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3

 

 

제 4 장

3

 

차영진은 오늘 중앙보안간부학교를 함께 졸업하고 구분대지휘관으로 배치되여간 동창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는 편지에서 영진의 안부를 묻고나서 이렇게 썼다.

《···

부대에서는 우리 제1기 졸업생들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크네. 며칠전에 전술훈련판정이 있었는데 신통히도 우리 동무들이 배치되여 간 소대들이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질 않았겠나.

항일투사인 우리 대대장동진〈역시 정규교육을 받은 소대장이 달라. 동무네 소대의 전투준비는 내 마음을 푹 놓겠소.〉하며 날 자기의 어깨우에 목말 태우고 지휘부운동장을 한바퀴 돌기까지 했다네.

그때 왜서인지 자네 생각이 나더군. 우리들중의 가장 우수한 졸업생이였던 자네가 만약 이곳에 있었더라면 아마 대대장동지가 아니, 련대장동지가 노상 업고다니자고 했을걸세, 하하···

지금 리승만괴뢰역도의 군사적도발행위는 더욱 빈번해지고있네. 정세는 자네와 같은 군사지휘관들이 전투구분대를 지휘할것을 요구하고있어. 물론 자네가 맡고있는 임무도 중요하겠지만 바야흐로 정규군으로 강화발전될 우리 군대의 현실은 자네같은 사람이 아이들과 씨름질이나 하고있을새가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네.

장군님께서 우리같은 무지렁이들을 품에 안아 키워주시여 어깨우에 별을 달아주셨는데 조국보위의 한길에서 그에 보답을 해야 할게 아닌가.···》

영진은 자랑과 함께 은근한 질책이 담겨져있는 그 편지를 쉽게 접을수가 없었다. 붙는 불에 키질이라고 그 편지는 영진의 마음을 종잡을수없이 마구 흔들어놓았다.

(뭐 아이들과 씨름질이나 하고있다구?···)

하긴 그 말이 영 틀리지는 않는다. 학원에는 일곱살난 코흘리개들로부터 큰 아이들까지 다 있었는데 그가운데는 부모들을 잃고 의지할 곳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성격이 거칠어지고 나쁜 습관이 붙은 아이들도 있었고 또 늙은이들의 손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자란 아이들도 있었다. 일부 어린 아이들속에는 아직 잠자리에 오줌을 싸는 일도 드문하였다.

학원군사교관들은 군사학강의와 군사훈련지도와 함께 학생들의 일상 내무생활지도를 맡고있었는데 아이들이 기상하여 신발을 신고 일어날 때부터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그들의 생활을 걸음걸음 따라다니며 보살펴주어야 하였다. 사실말이지 아이들과 씨름질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보모노릇을 하고있는셈이였다.

물론 영진은 그들이 얼마나 귀중한 아이들인가를 잘 안다.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녀사께서 그 애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주시는가를 매일같이 보고 느끼고있었다. 백산이 한사람을 찾을 때에도 장군님과 녀사께서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시였고 안타까이 소식을 기다리시였던가를 영진은 자기의 체험으로 이미 알고있었던것이다.

이제는 아이들과도 정이 푹 들었다.

장군님께서는 학원군사교관으로 파견되는 자기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전투구분대에 나가 소대를 지휘하고싶다는 솔직한 청을 들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난 영진이에게 련대 아니, 사단을 맡긴셈인데 고작 소대를 지휘하고싶다?! 이제 우리 아이들과 정이 들면 정작 련대장을 시켜도 아마 싫다고 할거야.》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닌게아니라 아이들과의 정이 깊어질수록 차츰차츰 가슴속의 불도 꺼져가는듯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동창생들의 편지를 받거나 그들의 소식을 듣게 될 때면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지군 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마음은 또다시 권총을 뽑아들고 《만세!》의 함성드높이 적의 참호와 고지에로 공격해나가는 구분대의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언제인가 안길을 찾아가 자기의 심정을 슬며시 비쳐보았다가 대번에 퉁을 맞았다.

《아직 떨떨해! 그런 머리통을 가진 사람한텐 소대가 아니라 분대지휘도 맡길수 없어. 자기가 지금 무엇을 지키고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돌아가서 그걸 잘 생각해봐. 다음번에 만나서도 그걸 모르고 떨떨해있으면 아예 군복을 벗기고말겠어.》

더 아무 말도 못하고 안길의 방을 돌아서서 나오긴 하였지만 영진은 속이 내려가지 않았다.

