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6

 

 

제 2 장

6

 

오늘 김일성동지께서는 농민들의 농사정형을 알아보시기 위해 모내기가 한창인 미림벌로 나오시였다. 이곳 일군들에게 따로 알리지 않고 나오는 길이여서 그이께서는 농민들이 놀라지 않게 승용차를 논벌 먼발치 길옆에 세우도록 이르시고 차에서 내리시였다. 김책과 부관 리종산이 따라내렸다. 리종산이 재빨리 한걸음 나서며 김일성동지께 말씀드렸다.

《장군님, 제 먼저 가서 농민들을 몇사람 데려오겠습니다.》

《데려오긴?! 그렇게 만날바에야 논벌에까지 나올 필요가 뭐요? 오늘 종산인 그저 날 따라다니기만 하면 돼.》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고나서 김책을 돌아보시였다.

《김책동문 오늘 떨어져있을걸 그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책동무가 나와 함께 나가느냐고 허가이동무가 우리 서기동무한테 몇번이나 물어보더라던데, 혹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게 아닌지?》

《그런건 아닙니다. 엊그제 허가이동무가 우리 인민위원회의 일부 일군들에 대한 재정리문제를 제기하길래 제 좀 싫은소릴 했더니 아마 그때문일겁니다.》

《재정리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으시였다.

《예, 제 생각에는 그의 주장이 지내 좌경적인것 같아 반대했습니다.》

《그 동무가 제기하는 대상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들입니까?》

《여러명 되는데 허동무가 내게 찍어 이야기한건 강원도 교육부장 리종익이란 사람입니다.》

《리종익이요? 귀에 익은 이름인데?··· 혹시 이전에 상해림정에 관여했던 사람이 아닌지?》

그이께서는 옛시절에 오동진이며 량세봉의 화제에서 오르내리군 하던 그 이름을 기억해내시였다.

《그런것 같습니다. 허동문 그런 케케묵은 민족주의자를 사회단체부문 일군으로 쓴다면 몰라도 어떻게 사회주의혁명을 담당수행해야 할 인민정권기관의 일군으로 쓰겠는가 하는겁니다. 게다가 이젠 나이도 적지 않아 로망기까지 있는데 학교들에 지도사업을 나가서는 그저 아이들의 꽁무니를 좇아다니며 코를 닦아주는것밖에 모른다는겁니다.》

《아이들의 코를 닦아주는것밖에 모른다?!···》

《사실은 제 그 리종익이란 사람에 대해 구체적인 료해가 없길래 더이상 허가이동무와 마주서는걸 피했습니다. 사람문젠데 정확한 파악도 없이 그의 주장을 그르다고 할수도 없고 또 내 의견만 옳다고 할수도 없고···》

《옳습니다. 그곳 일군들과 군중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료해해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민족주의자냐 사회주의자냐 하는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능력과 됨됨입니다.》

《알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내게 꼭 알려주시오. 허가이동무의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리종익이란 사람이 참 흥미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팔소매를 걷어올리시였다. 그러신 다음 허리를 굽히시고 바지가랭이를 접어올리시였다.

《자, 우리 예까지 왔던바에는 농민들의 모내기나 좀 도와줍시다. 어쩐지 손이 근질근질해서 더 못 참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그뒤를 따르며 리종산이 김책을 향해 입을 비죽 내밀었다.

《글쎄 내 꼭 이러실줄 알았다니까요. 농민들의 모내기정형을 알아보러 나온다는것이 결국 이렇게 모내기를 도와주러 나온셈이 되구 말았지요.》

김책이 그의 엉치를 툭 쳤다.

《그게 바로 우리 장군님의 사업작풍이야.》

《그건 나도 압니다. 하지만 매번···》

그러나 리종산은 말을 더 맺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 벌써 저만치 논배미에 들어서고계셨던것이다. 김책과 리종산은 그리로 잰걸음을 쳤다.···

미림벌의 모내기는 어느새 마감고비에 들어섰다.

해방된 제 나라, 제땅에서 두번째로 모내기를 하는 이곳 농민들은 흐릿해지는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성수가 나서 걸싸게 일손을 다그쳤다. 누구인가 부르는 흥겨운 노래가락이 벌 한가운데서 울려나왔다.

