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5

 

 

제 3 장

5

 

채석장에서는 기관총의 련발사격과도 같은 착암기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 단조로운 소리와 어울려 가락맞게 쩡쩡 정대를 내려치는 함마소리와 《엇싸!》,《엇싸!》하며 흥겹게 소리를 치는 메질군들의 힘먹임소리가 마치 그 어떤 리듬과 장단을 쳐주듯 귀맛좋게 울렸다.

오늘따라 별로 더 성수가 난듯싶은 로동자들이였다. 그들은 지금 휴식시간마저 미루어가며 작업에 열중하고있었다.

문석오는 일손을 놓지 못하는 그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제 김일성장군님께서 이곳 채석장을 다녀가셨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학원건설장에 필요한 석재보장정형을 알아보기 위해 오시였다. 문석오는 처음으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왔다.

《문선생, 이미전부터 한번 만나보고싶었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만났군요. 이름있는 조각가선생에게 돌채취사업을 맡겨놓고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해서 안됐습니다. 그래 건강은 일없습니까?》

다정하신 그 음성은 내성적인 문석오의 마음속을 대번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하여 그는 훌륭한 화실을 꾸려주시고 해주에서 살던 가족들이 평양에 올라와 살수 있도록 큰 집을 마련해주신 장군님께 고맙다는 인사조차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자신이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민족적인 차별과 멸시를 참고견디며 조각칼을 쥔 손에 피멍이 지도록 눈물속에서 미의 세계를 탐구하던 고학시절, 코를 찌르는 곰팡내가 가득한 도꾜의 하숙방···

아, 그 시절에 자기가 갈구한것이 과연 미의 세계였던가?

눈물, 악취, 고통··· 과연 그것이 인간의 건전한 정신과 육체를 그려내는 미의 세계와 그 어떤 인연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마도 그래서 문석오는 자기 모순의 출로를 온갖 불의와 불합리를 한칼에 베여버릴 그런 정의로운 미의 화신, 민족적영웅의 형상에서 찾고싶어했는지 모른다.

일구월심 갈망하던 그 소원을 이룰수 있는 길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 솔직히 그는 당황해졌다. 지금껏 전설속의 영웅으로만 그려보던, 그래서 은연중 범접키 어려운 초인간적형상으로만 그려보던 장군님의 모습이 그처럼 부드럽고 그처럼 사려깊고 그처럼 인정깊으실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것이다. 한갖 흙쟁이, 돌쟁이로밖에 여겨주지 않던 자기를 그분께서 이름있는 조각가선생으로 높이 불러주시며 건강까지 따뜻이 물어주실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했었다.

문석오의 귀전에는 지금도 장군님의 그 음성이 울리는듯싶었다.

《난 림춘추동무에게서 문선생이 자진하여 학원건설에 필요한 석재보장사업을 맡아나섰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고맙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미전부터 뜻을 같이해온 오랜 지기를 만난 심정이라고 할가. 사실말이지 혁명투쟁을 했다는 일부 사람들도 학원건설을 달가워 안하는데 문선생같은 사람이 우리의 마음을 리해해주니 정말 큰 힘이 되였습니다.》

《저 장군님, 실은 장군님의 과분한 치하를 받을만 한 위인이 못됩니다. 장군님께서 마음쓰시는 중대한 일이라기에 선뜻 뛰여들기는 했지만 처음엔 학원건설자재란 소릴 듣고 아연했댔으니까요.》

장군님께서는 그의 솔직한 말을 들으시고 가볍게 웃으시였다.

《우리는 절대로 학원건설을 늦잡을수 없습니다. 설사 다른 일들은 좀 미루거나 외면할수 있다 해도 아이들, 부모잃고 천대와 불행속에서 고생하던 아이들을 위한 일만은 절대로 외면할수 없습니다. 항차 그 애들이야 일제놈들에게 희생된 부모들의 뜻을 이어 새조선의 미래를 떠메고나가야 할 혁명가유자녀들이 아닙니까.

