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22

 

22

 

유상춘의 귀환은 태평촌집을 란가와 같이 만들었다. 처음에는 죽은것으로 치부한 로인이 돌아왔다고 집안에서뿐아니라 이웃동네들에서와 멀리 현성에서까지 유지인사들이 축하인사를 오고 밤낮으로 잔치를 벌렸다. 한적한 벽파당은 가무소리에 떠가는듯 하였고 온 집안에 기름내, 술내가 떠돌았다.

만사람이 다 죽은것으로 치부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온것을 보면 벽파선생이 과연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모두 입을 모아 그의 천복을 치하하였다. 그러던것이 경문이가 한잔 얼근해서 내 기어코 삼촌의 원쑤를 갚아 유씨문중의 치욕을 씻고야말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바람에 숙질간에 말다툼이 붙었다.

《가만히 있거라.》

유상춘은 피곤에 못이겨 침상으로 옮아가 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덤벼봐야 유격대를 어찌해보겠다는것이 마치 말똥구리가 수레바퀴를 굴리자는 수작과 같아서 도시 가망이 없는 일이다.》

그 자리에는 경찰동료들도 와있고 시마끼와 련결된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여느때같으면 유경문이도 충분히 리성을 발휘했겠지만 그자신 술이 좀 거나했는데다 여때까지 삼촌의 생명때문에 경찰을 풀어놓고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해 선무공작반이나 성경찰청의 지청구를 겪던 일을 생각하면 울컥하고 화가 치밀었다.

《아니 삼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삼촌께서 욕을 보신것이 원통해서 모두 이를 가는터에 삼촌당자가 이렇게 주견 없는 말을 망탕 해서야 되겠습니까. 삼촌이 암만 봐야 술이 좀 과한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 삼촌의 말을 곧이듣지 마시오. 나는 래일 어떻게 하나 삼촌을 토벌의 앞장에 내세우고 공산유격대를 휩쓸어버리겠습니다.》

《무엇이 어째, 이놈!》

유상춘은 앞에 놓인 걸상을 와르르 잡아끌며 소리쳤다.

《네가 나를 앞장에 내세워? 되지 못한놈! 네놈이 아재비를 팔아서 공을 세워보려는것이냐, 아니면 아재비 몸값으로 물건을 내보낸것이 분해서 그러느냐?》

유경문은 얼굴이 시꺼멓게 질리여 삼촌을 쏘아보았으나 감히 사람들앞에서 맞불질을 하지는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바람에 술자리는 다 망가지고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날 밤이 깊어서 유경문은 다시 벽파당으로 찾아갔다. 단둘이 마주앉아서 한시간나마 서로 목청을 돋구어 웨쳐대더니 어떻게 락착이 됐는지 유경문은 이튿날 함지박골방향으로 《토벌대》를 끌고 떠나버렸으며 유상춘은 머리를 동이고 벽파당에 몸져누워버렸다.

그는 자기가 《토벌대》의 길잡이를 서는것을 펄펄 뛰며 반대하였을뿐아니라 네놈도 살고싶거든 유격대앞에 죄를 짓지 않는것이 좋다고 아까보다 더 엄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흔히 김일성장군은 축지법을 쓴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일성장군의 비범한 모습의 한 측면이다.

김일성장군의 인품에 한번 접하면 모든 사람이 다 머리를 숙인다.

현경찰국장이라는놈이 제집에 쳐들어오는 유격대도 막지 못한 주제에 광활한 천지를 활개치며 다니는 유격대를 어찌해보겠다는것이 제 죽을 구멍에 다리를 들이미는것인줄 모르겠느냐-

삼촌의 이러한 말에 유경문도 더는 우길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현경찰국장으로서의 체면과 립장이 있는것만큼 무슨짓이든 하지 않을수 없었다.

서로 옥신각신한끝에 유상춘은 조카를 푸접없이 내몰아버렸다.