 

백두산말기에 백학이 너울너울
해방된 강산에 뻐꾸기 뻐꾹뻐꾹
···

 

금년봄에 나온 《밭갈이노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노래소리를 들으시며 묵묵히 모를 꽂으시였다. 그이와 조금 떨어진 뒤에서 김책이며 리종산이도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모를 꽂으면서 따라왔다. 옆에서 나란히 나아가는 40대 중엽의 농민이 흥이 살아나는지 코노래처럼 흥얼흥얼 따라부른다.

···
아 장군님 주신 땅
에루화 데루화 한친들 묵이랴 밭갈이가세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는 그의 옆모습을 미소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한말씀 건네시였다.

《모내기를 하면서 〈밭갈이노래〉를 부르니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군요.》

《허, 그야 상관있쉐까. 밭을 갈든 모를 내든 이 땅이 분명 장군님 주신 땅일진대 우리네 농사군들의 심정에 꼭맞는 노래지요.》

김일성동지의 일행을 지나가던 길에 모내기를 도와주는 고마운 길손들로만 알고있는 농민은 무랍없이 대답하며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래 이 논배미만 다 꽂으면 집의 모내기는 끝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자꾸만 자신에 대한 소리를 듣는것이 면구스러워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여부있나요. 이래뵈두 이 김달수가 이 아근에선 실농군소릴 듣는 사람이지요. 하지만서두 해방전에는 자식 둘을 굶겨죽였수다. 다 제땅이 없은탓이였지요. 인제야 장군님께서 주신 제땅이 있는데 뭐가 두렵겠소. 부지런히 제 오륙만 놀리면 잘살겠는데···》

《옳습니다.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어야 집살림도 늘어나고 나라일도 잘되게 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소박한 말을 긍정해주시였다.

김달수는 문득 허리를 펴더니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모춤을 쥔채 그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아무리 봐도 우리처럼 막일할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농사일을 하는걸 봐선 여불없는 실농군이니···》

《여보 주인장, 그러니 그분앞에선 실농군행세를 삼가해야질 않겠소?》

뒤따라나오던 김책이 큰소리로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러자 김달수는 능청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따, 내 아무리 촌놈이기로서니 사람이야 바로 가려보질 못하겠수?! 보매 길손들은 나라일을 보는분들이 틀림없지오다. 안 그렇습니까?》

《나라일을 보는 사람들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거기서도 나라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지요. 예로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일러오질 않았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허리를 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글쎄 그렇긴 한데··· 하긴 우리 리위원장도 말은 그렇게 합디다. 이제부터는 우리모두가 나라의 주인이라고요. 그러면서도 내가 제기하는 문젠 들은척도 안하지요.》

《아니, 무슨 제기를 했게요?》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미가 동하시여 그에게 물으시였다.

김달수는 그이께서 관심어린 표정으로 물으시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기 미림비행장을 좀 보시우. 사실말이지 이 미림벌을 통털어두 저기만 한 땅은 없었수다. 저기에다 다시 논을 풀면 아마 수백섬은 잘 나올겝니다. 그런데 글쎄 리위원장은 내 말을 듣더니만 그건 나라일이니 상관하지 말라나요. 내참···》

《허, 리위원장이 상관하지 말라고 한 말은 아주 잘못되였군요. 나라의 주인들이 나라일을 상관하지 않을수가 있습니까?!》

《글쎄 내 말이 그 말이웨다. 잠자코 있자니 농사군으로서 생땅이 묵어나는걸 보구 어디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이께서 지지해주시자 김달수는 더욱 성수가 났다.

솔직하면서도 새 나라의 주인된 자각과 열의에 넘쳐있는 그의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시는 김일성동지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훈훈해지시였다. 이태전까지만 하여도 지주의 한뙈기 소작땅에 명줄을 걸고 한식솔의 생사조차 책임질수 없었던 우리 농민들이 이제는 나라일을 두고 관심하며 주인된 권리를 행사하려 하고있다. 그만큼 당당해지고 배심이 든든해졌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소작살이의 노예적이며 고용살이적인 근성에서까지 완전히 해방되였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이라는 관점이 이미 그들의 사고방식에 굳어지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점도 없진 않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짧은 생각은 일깨워주고 바로잡아주면 된다. 문제는 주인이라는 그 자각이다.

《그래, 달수동문 자식이 몇이나 됩니까?》

김일성동지께서 친근하게 물으시였다.

