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2

 

12

 

밀림 전체가 고열을 내며 몸살을 앓는것 같았다. 끝을 내다볼수 없는 대원시림, 해빛마저 비쳐들지 못하는 이 거목의 심연속에 외롭게 떨어진 가냘픈 한 녀인의 몸에서 이처럼 초막이 온통 땀에 절게 하는 열이 나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그것이 곧 철구아주머니의 생명의 연소이며 이 연소가 끝날 때 철구아주머니는 마치 다 탄 초불처럼 이 세상에서 스러지고말리라는것을 생각할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시도 가만 앉아계실수가 없었다.

찜질물은 몇참을 못가서 곧 미지근해졌다. 찬물을 하나가득 길어다놓을수 있는 큼직한 물드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이 원시림속에 정신을 못차리는 열병환자를 끼고 홀로 남으신 김정숙동지께는 법랑소랭이 한개와 양은밥그릇 두개가 있을뿐이였다.

캄캄한 밤이였다. 흐리든 개이든 이 초막에는 달빛도 별빛도 비쳐들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랭이를 안고 옹달샘으로 달리시였다. 마음이 급하여 물을 버릴 생각도 못하고 캄캄한 어둠을 맞받아 달리다가 나무뿌리에 걸채여 넘어져서야 소랭이의 물을 마저 쏟아버리고 어디선가 비치고있을 별빛을 찾아보시였다. 미지근한 소랭이의 물이 튀여서 한쪽어깨와 얼굴이 축축히 젖었다. 어쩐지 선뜩한 랭기가 느껴지면서 진저리가 쳐지셨다.

(이러다가 나까지 쓰러지면 어찌나?)

이런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자 그이께서는 눈앞이 캄캄하시였다.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이였다. 밀림속에 열병환자를 데리고 단둘이 남았으니 밤낮으로 환자를 안아주고 쓸어주고 열을 낼 때는 안고 누워계셔야 했다. 그렇기때문에 처음 부대가 떠나갔을 때 반나절 품을 팔아서 빨래부터 하고 초막안을 언제나 깨끗하게 거두시였다. 그러나 병이 그런것을 아랑곳할것인가. 게다가 김정숙동지자신께서도 지나간 전투로정에 너무나 지친 몸이시였다. 그런 몸으로 줄곧 밤을 밝히며 중환자를 돌보시자니 얼핏 보기엔 두 환자중 누가 더 축갔는지 가려볼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에게 힘은 얼마든지 있고 전우를 위한 정성이라면 얼마든지 바칠수 있을것 같으시였다. 몇달을 굶고 몇달을 밝힌대도 그것으로 철구아주머니의 생명을 지킬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것 같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철구아주머니는 이제는 젊지 않은 몸인데 외로운 그가 의지할데란 우리 혁명의 품밖에 있는가, 전우들밖에 있는가 하시던 말씀의 뜻을 생각하면 자신의 피곤이나 고통을 생각하실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도 쓰러질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섬찍하시였다.

이 밀림속에서 나마저 쓰러진다면 철구아주머니는, 가난과 봉건의 쇠사슬에 얽히여 시달리다 시달리다 혁명에 나서서 이제는 귀밑머리가 희여가는 저 외롭고 불쌍한 철구아주머니는 누가 돌봐줄것인가. 그래 철구아주머니를 위해서도 내가 앓지 말아야지··· 이렇게 생각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축축히 젖은 군복의 어깨와 소매를 꼭 쥐여짜고 얼굴의 물기를 땀과 함께 훔쳐내린 다음 머리를 매만져넘기며 심호흡을 두어번 하시였다. 그리고 옹달샘으로 침착하게 다가가시였다.

옹달샘에 앉아 고개를 드시니 초막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이 얼른얼른하였다. 물기 머금은 음산한 바람이 굶주린 맹수의 웅글은 울부짖음처럼 먼곳에서부터 메아리를 끌고 서서히 숲정수리로 다가왔다. 초막의 불빛은 벌써부터 그 어떤 공포를 예감하는듯 애처롭게 파르르 떨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치 숨이 간간해있는 철구아주머니자신을 보는듯 마음이 황황해지시였다.

서둘러 물을 가득 퍼담아들고 이번에는 한방울도 넘기지 않으리라고 조심을 하면서 어둠속을 종종걸음을 치셨다.

(침착하자. 나마저 쓰러지면 정말 철구아주머니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거듭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뇌이면서도 파득거리던 초막의 불빛이 우수수 숲을 울리는바람에 구불뜩하고 가로눕자 이 생각 저 생각 다 버리고 달리시였다.

그러다가 열걸음도 못가서 눈앞이 휘- 내돌리면서 땅바닥이 흔들흔들하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히여 그만 비칠비칠하다가 쓰러지셨다. 한소랭이 가득 담긴 물이 그채로 온몸을 덮씌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설 엄두를 못내고 숨을 톺으시였다. 생각하면 벌써 근 열흘 가까이나 굶다싶이하시였다. 부대가 떠나면서 두사람분의 식량을 남겨두고 갔지만 간고한 싸움길로 떠나간 부대가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수는 없는것이다. 그래서 환자에게만 죽을 쒀먹이고 자신께서는 거지반 굶으나 다름없이 보내시였다. 그렇게 축간 몸에 곡기조차 변변히 못하시고 거기에 하루종일 눈 한번 붙이지 못하시니 빈혈이 오고 어지럼증이 날것은 당연한 일이였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늘 자신이 덤비다가 그런거라고 생각하시였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가까스로 숨을 톺고 일어서신 그이께서는 함빡 물을 들쓴 웃가지들을 다시 쥐여짜면서 혼자 말씀하시였다.