그때로부터 령감이 어찌나 괴벽을 부리며 온 집안사람들을 못살게 구는지 곁에 사람이 붙어있을수가 없었다.

수련이는 꼴이 꼴같지 않아서 곧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본시 아버지가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뵈온터라 유상춘이 유격대에 끌려가서 죽었다고 떠도는 소문을 듣더니 너도 겪은바 있지만 유격대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것을 알려주어 그 집안을 진정시키라고 해서 오기 싫은 걸음을 하는수없이 떠나온 수련이였다. 아버지는 김일성장군님과 하루밤 력사이야기를 나누고나서부터는 그이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어떤 악선전도 곧이듣지 않았다. 수련이는 그런 아버지를 보는것이 행복하였다. 자기가 유격대원을 만나 겪은 이야기에 대해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아버지가 이제는 자기보다 유격대에 대해 더 호의적으로 나오는것을 보았을 때 어쩐지 이 시대의 막을수 없는 흐름을 보는듯 하였다. 인심도 천심도 모두 김일성장군님께로 기울어졌다. 수련이는 그 흐름속에서 자기 재생의 길을 찾아보려고 모색하면서 태평촌에서 마지막 며칠간을 보내고있었다.

그럴판에 유경무가 나타나서 금천동으로 소풍삼아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끌었다. 유경무라는 인간은 평소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수전노에 불과하였지만 최근 그가 유격대에 끌려갔다온 다음부터는 어딘가 몸가짐에 비극적인 색조가 가미되여서 퍽 흥미를 끄는 존재로 되였다. 좋은 날씨에 집안에 박혀있을 재미도 없었다. 수련이는 쾌히 동의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해빛은 따가왔으나 물쿠는 날씨는 아니였다. 현성거리를 그대로 꿰질러나간 마차는 금천동쪽을 향해 속력을 높이였다. 서늘한 바람이 가슴깊이 스며들자 수련이의 마음도 밝아졌다.

《아저씨는 유격대에 가보고 제일 인상이 강한것이 무어예요? 그들이 소문과는 다르지요?》

《음, 소문과는 물론 다르지. 이를테면 그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이란말이다.》

《그런데 큰아저씨는 그렇게 야단이예요?》

《수련아.》

하고 유경무는 새삼스럽게 몸을 돌려앉더니 훈시조로 말하였다.

《유격대가 애국자라는것이 골치거리란말이다. 바로 그때문에 백성들이 그네들을 도와주고 그네들이 이기기를 바라는게 아니냐. 그냥 두어두면 종당에는 우리들을 쓸어버릴것이다.》

《쓸어버리다니요?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때문에 아저씨를 놓아주겠나요?》

수련이는 이상한 소리도 한다는듯이 유경무의 질둔하게 생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네가 언제면 그 속내를 알겠는지··· 사람은 그렇게 제속을 다 드러내고 살아서는 화를 스스로 끌어들이는 법이다. 너도 이제 곧 그 쓰거운 리치를 깨닫게 돼.》

유경무는 지그시 눈을 감고 더는 입을 벌리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 생각하는것을 그대로 말하며 살겠어요. 그것이 누구에게 불편을 준단말이예요.》

수련이가 도전적으로 이렇게 내쏘았으나 경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차는 어느덧 청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을 지나 갈림길을 꺾어들었다. 먼눈에도 퇴락한것이 알려지는 금천동의 옛성문이 시야에 안겨왔다.

금천동은 그 옛날 이 지방일대에 욱실거리던 토호출신의 군벌이 틀고앉았던 성으로서 만일 l0여년전에 유망한 금맥이 터져나와 삼선봉일대에 금광업자가 덮이지 않았더면 장마철의 개미굴처럼 무너져앉은지 오래 됐을 고장이였다. 금광경기를 타고 기울어져가던 옛집에 새로 단청이 오르고 새집이 들어섰으며 성문이 보수되였다.

