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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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회양동의 구장소임을 맡아보았다는 동네의 좌상 리경서로인이 현임 구장인 서한복 그리고 동네에서 처음으로 유격대를 맞이한 갑성이 아버지 리춘서가 함께 사령관동지를 찾아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유격대가 휘풍동계선에 들어서는 길로 휘풍동, 회양동, 옥돌골 등 유격대가 든 동네 인민들의 집집을 찾아다니시며 살림살이형편을 료해하시였고 특히 로인들은 빠짐없이 먼저 찾으시여 인사도 하시였다. 더구나 사령부작식대가 회양동 갑성이네 집에 자리잡고있어서 리춘서나 춘서의 륙촌벌 된다는 리경서로인과는 아침저녁으로 만나게 되시였다.

어제 사령관동지께서는 종일 바쁘게 보내시였다. 조국광복회명의로 된 호소문을 내려보내기 위하여 그 초고를 시작하셨는데 그지간에 국내에서와 이곳 회양동에 와서 느끼신것이 많고 또 복잡하게 얽혀돌아가는 국제정세를 생각하시니 자연 간단하게 쓰시려던 글이 무게를 더하게 되고 내용이 커졌다.

그럭저럭 밤늦도록 책상앞에 앉아계시다나니 하루동안 동네에 나가보지 못하시였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마을의 대표라고 볼수 있는 사람들 셋이 함께 나타난것이 심상찮게 생각되시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갠 자리가 펴지지 않은 두루마기를 떨쳐입고 장죽을 한손에 쥔 경서로인을 두손 잡아 맞아들이시며 정중하게 말씀하시였다. 서한복과 리춘서 역시 단벌 출입복이 분명한, 빨아서 다린 바지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고매끼를 맸다. 이 회양동에서 이런 차림을 하고 나선다는것은 1년에 한두번씩 소임들이 현성에 가거나 할 때 일이고 려염집에서는 설이나 추석, 단오에도 보기 드문 일이였다.

원래 그들에게 무슨 나들이옷같은것이 따로 없기도 하였지만 유난히 나들이옷을 갈아입고 나설만 한 일이 생기지부터 않았다. 세간살이를 몽땅 떨어 이고지고해서 이 인적없는 골짜기를 찾아와 제힘으로 움막을 치고 귀틀을 짜고 부시로 불을 붙여 화전을 일구어 뚜져먹는 사이 자연히 동네가 생기고 그것이 커지자 소임도 내고 모임도 가지고 하게 된것이니 그들에게 따로 찾아가 보호를 청하거나 진정을 해볼 관가가 있을수 없는것이였다. 장을 보자면 현성으로 가기보다는 강을 건너 무산장을 보거나 본부라고 불리우는 대마록구로 가는것이 훨씬 가깝고 또 생활적으로 관계가 깊었다.

관가나 경찰따위들은 이쪽에서 누가 청해온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동네가 생긴 썩 후에 나타나서 제멋대로 무슨 향 무슨 동 하고 매겨놓았지만 그것을 누가 머리속에 새겨두지도 않았다. 새겨두어봐야 어디다 기별을 보낼데도 없고 어디서 소식이 날아올데도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과 동떨어진 궁벽한 산촌이였다.

그래도 이 골안에 동네가 생기기 시작한것은 근 30년의 세월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지간에 가장 큰 사변이라고 일러온것은 옥돌골 신풍헌의 집에서 암소가 한배에 새끼 세마리를 낳은것과 역시 옥돌골에서 대처로 돈벌이를 갔다가 3년동안이나 소식이 없었던 손영백이 번쩍번쩍하는 개화경을 끼고 나타난것이였다. 손영백이 비록 돈은 못벌어왔지만 가지고온 소식은 희한한것이 많았다. 그때는 아직 10여호에 불과했던 회양동이며 휘풍동 사람들까지 옥돌골에 모여들어 그 개화경을 끼여봤으며 손영백이 가지고 온 희한한 대처소식들을 들었다. 항일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비로소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그렇던 동네에 그야말로 전설처럼 전해지던 유격대가 아무 선통도 없이 번개처럼 나타나서 경찰을 쳐없앴을뿐아니라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온것이였다.

