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6

 

 

제 3 장

6

 

리종익은 평양으로 올라오라는 련락을 받고 원산을 떠날 때까지만 하여도 도무지 영문을 짐작할수 없었다.

그저 자기가 만나야 할 사람이 북조선인민위원회 김책부위원장이라는것으로 미루어보아 근 한달전 권고사직을 받고 집에 들어와있을 때 우정 시간을 내여 찾아와 그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었다는데로부터 은연중 고맙다는 생각을 품었을뿐이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기대를 가진것은 아니였다. 사실 리종익은 집에 들어온 후 렴치없는 생각인줄 알면서도 자기 문제가 다시 상정되여 해결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가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늙으면 다시 아이가 된다더니···) 하고 그는 허구프게 웃고말았다.

김책이라고 이제 어떻게 자기같은 사람을 도울수 있으랴?!

나이가 들어 집에 들어가는거야 당연한 리치가 아닌가.

아마 평양에서 자기를 부른것은 십중팔구 여생이나마 좀더 편안하게 해주고싶어서일것이다. 하지만 인제야 평양이면 어떻고 원산이면 어떠하랴.

그는 그래도 자기같은 사람을 잊지 않아준 김책에게 사의도 표시하고 또 마지막으로 옛 친지들도 만날겸 해서 내키지 않는 걸음이였지만 차에 올랐다.

정말이지 그는 김책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를 부른분이 다름아닌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는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지금 선생을 기다리고계십니다. 자, 어서 가십시다.》

리종익은 얼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김책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뜻밖의 현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슬그머니 턱을 꼬집어보았다. 아픔이 느껴졌다.

김책이 빙그레 웃으며 다시금 그를 재촉했다.

《제 말이 잘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언제 사연을 설명하고있을새가 없습니다. 장군님께선 아침 첫시간부터 집무실에서 선생을 기다리십니다.》

《예― 에?》

비로소 현실이 믿어졌다. 동시에 심장의 박동이 쿵 쿵 느껴졌다.

그가 김책의 뒤를 따라 장군님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창문으로 비쳐드는 눈부신 아침해살에 온몸이 휩싸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빠른 걸음으로 마주오시였다.

그 젊으신 모습, 그 환하신 미소··· 마치 눈부신 해빛이 그대로 자기에게로 다가오는듯싶었다.

그는 그렇게도 흠모하여마지 않던 장군님을 직접 만나뵙게 된 감격과 기쁨으로 하여 눈앞이 뿌잇해짐을 느끼며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장군님, 제 리종익입니다.》

《더울 때 차를 타고오시느라 고생했겠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다정하게 물으시는 말씀이였다.

《일없습니다, 일없습니다.》

리종익은 안경테에 맺혀지는 눈물방울을 얼른 훔치며 이렇게 곱씹었다.

《리종익선생은 장군님께서 직접 부르셨다는 저의 말을 잘 믿지 않더군요. 글쎄 슬그머니 턱까지 꼬집어보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입니다, 하하···》

김책이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려는듯 일부러 흉내까지 내며 큰소리로 웃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종익의 손을 꼭 잡으시였다.

《사실 내가 이미전에 만나봤어야 하는건데 시간을 낼수 없어 이렇게 선생을 놀래웠습니다. 량해해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빼앗겼던 이 나라를 찾아주시느라 혈전만리 고군분투해오신 장군님께 제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함이 마땅한 도리였습니다. 그런데 해방년이 이태가 지나도록 인사는커녕···》

그는 평양으로 올라오며 별치 않은 일신상의 문제만을 생각한 자신이 죄스럽게 여겨져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인사는 오히려 내가 해야 합니다. 선생이야 일찍부터 안중근과 함께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성전에 나섰던 선각자구 애국지사가 아닙니까.》

《장―군―님!》

리종익은 끝내 목이 꽉 메여왔다.

자기자신까지도 성쌓다 남은 돌처럼 여겨온 인생을 이렇듯 값높이 평가해주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였다.

《진정하십시오. 자, 어서 여기 편히 앉으십시오.》

리종익은 장군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김책이 떠다주는 고뿌의 물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그러고나니 좀 마음이 진정되는듯싶었다.

