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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9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은 허가이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흥분된 심정을 안고 그이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사업상관계로 하여 그이를 만나뵙는 일은 자주 있는것이였으나 자기자신도 신비스러울만치 매번 가슴이 울렁이군 하는 허가이였다.

《그분은 쓰딸린동지도 〈위대한 김일성동지〉로 존경하는 위인이시요. 그런 위인과 함께 혁명을 한다는것은 두말할것없이 이 허가이의 행운이란 말이요.》

이것은 언제인가 자기를 쏘련에서부터 합법적당사업을 한 오랜 당활동가로, 당박사로 귀맛좋게 춰올리는 라성환에게 그가 한 말이였다.

쓰딸린까지도 존경하는 김일성동지! 이 하나의 인식만으로도 그의 가슴이 매양 흥분스러워지기에는 충분한것이였다.

로씨야의 연해주로 흘러들어간 타향민의 후손으로 태여나 거치른 아무르강기슭에서 불우하게 흘러가버린 그의 어린시절···

사회주의10월혁명의 승리는 아무르강의 물결을 타고 그의 인생을 새로운 행운의 기슭에로 떠밀어주었다.

모스크바에서의 대학생활과 우즈베끼스딴의 싸마르깐드에서의 당사업의 시작, 구역당 제2비서로의 승진···

어제날의 불우했던 타향민의 후손인 그에게 있어서 쓰딸린은 이 세상의 전부를 안겨준 은인이였고 절대적인 우상이였다.

조선의 빨찌산청년대장 김일성동지에 대한 쓰딸린의 존경심을 종종 전해듣게 된것은 그가 크라스노야르스크로 전근하여 원동에서 당사업을 하던 때부터였다. 역시 민족의 피는 어쩔수 없는것이였던지 그는 자기의 조국에서도 세상사람들이 경탄하는 출중한 위인이 출현한것을 더없이 기뻐하였다.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오직 레닌과 쓰딸린뿐이라고만 생각했던 그의 인식에 새로운 파렬구가 생겨났던것이다. 하여 그는 일제패망후 해방된 조국땅으로 남먼저 달려나왔다. 김일성동지와 손잡고 조국땅에도 쏘련과 같은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워보려는 욕망이 불같았던것이다.

《기다렸습니다. 어서 앉으시오.》

언제나와 같이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김일성동지의 영채도는 안광을 우러르며 허가이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허동무가 제출한 이 보고서를 다 보았습니다. 중앙보안간부학교의 당사업실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분석했다고 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특별히 관심하시는 단위여서 소홀히 할수가 없었습니다.》

《옳습니다. 내가 여러번 말하였지만 건국사업에서도 정규군건설은 선차적인 사업으로 되여야 합니다. 따라서 정규군의 원종장인 중앙보안간부학교사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중앙보안간부학교 교직원들속에서는 당대렬의 사상의지적통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있습니다. 허동무도 이 보고서에서 지적하다싶이 중앙보안간부학교 교직원들가운데는 과거에 다른 나라들에서 활동하다가 해방이 되여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속에서 분파적행동이 나올수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습니다.》

허가이는 그이께서 보고서의 한구절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다싶이 해주시는데 대해 사뭇 만족스러움에 휩싸였다.

《그런데 허동무가 제기한 대책안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이의 표정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나 어조에는 다소 섭섭한감이 비껴있었다.

《허동무는 이 학교 일부 교직원들속에서의 의견상이가 군사교육사업문제를 놓고 연안식교육이냐 쏘련식교육이냐 하는데로부터 출발된것이라고 하면서 그중의 하나, 찍어말해서 연안식교육주장을 일축해버릴것을 제기했는데··· 만일 그것이 방도라면 이런 의문이 제기됩니다.》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첫째로는 그렇게 하는것이 군사교육사업문제를 옳게 해결하는것으로 되겠는가 하는것이고 둘째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교직원대렬의 사상의지적통일을 이룩할수 있겠는가 하는겁니다.》

김일성동지의 열정적이면서도 진지한 눈빛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허가이는 그이의 허심하면서도 분석적인 화제에 오랜 당사업경험자로서의 흥분이 살아오름을 느꼈다.

《그러니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주장을 그대로 두자는 립장이십니까? 아니면 쏘련식군사교육주장을 철회시키자는?··· 어쨌든 저로서는 어느 하나를 명백히 규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놓고볼 때 쏘련의 군사교육리론과 방법은 이번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이미 그 생활력이 검증된···》

《허가이동무, 내가 섭섭하게 생각하는건 바로 그겁니다.》

《예?···》

《쏘련식과 연안식은 그렇게 잘 갈라보면서 왜 우리 식은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거란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항일전쟁시기 100만관동군과 싸워 승리한 전략전술과 경험이 있습니다.》

《글쎄 전 군사전문가는 아니다보니···》

《리해는 됩니다, 허동무! 우리는 어느 하나를 묵살시키거나 철회시키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철저히 우리 식에 복종시켜 군사교육사업을 진행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우리가 이미 터득한 전략과 전술, 전투방식과 훈련방법, 부대지휘와 대렬관리 그리고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조건과 우리 사람들의 육체적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연안식교육과 쏘련식교육을 흡수해야 합니다.》

김일성동지의 명쾌한 론리앞에 그는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수 없었다.

