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8

 

 

제 3 장

8

 

그들이 경상골의 어느 조용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같이하게 된것은 순수 우연이였다.

만경대혁명학원청사설계문제를 놓고 방에 찾아온 김책으로부터 엄한 추궁을 받고나서 좋지 못한 심기로 퇴근길에 올랐던 허가이가 종로네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거리고있는 오기섭을 보고 차를 세웠던것이다.

《오동무, 날도 저물어오는데 여기서 누굴 기다리고있는거요?》

《운전사녀석이 어디 자유주의를 했는데 내 기다리다 못해 걸어서 집에 가다가 혹시나 해서 이러고있질 않소.》

오기섭의 말을 들으며 허가이는 불쑥 그가 얼마전에 자기 딸을 학원입학대상자명단에 넣었다가 말밥에 올랐던 일이 생각났다.

《자유주의야 운전사들의 제2천성인데 그쯤해두구려. 자, 어서 타시오. 이렇게 만났던김에 저녁식사나 같이하기요.》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오기섭이 군말없이 차에 올랐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우연히 한자리에 마주앉게 되였다. 원래 그들은 서로 경원시하면서 별로 알은체를 안하고 지내오던 사이였다.

허가이는 오기섭의 지방주의적이며 분파적인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었고 쏘련에서도 한물 푹 진 낡아빠진 리론을 거들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촌닭보듯 해왔었다.

오기섭은 또 그대로 쏘련군대를 따라나와 로어번역원이나 하던 허가이가 어느 가맹공화국에서 구역당사업을 했었다는것을 코에 걸고 한때 당안의 자기 자리를 차지한걸 아니꼽게 여겨온터였다.

그러나 한잔두잔 독한 술이 속에 들어가고나니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그 어떤 필요로 하여 오래전부터 꼭 만나고싶었던것처럼 생각되였다.

허가이는 키가 작달막하고 목이 앙바틈한 오기섭의 더부룩한 머리를 내려다볼사 하며 핀잔조로 말했다.

《내 생각엔 오동무가 처신을 좀 잘해야겠소. 뭐, 딸을 유자녀학원에 넣으려다가 되게 비판을 받았다면서? 오동무의 딸이 그 학원에 입학대상이 될게 뭐요?! 말그대로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한 학원인데···》

오기섭이 취기가 오른 두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일종의 동정비슷한걸 보고는 하소연으로 넘어갔다.

《허동무, 난 일제의 총칼이 란무하는 국내에서 장기간 혁명을 한사람이요. 나의 감옥생활년한만도 모두 합치면 13년이나 된단 말이요. 내가 지도한 홍원땅의 농조운동과 소작쟁의가 좀 적게 피를 흘린줄 아오?》

《그런데 간부문건을 보니 오동무도 한때 로씨야에 가있었고 또 1940년대에는 만주에 은신해있었더구만.》

《···》

허가이는 자기와 같이 해외에 있다가 온 사람들을 무시하는듯 한 그의 말에 은연중 기분이 상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말문이 막혀 가늘게 볼편을 떠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곧 말머리를 돌렸다.

《하긴 농조운동이나 소작쟁의를 허술하게 보면 안되지. 그러나 오동무야 죽지 않고 살아있질 않소.》

《살아있는 독립군령감의 자식은 되고 내 자식은 안된단 말이요?》

《허허··· 월송선생을 념두에 둔것 같은데 그 령감의 사정은 좀 특수하오.》

《그 말인즉 그 령감이 이 오기섭이보다 더 특수한 존재라는건데?! 그런 령감의 자식까지 혁명가의 자식으로 떠받들리우는데 그래 이 오기섭이 같은 로혁명가가 응당한 대접을 받을수 없단 말이요?》

허가이는 흥분이 살아오른 그의 술잔에 술병을 기울여 다시 가득 채워주었다.

