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1

 

제 3 편

1

 

진흙과 황토먼지와 굴곡없이 밋밋하게 뻗어간 등성이들로 이루어진 대지의 한끝에 불쑥 주먹을 내밀듯이 세개의 바위산이 불거져올랐다.

광막한 초원과 밀림에 익숙된 사람들에게는 알쭌한 바위로만 이루어진 그 산모습부터 신기하게 보였던지 이름도 삼선봉이라 지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금 삼선봉일판에서 벌어지고있는 죽음의 고역과 생지옥같은 생활상, 한알갱이의 금붙이때문에 입에 거품을 부걱거리며 물고뜯는가 하면 채찍을 휘두르고 칼부림을 하고 수많은 로동자들의 등껍질을 벗겨내는 로동판의 정경은 어느모로 보나 삼선봉이 아니라 삼마봉이라 해야 옳을것 같았다.

리성림은 컴컴한 굴속에서 밀차를 밀고나오며 짝패인 중년의 광부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은 만주광업에 온지가 오래 되였소?》

《오 오래 되였지요. 개발할 때부터니까··· 그때는···》

버럭산쪽으로 물매가 높아져서 그는 말을 못하고 앙상한 가슴을 들먹거리며 끙끙 힘을 썼다.

성림이도 적당치 못한 때 말을 꺼냈다는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굴속이 희미해지는것을 보면 곧 난장이다. 그는 돌가루때문에 페가 다 못쓰게 된것이 분명한 짝패의 쿨럭거리는 모습이 애처로와 밀차 중간으로 어깨를 옮겨대며 힘을 썼다.

난장에 나오니 눈부신 해빛이 쏟아졌다. 가스내가 떠돌던 굴속과는 달라서 생신한 바람도 불어온다. 그대신 불시에 더워지기도 했다,

두사람은 밀차끝에 달아놓은 간데라불을 낮추었다.

갱구앞에 쪽걸상을 놓고 앉아있던 광산순사가 딱따구리지팽이로 밀차판을 쿡쿡 지르며 소리쳤다.

《여, 김용필이, 버럭더미에 가서 함께 묻혀버리는게 어때? 굼벵이처럼 버럭 한차 실어내는데 그렇게나 꾸물대서 밥벌이나 하겠는가? 노다지는 언제 캐겠는가?》

《나는 죽어도 버럭더미에 깔려죽지는 않겠소. 좋은 땅이 많은데 죽어서라도 푹신한데 좀 누워야지요.》

김용필이라는 짝패는 쿨럭쿨럭하면서도 순사를 보고 이그러진 대답을 하였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는지 열걸음도 못가서 가래침을 탁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개같은놈, 버럭은 저절로 굴러나오는줄 아나··· 어이구, 식솔만 없다면···》

식솔만 없다면 개같은놈들과 해볼대로 해보고 결판을 내겠다는것이다.

성림은 묵묵히 힘을 썼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 망탕 버럭을 내버리다나니 버럭산은 갈수록 물매가 급해진다. 금천동광산도 일제의 만주중공업회사 산하로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광산꼴이 잡혔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오소리굴들만 뻥뻥 뚫려있던 곳이라 끼니를 든든히 에우지 못한 운반공들이 갑자기 난장에 나와서 어지럼증에 비칠거리다가 밀차에 깔려나가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겨우 버럭산끝에 와서 밀차를 뒤집어엎고나니 성림이도 이마에 식은땀이 발발 내솟았다.

김용필은 아예 도끼날같이 비죽비죽한 버럭더미우에 퍼더버리고앉았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가슴을 오르내리며 숨을 톺더니 찐득찐득한 땀을 주먹끝으로 쓱쓱 문대고 아까 동강난 말을 이었다.

