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24

 

24

 

모든 준비는 끝났다.

7련대는 삼선봉기슭에 진출하였으며 화약고에는 김성필이 넉넉히 구해온 화약을 쟁이고 도화선을 늘여놓았다. 윤원구는 페갱구석에 숨어 줄담배를 피우며 심지에 불을 달 때만 기다리고있으며 그쪽으로 접근할수 있는 요소마다에 광산의 조직핵심들이 목을 지키고있다. 오중흡이와 김준삼은 사령관동지의 전략적구상을 받들고 진행되는 기본부대의 전투와 리성림을 구원하기 위한 습격조의 행동을 빈틈없이 짜놓았다.

그러나 싸움은 암만해도 간단히 끝날것 같지 않았다. 새로 보수한 남문포대는 견고하기도 하려니와 여러문의 기관총으로 요새화하다싶이하였고 성문 또한 견고하였다. 광산에 폭약이 흔하다보니 광산지구의 구축물이라는것은 무엇이나 든든한것을 위주로 삼는다.

그런데다 성문을 돌파하면 인차 수비대의 병영이였다. 청지동에서 습격전투가 있은 다음 현성에서 이리로 기본력량을 증강한데다가 제법 군기가 서있고 첫째 겁이 나서 깊이 잠들줄 모르는놈들이였다.

단순히 성을 들이치는것이 목적이라면 응당 주력을 접근하기 쉬운 삼선봉에 그대로 매복시켜두었다가 북문으로 쳐나가면 좋겠지만 삼선봉비탈에 있는 비밀감방에서 리성림을 구원하자면 전투의 중심이 북문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될것이였다. 오중흡의 생각에도 남문포대를 돌파하고 수비대주력을 제압하는 문제보다 아무래도 리성림을 무사히 빼내는것이 어렵게 생각되여 그쪽으로 력량을 더 돌리는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박인섭이 가지고온 통신과 명령에 의하면 사령관동지께서는 쏘련과 몽고 인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배후타격과 함께 리성림의 문제에 대해 여간 심려하시는것이 아니였다. 오중흡이 자신의 판단에 의하더라도 리성림이가 놈들에게 든든히 걸려들었으며 이번에 구원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것으로 생각되였다.

그래서 그로서는 필요이상이라고 할만큼 력량도 배치하고 이모저모로 타산을 하였지만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지금까지 미타한 소리를 하다가 준삼이와 함께 다시 광산사무실을 습격하게 된 4중대로 왔다.

《중대장동무, 필네동무를 꼭 데리고가야겠소?》

《련대장동무가 데리고가라고 했기때문에 그럴 계획으로 있는데요.》

박태진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 이게 혹시 금덩어리가 섞인 돌이 아닐가 하고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대답하였다.

《동무 생각에는 어떤가말이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신길남동무가 최병규동무를 따라서 아까 또 가보고 오기는 했지만 필네동무가 같이 가게 되면 길을 더 잘 알테니 밤길을 가기도 좋고 또 녀자이니까 앞에 내세우고 가면 적정을 알기도 쉬울것 같습니다.》

오중흡은 외면하였다. 들어보나마나한 소리다.

《중대장동무.》

한참 동안을 두었다가 이번에는 더 좀 신중한 어조로 불렀다.

《이번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모퉁이를 동무네가 지켜야 하오. 번개불처럼말이요.》

《알고있소다.》

박태진은 이제는 너무 많이 들은 소리라 심상하게 받아넘겼다.

《사실 나는 신길남동무도 일이 없고 그 동무네 소대에서 다 난다뛴다 하는 동무들만 모였으니 다른것은 걱정이 없는데···》

《제가 걱정스럽단말이지요?》

《그렇소. 바로 중대장동무가 걱정이요. 어떻소, 오늘밤은 좀 빨랑빨랑할수 있을것 같소?》

《해봐야지요. 뭐 되겠지오다.》

박태진은 여전히 돌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역시 심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좀 약을 올려서 화끈 달아오르게 만들고싶었지만 원래 사람됨됨이 속이 깊어서 통 겉으로 생각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중흡은 입맛을 다시며 움쭉 일어났다.

《그럼 우린 저쪽으로 또 가봅시다. 어떻게나 하고들 있는지···》

하고 오중흡은 준삼을 돌아보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지금쯤 주력은 떠나야 하지 않을가요.》

박태진이 비로소 허리를 일으키고 뒤따라서며 말했다.

