬픔에 찬 목소리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제발, 제발··· 날 붙잡지 말아주세요. 난, 난 더이상 여기 있을수가 없습니다.》

《진정하시오.》

영진이 숨을 톺으며 말을 이었다.

《춘희선생이야 이제 학생들앞에 나서야 할 사람이 아니요? 진정해야 하오.》

괴로움을 짓씹는듯 한 그의 목소리···

춘희는 그만 울음을 터치고말았다. 참고참았던 눈물이 두볼을 타고 비방울처럼 흘러내렸다.

《내가, 내가 어떻게 학생들앞에 다시··· 나설수 있단 말입니까? 나와 우리 백산인 이젠··· 이젠···》

《그럼 어쩌겠다는거요?》

영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런 사람의 말 한마디에 우리 학원을 버리구 가버리겠다는거요? 가면 어디로 간단 말이요?》

《영진동지, 그러지 마세요. 영진동지야 우릴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린 어디 더 갈데도 없어요. 나와 백산일 진정으로 품어주고 사랑을 부어준건 이 학원밖엔 더 없단 말입니다. 이 학원은 나와 우리 백산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마음놓고 안긴 유일한 보금자리였구··· 우리 백산이가 처음으로 마음껏 뛰여놀수 있은 유일한 뜨락이였어요. 하지만··· 하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며 춘희는 망연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만하시오!》

영진의 두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번쩍였다.

《놀랍소. 우리 장군님께서 보증하신 애국자의 집안에 선생같은 나약한 사람이 있다는것이 정말 놀랍단 말이요.》

《예?···》

《선생은 말끝마다 어린 백산이에게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 이 학원이 다름아닌 김일성장군님의 품이라고 말해왔었지? 그런데 그렇게 말해온 선생자신은 우리 학원을 그 무슨 려인숙이나 고아원처럼 생각해왔단 말이요. 누구의 눈치를 보아가며 있고싶으면 있고 가고싶으면 가도 되는···》

《그건, 그건 너무해요.》

《뭐가 너무하단 말이요. 춘희선생이 진정 우리 학원을 장군님의 품으로 생각했다면, 자기가 진정 장군님의 품에 안겼다고 생각했다면 그 누가 뭐라고 하든지 학원을 믿어야 할게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우리 학원을 놓고 아직까지도 자기가 살 뜨락인가 아닌가를 저울질해볼수 있는가 말이요?》

《아니?···》

춘희는 가슴을 찌르는 무자비한 영진의 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런 모진 말을···

내 어떻게 그런 저울질을 할수 있단 말인가? 얼마전까지만도 정이 그리워 슬픔에 울던 내가, 도대체 나와 백산이가 무슨 존재라고 그런 투정질을 할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에서는 이런 항변이 콩튀듯 하였으나 어째서인지 춘희는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불길이 황황 이는듯 한 영진의 눈빛이 그를 여지없이 태워버렸던것이다.

《선생처럼 그런 떨떨한 신념을 가지고서는 우리 학원의 신성한 교단에 설 자격이 없소. 결심하시오. 우리 장군님의 품속에서 혁명가로 살겠는가 아니면 제 하나의 감정에만 파묻혀버리는 그런 나약한 녀자로 살겠는가.》

춘희는 두눈을 꼭 감았다. 영진의 눈빛을 마주볼수 없었다.

어쩐지 그 눈빛이 지금껏 춘희의 마음속에 끈덕지게 슴배여있던 인생의 우수를 깡그리 증발시켜버리는듯만싶었다.

《영진동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만 마음속으로 소리쳐불렀다.

아, 고마운 사람!···

×

소문은 항상 보태지기마련이다.

일부 학생들을 학원에서 내보내는가 마는가에 대한 우려와 론의는 학원일군들과 교직원들의 계선을 넘어 학생들속에까지 퍼져가면서 이제 곧 단호하게 내보낸다는것으로 와전되여버렸다.

그중에서도 백산의 문제는 아버지의 경력을 기만하고 학원에 들어온 반역자의 자식이라는식의 과장된 억측이 쉬쉬하며 돌았다. 물론 아직은 그 누구도 그런 말을 백산에게나 춘희에게 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이상스러운 눈초리는 그들에게 집중되였다.

춘희로서는 사람들의 따지는듯 한 그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억울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그 불안은 다름아닌 백산이때문이였다.

그 어린것이 만일 그 소문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랴. 겨우 아물었던 마음속 상처를 이제 또 헤집어놓는다면 그 애는 더 참아내지 못할것이다. 너무도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 제또래의 동무들한테서 모욕과 멸시, 랭대와 비난, 지어 모두매까지 맞으며 자라다보니 백산이는 아직 선입견과 피해의식이 강하였으며 성격속에 거칠고 방랑아적인 기질이 많이 남아있었다.

이러한것들은 벌써 그리 길지 않은 학원생활의 이모저모와 동무들과의 관계에서 이러저러하게 표현되고있었다. 그러한 그 애가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어떤 물의를 일으킬 행동을 하겠는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춘희의 불안과 예감은 결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일은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오늘 학원에서는 방학을 앞두고 학기말성적에 대한 총화가 있었는데 백산이는 학급에서 몇명 안되는 최우등생명단에 들어있었다.

총화사업이 끝나고 교원이 교실에서 나가자 좀 으쓱해진 백산이는 성적이 낮은 몇몇 아이들을 바라보며 깔보는듯 한 어조로 《어쩌면 그렇게도 머리가 돌지 않니? 너희들때문에 우리 학급 성적이 다른 학급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니?》 하고 말했다.

