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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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북조선애국투사후원회의 사무실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여느때없이 잦아졌다.

지금까지 별로 번잡하지 않던 이곳의 사무가 이렇게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된것은 학원창립준비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북조선인민위원회결정이 발표된 이후부터였다. 학원창립준비위원회 성원들이 등록된 혁명가유자녀들의 명단과 그 확인자료들을 요구하여 부지런히 찾아왔고 교육국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교육강령작성때문에 유자녀들의 평균년령과 일반지식상태를 따져보기 위하여 때없이 문을 두드렸다.

지방의 각급 애국투사후원회 일군들도 자기 단위에서 새로 장악한 유자녀들에 대한 자료제출로 두툼한 문서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이틀이 멀다하게 이곳에 나타났다. 당, 정권기관의 개별적일군들도 드문히 찾아와 자기들이 알고있는 혁명가들과 그 유자녀들에 대해 알려주며 애국투사후원회의 사업에 전에 없던 관심을 보였다. 어쨌든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한 학원을 세울데 대한 문제가 정식 결정되고 그 창립준비위원회가 조직됨으로 하여 지금까지는 본인들이 찾아온다거나 또는 개별적일군들의 열성여하에 따라 다분히 자연발생적으로 진척되던 이 사업이 전당적, 나라적인 사업으로 전환되여가고있음이 분명해졌다. 하긴 학원을 세우는데서 여러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고 하지만 초미의 문제는 역시 혁명가유자녀들을 하루빨리 모두 찾아내는것이라 해야 할것이다.

월송은 애국투사후원회사업의 중요성이 학원창립문제와 더불어 더욱 커지고있는데 비해 자기의 능력과 정력이 따라서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이것은 장악된 유자녀들의 범위내에서 모쁘르기념일때와 같이 그저 그들에게 생활상방조나 조직해주는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였기때문이였다.

사업의 규모는 더없이 방대했고 그 내용은 더없이 복잡했다. 국내에서 싸우다 희생된 혁명가들의 유자녀들은 그렇다치고 국외에서 싸우다 희생된 혁명가들의 자녀들은 도저히 찾을 방도가 없었다. 그보다 더 복잡한것은 다름아닌 그 혁명가― 애국렬사의 범위를 어떻게 확정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가 희생된 렬사들의 자녀들을 다 찾아내여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작 혁명학원에 입학시킬 대상자를 규정하는데서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군 하였다.

오늘도 애국투사후원회 중앙위원회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심각한 의견상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라성환부위원장과 중앙위원 류한종의 주장이 제일 날카롭게 대립되였다.

《이제 우리가 세우게 될 혁명학원은 명실공히 우리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계승자들의 원종장으로 되여야 합니다. 때문에 학원에서 공부시킬 대상자들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는것으로 되며 나아가서는 장차 우리가 이 나라에 어떤 국가를 세우려 하는가에 대한 대외적인 선포로도 됩니다.》

월송은 시작부터 열기를 띤 라성환의 토론을 들으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얼마전까지만도 학원창립문제에 대해서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저렇게 학원창립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하여 흠잡을데 없는 론리를 제기하고 명쾌하게 풀이하는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전후사연은 어떠했던지간에 라부위원장의 그 말은 월송뿐아니라 모든 중앙위원들을 공감시켰다.

《이렇게 첨예한 문제이기때문에 원래는 건국을 먼저 하고 국가의 성격이 대내외에 명백해진 다음에, 아울러 국가의 경제적토대가 충분히 마련된 다음에 학원을 세우는것이 리상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원창립문제가 결정된 이상 이 마당에서 그것을 다시 후론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학원입학대상자들을 규정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러한 전략적인 시각이 충분히, 충분히 고려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성환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루를 박아가며 사뭇 엄숙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대다수 사람들의 얼굴에서 자기가 던진 전략적인 시각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에 대한 경탄의 빛을 만족스레 읽어나가던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사람의 뒤더수기만을 덤덤히 바라보고있는 류한종을 띠여보고는 실망한듯 눈길을 떨구었다. 그러나 월송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뿐···

라부위원장의 열띤 목소리는 더욱 확신에 넘쳐 울리고있었다.

