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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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를 따라나선 인민들은 쉰사람이 잘되였다. 그가운데는 로획물자를 지고온 중년축들도 있고 기어이 유격대에 입대하겠다는 청년들도 엇섞여있어서 어차피 일부 사람들은 돌려보내야 하였다. 입대를 청원하는 사람들도 덮어놓고 다 받을수는 없었다. 가정사정도 있을것이고 본인의 각오정도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밀림속으로 깊이 들어가기전에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하겠기때문에 처음에 휴식하였던 자리에서 얼마 못가서 다시 대휴식에 들어갔다.

여기서 좀 늦었지만 아침밥들을 지어먹고 지휘관들이 인민들과 사업하는 사이 대원들은 오락회를 벌렸다.

청지동의 왜놈군대를 단숨에 들이쳐서 요정을 낸 큰 전과에다 로획품도 많고 거기에 또 끌끌한 청년들이 수십명이나 따라나섰기때문에 유격대원들은 신이 났다. 오락회는 여느때없이 흥성거리였다.

한다 하는 춤군, 명창들이 다 불리여나와서 유격대원들의 슬기를 시위하였다.

눈부신 해발이 숲속을 들이비쳐 밤사이 내린 이슬이 말라드는 푸릿한 안개가 나무가지사이를 감돌고 산들바람은 씁쓸한 풀향기와 송진내를 실어왔다.

우짖던 뭇새들도 숨을 죽이고 기세충천한 유격대전사들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준삼공작조에서 올려보낸 정찰자료를 무릎우에 펴놓으시고 이제 유통사의 동네로 들여보낼 강철룡소대장에게 필요한 주의를 주시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 청지동진공전투를 전후하여 공작조에서 보내온 보고나 지방인민들의 여론을 통하여 이 지방에서 유격투쟁과 정치사업을 확대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일제침략무력과 통치기구를 제압하는 동시에 유통사일가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것을 재삼 통감하게 되시였던것이다.

《지금 보위단은 이미 무장을 빼앗겨서 해체되나 다름없고 집안구조도 준삼동무가 다 알아냈으니 동무들은 주로 유통사의 형이 산다는 주부골과 사돈집이 있다는 봉산동 형편을 잘 정찰하는데 기본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태평촌으로 접근하는 도로주변과 마을의 동태도 잘 알아내야겠소. 그 다음 우리가 다시 숲으로 들어오는 로정에 대해서도 미리 정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철룡은 전에없이 심중한 표정으로 준삼이가 그려보낸 략도를 구멍이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더니 문득 고개를 들었다.

《사령관동지, 별일 없으면 우리 정찰조가 일을 다 제껴버리면 어떻습니까?》

《회양동경찰을 해치우듯하겠단말입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놈들 한두놈을 제끼자는데 문제가 있지 않습니다. 인민들속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보여주어서 인민들이 혁명에 신심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들에게 압력을 가하자는것입니다. 저놈들이 저희네 후방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것을 느끼고 벌벌 떨게 해야 한단말입니다. 이것이 이 여름에 우리가 해결하자는 전략적목표의 하나입니다. 그러자면 적정을 면밀하게 정찰한 기초우에서 전투를 빈틈없이 조직해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전 그런 생각은 못하고···》

하고 강철룡은 게면쩍은듯 얼굴이 벌개지더니 인차 정색하여 말하였다.

《빈틈없이 정찰해오겠습니다. 태평촌은 제가 자주 다녀본 고장이기때문에 자신이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강동무를 보내는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무릎우의 략도를 착착 접으시여 강철룡에게 내미시였다.

숲속에서는 여전히 박수소리와 떠들썩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더니 가뭇 조용해졌다. 그 누가 새로 불리여나오는 모양이다.

《우리가 철구동무네와 약속한 날자가 다가오는데 그전에 전투를 할수 있도록 부대로 돌아와야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이제 떠나면 늦어도 이틀이면 돌아올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강철룡과의 이야기를 끝내시고 막 일어서시려 할 때였다.

오락회장소에서 새로운 노래소리가 울리여왔다.

 

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물에 ···

 

김일성동지께서는 깜짝 놀라 소리나는쪽을 돌아보시였다.