《우로 둘을 잃고 셋을 길렀습니다. 제일 큰놈이 열다섯입니다.》

마치 자식들이 앞에 있기라도 한듯 김달수의 눈가에는 대견한 빛이 확연히 피여났다.

《그들이 다 학교에 다니겠지요?》

《예, 막내아들은 아직 소학교에 다니고 큰놈과 딸년은 중학교엘 다닙니다. 글쎄 큰아들놈은 벌써부터 대학엘 가겠다고 들썩거린답니다. 어벌도 크지. 해방전같으문사 농사군의 자식이 대학은커녕 서당방에나마 발길을 들여놔봤겠습니까. 그래서 난 지금 이 김달수의 집안에도 큰 인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룡꿈을 꾸는데 그게 정말 이루어지겠는지···》

김달수는 벙글서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야 로동자, 농민의 세상인데 그들의 자식들이 대학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습니까. 난 동무의 그 꿈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습니다.》

《정말 그럴가요?》

달수의 입이 더욱 벌어졌다.

《달수동무도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세월이 흐르면 동무의 자식들이 동무를 대신해서 또 나라의 주인구실을 하게 될겁니다. 그때 가면 말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지금처럼 힘들게 육신을 놀려 짓는것이 아니라 기계로 짓게 될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시오, 달수동무의 아들이 모를 내는 기계를 타고 이 넓은 들판을 휘휘 돌면서 눈깜짝할 사이에 모를 다 꽂는 그런 광경을 말입니다.》

《참 들을수록 희한하기만 합니다. 정말 그런 날이 올가요?》

달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지 숨소리마저 높아졌다.

《꼭 옵니다, 오구말구요. 그러니 달수동무한텐 지금 근심걱정이 없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모춤을 량손에 갈라쥐고 몸을 뒤로 젖힌 달수의 모습을 눈여겨보시며 천천히 모를 꽂아나가시였다.

《허허··· 요즘같아선 무슨 근심걱정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말이웨다, 내 잠자다가두 이 세월이 꿈이 아닐가 하구 소스라쳐 깨나는 때가 있는데 이걸 배아파하는 놈이 과연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 때없이 갈마든단 말입니다.》

《하하하···》

옆에서 수굿하고 모를 꽂아나가던 김책이 소리내 웃으며 허리를 쭉 폈다. 농민이 제스스로 이야기의 바른 곬에 들어서기때문이였다.

달수는 좀처럼 말없이 일손만 놀리던 점잖은 사람이 그답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따라웃지도 책망도 못하고 하던 말을 채 잇지 못한채 민망한 눈길을 보냈다.

《아니, 내 말이 그렇게 우스운가요? 채 듣지도 않구···》

《주인장, 아니웨다. 내 웃음이 좀 헤퍼 웬간한 말에도 이렇게 실없이 웃군 하지요. 주인장이 얼마나 말을 재미있게 하는지··· 어서 계속하시우, 내 다신 웃지 않을테니···》

김책이 정색해지며 모춤을 갈라쥐면서 허리를 굽히자 김달수는 김일성동지를 향하여 몸을 돌리며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여기 미림벌을 차지하고 우리를 짐승처럼 천대하던 지주놈이 있습니다. 그놈이 해방된 그해 섣달 보름께 달아나면서 동네방네에 한 말인즉 땅은 지고가지 못하지만 땅문서는 가지고간다는겁니다. 세월이 암만 흐르고 변해두 땅임자는 영원히 자기라는거지요. 그놈의 말이 생각날 때면 잠이 안 오지요. 그놈이 과연 우리 농군들이 이렇게 잘살라고 그냥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소름이 다 끼칩니다.

이자 어르신이 근심이 없는가 물으셨길래 꺼낸 소리지만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지요.》

김책은 다시 허리를 펴며 김일성동지를 우러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와 눈을 맞추시며 빙그레 웃고나서 김달수를 향해 다시 물으시였다.

《달수동무는 확실히 나라의 주인된 자각이 있습니다. 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나라가 있고야 집안의 행복도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주인된 구실을 바로해야 합니다.》

《아무렴요. 천만번 지당한 말씀이지요.》

김달수는 자기의 꾸밈없는 말이 큰어르신들로부터 긍정을 받자 오히려 게면쩍어하였다.

