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11

 

 

제 4 장

11

 

동북의 겨울은 사나왔다.

그러나 이 사나운 겨울속에서 동북연변일대에는 만주력사상 보기드문 평화시기가 도래하였다. 장개석군대는 만주에서도 혁명세력이 제일 강한 연변일대를 점령하려고 미쳐날뛰였으나 끝내 철통같은 방어진을 돌파하지 못하고 돈화계선에 멈추어섰다가 그나마 장춘, 심양일대로 쫓겨나고말았다. 방어선이 해체된 연변일대에서는 점차 정치경제적안정을 이룩하고 조선사람들의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합법화하기 위한 사회적토대가 구축되고있었다.

연변전원공서 전원으로서의 림춘추의 사업은 1948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범위가 넓어졌고 그 내용도 심화되였다. 그러나 그 방대하고 복잡한 사업중에서도 림춘추가 첫째가는 관심과 정력을 기울인것은 혁명가유자녀들을 찾아 조국에 보내는 문제였다.

이제는 더러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한사람한사람 힘겹게 찾아낸 아이들도 있었다. 아직은 그런 아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찾는족족 제마끔 뿔뿔이 조국으로 보낼수도 없는것이여서 그는 공서주변에 그 애들을 위한 숙소를 마련해놓고 따로 림시학교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는데 비용과 품은 많이 들겠지만 그래야 아이들을 한데 모아 안전하게 조국으로 보낼수 있었고 사전교양과 또 당장 그 애들의 생활을 보장해줄수 있었던것이다.

림춘추는 회의를 할 때와 현들에 지도사업을 내려갈 때마다 유자녀 찾는 문제를 재삼 강조하군 하는것을 한번도 잊지 않았으며 아래일군들에게 사업상과업을 줄 때에도 수첩을 펼쳐들고 그곳에 가면 누구누구의 유가족이 있을수 있으니 꼭 소식을 알아오라는 당부를 하군 하였다. 때로는 자신이 직접 신들메를 매고 며칠씩 동만의 산재부락들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어떤 날은 길을 헛들어 온밤 눈덮인 수림속을 헤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비적화된 패잔병들과 맞다들리여 총격전을 벌리기도 했다. 유자녀들을 찾는 일은 결코 헐한것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물러설수는 더욱 없는 일이였다. 언제까지 그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제발로 그들을 찾아다녀야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다른 사람이 아닌 림춘추 자기를 동북에 파견하신것은 그 무엇보다도 동북에서 싸운 투사들 거의모두를 바로 자기가 알고있다는 점을 특별히 중히 여기셨기때문일것이다. 그들을 잘 아는 사람만이 그들의 자식들을 찾을수 있다는것은 자명한 리치였던것이다.

장군님의 그 믿음을 헛되이 할수는 없었다. 혁명렬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그 동지적사랑과 의리를 림춘추 자기가 중도에서 끊어지게 할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의 정력적인 노력은 차츰차츰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2월 초순에 들어서서는 지금껏 막연하던 박길의 아들과 심병윤가족의 행처 그리고 오태희로인일가의 행처를 찾을수 있는 가망도 보이였다.

물론 아직은 가망에 지나지 않았지만 행처의 실마리를 쥔것만도 그로서는 다행으로 생각되였다.

그런데 왕청 봉오골에서 희생된 연희상의 아들 소식만은 아직도 묘연했다. 몇번이나 발길을 했으나 매번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오늘도 림춘추는 또다시 왕청현으로 갔다. 그중 행처의 실마리가 뚜렷한 오씨집안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연변전원으로 사업을 시작하던 초시기에 신변안전대책을 세워준다면서 길동군사령부에서 부관으로 보내준 연동무와 함께 피신한 오씨일가의 행처가 있다는 곳을 찾아 왕청오지의 길고긴 골짜기를 헤쳐나갔다.

왕청사람들이 자기네 고장의 특징을 말할 때 《현장의 연설이 길고 소학교의 길이가 길고 골짜기가 긴것이 유명하지요.》라고 한다더니 아닌게아니라 가도가도 끝이 있을상싶지 않은 골짜기는 절반길도 축내지 못했는데 림춘추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이거 혹시 우리가 미궁으로 들어가는건 아닙니까?》

20대의 날파람있는 연부관마저 앞에서 눈길을 헤치느라 지쳤는지 나무가지를 지팽이삼아 짚고 따라오는 림춘추에게 숨을 톺으며 물었다.

《설사 미궁이라도 가야 해. 조급해하지 말고 앞을 잘 살피면서 걸으라구. 사람의 발자취가 꼭 나질거야. 연동무, 난 말이야. 빨찌산시절에 늘 기본대오와 한 500메터가량 뒤에 떨어져서 행군하군 했는데···》

《아니, 그건 왜 말입니까?》

《왜라니?! 각종 문서와 자료수첩들이 불룩한 무거운 배낭을 멘데다가 잊어버릴수 있는 문제들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넣군 하며 행군하다나니 어쩔수없이 그렇게 되군 하였지. 그러다나니 종종 대오를 잃어먹군 했는데 그럴 때면 눈과 귀, 코를 딱 도사리고 흔적, 소리, 냄새를 가려 방향을 찾군 했소. 아무리 숨어산다 해도 사람이 사느라면 그러한것들을 감출수 없는 법이야.》

림춘추는 이렇게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또다시 걸음을 내짚었다.