《래일 도끼를 가지고 나무뿌리들을 싹 찍어버려야겠어.》

그 어방에는 나무뿌리라고 별로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 가까스로 물 한소랭이를 길어가지고 초막안에 들어서시니 철구아주머니는 자리에서 굴러나 거의 초막밖으로 기여나오게 되였다.

《물, 물, 나 물-》

인기척을 느끼자 철구아주머니는 악을 쓰듯 부르짖으며 벌렁 몸을 뒤채였다. 살은 쭉 빠졌지만 체대가 큰 녀인이 산발을 한채 네활개를 쭉 뻗치고 버드럭거리니 가뜩이나 힘이 진한 김정숙동지께서는 다루기가 아름차시였다.

《철구아주머니, 자 나한테 안겨요. 자리에 가 눕자요. 그러면 내 물이랑 먹여줄테니··· 자, 나한테 꼭 안겨요.》

《나 물, 정숙동무, 나 물 줘- 물···》

철구아주머니는 애기처럼 그이의 가슴에 와락 매달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물을 졸랐다.

누렇게 뜬 얼굴에 흰 귀밑머리가 가로세로 헝클어지고 풀이 엉켜붙은듯 입술이 말라터지고 보풀이 인 병든 전우의 화끈 단 몸을 그러안으니 련민의 정에 걷잡을수없이 눈귀가 젖어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까스로 철구아주머니를 자리에 옮겨다눕히고 땀에 착 달라붙은 머리칼을 하나하나 쓸어넘겨주며 숟가락으로 양은그릇에 끓여놓은 물을 떠넣어주시였다.

《물, 물, 물 달라구- 아이구, 가슴이야, 물.》

철구아주머니는 숟가락으로 떠넣어주는 물이 성차지 않다고 도리질을 하다못해 나중에는 발까지 굴렀다. 그러나 이제는 숟가락으로 떠넣어주는 물마저 지내 많아진듯하였다.

《철구아주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침내 눈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을념도 않고 버드럭거리는 철구아주머니를 꼭 끼고 누우시였다. 이렇게 먹고싶어하는데, 철구아주머니를 위해서라면 물이 아니라 피라도 아깝지 않겠는데 철구아주머니자신을 위해서 그 간절한 청을 매정하게 잘라야 하는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우시였다.

《정숙이 부탁이야, 나 물 한모금만 달라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정말 애기를 달래시듯 환자를 꼭 끼여안으시고 어깨를 다독거리시였다.

《철구아주머니, 이 밤이 새고 열만 내리면 그까짓 물이 뭐겠어요. 그러니 오늘 밤에 꼭 열을 떨구자요. 우리가 <고난의 행군> 을 해오던 생각을 해봐요. 그때에 비하면 목마른것쯤 참는게 그리 힘들것도 없지 않아요.》

그러나 무슨 말을 해도 환자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철구아주머니는 마침내 김정숙동지를 뿌리치고 우격으로 일어나려고 들었다.

《철구아주머니, 이러지 말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내가 가지고있는것이란 물밖에 없는데 그렇게 자꾸 달라면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요? 네, 철구아주머니, 그래서 물을 마시면 우리는- 우리는 다시는 장군님을 못뵙게 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환자의 몸을 힘껏 그러안고 화독처럼 달아오른 얼굴에 두볼을 비비며 말씀하시였다. 줄줄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철구아주머니의 가슴자락으로 흘러들었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돌아치던 철구아주머니는 갑자기 김빠진것처럼 엎어져서 흐느끼며 울었다.

이러한 밤이 그 몇번이나 흘렀던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날자를 셈하기 위하여 천막앞에다 서른개의 버섯을 꿰여매다시였다. 그 버섯이 절반이나 없어지도록 열은 내리지 않았다.

여기에 날씨마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철구아주머니에 대한 련민과 동정때문에 병을 그르칠가봐 늘 마음을 다잡느라고 애를 쓰다보니 날씨걱정은 덜하시였다.

그러나 정작 대원시림에 사나운 폭풍이 들이닥치자 그 어마어마한 위협앞에 긴장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낮부터 어수선한 비구름이 낮추 떠돌아다니더니 그것이 점점 두터워지면서 날도 저물기전에 숲속은 캄캄해졌다. 아무래도 큰비가 올것 같다고 생각한 김정숙동지께서는 미리 도끼로 나무가래를 만들어서 초막둘레에 도랑도 치고 칡넝쿨로 풀단들을 단단히 얽어놓기도 하시였다. 아니나다를가 날이 저물자 먼저 우뢰소리가 울려오더니 처음부터 억수비가 채찍처럼 후려갈기였다. 삽시에 숲은 통채로 물속에 잠긴것 같이 함빡 젖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이 밤따라 철구아주머니의 신열은 여느날보다 더 높았다. 초막안은 비바람때문에 으시시해지는데 비와 함께 터져오른 폭풍을 맞받아 초막의 웃설미들이 떠들리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담요와 옷가지들을 있는대로 다 씌워주어도 환자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덜덜 떨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환자를 꼭 끼여안고 초불처럼 가냘프게 팔딱거리는 생명을 어떻게 하면 지켜낼것인가 하고 속을 바질바질 태우시였다.

초막으로 새는 비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철구아주머니, 기어이 이겨내야 해요. 조금만 참으면 인차 날이 들고 열도 내릴거예요. 내 잠간 나갔다 인차 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철구아주머니의 귀전에 대고 이처럼 다정히 속삭인 다음 바깥으로 달려나가시였다.