우린 앞으로 이런 학원을 더 많이 세우자고 합니다. 그래서 유자녀들뿐아니라 불행하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모두를 나라에서 맡아키우자는겁니다. 내가 문선생에게 굳이 이런 말을 하는것은 우리의 마음을 잘 알고 고생스럽더라도 좀더 수고를 해달라고 해서입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로동자들을 만나시여 그들의 생활형편과 석재보장사업에서 걸린 문제들을 료해하시고 동행해온 김책에게 착암기해결대책까지 세워주신 다음 채석장을 떠나신것은 어제 저물녘이였다.

문석오에게 있어서는 정말 꿈같은 하루였다. 그의 심장은 또다시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석재보장사업을 책임진 기술자의 흥분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흥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림춘추에게 김일성장군님을 형상한 동상을 창작하고싶다고 했을 때 그것은 이 나라 민족성원의 한사람으로서 민족수난의 력사를 끝장내고 나라를 찾아주신 전설적영웅에 대한 신비에 휩싸인 존경심과 또한 기념비적성격이 우선시되는 조각예술의 특성을 잘 알고있는 조각가로서의 의무감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또 다른 신비의 세계에 휩싸였다. 민족앞에 가장 큰 공적을 쌓으신분이면서도 티끌만큼도 그런 위엄을 짓지 않으시는분, 나라일을 총찰하는 령수이시면서도 부모없는 아이들부터 진심으로 걱정하시는분, 그분의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는듯싶었고 만백성의 마음을 덥혀줄 열이 느껴지는듯싶었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였고 긍지였고 행복이였다. 이것은 벌써 조각가로서의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자기의 주인공에 대한 열렬한 매혹과 끝없는 환희였다.

문석오는 온 하루 로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마음은 이러한 창작적흥분으로 하여 좀처럼 안정을 얻지 못하였다.

이런 때 림춘추동지라도 곁에 있었으면··· 그가 있었더라면 누구보다도 내 심정을 리해해주고 적극 떠밀어주었을텐데···

오늘밤에라도 평양에 들어가 김책동지를 만나야 하지 않을가? 그전에 림춘추동지와 함께 만났을 때에도 그는 창작은 누가 시켜서 하는것도, 누가 하지 말란다고 하여 그만두는것도 아니라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창작가의 신념이며 권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동상건립은 시와 노래를 짓는것이나 또 그림을 그리는것과는 다르다. 정녕코 장군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 실현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선생님! 선생님―》

누군가가 저만치 앞쪽에서 소리쳐부른다.

그제서야 문석오는 펀뜩 정신을 차렸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여 돌가루 묻은 맨몸바람의 동가슴에 줄무늬처럼 얼룩이 새겨진 애젊은 청년이 소리치다못해 그에게로 달려왔다.

《챠, 이런··· 갑자기 귀가 먹었어요? 찾는 소릴 통 듣지 못하시니···》

《미안하오, 그만 내 생각에 빠져있다나니···》

《저기 현장휴식장에 어제 장군님과 함께 오셨던 김책부위원장동지가 오셨어요. 착암기를 다섯대씩이나 가지고 말이예요. 이젠 일자리를 꽝꽝 내게 됐어요.》

청년은 오른손을 높이 들고 손가락들을 묘하게 튕기여 《딱, 딱》소리를 내며 사뭇 흥에 겨워했다.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으나 문석오는 그 흥에 맞장구칠 겨를이 없었다. 물론 김책동지가 착암기를 구해온건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그보다도 문석오에게는 그가 꼭 자기 생각을 알고 찾아온것만같이 여겨졌던것이다.

바삐 걸음을 옮겨 로동자들속에 에워싸여있는 김책의 곁으로 다가가니 그의 목소리가 먼저 귀가에 들려왔다.

《···그곳 광산로동자들은 동무들이 학원건설장에 보낼 석재보장을 맡아나섰다는걸 알고 자기들도 착암기가 부족하지만 이렇게 다섯대씩이나 보내주었소. 장군님께서 마음쓰시는 학원건설에 자기들도 보탬을 하겠다고 말이요. 그러니 그 동무들의 마음까지 합쳐 석재보장사업을 더 잘해야겠소.》

《걱정마십시오, 단단히 값을 치르겠습니다.》

《석재생산은 념려마십시오.》

이구동성으로 웨치는 로동자들의 목소리···

그들은 그달음으로 작업에 달라붙는다.

《부위원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문석오는 김책에게로 다가서며 말했다.