눈덮인 골짜기는 그들의 행군속도를 점점 더디게 만들었다. 어떤데는 골짜기에 쌓인 눈이 허리까지 묻어버려 슬몃슬몃 눈을 다지며 넘어서기도 해야 했다. 그들은 준비해가지고 떠났던 주먹밥으로 대충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두사람 다 녹초가 되다싶이 하였으나 해떨어지기 전에 그들의 행처가 있다는 곳에 가닿을 심산으로 조금도 행군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가만, 림전원동지, 이게 뭡니까? 이게 사람의 발자국이 아닙니까?》

여직껏 말하는것조차 힘들어 입을 꼭 다물고 걷고있던 연부관이 갑자기 큰소리로 웨쳤다. 림춘추는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갔다.

《옳구만. 분명 곰이나 승냥이의 발자국이 아닌 사람의 발자국이요. 이 근방에 사람이 살고있는것이 틀림없소. 혹시 우리가 찾는 그들일수도 있소.》

《보십시오. 발자국이 골짜기를 가로질러 저 산등성이로 나있습니다.》

연부관이 활기를 띤 목소리로 말하며 손짓으로 가리켰다. 림춘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등을 툭 쳐주었다.

《이 친구가 이젠 제법 빨찌산식행군법을 다 터득했는걸. 좋아, 우리도 그리로 올라가자구.》

사기가 난 그들은 그 발자취를 따라 산등성이에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올려다볼 때에는 흰눈에 덮여 그런지 밋밋해보이던 산등성이가 오르면서 보니 보통 가파롭지 않았다. 거기에다 발밑이 여간 미끄럽지 않았다.

말그대로 네발걸음을 하다싶이하며 산등성이에 거의다 이르렀을 무렵 림춘추는 자기의 발밑을 지지해주던 나무그루터기같은것이 위태위태하더니 뿌리채 뽑히우는감을 느꼈다. 미처 그 느낌을 확인해볼 사이도 없이 온몸이 뒤로 허궁 들리우더니 쿵 하고 나가 떨어지며 비탈길로 굴러내렸다.

《림전원동지!··· 림전원동지!···》

연부관이 놀라 소리치며 다급히 손을 뻗쳤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기운이 다 빠져버렸던 림춘추는 바위에 튕기고 나무그루터기들에 찢기우며 골짜기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산등성이에 한벌 덮여있던 면사포같은 흰눈은 험준한 산비탈의 자태를 감추어놓은 한갖 눈속임이였을뿐 림춘추의 커다란 체구를 멈추어세우는데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연부관이 연방 소리쳐부르며 그가 쓰러진 골짜기밑으로 따라내려왔다.

《림전원동지!》

그가 부둥켜안았으나 림춘추는 그저 무겁게 몸을 실을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이미 의식을 잃었던것이다.

무심한 왕청의 긴 골짜기는 마치 무덤속처럼 고요하였다.···

×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귀틀집의 광솔불밑에서였다.

향긋하면서도 매캐한 송진타는 냄새가 그의 눈앞에서 너울너울하던 이상스러운 환영의 그림자를 휘저으며 문득 사람들의 목소리를 실어왔다.

《정신이 들려는가보네. 이것 보라구, 신음소릴 내지 않나.》

(귀에 선 저 목소리는 누구의것인가? 늙은이 같은데?···)

《림전원동지, 정신차리십시오. 림전원동지.》

(아, 연부관! 이건 연부관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그는 슬며시 눈을 떴다. 자기를 지켜보는 눈빛들을 마주보았다.

《여기가··· 어디요?》

《림전원동지, 바로 그 오태희할아버지네가 살고있는 곳입니다.》

《그렇소?···》

림춘추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옆구리가 뜨끔뜨끔해오고 팔다리가 쑤셔나는통에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이보라구 젊은이, 임잔 몹시 상했네. 푹 안정해야 해.》

오태희로인이 이불깃을 여며주며 근심어린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마침 곰열을 건사해두었던것이 있어 풀어먹였으니 어혈이 오래가진 않을거네. 팔에 난 상처는 아물면 일없겠고 다리뼈가 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로인님, 고맙습니다.》

《고맙긴. 림전원이 이 늙은것을 찾아 수십리길을 오다가 이렇게 되였는데 인사야 되려 내가 해야지. 내 이 젊은이한테 다 들었네.》

오로인은 옆에 앉은 연부관에게 얼핏 눈길을 주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임자가 우리같은것들을 찾기 위해 장군님의 특명을 받고 온 직하부하라는것을 말이네. 장군님께서 여직 우리들을 잊지 않고계시다니···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지가 언젠데···》

《로인님, 장군님께서는··· 혁명을 위해 귀중한 자식들을 다 바친 오씨집안사람들을··· 한시도 잊으신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데 있습니까?》

림춘추는 연부관의 부축을 받아 상반신을 벽체에 기대고나서 조용히 물었다.

