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2

 

 

제 2 장

12

 

(손종준의 일지중에서)

 

1947년 8월 3일

오늘 일은 너무 가슴이 아파 쓰고싶지 않다. 그러나 써야 한다. 언제인가는 세상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겠기에…

나는 오늘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또다시 학원 림시교사로 떠났다.

김정숙동지와 어리신 우리 장군을 모시고 지금껏 댁에서 같이 살다가 학원에 입학하게 된 순옥이와 동일이, 봉호까지 섞인 일행이였다. 순옥이네들은 차에 올라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저 애들이 기뻐하는걸 보니 나도 좋아야겠는데 왜서인지 섭섭하군요.》

김정숙동지께서 조용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예로부터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고 그동안 정이 들대로 들었던 그 애들을 자신의 품에서 훌쩍 내놓는것이 서운하시여 며칠동안 밥맛까지 다 잃었던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런데 철없는 애들은 학원에 간다고 그저 좋아라 웃고 떠들어댄다. 그 애들에게 있어서 학원은 동화세계속의 신기한 곳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승용차들이 철길을 넘어 야산굽이를 돌아서니 벌써 학원 림시교사의 정문이 안겨왔다. 언뜻언뜻 운동장 여기저기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껴들었다.

《정문앞에서 차를 세우시오.》

김일성동지께서 운전사에게 나직이 이르시였다.

승용차는 정문앞에서 서둘러 멈춰섰다. 불쑥 나타난 승용차들에 호기심을 품은 아이들이 놀음을 멈추고 모두 정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빵빵―》

운전사가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그들이 민망스러워 다급히 경적을 울렸다.

《그러지 말아요. 아이들이 더 놀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황급히 운전사를 만류하시였다.

마침 정문쪽으로 누군가가 바삐 달려왔다. 나는 한걸음 앞서 그에게 마주 다가갔다. 신분을 확인해보니 교무부원장 윤흥섭이란 사람이였다. 나는 그에게 장군님과 김정숙동지께서 오시였음을 얼른 귀띔해주었다.

《수고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싶어 왔습니다.》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교무부원장은 《장군님께서 이렇게 뜻밖에 오실줄은… 미리 알려주셨더라면…》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여기야 우리 아이들이 사는 곳인데 내가 제집에 오면서 기별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 곁에서 운동장의 아이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원래 자기 부모나 자기 자식들이 집에 오는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 마음이 먼저 안다고 했는데 아직 우리가 부모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가 봅니다.》

《그 말이 옳소. 그래서 이렇게 아이들과 낯을 익히려고 찾아온게 아니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운동장에 눈길을 주시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적은데 저 애들이 전붑니까?》

《예, 더러 숙소안에도 있는데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지금 방방곡곡에서 막 학원으로 모여들고있습니다. 후원회에서 받은 명단에 의하면 몇백명이 잘되는데…》

교무부원장은 웬일인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운동장쪽으로 불안한 눈길을 보냈다.

《참, 배치되여온 선생들도 더러 있다는데 왜 보이지 않습니까?》

《오늘은 일요일이여서 선생들과 시내에 친척집이 있는 애들은 외출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길이 자꾸만 장군님가까이로 주섬주섬 다가들고있는 아이들에게로 쏠리였다.

그의 눈길을 쫓는 순간 나는 부원장이 왜 더 말을 이을수 없었는지 직감하였다.

일여덟명가량 되는 아이들모두가 헌 베잠뱅이와 몽당치마에 신총마저 다 모지라진 짚신을 신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들은 시내에 친척집이 없기도 하였지만 자기들의 그 람루한 옷주제가 창피스러워 교사구내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그리고 저렇게 부끄러워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바재이고 서있는것이였다.

유리쪼각같은것이 사정없이 내 가슴을 찢는듯싶었다.

김정숙동지의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고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억이 막히신듯 차마 그 애들을 마주 바라보지 못하시였다.

그 순간이 너무 숨가빠 나는 저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얘들아, 너희들 김일성장군님을 모르니? 장군님께서 너희들이 보고싶어 이렇게 오셨는데 못난이들같이 인사를 드릴줄도 몰라?》

그땐 나도 왜 그 애들에게 성이 나서 소리쳤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픔의 그 순간을 빨리 깨버리고싶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몸들이 움씰움씰했다.

그러더니 삽시에 와― 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장군님께서 그 애들에게로 황급히 마주가시였다.

그런데… 그런데 맨앞에서 달려오던 큰 애가 서너걸음앞에서 주춤서버렸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멈칫하더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몸을 움츠렸다. 아마 자신들의 옷주제가 또다시 생각키웠던 모양이다.

