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1

 

 

제 2 장

11

 

산에는 들길이 있고 바다에는 배길이 있고 하늘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는것처럼 춘희에게도 자기의 길이 있었다. 그것은 님의 품에 안기는 길이였다.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했더라면 그는 분명 죽음의 품에 안기고말았을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의 죄인집안의 오명을 쓰고 인간세상의 적의속에서 살아간다는것은 죽음의 길보다 더 험하고 더 괴로운것이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님은 그를 죽음의 길로 보내지 않았다. 님의 침묵은 드디여 사랑과 희망, 행복의 노래를 터쳤다.

결코 그 님은 춘희가 눈물속에 소원하던 인간의 아름다움, 진실, 그 어떤 정의로움만이 아니였다. 그 님은 황막한 초원과 같이 고뇌와 번민으로 마르고 탄 그의 가슴에 희망과 활기, 아름다움의 꽃을 다시 피워준 인생의 생명수였고 차디찬 동토대와 같이 불행과 슬픔으로 두텁게 얼어붙었던 그의 마음에 행복과 기쁨, 사랑의 봄을 안겨준 인생의 해빛이였다.

춘희는 울었다.

다른 모든것은 불문에 붙이고 아버지가 총을 들고 왜놈들과 싸웠다는 그 한가지 리유만으로도 응당 그의 자식들을 나라에서 맡아키워야 한다고 하셨다는 김일성장군님!

《사실 안길동지는 동무의 아버지가 자기가 보낸 파견원을 잡아가두고 끝내는 희생되게 한데 대하여 격분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저를 여기에 보냈습니다.》

차영진의 말을 들으며 춘희는 백산이를 그러안고 눈물을 터뜨렸다.

차영진이앞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오래오래 울었다.

욕되게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저주해온 자신이 죄스러워 울었다. 아니, 그보다도 불미스러운 아버지의 과거를 애국으로 값높이 내세워주신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녀사의 그 은정이 고마와 울고 또 울었다.

《춘희선생, 난 사연전말을 다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압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과 동생을 애국렬사의 유자녀로 알고계신다는것, 그이께서 백산이를 혁명학원의 학생으로 불러주시였고 그래서 내가 걸음을 했다는것을 압니다. 그러니 지난날의 마음고생을 다 잊고 이제부터는 세상에 머릴 들고 아니, 세상에 소리치며 살게 될겁니다. 안길동지는 나를 떠나보내면서 김일성장군님께서 백산이를 혁명학원에서 공부시키자고 말씀하셨다는것을 전해주라고 두번세번 당부했답니다.》

백산이의 방랑생활로 하여 맺어진 자기와의 인연을 돌이켜보는듯 차영진은 소리내여 웃었다. 그날의 그 웃음소리···

그러고보면 차영진은 춘희에게 있어서 반가운 소식만을 안고온 님의 길의 안내자였다.

그 름름하고 진정넘친 고마운 사람의 모습이 어제일이런듯 삼삼한데 오늘은 벌써 백산이를 평양으로 떠나보내게 되였다.

《누나, 이젠 누나속을 썩이는 일이 없을거야. 나한테 꼭 편지를 해야 해.》

백산이는 그저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자기가 받아안은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뜨거운것인가를 비록 아직은 다 알수 없고 자기의 앞길이 얼마나 값비싸게 열려진것인가는 더더욱 알수 없는 나어린 소년이였지만 단 한가지 이제는 자기도 남들처럼 떳떳이 머리를 쳐들고 살수 있게 되였다는 그것으로 하여 그의 마음은 마냥 구름을 타고 푸른 하늘로 훨훨 날으고있었다. 너무도 일찌기 어린 가슴에 마을아이들과 이웃들의 차디찬 시선, 랭혹한 손가락질이 못처럼 아프게 박혔던 백산이가 아니였던가.