《그때는 이런 밀차길도 없고 선광장같은것도 없었지요. 지금 한창 개미역사하듯하는 개인광주들의 굴이나 같았소. 수굴로 다 뚫어냈지요. 아마 우리 형제의 손으로 끌어낸 돌덩이가 이 버럭더미 하나는 잘될거요. 그러다가 허파에 돌가루가 차니 사람을 이렇게 괄세한단말이요. 광산에서는 이 밀차공이 초입이자 막다른 골목이지요. 나는 막다른 골목에 왔고 젊은이는 초입에 들어서서 이렇게 만난 셈이웨다. 허- 기가 막히게 만났지요. 그래 벌어먹을데가 정 없습데까? 하필이면 이런 사지판을 찾아오게···》

《나도 조선서부터 이런 두더지노릇을 좀 했댔지요. 소문에 금천동경기가 좋다길래 찾아왔더니 밀차공노릇을 좀 시켜보고 합격을 해야 정식채용을 해서 막장에 넣어주겠답디다.》

《하기는 여기서 지금 만주광업의 밥탁에 얻어걸리기가 쉽지를 않소. 그렇게 힘들게 굴속에 들어가서 한 삼년 돌가루를 마시고나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지요. 그러다가 종당에는 쫓겨나고··· 엑 -더러운놈의 세상!》

《더러운놈의 세상을 그냥 두고 가래침이나 뱉고있겠습니까? 이 밀차 뒤집듯 뒤집어버려야지요.》

《아, 아니 젊은이, 이제 그 무슨 소리요?》

용필은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형님.》

하고 성림은 용필의 쇠갈구리같은 손등을 쓸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한뉘 이렇게 살다가 말겠소? 이게 다 누구때문이요?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때문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가슴에 돌가루가 가득차도록 일을 해도 먹고 살길이 없는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엎고 나라를 찾을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무맥하게 밀차길로 들어가서 밀차길로 되밀려나와 죽고말겠소?》

《젊은이는 무슨 사람이요?》

용필은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왜 보면 모르겠소? 내가 형님같은 굴쟁이가 아닐것 같소?》

용필은 한참 성림의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새삼스럽게 옆채기를 뒤져서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성림이에게도 권하였다. 팥알같이 낮아진 간데라불에 담배를 갖다대는 용필의 손은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는 짐짓 마음속에 번져가는 그 어떤 파문을 감추려고 애쓰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보아하니 젊은이도 우리네와 같은 광부는 광분데 머리속에 먹물이나 좀 들어갔군. 허지만 그런 말 아예 다시는 입밖에 내지를 마오. 여기 감독, 순사가 얼마나 되는지 아오? 까딱하다가는 찍소리도 한마디 못지르고 죽는판이요. 저 옛날 화약고자리에 무시무시한 비밀감방을 차려놓았다는것을 알기나 하오? 거기에 끌려들어가기만 하면 하루가 못되여 거적때기에 싸가지고 내다버린다오. 젊은이도 여기서 일하겠거든 우선 이런 물계부터 먼저 아는게 좋아.》

성림이는 빙그레 웃었다.

이미 윤원구에게서 들은 소리다. 그러나 그는 모른체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앞으로 많이 보살펴주시우. 조선서 건너온지가 얼마 안되다나니 서툰게 많습니다.》

《헌데 임자 기어코 우리 성필이네 막장에서 일할 차빈가?》

용필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담배를 뻑뻑 빨더니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똑바로 성림이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그러면서도 말투가 변하는것을 보면 벌써 마음속으로는 곁을 주는것이 분명하였다.

《예, 그럴 생각인데요. 저 리호철이네 광굴에서 일하는 윤원구한테 들으니 그래도 여기서 밥탁을 붙이고 함께 일해볼만한 막장은 형님네 두 형제가 뚫어냈다는 그 막장이 그중 괜찮다던데요?》

《윤원구 그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 하는군.》

하고 용필이는 입맛을 쩝 다시더니 잠시후 시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우리 성필이가 금광물계야 환하지. 게다가 거기에 끌끌한 패들만 모여있어서 광산에서도 괄세를 못한다네. 그놈들이 나를 함부로 몰아내지 못하는것도 다 그때문이야. 한데 그녀석도 일쑤 자네같은 소리를 잘하니 자네가 이제 그 사람과 맞붙어 돌아가면 무슨 화단을 불러올지 모르겠기에 하는 소리야. 이사람아, 내게 달린 식솔이 자그만치 일곱인데다 내 동생놈의 자식이 아홉이라네. 그런데 제수가 또 해산하게 됐네. 이 사정을 좀 봐주게. 자네 말이야 다 옳지. 나라고 그런 생각이 없는줄 아나. 허지만 이제 우리 성필이한테 무슨 일이 난다 하는 날이면 우리 집 근 20명 식솔이 몽땅 죽는판일세.》

《허허허, 왜 죽을 걱정부터 합니까? 살길을 열자고 싸우자는것인데···》

《아닐세, 암만 봐야 임자가 말하는게 심상치를 않아. 그러니 일찌감치 일자리를 옮기지 않겠나? 내 뭣하면 화룡광업에 말을 붙여줄테니···》

두사람이 돌가루를 날리며 버럭산 꼭대기를 스쳐가는 바람에 땀난 몸을 식히고있는데 저쪽에서 꿱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십장 한놈이 돌밭을 차굴리며 다가온다.

