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6

 

6

 

서낭당주변은 멀지 않은 곳까지 갈노전집들이 뻗어왔지만 아직도 후미진곳이였다. 길잃은 나그네들이 겨울을 나느라고 사당안에 불을 지펴서 천반이고 벽이고 까맣게 연기로 그슬렸다. 눈이 깊은 때는 제단까지 허물어 땠는지 지금은 온통 실그러지고 고삭았는데 바깥에 서있는 해묵은 곱슬버들밑둥에서부터 구렝이가 기여나와 제단밑으로 거처를 옮겼다. 최근에는 바로 그 구렝이가 서낭님이라는 말도 돌아갔다. 어느 길손이 허기를 못참아서 돌같이 굳어진 제떡 한개를 집어먹고 서낭님의 노염을 사서 급살을 당했다고도 하였다. 어느해인가는 곱슬버들가지에 웬 처녀가 목을 매여죽었는데 그것은 서낭님이 제 마누라로 데려간것이라고들 하였다.

해만 떨어지면 서낭당언저리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 안했다.

그럴수록 음기가 짙어져서 최근에는 대낮에도 사람들이 범접하기 좋아하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청지동과 금천동 일판의 핵심들과 만나서 선전자료들을 나누어주고 앞으로 조직을 넓혀나갈데 대한 과업도 준 박인섭은 윤원구가 삼선봉쪽으로 넘어가자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공작조성원들을 기다렸다. 밤에 장경수가 오기로 하였다. 어랑촌부근에서 활동하는 한 소부대까지 갔다온 그는 이밤으로 공작조의 보고를 종합해가지고 사령부로 돌아가게 되여있었다.

국내로 들어갔던 장경수는 부대가 석인구전투를 치른 얼마후에 돌아왔었다.

정지성은 김홍배라는 이름으로 풍산에 깊숙이 박혔으며 주변에 흩어져있던 혁명가들을 묶어나가고있다. 허천강발전소공사장에도 이미 조직을 박기 시작하였다.

한편 무산지구전투에 대한 소식은 광범히 퍼져서 일제의 탄압아래 숨죽이고있던 인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특히 직접 김일성장군님을 자기 고장에 모신 무산지구와 그 대안인민들의 혁명적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하였다. 때마침 사령관동지의 원대한 구상에 의하여 올기강전투를 비롯한 큰 전투들과 수많은 집단부락습격전투들을 통하여 두만강기슭의 적들이 완전히 군사적으로 제압된 유리한 조건에서 인민들의 앙양된 혁명적기세를 조직화하는 사업이 중요한 임무로 제기되였다. 무산지구에서 이 사업을 직접 담당수행한것은 옥돌골공작조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옥돌골을 떠나시면서 멀리 앞을 내다보시고 곰의골밀영에서 소환하여 침투시킨 리학렬은 옥돌골일대에서 활동하는 한편 상대동의 한 농막을 거점으로 하여 강건너 삼장면에서 대동구일대로 넘어오는 농민들을 혁명화하였다. 대동구에는 이미 사령관동지의 지도에 의하여 반일회가 조직되였으며 무산 삼장면에는 상사소, 하사소, 하륙소, 농사동일대에 조직이 꾸려지고있다. 무산지구전투당시 신사동에서 사령관동지를 모신 봉식이며 만호, 태호형제를 비롯한 많은 로동자, 농민들이 옥돌골공작조의 지도하에 처서판과 농민들속에서 조직을 꾸리는 앞장에 서있다. 옥암동구장 리덕선이는 무산지구전투의 불길에 너무 덴겁을 해서 이제는 문전출입을 삼가하게 되고 어찌다 아들 호철이가 들리면 너도 제 형꼴이 되지 않겠거든 너무 날뛰지 말라고 오히려 당부한다는것이다.

이러한 소식들은 공작조 성원들의 가슴을 흥분으로 뒤설레이게 하였다.

지금 공작조의 사업보고를 종합하고있는 박인섭의 생각에는 어쩐지 사령관동지께 기쁨을 드릴만 한 내용이 부족한것만 같아 속이 안달아났다. 만일 광산 밥집의 식모처녀가 한태혁의 누이동생이라는것만이라도 확증되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윤원구는 그 상기라는놈때문에 필네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워 그런 심중한 이야기를 꺼낼만 한 기회를 아직 못타고있다는것이였다. 하기는 그 말이 난것이 엊그제이고 또 이야기내용이 내용인것만큼 안타깝다고 서뿔리 다그칠수도 없는 문제였다. 낮에 장경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도 감질이 나서 빨리 알아보고 그 즉시로 사령부에 알리라고 하였다.

