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

 

 

제 3 장

1

 

캄캄한 창밖에서는 여전히 쭈루룩 쭈루룩 비소리가 울렸다. 벌써 나흘째 장마가 계속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재봉기를 멈추시고 비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간리에 있는 학원 림시교사걱정에 일손이 잘 잡히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도 장마비가 걱정되시여 그제 책임부관을 그곳에 보내셨었는데 풍차에 비가 새는지 손종준이 물에 빠진것처럼 되여가지고 저녁녘에 댁에 나타났다. 장군님께서 아직 들어오시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선자리에서 돌아서면서 하는 말이 《장군님께서 공연한 걱정을 하신것 같습니다. 학원에 가보니 애들이 네활개들을 쭉쭉 펴고 침대에 드러누워들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도 비가 멎지 않고 이렇게 계속 내리니 여간 걱정스럽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 사업이 너무 바쁘시여 시간을 내지 못하시는데 자신께서 당장이라도 한번 가보고싶으시였으나 학원제복견본을 만드느라 도저히 짬을 낼수가 없으시였다.

(오늘중으로 다 만들어놓고 한번 가봐야겠어.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와야 마음을 놓을것 같애.)

그이께서는 이렇게 속다짐을 하며 다시 재봉기를 돌리시였다.

방안바닥에는 재봉기의자에 앉아 한눈에 내려다볼수 있게 제복도안을 그린 종이장이 펼쳐져있었다.

여러개의 제복도안중에서 장군님께서 선정하여주신 도안이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바지와 저고리기슭단에 붉은 줄을 쳤는데 팔소매기슭단에 친 사람 인(ㅅ)자 모양의 붉은 줄은 부모들처럼 인민에게 충직한 참된 아들딸이 되라는 뜻을 담고있었다. 그아래에 내리친 붉은 줄은 혁명의 대를 이었다는 뜻을 담았는데 인민반은 한줄, 초급반은 두줄, 고급반은 석줄을 주었다. 이것은 항일아동단때 녀학생들의 치마단에 쳤던 줄을 참작하여 생각하신것이였다. 그리고 제복바지의 옆선에 내리친 붉은 줄은 유자녀들이 항일의 혁명전통 하나만을 계승하였다는 뜻에서 굵게 한줄만 주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도안이 내용도 깊고 뜻이 뚜렷하게 나타나서 좋다고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날로 군복색갈의 모직천과 붉은 천으로 남녀제복 한벌씩 재단하여 벌써 사흘째 밤을 밝히시며 옷을 짓고계시는것이다. 이제는 마지막단계에 들어섰다.

그이께서 한창 재봉질을 해나가시는데 방문이 열리며 금방 잠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칼이 푸시시한 영실이가 들어왔다.

《아니, 벌써 새벽 한시가 넘었는데 오늘 밤도 또 밝히세요?》

그의 놀란 목소리에서는 아직도 잠기가 채 빠지지 않았다.

《우리 잠꾸러기가 어떻게 된 일이야? 한밤중에 다 깨여나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재봉기를 돌리시며 미소어린 어조로 물으시였다.

《재봉기소리에 깨여났지요 뭐. 야, 이젠 좀 그만하고 쉬세요.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다가 어쩌자구···》

영실은 그이께서 그저 빙그레 웃으시며 일을 계속하자 무작정 그이의 두손을 잡아 재봉기에서 떼여놓았다.

《난 형님 일 못하게 할래!》

아직 어리고 성격이 좀 투박하긴 하지만 소박하고 진정어린 영실의 그 행동이 어쩐지 고마우시였다.

그이께서는 할수 없이 잠시 일손을 멈추시였다.

《장군님께선 오늘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시누나. 아마 그 베잠뱅이를 입고있는 유자녀들 걱정으로 저녁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을거야···》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였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편안히 잠을 자겠니? 장군님께서 하루빨리 제복을 입은 학원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싶어하시는데···》

《그렇다구 이렇게 며칠씩 밤을 새우다가 앓아눕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재봉일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시켜도 될텐데···》

《아니야, 장군님께 보여드릴 이 견본만은 내가 꼭 만들어야 해.》

《형님은 어쩌면···》

영실은 잡고있던 그이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김정숙동지의 그 뜨거운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영실이, 내 걱정은 말구 어서 자라구. 우린 간고한 행군과 전투속에서도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유격대원들의 군복을 만드느라고 몇밤씩 지새운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어. 그때 습관되여 그런지 밤을 새우는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영실이의 등을 떠미시였다.

영실은 어린애처럼 어깨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볼부은 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형님이 쉬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쿨쿨 잠만 자겠어요?!

나도 여기서 형님일을 돕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하긴 이제 영실이도 학원에 가서 이 옷을 입어야겠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순 없지 뭐?! 안 그래?》

영실이도 싱긋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글쎄··· 이 제복을 보니 나도 학원에 가고싶긴 한데 그렇게 되면 형님이랑 헤여져 살아야 하지 않나요.》

김정숙동지의 가슴은 알알해졌다. 일찌기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별로 모르고 자라온 영실이···

그것이 너무도 가슴에 맺혀 장군님께서도 그를 집에 데려오시였고 형권삼촌을 대신하여 각근한 정을 기울여주시였다. 자신께서도언제한번 그를 친혈육이 아니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으시였다. 영실이도 친어머니처럼 따랐다. 아닌게아니라 그를 품에서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오심을 누를 길이 없으시였다.