《저게 무슨 소리요?》

강철룡도 놀란듯 눈만 끔쩍끔쩍하더니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하였다.

《무슨 락화류수라고 하는것 같은데··· 그 깽깽이통을 메고온 사람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처럼 놀랍게 돌아보시던 눈길에 미소를 담으시고 말씀하시였다.

《그런것 같습니다. 강철룡동무는 저런 류행가를 처음 듣습니까?》

《듣기는 더러 했습니다. 입대전에는 우리 마을에도 잘 부르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정찰을 나가서도 듣고 했습니다만 이건 유격대숙영지가 아닙니까.》

강철룡은 리해할수 없다는듯이 그이의 얼굴과 오락회장쪽을 번갈아보며 말하였다.

《그래서 나도 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민들과 함께 오락회를 벌렸으니 그럴수도 있지 않습니까? 류행가치고는 잘 부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몹시 놀라 어쩔바를 모르는 강철룡의 표정을 흥미있게 살펴보시였다.

《그렇지만 그 사람 정신이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유격대에 와서 저따위 썩어빠진 노래를 부르다니··· 제가 가서 걷어치우라고 말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러면 됩니까? 손님이 모처럼 우리 유격대를 위해서 성의를 다하여 부르는것인데··· 가만 들어보시오. 성의를 가지고 부른다는것이 알려지지 않습니까? 우리 동무들이야 저런 노래쯤 몇마디 들었다고 마음이 흔들리겠습니까? 좌우간 유격대생활에서는 들어보기 어려운 노래입니다.》

그러자 강철룡도 낯색이 좀 풀리면서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전에는 그렇게까지 생각못했는데 산속에서 들으니 참 별스럽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노래는 계속되였다.

노래가 끝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풀밭에 빙 둘러앉은 유격대원들치고 저런 노래를 심상하게 들을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그러면서도 모처럼 부대를 찾아온 인민들이라 해서 너그럽게 대해주는 그들의 마음씨가 대견하게 생각되시였다.

웅성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류랑가수가 또다시 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사랑에 우는 어떤 남양아가씨에 대한 노래였다. 가수는 아까보다 더 기분을 내여 구슬프게 목소리를 떨었다.

《막 우는것 같습니다.》

마침내 강철룡이 급해맞은 소리를 질렀다.

《허허허, 그렇게 울어서 사람들을 비감에 잠기게 하자는것이 저런 노래들의 목적입니다. 가수는 아마 그런것까지는 모르고 잘 불러보겠다고 애를 쓰는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박한 강철룡의 말이 어쩐지 유쾌하게 생각되시면서도 한편 노래부르는 가수를 생각하시니 가슴이 아프시였다.

이때 금숙이가 소리없이 다가왔다.

《사령관동지.》

하고 그가 보고를 드릴 때까지 인기척을 못 느끼였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눈물이 그렁해있는 처녀의 얼굴을 보시자 가슴이 덜컥하시였다. 언제나 금숙이만 보시면 그의 안색부터 살피게 되는 그이시였다.

그런데 금숙이가 왜 흥성거리는 오락회에서 빠져나왔을가? 처녀의 얼굴은 얼핏 보매도 무슨 일인가 생긴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벌써 그이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고드는것이였다.

《웬일입니까? 왜 오락회에 참가하지 않았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빨갛게 상기된 금숙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긴장된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사령관동지, 그 동무의 누이동생이 왔습니다.》

금숙은 고개를 곧바로 쳐들고 뜻밖에도 또렷한 목소리로 말씀드리였다. 몹시 흥분은 되였으나 언짢은 일은 아닌듯하다. 그쯤만 해도 그이의 가슴은 어느정도 가라앉는듯하시였다.

《그 동무의 누이동생이라니 그건 누구입니까?》

《태혁동무말입니다. 태혁동무의 누이동생이 사령관동지를 찾아왔습니다.》

《뭐요?》

사령관동지께서는 너무나 큰 충격에 자신도 모르는사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시였다.