《장군님, 인사를 드릴 면목이 없습니다. 동네에 인간이 있어가지고 모처럼 찾아오신 유격대에게 중한 국사를 뒤로 미루고 동네청결을 시키게 하였으니 도리가 안됐습니다.》

리경서로인이 자리를 잡고 앉듯마듯 다시 허리를 일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또 그 말씀을 하십니까? 간밤에 다 하시고 뭘 또 그러십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대원들이 부랴부랴 무어낸 등받이도 없는 긴 걸상에 송구하게 앉아있는 세사람을 웃음어린 눈길로 번갈아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아니올시다. 이런 죄가 어찌 한두번 사과했다고 덜리겠습니까. 제가 간밤에도 동네것들을 모아놓고 말마디나 좋이 했습니다만 본시 이고장사람들이 본바가 없고 사람구실을 못합지요. 잔뜩 게을러빠져서 집안 하나 거둘줄 모르고 조그마한 동네 하나를 버젓하게 꾸려나가지 못합니다. 그저 짬만 있으면 모여서 입담이나 부리고 나중에는 투전을 벌립니다. 이러구야 어떻게 동네꼴이 바로 서겠습니까. 이것이 다 동네에서 나살이나 먹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구실을 못하기때문이지요. 장군님께서 이번에 말씀은 따로 하신것이 없지만 저희들은 크게 꾸중을 들은것으로 생각하고 저마다 페부에 새기고있습니다.》

《할아버지,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가 조선사람들을 위해서 총잡고 싸움에 나섰는데 인민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각오를 한 사람들이 인민들의 살림을 좀 거들어준것이 그리 대단할게 있겠습니까? 그러시지 말고 무슨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이 너무 죄송해서 몸둘바를 몰라하는것이 오히려 보기 거북하시여 일부러 그들의 용건을 물으시였다.

《드릴 말씀이 별로 달리 있어서 그러는것이 아니라···》

서한복이 경서로인쪽을 힐끔 돌아보며 좀 격식바른 어조로 말을 떼였다. 춘서가 옆구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어서 말을 하라는것인지 아니면 그만두라는것인지 서한복이는 짐작이 안가서 이번에는 춘서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핀다.

《어려워말고 어서 말씀들 하십시오. 그러지 않아 우리가 동네어른들을 찾아뵙고 의논할 일도 있었는데 마침 잘 되였습니다. 어서 말씀을 하십시오.》

《이사람, 어서 말씀드리게. 장군님께서 들으시겠다는데 말씀을 드려야지.》

경서로인은 점잖게 뒤로 몸을 젖히며 서한복을 내세웠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참 담배들이나 피우시지요. 우리가 담배를 안피우다나니 권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랑 갑성이 아버지랑 담배를 피우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네인민들이 내다놓은 향로 비슷하게 생긴 놋재털이를 밀어놓으시며 걸상을 그들앞으로 끌어당겨 바싹 다가앉으시였다.

《저 말씀드리자는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해마다 이맘때면 산당제를 올리고 하루 푹 쉬는 풍습이 있었는데 올해에는 비가 오고 두루··· 동네사람들이 사실 일년내내 일을 해봐야 고작해서 감자 몇섬 캐가지고 농마를 몇말 내고···》

《허 이사람, 답답도 하군.》

서한복이 두서없이 이 소리, 저 소리 늘어놓자 경서로인이 답답했던지 담배를 쟁이던 장죽을 걸상우에 놓고 두루마기자락을 다시 갈라헤치며 정색해서 말했다.