《허동무, 생각해보시오. 두 주장중에서 어느 일방을 강압적으로 철회시키면 외적으로는 하나가 될지 모르지만 내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대립을 가져올수 있습니다. 손상당한 자존심으로 하여 끙끙 앓을거란 말입니다. 우리 식을 위해 서로의 주장을 합치도록 할 때만이 그 과정에 마음도 합쳐지게 될것입니다. 중앙보안간부학교의 당사업은 바로 이런 원칙에서 군사교육사업과 밀접히 결부되여 진행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서를 그에게 내여미시였다.

《내 의견이 납득된다면 중앙보안간부학교의 당사업대책안을 다시 세우고 당적지도도 그런 방향에 힘을 넣도록 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가이는 정중하게 문건을 받으며 대답올렸다.

그러나 사실 그 순간에도 그의 머리속에는 《우리 식》이라는 이 명백한 개념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지지 않았다.

그는 쏘련식이 곧 우리 식이라는 굳어진 인식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었던것이다. 하여 그는 이번에도 아무런 의심없이 자기의 그러한 견해를 로출시켰다.

《저 김일성동지, 한가지 더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뭘 그럽니까? 허동무답지 않게. 어서 물어보시오.》

김일성동지께서 소탈하신 음성으로 그를 재촉하시였다.

허가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유자녀학원 말입니다. 그걸 당장 세우시렵니까? 어제 학원터전까지 잡으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터전을 잡았습니다, 만경대에! 유자녀학원문제는 더이상 미룰수 없습니다.》

《저···》

《허동무는 의견을 달리합니까? 주저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시오.》

김일성동지! 전 원래부터 당안에서 뜨로쯔끼적인 종파행동을 질시해온 사람입니다. 사회주의혁명에서 원칙적인 문제를 놓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것은 유해로운것이니까요.》

그는 김일성동지에 대한 자신의 변함없는 자세와 함께 오랜 당사업경험자로서의 무게를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서두를 뗐다.

《그건 옳은 말입니다. 우린 당활동에서 쏘련당의 그런 교훈과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허가이동무에게서 기대하는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린 지금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수립한데 토대하여 사회주의혁명의 과도기임무를 하루빨리 수행하고 가까운 시일내에 정규군창설과 전조선적인 국가창건을 이룩해야 할 중대한 과업들을 안고있지 않습니까. 이런 견지에서 놓고볼 때 과연 유자녀학원창립문제가 그렇게 우리 혁명에서 선차적인 과제로 나서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에 유자녀들이 아직 그리 많은것도 아닌데··· 아시다싶이 쏘련에서도 10월혁명과 공민전쟁, 핀란드전쟁, 에스빠냐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을 치르면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희생자를 내고서야 1943년과 1944년에 각각 유자녀들을 위한 쑤워로브학원과 나히모브해군학교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그는 조심스레 김일성동지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서두에 엄숙하게 떼놓은 투철한 립장과는 달리 언제인가 애국미문제를 놓고 라성환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앞에서 이런 내용의 훈시를 했던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러나 김일성동지의 진중한 안색에는 변함이 없으시였다.

《그러니 허동문 우리 나라에서의 유자녀학원창립이 시기상조라고 생각됩니까?》

《글쎄 꼭 그렇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허동무의 생각을 리해할만 합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유자녀문제가 쏘련에서처럼 전사회적인 난문제로까지 제기되고있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자녀들의 머리수가 적다고 그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까지도 같이 작아질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조국을 찾기 위한 싸움에 한목숨 서슴없이 다 바친 애국렬사들의 업적과 바로 그런 부모들을 다 잃은 유자녀들의 고통은 쏘련에서나 우리 나라에서나 조금도 다를바가 없을것입니다.》

《···》

《그 애들이 겪는 그 엄연한 불행과 고통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그 무슨 건국의 순차성이나 혁명과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할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론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혁명가로서 렬사들이 우리에게 맡기고 간 유자녀들,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 애들의 운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진실로 혁명의 운명을 생각하는것이고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는것입니다. 결코 나라를 세우는것으로써 혁명투쟁을 다했다고 말할수 없지 않습니까. 허동무가 말하는 그 사회주의혁명의 승리도 미래의 투사들이 없이는 이룩될수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오늘을 봐도 래일을 봐도 유자녀학원창립문제는 미룰수가 없지 않습니까!》

허가이는 그이의 고결한 정신앞에 다시금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분의 깊은 의리심과 뜨거운 인정미가 혁명이라는 그 거대하고도 장엄한 위업과 어떻게 그렇게 정교한 치차처럼 맞물려들수 있는지 거듭거듭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의 집무실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지 못하였다.

장차 국가창건이라는 위업을 앞두고 학원문제가 그 어떤 예민한 정치적반응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무겁게 매여달렸던것이다.

이것은 쏘련의 가맹공화국안에서의 오랜 생활체험으로부터 오는 그나름의 솔직한 심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