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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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가 준삼이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공작조에서는 심각한 론의가 벌어졌다. 박인섭은 무조건 자취를 감추어야 한다고 내우겼으며 최병규는 고개를 기웃거리면서도 역시 안전한 길을 택하는것이 옳다고 말하였다.

성림은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수련이가 준삼이를 알아보았다면 결국 자기도 같은 정도로 위험한 셈인데 그래서 두사람 다 몸을 피하게 된다면 공작은 누가 하겠는가 하는 태도였다.

《우리 공작조에서 절대로 안전하다고 볼 사람이야 없지요. 인섭동무는 뭐 그렇게 안전한가요?》

부드럽게 하는 말이였으나 성림의 립장은 확고하였다.

하기는 이제 겨우 발판을 만들어놓은 셈인데 그것을 온전히 한번 리용해보지도 않고 제김에 물러선다는것은 누가 생각하기에도 맹랑한 일이였다.

장시간의 론의끝에 결국 준삼이와 성림이가 언제나 서로 엄호할수 있고 막아줄수 있도록 련계를 취하면서 당분간 적어도 유경무가 마지막 물자를 들여보내는 기회에 시마끼가 꼭 무슨 음모를 꾸밀수 있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공작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정황판단과 처리는 그리 빗나간것 같지 않았다.

준삼은 때마침 신경에서 돌아온 시마끼를 만났으며 이어 가와사끼부대의 이동에 대한 정보를 손에 쥘수 있었다. 그때 성림은 바로 그곁에 붙어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촉급해서 공작조와 련계를 취할 여유는 없었다. 하는수없이 성림이가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물자를 실은 마차를 따라갔으며 거기서 장경수를 만났다. 며칠후 대전자와 대장강에서 가와사끼부대가 전멸되였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준삼은 회파람을 불며 현성거리를 활보하였다.

시마끼는 이와구니로부터도 혼마로부터도 지휘부안에 간첩이 있다고 추궁을 받았으나 실지 그런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와사끼 부대가 아니면 《련합토벌사령부》내에 있을것이라고 내우겼다. 어떤 의미에서 준삼의 안전은 시마끼가 담보하고있는 셈이였다.

어느날 오후였다.

준삼은 시마끼가 혼마나 이와구니의 추궁에 대해 반발은 하였지만 내심 딴 궁리를 할것이 틀림없다고 넘겨짚고 유경무가 유격대에 물자를 들여보내면서 련계를 가지고있는것만큼 그자들형제를 통해서 유격대에 비밀이 들어간다고 보는것이 과학적이며 따라서 그자들을 잡아족칠 필요가 있다는것을 미리 귀띔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동아물산》으로 갔다. 그런데 해빛 안드는 그 우중충한 뒤골목에 낯익은 마차 한대가 서있는것이 보여 몸을 감추었다.

자세히 보니 유경문의 마차였다.

시마끼가 유경문을 찾아갔다면 몰라도 유경문이가 《동아물산》에 나타났다는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시마끼가 벌써 자기가 생각한것과 같은 추리를 하고 잡아족칠 생각을 했는가? 준삼은 본능적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옆골목으로 빠져나가 몸을 숨기고 마차의 동태를 살폈다. 마차주인은 인차 나타났다. 그것은 유경문이가 아니라 그의 동생 유경무였다.

《아하》하고 준삼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저자가 정 급해맞아서 가장 졸렬한 수를 써보자는것이 아닌가? 눈을 처매고 원시림속을 빙빙 에둘러 돌아온놈을 통해서 사령부의 소재지를 알아내자고 들었을수는 없고 혹시 다음물자운반때 <토벌>력량을 들이밀어보자는것인가?》

어쨌든 이 사실은 직접 사령부의 안전과 관련되는만큼 인차 통보를 날려야 할것이다. 그는 그길로 금천동으로 달렸다. 공작조의 련락소는 그후 금천동 뒤산 어느 한 페갱속으로 옮겼던것이다.

한편 《동아물산》의 뒤방에서 유경무를 내보낸 시마끼는 잔뜩 이마살을 찌프리고 습기찬 창밖의 담벽을 뚫어지게 쏘아보고있었다. 겉보기는 매우 랑패한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실상 그는 오늘 예상치도 못한 굉장한 수확을 거둔것이였다.

사실 그가 광산주권때문에 흥정할 일이 있으니 동생을 좀 만났으면 좋겠다고 유경문에게 전화질을 할 때까지만 해도 별 자신이 없었다. 준삼이가 추측한대로 덮어놓고 유경무를 족치면 무슨 단서이든 잡히지 않겠는가 해서 초조한김에 억지공사를 벌렸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유경문은 자기네가 유격대에 물자를 대주고있는것을 여태 시마끼가 모르겠거니 하고 앉아있다가 그러한 전화를 받고 몹시 놀랐다. 그리고 자기로서는 특별히 감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물자운반을 하면서도 유격대사령부의 소재지를 탐지할 대책은 다 세우고있으며 이러한 일은 극비에 붙여야 하기때문에 알리지 않았을뿐이라고 저저이 변명하였다.

시마끼는 당신의 생각이나 계획이 그럴듯하다고 일단 추어주고나서 동생을 보내라고 말했다.