《그러니 그 지주놈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것도 나라의 주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거럼요.》

《달수동무, 우리는 하루빨리 정규적인 혁명무력을 건설하여 오늘뿐아니라 바로 미래의 주인들인 우리 아이들의 희망과 앞날을 지켜주고 영원히 담보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비행장을 없애고 저 넓은 땅에 논을 풀면 많은 쌀을 생산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비행장과 쌀수백섬을 바꿀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피눈물나는 노예생활을 하지 않으려면 정규적인 혁명무력이 있어야 하구 그러자면 현대적인 항공대도 있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래도 저 비행장을 논으로 풀어야 하겠습니까?》

그제서야 김달수는 김일성동지께서 여직껏 에둘러 펴오신 이야기의 끝을 짐작하였다.

《무슨 말씀이신가 했더니··· 아,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다음에야 쌀이 수천만석 나온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역시···》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같은 농사군이 나라의 주인구실을 한다는건 당치 않습니다.》

《공연한 말씀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가꾸는것뿐아니라 그것을 지키는것도 다 주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김달수는 잠간동안에 받아안은 충격이 너무도 커 률동적으로 모를 꽂아나가시는 그이의 뒤모습만을 멍하니 지켜볼뿐 발을 옮기지 못했다.

《자, 좀 있으면 비가 올것 같은데 일손을 다그쳐 이 논배미의 모내기를 빨리 끝냅시다.》

그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난 김책이 누구에게라없이 소리를 쳤다.

×

마침내 비가 내렸다.

차창밖에 흘러내리는 비물을 바라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등받이에 웃몸을 기대시였다.

오래간만에 농사일을 해서 그런지 허리가 뻐근하시였다.

《힘드시지 않습니까?》

김책이 근심어린 목소리로 조용히 묻는 말이였다.

《힘들기야 나보다 김책동무가 더할테지요.》

그이께서는 오히려 김책을 걱정해주시며 정겹게 눈길을 주시였다.

《저야 뭘··· 그저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나간걸요. 오후엔 좀 휴식을 하셔야겠습니다.》

《글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만경대엘 갔다와야 할것 같습니다. 새로 평남도인민위원장사업을 맡은 리주연동무가 학원건설사업소를 조직해놓았다는데 내가 가서 로동자들이 생활할수 있는 조건이랑 알아봐야지요. 》

《저··· 제가 대신 가면 안되겠습니까?》

김책의 진심어린 얼굴을 바라보시며 그이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김책동무야 래일 황철에 내려가야 하질 않습니까. 난 오히려 김책동무가 걱정됩니다. 부상자리가 도지지 말아야 할텐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혼자소리처럼 뇌이시며 또다시 비물이 줄줄 흐르는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나이보다 퍽 겉늙어보이는 그의 수척한 얼굴을 마주보기가 괴로우셨던것이다.

김책이··· 자신처럼 믿음이 가고 그래서 더욱 의지하고싶어지는 귀중한 동지였다.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그만큼 크고작은 모든 사업부담을 걸머지고있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있다. 조금이라도 나의 사업부담을 덜어주려고 왼심을 쓰군 한다.···

《참,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안길동무에게 간리림시교사보수사업에 군인들을 동원시킬데 대한 임무를 주었습니다. 군인들까지 붙으면 이번 9월 1일 개학날부터는 능히 수업을 시작할수 있을겁니다.》

김책이 자기의 건강을 놓고 깊어지는 장군님의 근심을 덜어드리려고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얼핏 그에게 눈길을 돌리셨던김일성동지께서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실뿐이다. 불과 보름전에 사망한 안길의 부인 강미분녀의 모습과 함께 더욱 꺼칠해진 참모장의 얼굴이 아프게 맺혀오시였던것이다. 고생끝에 락이라는데 그들부부에게는 왜 그런 가슴아픈 불행이 들씌워지는지··· 항일무장투쟁 전기간을 헤여져 살다가 해방된 조국땅에서 락을 누려볼가 하니 그렇게 애석하게 짝 잃은 외기러기신세가 될줄이야···

김책이, 안길이···

자신의 오른팔, 왼팔이라고 해야 할 이들···

이들은 꼭같이 자기들의 아픔과 불행은 깊은 곳에 묻어두고 오로지 조국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헌신분투하고있다, 이런 동무들을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편히 쉬게 해줄수만 있다면···

승용차는 뽀얗게 앞을 가리우는 비발을 헤치며 천천히 달렸다.

