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4

 

 

제 1 장

4

 

밤은 퍼그나 깊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으시였다. 피로는 온몸에 무겁게 실렸건만 하루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눈앞에 밟혀오시였다.

병실문제때문에 오래간만에 만나서도 얼굴색이 그리 밝지 못하던 안길의 모습이며 아들의 편지를 받고 평소의 그답지 않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림춘추(그는 안길이 돌아간 뒤 왔었다.)의 모습 그리고 그들보다 앞서 모쁘르기념일문제때문에 찾아왔던 김월송이며 황해제철소의 송풍기문제때문에 왔던 산업국장, 도내 로동자, 사무원들의 생활비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왔던 평안남도인민위원장의 얼굴이 느닷없이 얼른거렸다.

오늘 수많은 일군들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애국미문제를 제기해왔는데 자신께서는 종시 아무런 결론도 주지 못하시였다.

눈을 꾹 감고 정규군건설에 필요한 자금으로 뚝 떼주어 안길의 고심을 풀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또 인민경제계획수행에 필요한 밑천으로 대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아니면 모쁘르기념사업에 쓰라고 준다면···

그러나 그 어느것 하나 선뜻 결심을 내릴수가 없으시였다.

설사 그 어느 한곳에 대준다 해도 림시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으리라는것만은 명백했던것이다. 모쁘르기념일문제 하나만 놓고봐도 그러했다. 이미 찾아낸 혁명렬사유가족들보다 아직 찾지 못한 유가족들이 더 많은 조건에서 그들에 대한 후원사업이란 엄연한 의미에서 세상사람들앞에 생색이나 내고마는것으로 될수 있었다.

한두번의 후원사업으로는 결코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수 없는것이였다.

또다시 영일이의 편지가 떠오르시였다.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아버지가 없으니 난 아직 조선이름도 없어요···》

아, 아버지를 찾는 영일이의 그 부름소리!···

어쩐지 그 부름소리가 단순히 그 애 하나만의 목소리처럼 생각되지 않으시였다. 저 이국의 하늘아래서 영일이처럼 아버지를 찾고있는 혁명가의 자식들이 어찌 한둘이랴. 그래도 영일이에게는 불러서 대답해줄 아버지가 살아있지만 정처없이 떠다니는 어린 자식들의 그 애절한 부름에 영원히 대답하지 못할 아버지들은 그 얼마이며 쪽박을 차고 남의 집 문전에서 걸식하는 유자녀들은 또 얼마이랴. 그들에게도 영일에게처럼 《너희들에게도 아버지가 살아있다. 너희들에게도 더운 날 추운 날, 맑은 날 궂은 날 가림없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줄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다!》고 말해줄수 있게 된다면···

불시에 피로가 덮쳐들었다.

치솟는 불길같은것이 그 무엇인가를 싸안고 너울거렸다.

눈보라소리인지 아니면 기관총소리인지 가늠할수 없는 이상한 굉음이 먼 우뢰소리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와졌다. 그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섞여들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있어 누구의 소리인지 잘 가려들을수 없는것이 안타까우시였다.

《장군님!―》

아, 오중흡이!

《사령관동지!―》

저건 차광수의 목소리다.

뒤이어 최창걸, 한흥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생김새들은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저들은 분명 최경화, 권영벽, 리제순이다. 아니, 북만의 박길송이는 아닐가?···

살아있었구나, 다들 살아있었어! 그런데 이 추운 겨울날에 어쩌자고 저렇게 홑옷바람으로 찾아왔담, 감기라도 들면 어쩔려고?!···

《내 솜옷을 벗어줄테니 이거라도 입소. 자, 어서! 누구 한사람이라도 입어야 내 마음이 좀 편할게 아니요.》

그러나 그 누구도 솜옷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하나같이 얼굴빛이 퍼렇게 질려있으면서도 서로 사양하고 제마끔 양보한다.

원, 사람들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눈보라는 심술궂게도 솜옷을 휙 나꿔채가지고 하늘가 저 멀리로 타래쳐오른다.

