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0

 

 

제 2 장

10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이였건만 오늘은 별로 휑뎅그렁해보였다.

창밖에서는 한여름의 따가운 해볕이 가로수들의 잎사귀와 길손들의 잔등은 물론 건물들의 두터운 벽체까지 열기를 내뿜을 정도로 달구어놓았으나 이 방안만은 어깨가 으쓸할 정도로 썰렁했다.

《자, 그럼··· 사업인계를 다 끝냈으니 난 그만··· 가보겠네.》

리종익은 마주서있는 도교육부의 젊은 부부장에게 이렇게 말하고나서 옷걸이옆에 세워두었던 단장을 집어들었다.

《저 부장선생님, 원산에 내려왔던 김책부위원장동지가 래일 우리 도인민위원회에 오신다는데 한번 만나보질 않겠습니까? 그분이라면 선생님문제를···》

젊은 부부장은 리종익의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진심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난 이미 환갑이 훨씬 지났어. 이렇게 되기 썩전에 스스로 물러났어야지. 오죽했으면 권고사직을 시켰겠나.》

리종익은 안경을 한번 눌러붙이고나서 출입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로 사업을 인계받은 젊은 부부장이 연회색쎄루양복차림에 까만 단장을 짚고 아직도 꼿꼿한 자세로 단정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를 머리숙여 바래웠다.

조용히 청사를 나선 리종익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디로 갈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집으로밖에는 특별히 갈 곳도 또 가야 할 필요도 없었다. 여느날의 이 시간 같으면 주변의 학교들에 나가 교수참관도 하고 학생들의 학습장을 펼쳐보며 장난꾸러기들의 능금알같은 두볼을 다독여보련만 이제는 인생의 가장 행복스러운 그런 순간을 맛볼수 없게 되였다. 불시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아니, 서글퍼졌다.

사업을 인계하고 사무실을 나설 때에 말은 비록 그렇게 하였지만 정작 학생들과 다시는 상종할수 없는 자기의 처지를 감수하자니 허무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입귀사이로 쩝쩔한것이 스며들었다.

그제서야 그는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나서 장덕섬이 바라보이는 바다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잔잔한 파도가 기슭의 작은 바위들을 어루쓸며 밀려왔다가는 밀려가고 또 밀려왔다가는 밀려간다. 장쾌하게 기슭을 치던 그 기상은 어디에 가고 쇠잔한 물결만이 저 작은 바위들을 애써 부여잡으려 하는지···

리종익에게는 어쩐지 파도의 그 형상이 자꾸만 자기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에게도 격랑을 일으키며 길길이 치솟아 하늘을 휘감아가지고는 천야만야 창창 부서져내리는 거세찬 파도와 같이 무서운것 없고 주저할것 없고 후회할것 없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시골유생의 장손으로 태여난 그는 청년시절에 애국문화운동에 공감하여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일제에 의한 《을사5조약》의 날조로 온 나라에 《시일야방성대곡》의 메아리가 울려퍼진 그 이듬해 당시 남포에서 교편을 잡고 반일애국사상을 고취하고있던 열혈청년 안중근을 알게 되였다.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애국의 더운 피를 끓이던 리종익은 그후 안중근을 따라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처단하는 길에 주저없이 나섰다. 새각시의 머리를 얹어준지 얼마 안되는 그 손에 한자루의 권총을 틀어쥐고 대문가에서 눈물짓는 안해의 얼굴도 뒤돌아봄이 없이 오직 조선독립의 부푸는 희망을 안고 만주광야로 달려갔던 그 길···

그러나 그 길은 쉽게 떠날수는 있었어도 쉽게 돌아올수는 없는 길이였다. 애국렬사 안중근의 총탄에 맞고 이또 히로부미는 할빈역두에서 죽었으나 조선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국지사가 흘린 더운 피를 헛되이하지 말자고 리종익은 독립운동에 몸바쳐 나섰다.

김구를 도와 독립군사관학교도 세워보았고 독립군자녀들을 위해 세웠던 상해 인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림정의 후비양성에도 힘써보았으며 한때는 림정 문교부차장으로 뛰여다니기도 하였다. 그가 상해림정과 손을 끊은것은 김구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테로활동에 자기가 키워내는 학생들을 돌격대로 써먹으려 하기때문이였다.

일제를 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기둥이 되여야 할 청년들을 어찌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여 제 민족성원 살해에로 내몰겠는가.

《백범, 난 조선독립을 위해 교육을 해왔지 테로분자들을 키우기 위해 교육을 해오진 않았소.》

의기에 넘친 리종익의 말을 들으면서도 김구는 그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문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8. 15해방을 맞으며 김구를 따라 서울로 간것이 아니라 고향 강원도로 온것은 바로 이런 연원에서였다.

근 35년만에 돌아온 귀향길···

옛집의 이끼덮인 청기와며 《찌그덩―》소리를 내는 대문도 별로 달라진것이 없는데 문설주를 부여잡고 소리없이 흐느끼는 백발의 녀인은 누구인가. 정녕 이 녀인이 륙혈포를 차고 떠나던 그날 이 대문가에 서서 가리마 곱게 탄 검은 머리를 숙이고 그리도 슬피울던 안해란 말인가.···

그가 다름아닌 자기의 안해 김종명이였다. 시부모들을 선산에 묻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조차 알길 없는 남편을 기다려 자식도 없이 수십년간을 수절해온 안해였다.

자기의 흰머리는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타향살이가 얹어준것이라 하겠지만 안해의 백발은 기다리고기다림에 지친 그리움과 애정의 재가 뿌려진것이였다.