《내 걱정은 마오. 포대와 성문에 대고 우리가 먼저 불을 걸테니 거기 경비놈들이 남문으로 쏠릴 때까지 동무들은 꼼짝하지 말고 엎뎌있어야 하오.》

《모기에 뜯길 생각을 하면··· 하여간 견뎌야지요.》

《사람두 참···》

오중흡은 어처구니없어 저도모르게 웃고말았다.

삼선봉기슭, 청지동으로 넘어가는 오솔길에서 동쪽으로 훨씬 치우쳐있는 원시림속이였다.

유격대원들은 숲속 여기저기에 구분대별로 흩어져서 사닥다리를 만들고있었다. 토성을 넘기 위한것이였다.

그중 구석진곳에 신길남소대의 10여명대원들이 박인섭을 둘러싸고 웅성거리고있었다.

《이게 지금 화약고란말이요. 자 동무, 여기 좀 서라구. 그러니까 이쯤 비켜있는것이 지금 그놈들이 쓰는 화약고란말이요. 새것하고 낡은것하고 헛기면 야단이요》

박인섭은 한 대원의 어깨를 끌어다 적당한 자리에 세우고 그자리에서 서너걸음 물러나 자기의 한쪽팔을 쳐들어보이였다. 지형을 설명하고있는것이다.

오중흡이와 김준삼은 걸음을 멈추었다. 좀 뒤에서 따라오던 박태진이만이 스스럼없이 대원들속으로 끼여들었다.

《그앞에 이쯤서부터 철조망을 쳐놓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두놈이 경비를 서고있단말이요. 자- 이 동무가 서있는곳이 그 보초놈의 위치요. 그러니까 길은 이렇게 나있지, 그앞을 통과할 때가 제일 문제거던.》

《가만.》

하고 신길남소대장이 인섭을 제지하며 나섰다.

《최동무 선곳이 보초놈 위치라면 이쪽으로 가는것이 더 좋지 않는가? 그쪽으로도 길이 나있던것 같던데···》

《길이야 있지요. 그러나 그쪽은 더 위험하우다. 거기에 요즘 노다지가 난다는 굴이 있어서 감독놈들이 개싸다니듯하는데 그 감독이라는것들이 다 특무들이고 태반이 무기를 가지고있소다.》

《그래? 그럼 하는수 없지, 설명을 계속하라구.》

신길남은 인차 물러서고 인섭이 설명을 계속하였다.

《윤원구동무네가 화약창고에 불을 달 때까지 소대장동무네는 이 모퉁이에 나가있어야 한단말이요. 모르기는 해도 화약창고가 튀는 소리가 굉장할텐데 귀마개랑 든든히 하는게 좋을거우다.》

《뭐 귀마개?》

모두 제귀들을 만져보며 웅성거린다.

《어떻소? 비슷하오?》

오중흡은 박태진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틀림없지요.》

《동무는 설명을 안들어도 되오? 지휘관이?》

《낮에 나하고 같이 가보고 같이 짰는데요.》

《그래? 그러니 신길남동무네가 광산사무실을 들이치자는건가?》

《그렇지요. 그 틈에 준삼동무네가 감방에 뛰여들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좀 작을뿐이지 화약창고던데요.》

오중흡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여 대꾸를 않고 습격조원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필네동무는 어디에 있소?》

《저기 있습니다. 뭐 옛동무를 만나서 지금 한창 담화중입니다.》

인섭이가 저쪽 컴컴한 관목숲을 고개짓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죽여 대답하였다.

《옛동무라니?》

《참 별일도 다 있지요. 우리 강정섭동무와 하칠소에서 한목재판에 있었다는군요.》

《그렇소?》

오중흡이도 놀라서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참 일이 묘하게 번져갑니다. 습격조원들을 선발해놓고 인사를 시키는데 서로 마주 손을 잡고 필네동무, 정섭동무하고 눈물을 찔끔찔끔···》

박인섭이 신파조로 엮어대자 신길남이가 옆구리를 툭 쳤다.

《에이 여보, 혁명동지간의 감격적인 상봉을 그렇게 우습게 말해서야 되오.》

하고 신길남은 오중흡을 향하여 우선우선해서 말하였다.

