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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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께서는 국내로 들어가는 공작원들을 배웅하시려 몸소 옥돌골 뒤산까지 나오시였다. 거기서는 두만강의 흐름이 발아래 내려다보였다.

《지성동무, 한두놈의 적을 치는것보다 한두사람의 동지라도 굳건히 조직에 결속하는것이 우리 혁명에 더 절실한 문제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풍산지구의 조직은 이미 장경수동무가 전번에 련계를 취해놓고 왔으니 흩어진 사람들을 어느 정도 찾아냈을것입니다. 그러니 동무들은 발을 붙이는 즉시로 풍산지구의 조직을 꾸린 다음 허천강발전소 건설공사장에 힘을 넣으시오. 전번에 장경수동무가 알아본데 의하면 허천강발전소 공사가 끝나는 즉시로 서두수로 그 공사판로동자들을 옮길 모양인데 미리 그속에다 조직성원들을 박아넣어야 합니다. 무산지구는 따로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형편에서 서두수지구에 조국광복회조직을 꾸리는 기초는 아무래도 동무들이 닦아야 할것 같습니다. 자리를 잡거든 무기를 어디 깊숙이 파묻고 착실히 살림을 차리도록 하는것이 좋겠소.》

그러시면서 치마저고리에 머리를 쪽진 새각시차림으로 재봉대의 동무들속에 섞여있는 진옥이를 돌아보시였다. 금숙이도 채옥이도 번갈아 진옥의 손을 잡고 놓기를 아수해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쪽에 가서 줄만 닿으면 장동무는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그러나 장동무를 보내는 문제를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동무가 발을 든든히 붙이는것이 하나의 작전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것만 결코 못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필요하다면 장동무가 거기 떨어져도 일없습니다.》

《알았습니다.》

정지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씀드렸다. 자기에게 김흥배라는 괜찮은 재산토대를 가진 중산계층인물의 호적등본을 비롯한 신원확인문건과 적지 않은 사업비까지 마련해주시고도 모자라는것만 같으시여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사업조건을 갖추어주려고 애쓰시는 그이의 자애로운 마음이 다시금 눈굽을 뜨겁게 해주는것이였다.

이제 마음에 걸리는것은 하나도 없다. 오직 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고 부지런한 농사군이 묵묵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듯 국내인민들의 생활속에 깊이 스며들어 혁명의 씨앗을 줄기차게 뿌려나가면 되는것이다.

얼마전 혜산을 거쳐 풍산에 다녀온 장경수를 통하여 국내의 중요련락소인 흥아목재상에 앉아있는것이 다름아닌 아버지라는것을 비로소 알았다. 장경수도 놀랐다고 한다. 유성촌이나 백바위골 무남이에서 아버지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던 장경수라 공작상 제기된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려 할 때 명주바지저고리를 점잖게 차려입고 앉아있던 목재상의 주인로인이 내가 바로 정지성이 애비요 하면서 자기와 진옥의 소식을 물었다니 놀랄만도 한 일이다.

백바위골 《토벌》때 가까스로 몸을 피해 13도구로 옮겨앉았다던 아버지가 어느새 강을 건너가 큼직한 기업을 차려놓고 그렇게 틀고앉아있을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사령부에서 보내준 자금으로 흥아목재상은 어지간한 관청은 다 끼고앉아 장사판을 크게 벌리고있으며 혜산일판에서는 이미 이름이 뜨르르하다는것이다. 노몽한사건에 대한 소식도 거기서 나온것이였다.

장경수는 흥아목재상의 연줄을 통하여 전투가 지나간 무산지구의 소식도 알아왔는데 적들은 그후 류석진로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민들을 잡아다가 족쳤으나 모두 유격대에서 시킨대로 강제에 못 이겨 짐을 지고 갔다든가 총알을 피해서 산으로 올랐다든가 하는 식으로 내뻗치니 며칠을 닥달하다가 별수없이 내놓았다고 한다. 무산지구에 올린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의 불길은 지금 무산지구뿐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혁명의 불씨를 심어 무섭게 타번지고있다고 한다. 앙양된 인민들의 혁명기세를 조직화하기 위하여 흥아목재상은 사령부에서 직접 내보내는 공작원의 지시에 따라 겉으로 장사에 흥성거리는척하면서 실상은 선전물을 찍어내고 사처에 널려있는 조직들과 련계를 짓고 하느라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다는것이다.

