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

 

 

제 4 장

4

 

안길은 피터지게 입술을 깨물고 또 한차례의 동통을 견디여냈다.

얼굴은 꺼멓게 질리다못해 나중에는 종이장처럼 새하얘졌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화락 젖어들었다. 동통이 멎자 오한이 났다.

더는 자기자신을 견디여내기가 힘들었다.

《참모장동지, 보십시오.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이러다가 제때에 손을 못쓰면 어떤 일이 생길지··· 잘 알지 않습니까.》

보안간부훈련대대부직속중앙병원 원장 리병훈이 그의 어깨우에 외투를 덧씌워주며 안타깝게 말했다. 아닌게아니라 때마침 리병훈원장이 대대부청사에 와있을 때 동통증세와 맞다들려 구급대책을 세울수 있었던것이다.

그는 안길을 무조건 병원에 입원시킬데 대한 장군님의 명령을 받고 찾아왔던 길이였다. 최근시기에 그는 안길이때문에 이런 걸음을 수차에 걸쳐 했었는데 그때마다 정규군건설사업이나 끝내놓고 입원하겠다고 하면서 완강히 거절하군 하여 매번 헛걸음으로 끝났었다.

그러나 안길의 병증세는 날을 따라 더욱 악화되였고 리병훈원장의 구체적인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으로 그를 무조건 입원시키라고 지시하시였다.

안길은 원장으로부터 장군님의 명령을 전달받고 더는 자기를 지탱하기가 어렵다는것을 절감하였다.

지금의 몸상태를 가지고서는 참모장의 사업을 제대로 할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곁의 동지들에게 부담만 주게 될것이며 기본은 장군님께 근심과 걱정만을 더해드리게 될것이 불보듯 명백하였던것이다.

그럴바 하고는 병원에 가야 했다. 사실 이런 우려는 이미전부터 그를 휩싸고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미진된 사업들을 결속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뛰여다녔고 앞으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들과 그 대책적방도에 대하여 아래일군들을 데리고다니면서 하나하나 의견을 주었었다.

그런데 그 우려가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될줄이야···

《원장선생, 그래 병원에 가면 내가 살수 있소?》

리병훈의 당황해진 아니, 아연해진 눈빛이 지꿎게 안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노여움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방안을 웅글게 울렸다.

《무슨··· 그런 말씀을?! 아무리 참모장이래도 의사앞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야 안되지요. 이제 병원에 가서 집중치료를 받으며 안정하게 되면···》

《허허··· 노여워하지 마시오. 난 원장선생을 믿습니다.》

안길은 허거픈 미소를 짓고나서 슬며시 두눈을 감았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그는 자기가 다시 일어날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왜놈들의 총탄이 아직 그대로 박혀있는 몸에서 이제는 그 상처의 아픔만이 아닌 그 어떤 새로운 불치의 병마가 자기의 생명을 톱질하고있음을 안길은 륙감으로 느끼고있었던것이다.

그 톱질이 이제 한주일이면 끝날는지 열흘이면 끝날는지··· 이런 예감이 뇌리를 파고들수록 어쩐지 인생의 흘러온 40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어린시절··· 중학시절···

훈춘현 경신향의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을 때 장군님의 눈부신 위인상에 매혹되여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삼가 편지를 쓰던 일···

그때가 1931년이였지. 그때 장군님께서는 회답편지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할 또 한사람의 혁명동지를 알게 된것이 기쁘다고 하시면서 사상과 뜻을 같이할 믿음직한 동지들을 조직에 묶어세우고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조선혁명이 나아갈 길이라고 가르쳐주시였지.···

그이의 가르치심에 이끌려 흘러온 나의 인생길···

중대정치지도원, 중대장, 련대참모장, 련대정치위원, 방면군참모장···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우리 혁명은 개척되였고 전진하였으며 승리의 오늘에 이르지 않았던가.

승리?··· 아니, 아직은 승리라고 말할수 없다.

인민혁명군의 정규군에로의 강화도, 공화국의 창건도 그리고 미제에 의하여 분렬된 조국의 통일독립도, 사회주의혁명의 임무도 아직은 앞에 있다.

우리 혁명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하다. 그런데 그 길에서 나는 벌써 물러서야 하는가. 그 어려운 길에 장군님을 남겨두고 벌써 인생의 안식을 찾아야 하는가. 아, 저주롭고 한스러운 육체여···

혁명의 길은 아직도 먼데 내 인생은 너무도 짧구나.··· 제발 내 자식들이 이 아버지가 못다 간 그 길을 그대로 이어가주었으면···

갈래없이 뻗어가던 생각이 자식들에게 가닿자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장군님의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던것이다. 그 품이 있는데 그 애들을 두고 걱정할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수많은 전우들이 죽음을 앞에 놓고도 절대로 뒤돌아봄이 없이 마음놓고 웃으며 맞받아 나아갔었구나. 장군님의 한품에 자기들의 미래를 맡겼기에!···

그런데 이 안길인 그저 그 애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는것만으로 전우의 의리를 다한다고 생각했었지.