무엇을 지키는가? 그거야 뭐 생각해볼거나 있는가.

학원학생들, 아이들을 지키지··· 아니, 지킨다는 어마어마한 표현까지 쓸것도 없다. 아이들의 코를 닦아주고 세수를 시키고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고··· 한마디로 그들의 생활을 돌보아준다. 기껏해서 대렬훈련을 시키고 사격련습을 시키는것이 고작이다. 여기에 그 누구를 지키고 말고 할것이 있는가.···

영진은 안길을 다시 만나면 이렇게 속을 터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럴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에 요사이 그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자주 앓는다고 한다. 찾아가서라도 만나고싶었으나 병문안 가서 그런 말을 한다는것도 무엇하고 또 학원사업에 짬을 얻기도 힘들어 이렇게 혼자 속을 썩이고있는것이다.

영진은 편지를 군복웃옷주머니에 넣고 터벌터벌 정치부원장 리진영을 찾아갔다. 보안간부학교시절의 스승이며 지금은 직속상관인 그에게라도 자기의 심정을 터놓고싶었다. 정치부원장이라면 자기를 리해해줄것 같았다. 리진영은 사려깊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였던것이다.

중앙보안간부학교에서도 그는 늘 영진을 칭찬해왔고 영진이의 성장에 남다른 관심을 돌려주군 하였었다.

영진은 큰숨을 들이키고나서 정치부원장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응답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규정대로 거수경례를 붙이며 정치부원장에게 보고를 하려는데 그편에서 먼저 반색을 하며 마주 다가왔다.

《허, 범이 제 소리 하면 온다더니 정말 조선속담 그른데 없구만.》

《예?》

영진은 정치부원장방에서 한 녀성의 모습을 얼핏 스쳐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영진동물 부르려던 참이였소. 자, 누가 왔나 보오. 동무들은 구면이라지.》

정치부원장이 그 녀성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였다.

그제서야 영진은 정치부원장이 가리키는 녀성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다음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기쁨으로 해서인지 수집음으로 해서인지 붉게 상기된 얼굴을 다소곳이 수그리며 인사를 하는 그 녀성은 다름아닌 김춘희였던것이다.

《아니, 춘희선생?!···》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그 처녀가 이렇게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백산이 문제로 하여 우연이라고 할지 아니면 필연이라고 할지 하여튼 범상치 않은 인연으로 알게 된 김춘희여서 영진은 드문히 그를 생각해보군 하였다.

방랑생활을 하던 백산이를 데리고가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는 수심에 젖은 처녀에 대한 동정심으로 하여 기억속에 새겨졌고 안길의 지시로 기쁜 소식을 안고 찾아갔을 때에는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에 진정이 어린 눈물을 흘리던 아름다운 처녀에 대한 미더움으로 하여 인상깊이 새겨졌다.

그런데 그런 처녀가 이렇게 불쑥 학원에 찾아온것이였다.

《이렇게 올줄은 정말 생각 못했군요. 저··· 백산이가 보고싶어 왔겠지요?!》

영진은 춘희의 뜻밖의 출현으로 자꾸만 당황해지는 자기의 심정을 서둘러 감추며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하하··· 영진동무가 오늘 별스레 쭐났다?!》

정치부원장이 그에게 한눈을 찔끔해보였다.

그리고는 춘희를 얼핏 일별하며 정색한 어조로 말했다.

《영진동무, 춘희선생은 김정숙동지의 추천으로 우리 학원 문학교원으로 배치되여왔소.》

《예?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영진은 다시한번 크게 놀랐다. 춘희가 학원교원으로 오다니?··· 그것도 다름아닌 김정숙동지의 추천으로···

《영진동무도 알지 않소. 개원식이 있은지 며칠 안되던 날 장군님께서 학원에 찾아오시여 특별반학생들의 수업과 초급반학생들의 수업을 몸소 참관하시였던 일을 말이요. 그때 장군님께서는 교수참관을 마치시고나서 원장동지에게 학생들이 교원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하는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학생들가운데 동북과 함경도출신들이 많고 교원들가운데는 평안도출신들이 많기때문이라고 하시였소. 그러시면서 학생들이 교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제대로 배울수 없다고, 함경도출신교원들을 빨리 료해선발하여 학원에 배치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소. 장군님의 그 뜻을 받들어 김정숙동지께서 몸소 추천하여 보내주신 사람이 바로 춘희선생이요.》

영진은 커다란 충격에 못이겨 한걸음 두걸음 춘희에게로 다가갔다.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축하합니다, 춘희선생!》

《···》

춘희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눈은 뜨거움에 젖어 영진을 보고있었다.