낯익은 그 모습들도 간곳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득한 백설천지에 피자욱같은 빨간 꽃들만이 점점이 피여있었다.···

그 무엇인가가 철써덕― 하는 바람에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찰나의 비몽사몽에서 문득 깨여나시였다.

방아래목에서 자고있는 아이들가운데서 한 녀석이 다른 아이의 배우에 넌떠덕 다리를 올려놓은것이다.

온돌바닥이 너무 더운 모양이였다.

《그녀석, 무척 갈개자는군.》

그이께서는 끝내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시였다.

그리고는 그 애의 다리를 조심히 내려 바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시였다. 아직 참새죽지같이 가냘프게 느껴지는 자그마한 어깨우에 이불깃을 여며주시려니 왜서인지 방금전의 꿈속에서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한창 응석을 부리며 자라야 할 어린것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도 모르고 가랑잎처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살다보니 영양상태도 말이 아니고 키들도 제대로 크지 못하였다.

저 순옥이의 아버지 김룡수는 우리가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을 준비하던 시기 연사지구 비밀밀영을 책임지고 싸우다가 희생되였지. 그리고 이 애의 아버지 박창성과 저 애의 아버지 신재호는 온성에서 오중성의 뒤를 이어 지하투쟁을 하다가 일제에게 체포되여 옥사했고···

오중성, 온성지구의 첫 국내당조직책임자,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쾌활했던 그에게도 아들이 있었지. 그것이 1934년 초가을이였던가, 내가 그의 비보를 받고 십리평에 있는 오태희로인의 귀틀집을 찾아갔던것이···

아직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오중성의 서너살난 어린 아들이 내 무릎우에 앉아 싸창갑만을 신기하게 만지작거렸었지.

그 애가 살아있으면 열다섯살이 넘었을텐데. 그리고 오중흡이에게도 그만한 딸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되였는지···

오중화, 오중성, 오중흡, 오중협, 오중보, 오중영··· 무려 17명이나 되는 오씨가문의 끌끌한 자식들이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에 목숨을 바쳤다. 그 유가족들이, 그 후손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김일성동지께서는 희미한 별빛이 비쳐드는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창문가에 마주놓은 책상우에서 담배갑을 집어들고 담배 한가치를 뽑아드시였다.

성냥불을 켜려던 그이의 손이 주춤 굳어지셨다. 아이들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귀전에 들려왔던것이다. 담배연기가 그 애들에게 좋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들때문에 담배를 단념하시고 그것을 책상우에 도로 내려놓으시였다.

(아이들때문에?···)

불쑥 이렇게 자문하시였다.

그제서야 그이께서는 이밤 잠 못들고 뒤척이지 않으면 안되는 그 사연을 깨닫게 되신듯 했다. 아이들때문에 담배를 피울수 없으신것이 아니라 실은 아이들때문에 즐기지도 않는 담배를 자신도 모르게 찾아드셨던것이 아닌가.

그렇다, 아이들때문이였다. 단순히 애국미문제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저 애들의 잠투정때문도 아니다.

아이들의 잠투정을 받을수 있다면 오히려 밤마다 발편잠을 잤을것이다. 갈갬질을 하며 잠투정을 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잠자리가 편안하다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 그런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잘수 있는 애들이 과연 몇몇이나 되겠는가. 추위에 떨것이다. 헐벗고 굶주림에 울것이다. 일제에게 량부모를 다 잃은 유자녀들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해도 그 사정이 더 나을것은 없을것이다. 왜놈세상에선 혁명가의 자식이라 하여 그 누구보다 더 혹심한 천대와 압박속에서 살았을것이고 공부같은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자랐을것이다.

아,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 위하여 항일의 혈전장들에서 피흘리며 쓰러진 렬사들이 그 얼마였던가!

만주광야에서, 철창속 단두대우에서···

문득 며칠전 조기천이 써가지고 왔던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구절구절이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

이 나라의 초부들이여

부디 삼가 나무를 버이라―

우리 선렬의 령을

그 나무 고이 지키는지 어이 알리

부디 삼가 길옆에 놓인 돌 차지 말라―

우리 선렬의 해골이

그 돌밑에 잠들었는지 어이 알리!

···

 

가슴이, 못 견디게 가슴이 미여져왔다.