리종익은 처음으로 자기가 안해앞에, 조상들앞에 죄를 지었음을 뼈저리게 의식하였다. 안해에게는 어머니가 될 행복한 권리를 빼앗았고 조상들에게는 가문의 대를 이을 장손의 피줄을 끊어놓은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죄의식은 들었을망정 자기 인생에 대한 후회와 허무는 없었다. 그는 원산으로 집을 옮겨앉고 도교육부장사업을 맡게 되였다.

해방된 제 나라, 제땅에서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배워주며 새 조선의 밝은 미래를 자래운다는 긍지와 자부···

바로 이것을 위해 애국렬사 안중근이 그렇게 목숨을 바친것 아니였던가. 그는 줄창 학교들에 나가살다싶이 하였다.

어쩐지 아이들 하나하나가 다 자기 살붙이처럼 느껴졌고 온몸에 가득가득 차있는 그 정, 친자식에게 부어줄수 없었던 그 혈육의 정을 아이들에게 깡그리 다 부어주고싶었다. 교수참관을 나갔다가도 땀내를 풍기는 아이들만 있으면 휴식시간에 손목을 끌고 우물에 데리고 나가 신발을 푹 적시면서 머리를 감겨주군 하였다. 학교들에 자주 나가다보니 도내교육실태와 걸린 문제들도 속속들이 알게 되고 교원, 학생들과도 《부장할아버지!》라고 허물없이 따를 정도로 가까와졌다. 이러했던 그의 생활이, 흰 갈기를 쳐들고 기세있게 기슭을 치는 파도와도 같던 그의 생활이 흐름을 멈추게 된것이다.

《이 강원도에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동무들은 그가 안중근이와 이등박문을 죽이러도 함께 갔댔다, 상해림정에서 독립투쟁도 했다며 그 무슨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것처럼 생각하는것 같은데 그래,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이요? 조선의 해방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이룩한거란 말이요.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나라의 정사를 틀어쥔 이 땅에서 그런 골동품같은 케케묵은 령감을 도교육부장자리에 앉힌다는게 말이 되는가. 그리구 도교육부장이란 사람이 제자리에 앉아있을 생각은 안하구 시골훈장처럼 학교들에 내려가 참녜질이나 하구 또 코흘리개들의 머리나 빨아주고있다니 어떻게 교권이 보장되고 프로레타리아트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지도검열사업차로 내려왔다는 당조직부장 허가이라는 사람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도인민위원장의 방을 넘어 청사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투 붙어있는 모든 사무실들에 울려왔다. 그날로 리종익은 허가이조직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그가 위원장방에 들어서자 조직부장이 쏘파에서 일어서며 다가와 례절있게 자리를 권했다.

예상밖의 친절이여서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이 방에 들어선 그였으나 반겨맞는 사람의 웃는 얼굴에다 선전포고를 할수는 없었다.

《년세도 적지 않은데 힘들지 않습니까?》

허가이가 손님접대용으로 가져다놓은듯싶은 과일물을 고뿌에 따라 그에게 권하며 묻는 말이였다. 그 어투는 물음의 형식을 띠고있었으나 어조는 그것을 기정사실화한것이였다.

《내 도의 책임일군들을 좀 호되게 비판했습니다. 나이많은분에게 큰 부담을 맡겨놓고 혹사시킨다고 말입니다. 해방전에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데 이젠 시름놓고 푹 쉬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친절하였고 진심의 걱정인듯싶었다.

리종익은 과일물고뿌를 위원장책상우에 내려놓고나서 나직이 물었다.

《권고사직인가요?》

《예?》

《이런 경우를 두고 그렇게 말하지요.》

《원, 무슨 말씀을···》

허가이가 그를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조직부장선생의 그 념려의 말씀을 들으니 내 왜 좀더 일찌기 스스로 사직을 청하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가 듭니다. 아마 로망인가 봅니다.》

《···》

리종익은 이 사람과는 조용히 물러서는게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속을 감출줄 아는 이런 사람과 시비를 가른댔자 아무것도 해결될수 없음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럼 우리 부부장동무에게 사업인계를 하겠으니 거기선 더 마음쓰지 마시우.》

리종익은 한손을 들어 안경을 꾹 눌러붙이고나서 방문을 열고 나섰다. 또 그렇게 호기있는 자세로 자기 사무실도 나섰다. 그러나···

바다기슭의 그 작은 바위돌마저 간신히 부여잡는 저 잔약한 파도, 그 거세차던 기상과 기개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과연 이대로 두 백발만 날리는 괴괴한 집안에서 서로의 주름살이나 세고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 내 인생에 자식이 없는것이 한이로구나!···

이제 집안에 들어앉으면 사랑스런 아이들의 두볼을 매만질 때마다 온몸을 짜릿하게 만들던 그 애정을 어이 느껴보랴. 문득 김책부위원장을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하던 젊은 부부장의 말이 생각키웠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사 위로는 받는다쳐도 그 이상의것을 받을수는 없을것이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일을 더 많이 할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일군의 자리에 앉는것이 정상적인것이고 정당한것이 아닌가. 지금의 이 처지, 이 나이에 그를 만나 이야기한댔자 그 역시 속으로는 망녕든 로인치부를 할것이다. 락광은 어둠에 묻히기마련이고 락엽은 땅에 묻히기마련이 아닌가!··· 이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날 인생이 과연 있을가?···

리종익은 천천히 단장을 옮겨짚으며 스적스적 집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