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25

 

25

 

하늘이 훨씬 높아졌다. 그사이 분주한 나날이 계속되여 언제 하늘이 높아졌다는것도 느낄 사이가 없었다.

그러던것이 문득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쳐들어보니 어느새 시원하게 개인 푸른 하늘이 높다랗게 떠있는것이였다. 숲속에는 산열매가 무르익어 들크무레한 냄새가 강기슭까지 떠돈다. 고기도 살이 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래간만에 낚시대를 드시고 강으로 나가시였다. 아침부터 재영이와 상철이를 7련대장과의 련락장소로 내보내시고보니 적어도 오늘 반나절은 누구의 성화도 받지 않으시고 낚시질을 할수 있을것 같으시였다.

처음 몇마리를 끌어내보시니 달포전하고는 손맛이 판 다르시였다. 훨씬 무게가 는데다가 세차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허, 이놈 봐라, 제법 뛸 차비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말동무가 없으시니 고기와 터놓고 혼자말씀을 하시였다.

《그렇지, 부르죠아정객들처럼 오그랑수를 쓰지 말고··· 그러다간 제풀에 코를 꿰인다니까, 이것 보지.》

그이께서는 미끼를 떼고 달아나려는놈을 재빨리 채올리시였다.

처음 몇마리는 크게 곡절 없이 재미를 보시였다. 그러다가 좀 소식이 뜸해진 틈을 타서 이 생각, 저 생각 더듬으시던 그이께서는 마침내 사색의 심연속으로 잠겨드시여 고기생각은 가맣게 잊어버리시였다.

미끼는 이미 떨어졌는지 낚시초리는 조용히 흔들리고 그끝에 물잠자리가 올라앉아 조는듯마는듯 날개를 쉬우고있었지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시였다.

머지 않아 오중흡이가 올것이다. 8련대가 가까이 있었다면 리철범이도 오라고 해서 이런 산천어국을 한그릇씩 먹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떠오르시였으나 역시 낚시질에 주의가 돌아가지는 않으시였다.

다만 동무들을 보고싶으신 생각만 간절해지시였다.

리성림은 예상했던것보다 더 심하다고 하였다. 어찌나 고문을 심하게 당했던지 장딴지에 골절이 와서 걸을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김준삼이에게 병원밀영으로 데려가도록 하시였지만 보내놓고보니 그렇게도 간고한 시련을 겪으면서 혁명적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그 훌륭한 전사를 한품에 그러안지 못하시는 아쉬움에 날이 갈수록 가슴속이 허전하시였다.

그밖에도 만나보고싶은 동무들이 많았다. 오늘 옥돌골공작조에서 보내온 신문에는 일제의 주만대사가 바뀌였다는 소식이 나있고 그 뒤면 사회란에는 《혜산시내 흥아목재상에 화재, 원인은 실화인지 방화인지? 당국에서는 실종된 주인을 의심》하는 표제를 달고 정귀하로인이 적의 삼엄한 경계망속에서 몸을 뺀 사실이 보도되였다. 그가 옥돌골공작조를 거쳐 다시 아들이 있는 풍산쪽으로 나간 소식은 이미 사령부에 돌아온 강철룡네들을 통하여 보고를 받으시였다. 관동군 특무놈들의 말만 들어서 로인이 정작 무엇때문에 의심을 받았고 왜 감시를 하고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인 혜산경찰놈들의 놀아나는 꼴이 가소롭기도 하시였다.

주만대사가 갈리였다는것도 흥미있는 사실이였다. 말하자면 관동군사령관의 목이 떨어진것이다. 들리는 말에는 관동군사령관만 아니라 참모장까지 함께 목을 뗐다고 한다. 조직을 통해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조선인민혁명군과 대결해보겠다고 날치던 이와구니며 혼마며 그밖의 잡동사니들이 무데기로 목이 떨어지고 자살을 강요당하였다고 한다. 하기는 그까짓것들이 응당 가야 할 제갈길을 간것이야 무슨 새삼스러운 소식이랄것도 없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세계정치정세는 뜻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대전환을 일으키였다. 방금 전쟁의 불꽃이 터져오를것 같던 쏘련과 도이췰란드 사이에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자 이른바 정치를 한답시고 분주히 돌아치던 부르죠아정객들, 외교관들, 장군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리고 한동안 말을 못하였다.

