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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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성림은 그 옛날 화약고자리에 갇혀있었다. 일반적으로 광산의 화약고가 견고한데다 습기도 없고 외따로 떨어져있어서 시마끼로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김준삼이 삼선봉페갱속에 들어박혀 7련대가 올 때까지 거리와 광산의 형편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따져보니 전투자체도 문제지만 리성림을 구원하는 일이 조련하지 않을것 같았다.

그 화약고는 삼선봉에 만주광업의 첫 광굴이 뚫리던 당시에 지었던것으로서 광산규모가 커지면서 이제는 너무 작기때문에 몇해전에 그옆에 새로 큼직한 화약고를 짓고 옮겼는데 그것을 시마끼가 비밀감방으로 리용하면서부터 경비가 전보다 더 강해졌다. 원래 화약고경비는 철저히 하는것이기때문에 바로 옆에 적지 않은 경비인원이 주야로 눈을 밝히고있으니 이중으로 경비를 돌파해야 한다는 문제가 나선다. 물론 7련대가 전투를 해서 적의 기본무력은 제압하겠지만 그 견고한 화약고앞에서 전투를 벌리는 사이면 시마끼는 열번도 더 성림이를 죽일수 있을것이다.

윤원구의 보고에 의하면 시마끼는 며칠째 화룡에 들어가지도 않고 광산경비계에 붙박혀있다고 한다. 어제 현성에서 의사가 점심경에 왔다가 해질무렵에 돌아갔다. 그것은 리성림이가 아직 살아있다는것과 동시에 거의 빈사지경에 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준삼은 속이 바질바질 탔다.

그는 언젠가 성림이가 금천동지구에 조직을 내오기 위한 모임을 조직하였던 바로 그 페갱의 통기갱속에 들어박혀있었다.

한가지 유리한 점은 이 페갱의 어느 한 편도막장이 바로 그 화약고밑에 거의 다 들어가있다는 점이였다.

광산조직에서는 자기네의 조직원이였던 성림의 구출문제에 대해 적극적인데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그처럼 심려하신다는 말을 전해듣자 발벗고나섰다.

광산핵심들과 구체적인 문제를 협의했을 때 윤원구는 심중한 생각끝에 화약고를 날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그 의견은 좀 뜻밖이여서 처음에는 다소 론의들이 구구하였으나 전투가 한창 진행될 때 갑자기 화약고가 터져오르면 적들은 말할것 없고 금천동일판의 사람들이 모두 정신이 얼떨떨해질것이다. 그럴 때 바로 코앞에 있는 광산사무실을 들이치면 살아남은 경비놈들이 내뛰든가 저항을 하더라도 그쪽으로 쏠릴것이 틀림없다. 그 틈에 낡은 화약고에서 성림이를 업어내면 되지 않겠는가. 바로 옆에서 화약고가 터지면 바깥에 있는 경비놈들은 죽거나 얼이 빠질것이고 견고한 화약고안에 갇혀있는 성림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을것이다. 이러한 윤원구의 침착한 설명을 듣자 모두 그럴듯하다고 수긍해나섰다.

만주광업의 김성필이가 화약고폭파에 필요한 폭약과 신관, 도화선따위는 일체 자기네 조직에서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춘길이는 자기가 오랜 선산 몇사람을 데리고 한 이틀 수굴을 하면 문제없이 화약고 바로 밑창까지 뚫어낼수 있다고 장담해나섰다.

《까짓거, 그놈들의 화약을 몇t씩 날려보내는것만 해도 얼마나 속이 시원하오다. 그게 한꺼번에 튀는 날이면 그놈들 몽땅 죽어 자빠지지 않으면 얼이라도 쑥 빠질거우다. 그렇게 되면 전투하기도 퍽 쉬울거우다.》

춘길이의 말은 시원시원해서 준삼이에게도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7련대가 도착하기전에 모든 준비를 다 끝내야 한다.

준삼은 그날부터 가장 로련한 선산들만 선발한 굴진조에 섞여 정질을 하고 버럭을 마대에 넣어 물속으로 끌어내기도 하면서 정찰과 습격전투의 계획을 무르익혀나갔다.

