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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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통나무탁자에 비해서는 주전자도 차잔도 대단히 사치한것으로 생각되였다.

그러나 첫인상을 그렇게 받았을뿐 유상춘도 그의 조카 유경무도 그에 대해서는 인차 잊어버렸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장차 자기들의 운명을 어떻게 처분하실지 몰라 마음속이 한줌만큼 졸아들어서 다른 생각을 좇을 경황이 없었던것이다.

유상춘은 벌써 태평촌집에서 끌려나올 때부터 모든것을 단념하노라고 했다. 그러나 물홈골짜기에서 뒤따라온 경찰이 한바탕 총질을 해대자 은근히 가슴이 뛰였다. 그 총소리가 유격대의 과감한 반돌격에 의하여 순식간에 가라앉고말자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심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물홈골짜기에서 이 올기강기슭까지 한절반은 질질 끌리다싶이해서 가까스로 왔던것이다.

그는 이틀동안을 거의 물만 마시고 살았다. 두고온 부귀영화가 떠오르는가 하면 그것을 위하여 평생을 두고 저지른 죄과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경무가 무엇인가 귀에 대고 그냥 중얼거렸으나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어디를 빠져나간단말인가. 과연 유격대는 자기들을 철망속에 가두어둔것도 아니고 철통같이 파수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달아나라고 그렇게 허술히 취급하겠는가. 신출귀몰한것으로 소문높은 김일성장군의 손바닥안에 들었는데 발버둥치는것부터가 부질없는짓이다.

유상춘은 차라리 최후의 그 순간이 한시바삐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세끼 날라다주는 밥을 편안히 먹고있는데도 입안이 헤여지고 얼굴이 조막만큼 줄어들었다. 경무도 얼굴이 캄캄해졌다. 젊은놈이 앉아서 칼을 기다리자니 좀 급하겠는가.

사흘째 되는 날부터 좀 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밥을 날라다주는 녀대원은 특별히 친절한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죽일놈취급을 하는것 같지도 않았다. 어제는 그렇게 가만 앉아만있어서야 먹은것이 내리겠는가, 바깥에 나와서 바람을 쏘이는것이 어떤가고 충고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천막밖을 나와 산등에 나서보니 바깥세상은 그렇게도 밝고 시원하였다. 생에 대한 의욕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때부터 그들 숙질은 시간 맞추어 산보도 하고 지나는 유격대원들의 동태도 살폈다. 어떤 쾌활한 젊은이는 그들을 보고 롱담을 걸기도 하였다.

《아바이가 아무 나라 말이나 다 안다는게 사실이오다?》

상춘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떨떨해있는데 쟁기를 둘러멘 그 유격대원은 같이 가던 동무를 돌아보더니 눈을 끔쩍끔쩍하며 알수 없는 소리를 망탕 주어섬기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자리서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소리지만 동무를 가리켰다가 하늘을 가리켰다가 제가슴을 툭툭 쳤다가 하면서 류창하게 주어섬기는 모양이 제법 그럴듯하였다. 원래가 활달한 성미인 유상춘은 마음속이 밝아지는것을 느끼며 《알만하오. 그게 안남말이요.》하고 말하였다.

《안남말?》

그 말의 임자가 놀라서 되묻더니 인차 침착해서 끄떡끄떡하였다.

《그렇지, 알기는 아는군. 그래 이제 내가 뭐라고 했소?》

《이 사람이 딸기를 나혼자 먹었다고 원망하지만 청백한 내 마음은 하늘이 안다고 하였소. 딸기라는것은 아마 무슨 보물인지, 모르겠소.》

《히야- 륙국통사가 다르기는 다르다. 어때? 나도 안남말을 꽤 잘하지?》

그들이 지나가자 별안간 유상춘의 가슴은 허전했으나 어쩐지 유격대가 자기 조카들이 말하는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한시바삐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원이 이처럼 빨리 이룩되여 지금 그들은 바로 김일성장군님앞에 앉아있는것이였다.

《차를 드시오. 이것이 무슨 찬지 알만합니까?》

장군님께서는 먼저 김을 부시고 몇모금 맛보신 다음 차잔의 그 그림만 살펴보는 유상춘에게 말씀하시였다.

유상춘과 경무는 서둘러 차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차라든가 기명에 대해서는 유상춘이 내노라고 하는 사람이다. 경무는 어서 말씀드리라고 눈빛으로 재촉하였다.

《아주 독특한 맛인데 이러한 차는···》

유상춘은 이렇다하게 떠오르는 명차의 이름이 없어서 다시 한모금 마셨으나 역시 잘 가늠이 가지 않았다.

《처음입니까?》

장군님께서는 딱한 표정으로 마주보는 상춘에게 웃음을 지어보이시며 물으시였다.

《전혀 처음입니다. 주로 남쪽에서 나는 차들이 이렇게 빛갈이 맑으면서도 향기가 높은데 저로서는 아직 맛본적이 없습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이것은 무송에 있는 어떤 인삼장사가 보내준것인데 말하기는 인삼무역때문에 저 남쪽나라들을 돌아다니다가 구해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모를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늘 바쁘다나니 관심을 별로 돌리지 못했지만 그 사람이 말하기는 괜찮은 물건인것 같습니다.》

《그렇겠습지요.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물건을 아무것이나 골랐을수 없습니다. 그러고보면 장사하는 사람들가운데도 깬 사람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장사를 크게 하는 사람입니까?》

《그런것 같습니다. 피물이며 인삼같은것을 가지고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 사람의 큰 삼포가 무송에 있지요. 장사군이지만 시속에는 밝아서 유격대와 등을 져서는 장사를 못한다는것을 안것 같습니다.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유쾌하신듯 웃으시였다.