도이췰란드를 부추겨서 쏘련과 싸움을 붙여놓고 그 틈바구니에 무엇인가 제 리속을 채워보겠다고 잔꾀를 피우던 제국주의렬강의 숱한 내각들이 무더기로 나가넘어졌다.

영국내각도 일본내각도 다 뒤집혔다. 무쏘리니의 외상 차노는 한달전까지만 해도 입을 맞추며 그러안군하던 리뻰도르프를 《그 이상 기분나쁜 악당이 있을수 있겠는가.》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상욕을 퍼부었다.

세계가 다 당황망조하였지만 그중에서도 당황망조한것이 일제였다. 히틀러와 반공협정을 맺고 쏘련으로 쳐들어간다는것을 골자로 하는 시종일관한 정책을 더는 고집할수 없게 되자 그럼 무엇을 내세우고 무엇을 반대하겠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되였다. 그렇게도 많아보이던 로선과 방침들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게 되였다.

그래서 뒤집힌 히라누마내각이 누구에게 사업을 인계해야 할지 모를 형편이 되였다. 후계내각을 조직하는데 괘씸하지만 도이췰란드의 비위도 거슬리지 않고 그렇다고 영국의 비위도 거슬리지 않으며 더 복잡하게는 쏘련에서도 그닥 싫어하지 않는 말하자면 《무색투명》한 내각을 내와야겠는데 그런 내각을 끌고나갈만한 《무색투명》한 황도주의자를 찾아낸다는것이 그렇게 흔해빠진 파쑈분자들가운데서도 쉽지 않았다. 결국 고르고 고르다 쥐고른다는 격으로 아베 노브유끼라는자를 골라놓고보니 고른자들까지 어처구니없는 맹물단지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하였다. 일제로서는 력사의 회오리바람에 태질을 당하여 동서남북을 분간 못할 방향상실의 시기였다.

히틀러는 8월 24일을 기하여 뽈스까에 대한 진공명령을 내리고 9월 3일에 영국과 프랑스는 대도선전포고를 하였다.

런던에서는 여태 상영금지되였던 쏘련의 반나치스영화 《맘로크 교수》가 대대적으로 상영되기 시작하고 《지그프리드요새로 빨래하러 가자》라는 괴상한 새 류행가가 퍼졌다.

그 류행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들은 지금 지그프리드선으로

빨래를 널러 간단다

 

어머니 아무거나 빨것 내놓세요

우리들은 지금 지그프리드선으로

빨래를 널러 간단다

 

근 60만의 병력과 5 000만t의 세멘트를 비롯한 방대한 물동에 도이췰란드 토목기계의 태반을 동원하여 게링그의 직접 지휘하에 1년간이나 다몰아쳐서 지난 5월에 완공했다는 지그프리드요새에서는 아직 그럴만한 전투도 없었건만 이따위 류행가부터 나와 돌아가는것을 보면 대포를 쏘는것보다 약이나 올리자는 심산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자아냈다. 그래서 그런지 히틀러의 관리들은 대단히 약이 올라서 영국정부에 대고 엄중항의를 들이댔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의 한편에서는 쏘도불가침조약의 론리적귀결로서 쏘일불가침조약의 체결문제가 일정에 올랐다는 여론이 내외에 떠돌았다. 그런가운데 석달나마 피투성이싸움을 해오던 할힌골에서의 전투도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하여 발목이 붙잡힌 일제의 20일에 감행한 마지막 총공격이 수만의 시체더미를 만들어내는것으로써 끝장이 나고 모스크바주재 일본대사는 크레믈리로 허리를 낮추 구부리고 화평교섭을 들어갔다.

이런 판에 정신없이 파쑈칼부림에 미쳐돌아가던 무리들이 불에 타죽고 목이 달아나고 배를 가르게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까짓 무리들이 어떻게 되였건 력사는 눈섭 하나 까딱 않고 제 궤도를 줄달음쳐갈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정든 우리 사람들이 그리우시였다.

