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

 

 

제 2 장

1

 

동북산야에도 봄이 왔다.

왕청오지의 긴 골짜기들로는 한동안 새봄의 고고성인양 눈석이물이 소리치며 흘러내렸다. 뒤이어 봄시위에 불어난 강물들이 기슭의 앙상하게 마른 나무가지들과 썩은 등걸들을 툭툭 걷어말아가지고 어디론가로 드바삐 흘러갔다. 황막하고 거칠던 대지는 갓 태여나 젖줄기를 빠는 아기처럼 나날이 불그스레해지고 포실포실해졌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터지군 하는 골바람도 기세는 자못 사나왔지만 그속에 슴배여있는 싱긋하고 새크무레한 풀내로 하여 오히려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고장의 봄맞이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오태희로인은 왕청에서 벌써 서른세해째 그것을 보고있었다.

쪽발이 왜놈들이 《합병》의 명목으로 조상전래의 강토를 강도질한 때로부터 4년째 되던 해에 끝내 한뙈기의 땅마저 빼앗긴 오씨일가는 고향 온성을 떠나 피눈물을 뿌리며 두만강을 건넜었다. 그들이 솔가이주하여 정착한 곳이 바로 산설고 물설은 여기 왕청땅이였다.

한때에는 그래도 홍범도독립군의 총소리가 봉오골을 울리며 왜놈들을 쓸어눕혔던 이 땅이였다.

봉오골전투승리이후 그들이 이룩한 청산리대첩소식은 오태희로 하여금 행여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지 않을가 하는 꿈도 꾸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토벌》이 시작되자마자 그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왕청땅에서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고말았다.

무심한 세월은 덧없이 흘렀고 그때에도 봄은 이렇게 왔었다.

언제부터였던가. 그 무심했던 세월이 오태희의 마음속에서 흐름을 멈추고 봄과 함께 인생의 새로운 희망이 그의 가슴을 부풀게 한것은···

1933년의 어느 봄날, 일찍부터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따라 혁명투쟁에 나선 큰아들이 한밤중에 갑자기 집에 뛰여들었다.

《아버지,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밤중으로 가족들을 빨리 피신시켜야 하겠습니다.》

사연인즉 조직에서 석현경찰서장이 룡정령사관에 보내는 비밀편지를 입수하였는데 석현지방에서 일어나고있는 불순한 사건들은 모두가 오중화를 비롯한 그 일가의 작간이니 오씨일가식솔들을 감쪽같이 없애버리겠다는 내용이라는것이였다.

오태희로인은 비장한 눈길로 식솔들을 둘러보았다.

《그 어디에 가나 일본놈들이 살판치는 세상인데 이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어디로 떠난단 말이냐? 이밤중에 우리 식솔이 몸을 숨기고 목숨을 건진다는것은 가망없는 일이니 너희 젊은이들과 아이들이나 어서 떠나거라.》

큰아들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미 조직선을 통하여 우리 일가를 소왕청유격근거지로 들여보내라고 이르시였답니다.》

《아니, 그게 참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자, 어서 떠납시다. 장군님께서 지금 우리들을 기다리고계십니다.》

깊은 밤 30여명의 오씨일가대가정은 유격구를 향하여 석현을 빠져나왔다. 소왕청유격구까지는 륙칠십리길이 잘되였다.

밤이 새기 전에 어린 아이들을 업고 이끌며 로인들을 앞세우고 지척도 분간할수 없는 어둠속을 헤치며 간다는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였다.

더우기 많은 사람들이 인기척을 숨기려고 큰길을 에돌아 첩첩한 산발을 타고 수림속을 헤쳐가자니 쉽지 않았다. 이렇게 산길을 헤치며 수십리길을 왔을 때 등뒤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왜놈들이 벌써 냄새를 맡고 그들의 뒤를 황급히 따라왔던것이다.

사실 오태희로인은 오씨일가의 운명이 여기서 끝나는줄 알았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때 장군님께서 보내신 왕청1중대의 유격대원들이 일제군경놈들을 족치고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오씨가문은 참극을 면치 못했을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오씨일가가 밤길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기필코 적들의 추격이 있을것임을 예견하시고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가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던 당시의 엄중한 정세속에서도 대담하게 유격대원들을 오씨일가의 구출전투에 돌리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운명의 기로에서 구원된 오태희로인은 드디여 장군님 계시는 유격구에서 새 삶의 봄을 맞이하게 되였다. 유격구는 그가 지금껏 살면서 보지 못했던 세상 별천지였다. 제땅이 차례지고 아동단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 노래소리가 랑랑하고 소왕청에서는 봉오골전투나 청산리전투와는 대비도 할수 없는 통쾌한 승전고가 울렸다. 정말이지 그때에는 귀향이 한갖 꿈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닥쳐온듯싶었다.