《일이 잘될것 같습니다. 모든것이 딱딱 맞아떨어지는것이 아주 제격입니다.》

《그래.》

오중흡은 김준삼과 마주보고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일이 괜찮게 될듯하다는 눈짓들이였다. 김준삼은 거기서 떨어졌다. 오중흡이도 화약고폭파때 대원들이 놀라거나 귀를 상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를 주고 떠나려다가 돌아섰다.

《중대장동무.》

박태진은 언제나 듣고있다는듯이 마주 쳐다보았다.

《그 강정섭동무가 어떻소?》

《그거야 련대장동무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만큼 데리고다니며 개별교양을 하고도 나한테 묻습니까?》

《나는 나고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말이요?》

오중흡은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다.

《나야 련대장동무와 똑같은 의견이지요. 이제 곧 기관총을 메울 생각입니다.》

《벌써?》

오중흡은 내심 기뻤으나 놀란체 물었다.

《벌써가 뭡니까? 괜찮게 쏩니다. 와룡호싸움때 한번 맡겼댔소다. 머지 않아 한다 하는 유격대원이 될거오다.》

《그렇소?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되오. 진짜배기 유격대원이 된다는것이 어디 헐한 일이요. 어디에 내다놓아도 우리 장군님의 전사로서 빠지는 구석이 없게 정찰도, 지하공작도, 학습도··· 척척 할뿐아니라 나가서는 바느질이나 음식솜씨까지 있는 그런 알짜 조선인민혁명군전사로 길러야 한단말이요. 사령관동지의 뜻을 실속있게 받들어야 하오.》

《나도 그래서 하는건데··· 무슨 의견이 있으면 말씀하시오다.》

박태진은 련대장이 암만해도 말하기 거북한 말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하고 넘겨짚었다.

오중흡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에없이 태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뗐다.

《동무가 다 잘 아는데 뭐 특별한 의견이 있겠소. 그 저 말이요, 오늘저녁에 그 동무를 한번 급한 모퉁이에 내세워보면 어떻겠는가 하는거요. 담보도 키워주고 앞으로 혼자서 무슨 임무나 수행할수 있게말이요.》

《알만하오다. 좀 생각해보겠소다.》

오중흡은 태진의 대답이 좀 뜨뜨미지근하게 들렸으나 사람됨됨이 본시 그러니 하는수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다.

관목숲쪽으로 에돌아가는데 젊은 남녀의 속삭임소리가 들리여왔다.

어쩐지 발길이 자꾸 그쪽으로 끌리면서 필네와 정섭이를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좀 싱겁다는 생각도 들어서 어쨌든 전투를 잘 결속지어놓고보리라 생각하였다.

《아니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 할것 아니야. 내가 한태혁동지를 얼마나 연구했는지 알아.》

《우리 오빠를 동무가 왜 연구를 해요?》

《사령관동지께서 나더러 한태혁이와 같은 명사수가 되라고 말씀하셨어. 그런데 동무가 한태혁동지의 누이동생이라니··· 참 기가 막혀서···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는격이 아닌가말이야.》

《내가 오빠의 누이동생이라는데는 뭐 어쨌어요?》

《뭐 어쨌다니? 그래 정 이럴내기야?》

《너무 떠들지 말아요. 누가 듣겠어요.》

《들으면 뭐 어쨌어?》

《아이 정말···》

입을 싸쥐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오중흡은 여태까지 불안스럽던 가슴속이 환히 트이고 초조감 대신 유연하고 다정한 생각이 가슴속에 가득히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신길남이의 말과 같이 모든 일이 잘되여나갈것이다. 사령관동지의 한품에서 만난 태혁의 누이동생과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강정섭의 상봉이야기는 구원된 리성림과 함께 전사들때문에 언제나 마음을 못놓으시는 사령관동지께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드릴것이다.

그날밤 자정이 훨씬 기울어서 금천동습격전투가 벌어졌다.

주력부대가 남문쪽으로 떠나고 이어 리성림을 구원하기 위한 습격조도 떠났다.

철조망이 저만치 바라보이는데서 그들은 다시 두패로 갈라져 김준삼이네는 낡은 화약창고쪽으로 에돌아가고 신길남이네는 좀 아래로 떨어져서 큰 화약창고 있는데로 다가갔다. 그들은 광산사무실을 습격하는것이 기본임무인만큼 화약고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해도 되였지만 매복해야 할곳이 바로 그 화약고앞인데다 거기에는 행길과의 사이에 가시철망이 늘여져있고 그 출입구옆에 두놈의 경비가 서있었다.