《갑시다.》

하고 성림이가 능숙하게 밀차를 철길우에 올려놓고 슬슬 내밀며 말을 이었다.

《형님, 너무 부들부들 떨지 마시우. 광산내기같지도 않수다. 그래 세상에 힘이 있는게 왜놈들뿐인줄 아시오?》

《그럼 왜놈들보다 더 센 힘은 또 어데 있나?》

《굴속에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내밀겠소.》

리성림은 때마침 다가온 십장놈에게 휙- 바람을 끼얹어주며 밀차를 다부지게 내밀었다. 물매가 진데라 빈 밀차는 덜커덩덜커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성림이는 용필이를 거들어서 밀차에 올려태우고 저는 침목우를 껑충껑충 내달렸다.

컴컴한 굴속에 들어오자 석수가 쏟아져서 다시 땀난 얼굴이며 목덜미를 식혀주었다.

어느 편도앞에 이르러 밀차를 철길에서 굴려내버린 두사람은 편도로 한참 들어가다가 으슥한곳에 쭈그리고앉았다. 간데라불을 꺼버리니 곧 먹장같은 어둠이 들어찼다.

《그래, 내가 광산내기같지가 않다구? 에끼 이사람, 내가 이제는 가슴까지 이 모양 됐지만 그렇다고 록록하게 제 목숨이나 부지하자고 더럽게 사는 인간은 아니야.》

김용필은 어둠속에서 숨을 씩씩거리며 말했다.

《형님.》

하고 성림은 용필의 손을 더듬어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형님에 대해 잘 알고있습니다. 광산에서 조선사람의 도리를 제일 중하게 생각하는것이 형님네 형제들이고 나라를 빼앗긴것때문에 그중 가슴을 치는것도 형님네들이라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건 누가 그러던가? 윤원구한테서 들었나?》

《그 형님한테서 들었지요. 그밖에도 이 광산에 내 친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흠- 알만하이.》

김용필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성림이쪽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귀속말로 물었다.

《그래 대관절 임자는 무슨 사람인가? 아까 왜놈들보다 더 센 힘이 있다고 했지? 그건 무슨 소린가?》

성림은 용필의 손을 더 굳게 움켜잡으며 저력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놈들보다 훨씬 센 힘은 형님과 같이 왜놈들을 미워하는 로동자, 농민들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싸우는데 있습니다. 세상에 이와 같은 인민의 힘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형님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까?》

《드 듣지 않구, 김일성장군님께서 거느리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다면··· 젊은이는···》

용필은 너무나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앞으로 같이 손잡고 일해봅시다.》

《고 고맙소. 그러지 않아 윤원구랑 우리 성필이가 언젠가는 장군님께서 우리들한테도 오실거라고 외우길래 꿈같은 소리로만 생각했더니 정말로 왔소그려. 장군님께서 우리한테도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셨소그려, 어디 좀 봅시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혁명군을 다시한번 봅시다.》

용필은 떨리는 손으로 성냥을 켜대여 간데라에 불을 달았다.

그는 성림의 손을 쓸어보고 만져보고 하며 지금 장군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고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은 무산에서 왜놈들을 얼마나 크게 족쳤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아 그야 듣지 않구. 왜놈들의 신문에도 났다던데··· 게다가 그 윤원구네가 그때 그 싸움판에 있었다질 않소. 그래서 그 소문이 짜하게 돌아갔지요. 그뿐인줄 아시오. 그다음 얼마전에는 저 백일평에서 또 왜놈들이 대판 녹아났다더구만. 그런데 또 희한한 소문이 돌아간단말이요. 우리 혁명군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왜놈들을 무수히 쳐눕힐뿐아니라 저 옥돌골이라는데서는 세 동네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서 굉장한 운동회를 했다질 않소. 자, 이게 또 무슨 소린가 해서 처음에는 모두 떨떨했더랬는데 윤원구네가 와서 하는 말이 바로 그 운동회를 했다는데를 봤다는게란말이요. 세상에 이런 놀라운 일이 어데 또 있겠소. 그게 모두 사실이겠지?》

김용필은 성림의 무릎을 흔들며 간절히 물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고 리성림은 열을 올려 그후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이 진행한 전투들과 눈부신 활동들에 대해 긍지높이 이야기하였다.