《자 영진동무,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할 말도 많겠는데 어서 함께 나가보오. 춘희선생에게 학원도 보여주고···》

《알았습니다.》

영진은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가만, 그런데 무슨 일로 날 찾아왔댔소? 급한 문제요?》

정치부원장이 이렇게 묻는 바람에 영진은 당황해졌다.

갑자기 자기가 무엇때문에 이 방에 들어섰던지 인차 생각나지 않았던것이다. 한순간이 지나서야 친구의 편지생각이 났다. 그리고 자기가 정치부원장에게 털어놓고싶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제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어쩐지 그런 말을 하기가 저어되였다. 말할 생각이 없어졌다.

《아니, 아닙니다. 아무 일도···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춘희와 영진은 본청사를 나섰다.

락엽이 밟히는 구내길에서 그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구도 선뜻 말을 떼지 못하였다. 정치부원장의 이야기처럼 할말이 많을듯싶었는데 정작 마주서고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영진은 속으로 자기자신을 꾸짖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백산이는 초급반 2학년에서 공부합니다. 공부는 제일 잘합니다. 다른 애들은 기초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나니···》

《그 애 편지를 통해서 나도 영진동지가 학원에 계신다는걸 알고있었어요. 철없는 아이들 생활을 돌보느라 퍽 힘드시겠어요.》

《힘들기야 뭘··· 그저 어깨에 별을 달고 아이들과 씨름질이나 하고있자니 속이 상해 그러지요.》

말해놓고보니 편지의 한구절을 앵무새처럼 외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이게 무슨 꼴이람···

그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 애들은 다 좋은 애들입니다. 우린 단순히 그들의 생활만 돌보는것이 아니라 규률있고 단련된 앞날의 기둥감들로 키워야지요. 학생들이 좋아하겠습니다. 시까지 지을줄 아는 유능한 선생이 와서···》

《어마나, 누가 그런 소릴?···》

춘희가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하하··· 백산이가 그러더군요. 누나가 시를 쓰는데 〈김일성장군의 노래〉가사를 쓴 유명한 리찬선생까지 칭찬하군 했다고요.》

《그 애의 말을 정말로 믿으시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난 비록 시라는게 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천대받던 로동자를 이렇게 혁명의 군복을 입혀 내세워주신 장군님의 은덕을 생각하면 막 세상에 무엇인가 웨치고싶어지군 합니다.》

《호호···》

춘희가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우며 가볍게 웃었다.

《하하··· 엉터리지요?! 어쨌든 됐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학원에 원가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시를 쓰는 춘희선생이 있으니 그 문젠 풀렸습니다.》

《학원원가 말입니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내가 어떻게···》

《물론 당장에야 불가능하겠지요. 하여튼 춘희선생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춘희선생이 학원교원으로 오게 될줄은···》

영진은 정작 이야기를 시작해놓고보니 정말 할 말이 많긴 많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슬며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도 정말 꿈만 같아요. 김정숙동지께서 백산이를 떠나보내고 처녀의 몸으로 혼자 생활하기가 얼마나 외롭겠는가고 하시며 학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쳐주라고 이렇게···》

춘희의 쌍겹진 긴 속눈섭이 촉촉해졌다. 물기에 젖은 그의 눈빛이 더욱 그윽해보였다.

《또 우는군요. 내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는 머리를 들고 세상에 소리치며 살게 될거라고 말입니다.》

《고마웠습니다. 그 말이 정말··· 고마웠어요.》

감사의 정이 가득 고인 처녀의 눈빛이 얼굴에 닿는 순간 영진은 황황히 고개를 떨구었다.

처녀의 맑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얼굴을, 그 순결한 눈빛을 저도 모르게 이성의 눈길로 보게 되는것이 어쩐지 죄스럽게 생각되였다.

《자, 학원을 돌아봅시다.》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