장군님께서는 혁명가유자녀들을 찾아냈을 때마다 무장투쟁시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사람한사람의 혁명동지를 만났을 때처럼 생각된다고 하셨는데 난 그저 그 애들을 불쌍한 아이들로만 보았었지.

장군님의 그 뜻을 그저 그이의 남다른 인정미로, 의리를 다하기 위한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전우들이 리해해주리라 여기며 눈앞의 사업만을 붙어잡고 뛰여다녔지.

늦었어. 장군님의 뜻을 받들기에는 내 육체가 너무 힘이 진했어.

《저, 참모장동지, 참모장동지···》

리병훈원장이 오래도록 눈을 감고 침묵하는 그를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그의 의식이 혼미상태에 빠지지 않았는가 근심해서였다.

안길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병원원장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원장선생, 내 이제 병원에 가겠소. 어서 입원준비를 해주오.》

《그래야지요, 물론 그래야지요.》

리병훈원장이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곱씹었다. 더는 그를 설복하느라 진땀을 뽑지 않게 된것이다. 그러나 다음순간 안길의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하지 않을수 없었다.

《원장선생, 병원으로 가기 전에 내 한곳에 꼭 다녀올데가 있소. 선생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아직 미진되여있더란 말이요.》

《예? 아니, 그건···》

《선생도 알다싶이 난 만경대혁명학원창립준비위원회 위원이요. 내 참모장으로서의 사업은 비교적 다 마무리해놓았는데 학원창립준비위원으로서의 사업은 마무리짓지 못했구만. 아무래도 만경대에 나가 학원건설장을 한번 돌아봐야겠소.》

《참모장동지···》

《학원건설장에서 곧바로 병원에 갈테니 마음놓고 먼저 가서 기다려주오. 부탁이요.》

안길은 운전사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긴의자에서 일어섰다.

×

만경대의 학원건설장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이미 가르쳐주신 청사설계도면대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벌써 기초축조가 다 끝나고 본관건설은 벽체쌓기작업이 시작되였다.

기숙사건설과 보이라건설을 동시에 밀고나가는 속에서도 건설자들은 추위가 들이닥치기 전에 한돌기의 벽돌이라도 더 쌓기 위하여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리고있었던것이다.

《이제는 지원자들의 수가 500명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인민들의 지성이 대단합니다.》

건설사업소 소장이 학원건설장전경을 바라보고 서있는 안길에게 공사형편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고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안길은 흐뭇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소장동무, 속도도 중요하지만 질을 철저히 보장해야 하오. 장군님께서 학원건물을 만년대계로 지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하시였다는걸 동무도 알지 않소.》

《예, 잘 알고있습니다.》

소장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스러워보이는 그의 거동을 슬금슬금 눈여겨보며 대답했다. 안길은 그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다시한번 건설장전경을 둘러보았다.

《정말 학원자리가 좋구만. 장군님께서 세상천하 명당자리에 학원터전을 잡아주시였소. 이제 여기서 배우며 뛰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보오. 난 그 애들의 모습을 꼭 보고싶구만.》

《문제없습니다. 래년 여름까지면 학원청사를 다 완성할수 있으니까요.》

안길의 심정을 알수 없는 소장은 호기있게 말했다.

《래년 여름까지라···》

안길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되뇌이였다. 그러다가 자기의 괴로운 심사를 그가 엿볼것이 두려운듯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어쨌든 하루라도 더 앞당겨야 하오. 자, 왔던김에 몰탈이라도 한삽 뜨고 가게 삽이나 한가락 가져다주오.》

《일없습니다. 원, 안길동지까지 삽질을 하지 않은들···》

《그러지 말고 어서.》

소장이 달려갔다.

운전사가 그의 뒤모습이 멀어지자 황급히 안길의 팔을 붙잡았다.

《참모장동지, 정신있습니까. 그런 몸상태로 어떻게···》

《일없어. 괜히 부산떨지 말고 내 뒤나 따라오라구.》

안길은 그의 잔등을 툭 치며 싱긋 웃어보였다.

《야, 그러다가 동통이 또 발작하면 어쩌자구 그럽니까.》

운전사는 물러설 잡도리가 아닌듯 완강하게 막아섰다.

《이봐,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일은 만경대학원을 위해서 몰탈 한삽이라도 뜨는거야. 그것이 바로 이 안길이가 혁명을 위해서 오래오래 사는것으로 되는거야.》

그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걸음을 내짚었다. 운전사가 그의 팔을 부축해주려고 했으나 안길은 엄한 눈길로 쏘아보고는 건강한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안깐힘을 다해 고통을 참느라고 식은땀이 후두둑후둑 떨어져내렸다.

안길은 소장이 가져온 삽을 들고 본관벽체를 쌓고있는 건설자들속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팔등으로 얼굴의 땀을 몇번 훔치고나서 묵묵히 그들과 함께 몰탈을 이기기 시작하였다.

운전사가 참다못해 그의 손에서 억지로 삽을 빼앗았다.