《그렇지만은 않을것입니다. 우리같은 촌늙은이가 뒤고방에 박혀있다나니 세상을 몰라서 그렇지 어지간한 사람은 다 김일성장군님을 만고의 명장으로 흠모하고있습니다. 그 사람도 아마 장군님의 성덕을 흠모하여 향기높은 차를 보냈으리라고 믿습니다.》

《허허허, 과한 말씀입니다. 그래 차맛이 어떻습니까?》

《참으로 훌륭합니다. 석계수 흐르는 유곡에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차맛이 각별합니다.》

유상춘은 마음속으로부터 장군님의 풍모에 경탄을 금치 못하여 세상이 김일성장군님을 두고 단지 신출귀몰한 장군이라고만 이르는것이 얼마나 일면적인가 하는것을 통감하였다.

차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어갈무렵에 오백룡이가 무슨 문건을 가지고 와서 말씀을 드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백룡의 말을 들으시더니 문건만 받으시고 인차 돌려보내시였다.

그러시고는 아까와 똑같은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동무들이 태평촌을 들이치던 날 나는 봉산동에 갔습니다. 거기서 마침 하곡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들으니 두분이 다 오막살이에 태여나서 가난한 선비로 어지러운 세상에 나섰다고 하던데 령감님은 어떻게 되여 한대에 그처럼 많은 땅과 재부를 모을수 있었습니까?》

유상춘은 마침내 시작되였구나 하는것을 느끼며 기침을 톺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사돈령감을 만나보셨다니 내속이야 오죽 잘 아실가. 이렇게 생각하니 죽음은 이미 피할수 없는것으로 느껴졌다. 낯빛이 긴장되자 호화로운 생활에서 물러난 그의 육체는 더욱 초라하게 보이였다. 강렬한 해빛과 신선한 자연은 유상춘을 둘러싸고있던 으리으리한 후광을 싹 벗겨버렸다.

《모두 죄를 지어가며 긁어모은것입니다. 나라가 망함에 도적이 이르는곳마다 성하여 미처 밝히지를 못하는 형편이라 그 틈에 나도 도적질을 한셈입니다.》

《허허허, 그것이 일시 궁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당신의 여생을 위해서 좋을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그러되 당신들이 일본제국주의가 망한 다음에 어떻게 처신할것인가. 상춘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 일제의 멸망은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릴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환경속에서 그런 문제를 생각해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들은 생각합니다. 허지만 우리들의 생각이 무슨 소용에 닿겠습니까. 다만 장군님의 처분을 기다릴뿐입니다.》

유상춘은 이때 차라리 거북하게 마주앉아있기보다 풀밭에 무릎을 꿇고 내려앉아 장군님의 소매를 잡고 빌고싶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님께서 손님처럼 대해주시니 그럴수도 없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운명을 자기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죄과를 뉘우치고 재생의 길을 걷고싶다면 길은 언제나 열려져있습니다. 오늘의 부귀영화가 아까와 조국과 민족을 배반하는 길로 나가는자 역시 붙잡지 않습니다. 그런자들에게는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는것을 깨우쳐줄뿐입니다. 그만합시다. 우리는 당신들을 위협하지 않습니다. 태평촌일대의 당신의 재산은 몰수하여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지만 당신의 목숨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당신의 큰 조카가 경찰국장이고 또 성안에 있는 중요한 상점들이 당신의것이기때문에 우리는 일시 당신과 함께 있는것이 필요해서 데리고왔을뿐입니다. 이제 며칠 안가서 그 필요성도 없어질듯합니다. 그러면 당신네들은 다시 태평촌으로 돌아갈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다음 당신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당신들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자,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듣자니 상춘씨는 서화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스스로 붓을 들기도 하시는지···》

《아니올시다. 한때 그림을 모으는데 재미를 붙여서 자연 그 부면의 사람들과 사권적은 있습니다만 나자신은 전혀 붓을 들지 않습니다.》

무슨 화제도 위축된 유상춘 숙질간의 마음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보시고 너그럽게 웃으시며 앞으로는 소풍도 하고 이야기하러도 오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돌려보내시였다.

자기들의 천막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으며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천막안에 단둘이 들어가 앉았을 때에야 그들은 서로 마주보았다.

《아저씨, 잘하면 살길이 열릴것도 같지 않아요?》

유경무는 데쳐놓은 시래기처럼 휘주근해진 유상춘을 향하여 속삭였다. 천막안은 물론 주변일대에 인적이라고 없었지만 유경무는 극도로 조심을 하며 바싹 무릎을 끌고 나앉아서 주눅이 들어버린 아재비를 주의깊이 뜯어보았다.

《이럴 때 정신을 바싹 차려야 돼요. 내보기에는 김일성장군이 대단히 관대한분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 있어서는 안되지요.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유상춘은 조카의 교활하게 반짝거리는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개탄하였다. 유가의 피줄이 이렇게도 악하였던가. 속담에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고 하는데 의리도 인정도 통하지 않는 이러한 인간들은 무엇으로 다스려야 한단말인가.

그러나 그 역시 하늘우에 사는 신선이 아니라 속세에 사는 인간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의 덕에 감격한 이상 그것을 물질적으로 표시하는것도 필요한것이고 또 장차 살아갈 길을 틔워보지 않을수도 없었다. 그는 듣기가 역겨운대로 조카가 섬기는 이런저런 타산들을 잠자코 듣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