《장군님, 동네소임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니 동네에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옛날부터 군사는 군사의 직분이 있고 백성은 백성의 직분이 있는 법인데 우리 백성이 제할바 직분을 지키지 못하고보니 유격대가 동네 골목을 쓸고 우물을 가시고 과부집 지붕을 고치고 나중에는 물을 긷고 장작까지 패게 되였습니다. 내 늘 말하지만 사람이라는것이 굶어죽어도 경우를 잃지 말아야 하는것인데···》

리경서로인은 서한복에게 핀잔을 주고 가로맡아나섰지만 그 역시 입을 벌리자마자 이 소리, 저 소리 섬겨대는것이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자는것인지 대중할수가 없었다.

《형님, 그 무슨 말씀을 아까부터 자꾸 곱씹으며 그러우다. 답답해서 어디 듣겠수다?》

갑성이 아버지가 듣다 못해 쐐기를 치며 나섰다.

《허허허, 생각나는대로 말씀하시게 두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 너그럽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으나 리경서로인은 동생의 말 한마디에 쭝해서 그만 입을 다물고 성이라도 난듯이 어험어험 마른기침을 깇으며 저쪽으로 외면하였다.

《갑성이 아버지는 공연히 그러십니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긴데 무슨 말이면 일이 있습니까? 그럼 이제는 갑성이 아버지가 이야기해보십시오.》

《아니 저야 뭘··· 저 이사람아, 자네 말씀드리게. 자네가 구장이 아닌가. 어서 말씀드리라구.》

춘서는 방금까지 남이 말하는것을 안타깝게 듣고있다가 정작 저더러 말하라니까 당황해서 꽁무니를 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세사람을 번갈아보시다가 아무래도 선뜻 번지기 거북한 말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하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인민들속에서 여러가지 군중공작을 벌릴 생각을 해오시던 그이께서는 우선 그들의 굳어진 마음을 눙쳐주어 그들을 통해 동네사람들의 의향을 알아보려고 애쓰시였다.

《그럼 이야기는 천천히 듣기로 하고 날씨가 따뜻한데 바깥으로 나가볼가요.》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러자 세사람은 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서로 눈치들을 살폈다. 갑성이 아버지 리춘서가 혀를 한번 갈기더니 일어섰다.

《가며 이야기를 해봅시다. 실은 우리도 어제 일이 좀 바빠서 동네를 보지 못했습니다. 같이 한번 돌아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 군모를 벗겨쓰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자 리경서로인과 서한복은 비로소 송구해하던 표정이 가셔졌다.

《그럼 한번 돌아보셔야지요. 동네가 참으로 달라졌소다.》

서한복이 제자랑이나 하듯이 이번에는 먼저 사령관동지께 출입문을 열어드리며 우선우선해 말하였다.

《달라지나마나 이게 회양동마을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다 듭니다. 어제는 우물에 웃설미를 해씌우고 쌍드레박을 달았더니 오늘 아침에 나와보니까 어느새 또 샘틀을 만들어놓았는데 좌우간 일을 해도 번개치듯 한단말입니다. 여기서도 무슨 축지법같은것을 쓰시는지 원.》

리경서로인의 말에 사령관동지께서도 내심 놀라시였다. 실은 어제 우물 웃설미를 해단것때문에 사령부에서도 말이 오고갔었다. 한것은 사령관동지께서 일을 마치고 바깥에 나서실 때쯤해서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우물에 모여 끓을 때였다. 골목을 쓸고 도랑을 치고 풀을 깎고 지붕을 고치고 한것도 집집에서 침이 마르게 떠들었지만 특히 우물은 동네사람들, 그중에도 아낙네들의 인기를 집중시켰다. 그래서 유격대를 만나기만 하면 혀를 차며 인사를 하였다. 남정네들은 아낙네들의 말밥에 올라 마주서서도 욕을 먹고 지나는 말속에서도 욕을 먹었지만 모두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더니 유격대가 와서 정말 하루사이에 이렇게 변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령관동지께서도 아침에 지휘관들에게 일러두신 일이기는 하지만 결과가 잘된데 대해 만족하게 생각하시였다. 그래서 특히 인민들속에서 사업을 잘한 구분대와 개별적인 전사들을 평가하시였다. 그런데 우물을 손질한것은 누가 했는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나중에 지휘관들사이에서 또 론의가 분분해졌다.