《아, 그러지 마시우. 난 그저 심부름을 했을뿐이요. 문선생의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허허···》

《수고랄게 있습니까, 제가 하고싶어 하는 일인데요.》

《하긴 제 하고싶어 하는 일은 엄동설한에도 손이 시리지 않는 법이지요.》

《예, 하지만··· 하고싶은 일을 못하게 될 때에는 중병을 앓게 되는 법이지요.》

《?···》

김책의 꿰뚫어보는듯 한 눈빛이 그의 반쯤 꺾이운 시선을 움켜잡았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문석오는 다시 눈길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허허··· 문선생의 그 말이 어쩐지 그저 해보는 소리로 들리지 않누만. 음··· 알만 하오, 문선생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전 사실··· 부위원장동지를 꼭 만나고싶었습니다.》

《그렇소? 그러니 우린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구만. 사실 나도 문선생을 다시 만나고싶어서 이렇게 온거요.》

김책은 그의 한팔을 다정히 껴안았다.

《우리 좀 앉기요.》

그들은 깨여놓은 커다란 암석의 좀 펑퍼짐한쪽을 골라 나란히 앉았다.

《림춘추동무에게서 문선생의 소원이 꼭 성취되도록 잘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구실을 제대로 못해 정말 미안하오.》

김책의 목소리에는 진정으로 미안해하는 그 마음이 곡진하게 어려있었다.

《사실 난 말이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문선생의 소원이자 이 김책의 소원이라고 생각했소. 아니, 우리 빨찌산의 전우들과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라고 생각했소. 우리 나라에서 동상을, 그것도 김일성장군님의 영명하신 모습을 형상한 첫 동상을 세운다고 생각할 때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감격스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 그것이야말로 진짜 만년대계의 기념비가 아니겠소. 하지만···》

그는 문석오의 눈길을 애써 피하려 했다.

《하지만 동상을 세우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요. 〈김일성장군의 노래〉나 〈백두산〉이 세상에 나올수 있은것은 그것이 나오자마자 순간에 만사람에게 파급되여 걷잡을수없이 불리워지고 지면을 통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가며 끝없이 애독되였기때문이였소. 그런데 동상은 그렇게 할수 없는 일이거던. 원고지나 오선지우에 그려내는것이 아니라 땅우에 실물로 직접 세워야 한단 말이요. 하나의 건설공사라고도 말할수 있지 않소. 과연 이런 일을 장군님의 동의없이 실현시킬수 있겠는지···》

《그러니 김책부위원장동진 전혀 불가능하단 말씀입니까?》

《하하··· 문선생, 날 그런 눈으로 보진 마시오. 사실 내 문선생을 만난 이후로는 줄곧 그 생각이요. 어떻게 하면 문선생의 소원이자 우리 인민모두의 념원인 그 일을 수월하게 해결할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요. 그러자면 꼭 필요한, 반드시 동상을 세워야 할 어찌할수 없는 요구가 제기되여야 하는거요.》

문석오의 숨결이 빨라졌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김책을 주시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김책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혈육의 정을 그리워하고있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시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지으시며 그 아이들모두를 댁으로 데리고왔던 며칠후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또다시 간리로 나가시였다.

그날에 김책은 물론 김정숙동지와 어리신 아드님께서도 그이와 동행하시였다. 차가 정문앞에 멈춰서고 림시교사구내에 들어설 때까지도 김책은 인차 뒤따르지 않는 어리신 아드님께서 보초병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잠시 지체되는줄로만 알았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 장군님께서 그곳을 떠나자고 운동장으로 나오셨는데 아이들이 좀처럼 그이의 품에서 떨어질념을 안했다. 그들은 《장군님, 언제 또 오시나요?》라고 자꾸만 되물으며 그냥 눈물만 흘리는것이였다.

그 애처로운 모습들을 보다못해 김정숙동지께서는 한 아이, 한 아이 달래며 저고리고름으로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얘들아, 장군님께선 또 오신다. 너희들이 자꾸 이러면 장군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니? 장군님께선 너희들 근심으로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셔. 그래서 만경대에 더 크고 훌륭한 새 학원을 세워주고계신단다. 너희들 만경대가 어떤 곳인지 아니?》

그제서야 아이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을 초롱초롱 켜들었다.

한 아이가 청높은 목소리로 제꺽 대답했다.