필네까지 합하여 열한명의 대원들이 소리없이 산비탈 오솔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웬일인지 선두에 선 필네가 자꾸 기침이 북받쳐 입을 틀어막으며 가빠하였다. 첫 전투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흥분과 초조감때문일것이다.

정섭이는 필네를 바투 따라가며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중대장이 여라문걸음 떨어져서 소풍이나 나온 사람처럼 흔들흔들 태평으로 따라온다.

(저쯤 돼야 유격대원같우한데···)

이런 생각을 하던 정섭이는 필네가 또 두손으로 입을 싸쥐고 갑자르는것을 보았다. 마음이 죄여들었다. 언젠가 회양동뒤산에서 련대장과 함께 정찰을 따라갔다가 소동을 피우던 생각이 났다. 그때로부터 벌써 아득한 세월이 흘러간듯하다. 인제는 혼자서 적의 포대를 까부시라고 해도 무섭지 않다. 한번은 중대장도 부사수로 조금만 더 치여나면 인차 기관총을 맡길듯이 귀띔하였다.

그러나저러나 필네가 정작 매복장소에 가서 기침이라도 터뜨린다면 야단이 아닌가. 정섭이는 다시한번 뒤를 흘깃 돌아보고 휘적휘적 필네곁으로 다가갔다.

《뭘 자꾸 그래?》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기침이 자꾸 나와요. 참자니까 더하지 않아요.》

필네는 입을 그냥 싸쥐고 짜증스럽게 속삭였다.

《마음이 든든하지 못해서 그래. 오빠 생각을 하라구. 겁날게 없단말이야. 저 혼자 가는것도 아닌데···》

정섭이는 중대장이 바투 따라올가봐 뒤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내가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해주고싶었으나 그 말만은 어쩐지 목덜미가 후끈하고 혀바닥이 굳어지면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필네는 그런 눈치를 챈듯 만만찮게 돌아보았다. 따귀라도 한대 맞은듯 볼편이 얼얼하다.

정섭이는 오솔길옆에서 쑥잎을 한줌 훑어서 내밀었다.

《정 견디기 어려우면 이걸 씹으라구. 매복할 때는 더 급할거야.》

필네는 어둠속에 정섭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말없이 쑥잎을 받아서 그중 몇잎을 입에 물었다.

정섭이는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한편 가슴에 그들먹이 들어차는 흥분을 느끼며 필네곁에서 떨어졌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잠시후 필네는 바위너설이 비죽이 내민 굽인돌이에 멎어섰다.

뒤따라 열명의 습격조원들이 그 량옆에 흩어져서 무릎을 꿇고앉았다. 광산사무실과 경비계가 바로 비탈아래 바라보였다. 광산사무실에서 행길을 가로질러 화약고에 이르는 출입문은 가시철망을 따라 더 좀 아래로 내려가야 있었다. 바로 그앞이 지형이나 시간으로 보아 가장 좋은 매복장소로 정해졌는데 그 어간에 보초가 서있는것이다.

필네는 손을 들어 으슴푸레 떠오르는 그림자를 가리켰다.

《한놈은 어디 있소?》

박태진은 별로 조심하는 빛도 없이 물었다.

《저 나무밑둥에 기대앉았어요. 조는 모양이예요.》

《그럼 교대교대 조는 모양인가?》

박태진은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주머니에서 사슬에 달린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사실 그는 주력부대의 공격과 폭파조의 불다는 시간 그리고 습격조의 행동개시시간을 중간에서 조절해야 할 매우 중대한 책임을 지고있었으나 겉보기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태평스러웠다.

《비슷하게 시간이 된것 같은데··· 그럼 슬렁슬렁 시작해볼가.》

중대장의 말이 떨어지자 신길남이 저쪽에서 허리를 솟구쳤다. 뒤따라 정섭이가 보총을 필네에게 내밀었다. 필네는 영문을 몰라 총을 받으면서 옆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어찌자는것인가?

《신동무가 저 잠든놈을 맡으라구. 선잠이 깬놈은 놀라서 소래기를 치기 잘하니까 아무래도 나살이나 먹은 소대장이 낫겠지. 대번에 목을 바싹 틀어낀 다음에 찔러야 해.》

중대장의 말은 원두막에 참외 따러 보내는것처럼 심상하다. 그러나 그것이 보초놈을 찍소리 한마디 못지르게 제끼라는 말임은 누구에게나 짐작이 갔다.