공작조의 사업상보고내용은 그만하면 괜찮다고 볼수도 있었다.

금천동조직은 벌써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제밤에는 성벽에 큼직한 삐라가 50여매나 나붙었다. 시꺼먼 벽돌담장에 광부들의 투박한 손으로 어찌나 풀을 흠뻑 먹여붙였는지 광산 순사들과 경찰이 총동원되여 하루종일 떼도 아직 흔적이 남아있다. 지금 금천동은 헌병이 드나들고 《신선대》가 드나들고 경찰우두머리들이 드나들고 굉장히 소란스럽다.

그런데 그틈에 청지동 농촌에서는 장대선아바이가 세사람의 농민을 교양하여 네사람이서 사인계를 무었는데 이것을 앞으로 백인계로까지 발전시킬 차비이다.

청지동 사금판과 목재판의 형편도 그만하면 괜찮다.

적정에 대한 자료는 이미 김준삼이가 장경수에게 전했고 추가적인것은 리성림이가 가져올것이다. 적의 동태에서 문제로 되는것은 적들이 부대를 허위적으로 이리저리 끌고다닌다는 자료가 사실인가 하는것을 확인하는것이였다.

이윽고 장경수가 행상리발쟁이모양을 하고 나타났다. 사처로 돌아다녀야 하는 그의 임무로 볼 때 그럴듯한 변장이였다. 성림이만은 밤이 퍽 깊어가는데 웬일인지 나타나지 않는다. 적의 우두머리들과 본격적인 기업흥정을 벌린 성림에게 이런저런 사정이 많이 생길수는 있겠지만 역시 걱정스럽지 않을수 없었다.

《이 동무가 어디 술자리에 가 너무 재미를 보는게 아니야.》

인섭이는 잡초에 묻힌 행길쪽으로 고개를 돌리여 중얼거렸다.

《이제 오겠지. 아무러문 성림동무가 술때문에 시간을 잊어먹겠소.》

하고 장경수는 늘어진 대답을 하며 곰방대를 꺼냈다.

《흥, 알지도 못하면서··· 부르죠아들과 교제하는게 어떤겐지 알기나 하오. 내 전날 금천동조직을 내오는 날 성림동무와 함께 갔다가 학질 뗐소. 유경무라는놈은 같이 술을 먹겠다고 당장 마차를 타고 달려드는데 이 동무는 작업복을 입고 우리같은 뜨내기와 함께 걷고있지 않았겠소. 야- 참 솔직히 말해서 간이 콩알만해졌더랬소. 그런데 이 동무가 냅다 달린다는데 리성림이가 빠르기는 빠르더군. 15리를 마차와 경주를 해서 앞질러가서는 신사복을 척 갈아입고 그놈들을 만나서 술자리를 찾아갔다는거요. 아슬아슬하지 않겠는가 좀 보오. 금광 사주고 동발 사겠다고 자꾸 술 퍼먹이면 먹었지 별수 있소?》

박인섭은 장경수앞에 늘 한수 접히고 드는것 같아 괜히 기세를 올리며 떠들었다.

《참 고난의 행군이 대학맞잡이란 말들을 하더니 비슷한 소리 같군.》

장경수는 멜대에 달고다니는 리발걸상에 다리를 꼬고앉아 곰방대를 뻐금뻐금 빨며 실눈을 해가지고 중얼거렸다.

《그건 무슨 소리요?》

인섭이가 어정쩡해서 물었다.

《인섭동무를 보니 내가 동무들 데리러 20도구골안으로 찾아가던 일이 생각나서 그래. 그게 언제던가? 작년 이맘때지?》

《쳇 듣고싶지도 않소. 그 뭐 시험이다 뭐다 하고 시시펑덩한 허튼소리만 해서 사람을 놀래우더니··· 또 그런 소리를 하고싶어서 그러는 모양이군.》

인섭이는 좋다는것이 눈을 흘기며 두덜거렸다.