《요즘 우리 애투사업은 새로운 활기를 띠고 진행되고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활기라는 바람을 타고 새로운 혁명가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있는것은 엄중한 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월송부위원장선생님도 이미 서두에 말씀했지만 일부 애투성원들속에서는 희생된 혁명가들과 그 유가족들을 정확히 확인하고 등록하여야 하겠으나 개별적일군들의 명의와 안면관계에 의해 확인하지도 않고 망탕 등록하고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 애투사업을 강건너 불보듯 하던 일부 간부들이 요사이엔 뻔질나게 애투문턱을 넘고있는데 이걸 다 좋게만 볼순 없단 말입니다.》

회의실안이 술렁술렁해졌다. 그 술렁거림속에서 월송은 《하긴 오기섭국장이 여느때없이 자주 오군 하지.···》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려들었다.

《자, 자. 조용들 하시오. 토론을 마저 들읍시다.》

월송은 회의집행자로서 한마디하지 않을수 없었다. 워낙 긴말을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라부위원장이 안경을 낀 월송의 얼굴을 얼핏 바라보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놓고볼 때 항일빨찌산투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렬사들의 자녀들을 기본입학대상자로 보아야 한다는 류한종선생의 주장은 일정하게 이런 페단들을 극복할수 있게 하는 방도라 해야 할것입니다. 실지로 조선혁명과 조선해방투쟁에서 가장 핵심적이였고 가장 값비싼 희생을 바쳐 공헌한것이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이였다는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주지의 력사적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현상태에서 볼 때 이런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항일전의 력사가 20성상을 헤아리는데 과연 저 만주광야에 무덤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간 그 많은 렬사들의 자식들을 어떻게 찾아낸단 말입니까? 내 생각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겁니다.》

마치 류한종과 이야길 나누듯 라부위원장은 그에게 시선을 박은채 계속했다.

《하지만 그것이 기본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전까지 조선에서의 항일전쟁은 조국해방이라는 다분히 민족리익위주의 대의명분으로 진행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혁명은 사회주의쏘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반파쑈투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마땅히 국제적인 반파쑈화투쟁에서 희생된 렬사들의 자식들로 학원대상자들을 규정하는것은 현실적이면서도 대단히 전략적인 정치적의의가 있다는겁니다. 얼핏 들으면 단순한 표현상의 차이같지만 사실 이것은 쏘련을 비롯한 세계사회주의진영앞에 앞으로의 우리 국가의 친선우호적인 대의명분을 미리 선포하는것이나 다를바 없다는겁니다.》

드디여 자기의 말을 다 끝마친 라성환이 자신만만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또다시 여러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렇게 되면 학원입학대상자들을 규정하기도 명백하고 또 유자녀들을 찾기도 쉬울거라는둥, 학원에서 공부시킬 아이들을 고르는데 그렇게 큰 정치적의미가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는둥···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머리를 젓는 사람들도 있었다. 월송은 은연중 류한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류한종은 한때 김일성장군님의 빨찌산에서 군의로 싸운바 있는 사람이다. 원래는 일개 사립의원으로서 도움을 청하는 유격대원의 뒤를 따라 산에 들어갔다가 장군님의 인품에 끌리고 또 의사로서의 량심을 지켜 나이 50에 부상당한 빨찌산대원들을 치료하는 군의가 되였다고 한다.

한해두해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많은 그가 유격대생활을 힘들어하고 또 몸도 쇠약해져 장군님께서는 그를 설복하여 집으로 내려보내시였는데 류한종은 석달만에 또다시 산으로 들어왔다는것이다.

《장군님, 하루 삼시 뜨끈한 온돌방에서 로친네가 해주는 더운 밥을 먹으며 혼자 호의호식하자니 밥알이 가로걸려 넘어가질 않습니다.》하며 류한종은 많은 의약품과 장군님께 드리자고 특별히 가져온 보약들을 내놓았다고 한다.

장군님께서는 더더욱 류한종을 아끼시는 마음에서 다시 설복하여 그를 집으로 보내시였는데 해방후 애국투사후원회에서 같이 사업하게 되였을 때 월송에게 수정같이 깨끗한 량심을 지닌 인간인 그에 대해 무한한 정을 담아 이야기해주시였었다.

그러한 류한종일진대 허가이조직부장의 입김이 그대로 풍기는 저 라부위원장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인지.

월송은 자기로서도 딱히 옳다, 그르다 견해를 세우기 어려운 상태여서 선뜻 먼저 말을 떼기가 저어되였다.