정귀하로인도 만나보고싶으시였고 정지성이와 류진옥이도 만나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실지로는 가까이에 있는 련대장들도 만나기가 쉽지 않으시였다.

하늘은 저렇게 높이 개이고 숲은 평화롭게 설레이고있지만 내외정세는 갈수록 복잡하게 뒤엉클어지고 새로운 태풍을 배태한 혁명의 저류가 땅덩어리를 겹겹이 휘감아치고있다.

남의 불에 게잡자고 잔꾀를 부리던 인간들의 운명은 그야말로 가을바람에 휘말린 락엽과 같이 함부로 나딩굴고있다.

그속에서 오직 자기 힘 하나를 믿고 억세게 싸워 이 여름에 커다란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우리 혁명과 세계혁명의 전진에 중대한 기여를 한 전사들을 열렬히 축하하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싸움의 길은 아직도 아득하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이제 새로운 진군길에 올라야 할것이다. 적들은 제놈들의 침략정책에 창을 낸 보복을 하려고 조선인민혁명군과의 최종적인 대결을 서두르고있다. 그것을 위하여 어제까지 피를 물고 싸우던 나라들과도 일시적인 화평을 유지하려고 갖은 꾀를 부리고있다.

여름에 사령관동지의 손바닥우에서 놀아나듯 수많은 부대들을 그이께서 의도하시는대로 화룡, 안도 지구로 끌어온 놈들은 제 그림자를 보고 짖다가 입에 문 고기마저 놓쳤다는 욕심 많은 개와 같이 아무데서나 불질을 하려들다가 조선인민혁명군과의 전선에서도, 만몽국경에서도, 중국전선에서도 대타격을 입었다.

놈들은 이제 화룡, 안도 지구에 끌어온 대무력으로 그 밸풀이를 하자고 들것이다. 죽어가는 제국주의의 단말마적발악상이 환히 떠오르시였다.

그러나 적들을 그러한 자기 파멸의 함정에로 유인하시기 위하여 이 한해여름을 보내신 김일성동지의 가슴속에는 이미 적들의 기도를 드넓은 전선에서 짓부셔버리실 구상이 무르익어져있었다.

이제 부대들은 다시 대부대로 한데 뭉쳐 광활한 대지를 무른 메주밟듯하면서 또다시 조국땅에로 나아갈것이다. 장엄한 구상이 도도한 흐름처럼 가슴을 쿵쿵 친다.

(오그랑수를 제아무리 쓴다 해도···)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낚시대를 쳐드시여 서둘러 미끼를 꿰시고 신중하게 줄을 치시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의 사색은 다시금 혁명의 수만리로정을 톺아나가고있었다.

천막들이 서있는 강기슭, 바위우에는 두 녀대원이 구슬같이 부스러지는 물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고앉아 산나물을 다듬고있었다. 김정숙동지와 금숙이다. 요즘 철구아주머니는 부쩍 몸이 실해져서 앉아서 하는 일보다 나다니는것이 좋다고 부지런히 산나물을 뜯어들인다. 어찌나 세차게 나물을 해대는지 한개 중대성원이 먹고도 남아서 틈틈이 말리워 따로 건사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실없이 재미있다고 요즘은 끼니때도 잊어버리고 산나물 뜯는데 정신이 팔려 돌아갔다. 그러다나니 점심이나 저녁은 대개 김정숙동지께서 혼자 지으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금숙이가 어떻게 시간을 냈는지 찾아와서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이렇게 홀로 나선것을 보면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일부러 찾아온것 같기도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금숙이는 나물보자기를 바위우에 풀어헤치자마자 김정숙동지를 향해 돌아앉았다.