《그럼 필네가 왔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필네가 찾아왔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가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두르시며 먼저 발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재봉대에 있습니다. 지금 모두 필네를 둘러싸고 야단입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녀동무들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았구만. 자, 홍동무도 빨리 걷소. 우리 재영이가 알았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아가겠는데···》

사령관동지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강철룡의 소매를 잡아 이끄시며 걸음을 다우치시였다.

총총히 막아서는 이깔나무가 성가시게 생각되시였다. 찬서리 얼어드는 숙영의 밤 잠못 드시는 그이의 가슴속에 파고들군하던 필네의 모습은 언제나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에 무명수건 한끝으로 귀를 싸매고 해여진 짚세기를 얼어서 통통 부은 발끝으로 끌며 열두살 어린 오빠의 손에 매달려 종종걸음을 치는 불쌍한 모습이였다. 이제 장성하여 다 큰 처녀가 되였다지만 언제나 그이의 가슴속에는 여섯살짜리 필네가 터갈린 작은 손으로 구원을 부르는 모습으로만 살아있었다.

금숙이와 장경수, 재영이가 갑산땅까지 그를 찾아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겉으로 드러내시지는 않으셨지만 이제는 찾을 길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에 여러날을 잠못 이루신 그이시였다.

그 필네가 혁명의 품을 찾아온것이다. 급하신 그이의 마음에는 이날따라 숲속의 나무도 너무 배게 들어서서 발걸음에 자꾸 걸채이는것만 같으시였다.

마침내 툭 트인 공지가 나졌다. 듬성듬성 마가목과 쇠스래가 들어선 그 풀밭에 녀대원들이 휴식하고있었다.

마지막 외따로 선 이깔나무그루를 한팔로 휘감고 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필네가 알고왔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은 너무나 비약되여있었고 또 긴장되여있었다.

뒤따라오던 금숙은 고개를 푹 숙이였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려주었습니까?》

《아직··· 그런데 찾습니다. 다행히 동무들이 자꾸 찾아와서 여태 피해왔습니다만 아까부터 두리번두리번 찾는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나무그루를 놓으시였다.

《필네가 나더러 오빠를 내놓으라면 내가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이께서는 혼자말처럼 되뇌이시며 걸음발을 늦추시였다.

급히 따라가던 강철룡은 고개를 숙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걸음을 옮겨놓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사실을 그대로 말해주어야 하겠습니다. 한태혁동무가 희생된것도 말해주고 그가 이룩한 공적도 다 말해주어야겠습니다. 제발로 유격대를 찾아온 처녀이고 또 한태혁동무의 누이동생이니 능히 슬픔을 박차고 일어날수 있을것입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은 두사람에게 의논을 거시는듯하였으나 강철룡도 금숙이도 아무런 말씀을 올릴수 없었다.

그렇게도 찾으려고 애쓰시던 필네를 정작 만나시게 된 이 기쁜 순간에 나어린 처녀앞에 오빠를 내세워주지 못하시여 가슴아파하시는 그이의 심중을 생각할 때 차마 머리도 들수 없었다.

《왜 그러고들 있습니까? 빨리 갑시다.》

사령관동지의 이런 말씀이 울리여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들의 발걸음은 멎어서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근엄하신 가운데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해하시며 다시금 걸음을 다우치시였다.

두사람도 서둘러 그이의 뒤를 따랐다.

마가목이 듬성듬성한 그 공지에서는 떠들썩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저쪽 숙영지쪽에서는 남대원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저 동무입니다.》

한 나무뒤에서 금숙은 그이께 필네를 가리켜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성한 마가목가지너머로 새하얀 적삼에 까만 무명통치마를 입은 처녀를 바라보시였다.

녀대원들이 저마다 손등을 쓸어만지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하는 가운데 처녀는 가슴우에 돌려놓은 굵직한 머리태를 매만지고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고개를 숙이는것을 보니 다 자란 처녀다. 그러다가 사람들로부터 외면하느라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순간 그이께서는 가슴을 박 긁는듯 띠끔한것을 느끼시였다.