오태희로인의 자식들은 물론이고 동생들의 자식들모두가 반일투쟁에 나섰다. 유격대가 유격근거지들을 해산하고 보다 큰 싸움을 맞받아 떠나갈 때까지 항일전에 떨쳐나선 오씨일가사람들의 수는 모두 17명이나 되였다. 집안에는 다만 늙은이들과 어린 손자손녀들, 며느리들만이 남아있었다. 젊은 남정이라고는 단 한사람도 없었던 까닭에 봄이 와도 밭을 갈고 씨뿌리고 김을 매는 힘겨움을 로인들과 몇몇 녀인들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땔감도 어린것들이 주어오는 잡관목이나 삭정이, 마른 풀단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힘겹고 고생스럽던 그 시절을 더 말해 무엇하랴.

아무리 겨울이 사납고 모질었어도 종당에는 저렇게 봄이 찾아오는것이거늘 항차 김일성장군님을 따라나선 우리 자식들도 이제 광복의 봄을 안고 돌아오리라!···

로인은 굳게 믿고 또 믿었다. 17년전 가을 큰아들 오중화가 석현에 모시고왔던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이분이야말로 왜놈들을 몰아내고 내 나라를 다시 찾아줄 하늘이 낸 위인이시로구나!》 하고 무릎을 쳤던 그로서는 언제한번 단 하루도 그 믿음이 흔들린적 없었다.

정녕 로인의 그 믿음은 헛된것이 아니였다.

나라가 해방되였던것이다. 그날 오태희로인은 밭고랑처럼 패인 주름발들사이로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념도 잊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우리도 망국노가 아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찾아주시구 고향을 찾아주셨구나. 이제는 장군님을 따라 혁명군에 들어가 싸우던 자식들이 돌아올것이다. 그 애들이 돌아오면 우리도 설음많던 이국살이를 끝내고 어서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들가자.》

그날부터 로인은 기다렸다.

봄을 기다리듯이 자식들을 기다렸다.

계절따라 어김없이 오는 자연의 봄처럼 나라를 찾자고 집을 떠났던 자식들도 그 뜻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기필코 집으로 돌아오리라 믿었다. 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여도 기다리는 자식들은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타향에서일망정 나라가 해방되여 이렇게 두번째로 맞는 봄날에조차 오씨일가의 자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로인은 그들이 다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미 아들들인 오중화와 오중성의 희생을 겪은터였고 악독한 왜놈들과의 생사가름의 싸움에 나선 이들중에 어찌 희생인들 없으랴 하고 아픈 마음속에 속다짐도 해두었었다. 하지만 (아무렴 총을 잡고 싸운 열일곱이나 되는 그 숱한 자식들가운데서 못해도 한둘이야 살아서 돌아오겠지!) 하는 미련에 여직껏 묵묵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것이다.

로인은 지쳤다. 기다림에 속이 타고 애가 말라 지쳤다. 그들은 분명 잘못된 사람들이였다. 영영 돌아올수 없는 자식들이였다. 살아있다면 이렇게 두번째 봄이 오도록 기별조차 없을리 만무한것이다.···

로인의 생각은 옳았다.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성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의 길에 나섰던 오씨일가중의 17명은 강도 일제와의 싸움에서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던것이다.

이제 이 거치른 이국땅에서 무엇을 바라고,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인가. 세상을 다 산 이 늙은 몸이야 무엇을 바라랴만 아직 뼈도 여물지 못한 저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누가 지켜주고 돌봐준단 말인가.

요즘엔 더더욱 장군님 생각이 간절해졌다. 오씨가문의 생명의 은인이신 그이께 자신의 여생과 두벌자식들의 앞날을 의탁하고싶었다.

드디여 로인은 결심을 내렸다.

가자, 조국으로 가자.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자!

《얘들아, 짐을 꾸려라. 암만해도 그 애들은 잘못된 애들이다. 이제 우린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는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심과는 달리 쉬이 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어린것들을 데리고 로자도 없이 선뜻 먼길을 떠날수 없었던것이다.

이런 때 형제들과 떨어져 라자구에서 따로 살던 동생 오창희가 식솔들을 다 데리고 그를 찾아왔다.

《형님, 렴치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형님네 사정두 각박한줄 알면서 딴 방도가 없어서 이렇게··· 이 늙은것이야 이젠 세상을 다 살았으니 굶어죽어두 얼어죽어두 두려울게 없소만 저 중흡이가 남겨놓은 경숙이랑 손주들이 굶고있는 꼴을 보고만 있자니 차마···》

원체 말이 없던 동생이 허연 머리를 조아리고 꺽꺽 울음섞인 소리로 하정을 아뢰일 때 오태희는 눈을 꾹 감았다.

《동생, 어려운때 제 피줄을 찾지 않으면 언제 찾겠나. 아무렴 산사람 입에 거미줄 쓸겠나. 경숙아, 이리 온.》

조카 중흡이의 하나밖에 없는 딸 경숙이가 큰할아버지의 눈치를 가만가만 살피며 슬밋슬밋 다가왔다. 철없는 저것마저도 얹혀살겠다고 찾아온 자기네의 처사가 궁색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 경숙아! 큰할아버지네 집에서 동생들이랑 같이 살자꾸나!》

《큰할아버지, 나도 랠부터 산나물 뜯으러 갈래!》

그 순간 오태희는 눈물이 쑥 나오는것을 겨우 참았다. 마누라가 경숙이를 와락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로친, 애들이 보는데서···》

엄하게 마누라를 신칙하고난 오태희는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허, 우리 경숙이가 다 컸구나. 하지만 일없다, 일없어. 아무렴 내가 눈을 펀히 뜨고있으면서 경숙이 손에 밥줄을 의탁하겠니.》

말은 이러했지만 식솔이 불어나 살림형편은 더더욱 어려워만 갔다.