결국 의심은 경위중대에서 받게 되여 박덕산이도 오중흡이도, 김준삼이도, 나중에는 강철룡이까지 중대장이 어떻게 하면 자기 대원들이 한 일도 그렇게 모를수 있느냐고 씨까슬렀다.

입이 무거운 오백룡이 슬그머니 약이 올랐던지 흥 하고 코방귀를 불며 말하였다.

《거 련대장동무도 너무 그러지 마오다. 내 우리 집 갑성이한테 듣자니까 7련대 바지저고리가 산에서 나무를 베내리는것을 봤다우다.》

《아니 우리 련대 바지저고리가 누구요?》

고정한 오중흡은 인차 정색하여 이렇게 물었다.

《뭐 바지저고리가 그렇게 많소다? 신사동에서 온 신입대원말이우다.》

《그 강정섭동무말이요?》

《강정섭인지 뭔지 난 이름은 아직 모르는데 그 동무가 여간 흉물이 아니란말이우다. 입대하겠다고 이틀씩이나 따라오는것만 보시우다.》

오중흡은 더는 응대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버렸었다.

그런데 밤사이 또 우물틀이 생겼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걸음을 다우치시였다.

《뭐 우물틀이라고 해도 흔히 촌구석에 있는 그런따위가 아니지요. 귀틀을 어쩌면 그렇게 틈새기 하나 내지 않고 무었는지 우리 동네에 책상이랑 꽤 짠다는 령감이 있는데 맨발벗고도 못따라갈 솜씨란말이우다.》

갑성이 아버지는 사령관동지옆에서 연신 손짓을 해가며 감탄을 하였다.

느릅나무가 주런이 늘어선 골목굽이를 돌자 새로 널장으로 해씌운 우물의 지붕이 드러났다.

그밑에서는 지금 동네의 남녀로소와 유격대원들이 엇섞여 끓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 리경서로인일행과 함께 다가가시니 유격대원들도 동네사람들도 모두 주춤해서 인사를 드리였다.

얼핏 보매도 우물우에 새로 해세운 틀은 과연 놀라운 물건이였다. 서까래감보다 좀 굵은 이깔나무들로 네귀를 엇물려 짰는데 널로 짠것보다 훨씬 든든해보일뿐아니라 보기도 훨씬 얼싸하였다. 재간은 재간이다. 저런것을 어떻게 밤사이 아무도 몰래 해씌울수 있는가.

적의 삼엄한 경계망속에서 포대밑으로 통로를 파서 폭약을 쟁여 포대를 날려보낸 동무도 있고 지하에서 하루밤에 수백장의 삐라를 내다붙인 동무들도 있지만 이것 역시 나무 다루는 일에 있어서나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데 있어서 남다른 재간이 없이는 될수 없는 일이였다.

《그래 누가 이런것을 만들었는지 아직 모릅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뒤따라선 오백룡과 강봉수쪽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아직 똑똑히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기관총소대의 박인섭동무와 7련대의 신입대원 강정섭동무같습니다.》

오백룡이 한걸음 나서며 보고를 드리였다.

《강정섭이라니 저 동무말이요? 아니 저 동무가 어느새 군복을 타입었습니까? 어제밤에 중대장동무가 바지저고리라고 하더니···》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저쪽 느릅나무밑에 엉거주춤 서있는 강정섭이를 가리키시였다. 웬일인지 강정섭이는 무슨 죄나 지은듯 고개를 푹 떨구고있고 그앞에는 소대장 신길남이 어마어마한 표정으로 서있다.