《언니, 성림동무 이야기 들었어요?》

《응, 대체로 들었어.》

《참, 난 성림동무가 그런 동문줄은 몰랐어요. 필네동무가 그러는데 장딴지가 부러져서 어석어석 소리가 난다지 않아요? 손톱, 발톱을 집게로 다 뽑아내고··· 그런데도 꿈쩍도 안하고 오히려 그놈들을 가지고 놀았다니··· 정말 어쩌면 사람이 몇달사이에 그렇게 변할가요?》

《그러게말이야.》

하고 김정숙동지께서도 일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시였다.

《후방밀영에서 하던 행동을 보면··· 난 사실 그 동무가 적후공작을 나갔다기에 놀라기까지 했어요. 그런 사람을 적들속에 들여보내서 일없을가 하고말이예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을가요. 정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게 비슷한 말 같아요.》

《허지만 사령관동지께서는 다 내다보시지 않어? 내다보시는것보다 누구나 그렇게 억세게 싸우게끔 신념을 안겨주시고 신임을 보내주시는거야. 그 동무도 본시야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엄광호같은놈한테 속았던것 같애. 우리 장군님께서는 누구나 몹쓸 사람으로 생각하던 사람들까지 다 훌륭한 혁명가로 키워내시지. 그런 사람을 적들속으로 들여보내신 그 믿음이 얼마나 가슴을 울려주는지 나는 모르겠어. 그런 크나큰 믿음을 받으면 누구나 억세여질거라고 나는 확신해.》

《그런가봐요. 청봉밀영때 성림동무를 아는 사람이면 금천동에서 그렇게 잘 싸운 사람을 같은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할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 일손을 놀리기 시작하시였다. 조국의 땅을 그러안고 눈물짓던 성림의 측은한 모습이 물결우에 그려지셨다. 그렇게 나약해보이던 사람이 그 죽음의 지하감방에서 모진 고통을 웃으며 겪었다니 새삼스럽게 놀라우시였다.

《빨리 나아서 돌아왔으면···》

금숙이도 나물을 물에 헹구며 혼자말처럼 속삭였다. 그들은 한동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손을 놀렸다. 그러다가 금숙이가 가만히 귀전에 대고 소곤소곤 말하였다.

《필네가말이예요. 거기서 아는 동무를 만났대요.》

《누구를?》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슨 말인지 몰라 돌아보시였다.

《7련대에 있는 동문데 갓 입대한 동무래요. 산판에서 같이 있었다나요.》

《그런데?》

《그런데 말하는게 암만해도 좀 이상해요. 보통사이같지 않아요.》

《그럼?》

김정숙동지께서도 긴장되여 똑바로 쳐다보시였다. 금숙이는 제풀에 얼굴이 발깃해지면서 말하였다.

《뭐 어떻다고 말하는것은 없는데 별로 어색해하면서··· 정작 누구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잡아떼기도 하고 좀 별스럽게 굴지 않아요. 언닌 그 동무 몰라요?》

《이름이 뭐래?》

《강정섭이라나요?》

《강정섭? 오ㅡ라 그 동무로구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별안간 얼굴이 환히 밝아지면서 웃으시였다.

《어떤 동무예요?》

《금숙이는 몰라? 국내진공전투하고 돌아나와서 장산령을 행군할 때 입대하겠다고 이틀씩이나 부대를 따라온 동무말이야.》

《난 그때 정신이 딴데 팔려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 같긴 한데 얼굴은 떠오르지 않아요. 어떤 동물가?》

《아이구 참 답답해라. 우리가 회양동에 있을 때 경위중대장동무가 그 동무를 〈바지저고리〉라고 불렀다 해서 련대장동무가 성이 나서 자기 옷을 내다 입히는바람에 우리가 얼마나 혼이 났어? 밤을 새면서 군복을 짓지 않았어?》

《아니 그 〈바지저고리〉? 이제는 생각나요. 그 동무로군요.》

금숙이는 별안간 심드렁해졌다. 어느새 필네의 후견인쯤으로 자처하고있는 그는 어쩐지 필네의 깨끗한 모양에 비해볼 때 정섭이라는 청년이 《바지저고리》라는 말과 같이 지나치게 어리숙하게 생각되는 모양이였다.

《호호호.》

하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대단한 어른처럼 심각한 표정이 되여 앉아있는 금숙이가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측은하기도 하시였다.