드디여 류한종이 조용한 성미그대로 조심히 의자를 뒤로 옮겨놓으며 소리없이 일어섰다. 그러고도 잠시동안 앞사람의 뒤머리에 눈길을 박고있다가 약간 갈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난 라부위원장선생처럼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따라서 어째서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점으로 그 이전시기의 희생은 민족의 리익만을 위한것으로 되고 그 이후시기의 희생은 세계혁명의 리익을 위한것으로 되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침략자들과의 싸움이 아니였겠소? 모르긴 하겠소만 라부위원장선생의 말을 따져보면 결국 쏘련사람들과 공동전선에서 싸우다 희생된 렬사들의 자식들만 학원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리같은데 그들은 물론이거니와 장구한 항일전에서 희생된 혁명렬사들의 자식들모두를 다 찾아내여 학원에 보내야 합니다. 희생에는 때에 따라서 커지고 작아지는 아픔이 없지요. 어느때의 희생이든 그것이 가슴아프기는 다 마찬가집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유격대원 한사람한사람, 지하조직원 한사람한사람을 잃을 때마다, 그 비보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비통해하시고 가슴아픈 눈물을 흘리군 하셨는가를 여러분들이 단 한번만이라도 보았더라면 아마···》

그는 더 말끝을 잇지 못하였다. 그 갈리던 목소리마저 물기에 젖어 잦아들고말았다.

《류선생!···》

월송은 저도 모르게 상반신을 주춤 일으키며 한손을 내여밀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그의 말에 대한 공감의 표시로 된다고는 생각지 못하였지만 그만큼 자신의 심장에 마쳐온 감동은 억제할수 없는것이였다.

사람의 심장을 틀어잡는것은 역시 론리보다 인정인것이다. 과연 저 류한종의 말속에 담겨져있는 진실, 참인간의 깨끗한 모습이 어찌 론리의 창보다 심장속에 깊이 박히지 못한다 하랴.

라부위원장의 주장은 대단히 론리적인듯은 하나 다분히 그 누구의 비위를 맞추려는 책략과 얼음같은 찬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자고로 정치란것은 감정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같은 늙은이로서는 도저히 가늠할수없이 복잡다단한것이 바로 오늘날의 정치가 아닌가!···

월송은 혁명학원창립문제 하나에 그렇듯 심각하고 첨예한 문제점들이 비껴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신의 무능력을 자탄하느라 김종항서기가 회의실안에 들어선것도 모르고있었다. 라성환이 슬쩍 귀띔을 해서야 그를 알아볼수 있었다.

《선생님,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님을 부르십니다.》

김종항서기가 회의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귀가에 대고 조용히 일러주는 말을 듣고서야 월송은 펀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그분께 사실그대로 다 말씀올려야지. 소견머리좁은것들이 나살이나 건사했다고 세상일을 아는것처럼 공자왈맹자왈해서야 무슨 소용이람. 이 세상일을 만사능통하고계시는분이야 김일성장군님밖에 누가 또 있으랴.

월송은 황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좋은 기회이니 내 얼른 가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오겠소. 그러니 다들 기다려주시오.》

월송은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말하고나서 회의실을 나섰다.

×

《애국투사후원회성원들을 기다리게 하셨다니 이거 참 난처한 일이군요. 사실 난 오늘 선생님께 좋은 소식도 전하고 반가운 일을 마련해드리자고 오시라고 했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책 절반, 하소연 절반 자기의 사업고충을 두서없이 털어놓는 월송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나서 가볍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괜히 인사말삼아 《그래 사업에서 뭐 제기되는것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는 후회가 드시였다. 그저 로인에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하자고 물으셨던것인데···

하긴 요사이 애국투사후원회성원들속에서 학원입학대상자문제를 놓고 여러가지 론의가 있다고 하여 구체적으로 듣고싶으셨지만 오늘만은 애써 그 문제를 꺼내지 않으시려 했었다.

하지만 그가 《중임을 맡은 몸에 일을 변변치 못하게 해서···》 하며 사업이야기부터 꺼내는통에 어쩔수없이 말려드신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의 안타까운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시였다.