장군님께서는 그만 두팔을 벌리신채 그 자리에 굳어지시였다.

나에겐 그 순간이 천년맞잡이로 생각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눈물을 훔치시며 아이들에게 다가가시지 않았더라면 장군님께서는 아마 영원히 그렇게 서계시였으리라.

《얘들아, 어서, 어서 오너라!》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밋머밋 뒤걸음치는 아이들에게로 다가가시며 갈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너희들이 보고싶어 오신거란다. 너희들이 헌옷을 입었다고 부끄러워하는데 장군님께선… 너희들이 그런 옷을 입었다고 탓하시지 않으셔. 못 입고 못산것이 어찌 너희들의탓이겠니? 그건 혁명가였던 아버지, 어머니를 원쑤들에게 빼앗겼기때문이야. 그래서, 그래서 김일성장군님께서 희생된 너희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이렇게 찾아오신거란다.》

아이들속에서 흑 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곧 엉엉 울음소리로 터졌다.

예닐곱살정도 나보이는 제일 나어린 꼬맹이가 큰 애들사이를 비집고 《아… 버…지…》 하고 소리내여 울며 장군님께로 다가왔다.

장군님께서는 와락 그 애를 품에 안으시였다.

다음순간 《장군님!―》, 《아버지!―》하며 막혔던 물목이라도 터진듯 다른 아이들도 어푸라지듯 달려왔다. 너도나도 장군님의 품에 안겨들었다. 아이들의 어깨성에 에워싸인 장군님품에 미처 안기지 못한 애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였다.

《아버지!…》

《아버지!―》

고생살이에 치우고 인정에 주렸던 아이들이 정녕 김일성장군님을 자기들의 친아버지로 스스럼없이 믿어버린것이다.

그 애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느라 김정숙동지의 손수건은 물론 저고리고름까지도 푹 젖어버렸다.

《얘들아, 울지들 말어라. 이렇게 자꾸 울기만 하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달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고아가 아니다.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보살펴주고계신단다. 김일성장군님은 너희들의 아버지이시다. 나도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련다. 그래 너희들 생각엔 어떻니? 그러면 좋겠니?》

《예, 좋아요!》

《좋습니다!》

아이들이 합창이나 하듯 웨쳤다. 언제 저들의 옷차림을 놓고 부끄러워하고 언제 눈물을 흘렸던가싶게 그들은 곧 장군님과녀사의 옷자락속에 밀치고 당기며 묻어들었고 키득키득 웃기까지 했다.

《애들은 역시 애들입니다, 허허…》

윤흥섭부원장이 그 애들의 철없는 모습에 혀를 차며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들었다.

《부원장선생, 그러지 마세요. 자기 부모앞에서 부끄러울게 뭐가 있고 주접이 들것이 뭐가 있겠어요. 우리 이 아이들의 얼굴에서 설음과 슬픔의 눈물을 다시는 영영 보지 말아야 해요.》

《장군님, 사무실로 들어가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오늘 여느때없이 큰 충격을 안으신 장군님께서 잠시라도 안정하시게 하고싶어 이렇게 청을 드렸다.

부원장도 그제서야 제 본분을 깨달은듯 장군님을 안내해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우리 아이들의 저 모습을 보고서야 내 어떻게 순간인들 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있겠소. 먼저 아이들이 생활하는 침실부터 가봅시다.》

그이께서는 누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성큼성큼 앞장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심식사도 하지 못하신채 림시교사의 1호침실과 2호침실, 교실들과 식당을 일일이 다 돌아보시고 걸리고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풀어주신 다음에야 오후 2시가 지나서 간리를 떠나시였다.

장군님을 바래우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의 미소가 가득가득 어려있었다. 하기야 친부모의 사랑에 자식들의 눈물이 어찌 마르지 않을수 있으랴! 하지만 어쩐지 나에겐 그 눈물이 지금 장군님의 마음속에 대신 흐르고있는것만 같았다. 오늘의 이 아픈 상처가 결코 쉽게는, 쉽게는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아, 장군님!…

 

간리에서 돌아온 후에도 김일성동지의 마음속 아픔은 계속되였으나 이것까지는 손종준의 일지에 담겨질수 없었다.

때늦은 점심상을 마주하시였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좀처럼 수저를 들지 못하시였다. 아이들의 그 모습이, 헐벗은 유자녀들의 그 정상이 자꾸만 눈에 밟혀와 차마 밥술을 들수가 없으시였다.