과연 나무를 베지 않는 그것으로 그들의 령혼을 다 지켜줄수 있단 말인가. 길옆의 돌을 차지 않는 그것으로 그들의 넋을 다 지켜줄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혼은 오늘도 잠들지 못하고 밤마다 나를 부르고있다. 이 추운 겨울날 홑옷바람으로 꿈속에서도 나를 찾고있다. 나라가 해방된 오늘날에 와서도 의지가지할데 없는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자기 자식들 근심으로 하여 고이 잠들지 못하고있다.

그렇다, 아이들때문이다. 내가 잠들수 없는것도 바로 그 아이들때문이고 렬사들의 넋이 잠들지 못하는것도 다름아닌 아이들때문이다.

저 동북광야에만도 헐벗고 굶주리는 유자녀들, 정처없이 방랑하는 불쌍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어찌 희생된 동지들의 령혼이 안식을 찾을수 있으랴. 이제 더는 그 애들을 맡아키우는 문제를 미룰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 안길이 정숙동무에게 말했다고 하듯이 이 집 뜨락에서 그 애들을 다 키울수는 없다. 열백번을 그렇게 하고싶지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유자녀들을 모두 한품에 안아 보살펴줄수 있는 큰 학원을 세워야 한다!···

이것은 그이께서 어제오늘에 비로소 생각하신 문제가 아니였다.

해방된 조국땅에 개선하신 첫날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원쑤들의 흉탄에 쓰러진 전우들의 시신을 품에 안고 가슴을 치던 항일전의 그 나날부터 생각하신 문제였고 굳혀오신 결심이시였다. 그래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로선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지방들에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할 때에도 유가족들을 찾을데 대한 과업을 함께 주시였고 1945년 9월 25일에는 애국렬사들의 유가족들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그들에게 사상정신적 및 물질적후원을 주기 위한 반일애국투사후원회 (1946년 12월부터 북조선애국투사후원회로 개칭됨)라는 상설적인 대중조직부터 먼저 무어주시였다. 그러한 조직사업들이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은을 내기 시작하였다.

행처는 물론 생사여부조차 모르던 혁명가유가족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기 시작했던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것이 국내에 한정된것이긴 하였지만 약 300명가량의 유자녀들을 장악하고있다는 애국투사후원회의 보고는 그이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하였다. 하긴 유자녀들의 소식을 알기 위해 자신께서 걸으신 길은 그 얼마이며 써보낸 편지는 또 얼마였던가. 하지만 그 애들의 소식은 모르면 몰라서 걱정이였고 알면 또 알아서 걱정이였다. 아니, 아는 걱정이 오히려 더 큰듯싶으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현실적인것이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개선후 처음으로 만경대고향집에 가셨을 때의 일을 생각하시였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개선연설을 마치시고 그리운 할아버님, 할머님을 만나뵈왔던 잊지 못할 만경대의 그밤.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 쓴다더냐!》하시며 모진 세월의 고초가 새겨진 깊은 주름마다에 눈물을 묻으시던 할머님의 그 모습···

감격적인 상봉과 간소한 축하연도 끝나고 할머님이 손수 낳으신 무명으로 꾸민 이불을 덮고 할아버님곁에 누우셨건만 스무해만에 돌아온 고향집의 그밤은 정녕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아버님 생각, 어머님 생각, 삼촌과 동생 생각··· 그중에서도 사무쳐오는것은 항일의 혈전만리를 함께 헤쳐오다가 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먼저간 못 잊을 전우들의 모습이였다.

장군님의 고향이자 자기들의 고향이라고 하면서 나라가 해방되면 일가식솔을 다 데리고 만경대에 와서 함께 살고싶다고 하던 그들을 이역땅에 묻고 이렇게 홀로 오신것이다.

가슴에 덮은 이불이 천근만근으로 내려누르는듯싶었고 바닥에 깐 멍석도 바늘처럼 등에 배겨왔다.

《구들을 다시 하느라고 뜯어놓다보니 잠자리가 불편한 모양이로구나. 20년만에 고향에 온 널 이 멍석우에 눕혔으니···》

먼저 잠드신줄 알았던 할아버님이 나직이 하시는 말씀이였다.

