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3

 

13

 

올기강줄기를 따라 자꾸 올라가면 기암괴석이 량기슭으로 차츰 다가붙다가 중봉산의 북쪽 10리 가까이 되는데 이르면 드디여 두기슭은 마주붙어버리고 바위짬에 뿌리박은 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부딪치게 된다. 혹시 두만강에서부터 물줄기를 따라 이 골짜기를 참을성있게 따라오는 길손이 있다 하더라도 잡관목이 모록이 우거져 골짜기를 막아버린 이곳이 바로 올기강의 막바지라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릴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였다. 물이끼가 올라 미끈거리는 바위등에 조심스레 발끝을 붙이고 앞을 막아서는 나무가지를 헤쳐나가면 골짜기는 가까스로 길을 내는데 그 굽이를 따라가면 곬은 90도로 꺾어졌다가 별안간 시원한 전망을 틔워놓는다.

마치 올기강의 본줄기는 이제부터라는듯 단꺼번에 큰 소처럼 넓어진 강폭에 가득 고인 물이 어쩌면 속세로부터 엄격히 절연된 선경과 같은 인상을 자아낸다.

사령부의 장풍은 바로 그 물가 벼랑밑에 세워졌다.

우심산지구로 진출한 부대가 유통사네 일가의 통제하에 있는 태평촌, 봉산동, 주부골 등 동네를 하루밤에 동시에 습격하고 유통사의 재산을 몰수하여 인민들에게 분여한 다음 유통사-유상춘과 그의 작은 조카 유경무를 체포해가지고 다시 올기강줄기로 돌아선것은 청지동싸움에 이어 적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것이며 그들은 불가피하게 《토벌》에 나서지 않을수 없을것이였다. 이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재빨리 부대를 세개방향으로 분산시키시였다. 7련대는 청산리, 금천동 방향으로 곧장 북상해갔으며 8련대는 서북쪽 삼도구, 양초구 방향으로 대기동을 일으켰다. 전투부대들이 떠나간 다음 사령부는 경위중대와 재봉대만 데리고 올기강을 거슬러올라가다가 바로 이 선경에 마주친것이였다. 처음에는 모두 잡관목이 모록이 우거진데가 바로 올기강의 막다른 골목이라고들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위지형을 살펴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럴수 없습니다.》하고 말씀하시였다.

《지하수가 솟아날만한곳도 아닌데 별안간 강이 생길수는 없습니다. 더 올라가보시오.》

그리하여 손도끼로 우거진 나무가지들을 찍어던지며 전진한 결과 이 호수와 같은 넓은 물목에 이른것이였다.

사령부천막에서 댓마장 더 올라가면 새초가 우거진 야산이 나지는데 산은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았지만 인적이 미치기 어렵고 또 양지바른데다 전망이 좋았다. 사령관동지의 지시에 따라 도착하는 날로 여기에 재봉대밀영을 지었다.

우심산에서 잡아온 유상춘네 숙질도 당분간 이 산기슭에 도리풍 하나를 치고 넣었다.

청지동과 우심산지구전투에서 로획해온 천은 량이 적지 않았다. 그 천을 가지고 재봉대는 벌써부터 전부대에 공급할 동복을 짓기 시작하였다.

한여름이라 하지만 심심산속인데다 구슬같이 맑은 물이 층층 고인 강기슭이라 언제 덥다는것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그렇지만 철은 속일수 없어서 올기강기슭에는 새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이 만발하고 나무잎새들은 검게 보일만큼 진이 올라서 웬간한 산들바람에는 움직일 차비를 안했다. 만물이 결실의 때를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정치공작조와 소부대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몸소 기관총소대를 거느리시고 철구아주머니가 있는 초막을 거쳐 두만강줄기의 여러곳을 돌아보시고 오신지도 퍽 여러날 되였다.

어느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재영이와 상철이를 거느리시고 재봉대밀영으로 넘어가시였다.

앞장서 걸어가는 재영이의 어깨는 떡판처럼 넓어지고 성큼성큼 내디디는 다리는 참나무처럼 완강해보인다. 목소리도 변하여 꿱꿱하는 왜가리청이 되였다. 몸이 자랐을뿐아니라 이제는 기관총사격에서도 어지간한 기관총소대 대원들보다 능숙한 편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진작부터 재영이를 전투부대에 내보내여 지휘관으로 길러야겠다고 생각하시면서도 어쩐지 놓기가 아수하시여 차일피일 밀고계시는중이시였다.

경위중대의 보초병앞을 지나자 재영이는 왼쪽으로 꺾어졌다. 보초의 보고를 받으시느라고 잠시 지체하시였던 그이께서는 앞서 가는 재영이를 멈추어세우시였다.

《이쪽으로 갑시다. 재봉대에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통사는 며칠동안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것이 좋습니다.》

새초밭에 묻힌 오솔길을 바른쪽으로 톺아오르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유통사가 붙잡혀올 때 늙고 젊은 첩들이 한마당 쓸어나와 울고불고하더라는 리철범의 보고가 생각나시였던것이다.

재영이는 씩 웃더니 제비처럼 날랜 동작으로 새초밭을 가르며 곧장 앞으로 나갔다.