김책은 머리를 수굿하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이의 근심을 덜어드린다는것이 그만 안길의 불상사를 떠올려 오히려 심뇌를 더해드렸으니 자신의 불민함과 민망스러움에 자책이 컸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그의 속마음을 읽고도 남음이 있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른 화제를 돌리시였다.

《참, 내 언제부터 김책동무에게 묻고싶었는데 허형식의 가족행처에 대해 알고있습니까?》

《허형식의 가족행처··· 말입니까?》

김책은 그이의 뜻밖의 물으심에 다만 기계적으로 따라외웠을뿐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는 이미 장군님께서 중국인민의 국내전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동북에 떨구어두셨던 강건, 최광 등에게 허형식의 유가족을 찾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었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렬사의 유가족은 일제의 감시와 가증되는 탄압을 피하여 여기저기 옮겨가며 숨어살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정으로 찾을 길이 묘연하였다.

강건과 최광은 조국에 돌아온 후 이 사실에 대하여 장군님께 구체적으로 보고드리였다. 그때 그 자리에 김책이도 함께 있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 자기에게 허형식의 가족행처를 다시 물으시는것은 그 이후에 따로 알아본것이 있느냐는 뜻에서였을것이다.

하지만 김책은 더 말씀드릴것이 없었다. 그들의 행처를 가늠키 어려운데다가 수많은 사업들에 부대끼다보니 그 이상 알아볼 생각을 못했던것이다.

《저··· 1938년도 가족과 련계가 끊어진 후부터는 전혀 모르고있습니다.》

그들의 행처를 모르는것이 전적으로 자기의탓이기라도 한듯 김책은 죄스러운 어조로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고나서 추억깊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그의 고향이 경상북도 어데라고 한것 같은데?···》

《경상북도 선산군이 그의 고향입니다.》

《하긴 북만에서 살던 조선사람들가운데는 대체로 경상북도출신들이 많았지. 허형식동무는 북만에서 항일련군을 조직할 때 김책동무와 함께 주동적역할을 한 사람이였지요. 두사람의 우정이 남달랐다던데···》

련련한 회억이 김책의 온몸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허형식은 김책과 봉천감옥생활도 같이하였고 빈현일대에서 항일무장대오를 묶어세울 때에도 위험한 투쟁의 길을 함께 걸은 잊지 못할 전우였다. 항일련군 제3군이 조직되였을 때 당권은 정치위원인 김책이, 군사권은 주력사단장인 허형식이 쥐고있었다. 지휘체계를 개편하여 로군을 편성하였을 때에도 김책은 제3로군 참모장 겸 1지대장인 허형식의 정치위원으로 오랜 기간 함께 싸웠다. 허형식은 혁명선배이며 나이도 우인 그의 말을 언제나 귀담아듣군 했는데 특히 동남만에서 받는 통보와 소식들중에서 김일성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줄 때면 온밤 잠들지 못하고 희열에 넘쳐있군 하였다. 그런 밤이면 조선민족이 낳은 걸출한 령도자를 직접 모시고 싸우는 동만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군 했다. 그들 두사람의 전우애, 동지애는 조선사람이라는 동포애로 하여 남달랐고 그 동포애는 김일성장군님을 모셨다는 환희와 긍지로 하여 더욱 굳건해졌다. 기회가 조성되기만 하면 그들은 우정 2지대장인 박길송을 지휘부에 불러다놓고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군 하였다.

김책과 허형식은 많이 물어보고 박길송은 그만큼 알려주었다.

동만을 잘 모르는 허형식은 늘 그의 말을 신기하게 듣군 하였다.

《야 길송이, 너는 좋겠다. 왕청에 있을적에 그분을 만나뵈왔다지. 난 말이야,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아직 만나뵙지는 못했어. 인정이 그처럼 많으신분이시라는데 이제 우리 두 눈병신을 만나면 속으로 눈물을 지으실것 같구나.》

북만의 두 항일용장인 허형식과 박길송은 왜놈들과의 전투에서 불행하게도 한쪽눈씩 상했는데 그걸 념두에 두고 하는 그들의 말이였다.