고정하면서도 성미가 불같은 이 로인에게 있어서 석연치 못한 일들을 속에 품고있다는것은 더없이 괴롭고 고통스러운것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우선 그의 마음속 불부터 꺼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애국투사후원회일군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아래에서 올려오는 문건이나 개별적사람들의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현지에 내려가 제기된 대상이 진짜 혁명가인가를 구체적으로 료해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된 혁명가들을 빠짐없이 찾아낼수 있고 우리가 맡아키울 그들의 자녀들을 정확히 장악할수 있으며 혁명가유자녀대렬내에 우연분자가 끼여들지 못하게 할수 있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이런 문제가 지적된것은 아주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이께서는 월송의 두손을 다정히 잡아 의자에 앉혀주시며 고무적인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월송은 엄중한 결함을 놓고 나무랄대신 오히려 문제를 바로 보았다고 치하해주시며 차근차근 방도를 가르쳐주시는 그이의 세심한 말씀에 그만 송구스러움을 누를길 없었다.

《다 제가 불민한탓에 생겨난 일이온데 장군님께선 어째서 꾸중대신 관용을 베푸시는겁니까.》

《그것이 어떻게 선생님의탓이라고 하겠습니까? 일부 일군들의 무책임성때문이지요.》

《하지만 저야 부위원장의 중임을 맡은 사람인데···》

《선생님처럼 스스로 결함을 찾고 일을 바로 하자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꾸중이 필요없지요. 달리는 말에는 채찍을 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이의 미소어린 눈가에는 말로써는 도저히 형용하기 어려운 따뜻한 정이 가득 어려있었다.

김월송선생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님 생각에 잠기게 되는 그이이시였다. 강직하고 웅심깊었던 아버님의 그 모습···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한가정에 계신 날보다 집을 떠나계신 날이 더 많아 그 시절의 아버님모습은 어쩐지 어렵게 느껴졌었다. 조선의 남아라면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며 천리길을 떠나보내실 때에도 팔도구의 사나운 눈바람속에서 근엄한 눈빛으로 바래워주던 아버님이시였다.

《아니, 네가 정말 혼자서 왔단 말이냐! 너의 아버지가 범보다 더한 사람이구나!》 하고 만경대할머니가 혀를 찰 정도로 아버님은 언제한번 부자간의 잔정을 보여주지 않으시였다.

림종의 시기 병석에 계시는 아버님 병구완때문에 방에 들어설 때면 《너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 가거라, 사내가 그래서는 큰일을 못해···》라고 엄하게 꾸짖으며 기어이 학교로 보내군 하시였다. 무한히 엄하면서도 끝없이 웅심깊은것이 자신에게 부어주신 아버님의 사랑이였다.···

그래서인지 아버님과 남달리 친교가 깊었던 김월송선생을 만날적마다 그 시절의 아버님모습이 느닷없이 떠오르셨고 단 한번도 자식으로서의 효도를 못 드리고 너무도 일찌기 보내신 그 아픔이 아릿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그런 련련한 심정에 잠겨드는 자신을 어쩔수없이 의식하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애써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먼저 좋은 소식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량의준이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량의준이요?》

월송은 이렇게 되뇌이며 기억을 더듬느라 미간을 쪼프렸으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장군님, 용서하십시오. 나이탓인지 의준이란 그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질 않습니다.》

《하긴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기억 못하실수 있지요. 량의준은 량세봉사령의 아들입니다.》

《예? 량세봉의 아들이라구요?···》

김월송은 상반신을 엉거주춤 일으키기까지 했다.

《김종항동무에게 과업을 주어 알아보았더니 다행히도 그가 지금 어느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고있답니다. 애투에서 당장 사람을 파견하여 그를 데려와야겠습니다.》

《그를 데려단 어쩌시려고?···》

《그 애를 우리가 세우는 학원에 넣어야지요.》

《량사령의··· 아들을 말입니까?》

월송은 혹시 자기가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여 떠뜸떠뜸 되물었다.

장군님께서 량세봉의 아들을 기억하고있는것도 놀라운 일이였지마는 그보다는 그를 학원에서 공부시키겠다는 말씀이 더 놀라왔던것이다. 지금까지 라성환이나 류한종의 갑론을박속에는 독립군사령 량세봉과 같은 사람은 애초에 념두에도 없지 않았는가.