신통히도 태혁이틀 닮은 눈이다. 수더분하면서도 완강한 성격이 그 억실억실한 눈길에 다 드러나있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뜯어보면 오빠와는 또 판판다른 외양을 하고있다. 어디에도 태혁이와 같은 거쿨지고 악마디진 구석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홰친홰친한 느낌이 들만큼 섬세한 륜곽을 가지고있었다. 앉아있어서 키가 얼마나 되겠는지는 몰라도 쑥 빠진 목이며 둥근 어깨며 어디를 보아도 활짝 피여난 처녀였다.

어쩐지 김일성동지의 눈굽은 축축히 젖어드시였다.

《어떻습니까? 잘 생기지 않았습니까?》

강철룡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물어보시는 그이의 어조에는 어딘가 제자식을 두고 남의 확인을 받고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리여있었다.

《훤합니다.》

강철룡은 눈을 슴뻑거리며 여느때없이 격렬한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오빠를 닮아서 어느모로 보나 빠진데가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자랑에 넘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다시 필네를 찬찬히 바라보시였다.

때마침 오락회장소에서도 와- 하고 사람들이 흩어져왔다. 어느새 필네가 왔다는 소문이 돈듯하다. 태혁이와 친하던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의 전사들이 앞장서서 달려온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잠시 그들의 흥분된 얼굴들을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아무래도 나는 좀 있다가 만나는것이 좋겠습니다. 저렇게 찾아오는 동무들이 많은데 내가 가면 저 동무들이 인사를 나눌틈도 없을것 같습니다. 이따가 좀 조용해지거든 금숙동무가 필네를 데리고 나한테로 오시오. 그리고 홍동무는 지금 가보는게 좋겠습니다. 가서 태혁이 이야기를 잘해주시오. 그가 다른 사람이 평생을 두고도 이룩하기 어려운 일들을 수많이 해놓은데 대해 다 말해주시오.》

그러시고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사령부자리에 돌아오시여 숲속에 가로누운 진대통에 홀로 앉으시니 갑자기 사위가 괴괴한 침묵속에 빠져든듯 하였다. 오락회는 중단되고 모두 필네 있는데로 달려가버린듯하다. 이제 머지 않아 필네가 나타날것이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것인가? 아직 나이 어린것이 인간생활에서 가장 고귀한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때문에 목숨보다도 자유와 해방을 더 귀중히 여긴다는것을 리해할것인가?

그이께서는 다시 일어서시여 숲속을 거니시였다.

얼마후 상철이가 돌아왔다. 그는 사령관동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잠자코 뒤만 따르더니 그 머루알같은 눈을 슴뻑거리며 말씀드리였다.

《저, 데려오랍니까?》

《지금 모두 모여들 있겠지?》

사령관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나어린 전령병의 심각해진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자꾸 모여드는데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게 얼마나 좋소? 혁명전우를 귀중히 여기기때문에 그러는것이 아니요? 모두 기뻐들하겠지?》

《기뻐합니다. 우는 동무들이 많습니다. 강철룡소대장동무는 어떻게 떠드는지 무슨 토론회나 하는것 같습니다.》

상철이는 거기서 벌어진 일들을 한참 이야기하더니 다시 《데려오랍니까?》 하고 물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이 어린 상철이가 벌써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에 대해 그렇게도 왼심을 쓰는것이 기특하시여 그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시였다.

《그래, 가보라구. 가서 동무들이 흩어져갔거든 금숙동무에게 가자고 말하라구. 그러나 서두르지는 말고···》

《알았습니다.》

상철이가 달려나가니 다시금 숲속은 괴괴한 침묵속에 빠져들었다. 벌레소리만 쉬쭉쉬쭉할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숲속은 결코 숨죽인 심연은 아니였다. 대지의 숨결인듯, 지심깊이에서 용솟음치는 그 무슨 열정의 태동인듯 와- 와- 울부짖으며 뒤설레이는 메아리가 울려오는듯하시였다.

그것은 사령관동지자신의 가슴속에 끓어번지는 한시도 가라앉을줄 모르는 열정때문에 그렇게 느껴지실뿐 숲속은 역시 정적에 묻혀있었다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사람이란 과연 무엇인가?