산정을 조금 벗어나서 봇나무 몇그루가 나란히 선곳에 지금 재봉대 귀틀집을 짓느라고 경위중대동무들이 역사를 벌리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의 기동을 위하여 다른데는 풍을 치도록 하시였지만 재봉대만은 귀틀집을 지어주라고 하시였다. 그래서 지금 조진범이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나서서 잔소리를 하고있었다. 경위중대에는 도끼 한자루만 쥐여주면 하루에 집 한채씩을 문제없이 지어내치는 한다하는 목수들이 허다하다. 그들의 손에 의하여 저 남호두로부터 백두산줄기를 타고, 그 다음 서쪽으로 룡강산맥줄기를 따라 얼마나 많은 밀영들이 일어섰는지 모른다.

그런 소문난 대목들에게 군수관 조진범이가 잔소리를 해서 날이 설 까닭이 없다는것을 그자신도 잘 알고있었지만 재봉대밀영을 잘 지어서 이번 숙영기간에 동복을 다 보장해야 한다는 과업을 직접 사령관동지로부터 받았기때문에 몸이 달수밖에 없는것이다. 더구나 낮에는 그늘이 지고 아침나절에는 해빛이 잘 드는 건조한곳에 터를 잡으라는 매우 구체적인 지시도 받은 터여서 조진범은 그런 집터를 고르느라고 온종일 산판을 돌아다녔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집터는 척 보기에도 봇나무숲을 등지고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은것이 그럴듯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정 듣기 거북한 소리를 했던지 강철룡소대장에게 떠밀려서 뒤걸음질치는 조진범을 한참이나 재미있게 바라보시다가 림시 천막을 친곳으로 향하시였다.

천막앞에서는 지금 필네에게 새로 지은 군복을 입혀놓고 금숙이며 옥금이며 채옥이, 거기에 김정숙동지까지 올라와서 빙 둘러싸고 품을 눌러본다 기장을 맞취본다 하며 야단법석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조사업을 다 돌아보시고 오시는 길에 철구아주머니네를 부대에 데리고 오시였다. 그사이 철구아주머니는 퍽 좋아져서 이제는 사령부의 작식대일도 거들게끔 되였지만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더러 계속 그를 잘 돌봐줄데 대하여 간곡하게 당부하시였다. 그런데 이렇게 재봉대에 올라와서 일을 거드는것을 보면 이제는 철구아주머니가 정말 완전히 좋아진것이 틀림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저마다 바늘실을 꿰여들고 필네 주위를 빙빙 돌아가는 녀대원들의 모양을 멀찍이에서 바라보시였다.

처녀는 그날 사령관동지의 품에서 기진할만큼 울고나더니 이튿날은 하루종일 허탈에 빠진듯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아니아니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제 오래비를 많이 닮았지만 어딘가 꽁하고 맺힌데가 있는 성미여서 어린 나이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것이였다. 그러나 밤이 되자 필네는 금숙의 곁에 제발로 찾아와서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으며 이튿날 옥금이네가 제 군복을 지어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비꼬이지 않고 결바르게 자라난것이 더없이 대견하게 생각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에게 무기도 사령부에 있던 맵시있는 기병총을 주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지금 필네는 그 알차게 성숙한 몸에 꼭 맞는 새 군복을 입고 모든 슬픔을 다 잊어버린듯 밝게 웃고있다.

그러다가 사령관동지께서 다가가시자 너무 놀라서 새빨간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우고 금숙이 등뒤로 숨어버렸다.

《필네동무가 군복을 입으니 더 보기가 좋구만.》

사령관동지께서는 옥금이의 영접보고를 받으시고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제 곧 명사수가 되겠답니다.》

하고 김정숙동지께서 말씀드리시였다.

《그렇지, 명사수가 돼야지. 필네동무, 사격을 이 정숙동무에게서 배우시오. 그래서···》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빠와 같이 이름난 명사수가 되야 한다고 말씀하시려다가 그만 말끝을 흐리고마시였다.

고개를 숙이고있던 필네는 그이께서 말씀을 맺지 못하시는 까닭을 짐작하였다. 그는 여태 그렇게도 수집어하던 처녀답지 않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령관동지.》

하고 그는 또박또박 말하였다.

《저는 꼭 오빠와 같은 명사수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제혼자라도 고향에 찾아가 아버지, 어머니의 원쑤를 갚겠습니다.》

《그래, 아주 훌륭한 결심입니다. 필네동무는 반드시 훌륭한 유격대전사가 될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흥분하신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새삼스럽게 똑바로 마주보는 처녀를 찬찬히 바라보시였다. 살진 귀밥이 빨갛게 물들어있다. 태혁이같은 사나이에게 누이동생이 있었다면 응당 이처럼 잘 생기고 다기차고 그러면서도 구김살 없는 처녀가 있었을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필네에게는 태혁이를 직접 련상시키는 점이 오히려 적었다. 그러나 어딘가 내적으로 련결된 공통성으로 하여 볼 때마다 살아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태혁이의 새로운 특징을 찾아내게 되군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귀틀집이 될 때까지 림시로 차려놓은 작업장을 한바퀴 돌아보시고나서 옥금이에게 무엇인가 말씀할듯하시다가 산등에서 내려오시고말았다.