《만일 왜놈들과 싸우다가 한쪽눈을 마저 잃으면 길송이 네가 나를 업고서라도 장군님곁으로 데려가다오.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개선할 그날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아, 그날은 과연 언제일지?···》

《내가 그렇게 되면 허형이 나를 업어다주시오. 장군님께선 우리들을 잘 알고계시니 아마 조국개선대오의 맨앞에 세워주실거요.》

그들 두사람의 약속은 애석하게도 실행되지 못하였다. 박길송은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1943년 8월 할빈감옥에서 사형당하였고 허형식은 1942년 8월 소부대활동을 지도하러 나갔다가 소룡하기슭에서 불의에 조우한 적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때 박길송의 나이는 26살이였고 허형식은 33살이였다.

김책에게는 불쑥 허형식이 장군님께 드리겠다고 천하에 없는 명마를 구해들이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들이 기마부대를 조직하던 때의 일이였다. 기마부대를 조직하게 된것은 그들의 활동구역의 지대적특성과 관련되여있었다. 그들의 활동지역은 동서로 약 900여리, 남북으로 700여리의 광대한 벌판위주의 야산지대였다. 이 반경안에는 몇개의 큰 산과 그와 잇닿은 천고의 밀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드넓은 초원이였다. 이러한 북만의 지대적특성은 산악이 많은 동만이나 남만과는 달리 기마부대의 활동에 유리하였으며 행군과 전투에서의 신속성, 기민성으로 하여 적들에게 보다 큰 타격을 줄수 있었다. 또한 북만에는 군마와 사료원천도 풍부하였다. 어느날 허형식이 주하마을에 사는 독립군출신의 로인에게 천하명마가 한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허형식의 아래우를 몇번이고 훑어본 그 로인은 집에서 얼마쯤 떨어진 깊은 숲속으로 데리고갔다. 왜놈들이나 토비들에게 빼앗길가봐 이곳에서 기르는데 말이 어떤가를 보라고 하면서 그의 앞에 끌어다놓는것이였다. 큰 키에 늘씬한 말의 생김도, 달리는 그 모습도 역시 볼만 하였다. 과시 천하에 없는 명마라 할수 있었다. 부쩍 욕심이 동한 허형식은 로인과 흥정을 벌렸다. 그런데 값이 너무도 엄청났다. 로인이 부르는 값은 보통말 열필을 사고도 두마리정도의 부림소를 더살수 있는, 산림대에 가면 한개 소대를 무장시킬수 있는 토퉁(구식보총의 일종)을 살수 있는 액수였다. 로인은 자기가 부른 값을 조금도 낮추려 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그는 돌아서고말았다. 린색하기 그지없는 령감태기가 여간만 괘씸하지 않았으나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말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려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40일이 지난 어느날 허형식은 많은 로동자와 5대의 자동차까지 가지고있는 일본인농장주의 집을 습격하여 빼앗은 돈을 가지고 김책을 찾아와 속심을 터놓았다. 김책은 그 로인의 별호가 혹시 《마상재》(말타기명수라는 뜻)가 아닌가고 물었다.

《내가 그 령감태기가 마상재인지 뭔지 알게 뭡니까.》

《허동무, 내 그 로인을 좀 아는데 한때 독립군에서 왜놈들과 잘 싸운분이요. 그리고 그 로인이 말값을 그렇게 부른것은 그만큼 말이 값나가는것이기때문일거요. 로인의 심정을 리해해주오.》

김책의 말을 듣고 허형식이 다시 찾아가자 로인은 기다렸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쥐였다. 그리고는 말편자와 안장도 새것으로 해놓을테니 나흘이나 닷새후에 와서 말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가 세번째로 찾아갔을 때 로인은 말과 함께 1정의 기관총과 6자루의 일본제보총 그리고 한통의 탄알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독립군이 주저앉으면서 임자들에게 물려준것이 화승총밖에 없었는데 자기의 손으로 이런 훌륭한 무기를 마련해주고싶었다고, 돈이 좀 모자라서 하는수없이 임자에게서 말값을 받아 이걸 구했으니 부디 자기 몫까지 합쳐 왜놈들과 잘 싸워달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허형식은 그때에야 김책이 어째서 로인의 심정을 리해해주라고 말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로인의 애국충정에 감동되여 발밑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허형식은 후날 그 로인을 잊을수 없어 자기의 별호를 《마상재》라고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적들은 그가 이끄는 기마부대만 출몰하면 마상재기마부대가 왔다고 하며 그들의 말발굽소리에 전률하군 하였다.