《만경대는 아버지장군님께서 탄생하시고 장군님의 할아버님, 할머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 이제 만경대에 새 교사가 일떠서면 너희들은 아무런 불편없이 공부할수 있게 된다.》

《저··· 그곳에 가면 아버지장군님을 매일 만나뵈울수 있나요?》

한 처녀애가 그이의 손목을 꼭 잡는다.

순진하고 깨끗한 아이들의 기대어린 눈빛이 일시에 김정숙동지에게로 향해졌다.

순간 전류같이 짜릿한것이 그이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정녕 그이께서 무엇이라 대답할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얼마나 아버지의 정이 그립고 소중했으면 저러랴! 얼마나 장군님곁에서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으면 그러랴!

김정숙동지의 눈가에는 핑 눈물이 고이시였다.

《그래, 너희들 장군님을 매일 뵙고싶으냐?》

《예!》

한결같이 터치는 아이들의 절절한 웨침소리, 웨침소리···

《내 더 자주 오마. 이젠 어서들 들어가거라.》

장군님의 갈리신 음성이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얼른 눈굽을 훔치시였다.

김책은 괴로운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싶어 얼른 차를 세워둔 보초소옆으로 다가가 발동을 걸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차뒤에 어리신 아드님께서 서계시는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분명 여직껏 학원구내에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몇시간동안을 그냥 여기에 홀로 서계셨단 말인가? 무슨 일때문에?···

김책의 그 의문은 해방산기슭에 돌아와서야 풀렸다.

《그 형님, 누나들에게는 아버지가 없지 않나요. 그러니 내가 아버님과 함께 있는걸 보면 자기들 아버지 생각이 날거예요. 난 그들이 슬퍼하는것이 싫어요. 그들은 아버님을 보면 매달려서 떨어질줄 모르고 떠나실 때면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해요. 어머니, 그들이 우리 아버님과 늘 함께 있게 할순 없나요, 예?···》

《···》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못하시였다.

오늘 벌써 두번째로 받게 되는 질문이였다.

한번은 유자녀들에게, 다른 한번은 아드님에게서···

순간 김책은 그 물음앞에는 오직 자기만이 대답할수 있음을 깨달았다.

《정숙동무, 우린 저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장군이 그 어린 마음에까지 그 애들때문에 마음쓰게 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다시는 우리 장군이 그 애들 눈에 보일가봐 승용차뒤에 홀로 서계시게 할수는 없습니다. 학원아이들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는 길도 그리고 우리 장군의 그 깨끗한 마음을 지켜드리는 길도 오직 문석오선생을 도와주는 길입니다.

정숙동무, 그러니 이건 단순한 동상문제가 아닙니다. 내 그 사람을 정숙동무에게 보내겠으니 한번 속씨원히 얘길 들어보십시오. 부탁입니다!》

···문석오는 또다시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정녕 어제와 오늘은 련속 자기자신을 위한 날인듯싶었다.

내 인생의 꿈이, 소원이 이렇게 풀리게 되다니. 아니, 아직 만세를 부르기는 이르다. 일은 이제 첫걸음마를 뗀데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온 세상을 다 얻은듯 마냥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김책의 두손을 부여잡았다.

《김책동지!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하··· 문선생, 인사야 내게 할것이 아니라 우리 어린 장군에게 해야지요. 우리 장군이 아니였더라면 나도 그런 생각을 못했을거요.》

《그렇군요, 정말 그렇군요.》

그는 불현듯 뿌옇게 흐려오는 두눈을 슴벅이며 이렇게 곱씹었다.

×

터밭에서는 잘 익은 참외들이 물씬물씬 향기를 풍겼다.

빨갛게 익은 도마도들도 그 사이우로 주렁주렁 어우러져 저택의 풍치를 한껏 돋구었다.

봄내, 여름내 정성을 들여 심어가꾼 터밭열매들을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두개의 큰 나무상자옆에 놓여있던 싸리바구니를 집어드시였다. 그것들을 모두 수확하시려는것이다.

도마도는 막물수확이였고 참외는 올해 첫 수확이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도마도부터 따서 바구니에 담으시였다.

한바구니 가득 채워서는 느티나무밑에 놓아둔 나무상자에 한알한알 터지지 않게 정히 넣으시였다.