북문뒤로는 만주광업주식회사의 출장소건물이 새로 들어앉고 그옆으로 개인업자들과 법인단체들의 광산사무소들이 잇닿아 늘어섰다.

항시 열어젖혀진채로 있는 북문은 옛거리와 새거리의 경계를 직관적으로 갈라주고있었다. 남문은 새로 보수하고 명색만 있던 포대우에 기관총을 걸어놓았다. 단속도 심하였다. 북문으로 나드는데는 광산종업원의 표식만 있으면 되지만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은 남문에서는 몸뒤짐을 당하기가 쉬웠다. 이것이 다 청지동에 유격대가 나타난 다음부터 겁을 집어먹고 시작한 놀음이였다. 만주광업회사자체로서도 경비와 순사인원을 부쩍 늘구었다. 거기에다 화룡수비대의 골간을 헤쳐 청지동과 금천동에 상주시키였다.

그래서 그런지 금천동거리는 살벌한 느낌을 자아냈다.

유경무네 화룡광업 현장사무실은 수련이도 가본적이 있었다. 삼신봉비탈에 있는 그 집 언저리는 만일 눈앞에 얼씬거리는 버럭더미, 고역에 시달리는 인부들, 제복을 입고 몽둥이를 들고 돌아치는 감독, 순시, 뽀얗게 먼지를 피워올리는 자동차, 밀차, 이따위 어수선한 얼룩들만 없다면 절경이라 할만한곳이였다.

마차는 그 절경앞을 본체도 안하고 지나쳐갔다.

수련이는 자기가 길을 잘못보았나 해서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컴컴한 토담성벽을 끼고 널장으로 씌운 림시건물들이 다닥다닥 늘어붙은 로동현장거리가 분명했다.

《어디로 가요?》

하고 물었으나 유경무는 못들은척하고 바깥만 살핀다.

이윽고 어느 단층 회색벽돌집앞에 마차가 멎었다.

그것은 만주광업출장소의 경비계였다. 제복을 입어서 경찰이나 다름없는 험상궂은 화상들이 열어젖힌 방안에 앉아있거나 서있었다. 떠들고 웨치는자들도 있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붙들려온 로동자들이 매를 맞기도 하고 꿇어앉아있기도 하였다.

《여기는 왜 왔어요?》

수련이는 어쩐지 자기의 정갈한 여름옷이 덞어질것만 같은 위구심이 들어 옷자락을 쳐들고 앞뒤를 겁먹은 눈매로 살피며 다시 물었으나 역시 대답은 없었다.

어느 구석진 방문앞에서 유경무는 멎었다. 여느 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일 구석진곳에 자리잡은 그 방은 그 언저리에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창고문처럼 꽁꽁 닫겨져있다는 점이였다. 빈방같이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경무가 바투 문가에 붙어서서 몇번 가볍게 손끝으로 두드리자 별안간 문이 안으로부터 벌컥 열리였다.

《들어오시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소매 짧은 바둑판무늬 샤쯔를 입은 감독같이 생긴 중년의 왜놈인데 목소리는 썩 구석쪽에서 울리여왔다.

수련이는 유경무에게 등을 떠밀리여 저도모르는 사이 방안에 들어섰다.

바닥과 천장과 벽을 모두 일매지게 양회로 뿌옇게 칠해버린 음산한 방이였다. 지글지글 열기가 내풍기였다. 그런 방 한가운데 든든하게 생긴 책상 하나가 놓여있는데 시마끼가 담배연기를 입가로 슬슬 흘리며 친절하게 그들을 맞이하였다.

《오시느라고 수고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여기까지 온것은 자기의 자유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마끼가 불러서 온것이였다. 수련이는 여태 모른척하고있었지만 형부를 통하여 이미 시마끼의 정체를 알고있었다.

《저를 문초하려고 불렀나요?》

수련이는 입술을 짓씹다가 야무지게 물었다.

