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8

 

 

제 2 장

8

 

이른새벽이다.

여느날보다 좀더 일찌기 부엌에 내려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미리 준비해놓았던 음식감들을 손질하여 가마에 안치시였다. 밤새 삶아서 푹 무른 단고기국을 다시한번 끓여내고 감자장도 지져내시였다. 매운것을 싫어하는 림춘추의 식성에 맞춰 고추가루를 비롯한 자극성있는 조미료는 조금씩 넣으시였다.

장군님께서 림춘추가 떠나기에 앞서 아침식사를 같이하겠다고 하시여 이렇게 음식준비를 하고계시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록 크게 내색은 않으시지만 장군님께서 그를 동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이 시각 얼마나 괴로와하시는가를 온몸으로 느끼고계시였다. 자신께서도 그와 이렇게 불쑥 헤여지게 되는것이 가슴이 아프도록 서운하시였다. 더구나 아직은 위험한 적구나 다름없는 그곳으로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과 위구가 자꾸만 갈마드시였다.

그러나 보내야 했다. 혁명사업이 그것을 요구하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도 마음속 괴로움과 고통을 이겨내시고 그를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떠나보낼 결심을 하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림춘추가 모든것을 다 리해하더라고, 오히려 해방된 새 조선의 력사를 곁에서 직접 기록해두지 못하게 된것을 아쉬워하더라고 말씀해주시였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어쩐지 눈물이 핑 도시였다. 그것이 바로 자신께서 알고있는 인간 림춘추의 참모습이였다. 백지처럼 깨끗한 량심, 가식을 모르는 충성심, 변함이 없는 의리심···

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정이 가고 존경이 가는지 모르신다.

사실 김정숙동지께서는 림춘추와 오랜 인연을 맺고계시였다.

부암동의 야학방시절···

림춘추는 늘 가슴앓이로 고생하던 김정숙동지의 어머님병도 극진히 치료해주군 했는데 의원 한번 부르자면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것만큼이나 어려웠던 그 세월, 그 궁벽한 산골에 그와 같이 의술이 능하고 인정많은 젊은 의원이 나타난것은 정말 하늘이 굽어살핀 덕이라 해야 할것이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였다.

1932년 7월 일제놈들의 악착한 《토벌》만행으로 사랑하는 어머님과 형님을 잃고 그해 마가을 사랑하는 오빠와 젖먹이 어린 조카와 리별하고 동생 기송이와 함께 유격구로 찾아가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산중에서 쫄라병으로 쓰러지시였다. 다행히도 그날 저물녘 장재촌유격구로 급한 걸음을 하던 림춘추가 어린 아이의 가냘픈 소리를 듣고 달려와 구원되였다. 후날에 알게 되셨지만 그가 달려왔을 때 자신께서는 이미 의식잃고 쓰러져있고 어린 동생 기송이가 새파랗게 얼어든채 간신히 울음소리만 내고있었다고 한다. 상태가 하도 위독한지라 림춘추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오누이를 산밑에 있는 농가에 번갈아 업어다놓고 구급치료를 하였다. 제때에 손을 쓴 덕에 다행히 위험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인적없는 산속에서 생사기로의 갈림길을 헤매고있을 때 그가 그곳에 나타난것부터 은인이라 해야 할것이였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준비하던 시기···

그때 하루식사공급량이 100g짜리 빵 한개가 전부였는데 갓난애기도 단숨에 삼켜버릴 그 빵쪼각 하나를 세끼식사량으로 대치하고 한창나이의 청장년들이 그 높은 훈련강도를 이겨낸다는것은 실로 힘겨운 일이였다. 더우기 허우대가 남들보다 크다보니 일명《희샤쯔》(곰)로 불리우던 림춘추의 경우는 더 혹심한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에게 차례지는 빵을 조금씩 남겼다가 김정숙동지에게 갖다드리군 하였다. 그 체격에 훈련에도 참가하고 정치강사로서 출연하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곱절 시장기를 느끼련만 우리 어린 장군이 조금이라도 배를 곯아선 안된다며 그렇듯 극진한 지성을 기울이군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런 인연깊은 림춘추에게 자신의 성의를 다해주고싶어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준비하시였다.

《아, 춘추동무가 왔구만. 자, 어서 들어오오.》

정원에서 림춘추를 반겨맞으시는 장군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마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계신 모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부엌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가시였다. 인사를 나누고보니 그의 어깨에 낯익은 불룩한 배낭이 걸머져있는것이 눈에 뜨이시였다.