이 한가지 사실만 보아도 이 여름에 사령관동지께서 구상하시는 지하정치활동의 규모를 엿볼수 있었다.

그저께 통신원이 곰의골밀영으로 떠나갔다. 중대정치지도원을 하던 리학렬에게 사령관동지의 비밀지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리학렬은 38년 봄에 부상당하여 후방밀영에서 치료를 받고있었는데 이제는 어지간히 몸이 추섰기때문에 이번 국내진공에 따라나서겠다고 간청하는것을 사령관동지께서 일부러 떨구어두신 경험 많은 지하공작원이였다.

정지성은 내용을 잘 몰랐지만 그는 회양동 리춘서의 처가고장인 연사사람으로서 변학철이라는 이름으로 옥돌골에 들어가 야학선생노릇을 하게 되여있었다.

이어 풍산지구에 새로운 공작조를 정지성과 류진옥으로 무어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지하공작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을 때 그들 두사람이 참가하게 된 까닭이 이제야 밝혀졌다.

이제 장경수는 그들이 풍산지구에 발을 붙이도록 도와준 다음 다시 혜산으로 가서 흥아목재상을 통하여 혜산, 무산 일대의 조직들에 보내는 사령부의 지시를 전달하게 되여있었다. 그중에는 장경수자신도 전혀 짐작할수 없는 중요지시가 있었으니 그것은 흥아목재상이 장차 옥돌골공작조를 통하여 사령부와 련계를 짓게 된다는 내용이였다.

옥돌골공작조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는 사령관동지 한분밖에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였다.

골짜기 아래쪽에서 돌 굴리는 소리가 나더니 장경수가 나타났다.

《배를 하나 얻어놓았습니다. 강건너에 사는 낚시군령감을 만났습니다.》

《그럼 곧 떠나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녀대원들쪽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진옥이는 다시 그이앞에 와서 말도 못하고 울먹해서 고개를 숙이고 섰다.

《장동무편에 할아버지와 부모님들께 따뜻한 편지를 써보내도록 하시오.》

《알았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부디 몸조심···》

《내 걱정은 마시오. 진옥동무가 고생을 많이 해오다가 이제 좋은 철이 닥쳐왔는데 부대를 떠나있게 되여 안됐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혁명의 요구가 더 많은 선전원과 조직자를 인민들속으로 부르고있습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진옥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확고한 결의가 느껴지게 또박또박 말했다.

거기서부터 장경수가 배를 얻어놓았다는 강기슭까지는 10여리가 된다지만 더 배웅을 나갈수는 없었다. 개간된 자드락밭들과 화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농민들이 드나든다는것이였다.

리별할 때가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장경수를 따로 부르신 다음 편지 한통을 내주며 말씀하시였다.

《이 편지를 연사읍에 가서 부치도록 하시오. 꼭 연사우편국의 도장이 찍혀져야 합니다.》

편지의 겉봉에는 바로 회양동 리춘서의 이름이 씌여있고 보내는 사람은 변학철이였다.

장경수가 편지를 든든히 건사하는것을 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잔디판우에 지도를 펼쳐놓으시였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습니까?》

장경수는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기웃해서 바라보다가 지도를 바로보기 위해 그이의 뒤로 돌아가려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도를 돌려놓으시며 자신께서 장경수쪽으로 돌아앉으시였다.