건설자들은 어쩐지 류달라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흘금흘금 바라보긴 하였으나 하도 지원자들이 많은 곳이다보니 인차 습관되여버려 더이상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그때 이겨놓은 몰탈을 가지러왔던 몸매다부진 한 청년이 안길을 보고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안길동지!》

운전사에게 삽을 빼앗기고 사람들 있는데서 소리도 칠수 없고 하여 그저 가쁜숨을 톺고있던 안길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애젊은 청년을 눈주어 바라보았다.

《누구더라?···》

《야, 생각 안나십니까? 눈덮인 가루개에서 차를 밀어준 공업전문학교 학생들···》

생각났다. 올해 1월 라남에 있는 강건의 제2소에 갔다오다가 평양 가루개에서 자기의 차를 밀어준 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생각났다. 그들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될줄이야.

《허, 이거 이번에도 또 동무를 못 알아봤구만. 가만, 그때 동무보고 한 처녀가 뭐랬드라? 그렇지, 〈우쭐대는 수닭〉이라고 했지?》

그들의 상봉을 호기심에 넘쳐 지켜보던 로동자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쳤다. 그러거나말거나 《우쭐대는 수닭》은 뒤에 대고 소리쳤다.

《동무들! 여기 안길동지가 오셨소. 아, 은주동무, 빨리!》

일여덟명의 청년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다 같은 공업전문학교 학생들 같았다.

《안길동지!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그들은 굽벅굽벅 인사를 하며 안길을 에워쌌다.

《오, 은주, 생각나.〈따벌〉!··· 하하··· 그때 그 동무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보는구만.》

《우린 강의가 끝나면 오후마다 여기 학원건설장에 달려와서 애국로동을 하군 합니다.》

《피, 애국로동은 뭐 우리만 하나?!》

은주라는 처녀가 그 청년에게 눈을 할기며 내쏘았다.

《챠, 또 또···》

《어마나!···》

《하하···》

《호호···》

안길이도 웃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꾸만 눈앞이 뿌잇해왔다.

얼마나 미더운 청년들인가.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만경대학원건설에 자기들의 고귀한 땀방울을 아낌없이 바칠줄 아는 청년들··· 이것이 혁명선렬들을 위한 우리 인민모두의 뜨거운 마음이 아니겠는가.

《고맙소. 동무들, 고맙소. 이제 여기서 공부하게 될 혁명가유자녀들은 절대로 동무들의 그 마음을 잊지 않을것이요. 조국과 인민의 그 기대를 심장에 새기고 자라날거요.》

안길은 목이 꽉 메여왔다.

흥분으로 하여 숨이 가빠졌다.

《아니, 안길동지, 왜 그러십니까? 어디 편치 않습니까?》

은주라는 처녀가 근심에 찬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운전사와 건설사업소 림춘석소장이 황급히 그의 팔을 부축하였다.

《괜찮소. 아마 좀··· 흥분했던것 같소.》

안길은 자기를 부축했던 손들을 물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쩐지··· 동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지누만. 동무들같은··· 혁명동지들이 우리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나가리라고 생각하니··· 그리고 이 학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또 그렇게 계속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억세여지오.》

안길은 그들의 얼굴을 한사람한사람 바라보며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 동무들에게 노래를 하나 불러줄가. 삽질은 아무래도 안되겠고··· 노래야 동무들보다 나을수 있을는지 알겠소.》

《좋습니다.》

로동자들과 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손벽을 치며 호응했다.

운전사만이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고있을뿐이였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장군님께서 배워주신 노래요. 투사들은 누구나 이 노래를 즐겨불렀지.···》

안길은 추억깊은 눈길을 만경대의 숲우듬지너머로 보냈다.

나직하나 절절함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운전사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길의 육체가 도저히 노래를 부를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노래는 계속 울리였다.

 

···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노래를 부르는 안길이도,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노래의 깊은 정서와 절절한 감정으로 하여 눈물을 머금었고 안길은 밀림속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함께 이 노래를 부르던 잊지 못할 전우들을 생각하며 눈굽을 적셨다.

그들이 정녕 꿈결에도 잊지 못해하던 그리운 산천, 대동강물 아름다운 바로 그 만경대!···

광복의 그날 기어이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그들이 지금 어디에 묻혀있는가.···

허나 그들은 왔다. 그들의 자식들이 이 만경대의 산천에서 마음껏 뛰놀게 되지 않았는가. 바로 그들을 대신하여 그 자식들이 온것이다.

(동무들, 그들은 영원히 이 만경대에서 살게 될거요. 동무들이 그토록 오고싶어하던 이 만경대에서!···)

안길은 전우들의 넋이 다 모여온듯싶은 만경대의 모습을 영원히 새겨두려는듯 오래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때로부터 보름후 안길은 불치의 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우였으며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몸바쳐 투쟁해온 혁명가 안길은 자기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온 정규적혁명무력의 열병대오를 보지 못한채, 만경대의 푸른 언덕에서 혁명의 계승자로 억세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영영 보지 못한채 떠나갔다.

그러나 그의 눈망울에 마지막으로 비낀 모습은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은 미더운 학원아이들의 름름한 모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