이윽하여 김일성동지께서도 그의 맞은켠 의자에 앉으시였다.

《우리는 선생이 그 애국의 한생을 계속 빛내여나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선생만 다른 의견 없다면 만경대혁명학원 초대원장사업을 맡기려고 합니다.》

《예? 원장사업을 말입니까?》

리종익은 다시금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으나 리종익은 잘 믿어지지 않는듯 다만 그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그도 도교육부장사업을 할 때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한 학원이 세워진다는것과 김일성장군님께서 학원창립문제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깊이 관심하신다는것을 여러 기회를 통해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그런 국가적의의와 관심이 돌려지는 중요한 교육기관사업을 자기가 맡게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였다.

그는 장군님께 량심적으로 말씀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장군님, 나같은게 어떻게 그런 중임을 감당해내겠습니까?》

《다름아닌 선생이기때문에 해낼수 있습니다. 선생이야 반일애국투쟁에도 참가했고 또 교육사업을 해본 경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야 나 말고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러시고는 천천히 책상주위를 거니시였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더러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김책동무에게서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시간을 끈건 좀더 심중하게 알아보고싶어서 그랬습니다.

사직을 당한 선생이 무거운 마음으로 생활하고있으리라는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장군님, 저같은거야 무슨··· 하지만 그토록 중요한 일을 제 자식도 길러본적이 없는 저에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막으시며 다정히 어깨를 잡아 의자에 다시 앉혀주시였다.

《아닌게아니라 그 일이 너무도 중요하고 무겁기때문에 원장을 선발하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선생을 학원원장으로 선발한것은 선생이 부모없는 학생들을 남달리 사랑하고 따뜻이 돌봐줄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입니다. 더구나 선생에게는 자식이 없다니 그 애들모두를 자기 친자식처럼 여기고 돌봐줄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할 말로 원장에게 친자식이 있으면 학원학생들을 자기 자식과 차별할수도 있고 자식들이 〈아버지, 아버지〉하면서 원장을 따라다니면 부모없는 학원학생들이 부러워하고 서러워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학원아이들에게는 친아버지처럼 자그마한 간격도 없이 따를수 있는 원장을, 선생에게는 마음껏 사랑을 줄수 있는 끌끌하고 귀여운 자식들을 안겨주자는겁니다.》

진정에 넘친 그이의 사려깊으신 말씀에 리종익은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마디마디에 다심하고도 세심한 어버이의 사랑이 뜨겁게 담겨져있는 그 말씀···

그 말씀은 비단 학원아이들만을 념두에 둔것이 아니였다. 바로 리종익의 인생까지도 따뜻이 보살펴주시려는 고결한 인정이였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제 꼭 장군님께서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시여 맡겨주신 원장사업을 잘해보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는 리종익에게 마치 어린 자식을 선생에게 맡기는 부모의 그 마음으로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리종익선생, 선생이 맡아돌봐야 할 아이들은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하여 피흘린 이 나라 혁명가들과 순국렬사들의 자녀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혁명학원은 단순히 부모없는 아이들을 구제해주기 위한 고아원도 아니고 글이나 깨우치는 학당만도 아닙니다. 학원은···》

리종익은 그이의 절절한 어조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면서 말씀 한마디한마디를 페부에 새기였다.

《···그 애국렬사들의 넋과 전통이 계승되는 곳으로서 명실공히 이 나라의 미래를 키워내는 원종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민족의 장래는 우리가 유자녀들을 비롯한 후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애국정신은 저절로 유전되는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선생이 귀중한 그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잘 돌봐주며 그들을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 키우리라고 믿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탈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오늘부터 난 원장선생에게는 학부형으로 됩니다. 그러니 이 학부형에게 부탁할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허허···》

리종익은 웃었다. 그 웃음은 그의 인생이 다시 시작됨을 알리는 고고성과도 같은것이였다.

하지만 그의 내심에서는 눈물에 젖은 부르짖음이 터져나오고있었다.

버림받던 고목에도 꽃을 피워주시는 장군님이시여! 크나큰 그 품에 운명을 맡긴 이 나라의 미래야말로 얼마나 밝고 창창한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