사실 그 뜻깊은 로정들에서 자신의 뚜렷한 정신적성장을 의식하는 성림은 그 나날들을 돌아볼 때마다 눈물겨운 감동을 느끼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의 웅대한 전략적구상과 신출귀몰한 전법은 그의 정신사상생활에 활기를 주고 자부심을 주고 약동하는 힘을 주었다. 그는 신심에 넘쳤고 온갖 번거로운 정신적구속에서 벗어져나왔다. 자기 넋의 자유를 느낄 때 그는 죽음도 두렵지 않았으며 그렇게 되자 오히려 자기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처럼 시공간적으로 자유로와진 눈으로 부대가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헤쳐온 로정을 돌아볼 때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참된 력사의 흐름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그 하나하나의 로정들이 마치 그리운 고향집과 같은 선명한 화폭이 되여 떠오르는것이였다.

백일평 올기강기슭에서 코를 꿰여 끌려나온 적들을 대대적으로 섬멸해버린 조선인민혁명군은 다시 두만강줄기로 내려가 이번에는 옥돌골일대의 인민들과 함께 축구시합이랑 씨름이랑 하면서 단오를 쇠였다. 그런 다음 검질기게 뒤를 따르는 적을 달고 북상하다가 7련대는 청산리어방에서, 8련대는 증봉산목재판에서 한꺼번에 놈들을 들이쳤다. 장군님의 령을 받들고 지금 녕안현이며 안도북쪽, 연길일대에서도 조선인민혁명군 산하부대들이 수많은 전투들을 진행하여 왜놈들을 크게 무찌르고있다.

지금 화룡일경과 두만강기슭에서 적들은 벌벌 떨고있다. 여기서 왜놈들이 공연히 죄없는 로동자들을 가지고 들볶는것도 실은 그렇게 벌벌 떠는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리성림은 상대가 알아들을만큼 최근에 진행한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을 개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이 금천동언저리에도 장군님께서 보내신 부대가 여기저기서 활동하고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만강기슭과 화룡, 안도 일대에서 적의 큰 움직임을 군사적으로 눌러놓으신 다음 수많은 정치공작조와 정치공작원을 인민들속으로 들여보내시였다.

화룡현성, 적의 우두머리들에 대한 정찰을 겸하여 금천동, 청지동 지구에 강력한 조국광복회조직을 꾸리기 위한 과업을 맡고 김준삼을 책임자로 하는 공작조가 이리로 파견되여왔다. 이 시기 적의 행동성격으로 보아 사령관동지께서는 큰골회의에서 제시하신 방침대로 매 정치공작조의 활동을 뒤에서 군사적으로 안받침하는 무장부대를 보내주셨는데 지금 성림의 뒤에는 조장 김준삼과 박인섭, 최병규 등 공작조성원들이 련락소에서 대기하고있으며 그뒤에는 7련대의 한개 중대가 농촌으로 류동하면서 공작조의 련락만 있으면 적을 쳐눕히겠다고 기다리고있었다.

조장 김준삼은 지금 류랑가수 김인수를 통하여 적들의 한복판으로 침투해들어갈 공작을 하고있다.

성림이네가 윤원구와 쉽게 련계를 짓게 된것도 류랑가수 김인수를 만났기때문이였다.

처음 조장 김준삼이와 함께 금천동으로 들어올 때 화룡장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조고약을 파는 김인수를 만났었다.