맴 맴 맴···

느티나무가지에 붙은 매미들이 누가 더 청높은 소리를 길게 뽑는가 경쟁이라도 하듯 귀따갑게 울어댔다.

그이께서 마지막도마도바구니를 나무상자에 무둑히 쌓으실 때까지도 매미들은 울음을 멈출줄 몰랐다.

도마도를 다 따고나니 노랗게 익은 참외들이 한눈에 잘 띄웠다.

머리우에 썼던 수건을 벗어 잠간 이마의 땀을 들이시는데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듯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딱 멎었다.

《어머니!―》

마을아이들과 군사놀이를 하다가 어느새에 들어오셨는지 나무권총을 한손에 든 어리신 아드님께서 이렇게 소리치며 느티나무쪽으로 총알같이 달려오시였다.

《원, 그러다 넘어지겠구나. 천천히···》

그이의 목소리에는 다심한 정이 가득 어려있었다.

《어머니, 저기 손님이 오셨어요. 이렇게 키― 큰···》

아드님께서는 한손을 머리우로 높이 쳐드시며 형상까지 해보이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벌써 이곳으로 다가오고있는 손님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손님은 아닌게아니라 여느 사람들보다 키가 컸는데 그는 다름아닌 문석오였다.

문석오가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녀사님,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여 기쁩니다.》

《우리 가정에 새집을 꾸려주시고 훌륭한 화실을 마련해주신 녀사님께 제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습니다.》

문석오는 정히 두손을 맞잡고 서둘러 고마움의 인사를 드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러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인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겠습니다.》

《예?》

《채석장에 나가살다싶이하며 만경대학원건설에 쓸 석재보장사업을 책임지고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크십니까. 장군님께서는 채석장에 나가시여 문석오선생을 만나고 돌아오신 날 선생이 자신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있다고 몇번이나 외우셨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요?》

그의 얼굴에는 형언할수 없는 감격과 환희가 어리였다.

장군님을 만나뵈온 그날의 격정이 다시금 사무쳐왔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들먹이는 그의 흥분을 가라앉혀주시려는듯 아드님의 손을 잡아 떠미시였다.

《자, 어서 인사드려라. 이 키큰 아저씨가 바로 김책동지가 말씀하시던 그 조각가선생님이시다.》

《조각가선생님이요?》

아드님의 두눈에 기쁨의 빛이 반짝반짝 어리였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아니, 그럼··· 자제분이십니까?》

너무도 수수하고 평범한 옷차림으로 하여 마당가에서 장군님의 자제분인줄을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예까지 따라들어왔던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예, 사실 문선생을 누구보다도 만나보고싶어하는건 우리 정일이라고 말할수 있답니다.》

《예? 예― 에···》

문석오는 김책으로부터 들은 가슴아픈 그 사연이 다시금 깨우쳐져 고개를 끄덕이였다.

《선생님, 동상을 세우면 학원아이들이 아버지장군님과 늘 함께 있게 된다는것이 정말이나요? 》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였다. 부디 그것이 정말이기를 바라마지 않는 그 절절한 목소리, 조각가가 《아니!》라고 대답할가봐 겁나하듯 마음조이며 바라보는 그 간절한 눈빛···

문석오는 그 물음에 왜 그런지 쉽게 대답할수가 없었다.

어리신 마음에 얼마나 학원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에 맺히셨으면 그러랴 하는 생각에 목이 콱 메여왔던것이다. 어쩌면장군님일가분들은 그 인정미가 꼭 같으실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젖어들었던것이다.

《참, 이야기정신에 손님대접할 생각을 못했군요.》

김정숙동지께서 얼른 말머리를 돌리시며 그에게 량해를 구하시고나서 잘 익은 참외 몇개를 따오시였다.

《자, 이건 우리 집 첫물참외인데 어서 하나 맛보세요.》

그이께서는 노란 참외를 골라 수건으로 정성껏 닦으시여 내미시였다.

그리고 아드님에게도 쥐여주시였다.