《량세봉사령은 마지막까지 일제를 반대하여 잘 싸운 사람입니다. 모름지기 선생님은 류한종선생이나 라부위원장의 주장들을 놓고 생각이 많으신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공리공담같습니다.》

《그럼 장군님께서는?···》

월송은 긴장이 어린 눈길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희생된 혁명가, 애국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일인데 여기에 무슨 정치적고려나 책략이 필요하겠습니까. 항일무장대오에서 싸웠든 국제련합군에서 싸웠든 또 국내에서 싸웠든 그들은 다 조선의 해방독립을 위해 싸운 혁명가들이구 애국렬사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대신하여 진정으로 유자녀들의 부모가 되는것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타발하지 않는 법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멀리 석양빛에 휩싸인 남쪽하늘이 비껴왔다. 그이께서는 그 하늘가에 그냥 눈길을 준채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저 남조선에서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또다시 수많은 혁명가들이 피를 흘리고있습니다. 우리는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혁명가들의 자녀들뿐아니라 해방후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일군들의 자녀들 그리고 남조선혁명가들의 유자녀들모두를 다 학원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비록 정견과 주의주장은 달랐어도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이라면 그의 자녀들을 학원에 입학시켜 공부시켜야 합니다. 선생님도 잘 알고계시지만 우리 아버님의 뜻이 지원이 아니였습니까. 지원의 뜻은 그 어떤 특정한 당파나 세력, 계층의 리익과 리해관계에 한한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장래까지도 담보해야 한다는 애국애족의 사상이라고 전 생각하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격정으로 가슴을 들먹이며 한걸음한걸음 다가서는 월송의 두손을 꼭 모아잡으시며 절절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선생님, 우리 아버님과 뜻을 같이하던 그때처럼 애국투사후원회사업을 이끌어주십시오. 바로 그 시절의 선생님들의 뜻을 실현하는 사업이라고 여기시고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한 학원건립문제를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장군님!···》

월송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얼핏 고개를 숙이며 안경을 벗어들었다. 그리고는 얼른 눈굽을 찍었다.

장군님의 그 무한한 민족애, 고결한 인간애앞에 백발을 숙여 감사의 절을 드리고싶었다.

(김형직선생! 저 말씀을 들으시오? 어쩌면 꼭 내 선생을 처음 만나 지원의 그 높으신 뜻을 받아안던 그날에 다시 접한것만 같구려. 난 그저 공산주의자들이 세우는 학원이니 응당 공산주의자들의 자식들만 거두어주려니 생각했었는데 김장군께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바친 사람들의 자녀들을 다 한품에 안아주시겠다는거요. 김장군의 전우애, 동지애만으로 이걸 설명하기에는 학원이 뜻하는바가 너무도 커서 난 그저 머리가 숙어질뿐이요. 정녕 김장군의 품은 애국애족의 품이고 혁명학원은 곧 김장군의 품이요! 비로소 김형직선생이 그날에 그토록 념원하던 지원, 바로 그 지원의 뜻이 꽃피는 오늘을 보는것 같소.)

월송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김형직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천천히 안경을 다시 꼈다.

그리고는 나직하나 활기에 넘친 어조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제 미흡하나마 꼭 그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제 당장 돌아가서 우리 사람들에게 장군님의 그 뜻을 깨우쳐주겠습니다. 아마 다시는 그런 공리공담들을 하지 않을겝니다, 허허···》

《그 불같은 성미는 어쩌지 못하겠군요. 하지만 오늘만은 좀 참으십시오. 제 김종항동물 보내서 그들이 선생님을 기다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장이라도 떠나갈듯 한 그를 만류하시며 창가곁 원탁우에 놓인 물주전자를 손에 드시였다. 유리고뿌에 물을 따르시고나서 천천히 그리고 은근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오늘 저녁에는 선생님댁에 가보고싶은데···》

《예?···》

《참, 새로 선생님의 집을 한채 마련했습니다. 아마 정숙동무랑 장판이며 도배도 다 다시 해놓았을겁니다.》

《원, 지금 사는 집도 좋은데 혼자 사는 늙은이가 새집은 또 해서 뭘하겠다구··· 성의는 고마우나 전 가지 않겠습니다.》

고정한 그 성품 그대로 도리머리를 젓는 월송을 미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허, 이것 참 야단이다. 안주인은 꼭 집에 오라지 바깥주인은 가지 않겠다지··· 이럴 땐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가요, 예?···》

《안주인이라니요? 아니, 그건?···》

의아해진 월송은 괜스레 안경을 흘깃 추스르며 그이를 유심히 우러러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장군님의 안색에서 여느때없이 기쁨이 출렁이는것을 눈여겨볼수 있었다.