《웃목에서 자고들 있네. 이 사람이 자넬 업구 나타났을 땐 저 불쌍한것들이 자기들을 잡으러 왔나부다하고 겁에 질렸더랬지. 허허··· 저기 꼬부리고 자는 년은 중흡이의 딸이구 그옆의 녀석은 중화의 아들이구 또 그옆의 녀석은 중선이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던 오태희로인은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고 목소리가 갈려왔던것이다.

이제는 슬픔도 다 굳어져버린줄 알았더니 장군님께서 아직도 그들의 희생을 아파하시며 이렇게 그 자식들을 찾고계신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로인님, 장군님께서 저 애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찾고계시는지··· 아십니까?》

림춘추는 몸만 움직일수 있다면 한걸음에 달려가 그 애들을 와락 그러안고싶었으나 그럴수 없어 정찬 눈길로 아이들의 모습을 어루쓸며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런 아이들을 위해 유자녀학원을 세우시고 지금 고향 만경대에는 저 애들이 살 궁궐같은 학원교사를 지어주고계십니다.

로인님은 이제 저 애들이 제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자라나는··· 행복한 미래를 보시게 될겁니다.》

《고마우이, 고마워. 하지만···》

오로인은 설레설레 수염발을 흔들었다.

《아니 할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연부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장군님께서 나라정사를 돌보시느라 오죽이나 바쁘실텐가. 저 많은 아이들이 가서 그분의 팔에 매달리는것만도 큰 부담이 될텐데 우리 늙은것들까지 매달린다면···

내 유격구시절부터 장군님의 성정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하는 말이네. 그분께선 마음을 쓰시구 또 쓰실거네. 내 해방된 조국땅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그분의 짐을 덜어드릴 자식이 하나만이라도 살아있다면 마음가벼이 가겠네만···》

로인의 진정이 스민 목소리는 절절하게 울렸다.

《로인님!···》

림춘추는 로인의 그 고결한 마음앞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리고 쉽게는 그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음을 깨달았다. 우선 아이들만이라도 조국으로 보내놓고 보아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로인님, 아이들은 저희들이 인차 조직사업을 해서 학원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구 원래 사시던 곳으로 내려가십시다. 이미 잘못 처리되였던 문제들이 다 바로잡혔습니다. 이젠 마음을 놓고 사셔도 됩니다.》

《우리야 인제 살만큼 다 살았으니 뭐이 걱정이겠나. 그저 저 애들때문에 이렇게 마음 못 놓고 살았던거지.》

로인은 다시금 잠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뜯어보고나서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엊그제 한 녀석이 없어졌네그려.》

《예―에?》

림춘추는 몸이 솟구칠듯이 놀랐으나 상처의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수 없었다.

《글쎄 국철이녀석이 온다간다 소리없이 달아나질 않았겠나.》

《국철이라면?···》

《오중성의 아들이지. 원, 뿔난 망아지같은 녀석!···》

《저··· 어디 갔음직한데가 짐작되는 곳은 없습니까?》

연부관이 로인에게 바투 다가앉으며 물었다.

오태희로인은 가늘게 눈살을 쪼프리고 광솔불을 올려다보았다.

이따금 탁, 탁··· 송진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십중팔구··· 조국으로 나갔을거네. 언제부터 혼자서라도 장군님을 찾아가겠다구 들썩들썩 하는걸 욱박질러 겨우 눌러놓군 했었는데···》

《그러니 그 애가 혼자서?!···》

림춘추는 저으기 근심에 싸여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걱정말게. 가다가 못 가면 되돌아오겠지. 하긴 그녀석이 제 아버질 닮아서 한번 마음먹은건 꼭 해내고야마는 성미이긴 하네만···》

로인은 그를 위안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화로불우에 손을 가져다대보더니《열을 더 내야겠군.》하며 멍석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숯을 더 가져다가 화로에 알맞춤히 넣었다.

《땀을 푹 내서 어혈을 풀어야 하네. 비록 루추하긴 하지만 내 집에서 며칠 몸조리를 하고 떠나게.》

그는 림춘추를 부축하여 화로가까이에 눕히며 말했다.

《난 래일 아침 떠나야 합니다. 아직 찾아야 할 유자녀들과 해야 할 사업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림춘추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오태희로인은 성난듯 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림전원, 자고로 이 오씨집에서는 장군님의 부하들을 그렇게 돌려보낸적이 없네. 그 몸으로는 안돼!》

그는 이렇게 말하며 부저가락으로 숯덩이들을 뚱겨놓았다.

오로인의 마음처럼 뜨거운 열기가 림춘추의 얼굴에 화끈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