자기를 내놓고는 백산이를 동정해주는이도, 보살펴주는이도 없었다. 오히려 문둥병환자를 보듯 그를 피하였고 성미급한 큰 애들은 우정 트집을 걸어 뭇매를 안겼으며 어른들은 곁을 지나가면서도 말릴 생각을 안했다. 그의 성격은 이지러졌다. 그래서 보금자리를 뛰쳐나왔고 그것으로 세상에 자기의 억울함을 표현하려 했던것이다. 그 방랑의 길이 비록 배고프고 춥고 고생스럽긴 하였지만 거기에는 서러움과 차별은 없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과거는 일체 불문시되고있었으며 오직 방랑아라는 그 하나의 현재만이 존재할뿐이였다. 방랑아들에게는 뭇사람들의 동정이 있었으며 아이들 호상간에도 나름대로의 보살핌과 의협심이 있었다. 만일 그때 평양역의 조차장다리밑에서 차영진에게 손목을 붙들리우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방랑생활을 그냥 하고있었을는지도 몰랐다.

오늘 백산은 또다시 집을 떠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어제날과 같이 정처없는 방랑의 길로 뛰쳐나가는것이 아니였다. 차영진삼촌(백산은 그렇게 불렀다.)이 말하던 그 학원으로 떠나는것이다. 춘희는 단순히 학원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어머님의 품으로 간다고 벌써 몇번이나 곱씹어 외운다.

《알았어, 누나. 나도 다 안다니까.》

《어쩐지 걱정되는구나. 방랑생활속에서 붙은 너의 그 나쁜 습관들이···》

사실 춘희의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선입견 많고 거친 백산이의 성격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였던가. 물론 모르고, 오직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그랬었다고는 하지만 김정숙녀사의 배낭을 훔치는것같은 그런 끔찍한 일을 또다시 저지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이후에는 아직 그런 행동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하긴 어이 알랴. 눈에 뜨이지만 않았을뿐인지.) 드문드문 큰 애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일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있었다. 욕도 해보았고 매질도 해보았고 하소연도 해보았다. 그래도 그는 그 말을 귀등으로 흘렸다.

속이 탈대로 탄 춘희는 어느날인가 뒤뜰에서 담배질을 하는 백산이를 붙들고 울었다.

《누난 별걸 다 신경쓰면서 그래. 누나보구 담배 사달라는것도 아닌데.》

백산이가 꽁초를 발로 마구 비비며 감때사납게 말했다.

《아버지 아니, 어머니가 이걸 보았다면 날더러 뭐라 하겠니. 누나가 하나 있다는게 구실을 못해···》

《흥, 아버지? 아버지소린 하지두 말라요.》

그때 백산이는 매몰스럽게 춘희의 말을 꺾더니 붙어잡은 두팔을 뿌리치고 뜨락을 뛰쳐나갔다.

아마 교육자에게 있어서 제일 어렵고 힘든 교육대상은 다름아닌 제 혈붙이인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좀 나아지는듯싶다가도 얼마 안있으면 또 도루메기가 되군 했다. 백산이의 곁에서 매일같이 신칙을 할수 있었으면 한결 마음이 놓이련만···

《백산아, 절대로 두번다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해서는 안된다. 부탁이다.》

춘희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절절하게 당부하였다.

《자, 다들 렬차에 오르시오. 떠날 시간이 됐습니다.》

함경북도 애국투사후원회에서 나온 일군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그가 스무명가량되는 도안의 학원입학대상자들을 데리고 평양으로 떠나간다고 한다. 떠나는 아이들과 바래주는 사람들의 석별의 정이 역구내에 가득 차넘쳤다.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인듯싶은 로인들, 마을사람들, 도와 군의 애국투사후원회일군들이 그들을 바래주었다.

《백산아! 잘 가거라. 잘··· 가.》

춘희는 목이 꽉 메여왔다. 눈앞이 뿌예왔다.

《누나!···》

백산이의 두눈에도 핑그르 눈물이 고였다.

비록 누나라고 불러왔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와 다름없는 이 세상 단 하나의 혈육이였던것이다. 그 어머니의 사랑을 남겨두고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백산이는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졌다. 지금껏 누나의 속을 태워온 자기자신에 대한 죄스러움이 난생처음으로 갈마들었다.

용서를 빌고싶었으나 렬차는 벌써 떠났다. 눈물을 흘리며 손저어 바래주는 누나의 모습을 멀리, 저 멀리에 남겨놓고 렬차는 빨리, 더 빨리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평양으로! 평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