《아니, 그 배낭은 왜 예까지 메고오셨어요?》

림춘추가 배낭을 슬쩍 올려추며 빙그레 웃었다.

《장군님께 하직인사를 드리고는 곧장 떠나야겠는데 내 일생의 반려자인 이 배낭을 메고와야지 남에게 맡기겠습니까. 이 배낭만은 절대로 남에게 맡길수 없어 그럽니다.》

《하긴 동문 빨찌산때부터 원래 배낭신랑이였지.》

김일성동지께서 크게 웃으며 말씀하시자 김정숙동지도 한마디 덧붙이시였다.

《그 별명의 유래는 제가 잘 압니다.》

대부대선회작전시기 림춘추는 재봉대원들과 같이 행군하다가 그만 깊은 눈구뎅이에 빠졌다. 모두가 사색이 되여 배낭끈들을 모아 바줄을 만들어 내려보냈는데 먼저 올라온것은 사람이 아니라 배낭이였다.

온통 얼음투성이가 된 림춘추를 끌어올렸을 때 최희숙이 《배낭이 중해요? 사람이 중해요?》 하고 내쏘았는데 림춘추가 하는 말이 《이 배낭보다 중한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하는것이였다.

《그러니 우리 동무들이 〈림춘추=배낭〉이라는 등식을 규정해놓은게 우연하질 않구만.》

《아 장군님, 이 배낭은 결코 이 림춘추 한사람의것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이 배낭안의것을 쓰느라구 내가 써버린 장군님의 만년필과 연필, 종이는 얼마나 됩니까? 장군님께서는 만년필이나 연필 한자루가 생겨도 그 자리에서 나에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림춘추가 우정 볼부은 시늉을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작별의 아픔을 애써 감추려고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승벽을 부린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으므로 능청스럽게 화제를 이으시였다.

《그거야 내가 늘 회의기록을 동무에게 맡기군 했으니 그랬지. 그래서 회의때면 맨 앞자리에 앉혀주군 하지 않았소?!》

《글쎄 이랬든 저랬든 이 배낭속에는 장군님몫도 들어있습니다. 어디 그뿐인줄 압니까? 내가 종이와 연필때문에 쩔쩔맨다는걸 알구 정숙동진 신파장에서 많은 미농지와 연필을 세타스나 사다주질 않았습니까. 그러니 뭐 사실 이 배낭이 이렇게 불룩하게 된게 이 림춘추의 탓만은 아니지요.》

《하하···》

《호호···》

신록이 짙어가는 정원의 느티나무잎새들이 두분의 웃음소리에 화답하듯 소리내여 설레였다.

《자, 어서 배낭이나 벗소. 가도 식사나 하고 가야지, 배낭을 메고 밥을 먹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수 그의 어깨에서 배낭을 벗겨내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인차 그 배낭을 받아쥐시였다.

《그런데··· 춘추동문 이 배낭을 장차 어떻게 할셈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짐짓 의아스러운 어조로 물으시였다.

림춘추가 김정숙동지와 얼핏 눈길을 마주치며 싱긋 웃고는 펄쩍 놀라는 시늉을 했다.

《어떻게 하다니요? 조선혁명이 어떻게 승리해올수 있었는가 하는 력사를 후세에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조선혁명가들의 한결같은 념원이자 먼저 간 전우들의 유언이기도 합니다. 이 력사적과제를 수행 못하면 림춘추는 후세앞에 큰 죄를 짓게 될것입니다. 나야 총과 함께 붓을 들고 장군님을 따라다닌 사람이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는 차츰 절절하고 진지해졌다.

《너무 어마어마하구만. 동무가 중국 동주시기 로나라의 공자가 쓴 력사책 〈춘추〉와 자기 이름이 꼭같은것이 우연치 않다고 선전하며 다닌다기에 무슨 소린가 했더니 정말 그럴만도 하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다시금 웃으시였다.