그러면서도 필네는 설마하고 하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신길남이와 함께 정섭이가 중대장에게 경례를 붙이더니 단도를 쑥 뽑아 입에 물고 바위너설을 기여 넘어간다. 필네는 저도모르는 사이 앗 소리를 지를번하였다.

처음에 7련대에서도 한다하는 싸움군만 열명을 골라냈다는 습격조를 만났을 때 그가운데 정섭이가 끼여있는것을 보고 어지간히 놀란 필네였다. 그렇게 보고싶어하다가 정작 만나니 가슴은 널뛰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보일수 없었던 그는 말이 동강난 틈에 동무가 어떻게 이런데 다 뽑히게 되였느냐고 물었었다. 정섭이는 전에 하던 버릇대로 내가 왜 이런데 못뽑힐 사람이냐고 우쭐해서 코날개를 벌름거렸다. 그러다가 이어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자기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셨다고 감격이 새로운 목소리로 말했었다. 필네가 보기에도 그는 벌써 의젓하고 당당한 유격대원이였다. 그러나 이런 책임이 중하고 아슬아슬한 임무를, 유명한 신길남소대장이 직접 맡아나선 그런 일을 정섭이가 감당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필네는 저도모르는 사이 바위너설에 한절반 몸을 솟구고 눈정기를 모았다. 옆에서도 모두 긴장된듯 숨소리가 가빠지는것이 알린다.

철조망 울타리옆에 바싹 붙어서 신길남소대장이 앞서나가고있다. 정섭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는가? 달이라도 좀 밝았으면··· 필네는 자기가 어망결에 소리라도 칠것만 같아 손에 움켜쥐고있던 쑥잎을 입에 물였다.

한참이나 지나서 (사실은 한순간이였는지 모른다.) 철조망과 마주서있는 나무덤불옆으로 웬 그림자가 언뜻 나타났는가싶더니 어느새 또 없어졌다. 그런데 그것은 벌써 가시철망을 둘러친 출입문가였다. 바로 코앞에 보초놈이 서성거리고있다.

너무나 긴장되여 저도모르는 사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 쌉쌀한 쑥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순간 어둠속에서 무엇인가 번쩍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어 씹어삼키는듯한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큰 바위밑에라도 깔린듯한 비명 그리고 무던히도 오래 버드럭거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필네는 그 모든것을 가위눌린 사람처럼 모지름을 쓰며 온몸으로 느끼였을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표상도 포착하지 못하였다. 다만 중대장이 《가기오.》 하고 일어났을 때에야 제정신을 차렸다. 과연 모든것이 끝이 났단말인가.

보초소앞을 지나니 송장은 이미 보이지 않고 신길남소대장과 정섭이는 벌써 매복장소에 나가 자리를 잡고있다가 중대장이 다가가자 무릎을 꿇고앉은채 보고를 하였다.

짙은 그늘을 드리운 오리나무밑에 두사람이 나란히 엎디였을 때 필네는 자기 몸이 화락하니 식은땀에 젖은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니 정섭이는 도로 넘겨받은 총을 깐깐히 살피고있다.

무엇인가 말을 하고싶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여있다. 얼마나 듬직해졌는가. 그렇게 큰일을 눈깜빡할 사이에 해제끼고도 덤덤해앉아 총만 매만지고있는 그를 곁눈질해보느라니 다감한 생각이 가슴을 채워 숨이 가빴다.

총을 구석구석 살펴본 정섭이는 필네를 돌아보고 히죽이 웃더니 경비계사무실쪽으로 총구를 면바로 내대고 편안히 엎드렸다. 넓은 이마가 현관 외등의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땀이 나는 모양이다. 멀리서 보는 사람도 이렇게 땀에 떴는데 오죽하랴. 필네는 품속깊이 감추어둔 명주수건을 더듬어찾았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촉감에 놀란 정섭이는 흠칫 몸을 뒤채더니 수건끝을 잡아챘다. 다른 한끝이 필네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필네는 모른척하고 앞만 살폈다. 정섭이는 목소리를 죽이고 속삭였다.

《이건 뭐야?》

《···》

《명주수건 아니야?》

《회양동에다 버리고 간거. 땀이나 훔치지요.》

필네는 속삭임소리속에도 원망을 풍겨보이려고 애쓴다.

《뭐 회양동에?》

정섭이는 한옆으로 몸을 일으킨채 바로 회양동을 바라보듯 먼 곳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다.

