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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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가 내려와서 며칠 되지 않았는데 동네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비에 패운 길을 닦고 무성한 풀을 깎았으며 도랑을 깊숙이 쳤다. 마당들도 반반히 닦고 깨끗이 쓸었다. 샘물을 치는데는 유격대에서도 한다하는 장정들이 달라붙어서 큰 역사를 벌렸다. 몇해 묵여둔 샘이였다. 조선과는 강 하나 사이에 두었는데 이고장 물은 아무데나 황토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직 큰 황철나무가 늘어선 산비탈에 있는 깊이가 열길 잘되는 이 샘만이 사시절 맑은 물이 층층 괴였다. 동네에서는 허드레물은 아무데나 우물을 파고 길어썼지만 먹는 물은 동네 한끝에서도 이 샘물을 길어갔다. 아무리 장마가 져도 흐리지 않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는다는 샘이라 동네에서는 보배처럼 귀중히 여기고 해마다 가을이면 제를 올리고 우물을 가셔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마적에 와서는 시절이 어수선하니 그 누구도 돌보지를 않았고 그런 말을 내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 우물을 손질하러 나선것은 작식대의 녀대원들이였다.

녀자들이 우물을 손질하러 나섰다는 말을 듣자 강철룡은 성이 나서 대원들을 흘겨보았다. 그중에 재간있다는 축들은 다 동네로 흩어져가고 인섭이가 어느 홀로 사는 할머니네 집 지붕을 손질해주겠다고 잡은것을 얻으러 왔다가 강철룡의 눈에 띄였다.

《저 동무는 과부로친네는 돌볼줄 알면서도 녀대원들이 우물치자는 소리는 듣고도 못들은척하는군. 참 한심하다구야.》

강철룡은 모두 알아들으란듯이 일부러 큰소리로 중얼거리며 성난 걸음으로 걸어갔다.

장경수와 병규는 서로 눈길을 마주쳐다본 다음 씩 웃으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

난처하게 된것은 박인섭이였다. 과부로친네 집은 이미 지붕우에 올라가보고 썩은 동기와장들을 벗겨버렸으니 그냥 내버려둘수도 없고 샘은 또 녀자들이 열길 넘는다는것을 치도록 내버려둘수도 없었다.

그래 어정쩡해서 빌려든 도끼와 망치를 주무르며 망설이는데 마침 새로 입대한 강정섭이 비자루를 들고 골목을 지나갔다.

7련대는 올기강서쪽 동경평과 상대동 그리고 대동곡과 원풍동 등 집단부락의 적들을 휩쓸어버린 다음 어제 사령부에 돌아왔다. 련대와 함께 겨우 어제야 동네에 나타난 강정섭이는 어느새 아이들과 친했는지 그뒤로 조무래기들이 오롱조롱 달렸다.

《동무.》

인섭은 점잖게 불렀다.

정섭이는 무심히 돌아보다가 인섭의 시쁘둥한 얼굴을 보자 반가와서 달려왔다.

《편안하우다?》

《편안하우다?》

인섭은 앵무새처럼 신통히 같은 목소리로 받아외우고나서 지청구를 대였다.

《유격대의 인사가 그게 뭐요?》

《저 유격대에서는 그렇게 인사하면 안되오다?》

《안될것도 없지만 잘한것도 못되지. 그런데 동무는 아직 군복을 못입었소?》

《글쎄 이거 어떻거면 좋소다? 총도 없지, 그러니까 마을사람들이 날 자꾸 이상하게 본단말이우다. 아까 이 동네 청년 한사람은 날 구석쪽으로 끌고가더니 무슨 죄를 지었는가고 묻지 않겠소다. 아이들까지 총을 왜 못탔는가고 자꾸 묻는데···》

정섭이는 그래도 유격대에서 구면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인섭이밖에 없으니 자기의 속을 의논조로 터놓으며 저만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아이들쪽을 돌아보았다.

인섭은 공연히 말을 걸었다가 오히려 난감하게 되였다. 그는 잠시 궁리하다가 불쑥 물었다.

《그래 동무는 지금 어디 가는길이요?》

《뭐 어디 갈데라고 있소다? 길을 쓸라고 해서 쓰는데 우리 중대뿐아니라 다른 중대에서도 그런 과업을 받고 나온 동무들이 많아서 도무지 골목 하나를 쓸어놓으니 더는 손댈데가 없지 않겠수다. 그래 어디 쓸데가 좀 없겠는가 해서 이렇게 돌아다니지오다.》

《마침 잘됐소. 동무, 산판에 있었으니 무슨 재간 좀 있겠지?》

《무슨 재간말이우다?》

《아무 재간이든 있으면 되오. 자 날 따라오오. 동무가 군복을 빨리 타입자면 재봉대에 잘 보여야 한단말이요. 그런데 지금 재봉대녀자들이 샘을 치러 나섰다오. 동무 가서 한몫 해보오.》

정섭이는 떨떨해서 인섭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인섭의 계교는 공연한것이였다.

샘에는 벌써 유격대원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100여호쯤 되는 동네를 닥달하는데 모든 대원들이 달라붙고보니 일거리가 떨어져서 어슬렁거리고다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 그들이 샘을 친다는 소문을 듣고 몽땅 달라붙었다. 녀대원들은 말만 냈지 실상 어디에 가 붙어설 자리도 없었다.