《시험이야 이제 뭐 또 칠게 있어야지. 지하공작을 척척 해내지, 연설도 곧잘 하지, 이게 얼마나 장한가. 내가 박인섭이를 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우리 사령관동지께서 사람을 잘 보실뿐아니라 세상에 쓸모없는것 같은 인간들도 다 훌륭히 키워내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단말이야. 명공의 손에 잡히면 내버린 나무토막도 칼집이 된다거던.》

롱담같이 인섭이를 올리추면서 성림이를 푹 믿어야 한다는 소리를 그렇게 하는것이였다. 인섭이도 인차 그 눈치를 챘지만 어쩐지 속이 근질근질하여 가만있게 되지를 않았다.

《그럼 내가 내버린 나무토막이란말이요?》

인섭이는 색을 머금고 접어들었다.

《뭐 나무토막까지는 몰라도 내가 처음 박인섭이를 볼 때 인류발달사도 모르는게 꽤 똑똑한 유격대원이 되겠는가 은근히 걱정스럽더군. 그렇던게 1년남짓한 사이에 이렇게 훌륭한 적후공작원이 됐으니 기뻐서 하는 말이지.》

장경수는 조금도 난처해하는 빛 없이 주근주근 말하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나같은것을 어엿한 유격대원으로 길러주신것은 사실이지. 그러나 장경수는 아무래도 사상이 틀려먹었어.》

《넨장, 그렇게 섭섭하다면 취소다.》

하며 장경수는 곰방대를 탁탁 털었다. 그러다가 얼른 담배재에 남은 불을 발로 비비고 또 무엇인가 말하려는 인섭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귀를 기울이니 먼데서 풀대 꺾어지는 소리가 난다.

오랜 지하공작원인 장경수의 귀는 우스개소리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날카롭게 곤두서있었던것이다.

두사람은 저마다 옆구리로 손을 가져가며 어깨를 낮추고 숨소리를 죽였다. 이윽고 발자국소리가 저벅저벅하더니 서낭당 널장문을 돌로 때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기척을 내지 않으니 다시 딱딱 소리를 낸다. 틀림없이 정해진 신호였다.

《성림동무.》

박인섭이가 반가와서 달려갔다. 장경수도 벌떡 허리를 일으켰다.

《사람두, 아주 애를 말리는군.》

인섭은 반가운 나머지 눈을 슴벅거리며 성림의 두어깨를 짚고 흔들어댔다.

《웬일이요?》

장경수만이 성림이가 들어온 행길쪽을 살피며 엄격하게 물었다.

《왜놈수비대가 청지동에 들어왔소. 마침 유경문이가 뒤따라왔길래 그놈을 통해서 대대장이라는놈을 만났지요.》

성림은 동지들속에 돌아온것이 너무나 좋아서 대답을 하면서도 싱글싱글하며 인섭이의 갈라터진 손바닥도 쓸어보고 장경수의 소매를 어루만지기도 하였다. 그는 한손에 보자기로 싼 무슨 함같은것을 끼고있었다.

장경수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지 성림이를 와락 옆에 끼더니 그대로 곱슬버들밑으로 끌고갔다.

《어때, 힘들지?》

장경수는 그를 리발걸상우에 앉히고 맏형처럼 은근히 물었다.

《힘들것은 없는데 그놈들 어떻게나 눈을 밝히는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고 긴장때문에 잠들수가 없소.》

시무룩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던 성림은 장경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곰방대를 꺼내자 허둥지둥 옆구리를 더듬었다.

《참, 이거 부르죠아들 담배 한대씩 피워보오.》

하고 성림은 《대생산》한갑을 꺼냈다.

《허허허, 성림동무가 대단하군.》

장경수는 스스럼없이 금지를 테고 권연 한대를 뽑아물며 웃었다. 인섭이도 담배를 붙여물며 완전히 부르죠아행세를 하고 다니는 성림이를 무슨 구경거리처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래 수비대놈들이 청지동에 얼마나 주둔할 모양이요?》 잠시후 장경수는 실무적으로 물었다.