《거기 갔댔어?》

필네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순간 《쉿!》 하고 신길남소대장의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두사람은 장난을 하다가 들킨 아이들처럼 키득거리며 풀덤불속에 머리가 묻힐만큼 깊숙이 엎드렸다. 그러나 다음순간 정섭이는 또 지꿎게 고개를 살짝 쳐들고 돌아보았다.

《거기는 왜?··· 이 수건은 누가?》

필네는 어둠속에 눈을 흘기면서도 한마디만 대답하려고 하였다. 《바지저고리》라는 말을 듣고 인차 알아맞혔다는것을··· 그러나 벌써 그 누구도 입을 벌릴 짬이 없었다. 신성한 전투의 메아리가 금천동 밤하늘을 뒤흔들었던것이다···

주력부대가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토성을 포위한 유격대의 주력은 남문포대를 향하여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적들도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포대의 기관총이 어찌나 세차게 불을 뿜어대는지 사닥다리를 타고 성벽우에 올라섰던 동무들이 몇사람이나 굴러떨어졌다.

《수류탄을 뿌려라!》

오중흡은 권총을 높이 쳐들고 이렇게 웨치며 사닥다리 하나를 제가 디디고 올라섰다.

《련대장동지, 위험합니다.》

밑에서 누가 웨쳤다. 그러나 오중흡은 들은척도 않고 어느새 토담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 순간 예광탄이 새빨간 탄도를 그으며 그의 정수리를 누비고 지나갔다. 모자가 락엽처럼 날아오르더니 맴을 돌며 떨어졌다.

《이건 뭐야.》

오중흡은 이마전이 화끈하는바람에 손을 가져다대니 무엇인가 따끈한것이 살가죽에 박혀있다. 끄집어내여 살펴보니 탄알이다. 어떤놈이 쏘았는지 탄알이 습기를 받았거나 총신에 녹이 쓸었던 모양이다.

《넨장, 왜놈의 탄알로는 내 이마를 뚫지 못해. 자 수류탄을 좀 올려보내라구.》

오중흡은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이고는 옆구리에 차고있던 수류탄을 어느새 다 집어던져버리고 아래로 손을 내밀었다.

토담안을 내려다보니 수많은 적들이 모여들어 바글바글 끊는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놈들이 저마다 웨쳐대는데 어찌나 소란을 피워대는지 이쪽에서도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수류탄이건 기관총이건 보총이건 마구 불을 뿜는다. 적들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탄알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포대를 갈겨라!》

어느새 토담우에는 여러 사람이 올라섰다. 기관총화력이 성문포대에 집중되자 방금까지 발악하던 포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척이 없어졌다. 이때라고 생각한 오중흡은 수리개마냥 성안을 향하여 높다란 토담우에서 몸을 날렸다.

《돌격앞으로!》

남문으로 적들이 집중되는 틈에 측면에서 유격대원들의 함성이 터져올랐다. 수비대병영에 불이 달렸다. 북문쪽에서 적들의 한개 서렬이 총질을 하며 달려온다.

(이때다! 태진이, 제발 꾸물대지 말고···)

오중흡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페갱속에 대기하고있는 윤원구에게 폭파신호를 보내는것은 박태진이가 하게 되여있었다.

《일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와- 하고 유격대원들의 돌격함성이 화답하였다. 이때 오중흡의 타는 마음을 시원히도 틔워주는 거대한 폭발이 터져올랐다.

금천동거리가 그대로 하늘에 떴다가 무너져앉는것 같았다.

오중흡은 미리 약속한대로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서 흔들흔들하던 발밑의 땅이 바로 선 다음에도 귀속은 그냥 메인것처럼 멍멍하였다.

(그 동무들이 진짜 귀마개를 했는지 모르겠다.)

오중흡은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거리중심으로 걸어갔다. 전투는 이미 한물이 져서 유격대원들은 골목골목으로 누벼다니며 수색전을 벌리고있었다.

이보다 좀 앞서 김준삼이와 박인섭, 최병규는 리성림이가 갇혀있는 감방턱밑에 바싹 접근해있었다.

전투가 남문포대쪽에서 본격적으로 타번질 때까지도 화약고와 감방 그리고 광산사무실앞에 우글거리는 경비인원들은 갈팡질팡할뿐 결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럴즈음 화약고가 터지자 박태진이 인솔한 습격조가 기관총과 보총의 일제사격으로 우물거리던놈들을 휩쓸어버리고 사무실과 경비계를 타고앉았다.