《어제 제가 바지저고리라고 말했다 해서 련대장동무가 정말 성이 난것 같습니다. 사령부에서 돌아가는 길로 지휘관들의 배낭을 들추어 헌옷을 자기가 입고 제가 입던 새옷을 벗어서 저렇게 입혔습니다. 재봉대에서 래일이면 되겠는데 그런다고 펄쩍 뛰는것을 련대장동무가 고집을 써서 기어이 입히고야말았습니다. 제가 그저 롱삼아 한마디 한것인데 공연히 기세를 올리면서 그럽니다.》

오백룡은 좀 어색해하는 목소리로 말씀드리였다.

《허허허.》

사령관동지께서는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면서 리경서로인을 향하여 말씀하시였다.

《이 우물때문에 우리 혁명군에도 일이 재미있게 번졌습니다. 자 그럼 우리는 또 딴데로 가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경서로인네 일행과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하고 리경서로인이 종종걸음으로 사령관동지곁에 따라서며 말씀드렸다.

《사람이란 별로 한 일이 없어가지고도 제 잘난체하기가 쉬운 법인데 이런 사람들은 처음 봅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옹졸하기만 하겠습니까. 사람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길수 없이 크고 훌륭한것입니다. 단지 이 세상이 고르롭지 못해서 사람들의 좋은 품성이 인정을 받지 못할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며 마침 도랑창에 건네여놓은 외나무다리를 건느시다가 로인이 실수할가봐 그의 손목을 잡아주시였다.

《장군님.》

리경서로인은 사령관동지의 손에 매여달리다싶이하여 외나무다리를 건느자 그 손을 놓을 대신 한손을 마저 그우에 포개여쥐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드리였다.

《동네에서 지난밤에 밤이 새도록 공론들을 했습니다.》

《공론이라니요?》

《우리가 여태까지 사람구실을 못하고 살았다구요. 그리고 어떻게 이 고마운 유격대와 그냥이야 헤여지겠느냐구요.》

《그것은 우리들의 심정이기도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까부터 로인들이 하기 힘들어하던 말을 이제사 꺼내려는 모양이라고 짐작하시며 부드럽게 뒤를 받쳐주시였다.

《그래 공론들이 모두 장군님을 모시고 하루 좀 놀았으면들 합니다.》

《무슨 놀이를 하자는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명절놀이를 하자는것입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이 궁벽한 산골에 오신 날이 명절이지 별로 명절이 따로 있겠습니까? 실은 유격대가 우리 마을에 들어서던 날인즉은 음력 4월초 8일날이였습니다. 우리 고장에서는 해마다 이맘때에 산놀이를 하군 했습니다. 올해에는 철이 늦은데다 이른 장마가 지고 그런가위에 경찰을 들이치고 유격대가 들어서는바람에 미처 그런 궁리도 못했습니다. 간밤에 공론이 두루두루해서 이 봄에는 장군님을 모시고 축수를 드리는 놀이를 해보자고 한결같이 들고나옵니다. 그래서 지금 동네에서는 이것저것 음식도 좀 마련하고 차비들을 하는데 장군님께서 하정을 굽어살펴주십시오.》

《농사일이 너무 밀리지 않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을사람들의 뜨거운 성의가 가슴에 마쳐오는것을 느끼시였으나 한편으로 동네형편을 생각할 때 딱한것을 느끼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늦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요즘은 해마다 늦어지군 합니다.》

서한복이 경서로인의 반대쪽에서 말씀드리였다. 긴장된 그들의 표정을 읽으시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더욱 딱한것을 느끼시였다.