막막한 어둠이 꽉 들어찬 공간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줄기와 폭풍이 제멋대로 휘둘러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칡넝쿨을 찾아들고 초막을 이리저리 엇갈아 동여나가시였다. 초막꼭대기로 해서 몇바퀴 가로질러 동였으면 좋을듯하였으나 몇번 칡넝쿨을 던져봐야 폭풍때문에 마음대로 건네여놓을수가 없으시였다. 겨우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으로 돌아가서 몇바퀴 건네여놓고 숨을 돌리는데 본격적인 시련은 이제부터라는듯이 번개가 번쩍하더니 꽈르릉하고 우뢰가 터졌다. 그뒤로 방금전까지 불던 바람과는 비교도 안될 어마어마한 폭풍이 터졌다. 숲은 그 첫타격에 벌써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찌를듯이 아스라하게 솟아있던 아름드리 거목들이 마치 갈대처럼 휘유- 휘유-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남쪽으로 휘여졌다. 어디선가 와지끈하고 나무가지가 부러져나갔다. 바람에 질세라 비도 더욱 세차게 와- 와- 소리치며 퍼부어댄다. 바람은 비소리를 눌러보겠다고 더욱 사납게 울부짖었다. 이번에는 멀지 않은곳에서 우르르 하는 소리에 이어 골안을 짓뭉개는것 같은 소리가 울려왔다. 강대가 넘어진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섬찍한 생각이 드시였다. 초막뒤에도 강대 한그루가 서있었다. 북쪽으로 20m 남짓 떨어져있는 그 강대가 면바로 불어오는 폭풍을 맞고 넘어진다면 초막은 산산쪼각이 날것이다. 생나무가 저렇게 활등처럼 휘여지는판에 마른 강대가 저 폭풍속에서 견디여내기는 힘들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래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어 그길로 문제의 강대가 서있는곳으로 가보시였다. 달려가면서 가늠해보시니 생각했던것보다 거리는 더 가까운것 같았지만 나무의 크기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아지가 넘어지는 힘으로 초막을 후려친다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일것이다.

폭풍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어둠속에 나무그루를 잡고 살펴보시니 마른나무가 돼서 휘여지는것은 오히려 생나무보다 덜한듯도 하였다.

어쩔것인가 하고 잠시 망설이시는데 발밑에서 뿌지직뿌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찬찬히 살펴보시니 나무가 뿌리채 떠들리여 넘어질 차비를 하고있었다. 갑자기 불어난 탕수가 나무밑을 마구 들쑤셔서 벌써 끝이 잘리여진 굵은 뿌리들이 비죽이 땅우에 솟아있었다. 비는 갈수록 세차게 퍼붓고 폭풍은 머리 쳐든것은 모두 휩쓸어버리겠다는듯 사납게 울부짖었다. 강대나무의 상아지에서는 삭정이가 마구 꺾이여 휘뿌려지는데 밑뿌리가 그때마다 움씰움씰하며 기우뚱해졌다.

위험은 벌써 촉박하였다. 우선 철구아주머니를 안전한곳으로 옮겨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급히 초막으로 달려가시였다.

그러나 초막앞에 이르자 그이께서는 주춤 멎어서시였다. 숲도 바람도 비도 다 아우성치고 비명을 지른다. 그 야생적인 울부짖음속에서 너무나 가냘픈 철구아주머니의 씹어삼키는듯한 신음소리가 울리여왔다.

김정숙동지의 가슴은 징하니 젖어드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그렇게도 심려하시던 철구아주머니, 녀자의 몸으로 혁명을 하겠다고 일찌기 투쟁의 길에 나서서 오늘까지 온갖 풍상고초를 달게 여기며 용감하게 싸워온 철구아주머니, 그 어떤 시련과 고통속에서도 전우들을 돌보고 그들을 어머니처럼 따뜻이 감싸주던 부드럽고 강인한 철구아주머니가 지금은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지 못하여 저렇게 남몰래 신음소리를 지르는데 저런 환자를 이 폭풍우속에 어떻게 내다 눕힌단말인가.

입을 감쳐물고 잠시 생각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도끼를 찾아들고 강대그루가 있는곳으로 다시 달려가시였다. 캄캄한 어둠과 담벽같은 비줄기와 맹수처럼 울부짖는 폭풍이 그이의 가슴을 뒤로 떠밀쳤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검부레기처럼 날려갈것도 같았다. 촉기가 와서 팔다리에 힘도 잘 주어지지 않으시였다. 탕수는 발목을 휘감아치고 폭풍은 온몸을 허공으로 떠밀어올리자고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도끼를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혁명전우의 생명을 위하여 그이께서 손수 지어주신 초막을 폭풍의 피해로부터 기어이 지켜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지시였다.

(나무만 미리 찍어버리면 철구아주머니는 아무 일 없어. 래일에는 밝은 해가 솟아오르겠지.)

강대는 그사이에도 눈에 알리게 기울어져서 나무결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서뿔리 도끼질을 하다가 그때문에 나무를 더 빨리 넘어뜨리게 되지는 않을가? 하는수 없다. 그때는 내 몸을 들이대자. 그러나 어쨌든 도끼질은 바람질방향을 피하여 한옆으로 해서 엇비듬히 나무를 넘겨뜨려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나무꼭대기를 한번 쳐다보시고 도끼를 쳐드시였다. 두다리를 뻗디디고 량껏 두팔을 쳐드신 그이께서는 온몸의 힘을 다 모아 도끼를 휘둘러박으시였다. 꽝! 하고 도끼날이 깊숙이 먹어드는 순간 하늘에서 번쩍 번개가 쳤다. 뒤미처 꽈르릉 하고 우뢰가 운다.