그 편도가 화약고 바로 밑창까지 뻗어나간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화약을 재워서 터뜨릴만한 지점까지 가자면 상당한 거리를 파들어가야 하였다. 남포 한방 못튀우고 땅땅 굳은 현무암층을 이틀동안에 몇사람이서 뚫어낸다는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였다. 게다가 여기에 동원된 광산핵심들은 누구나 밤대거리든 낮대거리든 일을 마치고 가족의 눈마저 속이며 이 굴속으로 들어와서 돌짬에 들어엎디여 가까스로 몸이나 빠질만한 굴을 뚫어야 하였다. 상기란놈은 준삼이가 오는 날 밤으로 처단해서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어느 페갱의 침수된 편도에 집어던져버렸다. 그러나 아직 밀정이 어디에 박혀있는지 모르니 모든 일은 극도로 은밀히 해야 하였다.

갱내로동이라는것을 해보지 못한 준삼은 몸을 달팽이처럼 가드라뜨리고 석수바닥에 엎디여 메질, 곡괭이질을 해야 하는 일이 대단한 숙련을 요구한다는것을 몇참이 못가서 깨달았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고 그이의 웅대한 전략적구상을 실현하며 혁명전우를 구원하는 이 중요한 일에서 물러설수 없었다. 윤원구와 춘길이가 밀어내다싶이 말렸지만 어느새 물집이 잡힌 손바닥이 해여져서 벌건 속살이 드러나고 게다가 자기의 익숙치 못한 일솜씨로 하여 굴을 뚫는 일자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앉았다.

물러나가지고도 가만있을수 없었다. 그는 떨어져나온 돌덩이들을 마대에 긁어담아가지고 든든한 바줄로 동인 다음 엇비듬히 엎디여 운반갱까지 끌어냈다. 순전히 남포를 놓기 위해서 뚫는 굴이라 꼬부리고앉기도 거북할만큼 좁았다. 그런 굴속에서 버럭더미를 끌어내자니 자루주둥이를 바줄로 묶어서 끌수밖에 없었다. 정 좁은데서는 바줄끝을 허리에 감고 기여나가야 하였다. 바닥은 석수가 흘러내려 엎드리거나 누우면 한절반 물에 잠겼다.

간데라를 한손으로 쳐들고 바줄을 든든히 움켜쥔 다음 천천히 버럭자루를 끌며 한걸음, 한걸음 물속을 기여나오니 사지가 부서져나가는것처럼 아파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준삼이를 괴롭히는것은 딴 문제였다. 땅속으로 굴을 뚫고들어가서 과연 화약고밑에 똑바로 가내겠는가 하는 걱정이 한시도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광부들은 장담한다. 통기갱이 화약고옆구리를 빠져나온만큼 편도가 갈라져나간 방향과 길이를 대중해서 뚫고들어가면 문제가 없다는것이였다. 관영 만주광업회사의 오랜 선산인 김성필의 형 김용필이는 워낙 그 편도를 굴진도중에 내던진것이 바로 그앞에 화약고가 일어서게 되였기때문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장담해나섰다.

그러나 땅속 물계에 어두운 준삼은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준삼이가 겨우 운반갱도까지 나와 허리를 일으키는데 저벅저벅 하고 발걸음을 옮겨놓는 물소리가 울리여왔다. 누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준삼은 얼른 간데라를 죽이고 편도벽에 바싹 붙어섰다. 발소리는 점점 큰 메아리를 일으키더니 저만치 구부러진 굴벽에 불빛이 어룽어룽한다. 필네가 련락을 가지고오는것일가? 혹은 7련대를 마중나간 최병규일것일가? 아니면 진호 어머니가 또 밥을 날라오는것일가?

어쨌든 우리 동무들일것이다. 굴아가리에는 무장을 가진 든든한 광부 두사람이 지키고있다. 굴아가리뿐아니라 지금 금천동 요소요소에는 광산의 조직핵심들이 박혀있지 않는데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는것을 보니 필네였다. 준삼이가 마음을 놓고 자기 간데라에 불을 붙이자 필네는 주춤하더니 곧 마음을 놓고 잰 걸음으로 달려왔다. 원래 어릴 때부터 광산에서 치여난 처녀라 물이 찬 굴속을 달리는것이 평지를 달리나 다름없었다.

《중대장동지, 또 의사가 왔어요.》

하고 필네는 버럭자루앞에 쪼그리고앉더니 다급하게 속삭였다.