그는 늘 살붙이와 같이 여겨오는 준마를 언제인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오면 꼭 드리겠다고 김책에게 말하군 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종시 자기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합니까? 혹시 허형식이 나에게 보내려고 마련했다던 그 준마생각을 하는게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시며 넌지시 김책에게 말씀하시였다.

《그럼 장군님께서도 그 생각을?··· 그러고보니 우리들의 생각이 한곬으로 흐르고있었군요. 그와 마지막으로 헤여지던 그날도 이런 비내리는 날 오후였습니다.》

김책의 목소리는 나직이 갈렸다.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원동으로 떠나는 김책의 일행을 바래우며 자기도 함께 가고싶다고, 장군님의 친솔대오에 속하여 평범한 전사로라도 함께 싸우고싶다고 절절하게 말하던 허형식이···

아, 그날 그의 얼굴에 흘러내린것은 비물이였던가, 눈물이였던가.

그래도 제 먼저 작별의 슬픔을 애써 감추며 말했었지.

《김책동지, 장군님을 만나뵈오면 전해주십시오. 제 귀는 만리밖에서 울려오는 소리까지 듣는다고 말입니다. 장군님께서 백두산에서 총소리를 크게 울리시면 제 여기서 화답의 총소리를 울리겠습니다. 마상재로인은 〈월나라 새는 남쪽가지에 둥지를 틀고 몽골말은 북풍에 의지한다.〉고 말하군 했는데 이 허형식인 언제나 마음은 장군님품에 가있고 어디서나 장군님의 뜻을 따를것입니다. 조국으로 총진격할 때 북쪽에 대고 소리쳐부르십시오. 제 귀를 쭉 늘쿠어 남쪽에 돌리고 기다리고있겠습니다.》

김책은 그래서 그와 웃으며 헤여질수 있었던것 같다. 언제인가 조용한 기회가 생겼을 때 혼자서 벌쭉벌쭉 웃으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한번 집에 가보니 글쎄 아들녀석이 벌렁벌렁 기여다니다가 내 배를 타고앉아 오줌을 뜨끈하게 내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를 늦게 찾아온 벌칙으로 말입니다. 그옆에서 딸년은 좋다구 손벽을 치구요.》

그 대단한 락천가, 그 용감하고 령활무쌍한 지휘관을 이제는 영영 다시 볼수가 없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운전사옆좌석에 앉은 리종산에게 눈길을 돌리시며 혼자소리처럼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종산인 어릴 때부터 허형식동무의 련락병으로 오래 있었지. 동무가 그의 비보를 가지고 원동훈련기지로 들어오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5년세월이 흘렀구만. 그러니 종산이도 그의 유가족을 찾는 일에 관심을 돌려야 돼.》

《알았습니다.》

자책이 어린 종산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희생된 전우들을 잊지 말고 그들의 자녀들을 찾아 책임지고 돌봐주어야 해. 그렇게 하는것이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우리 산사람들의 의리가 아니겠소. 내 그래서 동북땅에 있는 유자녀들을 찾으러 림춘추동무를 곧 보내자고 하오. 》

김일성동지의 말씀은 낮으나 절절하였다.

그이께서는 뜨거움에 젖어있는 김책의 얼굴을 바라보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 얼마 안있어 학원을 세워야 하겠는데 우리 하루빨리 유자녀들을 찾아서 공부를 시킵시다. 허형식의 고향이 경상북도 선산이라니 그 가족들의 행처에 대해서는 나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남조선 반일운동자구제위원회에 부탁해봅시다.》

김책은 웬일인지 자꾸만 목이 막혀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후덥게 달아오르는 가슴만이 확확 열기를 내뿜는듯싶었다. 그는 뿌잇해지는 두눈을 슴벅이며 차창밖으로 얼른 얼굴을 돌렸다.

차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뜨거운 비가 내리고있었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로 평안남도인민위원회 위원장 사업을 맡은 리주연을 비롯한 일군들과 함께 만경대에 또다시 나가시여 학원건설사업소 소장 림춘석, 재정과장 손기림, 현장지도원 김순건 등을 만나 건설에 동원된 로동자들의 숙식보장대책을 하나하나 세워주시였으며 학원건설을 위한 지대정리작업을 다그쳐끝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