《그 말은 옳은데 그렇게 자기 개인감정을 섞어가지고는 원칙적인 날이 서지 않는거요. 털어놓고 말해서 그 학원에 세상에 알려진 큰 혁명가의 자식들이 몇몇이나 있소?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와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들의 자식이라면 누구나 가림없이 다 품어주신단 말이요. 정말 인정이 남다르신분이지. 그 인간성에는 나도 깊이 머리숙여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요. 하지만···》

그는 오기섭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건 혁명적원칙성이 아니겠소. 지금 조선혁명은 사회주의의 모국인 쏘련의 기성경험을 도약대로 해서 하루빨리 사회주의국가를 창건하고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를 다그쳐야 할 원칙적인 문제들에 직면해있단 말이요. 막대한 시간, 막대한 자금, 이 모든것을 여기에 기울여야 하는거요. 난 쏘련에서 집권당의 합법적인 당사업을 해본 경험을 가진 조선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이걸 주장할수 있소.》

허가이는 저도모르게 자기의 말에 도취되여버렸다. 그러다가 자기의 말이 오기섭의 기분을 좀 거슬려놓고 또 그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어졌음이 느껴져 기운차게 손에 들었던 술잔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이보우 오동무, 큰사람답게 자식문제는 대담하게 잊어버리오. 아, 큰 간부들의 자식들이야 그 학원보다 더 급수높은 학교를 세워 교육하는게 낫지. 사실 세상이 다 아는 큰 혁명가들이야 지금 간부들속에 있는게 아니겠소.》

《그건 사실이요.》

오기섭이 안색을 풀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니 오동무도 그런 소소한 개인문제때문에 원칙적인 선에서 탈선하지 말라는거요.》

《탈선이야 무슨···》

《내 사실 오동무를 만나기 전까지 김책동무와 론쟁을 하다가 나오던 길인데···》

허가이는 좀전에 있은 김책의 비판을 론쟁이라고 해버렸다.

《왜 계속 학원창립의 시기상조를 주장하면서 달가워 안하는가 하더군. 아마 학원청사설계도면문제를 놓고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이 좀 있은 모양이요.》

《에, 에··· 난 그 량반과만 마주서면 어쩐지···》

오기섭은 빈 술잔을 든 손을 황황히 내저었다.

《그래도 할 말이야 해야지. 오동무도 학원문제와 관련해서 로동기술학원과 같은 좋은 해결책을 내놓았던 사람이 아니요.》

《아, 그거야···》

오기섭은 그거야 당신이 귀띔해준게 아닌가고 말하려다가 허가이가 말을 짜르는통에 중둥무이하고말았다.

《사실 그거야말로 안팎으로 실리에 맞는 방도였단 말이요.》

《하지만 어찌겠소, 인제야 아이들도 모여왔구 또 개원식날자까지 정해놨는데.》

《그래서 더러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있소. 학원이라는게 단순히 유자녀들문제만이 아니란 말이요. 앞으로 세워질 공화국정권의 성격을 미리 세상에 선보이는것이나 같단 말이요. 무엇을 전통으로 삼고 무엇을 계승하려고 하는가. 왜냐하면 그 학원의 미래이자 이 나라의 미래가 아니겠소?!

···그런데 지금의 학원모양을 보면 친쏘우호적인 성격보다 독립자존의 성격이 더 강하거던.》

허가이는 자기가 진실로 우려하는 점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오기섭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하긴 아무 나라에서나 내각의 구성을 보면 그 내각의 성격과 립장을 알수 있는것과 같은 리치라고 볼수 있구만.》

《역시 모스크바공산대학졸업생이 다르군. 난 오동무와 같은 현명한 리론가들이 오늘 우리 나라가 처한 사회정치적 및 경제적난문제들을 원칙적으로 해결하는데서 용의주도하게 활동해야 한다고 보오.》

《허동무, 그건 조금도 근심마오. 우리끼리니 말이지 사실 김책이나 안길이 같은 빨찌산들이야 산에서 총이나 쐈지 언제 우리처럼 공부를 했어야 리론이 있지?!》

《아, 뒤에서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소? 자, 술이나 마시기요.》

그들은 다같이 서로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소리가 나게 술잔을 맞쪼았다.

그러고보면 그들이 이 조용한 음식점에 서로 마주앉게 된것은 순수 우연이였지만 마주앉고보니 그들에게는 그것이 필연이였던듯이 생각되였다. 더우기 오기섭은 뼈에 절은 종파적습성으로부터 아직은 자기의 지반이 없다고 보아지는 허가이를 바싹 끌어당겨 영향력을 확대해볼 야심을 품었다. 이러한 종파적야심으로 하여 오기섭은 그후 끝내 반당반혁명의 길로 굴러떨어지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