《아닙니다, 할아버님. 왜놈들과 싸울 땐 멍석은커녕 가랑잎이나 눈판우에서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생사운명을 같이하던 전우들을 그 거치른 땅에 묻고 이렇게 누워있자니 마음이, 마음이 아파서 그럽니다.》

눈굽이 핑 젖어드시였다. 뜨거운것이 자꾸만 솟구쳐오르시였다.

《그 성정이 꼭 네 아버지를 닮았구나. 그래야지. 장군의 마음이야 그래야지.》

할아버님의 목소리도 저으기 갈리신다.

《할아버님, 제 산에서부터 생각해오던 문제인데 장차 그들을 모두 만경대에 데려오려고 합니다.》

《으―응?··· 그들이라는건?···》

《그들의 자식들 말입니다. 할아버님, 할머님이 승낙하신다면 희생된 동지들의 자녀들을 다 찾아다가 여기 만경대에서 키우고싶습니다.》

할아버님의 마디진 거치른 손이 손등우에 덧놓이신다.

《승낙하구말구. 아무렴 내 증손주들을 만경대에서 키우지 않구 어디서 키우겠니?!》

뜬눈으로 지새우신 그날밤의 만단사연을 다 말해 무엇하랴.

하기에 그이께서는 이튿날 고향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장군님 탄생하신 여기에 세상사람들 보란듯이 《김일성중학교》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하는 만경대사람들에게 《이곳 만경대에는 과거에 나라를 찾으려고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다가 희생된 혁명가들의 자녀들을 공부시킬 학원을 세우자고 합니다. 만경대는 경치가 아름답고 평양이 가까우므로 여기에다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한 학원을 건립하면 좋을것입니다. 만경대에 학원을 건립하고 유자녀들을 데려다 공부시키면 그들을 새 조국건설의 훌륭한 역군으로 키울수 있을것입니다.》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이제는 그날의 그 선언을 현실로 구현할 때가 왔다. 하다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학원을 일떠세울것인가?

학원은 단순한 집도 아니고 단순한 학교도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배움터다. 이러한 종합적인 생활터전, 교육터전을 마련하는 일은 결코 욕망 하나로 이루어질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형편은 아직 이 모든 부담을 감당할만 한 능력이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오늘날 그것을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밑천은 다름아닌 애국미뿐이다.

애국미! 인민들이 건국을 위해 써달라고 보내준 애국미, 그 애국미를 학원을 세우는데 쓰는것이 과연 옳은 처사이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성의 이 마지막물음앞에 다시금 자신을 세워보시였다.

심장의 박동이 쿵쿵― 울려왔다. 옳다! 이것은 단순히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의 요구만이 아니다. 이것은 건국이라는 위대한 위업성숙에 자신들의 청춘과 생명으로써 뿌리가 되여주고 초석이 되여준 혁명렬사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인 동시에 그들의 고귀한 피와 넋이 그대로 살아숨쉬는 새 나라를 세우려는 인민의 의지, 인민의 념원에 전적으로 부합되는것이다. 학원을 세우는것은 결코 오늘의 건국사업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 역시 건국사업이다. 아니, 새 나라의 미래를 키우기 위한 건국중의 건국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이께서는 문득 평양문화인협회 회장이였던 최명익에게 우리 말 교재를 부탁하시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해방전 처녀작 《비오는 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한 후 애국적인 소설들을 많이 써서 인민들속에 명망이 높던 최명익을 반갑게 만나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금년도 1월 1일을 맞으며 〈어린 동무〉창간호에 실린 선생의 글을 보았습니다.》하시며 그를 치하해주시였다.

《요즘 무슨 글을 쓰고있습니까?》 하고 물으셨을 때 그는 《제 미흡한 재간이지만 불세출의 위인을 형상한 력작을 구상하고있습니다.》 하며 매우 흥분하여 대답올렸다.