《실컷 퍼부어봐라, 우리는 지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웨치시며 도끼날을 꽉 물고 놓지 않는 나무그루에 어깨를 들이대고 비틀어뽑으시였다.

어느덧 비물과 함께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이께서는 그것을 훔칠념도 않고 그냥 도끼를 휘둘러대시였다.

꽝! 꽝! 꽝! 도끼질소리는 울부짖는 폭풍, 광란하는 폭우를 맞받아 점점 세차게 울려갔다.

얼마쯤 도끼질을 한 다음부터는 매번 나무를 살펴야 하고 다시 얼마쯤 가서는 도끼질을 하기전에 살피고 도끼질을 하고는 재빨리 몸을 초막쪽으로 돌려대고 떠미시였다.

만일 그것이 따뜻한 날 대낮에 하는 도끼질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것인가. 물기때문에 도끼날이 미끄러져 발등을 찍을 걱정도 없고 정확히 겨누기도 할것이며 가끔가끔 쉴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런 날 그런 때라면 벌써 여러끼를 굶다싶이한 몸으로 이처럼 결사적인 도끼질을 하지도 못할는지 모른다. 잠시 숨돌릴 짬도 없다. 캄캄한 어둠속이라 도끼밥을 큼직하게 떼내기 위해 겨누어볼수도 없다. 단지 사령관동지께서 아끼시는 혁명전우를 위험에서 건져내야겠다는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사나운 비바람을 맞받아 도끼를 휘둘러나가시는 김정숙동지의 온몸에서는 피가 끓고 살이 뛰였다.

쩡! 쩡! 쩡!

도끼밥이 사방으로 흘어지는것이 알린다. 폭풍은 발악적으로 기승을 부렸다. 비도 여전히 채찍처럼 숲속을 후려갈긴다.

마침내 강대가 옆으로 기울어지려는 기미를 느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재빨리 몸을 날려 초막쪽에 붙어서서 어깨를 들이대시였다.

생천 찢는 소리와 같은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강대가 넘어졌을 때 그이께서도 나무와 함께 쓰러지시였다. 그리고는 억수로 퍼붓는 비속에 그대로 기맥을 놓고 한식경이나 정신을 잃은것처럼 나무에 몸을 기대고 누워계시였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정신을 가다듬으신 그이께서는 극도로 지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세워 초막으로 다가가시였다.

초막은 캄캄하였다. 비바람에 고깔불이 꺼진것이다. 까닭없이 섬찍한 생각이 든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달음에 초막으로 뛰여들어가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휘저으며 열에 떠서 헛소리를 치고있었다.

《철구아주머니, 정말 미안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불을 살려놓은 다음 철구아주머니를 꼭 끼여안고 홧홧 달아오른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속삭이시였다.

다정한 김정숙동지의 속삭임소리를 듣자 철구아주머니는 화들화들 떨리는 손으로 그이의 얼굴을 어루더듬었다.

퀭하니 꺼져들어간 눈확에서 잔주름을 타고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울면 안돼요. 억세게 싸워이겨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열병환자를 꼭 끼여안고 다독거리며 조용히 노래를 불러주시였다.

 

이십세기 용감한 녀성투사들

문명한 활무대에 나서 싸우자

 

그것은 둘이 함께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곡절많은 혁명의 길을 울고웃으며 괴로울 때나 줄거울 때나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철구아주머니는 김정숙동지의 손을 꼭 틀어쥐고 가냘프게지만 미소를 지었다. 기어코 견디여내겠다는 굳은 결의가 어린 그런 미소였다.

이튿날아침 사나운 폭풍우는 악몽과도 같이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바깥에 나서보니 숲은 마치 방금 지나간 격전장을 방불케 하였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여기저기 넘어져있고 어린 나무들은 뿌리채 뽑히여 대지의 상처같은 생땅이 드러난데도 있었다. 초막 언저리에는 떠내려갈만한것은 다 떠내려가버린대신 온갖 검부레기와 삭정이같은것들이 어수선하게 걸려있었다.

초막끝에 매달아놓은 버섯꿰미만이 아침해살을 받아 번쩍거리며 가볍게 날리고있었다.

격렬한 싸움과 같았던 그 폭풍우의 밤을 지나자 철구아주머니는 며칠 몸이 더치는것 같더니 이어 회복기에 들어섰다는 확실한 징조들이 나타났다.

며칠후부터는 초막에서 초간히 떨어진 실개울까지 소풍을 나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번 덧난 입맛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하루는 철구아주머니가 죽사발을 들고 숟가락끝만 입술에 갖다대더니 참나물이야기를 비치였다.

죽사발이 비기를 안타깝게 지켜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말이 우선 반갑게 느껴지셨다.

약이랑 물이랑 머리맡에 챙겨두고 점심참까지 초막안에 들여다 놓으신 다음 참나물을 캐러 떠나시였다. 그러나 숲이 너무 깊고 장해서 잡초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짐승조차 발붙이지 못하는곳이였다. 어디서 푸성귀를 만난다는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단념하지 않고 그냥 숲속을 누벼다니시였다.

언젠가 장마비속을 행군할 때 어느 야산머리에서 우등불을 피우던 생각이 나시였다. 그 골짜기에서 풀밭을 본것만 같으시였다.