《그렇소.》

시마끼는 태연하게 응수하더니 유경무에게 나가라고 턱질을 하였다.

유경무는 공손히 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 있더니 그 감독같이 생긴 사나이도 시마끼의 말없는 눈짓에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문초해보시지요.》

수련이는 제발로 시마끼의 책상앞으로 걸어가 그옆에 가로놓인 걸상에 그채로 앉았다.

《덤빌 필요는 없다. 이제 흥미있는것을 보여줄테다.》

시마끼의 말투는 대뜸 거칠어졌다. 수련이는 낯색이 파랗게 질렸다. 새삼스럽게 방안을 살펴보았다. 뿌연 양회천장, 뿌연 양회벽, 뿌연 양회바닥, 어디에도 그의 자존심과 아름다움과 순진성을 알아줄만한 구석은 없었다.

《흥.》

수련이는 쓸쓸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무엇에 대한 코웃음인지, 시마끼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선지 여태 소중히 간직해온 자기자신의 한푼싸지 않는 그 모든것들에 대해선지 그자신도 알수 없었다.

시마끼는 여전히 담배를 물고 피우는것이 아니라 슬슬 연기를 날리기만 하면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이 무덥고 안타까운 침묵속의 시간을 즐기고있다.

방문이 열렸다. 수련이는 그 어떤 해방감같은것을 느끼며 시마끼보다 먼저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온몸이 찢기고 터져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방금 결박된 두팔을 풀리우고 비틀거리며 방안에 들어섰다.

수련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성림이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자기가 경솔하게 일어섰다는것을 깨닫고 그 어떤 절망감을 느끼면서 천천히 주저앉았다.

《알아보겠는가?》

시마끼의 침울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왔다.

《글쎄, 잘은··· 언젠가 흥아목재상의 아들이라는 사람과 함께 가는것을 본적이 있을뿐이예요.》

그것은 거짓말이였다. 그는 그 숲에서의 상봉이후에는 성림이를 만난적이 없었다. 그러나 저도모르게 벌떡 일어난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갑자기 메꾸자니 이런 서툰 거짓말이라도 할수밖에 없었다.

《흥!》

시마끼는 코방귀를 내불었다.

《그 흥아목재상의 아들이 누구지?》

《광산 사러 다니는 사람이라면서요. 당신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수련이는 차츰 침착성을 회복하자 반발적으로 되물었다.

《흥아목재상이라··· 그렇다고 하자. 그날은 그래도 지금처럼 벌떡 일어나기까지 놀라지는 않았으니 일단 흥아목재상의 아들이라고 하잔말이다. 그런데 이자는 누구냐? 왜 그렇게 놀랐지?》

《피투성이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니까 놀랄밖에 있어요? 난 녀성이예요.》

《흥, 숲속에서 유격대를 만나도 꿈쩍 않는 네가 피투성이된 사람을 봐서 놀랐다고··· 이봐, 네가 떠벌이기 좋아하는 그 리성으로 돌아가는게 어때? 낯이 익지?》

《무엇이말이예요?》

《전에 숲에서 만난적이 있지?》

시마끼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 올빼미눈에 불을 켜달고 송곳처럼 날카롭게 찌르고들었다.

《전혀 본적이 없는데요.》

《이년!》

시마끼가 세멘바닥을 구르며 책상을 탕 쳤다

《누구를 속여보려고··· 세상 쓴맛을 좀 봐야 바른말을 하겠는가?》

시마끼는 한팔로 책상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수련이도 반사적으로 따라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여보시오, 시마끼선생.》

하고 리성림이가 방금까지 수련이가 앉아있던 자리에 천천히 걸터앉으며 말하였다.