《장군님, 설마?···》

월송의 말이 후두두 떨리였다.

《허허··· 실은 값을 더 올리자고 했는데 절 그런 눈길로 보시니 더 숨기지 못하겠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물고뿌를 드시며 정색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기뻐하십시오. 선생님! 부인과 아들이 평양에 왔습니다.》

월송이 흠칫 놀라는 바람에 안경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안경을 추스를념도 못한채 그는 굳어져버렸다.

《너무 놀라지 마시고 우선 물을 잡수십시오. 자, 어서요.》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손에 물고뿌를 쥐여주시자 월송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쭈욱 들이마셨다.

한순간의 흥분이 지나갔음을 확인하고나서야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동무들이 경상남도 합천에서 부인과 아들을 찾았습니다. 거기가 부인의 고향이지요? 그들이 숱한 고생을 했더군요.》

《장군님께서, 장군님께서 언제 그런것까지 다···》

《언젠가 선생님이 내게 이야길 하지 않았습니까. 일찌기 부모를 다 잃고 어려서부터 머슴살이를 하다가 중국 동북지방에까지 팔려온 한 고국녀인의 비참한 정상을 보다못해 독립군의 전우들과 협력하여 그 녀인의 빚값을 물어주고 지주집에서 데려내왔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여 환갑나이가 다 되여서야 가정을 이루었다는 기막힌 사연을 말입니다.》

《장군님, 그러니 그가 평양에 온것이 죄다 사실이란 말입니까? 예?···》

월송의 두눈에서 주르르 물기가 흘러내렸다. 세월의 풍파속에 패인 그 수많은 주름살을 타고 눈물은 로인의 온 얼굴로 퍼져갔다.

《사실이 아니면요. 그들이 선생님을 찾아오지 않으면 누굴 찾아왔겠습니까. 원래는 우리 동무들이 선생님의 고향인 안동에 가서 찾았더군요. 후에 부인과 아들을 찾았는데 아들이 콜레라를 앓고있더랍니다. 병치료를 다 하고 오다나니 오늘의 이 상봉이 좀 늦어졌습니다. 자, 진정하고 어서 가십시다. 지금쯤 아마 부인과 아들이 기다리기에 지쳤을겁니다. 자, 어서! 》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재촉하시였으나 그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다섯해전··· 이제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나는가고 울며 매달리는 안해에게 나라가 독립되면 새가정처럼 행복하게 모여살자고 달래이며 등을 떠밀던 일··· 아버지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질하는 아들애를 억지로 떠밀어보내던 일··· 타향에서 사랑하는 처자마저 먹여살릴수가 없어 눈물속에 기약없는 작별을 하고는 무맥한 자신을 타매하며 부디 그들만이라도 행복해주기를 바라던 일··· 아, 그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한순간에 떠올랐다.

어찌 이런 날이 올줄을 생각이나 했으랴. 월송은 다시는 그들을 볼수 없으리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늙고 무맥한 자기에게 그 무엇을 믿고 의탁할수 있단 말인가. 그저 한점 혈붙이인 아들만이라도 죽지 않고 살아서 수난많은 가문의 대를 이어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랐을뿐이였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그 안해가 자기를 찾아 예까지 온것이다.

다름아닌 김일성장군님께서 그토록 마음을 쓰시여 영영 못 보는줄 알았던 처자를 이렇게 찾아주신것이다.

《장군님! 이 은혜를, 이 은혜를···》

《월송선생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안으시였다. 쩌릿하게 뜨거운것이 심금을 파고들었다.

《저희들이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뿐입니다. 앞으로 마음껏 행복을 누리십시오. 선생님의 아들은 혁명학원에서 공부시켜 장차 나라의 기둥감으로 키웁시다. 선생님은 그런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평생을 고스란히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 가정도 사랑도 다 버리고 싸우셨는데 그것을 어찌 목숨을 바친 희생보다 가벼운 희생이라 하겠습니까. 부인에게도 아들에게도 선생님의 그 애국충정이 얼마나 값있고 긍지로운것인가를 몸으로 느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들 직로는 나라에서 맡아키우겠습니다.》

《장군님! 저 같은게 뭐라구··· 이렇게 하해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십니까, 장군님!―》

월송은 그이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품에 백발을 묻은 월송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