그래도 학원으로 온다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왔다는것이 베바지 저고리인데 그것마저 어떤 애들은 다 꿰져서 어깨와 무릎이 비죽이 나와있던 가슴아픈 그 정상…

그들의 부모들이 자식들의 그런 모습을 본다면 땅속에선들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

(동무들, 날 용서하오. 오늘은 어쩐지 동무들을 볼 면목이 없구만. 동무들은 나를 믿고 자기들의 목숨도 서슴없이 다 바쳤는데 난 인제야 그 애들을 찾아다놓았소. 그런데 찾아놓고보니 그 자그마한 육체마저 제대로 가리우지 못하고있질 않겠소?)

그이께서는 무겁게 몸을 일으켜 창문가로 천천히 다가가시였다.

왜서인지 1936년 봄 마안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남호두회의 이후 새 사단의 편성을 위해 그곳에 가셨을 때 좌경분자들의 버림을 받고 마안산 동쪽밀영의 음달진 초막에서 모포도 한장없이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울며 병들어 누워있던 아동단원들… 자신을 알아보고도 그들은 해질대로 해진 넝마같은 옷주제가 부끄러워 선뜻 달려오지 못했었다, 오늘 간리의 유자녀들처럼…

어쩌면 그 가슴저미던 아픔이 오늘에까지 이렇게 이어져야 한단 말인가.

《마안산, 간리… 마안산, 간리…》

그이께서는 입속말로 곱씹어외우시였다.

먼 후날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큰 가슴아픔을 당한 곳을 꼽으라면 아마 이 두곳을 꼽으셔야 할것 같았다.

다시는, 세번째로는 그런 일을 겪지 말아야 한다.

해방된 새 조선의 력사와 더불어 우리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이, 영원한 미래가 담보되여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인기척소리에 잠시 생각을 멈추시였다.

어느 사이에 방안에 들어서시였는지 김정숙동지께서 차려놓은 그대로인 밥상을 근심스레 바라보며 서있었다.

《식사를 전혀 드시지 않으셨군요. 장군님,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제 그 애들을 세상에 보란듯이 해입혀 내세워주면 되지 않습니까.》

아마 정숙동무도 지금껏 그 애들 생각을 하고있었을것이다.

그 애들을 찾기 위해 그 누구보다 마음쓰고 눈물을 흘려온 사람이 다름아닌 정숙동무가 아니였던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나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있는중이요.

우리가 마안산에 갔을 때 왜놈들과 싸우는 그 어려운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새옷을 해입혔는데 해방된 이 땅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나 정숙동무나 어떻게 그 애들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겠소.

우리 나라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해야 할 일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학원아이들의 옷부터 제일 좋은 천으로 제일 훌륭하게 만들어줍시다.》

《장군님, 그 일을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내 손으로 꼭 그 애들의 옷을 해입히고싶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고리고름을 줌안에 꼭 움켜잡으며 절절히 말씀드리시였다.

순간 김일성동지의 눈빛에는 고마움이, 미더움이 가득 어리시였다.

《정숙동무에게 맡기면야 내가 마음을 푹 놓을수 있지. 산에서 싸울 때에도 수백벌의 군복을 지었던 정숙동무가 아니요.》

그이의 얼굴에는 오늘 처음으로 밝은 미소가 피여났다.

그이의 목소리도 새로운 열정으로 가득넘치시였다.

《참, 내 생각엔 말이요, 학원아이들의 옷을 군대처럼 제복형식으로 했으면 좋겠소. 군관들의 옷처럼 말이요. 거기에 군관모자도 씌우고 가죽단화도 척 신기면 얼마나 멋있겠소?

가만, 가만… 군복은 그저 일반군관들처럼 하지 말고 아예 장령들의 복장처럼 해주면 어떻겠소?》

《장령군복처럼 말입니까?》

《그럼! 바지에 붉은 줄도 굵게 띠우고 팔소매에도 이렇게 척…》

김일성동지께서는 바지옆혼솔과 소매끝단을 따라 몸소 손세까지 써가시며 설명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김정숙동지께서도 환성을 올리시였다.

《그렇게 되면 혁명의 대를 계승한다는 뜻이 뚜렷이 나타나겠습니다. 정말 그러고보니 뜻도 있고 위풍도 있는 훌륭한 옷이 될것 같습니다.》

《어쨌든 재봉대 책임자는 정숙동무니까 내 의견도 참작해서 제복도안을 잘 그려보오. 훌륭한 도안이 있어야 훌륭한 제복이 나올게 아니요.》

《알겠습니다, 장군님!

학원제복은 제가 책임지고 만들도록 하겠으니 더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부탁입니다.》

《정숙동무!…》

그이께서는 뜨거움에 젖은 눈빛으로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시였다.

어제나 오늘에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그 깨끗하고 열렬하고 헌신적인 녀전사의 불같은 마음이 사무치도록 가슴에 찌르르 스며들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