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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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네와 금숙이를 돌려보내시고 오락회장소에 오시니 김인수가 홀로 앉아서 바이올린을 통에 간수하고있었다.

먼발치서 바라보시니 아까 그가 부르던 노래생각이 나시였다. 비애에 젖어 떨리던 목소리며 안타까이 호소하던 눈물에 대한 사연들이 모두 거짓이며 하잘것 없는것임을 가수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유격대원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때문인지 그의 행동거지에는 기쁨조차 어려있는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가수이면서도 자기가 부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조차 모르고 제나름으로 흥분되여있는듯한 그가 측은하게 생각되시여 천천히 가수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김인수는 그이를 뵈옵자 바이올린통을 든채 벌떡 일어서더니 굳어졌다.

《노래를 잘 들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런 깊은 숲속까지 따라와서 수고를 해주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손을 잡아쥐시자 앙상한 가수의 손은 바르르 떨리였다. 그는 서둘러 바이올린통올 내려놓고 두손으로 그이의 손을 맞잡아쥐며 긴장해서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황송합니다. 나라를 위하여 고생이 얼마나 막심하십니까? 저희들 불쌍한 백성들은 그저 장군님 한분만을 믿고사는데 이렇게 건강하신 장군님을 뵈오니 정말··· 기쁩니다.》

김인수는 눈을 슴벅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좀 앉아서 이야기를 해볼가요?》

장군님께서는 먼저 풀밭에 앉으시여 옆자리를 가리키시였다. 그러나 김인수는 선채로 두손을 마주잡고 손바닥을 비비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가 몹시 긴장되였다는것을 알아보시고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그의 집안형편에 대해 대충 알아보신 다음 소탈하신 어조로 물으시였다.

《그래 노래는 어디서 배웠습니까? 학교에 다녔습니까?》

《아니올시다. 학교라고는 보통학교에 좀 다닌것뿐이고 노래는 그저 여기저기서 얻어들은것을 밑천으로 제멋대로 부르는것입니다. 음악이라는것이 본시 본격적으로 하자면 돈이 많이 듭니다. 제 노래라는것이야 흉내를 내는데 불과한것입니다.》

김인수는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여 마주쥔 손을 풀고 손세까지 섞어가며 물으시는 말씀에 대답하였다.

《체계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혼자힘으로 그만큼 노래를 부른다면 대단한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인수가 내려놓은 바이올린통을 열고 활이며 줄을 매만져보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그래 악기도 혼자힘으로 배웠습니까?》

《그렇습니다. 돈이 없으니 학교는 말할것 없고 어디 가서 개인교수를 좀 받자고 해도 어렵습니다.》

김인수는 장군님께서 자기 사정을 리해해주시고 더구나 자기 재능을 높이 쳐주시자 흥분하여 얼굴이 벌개지더니 말소리가 점점 더듬거려졌다.

《그럴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꼼짝 못하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감기기운이 좀 있는것 같은데 그런 목으로 계속 노래를 부르면 목을 아주 못쓰게 만들지 않습니까?》

김인수는 놀란듯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가 이어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지난 봄에 걸린 감기가 통 떨어지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못쓰게 된다고 합니다만···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류행가나 부르는데야 무슨 큰일이 있겠습니까. 목소리가 아주 판이 나면 이걸로 대신 하면 될것입니다.》

바이올린통을 내려다보며 하는 김인수의 목소리는 서글프게 떨리였다.

《그래서야 됩니까? 왜 그냥 떠돌아다니며 류행가나 부르다 말겠습니까? 좋은 노래를 불러야지··· 그러나저러나 감기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땅의 날씨라는것이 낮에는 내리지지다가도 밤이면 선선해서 감기 걸리기가 좋습니다.》

김인수는 시험을 치는 아이처럼 다시 두손을 마주잡고 서서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였다.

조선사람으로서 세상에 이름높으신 김일성장군님을 찾아뵈옵고 충심으로 되는 경의를 표하려고 여기까지 따라오기는 하였으나 그이로부터 이처럼 따뜻한 말씀을 들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기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감동과 경탄이 번갈아 비끼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들나들해진 와이샤쯔를 그래도 단정히 빨아입고 바지주름을 꼿꼿이 세운, 바로 그때문에 더 측은해보이는 이 가난한 방랑가수를 부드럽게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자기 재능을 그렇게 헐값으로 쳐서는 안됩니다. 그런것도 결국은 하나의 타락과 같은것입니다. 김인수동무 역시 자기가 부르는 이 류행가에 빠진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놈의 세상 아무리 해도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더러운 세상인데 아무렇게나 살다가 그만두겠다는 사상이 싹튼것 같습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인수의 손을 따뜻이 잡아 가까이에 앉히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예술이란 고상한것이고 노래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있습니다. 내보기에는 김인수동무에게는 좋은 재능이 있습니다. 나도 노래를 좋아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인수에게 힘을 주시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며 껄껄 웃으시였다.