새초가 우거진 산허리에 와서야 그이께서는 상철이를 부르시였다.

《재봉대에 가서 바늘을 좀 얻어오시오. 그리고 솜도 한줌 얻어오고···》

상철이는 잠시 영문을 몰라 쭈밋거리며 그이를 바라보았으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시고 새초밭속으로 걸어가시였다.

상철이는 하는수없이 재봉대로 달려갔다.

《여기서 잠시 기다립시다.》

유통사네가 있는 천막이 저쯤 바라보이는 갈림길에 이르시자 발아래 흘러가는 올기강물굽이를 바라보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상철이는 한손에 길다랗게 실을 꿴 바늘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솜을 뭉그려쥐고 숨가쁘게 뒤따라왔다.

《사령관동지, 바늘을 가져왔습니다.》

《수고했소. 그런데 겨우 하나 가져왔소?》

《여러개 있어야 합니까?》

상철이는 놀란듯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그래도 몇개는 있어야지.》

이번에는 상철이뿐아니라 재영이도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웃거렸다.

《하는수 없지. 그냥 갑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바늘을 솜과 함께 뭉그려쥐시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런데 뒤에서 또 콩콩 울리는 발자국소리가 따라왔다.

돌아보니 필네였다.

《저 사령관동지.》

필네는 숨을 가쁘게 쉬며 한참이나 얼굴이 빨개서 쭈밋거리더니 말씀드리였다.

《무엇을 꿰매실게 있으면 저한테 주십시오. 제가 곱게 꿰맬수 있습니다.》

《하하- 이거 야단났군, 암만해도 비밀이 탄로날것 같은데···》

사령관동지께서는 난감하신듯 잠시 망설이시다가 웃음짓고 말씀하시였다.

《필네동무, 사실 지금은 아직 말하기 어려운데 나한테 바늘을 몇개 좀 달라구. 어디다 쓰겠는지는 묻지 말고··· 좀 무딘것도 일없소. 갈아서 쓰면 되니까··· 내가 이제 그럴듯한 일을 하나 시작해볼가 하는데 옥금동무나 조진범동무에게는 아무 눈치 못채게 해야 하오.》

필네는 점점 영문을 알수 없어 겨우 알릴듯말듯한 목소리로 곧 가져오겠으니 잠간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고 되돌아 달려갔다.

그날 저녁 사령관동지께서는 전령병들에게 하는수없이 자신의 구상을 터놓으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아직 몸이 성치 않고 다른 동무들도 약해진 사람들이 많은데 가만 보니 올기강에 산천어가 욱실거린다. 그래서 낚시질을 하실 작정이라고 말씀하시자 두 전령병은 대뜸 손벽을 치다가 인차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낚시가 어데 있습니까?》

재영이의 말에 상철이도 실망한듯이

《그물이나 있었으면 좋겠네.》

하고 심드렁해졌다.

《이제 우리끼리 낚시를 만들어보자구.》

《낚시를 만들수 있습니까?》

나어린 소년들은 인차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며 다가앉았다. 그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재봉대에서 가져온 바늘로 낚시를 만드시였다. 바늘에 솜을 감아서 등잔기름을 치고 불을 달아놓으니 빨갛게 달았던 바늘이 떡쇠가 돼버렸다. 거기에 손칼을 엇비듬히 대고 치면 민지가 일어선다.

《사실 낚시대만 좋으면 산천어는 세찬 고기기때문에 민지가 없이도 단번에 끌어올릴수 있소. 그러나 강폭이 넓고 기슭이 험한데다 대가 또 변변치 않기때문에 이렇게 민지를 날카롭게 세워야 마음을 놓을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하시면서 마치 그런 일을 아침저녁으로 해보신듯이 능숙하게 낚시를 만들어나가시였다. 민지가 일어서니 낚시모양을 만드는것은 간단하였다. 제일 문제가 물러진 쇠를 다시 강쇠로 달구는 일이였다. 여기서는 사령관동지께서도 신고를 하시였다. 단번에 달구어서 물에 담가내시니 여섯개중 겨우 한개가 굳어졌다. 다른것은 두번, 세번 하다가 안되여서 등잔기름에 담그니 비로소 강쇠로 변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긴장해서 들여다보던 두 소년은 이젠 됐다는 그이의 말씀을 듣자 호- 하고 한숨들을 내쉬며 갑자기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제가 이제 가서 낚시대를 꺾어오랍니까?》

《줄은 어떻게 합니까?》

《미끼도 있어야지요.》

《참 저한테 꿰미할 멋이 있는 줄이 있습니다.》

일한 자리를 거두시며 덤비는 전령병들을 돌아보시는 그이의 눈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어리시였다.

《그런것은 내가 다 준비해놓았소. 우리 래일아침에 아무도 모르게 일찌감치 강가로 나갑시다.》

《야-》

그들은 갑자기 어린애가 된듯 사령관동지의 겨드랑밑으로 파고들며 잠자리에 들어서도 무엇인가 그냥 소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