어쨌거나 그 방향으로 나가면 틀림없이 산나물을 만날수 있을것 같아 어방짐작으로 자꾸만 걸으시였다.

그날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십리 숲속을 해종일 다니시다가 겨우 닥지싹과 참나물 몇잎을 뜯었지만 나물에 정신이 팔려 돌아가는사이 길을 잃으시고말았다. 키가 30m씩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이깔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숲속에서 길을 잃었으니 찾기가 여간 힘들것 같지 않으시였다. 무엇보다도 초막에 홀로 누워있을 철구아주머니가 지금쯤 시장기에 시달리고있을것을 생각하니 참을수 없이 초조해지시였다. 그래서 허둥지둥 달리셨지만 낯익은 나무도, 길도 나지지 않았다. 아침에 강낭죽 한공기를 마시고 떠나서 종일 숲속을 다니다보니 시장하고 피로하여 저도 모르는사이 다리가 접히군하시였다.

기진맥진한우에 차츰 밀려드는 어둠이 그이의 가슴에 검은 나래를 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 나무그루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앉으시였다. 철구아주머니와 함께 헤쳐온 수만산하가 떠오르시였다. 싸움속도 아닌 이런 조용한 숲속에서 혁명동지를 잃을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다시 입술을 앙다물고 일어서시였다. 말라터진 입술이 마치 헌데딱지가 앉은듯 버시럭거리면서 죄여드시였다. 그때 김정숙동지의 귀에 물소리가 들리여왔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물소리였다. 어둠이 나래를 펴고 별빛이 내려앉으면 가락맞춰 주절거리는 그 물소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나 기뻐 두손벽을 치셨다. 그이께서는 물소리를 찾아가시였다. 초막앞을 흐르는 그 시내가 분명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피곤도 시름도 다 잊으시고 그 물길을 따라 낯익은 초막가에 이르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초막밖 멀리까지 나와서 김정숙동지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앓는 자기만 못지 않게 수척해지고 입술에 물집이 잡히신 김정숙동지를 그러안으며 자기가 주책없는 말을 해서 이 고생을 시킨다고 눈물을 흘리였다.

그때로부터 철구아주머니의 병은 훨씬 차도가 있었다. 그는 다시는 산나물소리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아무데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거의 하루건너끔씩 나물하러 떠나가시였다. 이제는 시내를 따라 한 20리 내려가면 쉽게 산나물이 있는 골짜기를 찾으실수 있었다.

오늘 두사람은 시내가에 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두다리를 물속에 잠근채 무릎우에 눕힌 철구아주머니의 머리를 빗겨주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그이의 가슴에 비스듬히 기대여누워 어린애처럼 공순하게 머리를 내맡기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오리한오리 머리칼을 세이듯 조심스레 빗질을 하시였다. 걸핏하면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져나왔다. 워낙 숱이 많지 못한 머린데 이렇게 빠지다가는 인차 머리밑이 드러날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심조심하면서도 흰머리가 나지면 몰래 슬쩍 뽑아서 비벼던지군하시였다.

《아이구 졸려.》

철구아주머니는 나무가지사이로 비껴들어오는 해빛이 부신듯 눈을 쪼프리며 중얼거렸다.

《졸리면 자지요. 푹 한쉼 자고나면 몸에 퍽 좋을거예요.》

《그렇지만 자지는 않겠어.》

철구아주머니는 일부러 이마살을 찌프리며 말하였다.

《호호호, 정말 철구아주머니의 마음은 알수 없군요.》

철구아주머니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이젠 우리가 부대를 떠난지도 퍽 오래 됐지?》

한참 침묵이 흐른후 철구아주머니는 먼 하늘을 초점없이 바라보며 혼자소리처럼 말하였다.

《꼭 30일, 한달이 됐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갑자기 큰 충격을 받고 고개를 번쩍 들어 그날 사령관동지께서 멀어져가시던 숲사이를 바라보시였다.

《이제는 장마도 들었으니 좀 나을는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가···》

그리움에 축축히 젖어드는듯한 철구아주머니의 말소리를 들으며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슴뻑이시였다.

많지 못한 식량예비를 다 초막에 떨구어두고 퍼붓는 비속에 떠나간 대오였다. 풀 한대 자라지 못하고 짐승조차 발붙이지 못하는 이런 원시림속을 뚫고나간 부대가 어떻게 싸움의 길을 톺아나갔을것인가.

사령관동지께서는 한달후에 꼭 찾아오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생소한 이고장에서 어떤 정황에 부딪쳤을지 모르는 부대를 생각할 때 안전한 숲속에 있는 자기들이 부대를 기다린다는것이 어쩐지 송구스럽게 생각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철구아주머니도 자기들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 더 심려하시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애써 그런데로 생각을 끌어가지 않으려고 화제를 돌리군하였다. 하지만 그리움은 어찌할수 없었다. 말은 비치지 않았지만 초막에 매달아놓은 서른개의 버섯이 거의 없어져가자 그들은 공연히 허둥거리면서 마치 당장 어디론가 떠나갈 사람들처럼 배낭속을 정리하고 옷매무시들을 살피군 하였다. 그러나 실지 철구아주머니의 병세는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먼길을 걸을 형편은 못되였다.