늙은이들과 어린 아이들뿐인 집안에 풀뿌리를 끓일 땔감조차 해올 일손이 부족했다.

《여보 령감, 옛날부터 열손을 늘이지 말구 한입을 덜랬는데 지금 형편에선 어떻게 분가하여 한입이라도 덜어야지 이러다간 다 굶겨죽이구 말겠수다.》

한밤중 토방에 따라나온 로친의 입에서 땅이 꺼질듯 한숨이 새여나왔다. 그러지 않아도 막막한 생활을 두고 마음이 납덩이같던 오태희는 버럭 증을 내였다.

《그건 피줄을 가르자는짓이야. 이 오태희가 살아있는 한 그렇게는 못해.》

《죽은 담에 저승에서 그 피줄이 밥먹여 줄라는지는 몰라두 온 집안이 굶고앉아 죽는 날을 기다리는 형편에 피줄타령은··· 그럼 동냥을 하면서라두 조국엘 나가든지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할게 아니요? 짐을 꾸려놓은지가 언제인데···》

마누라의 말이 옳다. 수십명의 대식솔이 빌어먹으면서라도 길을 떠나야 한다. 고리짝 몇개뿐인 이사짐일망정 꾸려놓은지는 이미 오래고 가마만 훌쩍 뽑아가지고 떠나면 그만이 아닌가.

그러나···

오태희로인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어쩐지 그것이 꼭 사람 못할짓인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갈마들었다.

몇 안되는 동생네 식솔이 새로 얹힌것만으로도 형편이 어려운데 이제 이 많은 오씨문중이 장군님께 매여달린다면 그분께선 얼마나 부담이 크시랴. 또 그분께서 돌봐주셔야 할 우리같은 사람들이 어찌 한둘일텐가. 장군님곁에서 일손을 덜어드릴 자식이 한둘이라도 살아있다면 몰라도 늙은것들과 아낙네들, 철부지아이들이 그분께 보탬을 줄수 있는 일이 단 한가지라도 있단 말인가.···

오태희로인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끝에 결심을 바꾸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짐을 풀어라. 이제 또 누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단 말을 꺼내면 용서치 않겠다.》

불안과 두려움속에 날마다 자기의 얼굴만을 쳐다보는 식솔들앞에서 로인은 이 한마디 말로 모든 설명을 대신해버리고말았다.

《할아버지, 가자요. 난 조국에 가고싶어요. 할아버지가 못 가겠다면 나 혼자서라도 가고야말겠어요!》

집안에서 유일하게 사내꼴이 잡히기 시작한 오중성의 아들 국철이가 그의 팔을 부여잡고 떼질을 썼다.

신통히도 제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 고집스럽기 그지없는 녀석이다.

그러나 로인은 손자의 간절한 소원을 엄하게 잘라버렸다.

《철없는 소리 그만해라. 우리 집안에선 네가 제일 큰 사낸데 이 할애빌 도울 생각은 안하구 혼자서 어딜 가겠다구? 그래 저 애리애리한 경숙이 어깨우에 그 무거운 나무단을 올려놓을테냐?》

그 말에 국철은 시무룩해져 할아버지의 팔을 슬며시 놓았다. 오중흡의 한점 혈붙이인 경숙은 그와 동갑나이였지만 일찌기 제 어머니를 잃고 자라서 그런지 다른 어린애들보다 더 몸이 약했다.

로인은 가슴이 아팠다. 이국땅에서 태여나 여직껏 한번도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저 애들이 영영 제 나라의 하늘을 보지 못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위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어떤 죄스러움이 매운재처럼 가슴을 쓰리게 했다.

그럴수록 장군님 생각이 간절해졌다.

(장군님, 나라를 찾아주신 장군님께 오씨문중을 대표하여 멀리서 삼가 인사를 올립니다.

우리 오씨가문의 생명의 은인이신 장군님을 몸가까이 뵙고싶은 소원은 간절하지만 자고로 나라를 위한 일에서 목숨은 티끌과 같은것이라 하였거늘 응당 백성된 도리를 하였을뿐인 자식들의 의거를 두고 무슨 생색을 낸단 말입니까!

오히려 새 나라를 세우시느라 국사에 분망하실 장군님께 늙은것, 어린것 올망졸망 매여달려 부담밖에 얹어드릴게 없기에 저는 자식들의 피가 스민 이 동북땅에 그냥, 그냥 남아있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제 이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장군님을 찾아간다는것이 먼저 간 자식들의 뜻이 아님을 잘 알고있기에 저희들은 이곳에서 그 애들의 장한 넋을 위로하며 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장군님곁에 함께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이것은 오태희로인이 동북산야에 뒤늦게 찾아오군 하는 소란스러운 봄을 맞으며 자기자신과 나눈 마음속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