《현경찰국장의 처제되는 아가씨에게 너무 무례하지 않소? 내가 흥아목재상의 대리인으로서 유경무씨네 집에 자주 드나들었고 화룡거리도 적잖게 돌아다닌만큼 이 아가씨가 나를 보았다는것이 그리 놀라울거야 없지 않소. 또 설사 내가 유격대원이라하더라도 이 화룡일판에 유격대가 쫙 깔려있는데 이 아가씨가 숲에서 유격대를 만났다니 그게 바로 나라고 한다면 이것은 너무도 유치한 삼단론법이 아니요? 여보시오, 시마끼선생, 당신이 그만하면 추리를 괜찮게 했는데 무엇때문에 이런 미덤성 없는 증인을 새삼스럽게 끌어들여서 사태를 복잡하게 하겠소? 그렇소, 당신이 생각한것처럼 나는 유격대공작원이요. 이 처녀가 그 어디서 나를 만났다든가 안만났다든가 하는것이 이제는 그닥 의의가 없지 않소? 설마 내가 공작과정에 저 녀자를 리용했다고 생각지는 않겠지요?》

시마끼는 당장 물어뜯을것처럼 리성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성림이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재털이옆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뽑아물고 불을 청하였다.

시마끼는 오만상을 찌프리고 담배불을 내주며 턱질을 하였다.

수련이더러 나가도 좋다는 소리다.

수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 하고싶었으나 입만 벌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아 홱 돌아서서 힘껏 문을 열어젖히고 복도에 나섰다.

우중충하고 뜨끈뜨끈하게 괴여오르는듯한 탁한 공기가 가득 들어찬 복도를 나오면서 보니 같은 복도가 아까보다 훨씬 더 좁고 우불구불 구부러져있는것 같이 생각되였다.

바깥은 이미 석양녘이였다. 그러나 해빛은 여전히 따가왔다.

마차가 아까 내렸던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것으로 보아 유경무는 아직 이 비인간적인 건물속에 남아있는듯하였으나 수련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길에 나섰다. 마부대에서 끄떡끄떡 졸던 마부가 알아보고 뭐라고 소리쳤고 또 얼마후에는 유경무의 목소리도 울려왔으나 수련이는 꼿꼿이 거리를 누벼나갔다.

난생처음으로 겪은 모욕과 자기환멸과 또 숲에서 만난적 있는 그 유격대원의 상처투성이몸에서 내풍기던 정신적위력은 수련이로 하여금 이 인간세상에 대한 가치관을 한순간에 뒤집어엎게 했다. 그는 그 어떤 인간앞에서도 허위적인 인사치레를 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통감하면서 당장 이 밤으로 그나마 자기 생활이 있는 목단강의 학교로 돌아가리라는 결심을 굳게 다졌다.

세상은 겉보기와 같이 어지럽고 추악하기만 한것이 아니다. 억눌리고 짓밟히는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의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우는 의로운 혁명가들이 있다는것, 그들에 의하여 이 어수선한 지구도 마침내 참다운 인간들을 위한 아름답고 깨끗한 유성으로 변하고말리라는 력사의 엄숙한 진실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알려주리라는 강력한 지향이 억세게 머리를 쳐드는것이였다.

수련이가 떠나간 다음 방안에는 잠시 어성버성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시마끼는 한참이나 성림의 웃는것 같기도 하고 방심한것 같기도 한 옆모습을 뜯어본 다음에야 이 방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따라서 이야기를 주동적으로 꺼내야 할 사람도 자기자신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래 모두 말하겠는가?》

《무엇을 말이요?》

성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의 입가에는 웃음의 흔적이 엷게 떠돌고있었다.

《몰라서 묻는가?》

시마끼는 으르릉거리며 노려보았다.

《유치하게 굴지 말라구.》

하고 리성림은 담배불을 비벼끄더니 정색하였다.

《당신은 그 녀자를 불러다대면 내가 립장이 좀 딱해지리라고 생각했는가?》

《증거가 명백하니까.》

시마끼는 성림의 말에 끌려들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한마디 하고말았다.

