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2

 

2

 

음침한 현성거리에 금광브로카들이 드나들면서 각종 새 업자들이 성안의 헌집들을 사가지고 제나름으로 개축을 하기 시작하더니 《행화촌》이요 《제일옥》이요 하는 내주점, 선술집, 려인숙, 목노집들이 주런이 추녀를 늘여세우게 되였다. 그중에서도 봄과 함께 제일 호경기를 만난것이 카페 《락천》이였다. 초저녁부터 번쩍거리기 시작하는 《락천》의 네온은 다 샐녘이 되여야 꺼졌다.

어디서 새 금맥이 터졌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고 누구네 광굴이 망했다고도 하였다. 그런 소문이 나돌 때마다 《락천》에는 그러루한 거간군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였다. 거간군들뿐아니라 《토벌대》의 장교들, 《신선대》의 포수들, 금점판의 덕대들, 지방토호들, 관리들 별의별것들이 다 쓸어들었다.

헐어빠진 전축이 쉭쉭거리며 눅거리 류행가들을 밤새도록 불러댔다. 이제는 하도 돌려서 레코드판에 홈이 패일 지경이 됐을 때 어디서 뜨내기패와 함께 흘러든 방랑가수가 나타났다. 그는 낮이면 화룡장거리에서 조고약을 팔고 저녁때면 유흥가에 나타나서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를 팔았다.

무더운 여름밤이였다. 먼 지평선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연분홍빛 창보를 들치고 주토빛으로 취한 볼들을 어루만졌지만 익숙지 못한 양주에 화끈 달아오른 얼굴에는 여전히 개기름과 땀얼룩이 범벅이 되여 번들거렸다.

 

타향살이 몇해런가

손꼽아 세여보니

 

방랑가수의 노래는 언제나 성취할길 없는 꿈을 호소하는 절망적인 비애를 담고있었다. 그래서 황금에 눈이 어두워 미친듯이 돌아치던 인간들도 흐리멍텅한 취기속에서 무엇인가 자기의 슬픔과 불행을 련상하고 제나름의 비애에 잠겨보는것이였다. 방금 몇푼의 구전을 위하여 돼지도 낯을 붉힐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던 화상들이 별안간에 술얼룩이 진 상우에 머리를 깊이 수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쥐여뜯었다.

《아, 고향.》

무엇에 얻어맞았는지 코마루가 넙적하게 주저앉아버런 덕대같이 생긴 사나이가 신음소리처럼 울부짖었다.

《이년아, 왜 달아나? 나는 사람같아뵈질 않아서 그래?》

협화복단추를 다 끌러놓은 중년의 사나이가 술쟁반을 들고나오는 녀급에게 시비를 걸었다.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바이올린의 반주가 최저음선상에서 목메여 흐느끼자 술보다도 독한 비애가 찌르르 하고 명치끝을 훑어내렸다.

《잘한다, 하나 더 부르게.》

유청백은 천근같이 무겁게 드리웠던 고개를 가까스로 쳐들며 개개 풀린 눈으로 가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술잔을 매만지며 마주앉은 경무에게 시비조로 말을 이었다.

《형님, 어떠시오? 흥, 수련이의 노래보다는 월등하지요? 넨장, 산따루찌야- 산따루찌야- 그게 다 뭐야. 이사람, 깽깽이를 하나 더 타게, 돈은 낸단말야. 내 돈을 혼자 다 내지 않으리.》

《좋아, 좋아.》

청백이가 돈을 꺼낸답시고 주머니에 손을 몇번이나 헛지르는것을 바라보며 경무는 비웃듯이 웨쳤다.

또다시 약간 쉰듯한 드레몰로가 울려나왔다.

가수는 활을 창처럼 허공에 뽑아들고 명상에 잠긴듯한 표정으로 또다시 구슬픈 노래를 뽑아넘겼다.

《어이, 풍각쟁이, 이리 좀 오라구.》

담배연기와 술냄새만 탁하게 떠도는 가운데 높이 떨리던 노래는 뚝 끊어지고 제식구령같은 소리가 사람들의 머리를 번쩍 쳐들게 했다.