《농량도 제일 군색할 때가 아닙니까?》

《장군님.》

하고 경서로인은 잠시 묵묵히 입을 다물고 걷더니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고장 살림을 두고 말한다면 언제 산놀이를 벌릴 경황이 있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모두 궁한 팔자를 타고났다고 한탄들을 합니다. 허지만 우리 고장사람들이 산놀이를 하자는것은 무슨 귀신이나 하늘을 괴자는것은 아니올시다. 그저 기나긴 겨울을 눈속에 파묻혀살다가 봄이 오니 겨우내 파먹고 얼마 남지도 않은 낟알들을 털어내여 술을 빚고 떡을 쳐서는 산천에 대고 빌어보는것입니다.》

로인의 말은 진정을 하는것 같기도 하고 사과를 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어쩐지 어렵게 살아가는 나라잃은 인민들의 의지할데 없는 마음들이 사령관동지의 가슴을 붙잡고 흐느끼며 하소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짐작이 갑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푹 가라앉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돈있는놈들이야 제 부귀영화를 뽐내고 흔전만전 놀기 위해 산놀이도 하고 들놀이도 하겠지만 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야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놀아보겠습니까. 겨우내 쌓인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고 좀 거뿐한 마음으로 새해농사를 시작해보자는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심정입지요.》

리경서로인이 이렇게 말하자 춘서와 서한복이도 같이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러지 않아도 어제 젊은 축들이 말하기를 유격대에서는 부처나 귀신을 믿는것은 모두 미신이라고 반대를 하는데 그런 말 냈다가 혼난다고들 해서 또 한참 물론이 분분했습니다. 이제 장군님께서 우리 어리석은 백성들의 하정을 이처럼 밝게 헤아려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이 말하기 힘들어하던 까닭을 비로소 짐작하시였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나 귀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인민들이 날을 받아서 노는것이야 무엇때문에 반대하겠습니까. 일년내내 힘겹게 일을 하다가 그런 날에라도 한번 시름을 잊고 쉬셔야지요.》

사령관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세사람의 얼굴은 활짝 밝아져서 《그렇습니다. 장군님.》하고 입을 모아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을 향해 돌아서시여 의논을 하듯 말씀하시였다.

《우리 이렇게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우리 유격대에서 이번에 전투를 크게 이겼고 또 이고장 여러분들과 만나서 여러가지 뜻깊은 일들이 많았는데 이것을 계기로 우리 조선사람들의 기세를 떨치기 위하여 여러가지 계획들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니 그 한고리로서 우리 유격대와 동네사람들이 합쳐서 래일쯤 운동회를 한번 가지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제 동네사람들은 농사를 시작해야 하고 우리는 싸움을 또 하러 나가야겠는데 한번 힘을 떨쳐보고 기세를 돋구는것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운동회를 하면 서로 합심해서 단결하는 힘도 생기고 즐겁게 놀게도 될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운동회라니 저 대처학교같은데서 하는것말입니까?》

리경서로인은 짓물려들어가는 눈귀를 깝작거리며 얼굴을 쳐들였다. 더부룩한 염소수염이 봄바람에 가볍게 날린다.

《형님도 참.》

하고 춘서가 안타깝다는듯이 가로맡아나섰다.

《그 씨름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것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여러 패가 엇바꾸어 달리는것도 있구요.》

《맞았습니다. 뽈도 찰수 있습니다. 우리 부대에 축구뽈도 있습니다. 옥돌골로 나가다가 보니 저 둔덕아래 넓다란 버덩이 있던데 운동장으로 쓰기가 아주 좋을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벌써 밝아지는 마음을 느끼며 말씀하시였다.

《옳습니다. 그게 바로 단오때 씨름터우다. 그앞에 있는 느릅나무에다 그네를 매지요. 참 좋소다. 형님, 장군님말씀대로 합시다. 이사람, 자네 생각은 어떤가?》

갑성이 아버지 춘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바람에 서한복은 좀 떨떨해졌는지 경서로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물어물 말했다.

《저 그렇게 되면 그 음식들은 어떻게 하겠는지요?》

《아따 이사람, 걱정도 팔잘세. 음식이야 씨름판에 내다놓고 먹으면 더 좋지 뭘 그러나?》

춘서가 또다시 앞질러 가로맡아나섰다.