《그래서 내가 유격대원임을 시인한줄 아는가? 그렇게 해서는 정보사업을 하기가 힘들겠는걸. 내가 유격대원이라는것을 증명하는것이 그처럼 힘들어서야 당신들이 그렇게 알고싶어하는 유격대 사령부의 소재지는 도저히 알아내기 어렵겠는데···》

《우리는 얼마든지 알수 있다.》

《어떻게?》

《네놈의 입을 쥐여짜서 알아내겠단말이다.》

《여보 시마끼선생, 당신은 당신과 마주앉아있는것이 소매치기나 절도가 아니라 혁명가라는것을 모르겠는가. 전에도 말했지만 네놈이 그따위로 버릇없이 굴면 나는 여기서 우리 집 개와 상대하는 식으로 네놈을 대할것이다.》

《뭐야?》

시마끼는 왝- 소리를 치고 벌떡 일어났으나 성림이가 어처구니 없다는듯 아래우로 훑어보는바람에 여기가 질려 어물어물 주저앉고말았다.

그는 멋적은김에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슬쩍 중얼거렸다.

《정 되지 못하게 굴면 지하감방에 데리고가서 이야기하겠다.》

《지하감방이 좀 덥기는 하지만 산에서 사는 나에게는 제 신념을 꺾을만큼 고통스러운것도 아니다. 기왕 말이 난김에 말이지만 내 이 손바닥을 좀 보아라. 여기에는 송곳으로 맞구멍을 뚫은 자리가 있다. 내가 이 구멍에 연필대같은 8번 선을 꿰여가지고 끌려다닌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성림은 마치 옛말을 하듯 버럭더미밖에 보이지 않는 창밖을 내다보며 조용한 어조로 말하였다.

《나에게 신념이 두텁지 못할 때 그것은 참을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신념이 없고보니 진실이 없고 이 세상에 고귀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신념이 가슴깊이 자리잡고보면 손바닥에 구멍이 뚫리는것이 아니라 심장에 구멍이 뚫려도 두렵지를 않다. 당신은 이미 내 손톱, 발톱을 다 뽑아내고 장딴지의 뼈를 부스러뜨렸지만 아무것도 알아낸것이 없다. 자, 이제 내가 유격대원이라는것도 시인했으니 무엇을 더 알고싶은가? 그 청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에서 함께 가던 사람에 대해 알고싶다고 했지? 그 사람 역시 우리 공작원이다. 짐작컨대 유경무가 물자를 가지고가서 그 사람을 보고온듯한데 또 3자대면을 시켜보겠는가?》

《필요없다. 내가 알고싶은것은 쥐여짜면 결국 한가지, 김일성사령부의 소재지다. 그것만 대면 다른것은 크게 문제시할것이 없다.》

《이야기가 명백해서 좋다.》

하고 성림은 일어섰다.

《나는 엄격히 조직선에 련결된 공작원이다. 내 스스로는 그런 문제를 당신들에게 말할 권리가 없다.》

《그 조직선은 어데 있는가?》

《그것 역시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게 되여있다. 지하감방으로 가지 않겠는가?》

시마끼는 뿌연 방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제발로 고문을 겪으러 가겠다고 나서는 이런자에게 육체적고통을 가해서 얻어낼것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것이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입씨름을 해가지고는 더구나 승산이 없다는것을 느낀 그는 움쭉 일어났다.

《그래 가자.》

그리고는 바깥을 향하여 대기하고있는 졸개들을 불렀다.

성림이를 다시 묶어 졸개에게 먼저 끌고가라고 내보낸 다음 시마끼는 경비계장실에 잠간 들려 전화를 걸었다. 현성공작반에서는 혜산의 흥아목재상에 매복을 조직했으나 아직 수상한 인물이 접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현지경찰의 회보를 알려왔을뿐 별다른것이 없다고 하였다.

유경문의 《토벌대》는 예견한대로 함지박골어방에 헤매고있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다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