《뭐야, 응? 뭐냐말이야?》

청백이가 게슴츠레한 눈을 지릅뜨자 견장도 없는 군복을 걸친 안경쟁이가 마주 쏘아보았다. 그러면서 가수의 팔죽지를 저쪽으로 끌었다.

《어떤놈이야?》

청백은 벌떡 일어나며 다짜고짜 소리쳤다.

《뭐 어떤놈? 이자식이 매라는것은 말만 들었지 맞아는 못보았군. 너 죽어보겠니?》

군복을 입은 사나이가 류행가수를 밀쳐던지고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왔다.

《어랍쇼, 이게 어디서 굴러먹던놈이야?》

청백이도 비틀거리며 걸상을 밀치고나섰다.

호철은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면서 중간에 나섰다.

《이거 왜들 이러시우. 재미없단말이요, 참으시오. 모두 점잖은 사람들이 체면없이 이러면 되겠소.》

《이건 또 어떤 자식이야?》

군복쟁이는 매끈하게 차려입은 호철을 보고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호철은 낮추 붙어 두사람사이를 뜯어말리느라고 손짓으로 연신 앉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청백의 귀전에 대고 속삭였다.

《<신선대>요, <신선대>.》

《뭐 <신선대>? <신선대>면 어쨌단말이야.》

유청백은 호기를 뽐내면서 웨쳤지만 벌써 적잖게 기가 꺾인 소리였다.

《이자식아, <신선대>가 뭔지 모르겠니? 너같은 자식을 혼내주는게 <신선대>다.》

군복쟁이 《신선대》의 망나니는 호철을 끌어다 밀치고 청백의 어깨죽지를 틀어잡았다. 이러한 때 《락천》문앞에 유경문의 마차가 들이닿았다.

경문이가 정복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그래도 현경찰국장이 나왔다고 어지간한 축들은 가볍게 허리를 일으켜 경의를 표했고 수비대의 장교들은 못본체 외면이라도 하였다. 그러나 《신선대》의 주정뱅이는 현경찰국장이 왔다는것을 알자 일부러 더 갈개기 시작하였다.

주정뱅이가 유청백이를 잡아끌고 통로로 나서자 청백이는 손을 탁 뿌리쳤다.

《이자식, 이리 나와!》

군복쟁이는 바싹 청백이에게 다가붙으며 소리쳤다.

《너 이자식, 유경문의 동생이라지? 현경찰국장이 네 형이라고 카페에 와서 깽깽이까지 독차지할셈이야?》

《어, 이게 무슨 소란들인가?》

유경문은 틀스럽게 한마디 호령을 하였다.

《옳지, 호랑이 제소리하면 온다더니 바로 경찰국장나으리로군. 어디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볼가요. 나요, 내가 소란을 피웠소. 어쩔테야!》

주정뱅이는 옆의 술상에서 잡히는대로 술병모가지를 틀어귀고 당상 들이칠것처럼 유경문이앞으로 다가갔다.

《저 저런 고약한···》

유경문은 마주오는 주정뱅이를 어떻게 잡도리할수가 없으니 하는수없이 말을 더듬으며 뒤로 쫓기였다.

온 카페안이 수라장이 되였다. 사복입은 사람들은 겁에 질려있고 수비대장교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히야히야 하며 원숭이소리를 질러댔다.

유경문이가 봉변을 당해서보다 술자리를 소란하게 만드는 이 개고기를 잡아꺾고싶은 사람들은 상대가 《신선대》라는바람에 감히 아무도 손을 못대였다.

《여보시오, 선생.》

통로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손을 뻗쳐 옆을 지나가는 주정뱅이의 술병 쥔 팔목을 틀어쥐였다.

《이거 어디 소란해서 견디겠소. 술동무가 없으면 나하고 술이나 마십시다그려.》

보매 신사복을 차려입은 그 손님은 후리후리한 몸매에 별로 힘도 쓸것 같아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했는지 주정뱅이가 비틀하더니 바로 그 손님의 맞은편자리에 구겨박히다싶이 털썩 주저앉았다.