《재작년에 안도쪽으로 련락을 갈 때 이 부근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여기가 술기막골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그전날 홍범도독립군이 왜놈들과 대판싸움을 했다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쯤 앉아있습니다.》

《이것이 청산립니까?》

장경수는 지도기슭에 한쪽무릎을 꿇고앉으며 잔디색과 같이 새파란 지도속의 대밀림지대를 더듬었다.

《그렇습니다. 이 퍼런 줄기가 올기강입니다. 이 강줄기를 똑똑히 기억하시오. 이 산이 증봉산인데 이 어방에서는 제일 높은 산입니다. 이 강가에서 높은 나무우에 올라가면 1 000m가 넘는 산이니 보일것입니다. 그 산 어방으로 이 길이 통하고 또 안도와 화룡을 련결하는 달구지길이 가로질러갔습니다. 어느쪽으로 오든지 이 강이 두가닥으로 갈라지는 곳 바른쪽기슭에서 사령부통신원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는 날자는 매달 음력 보름날 낮 12시부터 1시사이, 석달동안 기다리겠습니다. 그후에는 오지 마시오. 그리고 자체로 부대를 찾도록 하시오. 신호는 종전대로 하면 됩니다. 아는 동무를 보내겠습니다.》

《그럼 가을까지는 이 어방에 계시게 됩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장경수가 될수록 오래 눈에 익히도록 올기강이 어린 나무가지처럼 두가닥으로 갈라진 곳을 짚고계시였다.

장경수는 부질없는 질문을 하였지만 사령관동지께서 회양동인민들속에서 벌써 이해 여름에 진행할 군사정치활동의 거창한 륜곽이 그려졌으며 그 첫출발로써 자기들이 국내로 떠나게 된다는것을 깨달았다.

《저 이번 여름에 전투를 크게 하게 되면말입니다.》

장경수는 또 응석기어린 목소리로 추근추근 말하였다.

《제 기관총을 좀 바꾸어주십시오. 지난 겨울에 7련대에 갔다가 고장이 나기 시작하더니 자꾸 말썽을 부립니다.》

《그것은 걱정 안해도 일없습니다. 장동무가 갔다와도 전투에 참가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본격적인 전투는 장동무가 돌아온 다음에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놈들이 다 모여들자면 시간이 걸릴테니까. 진옥동무를 잘 도와주시오.》

《알겠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놓입니다.》

장경수는 자기가 추측한것을 확인하자 마음을 놓고 물러섰다.

국내로 들어가는 공작원일행은 커다란 로송나무아래에서 사령관동지께 마지막인사를 올리고 떠나갔다.

그들의 모습은 소나무사이로 몇번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더니 밋밋하게 휘여넘어간 산기슭에서 손들을 한번 흔들고는 릉선 저쪽으로 아주 사라져버렸다.

산아래 머지 않은 곳으로 험한 골짜기사이를 빠져나온 두만강의 줄기가 버드나무 늘어선 남쪽기슭을 끼고 급히 흘러가고있었다. 한시도 진정할줄 모르는 그 물결이 해빛을 받아 번쩍거리는것을 바라보느라니 어딘가 늦가을같은 정서가 느껴졌다.

《금숙동무네 고향도 여기서 강을 건느면 멀지 않습니다.》

하염없이 물굽이를 바라보는 녀대원들을 돌아보시며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금숙이는 눈을 슴뻑거리며 사령관동지께서 가리키시는 산발너머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습니까? 저도 혹시 저 산너머에 우리 고향이 있지 않을가 하고 방금 생각했는데···》

《아이, 언니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고 채옥이가 눈이 둥그래서 사령관동지와 금숙이를 번갈아보았다.

《이제 방금 나도 저 산을 넘으면 우리 고향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정말 사령관동지, 저의 고향은 어느쪽에 있습니까?》

《허허허, 채옥동무의 고향은 허천이지? 그럼, 허천도 저 산을 넘어야지, 좀 남쪽으로··· 그러고보면 저 산을 넘어 고향으로 갈 사람이 여기도 많군, 상철이도 저기로 가야지.》

《단천도 저쪽입니까?》

상철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사령관동지를 쳐다보았다.