김인수는 놀란듯 사령관동지의 인자하신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한번 호령하시면 산천초목도 가로눕는다는 천하의 명장이시며 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도 노래를 좋아하신다니 놀랍기만 하였다.

《왜 믿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학교다닐 때 동무들가운데도 노래를 잘하고 이런 바이올린을 잘 켜는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그가운데 한사람은 김인수동무와는 달리 잘사는 집 아이였습니다만 우리와 친하게 되면서 차츰 혁명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짓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유격대에도 노래를 잘 짓는 동무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유격대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모두 우리 동무들이 지은것들입니다.》

김인수의 눈은 점점 커졌다. 하기는 유격대의 노래를 어떤 전문작곡가가 지어주지 않았으리라는것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유격대자체에서 노래를 지어 부른다는 말씀을 듣고보니 어쩐지 자기가 단지 유격대를 잘 몰랐다는 생각만 드는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것 같은 송구한 생각까지 들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고개를 떨구는 그의 표정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여전히 부드러우시면서도 심중하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이제 노래는 고상하고 힘이 있다고 말했지만 모든 노래가 다 그런것은 물론 아닙니다. 같은 노래라 해도 내용에 따라 저속하고 무기력한 노래도 있습니다. 김인수동무는 오늘 우리 동무들앞에서 성의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들은 사람들을 혁명에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눈물과 영탄을 강요하는 노래였습니다. 지금 우리 인민들이 나라와 민족이야 어떻게 되였든지 락화류수에 정신이 팔려 되는대로 살아간다든가 그 무슨 잃어버린 옛사랑이 그리워서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든가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가령 그런 일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유격대원들이 씩씩하고 혁명적인 노래가 아니라 락화류수라든가 사랑에 우는 남양아가씨에 대해 노래하며 눈물을 짓고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총을 잡고 원쑤와 싸워 조국과 민족을 구원할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런 노래의 나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부대에는 한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방금 필네를 돌려보내신 마가목숲쪽을 얼핏 돌아보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그는 여섯살때 두 부모를 지주놈때문에 잃었습니다. 열두살에 난 그의 오빠가 어린 나이때부터 험한 로동을 해서 그를 벌어먹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오빠는 유격대에 입대하여 영웅적으로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그 오빠는 제힘으로 <세계혁명가>라는 155절이나 되는 굉장한 노래를 지어 우리 동무들을 혁명에 불러일으키던 훌륭한 유격대원이였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처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혁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서슴없이 자기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의 누이동생도 그사이 자라서 오빠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빠가 없는 대신 오빠의 애인이 그를 맞이하였습니다. 두 처녀는 이 깊은 숲속에서 만나 서로 그러안고 울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동무는 날마다 우는 어떤 남양아가씨에 대해 노래불렀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 깊은 숲속에서 만나 눈물짓는 우리 두 처녀의 눈물에 비추어볼 때 동무가 애절하게 부르는 그 남양아가씨의 눈물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노래가 사람들을 참된 삶의 길로 이끄는것을 지향하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안일부화의 길로, 탄식과 영탄의 길로 부르는 그런 노래이기때문입니다.》

김인수는 명색이 예술가라고 하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예술의 깊은 세계로 파고드시는 김일성동지의 영채로우신 안광을 황홀해서 바라보면서 차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자신은 자기를 마음속으로부터 예술가라고 치부해본적은 없었으며 자기의 노래 역시 밥벌이수단으로 생각했을뿐 그 이상의것이 될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아가서 예술이라는것자체가 화장품처럼 눅은것 비싼것이 있을뿐이지 통털어 밥벌이수단이라는 의미에서는 같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노래부를수 없는 자기의 불우한 처지를 그렇게 위안해왔던것이다.

이제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의 속된 노래를 꾸중하실 대신 예술자체를 고상한것으로 쳐주시고 예술가라는것을 값높이 일러주시니 그것만 해도 그로서는 고맙기가 그지없었다.

