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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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께서 유상춘이와 담화하실 때 오백룡이가 가지고온것은 금천동공작조에서 보내온 보고였다.

청지동과 태평촌전투를 계기로 화봉지구의 모든 조직들이 급격히 성장하였다. 광산이나 목재판은 말할것도 없고 장대선의 4인계는 어느새 50인계를 넘어서서 며칠전에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왔다.

일부 통제품을 제외하고는 원호물자도 많이 마련되였다. 적들의 동태가운데서 주목되는것은 《련합토벌사령관》이란자가 혁명군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을 진행하기 위하여 다시 한개사단의 정규무력을 떼내려고 관동군사령부와 집요하게 교섭을 진행하고있다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계속 조직을 확대강화하면서 김준삼이와 리성림은 적의 동태를 예리하게 감시하라는 지시를 주시여 통신원을 돌려보내시였다.

그날저녁에 유상춘이 조카는 떼여두고 혼자 제발로 찾아왔다.

《어서 오시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시여 걸상을 가리키시였다.

유상춘은 좀 쭈밋거리더니 앉았다.

장군님께서는 손수 고깔불에 주전자를 올려놓으시고 사위여가는 불길을 헤치시였다.

《실은 장군님께 긴히 여쭐 말씀이 있어서 바쁘실줄 알면서도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편안히 앉으시오. 그래 요사이 건강은 나빠지지 않습니까. 유격대의 침식이라는것이 상춘씨같은분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울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견디기 어려운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그것은 혁명군의 생활이 간고해서보다 자기 죄과가 가슴을 치기때문일것입니다. 금침이불에 눕고 진수성찬을 끼마다 대한들 지금 이 마음 가지고는 편할수가 없습니다.》

《허허허, 좀 지나치게 생각하는것이 아닙니까?》

《아니올시다. 자기일신의 부귀영화만을 생각하던 인간이 나라를 위하여 이처럼 험지에 풍찬로숙하는 애국자들을 볼 때 그 잠자리가 편안할수 없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군님, 내 종일 생각하던바를 말씀드리겠는데 바른 해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무엇입니까? 서슴없이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어느새 김을 내뿜는 주전자를 조심스레 책상우에 옮겨놓으시고 전령병의 배낭에서 차잔 한개를 더 꺼내여 벌려놓으시며 소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유상춘은 고개를 숙이고있다가 기계적으로 차잔에 손을 뻗쳤다.

낯빛이 꺼멓게 질려있던 그는 한참이나 동안이 지나서야 무엇인가 크게 각오를 한 사람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장군님, 낮에 말씀하시기를 일본제국주의의 앞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이 늙은것의 명보다 일제의 명이 더 짧다고 보십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제가 망할 징조는 벌써 여러모로 나타나있습니다.》

유상춘은 예기하고있었던 답변이면서도 몹시 충격이 심한듯 흠칫하더니 고개를 떨구고 다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참을성있게 유상춘의 말을 기다리시였다.

일제의 명금이 짧은것이 자기자신의 명줄보다 더 큰 문제로 되는 인간들이 실제로 있다는것은 기이한 일이지만 어느 정도 이 끓어번지는 시대의 한가닥 탁류를 말해주는것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어디에 나의 재생의 길이 있습니까? 일제가 망한 다음에도 내가 이 세상에 남아있다면 내가 살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윽고 유상춘은 장군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것은 애원이라기보다 절통한 울부짖음같았다. 그는 별안간 고개를 숙이고 이번에는 기가 탁 꺾인 목소리로 이었다.

