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2

 

 

제 4 장

2

 

그것은 집이 아니였다.

지붕도 없고 처마도 없고 창호지를 바른 문짝도 없는 다만 입구에 가마니짝을 쳐놓아 그안에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있다는것을 겨우 알수 있는 그리 크지 않는 동굴이였다.

그러나 연형묵에게 있어서 이곳은 집이였다. 그것도 15살이 되는 올해까지 근 7년째나 살고있는 정이 든 집이였다.

동굴바닥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서있을 정도로 깊이 파내고 거기에 통나무들을 가지런히 붙여놓고 칡넝쿨로 든든히 비끄러매놓았다.

통나무우에 가랑잎을 두텁게 깔고 역시 가마니짝들을 올려놓았다.

그우에는 목침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한쪽벽에서는 대낮에도 광솔불이 타고있다. 오소리사냥이 잘될 때에는 드문히 오소리기름을 쓰기도 한다. 형묵이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왕청오지의 인적없는 깊은 이 산중에 들어올 때에는 겨우 8살이였다.

한낮에도 해빛 한점 보기 힘든 울울창창한 심심산속에서 그는 할아버지를 도와 화전을 일구고 덫을 놓고 함정을 파서 산짐승들을 잡으며 자랐다.

짐승가죽들은 그늘에 말리웠다가 장날이 오면 할아버지가 40여리길을 내려가 량식과 그밖의 생활용품들을 바꾸어오군 하였다.

그런 속에서 형묵의 잔뼈는 굵어졌고 이젠 제법 나이에 비해 키도 커서 사내꼴이 다 잡혔다.

반면에 할아버지는 늙어갔고 이즈음엔 자주 앓군 하였다.

오늘도 형묵은 앓아누운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한술두술 미음을 떠넣어주고있었다. 손자의 지성을 묵묵히 받고있던 할아버지가 천천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더 못 먹겠다.》

형묵은 미음그릇을 내려놓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근심스레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 이번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인가를 찾아 내려가자요. 의원이 있는 곳에 가서 살아야 병도 보이고 치료도 받지요.》

《아서라, 전날에 장에 내려가 들으니 조선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란리가 났다더라. 그 험한 판에 내려가 집도 없이 땅 한뙈기 없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겠니. 그래도 여기엔 우리 화전이 있고 짐승잡이래도 마음놓고 할수 있지 않니?》

《할아버지두 참, 왜놈들이 망해자빠진지도 이태짼데 아무렴 살아가지야 못하겠나요? 난 이젠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이제라도 그전에 우리가 살던 봉오골에 내려가···》

《음···》

할아버지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그제서야 형묵은 자기가 그만 할아버지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봉오골소리만 나오면 할아버지는 얼굴이 컴컴해지고 두손에 풍이 인듯 후들후들 떨군 한다.

형묵은 한살두살 나이가 들면서야 비로소 할아버지의 그 고통스러운 심정을 조금이나마 리해하기 시작하였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봉오골은 아들, 며느리의 원혼이 사무쳐있는 아물지 않는 마음속 상처의 대명사였던것이다.

형묵의 아버지 연희상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후 항일무장투쟁로선의 실현을 위하여 지하혁명조직에서 오중화와 함께 싸운 혁명가였다.

1933년 5월 어느날 그는 조직의 지시를 받고 고향마을인 봉오골에 내려왔다가 변절자의 밀고로 그만 왜놈들에게 체포되였다.

놈들은 그에게 갖은 고문을 들이대였으나 조직의 비밀을 한마디도 뽑아낼수 없게 되자 악에 받쳐 오막살이집에다 가두어넣고 불태워죽였다.

악독한 놈들은 유해도 가져가지 못하게 보초까지 세워놓고 그곁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는데 어느날 할아버지는 놈들의 눈을 피해 깊은 밤중에 화형터에 가서 재무지를 헤치고 덧이를 표적으로 삼아 아들의 유해를 찾아내였다. 그리고는 두루마기자락에 싸안고 나왔는데 그만 가야허다리우에서 놈들에게 붙들리게 되였다.

짐승같은 놈들은 달려들어 할아버지를 차고 때려 쓰러뜨려놓고는 아들의 유해가 담겨져있는 그 두루마기를 빼앗아 가야허의 세찬 강물속에 처넣어버렸다. 운신하기조차 힘겨운 몸으로 강물속에 뛰여들었으나 검푸른 강물은 벌써 유해를 삼켜버리고 무심히 흘러가고있었다.

그때 형묵은 세상에 태여난지 일곱달밖에 안되였었다.

왜놈들은 빨갱이의 씨를 말리우겠다고 악착스레 덤벼들었는데 어머니는 그를 바구니에 숨겨가지고 놈들의 눈을 피해다녔다.

그러다가 연형묵이 네살잡히던 해 끝내 놈들에게 체포되게 되자 어린 아들을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고는 숨이 지고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의 복수를 위해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싸웠던것이다.

형묵이는 이 모든 가슴아픈 사연을 지금 살고있는 동굴집에 들어온 날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앞에서 두번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하나 연씨가문의 단 한점 씨앗인 어린 손자를 죽이지 않고 살리려고 자신을 다 바쳐 애쓸뿐이였다.

험악한 세월이였다. 인간세상에서는 야수같은 왜놈들이 손자의 목숨을 노리고있었고 깊은 산속에서는 사나운 맹수들이 덤벼들군 했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형묵은 절대로 자기 품에서 내여놓을수 없는 존재였다. 연씨가문의 대가 영영 끊기울것 같았다. 비록 인제는 제손으로 화전도 뚜질줄 알고 산짐승도 잡을줄 알만큼 자랐지만 할아버지의 귀전에서는 언제나 가야허의 강물속으로 《첨버덩···》 하고 떨어지던 아들의 그 유해소리가 섬찍섬찍 들려오는듯싶었다.

《할아버지, 내가 잘못했어요. 다신 내려가 살잔 말 안할게요.》

할아버지의 떨리는 손이 그의 손등을 어루쓸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형묵아, 퉁소를··· 불어라.》

형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침곁에 놓여있던 퉁소를 집어들었다.

구성진 퉁소소리가 마가을의 락엽을 흔들며 산중에 울리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오늘따라 별스레 자기의 퉁소소리가 처량하게 들리였다.

할아버지가 형묵에게 산귀신으로서의 생존방법이외에 유일하게 배워준 인간세상의 재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퉁소였다.

어떤 연고로 해서인지 젊어서부터 퉁소를 잘 불었다는 할아버지가 화전밭김을 맬 때면 이쪽밭 한끝과 저쪽밭 한끝 나무가지에 퉁소를 매달아놓고는 한고패 되돌아설 때마다 휴식삼아 불게 하군 하였던것이다.

그렇게 배운것이 이제는 제법 할아버지의 퉁소소리에 못지 않았다.

한곡조 다 불고난 형묵은 할아버지의 퉁소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불었으면 좋겠네.》

할아버지는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래일이면 자릴 털고 일어날테니 그때 같이 불자꾸나.》

《그러자요. 난 할아버지의 퉁소소리가 제일 좋아요.》

《원, 녀석두···》

할아버지의 눈굽에 축축한 물기가 고였다.

그는 손자의 부축을 받아 안깐힘을 다해 일어나앉았다.

그리고는 형묵이의 더부룩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측은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아무래도··· 더 누워있지··· 못하겠다. 강심을 먹고··· 일어나 앉아야지. 내가··· 죽으면 그 누가 너를··· 돌봐주겠니.》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