《정섭동무가 어째서 그래? 그 회양동 우물틀이랑 딸따리랑 누가 만들었는지 알기나 해?》

금숙은 눈길을 들었다.

《그건 왜 그래요?》

《그게 다 그 동무가 한 일이야. 지금 얼마나 어엿한 유격대원이 됐다구그래. 사령관동지께서 밤새 데리고다니시며 사격훈련을 다 시키시고··· 그래서 올기강전투때는 7련대에서도 열손가락안에 꼽힐만큼 적을 많이 잡았다는거야. 그리고 이번 금천동전투때는 한몫을 단단히 했대.》

《그래요? 그 우물이랑도 그 동무가 그랬다면 속은 깊은 동무같군요.》

금숙은 반신반의하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였다.

《난 참 좋은 동무라고 생각해. 수더분하고 솔직하고··· 옳지, 마침 그 동무가 저기 오는구만, 련대장동지랑···》

김정숙동지께서는 벌떡 일어나시였다.

강기슭을 따라 무엇인가를 둘러멘 재영이와 상철이가 앞장서오고 그뒤를 따라 키가 훨씬 큰 정섭이와 7련대장 전령병 영남이가 주위를 뚜릿뚜릿 살피며 걸어온다. 오중흡련대장은 정섭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한참 웃다가 혼자 서서 옷차림을 더듬어보고 물을 움켜 신에 오른 먼지와 흙을 닦아낸다. 사령부에 올 때마다 하는 그의 버릇이였다.

《아니 저 동무가 강정섭동무예요?》

금숙이가 놀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련대장동지가 사령부에 오면서 데리고다니는것만 봐도 똑똑하다는것을 알수 있지 않어.》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을 마중나가며 고개를 돌리고 말씀하시였다.

아닌게아니라 금숙이의 인상에 남아있는 《바지저고리》는 어디에 가고 몇달사이에 보기만 해도 어엿한 유격대원으로 자라난 멋쟁이총각이 휘적휘적 걸어오고있었다. 금숙이의 깔끔한 눈에도 입가에도 따뜻한 미소가 엷게 퍼져갔다.

《누나ㅡ》

상철이가 더는 참을수 없었던지 뒤채를 멘 재영이야 따라오건 말건 냅다 달려온다.

《아니 그게 뭐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인가 이상한것을 느끼고 마주 달려가시였다.

《이거, 이거.》

상철이가 덤비며 말을 더듬자 재영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누나, 이렇게 큰고기 봤어요? 연어예요, 연어.》

《연어? 아이구, 난 이렇게 큰고기 처음 보네.》

그것은 엄청나게 큰 연어였다. 두 소년이 다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 어깨에 둘러멘것이 꼬리가 땅에 끌리였다.

《이런게 어디서 났어요?》

금숙이가 겁이 나는지 손끝으로 꼭꼭 찔러보며 눈이 커다래서 물었다.

《련대장동지 기다리며 길가에 앉아있는데···》

하고 상철이가 얼굴이 꽈리빛으로 익어가지고 두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강바닥에서 무엇이 절벅절벅하잖아요. 보니까 모래불에 절반쯤 가라앉은게 꼬리를 툭툭 친단말이예요. 저게 뭘가 하는데 재영이가 연어다! 물고기다! 하지 않아요. 씨ㅡ》

《그러자 상철이가···》

하고 재영이가 뒤를 받아나섰다.

《어느새 총에다 날창을 끼우더니 번개같이 달려가서 콱ㅡ 이렇게···》

재영이는 상철이 옆구리를 꾹 찌르며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단번에 찔러버렸지요뭐. 그러니까 알이 찍ㅡ하고 흘러나왔어요. 알 까러 올라왔던것 같아요.》

《야ㅡ참 혼났네.》

상철이는 자기 공로가 그럴듯하게 묘사되자 좀 게면쩍어졌는지 빨갛게 익은 코등의 땀을 뻑 씻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 꼬마들이 굉장한 일을 했소.》

오중흡이가 재영이와 상철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견해서 말했다.