《조장동무가 전날 탐지한게 확실하오. 미타한 지역을 골라 위력시위를 목적으로 내돌린다는것을 직접 대대장놈이 말했소. 놈들은 지금 유격대가 현성과 중요산업지구라든가 철도연선으로 진출할가봐 겁이 나는 모양이요. 그래서 그 대대를 여기서 한 1주일동안 주둔시켜 훈련이요 뭐요 하다가 그다음 금천동으로 옮아간다는것이요. 청산리, 석인구 방향으로도 그런 부대들을 내보냈다고 합니다. 요컨대 우리 혁명군에 대한 위력시위지요. 이렇게 유격대를 일정한 지역에 봉쇄해놓고 그사이 대무력을 집결하여 포위를 형성할 모양이요. 그러니 그놈들이 다녀간 직후에 진공전투를 벌리면 효과가 더 클것 같소. 이런것을 사령관동지께 자세히 보고드려주시오.》

이곳 청지동과 금천동 일대의 인민들이 유격대의 진공을 안타깝게 기다리고있는데 대한 자료들은 이미 수많이 수집되여있었다. 유격대를 찾아떠나겠다는 청년들도 많았다. 그러기때문에 성림이의 마지막 말은 이미 김준삼이가 반영한 공작조의 의견을 보충하는것이였다.

장경수는 성림의 말을 그대로 머리속에 새기기 위하여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앉아있었다.

성림은 마감에 좀 거북한듯이 외면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암만해도 조장동무의 뒤를 계속 캐는 모양같소. 그래서 더구나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소.》

《그건 전날 중대장동무한테서도 들었는데 그뒤 무슨 새로운 일이 있었소?》

《내 특별히 새로운것은 없는데 흥아목재상의 자본이 실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넌지시 떠보기도 하고 그 집 아들이 일본 가서 사상운동을 했다는 말이 돌아가는데 주인이 요즘은 아들을 믿고 돈을 내맡기는가 하는것을 묻기도 하고 만주에서 돈을 벌었다는게 사실인가 하고 캐기도 한단말이요.》

성림은 그지간에 호철이에게서 들은 소리, 제가 느낀바를 차근차근 말하였다.

《동무에 대해서는 의심을 가지지 않소?》

《나야 뭐 의심할만한게 있소. 하기는 전날 금천동앞에서 꼭 나같이 생긴 로동자를 만났다고 신통해하더군.》

《누가말이요?》

장경수는 긴장해서 물었다. 방금 인섭에게서 들은 그 사건을 념두에 두고있다고 생각할 때 간단한 문제같지 않았다.

《유경무지 누구겠소. 그건 그자가 나를 믿는다는 소리지. 문제는 한마차에 앉아있던 호철이란놈이 아무 수작도 안하는게요. 그 자식이 드나드는 집이 암만해도 수상하거던.》

《조심하오. 조장동무도 호철이라는놈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내 사령관동지께 보고를 올리겠소. 정 말째게 굴면 제껴버려야지.》

《아니 장동무.》

성림은 놀라서 장경수의 소매를 잡았다.

《사령관동지께 그런것을 다 보고드릴 필요야 있소? 그러지 않아도 걱정하실텐데 우리가 경각성있게 잘해나가면 될것 아니요. 처단하더라도 우리가 필요할 때 할테니 그이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도록 해주오.》

《알겠소. 하지만 그건 동무가 걱정할 필요가 없소. 좌우간 좀 토론은 해보기오. 그래 그 호철이란놈이 드나드는 집이 <동아물산>이라고 했지? 어제 나도 그앞을 지나가봤소. 겉보기는 별게 없는데 좀 수상한것만은 사실이요.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가끔 나타나는것을 보면 장사군차림을 했지만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군인같거던.》

《틀림없이 특무기관일거요. 언젠가··· 그게 한 사나흘 된것 같은데··· 유경무는 묘한 말을···》

성림은 무슨 말인가 중얼중얼하는것 같더니 나중에는 입만 우물거리고 말은 새여나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바라보니 걸상우에 앉은채 건들건들 졸고있었다.

《자, 이 동무가 정말 밤을 꼴딱꼴딱 밝히는 모양이군.》

인섭이가 쓰러지면 붙잡을듯이 허공에 두팔을 내대고 울먹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잠들수 있겠소. 적도 보통 적이 아니라 바로 특무, 경찰놈들의 한복판에 들어가서 잠을 자내오? 동무들속에 돌아오니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요. 잠시 가만히 둬두기요. 샐 때가 다 됐는데 그사이라도 눈을 좀 붙이게···》

장경수가 이렇게 말하며 자기 행상멜대에서 해여진 우산을 빼내여 조심히 펼쳐들었다.

소리없이 밤이슬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