《하여튼 조선혁명가들의 투쟁력사를 후세에 전하겠다는 동무의 결심에는 나도 기꺼이 공감이요.》

《정말입니까? 이젠 장군님의 승인까지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설사 죽을수 있겠지만 이 림춘추만은 어떻게 하든지 살아서 꼭 써야겠습니다.》

림춘추가 기쁨에 넘친 눈빛으로 김정숙동지를 바라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동무만은 살아야겠다? 허, 춘추동무가 언제 그런 극단한 리기주의자가 되였소? 혁명가라는 사람이···》

《어떤 감투를 씌운대도 난 꼭 살아야 하겠습니다. 대통령감이 죽으면서 그렇게 유언한걸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 대통령감이 그런 한심한 소리를 유언으로 남겼는지는 모르겠소만 생에 대한 동무의 견해는 완전히 부르죠아적이요.》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내심 그의 투철한 각오에 감복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날 아침식사를 마치신 후 김일성동지께서는 림춘추에게 중국공산당을 도와 연변의 당 및 정권기관들의 사업을 잘하고 혁명의 핵심들을 많이 키울데 대하여, 동포들의 민족교육문화발전에 힘쓰며 후대교육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릴데 대하여 다시한번 강조하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동무를 굳이 동북땅에 서둘러 보내는것은 희생된 혁명렬사의 유가족들과 유자녀들을 모두 찾아 하루빨리 조국으로 데려와야 하겠기때문이요. 우린 그들의 행처와 생사여부도 알지 못하고있소. 혁명렬사들은 동지들의 품에 안겨 숨지면서도 이국땅에 홀로 남기고 가는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지 못하였고 우리에게 조국이 해방되면 꼭 자기 자식들을 찾아서 공부를 시켜달라고 부탁하였지. 나는 간고한 싸움의 나날 어느 한순간도 그들이 남기고간 부탁을 잊어본적이 없소. 그러니 이번에 가면 희생된 혁명렬사들의 유가족들과 유자녀들을 모두 찾아 조국에 내보내주오.

이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춘추동무이기에 내 이렇게 동무를 서슴없이 멀리 떠나보내는거요.》

《장군님!···》

림춘추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말을 이으면 이 석별의 마당에서 보이지 말아야 할것을 보이게 될것만 같아 머리를 수그리고 말았다.

그러는 그의 손을 김정숙동지께서 꼭 잡아주시였다.

《춘추동지, 그들을 하늘땅끝에 가서라도 꼭 찾아주세요.》

김정숙동지의 눈빛에는 간절한 기대와 절절한 념원이 한껏 어려있었다.

림춘추는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앞에는 밤새 베껴놓은 가지색수첩의 글줄들이 살아움직이고있었다.

《장군님! 정숙동지! 마음놓으십시오. 그 뜻을, 그 심정을 제 꼭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숙동지의 수첩이 많은 도움을 줄겁니다.》

《춘추동무!》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어깨를 꽈악 잡으시였다.

《저··· 이제 오래동안 집을 떠나있게 되겠는데 그사이 애로로 제기될것은 없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인가 더 한가지라도 그를 위해주고싶으시였다.

《없습니다. 저··· 한가지···》

《어서 말씀하세요.》

《저··· 혹시 친척들이 어데 있는지 알만 한데가 없습니까? 제 이번길에 정숙동지의 일가친척들을 찾아볼가 해서 그럽니다. 다른 사람들의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그렇게 마음쓰면서도 여직껏 단 한번도 내색조차 없으시니···》

《···》

아, 그 웅심깊은 마음···

예이제 조금도 다름이 없는 림춘추의 마음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길을 돌리시였다. 창문너머 멀리 북쪽하늘가를 깊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바라보시였다.

오빠마저 희생된 후 그 행처조차 알길없는 어린 조카···

배고파 우는 그 어린것을 업고 동냥젖을 구하러 다니던 부암동의 그 거치른 들길··· 살아있다면 그리고 찾을수만 있다면 그 애도 함께 장군님 세워주시는 학원에서 공부시키련만··· 그러면 형님이나 오빠의 령혼이 늦게나마 안식을 찾을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숙동무···》

갈리신 장군님의 음성이 나직이 울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이를 우러러보시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 란리통에 흩어진 일가친척들을 이제 어디 가서 찾겠습니까?! 림동지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런 사사로운 일때문에 장군님께서맡겨주신 임무수행에 지장을 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림춘추의 눈가에는 끝내 맑은것이 고이고말았다. 정녕 이것이 자신을 위해 하시는 녀사의 부탁이란 말인가.··· 뜨거운것이 자꾸만 치밀어올라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다만 한없이 고결한 김정숙동지의 모습만을 뚫어지게 마주하였다.

(장군님! 제 언제나 김정숙동지의 저 맑은 눈빛앞에 부끄럼없이 다시 설수 있게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꼭 승리의 보고를 안고 돌아오겠습니다!)

림춘추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