《련대장동지, 안녕하십니까?》

김정숙동지와 금숙은 한꺼번에 경례를 붙이며 인사를 하였다.

《동무들도 잘 있었소?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침부터 련대장동지를 기다리시고계십니다. 아까 강가에 나가셨는데··· 저기 앉아계십니다.》

《어디?》

오중흡은 마음이 급한듯 낚시터를 향하여 걸음을 재게 옮겨놓았다. 재영이와 상철이 그리고 영남이까지 앞질러 달려가고 강정섭이는 김정숙동지와 금숙이 앞에 어색하게 서서 경례를 하였다.

《동지들, 오래간만입니다.》

《정말 반가와요. 그사이 잘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일부러 금숙이쪽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잘 싸울게 뭡니까? 나무 베는것 하구는 퍽 달라요.》

《호호호.》

정섭이의 말에 김정숙동지와 금숙이는 허리를 잡고 웃었다.

그들도 오중흡이네의 뒤를 따랐다.

소년들은 강기슭에 앉아계시는 사령관동지의 모습이 보이자 막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들을 중흡이가 붙잡았다.

《가만, 떠들지들 말라구.》

《왜요, 고기 달아날가봐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고기 잡으시지 않아요. 보라요. 먼산만 바라보시지 않아요.》

상철이가 한시바삐 자기의 성과를 그이께 보고드리고싶어 안달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마 지금 사령관동지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것 같다. 그럴 때 방해를 해서는 안돼. 사령관동지께서 생각하시는것은 모두 우리 혁명과 세계혁명의 큰 문제들이야. 그런 때는 동무들이 떠들지 않을뿐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떠들지 못하게 해야 한단말이야.》

그러면서 오중흡은 그이께서 보시지 못하도록 나무그늘로 몸을 숨기면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자주 저렇게 앉아계시오?》

《예, 짬만 있으면 강가에 나가세요. 그래서는 그냥 생각에 잠겨계시군해요.》

김정숙동지께서도 나무그늘속에서 강기슭을 내다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생각이 깊으신 모양입니다. 참, 오늘 우리 전령병동무들이 굉장한 고기를 잡았으니 그걸로 사령관동지께 회를 좀 쳐드립시다. 내가 마침 양념감을 좀 구해오는길인데···》

하고 오중흡은 안주머니에서 소중히 싼 작은 꾸레미 하나를 내놓았다.

《이게 뭡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꾸레미의 무게를 가늠해보며 물으시였다.

《뭐, 고추가루, 후추가루따위들이요. 오다가 어디 산마늘이라도 뜯어볼가 했더니 통 보이질 않더군.》

《아이, 정말 고마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꾸레미를 가슴에 꼭 그러안고 기뻐서 어찌할바를 몰라하시였다.

장군님께 한끼라도 별다른 음식을 대접할수 있게 된것때문에 그리도 기뻐하시는 김정숙동지의 모습은 련대장과 세 전령병 그리고 금숙이와 정섭이의 마음도 기쁨에 넘치게 하였다.

그들은 새삼스럽게 경건한 마음이 되여 급류가 굽이치는 올기강기슭에 명상에 잠기시여 앉아계시는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온 세계가 전쟁속에 휘말려들어 피를 흘리며 아우성치고 사람마다 제갈길을 잃고 남의 눈치를 살피며 갈팡질팡하는 이 동란의 때에 혁명하겠다는 인민들의 소박한 결의 하나를 믿으시고 사나운 력사의 난바다우에 억세게 노를 박여나가시는 조선혁명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구의 동서남북이 제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끄떡 동하지 않으시고 낚시대는 흐름에 맡겨두신채 력사의 진정한 요인으로서의 인민의 힘을 키워나갈 위대한 구상을 무르익히고계시였다.

이제 낚시대만 놓고 일어서시면 온 여름 마련하신 거대한 힘으로 혁명의 태풍을 휘몰아 천지를 주름잡아나가실것만 같은 숭엄한 분위기가 숲속에, 강기슭에 노을처럼 떠돌고있었다.

(끝)

 

-> 이 도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