《장군님.》

하고 깊이 머리숙이고있던 김인수는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부르는것이 무슨 예술이겠습니까. 저는 돈에 팔려다니는 노리개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장군님 말씀을 듣고보니 저는 저도모르는사이 왜놈들과 부자놈들이나 좋아할 일을 했습니다. 저는 그런것을 모르고 노래를 좋아하다나니 돌아가는 류행가를 아무 생각없이 흉내를 냈습니다. 이제 저같은것이 바로 살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길게 길러서 빗어붙인 방랑가수의 괴로와하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노래가 다 나쁜것이 아닙니다. 노래는 그 내용에 따라 사람들을 슬프게도 만들고 기쁘게도 만들며 용감하게도 만들고 무기력하게도 만드는것입니다. 김인수동무는···》

하고 장군님께서는 동무라는 말을 강조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인민들을 나라를 찾기 위한 싸움에 불러일으키는 노래를 불러야 할것입니다. 그들이 슬픔에 눈물짓더라도 빼앗긴 나라를 도로 찾고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기 위한 싸움에 떨쳐나서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밝은 앞날이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씩씩하게 살아나가도록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자면 노래부르는 사람자신이 씩씩하게 혁명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상철동무, 그 노래집을 좀 봅시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령병을 부르시여 그에게서 자그마한 수첩같은것을 받아쥐시였다.

《자,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 유격대에서 부르는 노래집입니다. 물론 가수인 동무의 눈으로 보면 좀 단조로운것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많은 조선의 아들딸들을 혁명에로 불러일으킨 훌륭한 노래들입니다. 이런 노래들을 우리 인민들에게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훌륭한 혁명의 무기로 될것입니다.》

김인수는 정중한 표정으로 장군님으로부터 노래집을 받아들었다. 유격대의 출판처에서 등사로 찍어낸 그 노래책은 이미 여러군데 종이를 덧대고 부치기도 한 오랜것이였다. 그것이 바로 나라를 찾자고 밀림속에서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며 싸워나가는 항일유격대원들의 노래책이라는것을 생각할 때 김인수는 그이의 말씀속에 깃들인 보다 깊은 뜻을 깨닫는듯하였다.

방금까지도 총잡고 둘러앉은 유격대원들앞에서 비애에 젖은 목소리로 《남양아가씨》를 불렀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자기라는 인간이 혐오스럽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장군님, 저도 이 노래를 배우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그러나 그 노래들은 한구절만 해도 원쑤들에게 목숨을 빼앗길수 있습니다. 그만큼 왜놈들이 두려워하는 노래들입니다. 그러니 아무데서나 부를수는 물론 없습니다. 동무는 그 노래들을 장소나 대상을 잘 골라서 인민들의 가슴에 넣어주어야 할것입니다. 이런 혁명의 노래는 꼭 폭탄과 같습니다. 도화선에 심지만 달아놓으면 튀듯이 이 노래들은 어디 가서 한번씩만 불러도 인민들속에 커다란 영향을 줄수 있습니다.》

김인수는 손바닥안에 드는 자그마한 노래책을 번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이런 노래를 부르다가 왜놈에게 붙잡혀 죽는다 해도 원이 없겠습니다. 저는 사실 청지동에서 다른 청년들과 함께 여기까지 유격대의 짐을 메고 따라왔지만 각오가 똑똑한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래도 입대를 청원했지만 역시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지휘관의 말이 왜놈들과 싸우는데는 반드시 총을 잡고 싸우는 길만 있는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장군님 말씀까지 듣고 보니 그 지휘관의 말이 옳은것 같습니다. 장군님 말씀대로 저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대신 장군님께서 저에게 이런 노래를 어디 가서 부르라는것을 가르쳐주도록 아래사람들에게 지시해주십시오. 저는 우리 조선땅 어디에나 장군님의 령을 받드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압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의 지도를 받도록 해주십시오.》

《허허허, 좋습니다. 가보십시오. 내가 우리 동무들과 토론해보겠습니다.》

김인수와의 대화는 방금까지 필네때문에 그렇게도 아프게 죄여드시였던 그이의 가슴을 어느 정도 풀어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인수틀 돌려보내신 다음 조직과장을 부르시여 그가 떠나가는 지방의 조직과 련계를 짓도록 조치를 취해주라고 이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