오래전에 우리곁을 떠나간 리광의 얼굴, 오중화의 얼굴 그리고 최성택이며 한태혁의 얼굴이 차츰 희미해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더 그 특징이 뚜렷이 살아나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에게는 육체보다 더 귀중하고 더 근본적이며 영원한 정신적생명, 정치적생명이 있다. 세상만물이 가지고있지 못하는 그러한 목숨을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있기때문에 바로 인간을 만물의 령장이라고 하는것이며 또한 그때문에 인간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우주의 주인으로 된것이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인류의 진보를 위하여 그 영원한 생명을 불태울 때 사람은 죽지 않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필네를 안타까이 기다리시였다. 아무리 어린 처녀에게 주는 타격이 크다 하더라도 영원히 자기 오빠가 우리 혁명의 기억속에 살아있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슬픔에 견디지 못할것도 없을것이였다.

그러시면서도 그 말을 어떻게 시작할것인가 하는데서는 난감한것을 느끼시였다. 뚜렷한 말마디들이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대단히 중요한 회의를 준비하실 때조차 이렇게 생각이 막히여 답답해본적은 없으시였다.

그러나 정작 금숙이가 필네를 데리고 소리없이 다가와서 보고를 올렸을 때 그리고 필네가 그이앞에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깊숙이 절하였을 때 그이의 가슴속에서는 이런저런 근심이 가신듯이 사라졌다. 필네가 공손히 인사말씀을 올리자 장군님께서는 반갑게 그의 두손을 잡고 흔드시였다.

《참, 용케 찾아왔어. 내가 찾느라고 했지만 종시 못찾았는데 필네가 제발로 찾아오니 이렇게 쉽게 만났구만.》

잠시후 진대통에 필네를 앉히신 장군님께서는 잔잔하신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전 여기 와서야···》

하고 필네는 금숙이쪽을 돌아보며 말씀드려도 일없겠는가 묻듯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하였다.

《유격대가 저를 찾느라고 오빠이야기를 캐물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고있다가 갑자기 장군님을 뵈오니 더 기쁩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말인가. 장군님께서는 가슴속이 활짝 밝아지는것을 느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래, 나도 그렇소. 나도 오늘에야 우리 공작조동무들이 필네를 거의거의 다 찾아낼번하다가 그만 놓쳐버렸다는 보고를 받았소. 필네가 이제는 다 자랐는데 남의 신세를 지면서 나를 찾아오겠나. 제발로 찾아와야지. 그런데 오다가 신을 잃어버렸다면서?》

《덤비다가 그만··· 언니는 괜히 그런 말씀까지 드리구···》

필네는 부끄러워 금숙이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금숙동무가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 전령병동무한테 들었지.》

《저도 행군하면서 장군님을 뵈왔습니다.》

어찌다가 문득 이야기가 중단되였다. 한번 중단된 이야기를 다시 잇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그시 죄여드는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시여 일어서시였다. 두그루 이깔나무 있는데까지 걸어가셨다가 되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진대통우에 나란히 앉은 두 처녀앞에 서시였다.

《필네의 오빠가 참 대단한 유격대원이지.》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갑자기 어조를 높이시며 말씀하시였다.

《한번 전투에 왜놈들을 기관총으로 몇백명씩이나 잡은 때도 있소. 그게 어느때던가? 륙도구때였지? 계속해서 진행된 쌍산자전투때도 그랬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금숙이의 동의를 구해가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마 기관총을 쏘는데는 이 세상에서 필네의 오빠를 당할 사람이 없을것이요. 기관총만 잘 쏘겠소. 바느질을 하라면 필네나 이 금숙동무보다도 더 낫지.》

두 처녀는 진대통우에 나란히 무릎을 마주대고앉아 한태혁이 자랑에 열중해계시는 사령관동지의 얼굴을 눈 한번 깜빡 않고 황홀해서 바라보고있었다.

잠시 말씀을 끊으신 그이께서는 저만치 걸어가시다가 멈추어서시였다.

《필네는 <세계혁명가>라는 노래를 들어봤소?》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런 노래가 있다고 아까 전령병동무가 말해주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자신께서 하시는 모든 이야기를 필네가 이미 다 들었으리라는것을 짐작하시고 저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장군님!》

필네는 벌떡 일어나더니 달려왔다. 장군님께서는 긴장되시여 돌아서시였다. 필네는 무너지듯이 그이의 가슴에 안겨 쓰러졌다.