《뭐야?》

한 아이가 참지 못하고 불끈 일어섰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던차에 뛰뛰한 소문이 도는 백산에게서까지 시까스름을 당하고보니 밸이 꼴렸던것이다.

《야, 나도 너처럼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다녔으면 얼마든지 공불 잘할수 있었어. 얘들아, 안그래?》

그 애가 학급동무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때라고 생각한 아이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내쏘았다.

《맞아. 우리가 월사금이 없어서 학교에서 쫓겨나 나무지게를 지고 다닐 때 저자식은 인력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을거야.》

《이자식이 공부를 좀 했다고 재세를 해?》

《야, 야. 네가 선생님들을 속이고 학원에 온줄 우리가 모르고있는줄 아니?》

《당장 학원에서 쫓겨나야 할 주제에··· 흥!》

《?!···》

그제서야 백산이는 동무들이 아니, 어른들까지도 왜 자기를 이상스레 보며 수군수군하였는지를 깨달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무작정 앞에 있던 한 아이를 그러안고 힘껏 내리눌렀다. 그의 뒤로 또 몇몇 아이들이 달라붙었다.

엎치락뒤치락···

투닥투닥···

열두세살난 아이들의 싸움은 윤흥섭교무부원장이 뛰여들어와서야 뜯어말릴수 있었다. 윤흥섭의 질책은 싸움을 먼저 시작한 백산에게 떨어졌다.

《인제보니 백산이 네녀석이 정말 문제성있는 녀석이로구나. 한땐 담배질을 해서 장군님께 우리 학원 망신을 시키더니 이젠 또 동무들과 싸움질까지 해? 오늘 보니 정말 학원에 있을 녀석이 못되는구나. 당장 문제를 세우고말아야지. 가자, 원장선생님한테 어서 가자.》

그는 백산이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걸 놓으라요, 놓으라요.》

백산이가 발버둥을 쳤다. 교실복도에서는 무슨 일인가 하여 다른 학급과 다른 학년의 아이들이 목을 빼들고 들여다보았다.

백산이는 얼핏 그들의 눈길을 마주보았다. 어쩐지 그들에게서도 방금전 자기 학급동무들에게서 보았던 그런 쌀쌀한 빛이 느껴지는듯싶었다. 아니, 룡정에서 살 때 그리고 무산에서 살 때 언제나 자기에게 향해지던 그 차거움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는 자기에게 그때와 같은 불행이 다시금 다가오고있음을 륙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그에게 다른 본능이 살아나게 만들었다. 그는 교무부원장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헛참, 못된 녀석!···》

윤흥섭은 괘씸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였지만 (제깐녀석이 뛰여야 벼룩이지!) 하는 심사로 그냥 보고만 서있었다. 그리고 같이 싸움질을 한 아이들에게 대충 욕설 몇마디를 하고는 곧 원장방으로 가고말았다.

《아니, 그러니 단순히 아이들의 다툼질이 아니라 그 애 아버지문제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이요?》

리종익원장이 놀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것 같습니다. 학급아이들에게 따져물으니···》

《아니, 그 애들이 그런 문젤 어떻게 안단 말이요? 어떻게 되여 학생들에게까지 그런 확인되지 않은 말이 들어갔나 말이요? 》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질 않습니까.》

윤흥섭은 심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

리종익원장은 아연해진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교육자란 사람이 그렇게 말할수 있는가. 백산이 나이또래의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공상하길 좋아하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별치않은 일에도 좌절감에 잘 빠져들고 예상밖의 극단적인 생각을 몰아가기도 잘한다는것을 몰라서 그러는가. 하물며 그런 말을 듣고 싸움까지 한 그 애가 이제 무슨 행동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리종익은 황황히 사무실을 나섰다.

《아니, 어딜 가십니까? 그녀석 문젤 토론해야 할게 아닙니까.》

윤흥섭이 그의 등뒤를 따라서며 하는 말이였다.

《백산이를 찾아야 할게 아니요. 어린 마음에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있을텐데···》

리종익원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며 걸음을 다그쳤다.

교실에는 물론 침실에도 백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마음의 안정을 잃은 그는 자기방에 돌아와서도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그래 춘희선생에겐 물어봤소?》

그는 방에 들어서는 교무부원장에게 다급히 물었다.

《어째서인지 그 선생도 보이질 않습니다.》

《뭐요?》

이때 문밖에서 급한 발자국소리가 울려왔다.

《원장동지, 백산이가··· 없어졌습니다. 달아났습니다.》

차영진이 들어올 때의 그 발소리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맥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등뒤에서 눈물인지 땀방울인지 모르게 얼굴이 온통 젖어있는 춘희가 문설주를 붙어잡고 간신히 서있었다. 이들이 백산이의 행처를 찾아 정신없이 헤매다가 돌아온것이 분명하였다.

리종익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어디 이 주변산속에 들어가 밸을 삭이고있지 않을가? 응? 그럴수도 있잖소?···》

그러나 영진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있을만 한 곳은 다 찾아보았습니다. 학원주변에는 없습니다. 보나마나··· 딴곳으로 가버렸을겁니다,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곳으로. 백산인 그런 앱니다.》

리종익의 얼굴은 컴컴해졌다.

그는 안경을 무겁게 벗어들며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이제라도 장군님께서, 녀사님께서 오신다면··· 우리가··· 무슨 면목으로 그분들을 뵙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