불과 몇시간후에 유경무가 사색이 되여 이 방에 나타났다. 그는 시마끼가 묻기도전에 다 알고있는 사실을 거북할만큼 장황하게 곱씹어가며 늘어놓더니 마감에 가서 시마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 한마디를 비쳤다.

《사령부라는데에 숱한 사람들이 찾아옵디다. 군대만이 아닙니다. 농민같은 사람도 있고 인부같은 사람도 있고 신사차림을 한 사람도 찾아옵디다. 물자를 넘겨주는데도 별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여기 우리 광산 있는데서 본 사람도 거기 하나 왔던데요···》

《뭐요? 그게 누구요?》

축음기에 태엽을 감아놓은 다음 소리판이 돌아가는대로 귀를 기울이고있는 음악애호가처럼 듣는데만 정신이 팔려있는듯하던 시마끼가 불시에 물었다.

그 목소리는 특별히 크지도 날카롭지도 않았지만 어느덧 혼자 지껄이는데 익숙해진 유경무는 시마끼가 별안간 이야기에 끼여드는바람에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시마끼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고 뚫어지도록 유경무의 눈만 들여다보았다. 유경무는 당황하여 제풀에 다시 지껄이기 시작하였다.

《누군지 이름은 알수 없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낯익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어디서 본 사람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습디다. 워낙 물자를 넘겨주는곳에 유격대가 나와있을것이 뻔하기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였지요. 그런데 전날 거리에 나왔다가 조인식씨를 만났습니다. 그 흥아목재상의 대리인이라는 청년말입니다. 그제야 물자를 넘겨줄 때 본 그 인부생각이 떠오르더란말입니다. 언젠가 금천동에서 리호철씨와 함께 마차를 타고 금천동고개를 넘어서다가 신통히 조인식씨와 같은 사람을 보았단말입니다. 우리는 그때 청지동으로 그 사람을 만나러 가던길이였지요. 헌데 그 사람은 인부란말입니다. 리호철씨는 암만해도 조인식이같다고 세우라는것을 나는 반주를 좀 한 뒤라 취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그냥 마차를 내몰았지요. 아니나다를가 청지동에 가니 그 조인식씨가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그제야 호철씨도 맹랑해서 그런지 다시는 그 말을 입밖에 내지 못하더군요. 헌데 내가 물자를 가지고가서 본 그 인부는 그날밤 조인식씨 비슷하게 생긴 로동자와 함께 가던 사람이더란말입니다. 그날밤 그옆에 또 한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나이든 령감같습디다···》

이건 참으로 묘한 이야기다.

시마끼는 더는 유경무의 횡설수설을 듣고싶지 않았으나 실컷 지껄이게 내버려두고 그때부터 생각에 잠긴것인데 그가 돌아간지 이슥한 지금토록 명확한 판단이 가지 않았다.

유경무라는 인간자체가 한번은 술에 취해보았다는것이요 또한번은 유격대에 포위된 상태에서 틀림없이 얼이 빠져보았다는 사람이니만큼 여러가지 의문과 억측이 떠올랐다. 문제는 당장 조인식을 체포하여 달아매면 간단히 의문이 풀릴수도 있다. 그러나 시마끼의 올빼미눈은 여전히 광명이 지나치게 눈에 부신듯 침침한 벽만 바라보며 천천히 끔뻑거렸다.

조인식의 체포는 곧 흥아목재상의 정체를 의심스럽게 하는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이와구니나 혼마로 하여금 자기 목을 어느때나 달아맬수 있게 하는 구실을 줄것이다. 무엇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것인가.

그럴것이 아니라 이 줄을 거꾸로 잘 리용하여 김일성사령부의 소재지를 밝힐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조인식이란자가 대체 진짜 공작원은 공작원인가? 그렇다면 응당 흥아목재상의 아들도 그렇다고 보아야 할것이 아닌가.

문득 그의 눈은 둔한 빛을 뿌렸다.

유경무가 숲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밤 태평촌 유가네 집에서 벌어졌던 장면이 떠올랐다. 수련이라는 녀자는 전혀 알 까닭이 없는 흥아목재상의 아들에 대해 분명 필요이상 강한 반응을 보이였다. 목재상의 아들 또한 충격을 받은듯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수련이가 유격대에 잡혔다가 놓여났다는것은 그 녀자가 제 입으로 꺼리낌없이 지껄이고 다니는 사실이다. 물론 수련이라는 녀자는 경박한 소부르죠아 인테리처녀에 불과하다. 그런 계집애가 류행을 따라 사회주의서적을 몇권 읽었다고 해서 대단할것은 없지만 유격대공작원과 련결이 되였다면 내쳐둘수 없는 문제이다.

현상액속에서 흐릿하던 형상들이 차츰 선명하게 인화지에 옮겨지듯 복잡한 사건들의 련관관계와 론리가 뚜렷하게 두드러져올랐다.

시마끼의 올빼미눈은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

(그렇다고 내가 공개적으로 체포하지는 않을것이다. 나자신이 보고자료를 걷어쥐기전에는 그 누구도 손을 못댄다.)

그는 전화로 금천동 만주광업출장소를 찾았다. 거기 태반의 감독들은 바로 그의 직속 끄나불들이며 광산에는 그의 개인관할하에 있는 비밀감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