《그래 단천도 저쪽이요. 저 산줄기가 단천까지 뻗어나갔소. 재영이는 좀 바른쪽으로 치우쳐서 나가면 곧 백암이요.》

재영이는 사령관동지께서 가리키시는쪽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없이 외면하였다. 그는 백암이 고향이라는 말만 들었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상철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후 재영이는 어른처럼 석쉼하게 쉰 목소리로 물었다.

《머지않아 우리 부대가 다시 저 강을 넘어가게 됩니까?》

《그렇소.》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재영이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제 우리가 이해 여름에 정치군사활동을 잘해서 다시 조국으로 나가야지. 그래서 왜놈들을 우리 땅에서 한놈도 남기지 않고 내몰아야 하오.》

솨-하고 수림을 울리며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두만강물결이 설레이는것이 먼눈에도 환히 알렸다. 유격대원들은 저 강을 넘어갈 그날의 감격, 그리운 고향땅에 손잡고 돌아갈 그날을 그리듯 말없이 설레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국내로 들어가는 세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 되였으나 모두들 그들이 지금쯤 넘어가고있을 아득한 남쪽산발을 그냥 바라보았다.

돌아오면서도 어느 산기슭에 그들이 서서 손저어 부를것만 같아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군 하였다.

마을에 돌아오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급히 지휘관들을 부르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이의 안색은 부드러우시였다. 그러나 지휘관들이 다 모이자 온화하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지고 엄한 기상이 어리였다. 오랜 지휘관들은 인차 전투가 있으리라는것을 짐작하고 저도 모르게 권총갑들을 매만지였다.

《행군준비들은 다 되여있습니까?》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차례로 지휘관들의 얼굴을 돌아보시였다. 언제나 행군할수 있고 싸울수 있게 준비되여있을것을 요구하는 유격대의 생활인데다 경찰을 쳐없앤 주민지대에 들어와있기때문에 어느 부대나 곧 움직일수 있게 태세를 갖추고있었다.

《저 사령관동지께서 급히 떠나신다면 인민들이 섭섭해할것입니다.》

군수관 조진범이 좀 아수해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다른 지휘관들의 표정을 살펴보시다가 강철룡을 향해 물으시였다.

《강철룡동무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동무들이 여기 분서를 칠 때 어디 가고 없었다는놈이 어떻게 됐을것 같습니까?》

강철룡은 인차 그이의 말씀의 뜻을 새기지 못하여 일어선채로 눈만 꺼벅꺼벅하였다.

《앉으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손을 쳐들어 강철룡을 앉히신 다음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선 날자를 계산해보면 래일쯤 놈들의 <토벌대>가 나타날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미리 떠나서 그놈들이 공격태세를 갖추기 전에 소멸해버려야 하겠습니다.》

이어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대들의 행군준비상태를 확인하신 다음 주민들과의 사업을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주의를 주시였다.

그로부터 한시간이 못 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7련대를 선두로 길을 떠났다.

한낮경부터 날이 흐리기 시작하였다. 동네사람들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벙벙해서 돌아가다가 선두대렬이 이미 산굽이를 돌아섰을 때야 리경서로인이며 동네소임 서한복이 사령관동지를 찾아왔다. 그들은 동네사람들의 간절한 심정을 헤아리시여 다문 하루밤이라도 리별의 정을 풀수 있게 말미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진정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리경서로인의 손을 잡으시고 정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아버님, 우리는 아주 가는것이 아닙니다. 이제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래일쯤 되면 왜놈들이 또다시 대대적으로 녹아났다는 소문을 듣게 될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섭섭하다고 좀체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마을사람들을 거듭 타이르시여 겨우 뒤산기슭에서 떼놓으시였다. 그리고 갑성이 아버지를 따로 만나시여 이제 부대가 떠나간 다음 동네가 잠잠해질 때를 타서 연사에 있는 처조카가 온다는 소문을 내놓으라고 당부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