《저는 다 압니다. 이제는 그만두십시오. 저는 울지 않습니다.》

흐느끼며 웨치듯 말하는 필네의 물결치는 어깨를 두손으로 잡고 서신 그이께서는 일순 할말을 찾지 못하시였다.

《알다니?》

《저는 오빠가 전사했다는것을 다 압니다.》

《다 안다? 어떻게 알았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먼 허공을 바라보시며 석쉼하게 갈린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기관총소대장아저씨가 오빠가 쓰던 기관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다 짐작했습니다.》

《그렇게 되였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용히 혼자말씀처럼 외우시다가 기진할듯 흐느끼는 필네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그렇게도 힘들게 생각해오시던 말씀을 마침내 터쳐놓고야마시였다.

《그래, 필네의 오빠는 지난겨울 위험에 빠진 조선혁명을 구원하려고 힘겨운 행군을 해올 때 우리 혁명을 위하여 용감하게 전사하였소. 필네가 어린 몸으로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며 그리워하다가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며 찾아왔는데 오빠는 없소. 그러나 필네도 보다싶이 오빠의 위훈도, 오빠의 노래도 우리 혁명군에 그대로 남아있지 않소.》

장군님의 목소리는 격정에 떨리였다.

《장군님.》

필네는 마침내 소리내여 울었다. 끅-끅- 숨이 막히도록 흐느끼며 몸부림쳐 운다. 진대통우에서는 금숙이가 소리없이 흐느끼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실로 백만대군을 겪기보다도 더 아름차신 정신적부담앞에서 지그시 눈을 감으시였다.

《실컷 울라구! 앞으로라도 울고싶을 때는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마음껏 울라구. 그러나 다른데 가서 울지는 마오. 죽을 때조차 웃으며 숨을 거둔 혁명가 한태혁의 누이동생은 사람들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돼.》

얼마쯤 울음소리가 즘즛해졌을 때 장군님께서는 필네의 어깨를 쓸어주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필네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짓물린 두눈이 빛을 뿌렸다.

《장군님, 정말 다시는 울지 않겠습니다. 저는 아까 언니한테서 저를 찾으시려고 언니랑 여러 사람을 갑산에까지 보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다시는 이런 걱정을 끼치지 않겠습니다.》

《금숙동무가 그 이야기까지 다 했구만.》

사령관동지께서는 금숙이쪽을 돌아보시였다. 금숙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슬퍼서 우는 울음이 아니였다. 지난날은 저렇게 마음놓고 울지도 못하던 금숙이였다. 그때 차라리 몸부림치며 시원히 울기라도 해주었다면 가슴이 덜 아팠을것이다. 그는 태혁이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조차 울지 않았다. 그렇게 가슴깊이 묻어두고 지내기에 그 슬픔은 좀처럼 사라지지도 않고 또 보는 사람의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해주기도 하였었다. 이제 금숙은 눈물을 이리저리 훔치며 마음놓고 운다. 그 눈물이 마지막으로 가슴깊이 박힌 슬픔의 얼음덩어리를 녹여내리고 태혁이 대신 필네와 손잡고 씩씩하게 혁명의 길을 걸어갈 그런 결의가 어린 눈물이라는것을 느끼실 때 사령관동지의 가슴도 젖어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시한번 필네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그래도 울고싶은 때가 가끔 있겠지. 그럴 때는 나를 찾아오든가 금숙동무를 찾아가라구. 그러나 제일 좋기는 슬픔을 디디고 일어서서 오빠처럼 씩씩하게 싸워나가는거요.》

《알았습니다. 저는···》

필네는 또다시 울먹울먹하다가 겨우 진정하고 잠시 숨을 톺은 다음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저는 오빠대신에 장군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저는, 저는 울지 않습니다.》

《고맙소.》

필네는 쓰러지듯이 금숙이에게로 달려가더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운 다음에야 겨우 진정하였다.

눈물은 마치 진정제와 같이 처녀의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얼마동안 기진할듯이 울고난 필네는 금숙이가 눈짓을 하자 퍽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장군님께 인사를 드린 다음 금숙이의 손목을 잡고 숲속길을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