그런데 사무실현관문으로 한놈이 비칠거리며 달려나오더니 경비계쪽을 향하여 감방을 지키라고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시마끼였다. 경비계에서 몇놈이 달려나오고 이어 옷을 주어입으며 비틀비틀하는놈들이 또 한패거리 쓸어나왔다. 바깥에 있다가 폭파소리에 어리친놈들도 차츰 정신을 차리고 총을 찾아들었다.

광산사무실과 그 앞마당에서 치렬한 불질이 벌어졌다. 화약고가 타오르고 포대에 불이 달려서 거리와 산비탈은 환하였다.

신길남이가 총창을 번쩍거리며 달려가고 강정섭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침착하게 묘준사격을 하고있다. 현관벽에 붙어서서 권총을 갈기는 필네의 모습도 똑똑히 보인다. 먼눈에도 귀가 벌쭉한 당나귀같이 생긴놈이 악을 쓰며 필네앞까지 달려오다가 처녀의 권총에 정통을 맞고 벌렁 나가번져졌다.

《이젠 우리 차례요.》

김준삼은 권총을 뽑아 안전장치를 푼 다음 박인섭이와 최병규에게 고개짓을 하였다.

영구화점처럼 견고하게 만들어놓은 옛화약고는 크지 않은 대신 돌덩이처럼 단단해보였다. 주먹만한 자물쇠가 채워져있을뿐 그앞은 텅 비여있었다. 최병규가 미리 준비해가지고간 쇠메로 자물쇠를 짓조기는데 무엇인가 발끝에 뭉클하고 밟혔다.

《이게 뭐야?》

최병규가 놀라서 한걸음 물러섰다.

《이 동무는 유격대원이라는게 시체만 보면 질색하누만.》

하고 박인섭이가 폭풍에 나가넘어진 감방보초놈의 시체를 한옆으로 끌어내다 치워버렸다.

《에, 기분나쁘게시리···》

최병규는 화김에 힘껏 메를 휘둘러 내리쳤다. 그러자 자물쇠가 절컥하고 떨어져나갔다.

인섭이를 문가에 세워놓고 준삼이와 최병규가 뛰여드니 성림이는 캄캄한 콩크리트바닥에 거적 한장을 깔고 쓰러져있었다. 처음에는 뭐가뭔지 분간할수가 없어 성냥을 켜들어보고서야 사람의 형상을 알아본 두사람은 한꺼번에 성림이를 그러안았다.

《성림동무!》

《여보 성림동무!》

그러나 신음소리만 가까스로 새여나올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제꺽 업소.》

준삼은 언제 증상을 확인해볼 사이도 없이 이렇게 소리치고 먼저 문쪽으로 달려나갔다.

인섭이가 앞에 서고 준삼이가 뒤에 서서 우선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비탈에 섰다. 그때까지도 광산사무실앞에서는 접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모두 얼굴을 로출시키는것이 재미없을듯하여 그냥 비탈길을 타고 거리를 벗어나기로 하였다.

이때 불의에 총알이 발부리에 와서 흩어졌다. 돌아보니 어디서 빠져나왔는지 대여섯놈의 광산경비놈들이 비탈을 기여올라온다. 인섭이는 연방 권총을 내쏘며 그리로 달려갔다.

《병규동무, 달리오!》

준삼은 앞뒤를 살피며 소리쳤다. 거리며 화약고에 타오르는 불길때문에 온몸이 홧홧 달아난다.

뒤쪽에서 총알이 쌩- 하고 날아왔다.

준삼은 제꺽 나무뒤에 몸을 숨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룽어룽하는 불빛에 나무그림자들이 춤을 추듯하는데 한 관목덤불뒤에서 웬놈이 권총을 쳐들고있다. 시마끼였다. 그놈의 총구는 면바로 성림을 업고 뛰는 최병규쪽을 겨누고있었다.

《엎드렷!》

하고 소리치며 준삼은 몸을 날려 그 탄도앞에 나섰다. 어깨가 띠끔한다. 그는 잠시 비칠거리다가 쓰러졌다.

최병규는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그냥 숲속으로 달려갔다.

시마끼가 권총을 든채로 달려오더니 준삼의 머리를 움켜쥐고 불빛쪽으로 쳐들었다.