《아직 있소?》

준삼은 심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은 있는것 같아요. 그러나 인력거를 세워둔것을 보면 곧 돌아갈 눈치예요. 무슨 일일가요?》

《고문에 상했겠지. 일이 없소. 성림동무가 고통은 겪겠지만 생명은 일없을거요. 그놈들도 성림동무를 기어이 살려서 비밀을 뽑아내자고 할테니까··· 걱정 마오.》

준삼은 간데라불빛 아래 떠오르는 잔뜩 수심이 낀 처녀의 얼굴을 침착하게 바라보며 위로를 하였으나 실상 그자신의 마음도 불안하였다. 그 랭혈동물같이 스산하고 집요하고 음흉한 시마끼란놈이 성림의 혁명적절개를 꺾어보려고 무슨짓인들 안할것인가. 그는 천천히 자루를 쳐들어 돌덩이를 물속에 쏟으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성림동무, 제발 견디여주오. 사령관동지께서 그처럼 심려하시는데 동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한 몸으로 어엿한 승리자가 되여 그이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오.)

필네는 준삼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가늠해보듯 자루속에서 한알한알 굴러떨어지는 돌덩이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참, 최병규동지한테서 련락이 왔어요. 7련대가 15리밖에 있는 밀림속까지 왔대요. 어두우면 삼선봉으로 안내해오겠대요.》

《그렇소? 그럼 다 됐군. 이젠 굴만 뚫리면 될판이요.》

준삼은 기쁨에 넘쳐 말했다. 7련대가 왔다는것이 든든하기도 하고 가슴답답한 속을 오중흡이에게 터놓고 의논도 하고싶었다.

《그래 필네동무는 준비가 다 됐소?》

《무슨 준비말이예요?》

필네는 갑자기 주눅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며 가느다랗게 되물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전투가 있은 다음 필네동무가 나서서 선동사업을 하는게 좋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소.》

필네는 쭈밋쭈밋하며 준삼의 눈치를 살피더니 꺼져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셨으니 생각은 그냥 하는데 전 정말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는지 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요. 제가 언제 사람들앞에 나서서 말이라고 해본줄 알아요. 이거 좀 봐주세요.》

하며 필네는 고개를 숙인채 품에서 차곡차곡 접힌 종이를 꺼냈다.

《허허허, 필네동무가 이런걸 보면 한태혁동무의 누이동생이라는것이 확실하구만. 이렇게 척 준비해놓고도 시치미를 따고있으니···》

준삼은 필네가 꺼내주는 종이장을 받으며 밝게 웃었다.

《그게 뭐 되기나 한줄 알아요.》

준삼은 웃으며 종이장을 무릎우에 펴놓고 간데라를 쳐들었다.

아이들 글씨같이 큼직큼직하게 박아쓴 글씨가 떠오른다. 정성을 다해서 썼기때문인지 국문을 겨우 깨쳤다는 필적으로서는 놀랄만큼 시원시원하고 알아보기도 좋았다. 그러나 내용은 최근 정치학습에서 배운 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것이 많아서 너무 일반적이고 생동성이 부족하였다. 다만 난생처음 써본다는 글이 이만큼 됐다는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잘 썼소.》

하고 준삼은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처음 써보는 글치고는 아주 잘 썼소. 그러나 내 생각에는 전투가 끝나면 필네동무가 잘 아는 사람들앞에 나서게 되겠는데 잘아는 사람끼리 하는 말로서는 좀 딱딱할것 같구만.》

《그러게말이예요. 저도 그래서 걱정이예요. 제가 갑자기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을 억압착취하는 최대의 원쑤입니다. 오늘 국제정세의 일반적특징은··· 하고 소리치면 이상하게 생각할것 같애요.》

필네는 비로소 수집음을 버리고 진지한 태도로 준삼이를 바라보았다.

《필네동무의 말이 옳소. 그러니까 이렇게 연설투로 하지 말고 가령 나는 필네입니다. 김장로밥집에서 부엌데기노릇을 하던 한필네입니다. 여러분, 그사이 얼마나 고생스럽게들 살아가십니까, 이런 투로 시작하면 어떻겠소?》

《아니, 그렇게 해도 일없어요?》

《일없지 않구, 선동사업이란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고 사령관동지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소.》

두사람이 필네의 선동연설내용을 가지고 한참 열을 올려 토론하고있을 때 막장쪽에서 춘길이가 급히 다가왔다.

《공작원동지.》

《웬일이요?》

《뚫렸소다.》

춘길이는 얼굴에 튕긴 석수를 뻑 훔치며 숨가쁘게 말했다.

《뚫리다니?》

《정통으로 뚫렸단말이오다. 화약고밑창의 기초가 드러났소다.》

《그렇소?》

준삼은 너무나 기뻐 춘길을 으스러지게 그러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