한참 그렇게 서둘러대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오면 서로 눈치를 살피며 게면쩍어하였다. 어려운 싸움속에 있을 부대를 생각할 때 사령관동지께서 그 누군가를 보내주시기를 은근히 기다리고있다는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지금쯤 부대는 어디에 있을가?》

철구아주머니는 자기가 날자를 물은것은 다른 뜻이 없고 그저 부대일이 궁금해서 물어본데 지나지 않는다는듯이 슬쩍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 이해 여름은 두만강줄기에서 활동하실 방침을 제시하셨으니 그리 멀리는 가지 않았을거예요.》

《참, 난 정숙동무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어.》

《아이, 철구아주머니, 무슨 그런 말을 다해요.》

느닷없는 철구아주머니의 말에 김정숙동지께서는 깜짝 놀라 눈을 흘기시였다. 새별같은 눈이 빛을 뿌리며 깜박거렸다.

철구아주머니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멍하니 홍조가 피여오르는 축간 그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심해, 부대도 못따라가고···》

《이제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요?》

철구아주머니의 말에 질색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초막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숨가쁘게 속삭이시였다.

《아니.》

황홀해서 그이를 바라보던 철구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반쯤 들며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대답에는 개의치 않고 철구아주머니의 몸을 일으켜 나무그루에 기대여앉힌 다음 서둘러 머리를 뭉그려주시였다. 그리고는 옆차기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초막쪽으로 다가가시였다.

텅- 텅- 통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두 녀인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꼭같이 오늘이 바로 30일째 되는 날이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재영이와 상철이를 거느리시고 초막밖에서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시였다. 그뒤에 기관총소대의 대원들이 주런이 서있다. 두 녀인이 허둥거리며 나무사이에 나타나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손에 들고계시던 나무토막을 땅바닥에 던지시였다. 손수 신호를 올리시였다고 생각하니 김정숙동지께서도 철구아주머니도 다시금 눈앞이 흐리였다. 그때문인지 성한 김정숙동지조차 락엽더미에 자꾸만 걸채여 비칠거리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웃으시며 두 꼬마의 등을 떠미시였다.

두 녀인이 전령병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왔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먼저 철구아주머니의 손을 잡아흔드시였다.

《이제는 산보를 합니까? 병은 아주 일없습니까?》

마지막말씀은 김정숙동지에게 물으시는것이였다. 철구아주머니보다 더 많이 입에 물집이 엉켜붙은 김정숙동지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시는 순간 그이의 안색에는 흐린 빛이 스치시였으나 인차 웃음으로 가리시고 기관총수들을 돌아보시며 우선우선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자 보시오, 우리는 전투에서 이겼을뿐아니라 병과의 싸움에서도 이겼소.》

그러자 강철룡을 비롯한 기관총소대원들이 우르르 두 녀인을 둘러싸고 반갑다고 떠들며 빙글빙글 돌아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철룡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지금 부대는 유통사네 일가가 둥지를 튼 태평촌, 봉산동, 주부골을 한꺼번에 들이친 다음 적들을 더 넓은 지역에서 격파분쇄하며 대중정치사업을 한층 강화할 목적으로 세개방향에 갈라져나가 활동하고있다는것과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렇게 갈라져나간 부대들과 정치공작조들을 몸소 지도하시기에 몹시 분주한 나날을 보내신다는것, 지금도 어느 목재판에 나간 정치공작조의 활동을 지도하시며 아울러 그들을 군사적으로 뒤받침해주시기 위하여 친히 기관총소대를 이끄시고 바쁜 걸음을 떠나신 길이라는것을 아시게 되였다.

《그런데 저희들때문에 이렇게 몸소 오셨단말씀이예요? 모두 말렸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송구한 생각을 금할길 없어 강철룡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참 정숙동무도 답답하군. 일부러 가시자고 해도 못말리겠는데 적들을 치러 가시는길에 들리시는것을 어떻게 말린단말이요. 환자들에 대해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심려하신다는것이야 정숙동무가 더 잘 알지 않소.》

김정숙동지께서는 더는 하실 말씀이 없었다.

기관총소대원들은 와- 숲으로 흩어져가서 나무를 베들인다, 장작을 팬다, 지고온 식량을 건사한다, 초막을 손질한다 하고 무슨 명절놀이나 온것처럼 떠들었다.

그지간에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와 철구아주머니에게 말씀을 하시였다.

《지금 부대의 동무들가운데는 아직 철구아주머니가 끙끙 앓고있을거라고 하는 동무들도 있고 정숙동무까지 열병이 옮아서 앓을지 모른다는 동무들도 있는데 나는 다 나았을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영동무와 상철동무도 나와 같은 주장이고···그런데 와보니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렇지요?》

김정숙동지께서도 철구아주머니도 아무 말씀을 못드리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뭐 별일도 아닌데 왜들 울기만 합니까? 자, 이리들 와 앉으시오. 내가 우리 동무들 선물을 많이 가지고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녀인의 손을 끌어당기시여 초막앞에 앉히신 다음 자신께서도 락엽우에 허물없이 앉으시였다.

《가만, 동무들은 무엇을 좀 차비하지. 재영이는 기억하오? 초막뒤로 돌아가면 옹달샘이 있소.》

그러시면서 두 녀인을 향하여 즐겁게 웃으시였다.

《이번에 우리가 큰 전투를 련속적으로 치러서 후방물자를 많이 로획했습니다. 그래 병세는 어떻습니까? 열은 아주 떨어졌습니까?》

철구아주머니는 그냥 어깨를 들먹거리고있을뿐 말을 못하였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 그지간의 병세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아직 완전히 추서지는 못했지만 병은 깨꿋이 나았다고 보고드리시였다.