《흥, 흥아목재상?》

그는 코웃음치듯 중얼거리더니 무릎을 꿇고 최병규를 겨누었다.

이때 죽은듯이 쓰러져있던 김준삼의 다리가 시마끼의 허리를 후려쳤다. 시마끼는 공중거리로 한바퀴를 돈 다음 땅바닥에 태질을 당했다. 준삼은 비호처럼 몸을 날려 그놈의 몸을 덮쳐누르고 목을 죄였다.

《네놈이 내가 유도3단이라는것을 믿지 않았지? 어디 좀 겪어봐라.》

시마끼는 얼마를 못가서 끅- 하고 숨거두는 소리를 하더니 시래기처럼 늘어져버렸다.

《아니 어떻게 된거오다?》

인섭이가 옆에서 달려나오며 다급하게 물었다.

《별거 아니요, 어서 앞을 엄호하시오.》

하고 준삼은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인섭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앞으로 달려갔다.

준삼은 척척해오는 왼쪽어깨를 권총 쥔 손으로 눌러잡으며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총소리는 멎고 인민들이 달려나온다. 벌써 거리복판에서는 유격대원들이 삐라를 뿌리고있었다.

《···속옷들에는 피가 배여있었습니다. 그런 옷들을 빨 때마다 저는 남몰래 울었습니다. 그렇게 피멍이 들도록 일을 해도 여러분들은 일년내내 이밥 한끼 배불리 먹지 못하고 귀여운 자식들에게 글공부 하나 시키지 못하지 않습니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선사람들이 이렇게 못사는 까닭이 바로 왜놈들때문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살길은 우리가 열어야 합니다.》

쨍쨍한 녀대원의 목소리가 울리여온다. 필네의 목소리였다.

준삼은 저도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군중은 얼마나 흥분했는지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목을 그러안으며 설레인다.

《필네다!》

《김장로밥집의 식모다.》

《야- 우리네 광부들속에서도 저런 혁명군이 났구나.》

이런 웨침, 속삭임소리속에 눈물을 흘리며 장군님의 은덕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들리여온다.

《우리 장군님께서 천덕꾸러기, 부엌데기를 저렇게 어엿하게 만들어주셨구만. 세상에 김일성장군님 같은분이 어데 또 계실가···》

필네도 흥분하여 삼선봉마루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여러분은 저 삼선봉의 돌을 저렇게 맨주먹으로 뜯어내다싶이 하여 금을 캤지만 여기서 누가 금을 보기나 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마소보다도 더 심하게 일을 해주었지만 마소보다도 더 천대를 받았습니다. 매를 맞고 욕을 먹고··· 나이 많은분들이 감독놈들한테 뺨을 얻어맞고 수염을 내둘리여도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야 살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미 원고에도 없는 말이였고 둘이 토론한 내용도 아니였다. 필네의 생활자체가 빚어낸 말이였다.

《더는 그렇게 살수 없다.》

《필네의 말이 옳다!》

《우리도 유격대에 참군하자!》

이런 웨침소리가 맞받아 울려왔다.

이때 가까운 산비탈 오솔길로 웬 아낙네가 아이를 지청구하며 급히 달려내려온다.

《에그, 빨리 좀 걸으라는데, 필네아지미가 보고싶지도 않니. 봐라! 필네아지미가 연설을 한다. 어서 좀 걸어라!》

윤원구의 안해였다. 등에 업힌 진철이는 영문도 모르고 좋아서 어-어- 소리를 치는데 어머니에게 손목을 끌리여 오솔길을 달려오던 진호가 필네의 목소리를 가려듣고 《아지미-》하고 소리쳤다.

얼마후 바다처럼 뒤설레이는 군중들사이를 누벼나간 진호 어머니는 마침내 필네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아이구, 어쩌면 그사이 연설도 그렇게 잘하우? 어서 또 하랑이, 속이 시원하게, 가슴이 쩡 열리게 또 한마디 하랑이.》

필네는 군중의 면전에서 진호를 안아올렸다. 데롱데롱 매달리는 진호를 부둥켜안고 군중을 바라보는 필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여 말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살길도, 이 진호같은 귀여운 조선의 아이들의 앞날도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심으로써만 환히 열려져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모두 정성을 다하여 장군님의 만수를 빕시다. 조선민족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장군님 만세!》

만세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준삼은 주먹으로 축축히 젖어드는 눈굽을 뻑 훔치고 앞서간 일행을 따라잡기 위하여 산등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