《내가 더 살기를 바란다는것이 주제넘습니다. 나는 이미 살만큼 살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식도 없습니다. 조카들이 있지만 그 애들은 그 애들대로 제 갈길이 있을것입니다. 내가 원하는것은 오래 살고싶은 생각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규탄을 받으며 살아남고싶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윽히 그를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상춘씨는 이미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백지화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두고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칠 때 속죄하는데는 결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것입니다.》

유상춘은 진실을 확인하듯 장군님의 근엄하신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인자하시면서도 엄하게 빛을 뿌리시는 그이의 안광에 부딪치자 유상춘은 다시금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장군님, 나를 동정해주십시오. 나는 이미 늙었습니다. 나에게는 힘도 지혜도 총명도 없습니다. 나에게 있다는것은 약간의 재물이 있을뿐입니다. 내가 내놓을수 있는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을 내바치겠습니다. 후날 장군님께서 내가 장군님을 뵈온 이후에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것만이라도 보증해주실수 없겠습니까?》

《허허허, 대단히 어려운 부탁입니다. 수많은 인민들의 눈이 있는데 내가 무슨 보증을 했다고 그것이 통하겠습니까. 또 내가 사실에 어긋나는 말을 인민들에게 할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올시다. 경위중대장어른의 말을 듣자니 장군님께서는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서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나도 있는껏 다 내놓겠습니다.》

《허허허, 아주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상춘씨가 혁명을 위해 돈을 내놓겠다면 그쯤한 보증이야 못서겠습니까? 그러나 이 숲속에서 우리에게 절실한것은 돈이 아닙니다.》

《그것도 나는 알아보았습니다. 말이 돈이지 그까짓 종이장이 무슨 소용에 있겠습니까. 나는 그 돈을 물건으로 바꾸어낼수 있습니다. 가령 신발이라든가, 천이라든가···》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냥 웃으시며 듣고계시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이 유상춘이라는 인간이 보통인간이 아니라는것을 느끼시였다. 유격대에 붙들려와가지고도 장사판을 벌리듯 흥정을 하려고 드니 그가 오막살이에서 강낭지짐을 먹고 자라난 사람으로서 자기 당대에 그처럼 큰 재물을 긁어모을수 있었던 비결의 한끝을 엿보는듯하시였다. 그는 죽는 시늉을 하고 다니면서도 지금 유격대에 무엇이 절실히 필요하며 어느 모퉁이로 뚫고들어가면 살길이 열린다는것을 면밀히 타산하였다.

어처구니없기도 하시였지만 군벌정권때부터 권세가 당당했던 토호가 그쯤 꺾어져나오는것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의 한 반영이라고 생각하실 때 마음이 밝아지시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물건들을 받고 증명서를 내주는것으로 됩니까?》

《그렇소이다. 김일성장군님의 도장이 찍힌 증명서만 한통 해주신다면···》

《허허허, 그거야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것은 증명서를 받는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기 죄과를 뉘우치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주 토호로서의 유통사문제를 두고 기왕에도 생각하신적이 계시였으나 이처럼 구체적인 인간을 앞에 놓고 그 처리문제를 생각하게 되실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시였다.

잠시 생각하시는데 강봉수가 달려왔다.

그는 경례를 붙인 다음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보고를 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옥돌골에서 청년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일어서시며 열어젖힌 천막 출입구쪽을 내다보시였다.

《세동무 다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한동무는 그때 축구시합할 때 8련대에 속해서 뽈을 차던 동무같습니다.》

《옳소, 손영백동무요. 어서 가봅시다. 봉수동무는 상춘씨를 천막까지 모셔다드리시오.》

하고 장군님께서는 유상춘에게 말씀하시였다.

《그 문제는 좀 토론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마음 푹 놓고가 쉬도록 하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멀리 떠들썩한 소리가 울려오는 경위중대 천막을 향하여 급하게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옥돌골지방에 뿌린 혁명의 씨앗이 어느새 뿌리내리고 열매 맺어 자기의 첫 아들들을 혁명군에 보내여왔다.

며칠 비가 구질거리더니 마침 오늘은 말끔히 개였다. 선선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쳐드는 공지에 장경수가 세 청년을 데리고 무엇인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있다. 특징있는 그의 몸짓은 언제보나 활기에 차있었다.

강봉수의 뒤를 따라 묵묵히 생각에 잠겨 걷던 유상춘은 기쁨에 넘치시여 달빛속을 누벼나가시는 장군님의 뒤모습을 이윽히 바라보며 분명 유격대에 무슨 큰 경사가 났는 모양인데 아무쪼록 그것이 자기 운명에 좋은 영향을 미쳐주기를 달을 향해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