《참외가 정말 잘 익었습니다. 그 냄새에 벌써 군침이 막 넘어가는군요. 녀사님께서 손수 가꾸신거겠지요?!》

문석오는 저택터밭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만경대할아버님이 보내주신 참외씨를 심었더니 저렇게 훌륭한 열매를 맺었어요. 이제 저 참외를 모두 따서 도마도와 함께 보내면 우리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거예요.》

《저, 우리 아이들이라는건?···》

《학원아이들 말이예요. 어디 갈곳 없는 아이들 수십명이 그곳에 남아있는데 속에 걸려 내려가야 말이지요. 그래 저 과실들이라도 보내주려구···》

《어머니, 그러니 이건 모두 학원아이들을 줄거나요?》

《그래, 그들에게 보내주자고 그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러자 어리신 아드님께서는 잠시 무슨 생각인가 하시더니 손에 들고있던 참외를 어머님손에 다시 쥐여주시는것이였다.

《이 참외도 그 애들에게 가져다주자요. 난 먹지 않아도 돼요.》 하고는 얼른 바구니를 손에 들고 참외밭으로 들어가시는것이였다.

《아니?!···》

어머님께서 만류하려 하시자 아드님은 생긋이 웃으시며《학원에 보낼 이 참외는 내가 마저 따겠어요.》하시는것이였다.

《어쩌면 그 마음씨가 꼭···》

문석오는 좀처럼 감동어린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대견한 눈빛으로 아드님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문석오에게 나직이 물으시였다.

《저··· 정말이지 학원에 동상을 세우면 우리 애들이 늘 장군님곁에 사는것처럼 여겨질가요?》

전번처럼 반대하실줄만 알았던 김정숙동지께서 이렇게 자기의 말을 받아주시자 문석오는 심장이 활랑거렸다.

《녀사님, 저도 김책부위원장동지에게서 그 사연을 다 들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소원을 완전히 풀어준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항상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그 애들에게는 장군님의 모습을 늘 뵈올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큰 힘이 될겁니다.》

《정말 그럴가요?! 정말 그랬으면!···》

《녀사님, 제 비록 재능은 부족하지만 온넋을 다하여 학원아이들과 아드님, 녀사님의 그 소원을 꼭 풀어드리겠습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건 또한 저의 평생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손으로 옷고름을 꼭 눌러붙이시며 그를 향해 정히 머리를 숙이시였다.

《아니?··· 녀사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당황한 문석오가 황황히 손을 저었다.

《문선생, 김일성장군님의 동상을 세우는것은 민족과 력사의 부탁이기 전에 먼저 우리 아이들이 문선생에게 드리는 부탁입니다. 그 애들은 나라를 찾기 위한 혁명투쟁의 길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다 잃고 누구들보다도 갖은 천대와 멸시를 다 받으며 살아온 불쌍하고 의지가지할데없는 아이들입니다. 그 애들에게 있어서 장군님은 아버지이시고 어머니이시예요. 그래서 그 애들이 장군님곁에서 한시라도 떨어지는걸 죽기보다 싫어하는겁니다. 난 언제나 자기들곁에 장군님을 모시고싶어하는 그 애들의 소원을 풀어줄수만 있다면 문선생을 적극 도와드리겠어요.》

《녀사님! 정말 고맙···》

문석오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크나큰 흥분이, 크나큰 행복이 일시에 그의 온몸을 휩싸안았다. 그는 몸둘 곳을 찾지 못한듯 서성거리다가 성큼성큼 터밭으로 걸어갔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밑도 끝도 없는 그의 행동에 다소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여 물으시였다.

《예?··· 예··· 자제분의 일손을 돕고싶어 그럽니다.

그리고 장군님과 자제분의 몫으로 얼마간이라도 남겨두어야지 저러시다간 한알도 안 남기고 참외를 다 따겠습니다.》

그의 말에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가식을 모르는 그의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이 고맙게 여겨지시였다.

《호호···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몫과 그 애들의 몫을 따로 가르지 않으신답니다. 제 생각엔 그 심정을 잘 알아야 그 애들의 소원을 훌륭하게 풀어줄수 있을것 같애요.》

《예, 귀중한 말씀이십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우선 그런 심정으로 저 참외들을 따지요. 아드님께서 벌써 절반나마 다 따셨습니다.》

문석오는 황황히 참외밭속으로 들어갔다.

어리신 아드님께서 그에게 참외를 든 한손을 흔들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즐거우신 마음으로 다시금 참외밭에 들어서시였다.

맴 맴 맴···

새삼스레 매미들의 청높은 울음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