《그래도 학원에 가야 해. 공부를 해야 하지 않니?!》

《사실··· 그 공부라는것도 두려워요. 문맹퇴치나 겨우 한 내가 꽤 공부를 할수 있겠는지···》

《할수 있지 않구. 아버지가 못다하고 간 혁명을 영실이가 꼭 뒤를 이어 해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이악하게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할수 있어. 혁명가유자녀답게 말이야.》

《혁명가유자녀···》

영실이는 입속으로 가만히 외워보았다. 그 여섯글자속에 담긴 크나큰 뜻을 가슴에 소중히 새겨안으며···

그날 동터오는 새날을 맞으시며 마지막단추의 바느실끈을 끊으실 때 김정숙동지의 가슴에는 한량없는 기쁨이 아침노을처럼 피여났다.

간밤을 집무실에서 밝히시고 집에 들어오시였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이께서 내놓으신 제복견본을 보시고 무척 놀라시였다.

《아니, 엊그제 도안을 보았는데 벌써 다 만들었단 말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잠시 아무 말씀을 못하시였다.

피발이 선 두눈, 충혈로 달아오른 김정숙동지의 눈빛에서 깡그리 바쳐온 그이의 남모르는 수고를 가슴뜨겁게 받아안으셨던것이다.

달리는 살수 없는, 달리는 살줄 모르는 그이의 불같이 뜨겁고 열렬한 생의 모습을 그 학원제복에서 다시금 보고계셨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제복을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앞으로도 보고 뒤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멀찍이 걸어놓고도 보시였다.

《아주 좋구만. 정말 마음에 드오.》

그이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백두산에서 군복을 만들던 솜씨가 여전하구만, 여전해.》

《유자녀들의 옷이라고 생각하니 바느질이 더 잘되는것 같습니다. 힘든줄도 모르겠구요.》

김정숙동지께서도 가볍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올리시였다.

《정숙동무의 그 심정이야 내가 잘 알지.··· 그러니 이젠 이 제복에 잘 어울리게 모자와 신발을 만들면 되겠구만. 모자는 옷이 군복형식인것만큼 지금 보안간부훈련대대부협주단(인민군협주단 전신)배우들이 쓰는 모자형식으로 만들어줍시다.

남학생들의 모자는 남자배우들의 모자처럼 평상모로 하고 녀학생들의 모자는 녀배우들의 모자와 같이 채양이 없는 형식으로 만들되 모표는 우리 군인들이 달고있는 모표를 그대로 달게 합시다.》

《장군님, 그게 좋겠습니다.》

《우리 그 애들을 세상에서 제일가는 멋쟁이로 내세웁시다. 보안간부훈련대대부 군화공장에서 가죽으로 신발까지 만들어 신기면 아마 우리 아이들이 정말 끌끌할거요.》

《정말!··· 그 애들이 붉은 줄을 친 이 제복에다 가죽신발을 신고 군대모표를 단 모자를 쓰고 척 나서면 꼭 군대장령들처럼 보일겁니다.》

《아무렴, 앞날의 장령감들인데 지금부터 장령대우를 해줘야지, 하하···》

가슴 그득히 넘쳐나는 기쁨으로 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 그 웃음소리!···

장군님의 웃음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쌓이고쌓이셨던 온갖 피로가 순간에 다 풀리시였고 녀사의 웃음소리에 김일성동지께서는아이들때문에 맺혀있던 온갖 시름이 삽시에 다 풀리시였다. 이제 멀지 않아 그 웃음은 학원아이들의 얼굴에서 피여날것이기때문이였다.

《정숙동무, 우리 학원개원식을 크게 해줍시다. 그 누구들보다도 억눌려 지지리 천대받고 고생하던 유자녀들이 밝은 세상에서 다시 태여났다는걸 온 세상이 다 알게 말이요. 그 행복의 고고성을 듣고 희생된 전우들이 땅속에서 벌떡벌떡 일어나게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으로 달아오른 가슴을 들먹이시며 두팔을 벌려 흔드시였다. 마치 벌떡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 옛 전우들의 손을 모두 잡으시려는듯···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이를 우러러보시였다.

장군님의 그 말씀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가슴에 실려오시였다.

《이 옷을 모두 해입고 개원식장에 쭈욱 정렬해서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어쩐지 가슴이 막 설레누만. 어떻게 하나 개원식전으로 옷과 신발을 다 만들어주어야 하겠소. 그러자면 빨리 공장들에서 생산에 착수하도록 하여야겠는데··· 군대피복공장은 지금 겨울군복생산이 긴장할거요.

그러니 거기선 모자만 만들게 하고 옷은 평양피복공장에서 만들어야 할것 같소. 그런데 그 공장에서 군복형식의 이 학원제복을 잘 만들수 있겠는지 모르겠거던.》

김일성동지께서 미타해하는 표정을 지으시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심있는 어조로 말씀드리시였다.

《제가 알기에는 그 공장에서도 경비대군복을 생산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설비들도 좋고 기능공들도 많은 공장인것 같습니다.

제가 래일 그 공장에 나가 실태를 구체적으로 다시 알아보고 학원제복을 잘 만들도록 도와주겠습니다.》

《내가 공연한 걱정을 한것 같구만. 아무렴 정숙동무가 맡아나선 일인데 어련할라구.》

미소가, 한없이 아름다운 미소가 김정숙동지의 얼굴에 홍조로 피여났다. 따뜻함이, 더없이 소중한 따뜻함이 그이의 가슴속에 봄볕처럼 스며들었다.

장군님의 그 믿음이 그이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행복이였던것이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지칠줄 모르는 장마비가 쭈루룩 쭈루룩 소리를 내며 내렸다.

그러나 김정숙동지의 귀전에는 그 비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