《전번에 만났을 때에는 서산대사를 형상한 력사소설을 쓸 결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잠간 뒤로 미뤘습니다. 제가 새 작품을 구상한것은 건국위업에 절실한 도움을 줄수 있는 글부터 써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따랐다기보다 항일대전의 영웅을 노래하고싶은 작가적충동이 더 컸다고 봐야 옳을것입니다.》

《최선생, 제 부탁을 하나 들어줄수 있겠습니까? 이자 선생이 말한것처럼 건국에 제일 중요한 일이여서 그럽니다.》

《장군님, 어서 하명해주십시오.》

《우리 말 교재를 하나 써줄수 있겠습니까?》

《예?》

《지금 어딜 가나 문맹퇴치운동이 벌어지고있는데 똑똑한 우리 말 교재가 없어서 애를 먹는다고 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나라의 흥망성쇠, 만년대계와 관련되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

《선생이 그 일을 해주신다면 건국에 대단한 기여를 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처음엔 몹시 놀라와하다가 경건히 머리를 숙이던 최명익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였다. 그후 그는 짧은 시일안에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우리 말 교재를 훌륭하게 완성함으로써 문맹퇴치와 어린이들의 교육사업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생각에서 깨여나신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놓았던 담배를 다시 집어들고 방문을 나서시였다. 복도의 저편 방쪽에서 고르로운 동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여겨 들으시니 재봉기소리 같았다.

이 깊은 밤중에 무슨 일로 재봉기를?···

그이께서는 그곳으로 다가가시였다. 방문을 슬며시 밀어보니 안쪽으로 두터운 모포가 걸려있었다.

사르릉 사르릉··· 재봉기는 김정숙동지께서 돌리고계시였다. 그 옆에는 형권삼촌의 유일한 혈붙이인 영실이가 천을 자르던 모양인지 가위를 손에 든채 졸고있었다. 원래 초저녁잠이 많은 앤데 아마 형님의 일손을 돕겠다고 앉았다가 더 견디지 못하고 잠에 든 모양이다.

《왜 아직도 쉬지 않소?》

그이의 물으심에 재봉기소리가 멎었다.

김정숙동지께서 죄스러운 기색으로 돌아보시였다.

장군님께서 주무시는줄 알고 재봉일을 시작했던 그이이시였다. 그리고도 안심치 않아 방문에 모포를 덧쳐놓아 방음대책까지 세우느라 했건만 이렇게 장군님의 귀중한 휴식에 방해가 되였으니···

《걱정마오, 재봉기소리때문에 잠들지 못한건 아니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정겹게 미소를 지으시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재봉기옆에 놓인 자그마한 바지를 집어드시였다.

지금 재봉기시침을 물고있는것도 그러한 작은 바지였다.

그이께서는 묻는듯 한 눈길로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시였다.

《저 애들에게 갈음옷이 한벌씩 있어야 하겠기에··· 사내애들이 돼나서 단벌옷으로는 안되겠습니다.》

《허허··· 난 지금껏 앉아 걱정만 하고있었는데 정숙동문 이렇게 아이들의 새옷을 짓고있구만.》

《장군님, 정말이지 유자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그이의 말씀에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어찌 그의 마음인들 다를수가 있으랴.···

《정숙동무, 솔직히 말해서 내 다른 일들은 크게 걱정되지 않소.

정규군건설사업도 그래, 앞으로 공화국을 세우는 사업도 그래 배심도 든든하고 또 방도도 뚜렷하거던.》

그이께서는 손에 들었던 바지를 재봉기옆에 놓으시고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였다.

《그런데 아이들만은··· 자꾸 마음이 조급해지거던. 부모없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고생하고있을 그 애들을 생각하면··· 그러다가 골병을 만나거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먼저간 동지들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겠소.》

그이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창가에 서시여 저 멀리 밤하늘가를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오돌오돌 떠는듯 한 먼곳의 뭇별들마저 애처로운 아이들의 모습처럼 그이의 눈에 비껴들었다.

《만사를 제껴놓고서라도 유자녀들문제부터 풀어야 하겠소.

하루빨리 학원을 세워서 희생된 혁명동지들과 애국렬사들의 자식들을 데려다가 공부도 시키고 생활도 돌봐줘야겠소. 그 애들이 자기 부모들의 뜻을 잇도록 말이요.》

그이의 뜨거운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번뜩이고있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김정숙동지의 눈가에도 구슬같은 맑은것이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