《그럼 됐습니다. 병만 나았다면 몸을 추세우는것은 그리 힘들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통졸임도 많이 생기고 밀가루, 사탕가루 같은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련유도 여러통 가져왔습니다. 이걸로 병에 대한 마지막 공세를 한번 들이대여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치 큰 전투를 지휘하시듯 두팔을 쳐드시여 공세를 취하시는 시늉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활짝 열리여 미소를 지으시였다.

철구아주머니도 흐느끼던 고개를 들고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잔주름잡힌 눈귀에는 새로운 눈물줄기가 슴새여나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전에없이 목소리를 높이시여 통쾌한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여기서 우리가 떠날 때 굉장한 비가 퍼부었지요. 그래서 동무들은 아마 걱정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하나도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고생은커녕 우리를 따라오던놈들을 떼놓았다가 저 백일평이라는데서 그놈들을 매복하여 불과 10분만에 근 300명이나 소멸해버렸습니다. 이놈들이 바로 우리를 <토벌>한다고 압록강기슭에서 목을 지키고있던놈들인데 두만강쪽으로 훌쩍 건너뛰자 부랴부랴 옮겨온 봉천2려단놈들입니다. 이놈들을 옮겨앉자마자 사등뼈가 부서지게 쳐놓았더니 놈들의 <토벌>무력의 한 중심이 허물어져서 우리가 두만강기슭에서 적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중요한 열쇠를 쥐게 되였습니다. 이번에 현성부근을 한바퀴 휩쓸어버리고 돌아와서 보니 그놈들이 너무 혼이 나서 동네이름을 페문촌이라고 달았습니다. 겁이 나서 문을 닫아맨다는 소립니다. 그 다음 큰 전투가 이번에 우리가 치르고온 청지동진공전투입니다. 이번 전투의 성과에는 김준삼, 박인섭, 최병규 특히 리성림동무의 공로가 큽니다. 참, 리성림동무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압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치 론쟁이라도 하시듯 성림이가 로동복을 입고가다가 마차를 타고가는 공작대상인 자본가놈과 맞다들리여 그놈을 속여넘기기 위하여 마차와 경주를 하던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이께서 성림에 대해 그렇게도 왼심을 쓰시며 말씀하시는 까닭을 너무나 잘 알고계시였다. 그래서 기쁘면서도 감동이 앞서 쉬 웃을수가 없으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어느새 흐느낌을 그치고 마치 옛말을 듣는 아이처럼 정열에 넘치시는 사령관동지의 얼굴을 황홀해서 바라본다.

《그 다음에 진행한 큰 전투가 유통사일가의 지반을 쓸어버리는 전투입니다. 유통사문제는 우리가 두만강기슭으로 진출하면서 곧 그 필요성을 느낀 문제인데 이번에 잘 풀렸습니다. 유통사의 보위단은 소멸되고 그 재산은 다 몰수해서 인민들에게 분배했습니다. 유통사와 그 작은 조카는 생포해서 지금 우리 밀영에 끌어다놓았습니다. 유통사네 집안이 크기는 큽니다. 태평촌에는 본집이 있고 주부골에는 형네 집이 있는데 큰조카놈이 현경찰국장입니다. 그런 유통사네 지반이 하루밤에 허물어졌으니 놈들에게 타격이 크지 않겠습니까. 내가 봉산동에 가서 군중정치사업을 하는 과정에 유통사의 사돈이라는 령감도 만나보았는데 그 령감은 학자로서 량심도 있고 아는것도 많아서 우리 동무들이 태평촌에서 돌아오는동안 력사이야기를 하면서 민족적량심을 지켜야 한다고 말해주었더니 그 령감도 유통사가 자기 사돈이기는 하지만 나라와 민족앞에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지간의 부대소식을 전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참.》 하고 문득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내가 다 나은 철구아주머니를 만나서 너무 기쁜김에 큰 실수를 할번했습니다. 굉장한 소식이 있소. 굉장한 소식이말이요.》

전령병들은 그이의 말씀을 듣고 웃으며 눈을 깜빡거리고 두 녀인은 웬일인가 해서 갑자기 달라지신 장군님의 안색을 살폈다.

《철구동무, 이번 청지동전투때말입니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슨 옛이야기를 하시듯 허두를 길게 떼시였다.

《우리가 그놈들을 들이치고 숲속으로 철수하는데 인민들이 로획물자를 지고 따라서기도 하고 입대하겠다는 청년들도 오고 참 굉장했습니다.》

《류행가를 부르는 사람도 왔댔습니다.》

하고 옆에서 배낭을 끄르던 상철이가 사령관동지께 귀뜀을 해드리였다.

《그래 참, 그런 사람도 왔댔지. 그사람이 우리앞에서 노래까지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속에 웬 처녀가 말입니다. 맨발을 벗고 유격대가 되겠다고 따라왔단말입니다.》

《저런, 맨발로 어떻게···》

철구아주머니가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하자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것이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신이 벗겨지는것도 모르고 달려왔다는것입니다. 곱살하게 생긴 처년데 속이 얼마나 여물었겠습니까. 그 처녀는 4년전에 오빠가 유격대로 떠나갔는데 그때부터 우리 유격대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있었답니다. 자, 이 처녀가 누구겠는가, 알아맞춰보시오.》

《아니 그건···》

철구아주머니는 수수께끼라도 이런 막연한 수수께끼가 어디 있느냐는듯이 김정숙동지를 돌아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짓고 고개를 기웃하며 생각하다가 웃음섞인 소리로 말씀드리시였다.