인섭이가 정섭이를 데리고 와보니 판이 이 모양이라 웃동을 벗어붙이고 우물속에 한절반 들어가서 병규가 퍼올리는 물초롱을 들어내고있는 소대장을 보고도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게 됐다.

인섭이가 입맛을 다시며 정섭이를 돌아보니 그보다 더 순직한 정섭이는 자기가 인섭의 수에 걸렸다는것도 모르고 심중한 낯빛이다.

《이거 샘이 하나밖에 없다는데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는데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웃설미랑 해씌우고 좋자면 딸따리를 매달아서 드레박이 하나는 올라오고 하나는 내려가고 이렇게 말이우다.》

하고 정섭이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시늉을 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동네도 퍽 궁한 동네우다. 우리 할아버지가 봤으면 야단치겠수다.》

《그거 내 생각과 비슷하오. 이거 그런데 야단났군.》

《뭐말이우다?》

《동무 혼자서야 해내겠소?》

《아니 우리가 그걸 한단말이우다?》

《좋으면 해야지.》

《허지만 이건··· 그럼 우리 부대가 여기 오래 있게 되우다?》

정섭이는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허 참, 이 동무가 한심하군. 유격대가 그렇게 한동네에서 오래 있는 법은 없단말이요. 허지만 우리가 없어도 인민들이 살것 아니요. 유격대는 인민의 군대란말이요. 그렇기때문에 인민이 사는 동네는 모두 우리 동네나 같단말이요. 우리는 앞으로 이런 동네 하나가 아니라 온 조선을 이렇게 닥달해야 한단말이요.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소. 우리가 이 여름에 할 군중정치사업의 본보기를 여기서 만들어야 한다고말이요.》

《그래요?》

정섭이는 놀랐지만 듣고보니 신이 나는지 입귀가 벌쭉해졌다. 그는 샘을 가늠해보면서 말하였다.

《그럼 뭘 해씌워볼가요?》

《함직해?》

《그까짓 손만 붙이면 잠간이지요.》

《그래? 그럼···》

인섭은 부쩍 구미가 동해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결단성있게 돌아섰다.

《내 잠간 다녀올테니 동무는 먼저 차비새를 하라구. 내 잡은거랑 좀 구해올테니···》

인섭은 골목에 나서서 두리번거리다가 김태규를 만났다. 그는 최근에 제발되여 8련대의 소대장으로 갔지만 기관총소대에는 본가집처럼 드나들어서 말을 붙이기가 좋았다.

인섭이가 과부로친네 지붕이야기를 꺼내자 태규는 인차 걸려들었다. 별로 이렇다할 재간이 없어서 비자루패 몇사람을 데리고 골목을 오락가락하던 그는 대뜸 자기네 대원들을 부르며 성급하게 물었다.

《어디요, 그 집이? 내 당장 고쳐놓지 않으리.》

이렇게 해서 과부로친네 지붕을 김태규에게 떼넘기는데 성공한 인섭은 그길로 골막집 갑성이네 집을 찾아갔다.

《아니 유격대동무, 이거 너무 이러지 마시우. 목수도구야 산골에 살다보니 있을건 있수다만 집주인들이 멀쩡히 앉아있어가지고 모처럼 오신 귀한 손님들에게 이런 걱정까지 시켜서야 우리가 미안해서 살겠나요.》

씨붙임이 늦었다고 농쟁기들을 벼리고있던 갑성이 아버지 리춘서는 오히려 인섭의 소매를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건 김일성장군님의 분부십니다. 동네사람들이 살림에 쪼들려서 집을 돌아볼 형편이 못된것 같은데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뭐 어렵게 생각할건 없수다. 톱, 자귀, 도끼 이런것만 있으면 되겠는데요.》

《원 참, 이런 고마울데가···》

리춘서는 얼떨떨해서 미처 말도 여미지 못하고 인섭이 덤비는데 따라 연장을 이것저것 찾아주었다.

샘터로 오니 우물바닥을 가셔내는 패들은 벌써 물을 절반나마 퍼놓고 한대 피우는 참이였다.

인섭이와 정섭이는 우물과는 좀 떨어져서 으슥한 느릅나무밑에 일자리를 잡았다. 남대원들은 샘을 치는데 열중해있었고 녀대원들은 그들의 뒤시중을 드느라고 구석지에 들어가앉은 그들에 대해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정섭이때문에 기웃기웃하는 아이들은 인섭이가 일부러 무서운 얼굴을 하고 쫓아버렸다.

두사람은 우선 참나무로 딸따리를 만들었다. 대장간이 있으면 쇠로 만드는쪽이 든든하겠지만 대장간도 없거니와 정섭이는 참나무로 만드는쪽이 오히려 든든하고 쓰기에 편하기도 하다고 우기였다. 인섭이도 나무를 다루는데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람이라 둘이 의견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 한참 싱갱이를 하다가 시끄러워서 아예 인섭이는 대목으로 지붕을 씌우고 정섭이는 소목으로 딸따리장치를 만들기로 했다.

산에 올라가서 적당한 지붕감과 도리며 들보감 몇대를 찍어다가 다듬어놓은 인섭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널판지를 구해들였다. 그러는 사이 정섭은 느릅나무그늘에 앉아 도끼와 자귀로 뚝딱거리더니 어느새 달구지바퀴의 살통같이 생긴것을 깎아내였다. 거기에 홈을 파고 홈에다 바줄을 감아서 천장에 매달자는것이다.