《여름밤이란 길지도 않은데 이렇게 헛되이 보내겠소? 자, 술이나 한잔 드오.》

《너, 너, 이자식 무슨 새끼야?》

주정뱅이는 불시에 눈알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벌떡 일어나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말버릇이 나쁘군, 술을 권하는데 고작 인사가 그게야.》

젊은 손님은 길게 가로찢어진 서늘한 눈으로 조용히 올려다보더니 목을 움켜쥐러 오는 상대의 손을 슬그머니 틀어잡았다. 그리고는 앉은채 담배를 두어모금 빨더니

《정신을 못차리는데 바람이나 좀 쏘이는게 어떤가?》 하고 주정뱅이를 끌고 슬슬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아, 아, 아···》

팔목을 어떻게 비틀어잡았는지 주정뱅이는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끄는대로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깽깽이소리나 실컷 듣게.》

청년은 문전 멀리까지 주정뱅이를 끌고가서 으름장을 두어마디 놓고는 두손을 탁탁 털며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주정뱅이는 얼이 빠진것처럼 어둠속에 멍청하니 서있더니 손목을 어루만지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실로 눈깜빡할 사이의 일이였다. 그 한순간에 자리마다 가득가득 들어앉았던 술군들과 주인, 녀급들 모두가 눈이 둥그래졌다. 오직 태연한것은 아까 붙인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있는 그 청년 한사람뿐이였다.

《어- 용감한 청년이로군. 어디서 온 사람인가?》

유경문이가 하마트면 개망신을 당할번한 자기 체면을 보호해준 호협한 청년에게 인사삼아 말을 건넸다.

《뭘요. 난 금천동에 볼일이 있어 온 사람입니다.》

청년은 스스럼없이 가볍게 허리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제야 보니 육중하지는 못해도 미끈하게 잘 발달한 몸매에다 훤칠한 이마며 길게 가로찢어진 눈이 인상적인 호남아였다. 외형뿐아니라 말투며 행동거지가 모두 세련되여있었다.

《금천동이라면 금광관계로 왔는가? 난 바로 경찰국장일세. 알고지내자구.》

유경문은 동생들이 내놓은 자리에 갈 생각을 잠시 잊고 청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알고있습니다. 선성은 들은지 오래인데 곧 떠날것 같아 찾아뵈올 생각을 못했습니다. 실은 금광일때문에 오기는 했지만 그저 가친의 심부름으로 경기나 봐두자고 온길이기때문에 요로의 점잖은분들과 교제를 할 마련도 없습니다. 량해를 하십시오.》

하고 혜산에 있는 흥아목재상주인이 바로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였다.

《음- 아버님의 심부름으로 금광경기를 보러 왔다면 장차 그 부면으로 기업을 벌릴 생각이 있는게로군. 군이 그럴 생각만 있다면 내가 이것저것 협조를 해줄수도 있지. 참, 이리 오게. 내 동생이 마침 금광일을 보고있고 또 저 리호철이라는 사람도 금광을 경영하고있으니 말벗이 될걸세.》

흥아목재상의 아들이라는 그 청년은 길게 찢어진 특징있는 눈을 쪼프리고 웃으며 별로 사양하지도 않고 유경문이네 술자리로 옮겨앉았다. 또다시 바이올린소리가 흐느끼며 떨리며 울리여나왔다.

이구석 저구석에서 화룡거리에 새로 나타난 부자집아들을 두고 수군거리던 소리도 차츰 자기들끼리의 속삭임과 쑥덕거림과 웨침으로 변하였다. 녀급은 굽높은 구두를 데깍거리며 분주히 통로로 오가는가 하면 손님들곁에 붙어앉아 술잔을 홀깍거리며 이 손님 저 손님에게 추파를 보내였다. 그중에도 유경문의 술자리에 오래 붙어앉아서 흥아목재상의 아들이라는 청년의 얼굴에 뜻있는 웃음을 던지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