《저, 성이나 이름만이라도 대주셔야지 그저 곱살한 처녀라고만 하시면 어떻게 알아맞힙니까?》

《성이나 이름은 대줄수 없습니다. 그것을 대주면 다 대주는것이지. 자, 청지동전투때 왔다. 4년전에 오빠가 입대했다, 가만 그다음 또 한가지만은 대줄수 있소. 그 동무가 나타나자 전 부대가 그를 둘러싸고 야단법석을 하고 녀대원들가운데는 우는 동무들도 많았다. 자, 어떻소?》

《남대원들도 운 사람 많습니다.》

상철이가 또 참견하였다. 재영이가 옆에서 쿡 찔렀으나 상철이는 숙어들지 않고 중얼거렸다.

《나도 봤는데 뭘, 저도 울구선···》

《아,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김정숙동지께서는 벌떡 일어서시였다.

《누구요?》

《한태혁동무의 누이동생, 한필네- 한필네가 아닙니까?》

《맞았소. 필네가 왔단말이요.》

장군님께서는 통쾌하신듯 껄껄 웃으시였다.

《아니 어쩌문···》

철구아주머니는 입을 쩍 벌리고 다음말을 잇지 못하였다.

한식경이나 지나도록 필네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

그런 다음에야 장군님께서는 상철이를 시켜 초막앞에 가려놓은 배낭속에서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게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상철이가 꺼내드리는 물건을 하나하나 가리키시며 설명하시였다.

《자, 이게 모두 련유입니다. 이건 사탕이고 이건 뭐더라? 옳지, 이건 진옥동무가 국내에서 보내온 선물인데 꼭 녀대원들에게만 돌리라고 엄밀히 부탁한것입니다. 그런걸 금숙동무가 조진범동무 몰래 보냈습니다. 뭐 굉장한것 같습니다. 그다음···》

사령관동지께서 다른 물건을 가리키시자 상철이가 제깍 보꾸레미 하나를 내드렸다.

《이건 뭐요? 아니 이걸 여기까지 또 가져왔습니까? 환자들의 생활에 필요한것인지도 모르고··· 좌우간 봅시다.》

장군님께서는 상철이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며 내드리는 보꾸레미를 받아드시고 무게를 가늠해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성림동무가 보내온것이요. 통신원편에 보내온것을 받아두었는데 우리 꼬마들이 가져왔소. 한번 풀어보시오. 아마 틀림없이 훌륭한 선물일거요.》

《전투를 나가신다는데 그건 뭘 가져와요?》

하며 김정숙동지께서는 상철을 흘겨보시였다.

《풀어보지도 못하게 하고··· 궁금한걸 어떻게 해요?》

상철이가 투정비슷하게 말하며 입을 내밀었다.

《허허허, 좌우간 풀어보시오.》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앞으로 보자기를 밀어보내시며 말씀하시였다.

《저 상철이 말대로 장경수동무가 가지고왔는데 장동무에게도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 작식대동무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는것입니다.》

《무엇일가요? 풀어보겠습니다.》

《어서 풀어보시오. 이제는 나도 궁금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보자기를 푸시였다. 보자기는 쉽게 풀렸지만 속에는 마분지곽이 있고 그것을 헤치니 다시 정교하게 짠 나무함이 나졌다.

《아이, 뭘 이렇게···》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느낀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혼자말을 하면서도 어쩐지 긴장되시였다. 철구아주머니는 벌써부터 입을 쩍 벌리고 《어쩌면···》하고 탄성을 올렸다.

뚜껑을 열자 눈부신 광채가 뻗쳐나왔다.

《야-》

두 전령병이 환성을 올렸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놀라시였다.

《아니 이게 주전자 아니요.》

철구아주머니의 놀란 목소리였다.

그것은 네귀에 각각 한개씩 네개의 잔을 받친 품위있게 세공한 양은주전자였다. 안팎이 다 은은한 유백색으로 빛나도록 빛갈도 품위있게 올렸다.

한동안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때마침 숲속을 누벼나온 해볕을 받아 주전자는 눈부시게 빛을 뿌렸다.

《정숙동무가···》

하고 한참이나 지난후 철구아주머니가 끌끌 혀를 차더니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사령부의 주전자가 투박하다고 내내 말하더니 성림동무가 그 소리를 들은게로구만. 그 동무가 그렇게 속이 깊은줄은 몰랐구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없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끌리는 그 주전자를 함채 어루만지시였다. 물건이 좋은것도 좋은것이지만 한시도 마음놓고 눈붙일수 없다는 적들의 한복판에서 사령관동지를 위하여 이처럼 쓸모있는것을 마련해 보내준 혁명동지의 뜨거운 마음이 고마우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태까지 그렇게도 즐거워하시던 기색을 감추시고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전사들의 뜨거운 마음을 읽으실 때마다 언제나 그이의 가슴은 기쁨보다먼저 그들에게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하시는 안타까움을 느끼시는것이였다.

재영이와 상철이만이 저마다 잔 하나씩을 뽑아들고 이리 쓸고 저리 쓸고 하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기관총수들이 그것을 띄여보고 와- 쓸어들었다.

점심은 기관총소대원들이 가지고 온것으로 자기들이 지었다.

김정숙동지께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길래 하는수없이 국의 맛이나 봐주고 사령관동지의 식사만 손수 챙기시였다.

기관총수들은 점심식사가 끝난후 그 자리에서 한바탕 오락회까지 벌려놓더니 사령관동지께서 시계를 보시자 인차 정렬하였다.

적을 치러 나갈 시간이 된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감으로 다시한번 다심한 당부를 남기시고 끝끌한 기관총수들에 옹위되시여 총총히 떠나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