《이 사람은 씨름이다 하면 오금을 못쓰는군. 씨름을 하면 임자가 장원을 할것 같은가. 유격대와 같이 한다는데··· 장군님, 이 사람이 우리 회양동의 씨름군이지요. 아무튼 제 생각에는 그게 퍽 좋을듯 합니다. 동네사람들에게 장군님의 말씀을 전하면 모두 좋아들할것입니다.》

서한복이 침착하게 말하였다. 경서로인도 이제는 말귀가 틔였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해보니 맹탕 술이나 퍼먹는것보다 그것이 얼마나 뜻이 깊은지 모르겠습니다. 헌데 정작 운동회를 하자면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할것 같은데 구장 이사람, 래일까지 그 차비가 될듯 한가?》

경서로인은 서한복을 돌아보며 마을의 어른답게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올시다. 그 운동장도 닦고 또 장군님 모시자면 차일도 치고 해야 할텐데··· 지금 동네에서는 온통 음식차비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서한복이 어정쩡하게 중얼거리는것을 바라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리내여 껄껄 웃으시였다.

《운동회준비를 어렵게 생각하실것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맡겨주십시오. 래일 그저 몽땅 동네사람들이 떨어나서면 됩니다. 옥돌골이나 휘풍동에도 우리가 련락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리고개가 멀지 않았는데 무슨 음식차비를 하겠습니까. 낟알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무슨 술이나 떡 같은것은 일체 못하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모처럼 한번 놀아보자는 여러분의 심정이 리해는 됩니다마는 앞으로 살아갈 생각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햇곡식이 날 때도 멀었는데 낟알을 마구 없애서야 되겠습니까. 래일 놀음은 걱정할것 없습니다. 우리에게 모두 맡겨두십시오. 그러면 무슨 음식같은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수 있습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세사람은 어리둥절했다.

갑성이 아버지가 잠시 주저하다가 마음을 다진듯 사령관동지의 곁으로 다가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그의 마음속을 읽어보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일제를 반대하는 싸움을 더잘 벌릴수 있도록 기세를 떨치기 위하여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귀한 낟알을 꼭 없애야 맛이겠습니까?》

춘서는 어떻게 하나 김일성장군님과 유격대를 위하고싶어하는 동네사람들의 성의를 받아달라고 다시한번 간청할 기회만 엿보고있다가 사령관동지의 이러한 질문을 받고 좀 당황해졌다. 아무리 마음은 간절하나 동네사람들의 어려운 살림을 걱정하시는 장군님의 심려가 너무 고마와 더는 다른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춘서의 허둥거리는 대답을 들으시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저 꼭 동네어른들에게 대접해야 할것이 있으면 간단히 점심이나 나눌수 있게 준비하는것은 별일 없을것입니다. 그밖에는 각자가 자기 집에서 점심을 먹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운동회는 유격대에서 조직하는데 따라 움직이도록 합시다. 내 우리 동무들에게 그렇게 이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할아버지생각은?》

사령관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따라오는 리경서로인을 돌아보시였다.

《예, 좋습니다. 이처럼 밝으신 처사에 몽매한 늙은이들이 달리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세사람을 앞세우시고 걸음을 늦추시여 따라오는 강봉수에게 필요한 지시를 주시였다.

얼마후 사령부에서는 오백룡과 조진범이 중심이 되여 각 련대들에서 올라온 대표들과 함께 래일 운동회를 가지기 위한 조직사업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운동장을 닦는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우선 운영문제를 짜기 전에 7련대와 8련대에서 마을앞버덩에 운동장을 꾸리러 내려갔다.

사령관동지께서 리경서로인일행과 함께 동네를 한바퀴 도시면서 몇집 들리여 이야기를 나누시고 동구밖으로 나오시니 어느새 삽, 괭이따위 쟁기를 멘 유격대원들이 마을앞버덩에 하얗게 덮여 벌써부터 승벽이 나서 운동장을 닦고있었다.

《과연 축지법을 쓰는 군대가 다르기는 다르군.》

리경서로인은 감탄한 나머지 입밖에 소리내여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