다 쉬여빠진 목소리로 《타향살이》한절을 불러넘긴 그는 제 슬픔에 취하여 고개를 푹 떨구고 서있더니 별안간 둘러선 구경군들을 향하여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에- 만병통치 조고약이요, 헌데, 다친데, 곪은데, 종처, 상처 온갖 부스럼을 다스리는데 특효가 있는 조고약, 시집가는 새각시 등창도 하루밤 붙이면 감쪽같이 낫고 60늙은이 항종도 한장이면 씻은듯이 아무는 조고약, 식칼에 벤 자리, 도끼날에 찍힌 자리, 갈라지고 터진데는 척척 들어붙는 조고약, 배앓이, 가슴앓이, 천식, 백일해, 편두통, 산후탈, 갈라지고 터진데면 내외싸움도 고친다는 만병통치 조고약, 신체허약, 팔자타령을 하지 말고 만병통치 조고약을 시험해보시오-》

《여보, 조고약이 팔자는 못고치오?》

지게를 눕혀놓고 비스듬히 기대여 하품이 나오도록 늘어지게 구경하던 한 사나이가 싱거운 소리로 물었다.

《팔자도 병이라면 고치겠지만 그것은 하늘의 조화라 저 길건너 화주역쟁이가 전문가요. 팔자를 고칠 사람은 화주역쟁이를 찾아가고 병을 고칠 사람은 조고약을 사가시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조고약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화룡거리를 한바퀴 돈 다음 으슬으슬한 저물녘에 다시 장거리에 가보니 장군들은 거지반 흩어졌는데 김인수는 조무래기들에게 둘러싸여 여전히 구슬픈 곡조를 켜고있었다.

그를 데리고가서 장국밥 한그릇을 사먹이고 그지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윤원구네는 처음 작정대로 금천동에 가고 자기는 화룡거리에 떨어졌는데 지금은 조고약을 팔다못해 밤이면 유흥가에 찾아가서 또 주정뱅이들앞에서 류행가를 판다는것이였다.

자기들도 살길을 찾아 다시 두만강을 넘어 금천동으로 찾아가는길이라고 하니 김인수는 또 신세타령을 한참 늘어놓더니 고약 판 짜드락돈을 한줌 집어내여 술을 한상 사겠다고 하였다. 보매 그는 어지러운 세상때가 진하게 배여 생에 대한 의욕도 세상물정에 대한 판단력도 다 무디여진듯하였다. 그러나 사람만은 좋았다. 그에게 딴 말은 할수 없었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타이르기도 하였다. 김인수는 무포에서 헤여진후 윤원구네 일행과 나눈 이야기도 있는것만큼 성림이네를 순수한 뜨내기로 보는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해 깊이 파고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체 세상일에 무관심하였고 자기의 모든 감정을 《타향살이》의 구슬픈 노래로써 표현하였다.

그를 통하여 윤원구와 그처럼 쉽게 련계를 지을수 있었던것이다.

김용필은 성림의 이야기를 듣고나더니 돌가루가 게발린 로동복의 소매로 눈물을 뻑 훔쳤다.

《고맙소. 우리 조선사람들이 등가죽을 벗기면서 마소보다 못한 이 노릇을 참는것이 무엇때문인지 아시오? 그저 우리 김일성장군님께서 백성들을 구원해주실 날이 있다는것만 믿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이렇게 장군님께서 우리 불쌍한 굴쟁이들에게까지 사람을 보내주셨으니 이제는 내 가슴에 돌가루가 다 들어차서 숨이 막혀 죽는대도 여한이 없겠소. 참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죽기는 왜 죽겠소. 장군님께서 이렇게 군사를 보내주신 이때에 한번 본때있게 싸워야지. 가만있자, 이 자리에 꼼짝 말고 좀 기다리시오. 여기가 7편도 이삼륙 따라지구간이라는데요. 내 동생을 보내겠소. 나는 암만해도 물정에 어둡거니와 이런 일을 하자면 내 동생과 손을 잡아야 합네다. 그 사람이 말은 바른대로 이 금천동광산에서야 열손가락안에 꼽히는 선산이지요.》

용필은 방금까지 기침을 쿨럭거리던 사람답지 않게 힘이 뻗쳐서 제 혼자 밀차를 철길우에 올려놓더니 씽-하니 바람을 일구며 막장으로 밀고들어갔다.

얼마후 김용필이가 정말 동생 성필이를 데리고 나타나더니 저는 막장으로 돌아가버렸다.

리성림은 여기서 김성필이와 련계를 맺고 만주광업산하의 관영광산에 첫 조직을 내오기 위한 공작을 진행하였다. 그들 형제가 그중 혁명적인 기분을 가지고있고 영향력도 가장 크다는것을 미리 윤원구한테서 료해하고왔기때문에 이야기는 첫마디부터 깊은데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